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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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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래드 사망 100주기를 맞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에서 선보인 어둠의 심장은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콘래드 문체를 느낄 수 있는 최신간이다. 양장본의 겉표지는 말로의 배가 항해하던 그 유역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겉표지를 벗기면 그 유역을 바라보는, 어쩌면 말로의, 그리고 우리의 눈이, 눈빛이 형형하다.

 

어둠의 심장.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말로와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 어둠 속에서 말로의 혹은 우리의 심장 소리. 말로는 알지만 우리는 모르는, 미지와 같은 어둠의 인물 커츠를 통함 울림, 어둠 속 심장 소리를 닮은 북소리. 제목은 여러 의미로 읽는 이들에게 남겠지만, 말로가 그리고 콘래드가 말하고자 한 Heart를 내가 과연 제대로 느꼈는가, 내내 어려웠고 조심스러웠다.

 

그들이 욕망하는 것은 대지의 저 깊은 내장에서 보물을 뜯어내는 것일 뿐, 금고를 터는 절도범이 그러하듯 그 욕망의 한 구석에는 그 어떤 도덕적 목적도 존재하지 않았지. p.73

 

인생에서 우리가 기껏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너무 늦게 얻게 되는, 얼마간의 지식과 지울 수 없는 일련의 후회뿐이라네. p.167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타자를 부정하게 되는 선은 어디서부터 생겨나는 걸까.

부끄러울 정도로 끔찍한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순순히 인정해야 하나.

어떤 문명 혹은 문화, 어떤 인류, 몇몇의 우리는 도대체 자연에 대한, 삶에 대한, 특히 타인의 삶에 대한 태도와 존경을 무엇과 맞바꾸었을까.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언제부터 잊은 지도 모르고 기울어진 시소에 앉아 마주앉은 이를 기다리면서도 자만하게 되었을까.

 

읽는 내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앉아 먼 북소리와 함께 말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어둠의 심장으로 콘래드를 알고 콘래드의 작가관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뛰어난 장면 묘사와 심리 묘사로 곳곳에 인덱스와 메모를 남긴, 오랜만에 푹 빠져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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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일기 : 영원한 여름편 -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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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과 함께 한 이 몇 날은, 여름의 쨍함과 습함 잎의 푸르름과 비 올 바람의 궤적을 새삼 귀하게 느끼며 생생하게 일상을 짚어본 시간이었다.

사실, 금세 읽을 줄 알았다. 그럴 수 없는 소로의 시선과 문장임을 잊고 있었나.

소로의 38세, 39세, 40세의 일기.
매일의 날씨와 매일의 동물과 식물과 그 날의 이웃과 친구에 대한, 말하자면 소로의 모든 일상에 대한 관심이 문장으로 차분히 앉아 나를 지긋이 보는 느낌. 문장마다 행간마다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세상이 눈에 다 덮여도, 녹음에 그저 우거진 숲이라도, 불어오는 동풍을 맞고 서서도 그의 눈에는 어떤 이름이 보낸 시간의 궤적이 보이는구나 생각하니 새삼 『월든』을 다시 읽어보자는 생각도 든다.

p.17
이렇게 쌓인 눈들이 보여주지 않았다면 이 숲에 잔가지와 큰 가지가 이리도 많다는 게 믿기지 않았을 터이다. 눈이 빈틈없이 내리 쌓여 새가 앉을만한 가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산책 길에 나는 “어쩜 이렇게 다, 다르게 생겼을까. 이렇게 생김새도 다르고 초록도 저마다 다른데 이걸 다 뭉텅거려서 풀이라고 부르자니 미안해지네.” 했다. 아마도 꽃이며 새, 나무, 풀 하나라도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고 구분하는 소로에게 감동해서일테지.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서술하는 소로의 관찰력과 아울러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그래서 그 문장을 읽는 나도 적극적으로 애써서 상상하고 떠올리게 하는 천천히 움직이는 시선과 문장의 속도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p.168 순풍을 받으며 비둘기 바위를 지나 애서벳강을 거슬러 오를 때 말을 타고 큰 길을 가는 여행자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돛단배를 바라봤다. 말을 다그치는 여행자의 목소리나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일꾼의 목소리가 내 귀에서 노래로 바뀐다. 이런 순간만큼 감동적이고 행복한 때도 없다. 이런 소리가 경치에 덧칠되면서 꽃이 핀 농작물과 일꾼들의 농경이 정물화의 한 부분으로 바뀌고 또 다른 땅, 사이 거처가 된다.


빼곡하게 들어찬 사유가 이르고자 함이 ‘간소한 삶’이라는 것에서 결국 모든 철학과 삶은 간소하고 가벼워지는 일, 그럼에도 비워지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인가. 내면과 삶을 더 단단하게 하는 것은 결국 나를 더 자주, 잘 들여다보고, 나를 둘러싼 주변을 잘 아는 것인가.

나를, 나의 이웃을, 자연을 깊이 보는.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은
시즌책처럼, 다음에 올 나의 여름들에 또 함께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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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밤 모호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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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새로운 시선, 방법을 문장과 함께 접하니 이런 호사가 어디 또 있을까요.
다만 새 책 냄새가 꽤 진해서 자주 펼쳐 냄새를 뺄 겸, 그림도 보고 문장에 감탄하며 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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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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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가리보다 치명적이고 복어의 독보다도 더 진한 검붉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세상을 향한 몸을 약간 비틀어, 겉으로는 두껍고 단단하게 안은 아직 너무나 여리고 보드라운 열여덟 김두현. 쉼표 같던 어느 날에, 나눔으로 발견으로 놀라움으로 응원으로 제 안의 독을 치유하기 위해, 가벼워지기 위해 비로소 시작하는 분투의 길. 친구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은 “다 좋다”가 되기도 하는 나이, 준수와 재경과 두현은 각자의 아픔보다 마주보이는 친구의 아픔을 위해 마음을 내준다. 그들만의 공동체 의식이 꽤 단단하고 끈끈해서, 입시나 입상이 아닌, 숫자가 아닌 것으로 말할 줄 아는 그들이 대견하다.


