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좋은 일 -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정혜윤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7월 7일 토요일, 은평구에 있는 서울혁신센터에서는
의미있는 축제가 열렸다.
‘동축반축’이라고, ‘동물축제에 반대하는 축제’의 줄임말이다.
취지는 이랬다.
그간의 동물축제는 해당 동물을 위한 것이 아닌, 오직 인간을 위한 축제였다.
함평 나비축제를 보자.
이 축제는 어린이날이 있다는 이유로 5월 초에 열리는데,
이때는 나비가 훨훨 날기엔 기온이 좀 낮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비를 잡아다 나비축제를 여는데,
사람들이 돌아가고 밤이 찾아오면 그 나비들은 죽어서 바닥에 떨어지며,
그 수가 워낙 많아 낙엽이 지는 것을 방불케 한단다.
고래축제는 불법으로 잡은 고래를 먹는 축제이며,
산천어축제 역시 당사자인 물고기들이 인간의 노리개 & 먹이가 될 뿐이다.
나비축제가 열리는 함평이나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화천이 사실은 이들 동물이 살지 않는,
뜬금없는 장소라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동축반축은 인간만을 위한 이따위 축제를 하지 말자는 퍼포먼스였다.


이 축제는 놀랍게도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CBS 피디인 정혜윤이 이 축제를 기획했는데,

여기에 동감해준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축제가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었다. 

축제가 제대로 자리잡는다면 축제의 주인공인 동물들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정피디로부터 이 축제에 협조하라는 부탁을 받기 전까지
내 꿈은 고래축제에 한번 가보는 것이었다.
고래가 대부분 불법으로 잡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데 가서 고래고기를 먹으면 운치가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데,
이왕 깨달음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그런 축제가 잘 안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밖에도 정혜윤은 세월호 가족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가장 애쓴 사람이며,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 비결이 뭘까?
언젠가 정혜윤이 했던 세바시 강연에 그 답이 있다.
책을 읽었으면 이젠 책에서 얻은 지식을 어떻게 실천할지 궁리해야 한다는 그 말에
난 놀랐었다.
내게 책은 지식을 얻고, 그럼으로써 잘난 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을 뿐,
그걸 가지고 실천할 생각은 안했는데,
둘째라가라면 서러울 독서가인 정혜윤은 책에서 읽은 것들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동축반축 역시 그 실천의 일환일 터, 어찌 그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혜윤의 신작 <뜻밖의 좋은 일>도 책을 읽는 것이 지적 유희가 아닌,
세상과 맞서 싸우도록 자신의 힘을 키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가장 공감되는 대목은 다음이었다.
[...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단 한 단어로 규정된다. 그 사람은 전쟁용사야, 전쟁 때문에 아주 망가졌대...알고 보니 입양아래..성소수자였다는군.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제 이해된다.”
우리는 한 사람을 얼마든지 축소한다.
그 순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겠어. 그래서 그랬군!” (244쪽)]
정혜윤은 그 다음에 쿤데라의 말을 언급한다.
“그는 한 사람의 개성, 정체성, 가치, 이것들을 파괴하여 무의미한 획일성으로 만드는 것이 악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한 사람을 하나의 원인으로, 당위로 환원시키지 않는 것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245쪽)
이것 역시 내가 자주 해오던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진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워지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책을 안읽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나쁜 것이다.
그러니 책을 많이 읽고, 많이 깨닫고, 그걸 실천하려고 노력하자.
그런다고 내가 동축반축을 기획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축제에 가서 멋진 연설을 하는 사람은 될 수 있으니까.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8-07-17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나비축제에 나비가 죽다니요...
저도 동축반축에 한표!
세상과 맞서 싸우도록 자신의 힘을 키우는 일... 까지는 못해도,
직장내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면 인정하더라구요^^
독서를 통한 유연한 사고도 큰 장점.
더운 여름날 잘 지내시지요?

