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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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작가가 새 소설 <설이>를 냈다.


장편소설을 낸 건 <사랑이 채우다>가 마지막이니, 무려 6년만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소설집을 드문드문 내는 건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퀄리티가 기다림의 고통을 다 없애주니 계속 좋아할 수밖에 없다.


<설이>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구조된 ‘윤설’의 이야기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설이는 공부를 제법 잘해서,
부잣집 아이들만 다니는 우수한 사립초등학교에 전학가게 된다.
기생수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임대아파트에 사는 게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몰아붙이는 그곳에서
설이가 싸워야 할 적들은 차고 넘친다.
그런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가슴을 졸이게 되니,
책을 읽는 게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이 생일파티에 초대된 것도, 엄마들이 나에게 이만큼 관심을 보이는 것도 모두 나의 성적과 관계가 있었다. 부모가 없다고 무시하던 사람들이 내 성적을 보고서는 갑자기 관심을 가졌다. (106쪽)]

그래도 그 학교 학부모들이 설이를 받아들여주는 건 오직 공부 때문이지만,
그 공부는 설이가 동경해 마지않던 부잣집 자식들이 사지로 내몰리는 이유였으니,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떠올리는 건 요즘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잘한 설이가
고액과외로 치장한 부잣집 아이들을 물리치고 성공을 쟁취할 것 같지만
이런 평범한 결론을 내는 건 심윤경 작가가 아니기에,
난 궁금증에 사로잡힌 채 소설의 마지막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다.
다 읽고 난 뒤 내가 했던 말, “거봐! 이게 바로 심작가라니까!”


주제의식에 걸맞게,
이 소설에선 아이를 위하는 척하는 어른들의 위선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 위선의 항연을 보면서,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땠을까를 잠시 생각했다.
나 역시도 바깥에선 마음껏 뛰놀 아이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내 자식에겐 ‘공부해야 잘산다’며 공부를 닦달하지 않았을까.
“넌 못생겼으니 공부라도 잘해야 돼!”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내가 아이를 낳지 않은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적어도 한 명은 지옥에 가는 걸 막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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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1-29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에 1등으로 리뷰를 달았네요! 마태우스 만세!

hnine 2019-01-29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윤경 작가는 역시 성장소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오랜만의 출간 소식 저도 반갑네요.
리뷰 제목도, 내용도, 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킵니다.

마태우스 2019-01-29 13:20   좋아요 0 | URL
그죠 성장소설의 아이콘ㅅㅅ 이책쓴이유도 내 아름다운 정원의 동구때문이래요

moonnight 2019-01-29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덕분에 심작가님을 알게 됐었죠. 새 책 소식 들었었는데 역시 읽어야겠네요.^^

마태우스 2019-01-29 13:20   좋아요 0 | URL
그럼요 심작가님은 믿어야합니다

stella.K 2019-01-29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지난 토요일 K TV에 나오셨던데 그거 생방송이었죠?ㅎ

마태우스 2019-01-30 22:58   좋아요 0 | URL
그...그게요, 정치 잘 모른다고 안나간다고 버티다 끌려나온 건데요, 역시 괜히 나왔어요. 너무들 말이 많으셔서, 나라도 침묵하자 이러면서 버텼다는..ㅠㅠ 죄송합니다

stella.K 2019-01-31 12:38   좋아요 0 | URL
아유, 왜요? 잘 하셨습니다.^^

forgetedmemory 2019-02-12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보니 더 읽고싶어지네요. 아름다운 정원도 많이 언급되던데 그것도 같이 읽어야겠어요

마태우스 2019-03-12 14:20   좋아요 0 | URL
네 그거 이어서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답 늦어 죄송요

불사조 2019-02-2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일고 참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글쓰시는 분들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신작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9-03-12 14:21   좋아요 0 | URL
글게요 좋은 소설이란 참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하죠. 불사조님한테도 이 책이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네요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극단주의의 실체
김태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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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보면 온통 극단적인 사람들 투성이다.


서울역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이들도 그랬고,

즐겨가는 커뮤니티에서 한 정치인을 공격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저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멸망할 것’이란 기세로 총공격을 해댔는데,

이는 진보나 보수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게 바로 책,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심리학자 김태형이 쓴 이 책은 극단주의에 대해 다루는데,

그 방식이 몹시 독특했다.

