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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여자 - 과학이 외면했던 섹스의 진실
대니얼 버그너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남자가 성욕이 강하다’는 건 우리 사회의 주된 관념이었다.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주변을 보면 어떻게든 여자랑 해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남자가 지천에 깔렸고,
여자가 내키지 않아 하더라도 “일단 하고 보자”며 들이대는 남자도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생각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그에 따른 경험이 쌓여 가면서였다.
같이 있던 여자가 날 덮치려 했을 때는 “이 여자는 예외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샤워만 해도 무섭다는 기혼 친구들의 경험담을 듣고나니 남성의 성욕에 대한 얘기가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욕망하는 여자>는 그 관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여자에게 야한 영상을 틀어준 뒤 흥분의 정도를 다음 방법으로 측정했다.
자신이 흥분했다 싶으면 단추를 누르라고 했고,
질에 혈류측정기를 넣어 혈류량이 많아지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혈류랑이 증가하면 그 여자가 흥분했다는 증거니까.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혈류량 결과로 보아) 여성의 성충동은 가히 잡식성이라고 할 만큼 무작위적이었다.”(29쪽)
신기한 것은 여자들이 혈류량이 증가하는 장면에서 단추를 누르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것.
몸은 흥분해 놓고선 머리로는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 것이었다.
“키패드 결과는 혈류측정기 결과를 반박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철저히. 정신이 몸을 부정한 것이다.”(같은 쪽)
즉 여성들의 성욕은 남자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했지만,
여성의 성욕은 감추어져야 한다는 통념 때문에 그것을 억지로 억압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혈류량으로 봤을 때 여자들이 오히려 낯선 사람들한테 훨씬 더 큰 흥분을 느꼈다는 사실.
“낯선 사람과의 섹스는 거의 폭풍 수준으로 질 내 혈류량을 증가시켰다.”(45쪽)
다시 말해서 “감정적인 유대...친밀감 등이 있어야 여성의 성욕이 발동한다는 사회적인 전제”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책 중간쯤에는 더 충격적인 얘기가 나온다.
여자들이 갖고 있는 성적 환타지에 대해 물었을 때 많은 여자들이 강간당하는 장면을 말했다는 것.
예를 들어 “풋볼 선수들이 돌아가며 절 농락하는 거죠....그런 상상이 저를 극도의 오르가슴으로 올려놓아요.”(127쪽)
이 구절을 읽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를 고민하기도 했는데,
위 실험에서 여자들이 ‘낯선 사람’에 대해 더 흥분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공포가 주는 흥분은 고스란히 성애로 바뀌었다...공포와 성적 흥분이 뇌속에서 뒤섞인다는 사실을 의미했다.”(135쪽)
불편한 진실 하나. 여자들이 낯선 사람에게 더 흥분한다는 것은
자기 남편 혹은 오래된 남친에게는 덜 흥분한다는 뜻이 된다.
책 뒤편에 나오는 ‘익숙한 파트너라는 저주’의 한 구절을 보자.
“헌신적인 관계에서 여성들의 성욕이 훨씬 더 빨리 감퇴했다.”(166쪽)
남자들이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도 여성의 성욕을 되돌리기엔 충분하지 않았단다.
남자들은 오래 산 아내가 성욕을 일으키지 않는다면서 “가족하고 어떻게 하냐”는 농담을 하지만,
여자들 역시 그렇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갑자기 이십년 전 봤던, 김삼 선생이 그린 만화가 생각난다.
빌딩 창문을 닦는 직업의 A씨는 빌딩에 사는 한 여자가 택배 배달원, 보일러 수리공 등
자기 집에 오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장면을 본다.
그 광경에 몸이 단 A는 중국집 배달원이 그 집에 들어가려는 걸 막고 자신이 직접 배달하겠다고 한다.
의외의 남자가 중국집 가방을 들고 들어서자 여자는 화들짝 놀라지만,
A는 “네가 어떤 여자인지 다 안다”면서 여자에게 들이댄다.
하지만 A는 그 뒤 들이닥친 배달부에 의해 제압을 당하는데,
알고보니 그 배달부는 그녀의 남편이었고,
그는 성욕이 시들해진 아내를 위해 갖가지 직업으로 변장을 해 아내를 만족시켜 주고 있었던 거였다.
<욕망하는 여자>를 읽고 나니 20년 전의 김삼선생이 여자의 욕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구나 싶다.
남자들이여, 아내를 위해 가끔은 낯선 이가 돼보는 게 어떻겠는가?
오늘 밤에 난 노숙자로 변장할 생각이다 (참고로 난 노숙자로 변장하는 데 특별한 노력이 필요없다)
* 이건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이 책의 추천사를 썼고, 그로인해 이 책을 기증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