마태우스 2018-07-17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세실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즘 저한테 드물었던 댓글까지 흐흐흐 저는 요즘 개 여섯 마리 먹여 살리느라 열심히 알바 중입니다 그래서 더운 것도 모르고 일하고 있어요

stella.K 2018-07-17 10:53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니, 알바까지...?!
그럼 휴가도 반납하신 거 아닙니까?

암튼 정혜윤 PD 정말 잘 하는 거네요.
그런 거 지역 경제 살리겠다고 하는 건데
거기에 동물까지 희생하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오늘이 초복이라는데 개는 또 얼마나 희생될까요?
아침에 불법도축 현장 보여주는데 정말 끔찍하더군요.
동물협회 사람들과 카메라맨 취재한다고 되려 화를 내는데
어이가 없더군요.
한쪽에선 개고기 반대운동 하고,
그 옆에선 개고기 합법적으로 먹게해서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깨끗한 환경에서 도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데
국회 발의는 됐지만 벌써 몇년째 계류중이라는데
국회의원 속셈이 뭔지 모르겠어요.
이런 식으로 시간 끌기만 하겠다는 건지.
뭐가 되던지간에 무엇이 개를 위한 길인지 한번쯤 더
생각했으면 좋겠어요.ㅠㅠ

마태우스 2018-07-17 23:17   좋아요 0 | URL
어머나 스텔라K님, 댓글 감사드려요. 개 6마리 키우려고 알바 하고 있어용. 휴가는 무슨 휴갑니까 ㅜㅜ 개들 먹여야죠 ㅠㅠ

암튼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분이라, 정혜윤피디님을 제가 좋아하죠. 개에 대해선....인간의 이기심간의 충돌, 이라고만 정리하고 넘어갈래요.

어린왕자 2018-07-17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 <경애의 마음>에 이어 또 저와 같은 책을 읽으셨네요. 찌찌뽕! 제가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정혜윤의 책. 알라딘 신간에 뜨면 무조건 보관함에 넣지요. 이번 책은 넘나 사랑스러워서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저는 수업 마치고 쉬는 시간마다 알라딘에 들어오는데요, 오늘 교수님 글을 보고 울반 여학생에게 ˝ 서민교수님이라고, 아주 유명한 분이 쌤이랑 같은 책 읽고 계셔! 나한테 댓글도 달아 주셨어!˝ 했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덕분에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18-07-17 23:18   좋아요 1 | URL
오모나 정말 찌찌뽕이네요. 이러기가 쉽지 않은데 어쩜... 글구 제가 뭐 유명하다고 그러셨어요 요즘엔 아무리 다녀도 알아보는 이 하나 없는데 말입니다^^ 암튼 님과 저, 그리고 정혜윤 피디 모두 잘되길 빌어봅시당.

북극곰 2018-07-1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몰랐던 사실이네요. 심지어 저는 산천어 축제가 가기까지 했는데. 한마리도 못잡았지만, 피핓이 선연한 채로 투명 비닐에 담겨 사람들 손에 들려다니는 산천어의 모습을 보니 회든 구이든 먹고 싶은 맘이 확 사라지긴 했었어요.

마태우스 2018-07-17 23:1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산천어축제 가는 게 고래축제 다음으로 원하던 로망이었답니다. ㅠㅠ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박균호 2018-07-1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통찰을 주는 좋은 책이네요. 저도 읽어볼게요.

마태우스 2018-07-17 23:19   좋아요 0 | URL
앗 작가님이닷! 반갑습니다. 독서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책이어요.

hellas 2018-07-20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축제 반대축제 저도 너무 공감해요!! 몰랐던 좋은 정보 잘 알고 있다 기회되면 꼭 참여해보고 싶어요:)

마태우스 2018-07-21 16:48   좋아요 1 | URL
네 내년에도 할 거니까 그때 봬요. 동물축제가 다 없어지는 그날까지 할 듯합니다.
 
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9년, 인천 모 건물 4층에서 불이 났다.


불은 계속 번져 2층까지 내려갔는데,

당시 2층에는 호프집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축제를 마친 중. 고교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56명이나 되는 사망자 대부분은 바로 그들이었다.