심리학 분야는 워낙 미국에서 연구가 많이 된 학문이라,

대부분의 학자는 미국 학자의 주장을 진리인 듯 소개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 학자의 사례를 덧붙인다.

하지만 김태형은 매우 긴 분량에 걸쳐 극단주의에 대한 미국 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하는데,


그 반박은 현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설득력이 있다.

예컨대 미국의 주류 심리학은 편향된 정보가 극단주의를 부추긴다면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다 보면 극단주의가 약해질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명료한 반박,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과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활발하게 대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 극단주의가 약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즉 진보적인 청년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오는 극우 노인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 노인들이 극단주의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이라는 말이다. (122쪽)]


이유인즉슨 사람들은 정치적 지향 같은 중요한 의제를 다룰 때는

정보의 취사선택을 매우 편향적으로 하기 때문에,

설사 가짜뉴스라 할지라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면 그걸 사실로 받아들인다.

노래 ‘Yesterday’의 가사를 써놓고 ‘BBC도 박대통령 탄핵을 비판했다’라고 했을 때,

태극기 부대원들이 열광했던 건 그들이 영어를 몰라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원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주류 심리학이 이런 엉터리같은 얘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면에 불순한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지배층이나 엘리트는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민중이 더 이상 참지 못해서 들고 일어날까 봐 두려워한다...민중항쟁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지배층의 계급적 동기가 반영된 것이 바로 미국 심리학의 수동적인 인간관이다. (149쪽)]

즉 미국의 집단심리 연구는 “태생적으로 어용학문이었다” (155쪽)는 게 저자의 말,

심지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 등 일련의 심리연구들도
사실은 조작된 것이란다.

‘민중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그들의 민중혐오 사상을 퍼뜨리기 위한 것이었다나.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나라야말로 극단주의가 설칠 조건을 다 갖춘 나라라고 말하면서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것들이 자본주의의 개혁, 기층민주주의의 실현 등인데,

말이야 맞는다 쳐도 어째 좀 공허한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을 통해 극단주의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으니,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위의 예에서도 보듯 저자가 진보적 스탠스를 취한 분이라,

태극기 쪽 분들은 불편할 수 있다는 것도 미리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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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좋아 2019-01-28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에서 노동자가 회사 운영에 관여해야 생사여탈권에 의한 불안을 덜 느낄 수 있다는 얘기에 공감이 많이 됐어요. 당장 도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

마태우스 2019-01-29 00:41   좋아요 0 | URL
아 네. 댓글 감사드립니다. 댓글에 목말라 있던 터라 더 고맙네요. 근데 저도 나이를 먹었나봐요. 과거엔 님같은 생각이었는데, 많이 보수화됐어요 ㅠㅠ

책이좋아 2019-01-2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연탄‘이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한때 뜨거웠던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잘 산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자 보수에 대한 기준이 달라서 남들의 기준으로는 보수적이라 보기 어려울 수도 있고요 ^^

마태우스 2019-01-29 13:21   좋아요 0 | URL
앗 저는 뜨거웠던적이 없습니.다ㅜ 그시절 암것두안한 부채감이 많이남아있어요

책이좋아 2019-01-3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수 있겠네요. 그치만 그 시절 뜨거웠던 분들이 꼰대가 되어 갈 때 교수님은 목소리를 내시고 있잖아요(박근혜를 반어법으로 까시고, 다들 악플 부대가 무서워 못하는 이야기들도 하시고..) 그걸로 충분히 멋집니다.

마태우스 2019-01-30 22: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ㅠㅠ 그래요, 꼰대는 되지 않을게요 그리고 하고픈 말 그냥 하겠습니다!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책이좋아 2019-01-3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응원하겠습니다~
 
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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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긴 증오>는 미국의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다.


‘흑인’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게 올바르다고 하지만,

편의상 여기선 흑인-백인이라 표기한다.

십대 남자애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경찰로부터 총을 맞고 죽는다.

조수석에 앉아 그 광경을 목격한 주인공이 증언을 하지만,

그 경찰을 처벌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소재가 소재다보니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앵무새>가 좋았던 건 주변 환경에 대한 묘사가 워낙 뛰어난데다

이게 옳다, 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어린 딸과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느끼게 해준다는 데 있었다.

