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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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당신>을 읽은 뒤 뒤늦게 박범신 작가의 팬이 됐다.


그 여세를 몰고 주문한 게 바로 <주름>,


소설의 주인공인 김진영은 시인인 천예린과 바람이 나는데,


이야기의 대부분이 둘 사이의 지독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 사랑이 어찌나 지독한지 나중에 읽다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둘의 관계는 칼자루를 쥔 게 여자 쪽이라,


여자가 사랑을 나누다 도망가면 남자가 쫓아가고, 여자가 또 도망가고,


이런 과정이 책 전반에 걸쳐서 되풀이된다.


도망가는 것도 스케일이 커서,


서울에서 대전, 대전에서 부산, 뭐 이렇게 가는 게 아니라


케냐에 갔다가 모로코에 갔다가 스코틀랜드와 북극해를 어우르는 장대한 도망인데,


너무 긴 여정이다 보니 나중엔 지겨웠다.


알고보니 이 책은 오래 전 나왔던 책인데 원래 내용을 줄이고 또 줄여


2006년에 개정판으로 나온 거란다.


그 이전 버전 대신 개정판을 읽은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전 버전을 읽었다면 읽다가 지쳐 쓰러질 뻔했다.

 


이 소설엔 둘간의 정사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것도 너무 많이.


나이가 나이다보니 불륜을 비롯해 야한 장면이 나오는 이야기에 솔깃해하긴 하지만,


이건 뭐 시도때도 없이 하는 장면이 나오고,


심지어 몇 달씩 벌거벗고 사는 광경까지 연출하니,


야하기는커녕 적당히 좀 하지!’란 한숨이 내 입에서 터져나오기까지 했다.


단순히 부도덕한 러브 스토리로만 읽지 않기를 바란다.” (430)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하지만,


꽃뱀에게 넘어간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한 꽃뱀”, 이렇게밖에 이 소설을 정리할 수가 없다.


회사돈까지 횡령하면서 여자를 쫓아가고, 그녀의 노예로 살겠다고 날뛰는


50대 아저씨를 저거 말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편을 연달아 읽었으니 이제 당분간 박범신 작가를 멀리할 생각이다.

 


읽다보니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 김진영이 몸이 안좋아 열이 팔팔 끓을 때,


그녀는 ...얼음주머니를 내 이마에 문질러주고 있었다.” (270)


소아과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안 사실인데 열이 날 때 얼음주머니는 별로 좋지 않단다.


물수건으로 이마를 문질러 주면 열이 내려가는 건 사실 물이 증발하면서


기화열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며,


얼음주머니는 피부 혈관을 수축시켜 열 발산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찬물보다는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게-이마보단


면적이 넓은 가슴 쪽을-훨씬 좋다고 한다.


소설을 읽고 난 결론.


역시 돈거래는, 아무하고도 하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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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16-04-27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게 쓰셔서 이밤에 막 웃었어요ㅎㅎㅎ근데 여자는 왜 도망가는 건가요? 그게 참 궁금하네요

마태우스 2016-04-27 04:00   좋아요 0 | URL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가 도망가는 이유는 돈 떼어먹고 도망가는 첫번째 도망 말고 두번째부터는 자신이 죽을 날이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 때문인가 그렇게 추측되는데요, 몇번을 그러니까 ˝이젠 좀 죽어도 될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

hellas 2016-04-27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그만들둬! 라고 할만큼 정사씬이 많다니 궁금은 합니다만. 그러기엔 작가분의 글이 너무 남성남성하신지라 읽게 될진 모르겠네요. ;ㅂ; 유쾌한 리뷰입니다

마태우스 2016-04-27 04:01   좋아요 0 | URL
정사씬 묘사가 처음엔 아주 리얼해요. 차에서 격정에 휩싸여 처음 하는 장면....근데 그 다음부터는 ㅠㅠ 아유 정말 그대로 말할 수도 없고, 아무튼 좀 거시기합니다.

nomadology 2016-04-2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망하셨다는 리뷰같은데 오히려 궁금해지네요.