술값을 받지 못할까봐 주인이 2층 호프집의 문을 잠가 버린 탓에

탈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주인은 불이 커지자 비상구로 혼자만 탈출하는 엽기성을 보였는데,

그 당시 여론은 “술을 먹은 중고생이 문제다.”였다.

정말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런 여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책이 필요한 이유는 이런 잘못된 생각에 경종을 울려줄 수 있어서다.

 

 

호프집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경애의 마음>의 한 대목.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71쪽)]
이 구절은 유령이 스크루지를 인도하듯 나를 1999년으로 가게 했고,
신문을 보면서 “벌써부터 술 마시고, 싹수가 노랗지”라며 혀를 차던 내 모습을 보게 해줬다.
삶의 대부분을 모범생으로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만들어낸 그 허위의식은
사건의 본질을 보려하지 않고 여론에 편승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획기적인 표현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책의 주인공 상수는 재수학원에서 해병대를 나온 조교로부터 혹독한 대우를 받는다.
나태해질 때마다 선착순 달리기나 뜀뛰기 등의 얼차려를 시키는 그 조교에게
상수는 분노와 원망을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이 관계에서 약자이며, 그의 선처와 용서를 바라게 된다는 것을 느낀다.
늦잠을 잔 어느날, 오늘도 또 얼차려를 받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운동장에 나갔더니
조교가 매우 평화로운 표정으로 상수를 대한다.
“제가 지각했거든요”라고 상수가 말하자 조교가 답한다.
자신은 이미 계약이 끝났고, 그래서 더 이상 얼차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상수는, 좀 더 정확히 김금희 작가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다.
[...결론은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것에 복무하는 이들이 일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물질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 (153쪽)]
연애가 노동이고 거기 종사하는 자들이 노동자라니, 이렇게 공감이 갈 수가.
내가 권력자에게 했던 수많은 노동들이 생각났고,
그래서 갑자기 욱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 나이에 새삼 욱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싶어서 다음 부분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뭔가 많이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왕자 2018-07-1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 글을 오랫만에 봐서 기쁘구요, 저도 요즘 이 책을 읽고 있어서 한번 더 기쁘네요^^ 아직 많이 안 읽어서 화재사건이 등장하기 전인데, 벌써 마음이 저려옵니다. 연애가 노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말마다 저는 집안일하고, 남편은 베짱이로 변하는 현실이 슬프기는 합니다.(저희 부부는 주말부부인데, 제가 다른 지역에 와서 살다가 금요일에 본집에 내려가서 계속 집안일을 하다 일요일에 오거든요.ㅠ.ㅠ.)

마태우스 2018-07-17 01:52   좋아요 1 | URL
아 네... 곧 화재사건이 나올 겁니다 초반에 나오는데 아직 거까지 안읽으신 듯요. 초반엔 진도가 잘 안나가긴 했어요. 암튼 남자분들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부인이 오면 고생했지, 라고 하기보단 부인 없는 동안 자신이 혼자 살아온 걸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있는 듯요. -.- 두집살림이 얼마나 어려운데 말입니다.
 