반면 이 책의 초반부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지루했다.


짝퉁은 원본을 이길 수 없구나, 라고 느낄 때쯤
이야기에 갑자기 탄력이 붙어 진도가 빨라지는데,
이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유지된다.

이 책이 갖는 힘의 상당부분은 인종차별이라는 소재에서 나온다.
하지만 실제사건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리얼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가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 책이 내게 그렇게까지 큰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현재라는 점이다.
<앵무새>는 대공황이 끝나고 난 1930년대를 다룬다.
그때는 인종차별이 당연했고, 흑인은 그냥 2등시민이었다.
반면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이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흑인을 차별하며,
흑인으로 성공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가난한 곳에서 태어나 교육받을 기회도 없다보니
마약을 팔라는 유혹에 굴복하게 되고,
그러다 걸려 전과자가 된다.
감옥에서 나오면 갈 곳이 없으니 폭력조직에 몸담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노골적인 차별과 은근한 차별 중 어느 것이 힘드냐고 묻고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앵무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고평가하는 건 이 때문이다.
 
각종 갑질이 횡행하는 우리나라가 여러 인종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땠을까?
명목상이긴 해도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인 게 다행이다 싶지만,
그런 와중에 지역과 성별을 따져가며 차별을 일삼는 걸 보면
차별이라는 게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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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26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퉁은 원본을 이길 수 없구나.ㅋㅋ
이런 책이 있었군요.
요즘에도 미국의 인종차별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영원히 없어지지는 않겠구나 싶기도 해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단일 민족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지 않을까 싶어요. 이게 인종차별을 더 부추기게 될지
오히려 희석시키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후자쪽이 되긴 어렵겠죠?

마태우스 2019-01-2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미국보다 차별을 더 많이 하는 나라잖아요. 차별총량의 법칙은 울나라엔 안맞는 듯요. 다문화가정 차별을 한다고 해서 기존 차별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어디서 봤는데 한 아이에게 ‘기생수‘라고 부른데요. 기초생활수급자의 준말이라나. ㅠㅠ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가와카미 가즈토 지음, 김해용 옮김 / 박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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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책이 나왔을 때랑 연구가 잘돼서 논문이 나왔을 때랑 언제가 더 기쁘세요?
답: 당연히 논문 나왔을 때가 기쁘죠. 본업은 속일 수가 없나봐요. 하하하.


인터뷰에서 저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내가 했던 대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린 적은 없지만 내 책이 나올 때쯤 내 목은 십여센티는 족히 길어졌고,
책이 나온 뒤 최소한 한 달간은 붕 떠서 지낸다.
그러니 저 대답은, 과학자로서의 원칙이 그렇다는 것일 뿐
솔직한 내 심정은 아니었다.


가와카미 가즈토.
<조류학자라고 다 새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을 쓴 조류학자다.
그는 희귀한 새를 찾아서 일본의 오지-주로 섬-를 다닌다.
화산폭발로 생긴 오가사와라라는 섬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햇볕을 피할 곳조차 없는 조그만 섬에서 며칠씩 묵기도 하며,

입에 파리가 잔뜩 들어가는 것도 감수하며 새를 쫓는다.
결국 원하는 새를 관찰했을 때, 그간의 고통은 기쁨으로 바뀐다.
이런 가즈토를 보면서 좀 부끄러웠다.
내가 한번이라도 저자와 비슷한, 아니 반 정도의 열정이라도 가진 적이 있었던가 싶어서 말이다.
말로만 기생충의 아버지일 뿐,
실제로는 자식을 버린 패륜애비가 바로 나다.


저자가 존경스러운 점은, 이렇게 힘들게 여기저기를 다니면서도
늘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머는 고스란히 책에 반영돼,
책을 읽는 게 즐거웠다.

