시간시간은 태어나지도, 낡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시간의 상징들의 몫이다.
이 세계는 거대한 시간의 상징이다.
움직이는 것은 시곗바늘이고 멈춰 있는 것은 시계 숫자판이다.
사람은 초침처럼 걷다 분침처럼 걷고, 분침처럼 걷다 시침처럼 걷고, 시침처럼 걷다 멈추고 소멸한다.
하나의 상징이 소멸하면 새로운 상징이 태어난다. 시계 태엽처럼몸을 말고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끝없이 태어난다.
시간은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 소멸한 상징들이 남기고 간 시간을새로 태어난 시간의 상징들이 이어갈 뿐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도, 증발하지도 않는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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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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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를 읽고서
아이러니(irony)한 제목이 아이디얼(ideal)하게 다가왔다.

내가 구독하는 잡지에서 얼핏 ‘역사의 쓸모’를 소개하는 글을 봤었다. 그때 당시에 나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바쁜 일상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잊고 말았다. 그러다가 아는 지인의 블로그 서평에 끌려 역사의 쓸모를 읽게 되었다. 인문학적인 학문인 역사와 실용적인 단어 쓸모와의 결합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단어의 조합을 만들어낸 작가의 발상이 신선했다. 학창시절 배운 역사는 외워야 높은 점수를 얻는 과목이었다. 대신 외운 만큼 내가 노력한 만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정직한 과목이기도 했다. 응용력보다는 암기력이 좋은 내게 역사는 학창시절 꽤 괜찮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수단에 불과한 과목이고 학문이었다. 역사 과목이 성적 유지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기에 시험을 다 치르고 난 후면 내 머릿속에 꽤 많은 양의 역사 정보가 들어 왔을 것인데 깨알 같은 흔적만 남기고 시나브로 사라졌다. 특히 근현대사는 시험 범위에 잘 들어가지 않았기에 딸아이가 뉴스를 보다가 가끔 역사적 사실을 물어보면 흔쾌히 대답해주지 못한 경험이 부끄럽지만 제법 있다.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싫지는 않은 역사를 ‘역사의 쓸모’책은 왜 역사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잘 가르쳐 주는 지침서 같았다. 나는 책을 사면 차례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각 장의 제목들이 나의 마음에 와 닿았다.
『1장-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2장-역사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3장-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4장-인생의 답을 찿으려는 사람들에게』
각 장의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여태껏 살아온 나 자신을, 앞으로 살아갈 나 자신을 생각하게 했다. 작가의 필력 덕분인지 어렵지 않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중간중간 적힌 글들이 너무 좋아 밑줄을 긋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라는 챕터였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제에 넘겨준 을사오적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은 매국노라는 공통점과 함께
지금으로치면 외교부, 교육부 장관과 같은 높은 직급의 엘리트들이었다. 집안도 좋고 머리도 좋은 이 다섯 명의 엘리트들이 한 일이 자신의 나라를 다른 나라에게 팔아버리는 것이었다. 반면 독립운동가 ‘박상진’은 달랐다. 그도 역시 부와 권력을 갖춘 엘리트 집안에 판사 시험에 합격한 법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1910년 사표를 던졌다. 그가 사표를 던진 이유는 일제 강점기때 죄인으로 끌려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에 저항하는 조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작가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우리나라 독립에 시발점이 되는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일본의 만행에 대해 눈 한번 질끈 감았으면 호의호식하며 그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똑같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삶의 궤적이 다른 이유를 작가는 꿈이 명사이지 않고 동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무엇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높은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들이 그들이 가진 일부도 사회의 공익을 위해 내놓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런 장면을 기사로 접했을 때 왜 우리 사회는 저렇게 병들어 가는 것일까?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당시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의 쓸모를 읽고 나서 명료하게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줄곧 명사에서 꿈을 찾으려고 했던 우리네 사회의 결과물이었다. SNS를 보면 6살 정도의 아이들이 대치동의 학원에서 영작을 유창하게 하고 꽤 두꺼운 영어책을 보는 사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학원에서 상도 받고 제법 그 과정을 잘 따라가는 아이 같았다. 과연 그 아이들은 무엇이 되기 위해 어떤 삶을 살기 위해 그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일까? 그런 똑똑한 아이들이 자라서 무엇이 되기만 한 명사로서 꿈을 이루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간다면 너무 섬뜩할 것 같다. 그렇게 엘리트 코스를 밟는 아이들이 그들만의 성을 쌓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러한 아이들이 작가의 말처럼 동사로서의 꿈을 꿈꾸며 삶의 철학을 겸비하며 보다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로 살아가길 바란다.