어차피 연애는 남의 일 - 의외로 본능충실 도대체 씨의 일단직진 연애탐구
도대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원할 것 같은 사랑,
하지만 갑자기 이별이 찾아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 (그녀)를 원망해 보지만,
그 갑작스러움을 이해할 길은 없다.
그런데 이전에 쓴 일기를 보면 이런 말이 쓰여 있다.
[2월 4일. 차를 마시다가 좀 말다툼을 했다. 별거 아닌 일로 자꾸 삐그덕거리게 된다. 그래도 빨리 기분을 풀어서 다행.]
[2월 7일, 주말 약속을 잡다가 또 서로 기분이 상해서 약속을 취소할 뻔했다.]
[2월 8일, 마음이 식은 걸까...아니겠지?]
그러니까 그 이별은 결코 갑작스러운 게 아니었다.
“내가 애써 모른 척했을 뿐”이고,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둘 다 이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으면서도
헤어진 이유를 상대에게만 돌리려고 했던 것이다. (<어차피 연애는 남의 일>, 138-139쪽)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를 썼던 도대체 작가의 새로운 주제는 바로 ‘연애’였다.
모든 연애는 다 다르지만, 그래도 공통적인 부분이 꽤 많이 존재하는지라
연애 관련 책이 필요해진다.
도대체 작가는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 공감을 유발하는 글 &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재주가 있는데,
이번 책에서도 그의 재능은 여지없이 발휘된다.
하지만 ‘위로’를 바탕으로 한 지난 책에서도 그랬지만
‘연애’를 이야기하는 이번 책도 진한 외로움을 느끼게 해주는데,
그건 지금까지 했던 도대체 작가의 연애가 다 실패로 끝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창 연애를 하는 사람이 아닌,
솔로들, 권태기 커플, 그리고 헤어짐의 아픔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읽으면 훨씬 더 공감할 수 있으리라.

또 다른 글을 하나 소개하자.
“그대가 내게 전부였었는데”라는 가사가 있다.
그런데 도대체는 누군가가 자신의 전부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
다만 그가 떠날 때 그런 마음이 들었을 뿐이라고.
이 말을 하면서 도대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함께 있을 때 일부였던 이는 떠나면서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간다.” (159쪽)
이렇듯 작가는,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이별의 아픔을 멋진 글로 승화시키는 존재다.


팟캐스트와 방송에서 이름을 날리는 박지훈 변호사,
어떤 주제든지 그는 재미있는 말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재주가 있다.
그런 그가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분야는 바로 연애로,
그가 억지로 끼어들 때마다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왜일까.
그는 처음 만나 사귄 허모 여사와 결혼했고, 지금도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별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랑의 소중함을 알기 어려우며,
좋은 연애 코치가 되긴 힘들다.
그렇다면 죄다 실패로 끝났을지언정 몇 번 연애를 해본 도대체 작가는
좋은 연애 코치의 자격이 충분하다.
이 책 읽고 연애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면서
새로운 연애를 준비하는 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볼 게 많은데 굳이 책을 봐야 해요?"

"읽으려 해도 읽을 책이 없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실제로 독서 관련 강의를 할 때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는 이들이 있다.

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니는 애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건,

그들이 지금까지 책읽기를 별로 하지 않았을 뿐더러

앞으로도 읽고픈 마음이 없다는 거니,

내가 뭐라고 답한들 별로 달라질 건 없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해보긴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숨막힐 듯이 재미있고,

그 재미가 취향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해당되며,

우리네 삶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뿐 아니라

결말마저 훌륭해 읽고 난 뒤에도 계속 여운이 남는 책이 있다면,

책의 필요성을 회의하는 이들에게 필살기로 내놓을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질문한 이가 그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책도 있으니 앞으로도 책을 읽어야겠다"라고 생각을 고쳐먹을 수가 있지않을까?

요 몇년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추천했다.

물론 그 책은 재미와 따뜻함을 모두 주는 훌륭한 책이지만,

만사 제쳐놓고 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다.


어제, 드디어 그런 책을 찾아냈다.

<범죄자>라는, 아주 평범한 제목을 지닌 이 책은

오타 아이라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가 썼다.

살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품지 않았는데,

웬걸. 이 책은 지난 이틀간 내가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스릴러라 해도 두세차례 위기가 닥치는 게 고작일텐데

이 책은, 특히 '하권'은, 주인공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다 가까스로 벗어나는 상황이 십수차례 나온다.

초절정미녀를 봐도 뛰지 않던 내 가슴은 <범죄자>와 함께 하는 내내 콩당콩당 뛰었다. 

위기가 너무 잦으면 식상해질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어떻게 매번 사람을 쫄깃하게 만들까? 

우리나라 범죄물의 문제점은 범죄자와 경찰 중 한쪽이 아주 바보여서

아주 간단한 트릭으로도 속아넘어간다는 데 있다.

