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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채우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아가씨, 내 말 허투루 듣지 마.... 내 말 틀리는 법 없다, 아가씨.”
<사랑이 채우다> 50쪽의 맨 끝줄에 나오는 저 대사를 읽는 순간, 짜르르 전율이 왔다.
내가 큰올케란 캐릭터를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사랑이 채우다>는 심윤경 작가의 이전 작품인 <사랑이 달리다>의 속편이다.
제목처럼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숨가쁘게 달렸던 <달리다>에서
난 큰올케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매료됐다.
자기 이익만 따지는 철저한 속물인데, 그 사실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고
커다란 목소리로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게 왠지 밉지가 않다.
게다가 말끝마다 “내 말 허투루 듣지 마”와 “내 말 틀리는 법 없다”를 연호하는데,
그 말투를 듣다보면 내가 한번쯤 만났던 풍채 좋고 사나운 얼굴을 가진 아주머니가 절로 떠오른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아주머니가 내 친척이었다면 치를 떨었겠지만,
엄연히 소설 속의 인물인지라 그런 캐릭터에도 열광할 수 있는 것이리라.
작가와 좀 친분이 있다는 건 이럴 때 좋은 법,
이 대목에서 난 작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큰올케의 이 말투가 참 반갑네요. 속편 써주셔서 고마워요.”
곧바로 답이 왔다.
“큰올케 팬이 은근히 많아요.”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전편에서도 그랬지만 속편에서도 난 큰올케가 언제쯤 나오나, 그것만 따지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큰올케는 내 기대에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회장에게 잘보이려고 하는 이 장면을 보라.
“큰오빠와 큰올케는 벌써 박회장이 다니는 교회에서 주차봉사와 급식봉사를 도맡으며 맹활약하고 있었지만”(134쪽)
급기야 큰올케가 아닌 큰오빠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난 정말 자지러졌다.
“혜나야, 너 우리 말을 허투루 듣지 마라. 우리 말 틀리는 거 없다.”(197쪽)
여기에 이어진 주인공의 말, ‘부부는 닮는다더니, 큰오빠 말투마저 큰올케랑 똑같아졌다.’
물론 큰올케의 캐릭터가 열광할 만하게 만들어진 건 전적으로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에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한테 후임으로 생각해 둔 사람이 있느냐고 회장이 물었을 때, 큰올케는 내심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면 한다.
이 장면을 보통 작가라면 큰올케가 혜나의 무릎을 꼬집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처리하겠지만,
심작가가 어디 보통 작가인가.
“그 순간 큰오빠와 큰올케의 눈에서 너무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나와서, 나는 하마터면 시력을 잃을 뻔했다.”(242쪽)
‘섬광’으로 처리하니, 큰올케의 탐욕이 훨씬 더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이런 비유에 감탄하면서, 또 큰올케의 등장에 열광하면서 책을 읽다보니
280쪽은 정말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재미있는 책을 다 읽는 건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지만,
이번 책은 꼭 그렇지는 않다.
소설의 끝맺음이 긴 여운을 남기게끔 해줬기 때문.
혜나가 춤을 추고, 애인의 형들이 함께 추임새를 넣어 주는 마지막 장면은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이 소설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해준다.
<사랑이 달리다>을 읽으면서 엄청난 속도감에 중독된 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사랑이 채우다>를 집으시라.
전편보다 더 빠른 속도감에 전율을 느낄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