9살 되는 내 딸의 꿈은 붕어빵 장사이다. 동시에 장래희망은 소설가라고 말한다. 나는 그녀가 글을 쓰는 붕어빵 장사가 되길 바란다. 나는 그녀가 작가의 말처럼 글로, 붕어빵으로 다른 사람에게 우리 사회에 보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동사로서의 내 딸의 삶을 응원하는 쿨한 어미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근현대사를 딸에게 자신감있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지식을 겸비해야겠다. 아이러니한 제목은 마지막 책장을 덮으니 아이디얼하게 다가왔다. 이상에 그치지는 말아야겠다. 삶은 실천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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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정갈하고 담백한 음식을 받는 느낌이었다. 경건한 마음까지 들기까지 했다. 책 표지는 눈처럼 하얗고 종이는 재생종이를 사용해서 노르스름했다. FSC 인증을 받은 종이를 쓰고 작가의 의도를 반영해서 띠지를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작가의 강연에서 띠지의 문구와 디자인은 출판사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들었다. 어느 작가가 썼는가, 무슨 내용인가도 책 구매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띠지도 독자의 구매 요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띠지를 함부로 버리지는 않지만 솔직히 불필요한 포장 같은 느낌은 사실이다.
  타일러 라쉬,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비정상회담과 문제적 남자에 나온 하버드를 졸업한 똑똑한 방송인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나는 앞으로의 그의 말과 행동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 같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나에게 아주 생경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 정도 우리의 삶에 다가왔는지 디테일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은 기후 위기가 우리의 문 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학자들은 지금보다 2도 안팎의 상승은 지구가 견딜 수 있다지만 사람들의 개발에 의해 얼만큼 지구 온도가 상승하는 시기가 앞당겨질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지구 온도가 지금보다 6도가 상승하면 인류는 종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은퇴 후 바다가 보이는 뷰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것은 정말 몽상에 불과할 수고 있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많은 땅이 잠기고 있기 때문이다. 6도가 상승하면 인류가 멸종이라니 중년에 접어든 나도 얼마 살지 못한다면 서글프다.  기후 변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된다면 내 아이의 살아갈 땅이, 지구가 없어질 수도 있다니 정말 심각한 일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연금, 세금의 문제만큼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작가가 말했다.  환경오염은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고 유난 떨며 살아갈 필요가 있는지를 되물으며 일부러 모르는 척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러했던 것 같다. 나도 그 결과가 예측이 되지만 너무 무섭고 당장은 아니니 자연에 대해 채무를 갚지 않는 무기한 연체자인 삶을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살아갈 땅이 점점 사라지고, 척추동물의 60%가 멸종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종이컵을 자주 사용했다. ˝ 이제 가책만 느끼지 말고 항상 텀블러를 사용해야겠다.˝
아무튼 비건 책의 인기, 이슬아, 장기하 등 채식하는 예술가들의 증가로 예전만큼 채식주의자는 까탈스러울 것이라는 편견은 없어졌다. 그래도 우리네 삶에서 채식주의자는 아직 불편함이 많이 따른다. 이제 채식은 까탈스러움의 표현이 아니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라은 것을 알게 되었으니 ˝철저히 지키지는 못하겠지만 집에서만이라도 채식을 하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김한민 작가처럼 사람을 위해 죽은 동물인데 그 동물들이 반찬으로 나왔다면 남기지 말고 다 먹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자˝
˝FSC 인증 마크가 있는 종이제품,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는 노력을 하자˝

이 책을 읽은 이상 어차피 멸종할 것인데 의식 없이 소비하고 즐기기만 하고 살아가는 삶은 이제 무책임한 것 같다. 나라도 어차피 족이 아니라 최소한 족이 되어야겠다. 최소한 나는 가까운 거리은 걸어가는 , 최소한 나는 장 볼 때 장바구니를 챙겨가는 그런 삶 말이다. 내 어머니 이야기를 읽는 9살 딸내미에게 이 책은 필독이라고 엄포를 놓아야겠다. 왜 내가 이 책을 읽어야 하냐고 그녀의 짜증이 100프로 예상 가능하지만 기필코 내가 이겨야겠다. 내가 이길 수 있는  무기, ˝맛있는 거 사줄게˝로 말이다. 다행히 그녀는 나물 반찬을 좋아한다. 나물반찬을 좋아하는 9살 딸내미에게 지구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칭찬하고, 이 책을 읽고 WWF(세계 자연 기금)에 기부를 신청한 나 스스로도 칭찬해주면서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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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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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역시나였다. 왜 우리나라는 곳곳에 대기업의 수직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안타깝다.
이 책을 읽는내내 치킨이 될 운명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닭들이 불쌍하다가도 작가가 묘사한 치킨들의 맛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이중적인 내가 존재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들구나.. 배민보다 하림보다 치킨 사장님에게도 돈이 많이 벌리는 날이 오길. 그런데 먹을 것으로 태어난 닭들은 불쌍하다. 아직 아무튼 비건을 주문해 놓고 비거니즘을 실천못할까봐 감히 못 읽고 있는 나는 치킨 사장님을 위해 치킨을 시켜야 하나?(작가님이 그런데 치킨 사장님에게 돌아가는 몫이 300원, 양계장주에게 돌아가는 몫이 300원이라고 하셔서 많이 놀랐다) 닭들을 위해 그만 시켜 먹어야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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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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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두께에 질려 감히 읽질 못했다. 책을 많이 읽는 내 친구가 괜찮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 친구는 독서모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도 일간 이슬아를 추천했다. 학자금을 갚기 위해 구독자를 스스로 모집하는 취지?로 이 글이 탄생했다고 들었다. 작가는 90년대생의 젊은 작가라는 배경 지식은 친구로부터 장착했다. 하지만 페이지가 500이 넘었다. 그렇게 인간 이슬아는 1년을 돌아서 큰 마음을 먹고 빌리고 완독한 책이다.