하지만 <범죄자>의 악당들과 주인공들은 둘 다 머리가 비상해서,

감탄이 나올 정도의 치밀한 두뇌싸움을 한다.

계획을 세우면 저쪽이 알아내서 뒤집기를 시도하는 바람에 계획이 다 어그러지고, 이러다보니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 들 수밖에.

한 마디로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필살기의 조건을 모두 갖췄고,

최근 몇년간 본  어떤 책이나 TV, 영화, 심지어 자한당 홍준표보다 더 재미있다!

다음 독서강의 때 누군가 위에서 언급한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답하련다.

"닥치고 <범죄자> 보세요!"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6-0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초절정 미녀를 봐도 가슴이...ㅋㅋㅋㅋ
그건 저도 그래요. 초절정 미남을 봐도 가슴이 안 뛰어요.
그냥 잘 생겼다 그런 거죠 뭐.
근데 안 생겼는데 뛰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가슴이란 게 참 웃기죠?ㅋㅋ

마태우스 2018-06-03 13:05   좋아요 0 | URL
그, 그게요, 전 원래 미녀 볼때마다 뛰었는데요, 나이드니깐 이렇게 된 겁니다 ㅠㅠ 스텔라K님은 아직 젊으신지라 저랑 비교하심 안됩니다 -.- 님은 미남이라고 해도 취향이 아닌 것이고요-.-

꼬마요정 2018-06-0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필살기는 밀레니엄 시리즈였어요 ㅎㅎ 그 책은 추천해서 한 번도 실패 한 적이 없는데, 문제는 그 책 다 읽고 그런 책 또 추천해달라할 때 다 실패했다는 거죠..ㅠㅠ

마태우스 2018-06-03 15:39   좋아요 0 | URL
오 그 시리즈...제가 첫번째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스웨덴에서 일어나는 음모죠?? 앞으론 범죄자 밀어주기 어떠세요.

hellas 2018-06-04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나 막무가내? ㅋㅋ 로 추천하시면 바로 읽어보겠습니다. >_<

마태우스 2018-06-04 20:06   좋아요 0 | URL
지금 아내가 읽고 있는데요, 다 읽을 때까지 말시키지 말랍니다 -,-

비연 2018-06-04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이런 추천이라니! 바로 구매 들어갑니다~

마태우스 2018-06-04 20:06   좋아요 2 | URL
비연님, 후회 안하실 거에요!

Conan 2018-06-06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서평을 보고 곰탕을 샀습니다. 그리고 조금전 새벽3시 반에 다 읽었는데요~ 그냥 혹시나 북플에 왔더니 닥치고 봐야할 책을 또 소개시켜 주시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인물과사상 서평 주제는 페미니즘 이신것 같더군요~

2018-07-15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nan 2018-07-15 16:36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범죄자도 샀구요, 아직 읽기 전 인데 마태우스님 추천이라 기대가 됩니다.^^