 세상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무엇이든. 그렇다고 무작정 조심하고 의심하며 방어하기엔 세상에 의미들이 너무 많다. 그 의미들에도 중독이 되기도 하니까, 정말 모든 게 다 독 일지도. 그러나 금강 복집을 운영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세상 더할 것 없이 센 독도 스스로 다스리며 자기 안에서 새롭게 일구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 힘을 어렴풋이라도 아는 두현이니까 마음이 힘들때마다 복국이 먹고 싶고 할머니는 식탁에 복국을 올린다. 가족이 가족이라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어른의 바른 사랑이 두현이의 앞으로를 응원하겠지. 숫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그 따스하고 아늑한 요람의 의미.


p.112 나도 안다. 세상이 지금보다 더 엉망이던 시절도 있었다는 걸. 그래도 현실이 지금보단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이었으면 했다.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 길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길 바랐다.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가 지나온 세상은 그럭저럭 적응하고 지낼 만은 했다. 우리 아이들이 자랄 세상은 어떨까 생각할 때, 미안한 마음은 부디 생기지 않길 바란다.

  “일렁이는 이 마음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생각하는데, 불현 듯 투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p.186, 187) 모두의 투지에 건승을 기원한다.

 

#나는복어 #문경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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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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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산화.
도서전 부스에서, 과학 잡지에서, 앤솔러지에서 스치듯 보고 듣고 읽었던
내게 아직은 낯선 작가 이산화님이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은 표지에 홀렸다는 것, 이단은 ‘열두 세계라니 평행우주 얘긴가?’하는 호기심, 삼단은 그래도 망설이는 결정장애를 책쟁이들께 선호도를 물었다는 무려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아주, 매우, 굉장히.

지금까지 초단편이라고 하면 알아채기 힘든 그들만의 메모거나 쓰다만 그러나 뒤가 궁금하지 않은 낙서 같거나 하나마나 한 무사유 무서사의 끄적임으로 느껴져 공감하기가 난감했는데,
이산화님의 초단편소설집 『전혀 다른 열두 세계』 덕분에 새로운 장르를 얻었다.
SF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환기가 되었다. 마냥 디스토피아거나 ‘이게 된다고?’ 싶은 허무맹랑공상망상이 아닌 그럴 법도 한, 말하자면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빠져들어 나의 논리로 뒤를 상상하며 읽게 하는 설정과 전개가 놀랍다. 아마도 《고교 독서평설》 연재소설이라는 지면의 특성이 글에 그런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울러 《고교 독서평설》에 22년 1월부터 12월까지 12개월 동안 연재된 열두 편의 소설의 소재와 변형이 감탄스럽다. 이산화님은 어쩜 이렇게 부지런해서 아는 게 이다지도 많고, 이런 생각을 이렇게 연결시켜낼까. 박식하면 초단편도 장편 이상의 느낌을 심어주는 건가. 놀랍고 감동적이다. 열두 편의 이야기에 이은 열세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 아마 다들 이마 탁! 무릎 탁! 할 것 같은데?!!

도입은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제 1장 토끼 굴 아래로.
이어서 황도 12궁 중에 물병자리, 올린푸스 12주신 중 헤르메스, 12간지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용, 키보드 위 12개의 기능 키 그 중에서도 F5, 아폴로 계획으로 달에 발을 디딘 12명의 우주비행사 중 여섯 번째 에드거 미첼, 마제스틸 12, UFO연구비밀위원회의 제임스 포레스탈 (여기에는 아이아스 내용도 나온다), 유대민족의 시조 야곱의 열두 아들 열두 지파중 사라진 열 지파, 비틀즈의 12개 스튜디오 음반 중 9번째 더 비틀스 수록곡 Revolution 9,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사도 요한, 슬슬 마무리되는 분위기로 거울나라의 앨리스 11장 깨어남에 등장하는 점점 작고 둥글어져 고양이가 된 거울나라의 붉은 여왕.
대미는 예수만 구세주냐, 나도 너희를 구하러 세상에 왔으니. 이슬람교 시아파, 12이맘파의 마지막 이맘인 무함마드 알마흐디.

전혀 다른 열두 세계가 오묘하게 연결된 장편같은 단편집, 『전혀 다른 열두 세계』.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얼마든지 맡을 수 있는 장르 본연의 재미를 전달하면 좋겠다(p.155)는 작가의 바람이 내게는 와 닿았다. 내가 고등학생이고 이 글을 읽었다면 내 남은 독서기는 SF가 될 듯도 하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현실과 조금 다른 세계, 완전히 다른 세계, 군데군데가 크게 다르면서도 어쩐지 비슷한 세계, 거의 비슷하면서도 실제로는 근본적인 차이를 품은 세계(p.155)는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시공간, 분명 유일해서 같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 시공간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는 전혀 같지 않은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때로는 어둠과 절망이 되기도 하고 희망과 구원이 되기도 하겠지. 다름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는 것, 서로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이해 등으로 생각이 이어져 생각이 이제야 좀 정리가 되는 듯 하다.
사실 책은 받자마자 읽었는데 갈무리가 되기까지 오래 담아두고 생각한 책이다. 아직 2월이지만 “나의 올해의 책”에 올려두는 책, 좋은 책이다.

때론 입천장에 와 닿는 그런 숨결 하나가 구세주의 도래보다도 절실할 때가 있잖아요? (p.197)

이 책은 나에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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