일단 나는 이슬아 작가의 등단 방식이 너무 창의적이라 놀랍다. 원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 통과한 것도 아니고, 신춘 문예에 큰 상을 받아 등단한 것도 아니였다. 스스로 학자금 빚을 갚기 위해 일정의 금액을 받고 글고객을 위해 글을 써주는 발상의 전환으로 이 책이 탄생했다. 이런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기에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것이 너무 궁금하다. 나는 이미 정형화된 사고로 고착화된 사람이다. 하지만 내 딸은 이슬아작가처럼 반짝반짝한 사고의 소유자로 살아가길 바란다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
일간 이슬아를 읽으면 이슬아는 너무 대범한 사람같다. 데이트어플을 이용해서 하룻밤의 섹스를 해 본 사람, 맘편한 섹스를 위해 과감히 루프삽입 피임 수술을 하는 사람, 담배를 피고 노브라로 다닐 수 있는 사람 그 외에도 매일 요가를 통해 부지런히 자신을 몸을 돌보고 가꿀 수 있는 사람, 탐이를 사랑하는 비건 등 인간 이슬아를 수식하는 단어는 이 책을 읽다보면 끝이 없다.
이슬아의 당당함(높은 자존감)과 반짝임은 상웅씨(슬아의 아빠),복희씨(슬아의 엄마)의 차고 넘치는 사랑에서 비롯된 같다. 그들의 넘치는 사랑과 자녀 이슬아에 대한 무한 신뢰가 일간 이슬아란 글로 탄생되지 않았을까 싶다. 복희씨와 상웅씨가 슬아에게 부어준 사랑이 그녀의 친구 양이에게, 그녀의 애인 하마에게 전달되어 여느 친구와의 일상이, 여느 연인과의 데이트가 나같은 독자들에게 빛나게 다가온 것 같다.
일간 이슬아 중 많은 부분이 좋았겠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최근에 읽었던 페이지다. (책이 너무 두꺼워 표시를 해두지 않으면 찾기가 어려움)그녀의 친구 류가 언급한 챕터 베이비 베이비 중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췌해보면

<이 미세한 차이를 알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그 애들(곤이와 단이 일란성 쌍둥이)의 근거가 되는 디테일들. 그러나 계속 변하기도 하는 디테일들.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는 디테일들. 누군가를 계속 힘차게 살게 만드는 그 디테일들. 살과 피부와 머리카락과 음성과 이빨과 뺨과 정수리 냄새의 디테일들. 빼도 박도 못할 사랑의 근원들
일간 이슬아 436쪽>

내가 아이가 있는 엄마라서 몰라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디테일들이란 문구가 와 닿았다. 우리 딸도 매일 업데이트되는 디테일들이 있을텐데 나는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나쁜 엄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 코로나로 매일이 그날이 그날같은 하루가 펼쳐진다. 딸아이는 심심해란 말을 남발한다. 하지만 창의성이 1도 없는 나란 엄마는 그녀에게 무료한 일상을 깨트려줄 반짝이는 놀이를 제공해 줄 수 없다. 너무 무력한 어미가 되어가는 요즘이다. 마스크를 쓰고 더 넓고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러 가자고 할 부지런함도 장착하지 않은 모녀에게 이 상황은 성장기의 인간을 퇴행시킬까봐 두렵다.
이슬아 작가는 상웅씨와 복희씨를 사랑한다. 나는 내 부모인 복@씨를 사랑하지만 병@씨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내 딸은 엄마 사랑해를 남발하는 9살이지만 커서도 엄마 @@씨를 사랑하는 딸로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병@씨를 사랑하지 않는 지금의 나처럼 민@씨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 @@이 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슬프지만 나는 복희씨처럼 딸에게 무한 신뢰를 보낼 수 있는 엄마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 감내해야되는게 아닐까 싶다. 담배피는 딸, 피임수술과 데이트 어플을 사용하는 딸을 묵묵히 지켜볼 수 없고 잔소리를 하고야 마는 나는 쫄보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같은 쫄보도 일간 이슬아를 읽는 동안 대범한 인간 이슬아로 잠깐 빙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멋졌다. 제네바에서 동양 여자를 위협적으로 보는 시선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기도 하고 비건 요리를 멋지게 해주는 무한지지맘 복희씨를 엄마로 가져보는 간접경험은 돈을 주고도 볼 수도 해볼수도 없는 것이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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