마태우스 2018-07-15 17:02   좋아요 0 | URL
아 네... 이책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처음부터 숨이 막힐 정도로 달려나갑니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정희진 외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분들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난 공저로 낸 책에는 그다지 애정이 없다 (그러면서도 공저 책을 겁나 많이 내는 게 함정)
그래서 공저 책이 집으로 배달돼도 “내 책이 나왔다!”며 주위에 돌리는 일은 드물며,
심지어 읽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러 명이 페미니즘에 대해 강의한 것을 책으로 묶은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이하 지금여기) 은
집에 배달된 뒤 며칠 동안 현관 옆에 방치돼 있었다.
다른 페미니즘 이론가들에 비해 페미니즘 지식이 딸리는지라,
내가 강의한 파트가 부끄럽게 여겨진 것도 그 책을 외면한 중요한 이유였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야 했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책 한권을 집어들고 나간 건
“내가 좋아하는 손아람 작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대는 괜한 게 아니었고, 영화계에 왜 여성이 없는지를 분석한 손작가 파트는
매우 흥미로웠고 설득력도 뛰어났다.
그러다보니 다른 분들 파트도 읽고 싶어져 하나.둘씩 읽다보니
세상에, 그 책을 다 읽어버렸다!
내가 들어간 공저 중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최초의 책인데,
대중강연이 바탕이 된 책인지라 쉽게 읽힌다는 점,
저자가 여럿인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페미니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내가 강의한 부분을 너그럽게 봐준다면 (=건너뛰고 읽는다면)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안내서로 써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한채윤 선생님 파트였는데,
이분은 개신교가 동성애 혐오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대선후보가 되면 제일 먼저 현충원에 가는데,
그 다음에 가는 곳이 ‘한기총’이고, 그 다음은 ‘한교연’에 가고, 마지막엔 ‘KNCC’에 간단다.
개신교가 전체 인구의 18-19%에 불과한 나라에서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득표력을 생각해서겠지만,
이건 전적으로 잘못 생각한 거란다.
알다시피 개신교 주요 지도층은 진보에 적대적이어서,
“2002년 12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2003년 1월부터 (개신교가) 반정부시위를 해요.” (125쪽)
게다가 지도층과 일반 신도는 투표할 때 큰 상관이 없어서,
“(2017년 대선) 출구조사 결과로도 개신교인이 가장 많이 투표한 사람은 문재인 후보입니다.” (124쪽)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이 기독교 행사에 가서 ‘제안한 정책을 적극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다음으로 추천하는 분은 홍성수 선생님, 이분은 혐오표현의 문제점에 대해 얘기하신다.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면 혐오표현의 효과도 다르게 나타난다” (232쪽)고 한다.
직장에서 부장이 직원에게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했을 때
그 직원이 여성이면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단다.
하지만 남성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데, “남성에게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집에 가서 애를 봐야 했던 과거와 현재가 없기 때문”(같은 쪽)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혐오적인 말을 성별만 바꾸어서 반대로 뒤집어서 되돌려주는 소위 미러링은 혐오표현이라고 보기 어렵겠죠.” (같은 쪽)
같은 맥락에서 일베에서 자주 쓰던 ‘삼일한’은 여성혐오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현실이니, 이게 농담이 되기 어렵다는 것.
반면 이걸 미러링한 ‘숨쉴한’ (남자는 숨쉴 때마다 한번씩 맞아야 한다)는 혐오표현이 아닌 것이,
“그것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남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 안한 다른 분들도 다 곱씹어볼만한 좋은 말씀들을 해주고 있는데,
이렇게 알기 쉬운 지식들이 가득한 이 책이야말로 페미니즘을 배우고픈 이들에게 딱이 아니겠는가?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5-2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마태님은 손 작가를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ㅠㅎ

저도 공저가 좀 그렇더군요. 읽을 땐 좋은데
별로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그냥 문제제기만 하는 것 같아서 뭔가 만족도가 높진 않아요.
그래도 이 책은 필진이 좋아 관심은 갑니다.

마태우스 2018-05-26 22:33   좋아요 0 | URL
아니 제가 손작가님 좋아하는 게 티가 났군요!
게다가 공저 책은 대부분 잘 안팔려요. 제가 참여한 공저 중 <어쩌다 어른>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 보고 깜놀했는데, 이렇게 방송빨이 아니면 잘팔리기 어렵죠. 문장의 통일성도 없고 해서요.
이 책도 세일즈포인트가 높아서 깜놀하고 있어요.

2018-05-26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릉 2018-06-0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서민 교수님 글도 정말 좋았는걸요. 실전에 써먹기 딱 좋은 매뉴얼이었어요. 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 책에 남겨주신 찬사에도 감사드립니다. 최승범 올림 ^^

마태우스 2018-06-03 11:46   좋아요 1 | URL
오옷 저자님이시닷! 이런 영광이 있다뇨. 좋은 책 써주셔서 제가 감사드리죠.

2018-06-08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8-07-15 16:22   좋아요 1 | URL
답이 늦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글을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해주셔서요. 제 분야 아니면 나대지 말아야 하는데 ㅠㅠ 제가 욕심이 많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