사실 이 책의 리뷰를 좀 더 일찍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작년 말에는 많이 바빠서 쓰지 못했고,
시간이 좀 생긴 올해 초엔 책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다.
혹시 잃어버릴까봐 책상 위에 놔뒀고, 작년 말 책의 존재를 내내 확인했건만,
막상 쓰려니 책이 없어진 것이다.
책을 찾는 데 또 며칠의 시간이 흘렀는데,
오늘 또 십여분의 시간을 책을 찾다가 결국은 포기했다.
이게 도대체 리뷰냐, 싶은 글을 리뷰라고 쓰게 된 건 다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리뷰를 올리는 것은
저자의 열정을 다른 독자분들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작년 말,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게 됐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피자집 주인 때문이었는데,
그는 백종원이 내준 숙제-가장 잘 하고 또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라-조차 하지 않고 손님을 맞는 뻔뻔함을 보여 시청자의 공분을 샀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고로케집을 차린 25세 청년도
‘어떻게 저런 정신으로 장사를 하나’ 싶었다.
음식과 과학은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죽도록 열심히 해야 잘될 수 있다는 점은 똑같다.
비단 음식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일 터,
뭔가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가와카미 가즈토가 쓴 이 책을 권한다.
이 조류학자의 마음으로 산다면, 뭘 해도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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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1-26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놀랍게도 책을 찾았다. 책은 내 베개 밑에 있었다. 그게 하필이면 책찾기를 포기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雨香 2019-01-2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구스럽습니다만, 이 책을 읽다가 한국에는 *민 이라는 분이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쓰는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마태우스님이 잘 아시는)

읽는 내내 재미있어 죽을 뻔 했는데, 에피소드 뒤에는 무겁지 않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을 보며 팬이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태우스 2019-01-26 13:29   좋아요 1 | URL
어머나어머나... 그 *민이라는 자는 저도 잘 아는데요, 이 책 저자에 비하면 몇 수 아래에요!! 암튼 재미나게 읽어주셨다니, 반갑네요. ^^

불사조 2019-02-1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구매해야 겠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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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가 책을 냈다, 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 바쁜 분이 어떻게 책을 냈을까? 그것도 두권짜리를?

 

그래서 이렇게 단정지었다. “급히 썼겠구나!”

 

책 내용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나처럼 글을 잘쓰려고 지옥훈련을 수년간 했을 리도 없으니까.

 

게다가 머리말을 보면 자신이 전형적인 이과남자며,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마음이 놓였다.

 

뭔가 나보다 못하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어야 되니까.

 

 

하지만 본문 초반부를 읽다가 기절초풍했다.


 

이국종 교수는 이 책을 매우 정성스럽게 썼으며, 그의 글솜씨는 상상이상이었다.

 

예컨대 이국종은 첫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늦은 밤에도 환자들은...몰려왔고, 밤새 환자들이 흘린 붉은 핏물이 수술방 바닥을 적셨다.” (29쪽)

 

그가 구사한 비장한 문체는 책의 내용과 어우러져 독자의 가슴에 기다란 여운을 남긴다.

 

책을 구성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중증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는 동안 이국종은 두 개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나는 만신창이가 된 환자와의 싸움이고,

 

또 하나는 적자의 온상인 그를 마땅치 않게 바라보는 교내. 교외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자신이 다룬 환자 이야기만 계속했다면 재미가 덜했을 텐데,

 

이국종은 이 두 싸움을 번갈아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지루할 틈이 없도록 만든다.

 

 

 

책에 의하면 이국종은 중중외과센터를 그만둘 생각을 했단다.


 

그를 마땅치 않게 보던 보직교수와의 대화 장면.

 

이국종: 저도 더는 힘들게 일하면서 욕만 먹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이국종은 보직교수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디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인가?” (111쪽)

 

때마침 관심을 가져준 민주당 위원이 아니었다면,

 

중증외과센터의 수호신 이국종은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안타까운 일은 다음이다.

 

지나치게 완벽한 이의 존재는 다른 이의 수수방관을 초래하기 마련,

 

그의 헌신 덕분에 우리나라가 중증외상에 나름의 대비책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고,

 

정부는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별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국종이 은퇴하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그가 바쁜 와중에도 언론사 인터뷰를 하고, 국회에도 나가면서 격정토로를 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인데,

 

거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보면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중증외상센터가 빠져 있는 모양이다.

 

 

 

삶에서나 외모에서는 물론이고 글에서마저 깔 곳을 찾을 수 없던 차에,

 

난 엉뚱한 곳에서 그보다 앞서는 점을 발견했다.

 

“2006년 시즌에 최하위를 기록한 LG 트윈스를 생각했다.” (104쪽)

 

“2008년에 LG는 이미 가을야구에서 멀어진 상황이었으므로” (115쪽)

 

그랬다. 그는 LG 팬이었다! 그리고 난, 두산 팬이다.

