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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도 여여합니다. 이 말을 하기가 참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그렇습니다. 여여합니다. (중략)
"심심하지 않으세요?"
"심심하지요."
"심심하면 어떻게 하세요?"
"심심한대로 그냥 지내요."
그러면 재미가 없어서인지, 실망스러워서인지, 기대한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러는지 물음을 던진 사람도 피식 웃습니다.
"외롭지 않으세요?"
"외롭지요."
"그럼 어떡해요?"
"외로운 대로 지내지요. 살면서 외로운 시간도 필요해요.
저는 이런 고적한 시간이 내게 온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렇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도 복 받은 거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또 피식 웃습니다. 이 웃음은 아까 웃은 웃음과는
다른 것도 같습니다. 조금은 수긍을 하는 듯한 웃음입니다.
(p.36~37)
오늘도 우리집 꼬맹이는 아침부터 엄마를 괴롭힌다. '엄마,엄마'를 연신 불러대며 내 뒤를 따라다니는 울 꼬맹이... 강아지가 주인을 쫓아다니듯 그렇게 엄마의 뒤를 따라다니며 논다. 그냥 조용히 놀면 좋으련만, 책장의 책은 모조리 끄집어 내고, 서랍이란 서랍은 모두 열어서 내용물을 쏟아 놓고, 휴지는 보이는 족족 뽑아버려서 온 집안을 쓰레기장인양 엉망으로 해 놓고는 세상에 나온 천사의 얼굴을 하고 낮잠을 잔다. 아, 엄마는 너무 바쁘다. 내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 여유를 누릴 시간도 없다. 오전 내내 어질러 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나면, 낮잠을 깬 꼬맹이는 또 시작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책장의 책을 꺼내고, 서랍을 열고.... 지치지도 않는 꼬맹이의 행각은 저녁에 깊은 꿈나라를 갈때까지 계속된다. 저녁이 되면 나를 괴롭히는 또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남편. 그는 집에 들어오면 소파에 앉아서 나의 시중을 기다린다. 저녁상을 차리고,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정리정돈하고...그러면 시간은 어느덧 잠잘시간... 남편과 아이는 아주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든다. 그러면 나는? 나는 이제부터가 자유로운 시간이건만 하루종일 분주했던 내 몸은 지칠대로 지쳐서 휴식을 원한다. 남편과 아이 옆에 지친 몸을 누이고 선잠을 잔다. 내일의 고단한 일상을 준비하며... 아, 난 언제쯤 조용한 나만의 고즈넉한 여유를 갖게 될까..
도종환님의 그 여여하고 심심한 일상에 초대되어 가고 싶다. 이 책의 제목 처럼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의 질문에 답하고 싶다. 그의 숲속 생활이 얼마나 고즈넉하고 조용한지.. 책을 읽다보면 나 또한 명상에 잠기듯 고요해진다.
사람들은 너무나 바쁘다. 몸과 마음이 온통 회사에 쏠려 있거나, 집안일과 아이들의 육아에 온몸을 내던진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스트레스..언제부터 생긴 말인가. 사회가 좀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이 조금 더 바빠지면서 우리 곁에 다가온 말이 아니던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공자왈''맹자왈'하던 시절에는 없던 말이다. 전기도 없고, 공장도 없던 그때는 사람들이 손수 땅을 파고, 씨를 심고, 천천히 때를 기다려 수확하였다. 땀을 닦으며 세월을 벗으로 삼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여여하였다. 심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스트레스가 없었다.
오늘하루 너무나 바빠서 밥도 먹는둥 마는둥, 피곤에 지쳐서 집에 왔다면 휴일에는 내 몸을 쉬게 해주자. 내 정신을 맑고 깨끗한 숲으로 초대 해주자.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향기가 있고, 맑은 수채빛 그림이 있고, 작가의 숲속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기가 담겨 있는 책,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일요일 오후.. 나른한 시간을 함께할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