 

한국시리즈에선 실패를 맛봤지만, 두산은 LG에게 올 시즌 15승 1패를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수술방을 나와서 잠시 쉬면서 확인한 LG의 패배소식에 안타까워할 그를 상상하니

 

내년엔 LG가 잘 좀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골든아워>는 정말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이 아주 많이 팔려서 LG가 주지 못한 기쁨을 줬으면 좋겠다.

 

그의 헌신에 대해 대한민국이 이 정도라도 보답하지 않는다면

 

제2의 이국종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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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1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책으로 웃기시고 또 LG로 웃기시고 아...리스펙트!!!!

마태우스 2018-11-15 01:26   좋아요 0 | URL
LG팬분들에겐 좀 죄송합니다만, 앞서는 게 이거밖에 없는지라....ㅠㅠ

책한엄마 2018-11-15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의문의 LG 1패ㅎ

마태우스 2018-11-15 01:27   좋아요 2 | URL
LG가 내년에 잘하길 빕니다.

박균호 2018-11-15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자니 골든아워를 장바구니에 넣게 됩니다. 역시 선생님 글은 언제나 유쾌합니다 ^^ 그나저나 삼팬인 저로서는 두산이나 엘지나 둘 다 부러운 팀이군요. 의외로 삼성팬도 꽤 오랫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이랍니다. ㅎㅎ

마태우스 2018-11-16 01:02   좋아요 0 | URL
어마 안녕하세요 박선생님.... 선생님도 야구 좋아하시네요. 근데 삼팬이 고통받았나요. 오승환 이후 프로야구판을 거의 휩쓸다시피했는데요-- 그래도 두산팬이 부럽다, 이런 건 이해하는데 엘지가 부럽다는 건.....엘지는 94년 이후 우승이 없습니다

CREBBP 2018-11-1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도 위트면에서 훌륭한 걸요? 특히 드디어 깔 것이 생겼다는 부분의 배치는 작은 반전에 대한 반전으로 서사면에서도 완벽해요. ㅋ 그런데 이 책은 너무 가슴이 아플까봐 못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읽어야겠네요 ^^

마태우스 2018-11-16 01:03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드려요^^ 이순신장군을 다룬 칼의 노래를 읽는 느낌이어요. 가슴이 아프다기보다, 한 인간의 숭고한 삶에 대해 알게 되더군요. 옷깃을 여미며 읽게 된다는...

stella.K 2018-11-1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약간 의심이 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번 사 봐야겠구나 하고 있는데
마태님이 극찬을 하시니 꼭 봐야겠습니다.

아니, 제목은 그렇게 쓰시고 정작 중요한 주제는 안 쓰십니까?
두산 팬이신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넘 겸손하시고 미스테리하지 않나요?ㅋ

마태우스 2018-11-16 01:05   좋아요 0 | URL
네 후회 안하실걸요. 글구 야구를 아주 좋아하면 말이죠, 팀아일체가 됩니다. 그래서 엘지팬을 안타깝게 여기게 됩니다 그거 말고는 제가 이국종교수보다 앞서는 게 진짜 하나도 없어용. 비교 자체도 안되지만...

2018-11-15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8-11-16 01:05   좋아요 0 | URL
어머나 친히 오셔서 축하까지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꾸벅

카스피 2018-11-1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태우스님의 위트가 갈수록 농 익어 가는것 같아요^^

마태우스 2019-01-03 06:43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 죄송해요. 작년 12월이 너무 바빴어요ㅠㅠ 암튼 유머는 더 노력할게요. 갈데까지 가려고요^^

coolcat329 2018-11-1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쩜.. 귀여운 유머에 혼자 웃음 짓는 오후입니다.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마태우스 2019-01-03 06:43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 죄송해요. 읽으셔도 후회 안하실 겁니다.

긴또라이 2018-11-17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국종 같은 신념과 결기가 있는 전문가가 많아야 이나라가 바로 선다.
모두가 선진국으로 가려는 몸살살이를 한다...

마태우스 2019-01-03 06:43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런 분이 많이 나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런 분이 많은 사회보단, 이런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중증환자를 살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2018-12-06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9-01-03 06:41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런 걸 제목낚시라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