마태우스 2016-04-28 00:33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사실 아주 실망은 아니구요 처음에 둘이 막 그러고 그럴 땐 재밌었어요 근데 그게 너무 길어지니까 짜증이 났다는 거고요.^^

세실 2016-04-2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승같은 사랑! 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어요. 주름은!
바이칼호수, 알흔섬은 가보고 싶은~~

마태우스 2016-04-28 00:34   좋아요 0 | URL
바이칼호수는 말이 호수지 바다 아닐까 싶어요 가본 적은 없고, 아마 평생 못갈 것 같지만, 그래도 한번 보고싶긴 합니다. 구글로 찾아보면서 위안하려고요.

stella.K 2016-04-2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 작가는 저도 좋아하는 작가긴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이 다
좋은 건 아니더군요. 전에 고산자를 읽었는데 저는 그닥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은교는 좋았는데...
소금과 당신은 마태님이 좋으시다고 하시니 저도 나중에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나이 드니까 야한 게 끌리시던가요?ㅋㅋ

마태우스 2016-04-28 00:35   좋아요 0 | URL
사실 나이 들기 전에도 야한 게 끌렸죠 근데 그땐 안그런척 하고 살았고 지금은 그냥 솔직해진 거죠. 음하하하. 제가 은교 안읽은 게 좀 트라우마예요. 지금이라도 읽으면 되는데 왠지 뒷북같고요

blanca 2016-04-2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리뷰 읽다 빵 터져요 ㅋㅋ 이런 내용인지는 몰랐어요.

마태우스 2016-04-28 00:35   좋아요 0 | URL
우왓 블랑카님이닷. 님처럼 멋진 리뷰 쓸 능력은 없고 하니 엽기로 나가는 겁니다 하하.

Conan 2016-04-2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테우스님 리뷰를 보고나니 꼭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전에 소금을 읽고나서 너무 여운이 남아서 후배한테 책을 사주고 읽어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 매력있는 작가인것 같습니다~

2016-04-29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정 본능 -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며 현실을 부정하도록 진화했을까
아지트 바르키 & 대니 브라워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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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키>라는 출판사와 인연을 맺게 된 건


경제학자 장하준이 쓴 <사다리걷어차기>의 리뷰를 쓰고 난 뒤부터였다.


그 당시 난 장하준 선생이 내 누나랑 선을 본 얘기로 리뷰를 채웠는데


그걸 눈여겨 본 모양이다.


그 뒤 부키에선 시시때때로 책을 보내준다.


그 중 하나가 작년에 나온 <부정본능>이었다.



좋은 책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인식의 지평을 넓게 해주는 책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책이 가독성까지 뛰어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내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면 그 자체로 만족하려 한다.


<부정본능>은 “왜 인간만이 고도의 문명을 건설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른 동물들에서는 지능의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인간에서만 그게 가능했던 이유,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이 책에서 제시한 해답은 필멸성의 부정, 


즉 인간은 스스로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평소 그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를 개발한 덕분에


고도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단다.


그런 방어기제가 없는 동물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고,


죽을 게 무서워 아무 것도 안하려 하지만,


사람은 그걸 인식하지 않기에 암벽등반처럼 위험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것. 


듣고보니 정말 그렇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50년 후의 자기 모습을 생각하고,


퇴직금을 일시불이 아닌 연금으로 받는 선택을 한다. 


이런 선택들이 바로 우리가 지구를 제패한 이유라니 정말 탁월한 분석이 아닌가!




탁월한 식견을 제시해주긴 하지만,


책은 빨리 읽히진 않는다.


번역문제가 아니라 원래 책 자체가 아주 친절하지 않은 탓인 듯한데,


그렇더라도 이 책을 읽고난 뒤 한동안 숨겨진 진리를 알아낸 기분이 들어 우쭐했었다.


이 책에 정말 고마워할 점은


엊그제 보낸 경향칼럼 1회분을 이 책으로 채웠다는 것.


탁월한 식견은 응용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는 걸 이 책 덕분에 배웠다.


숨겨진 진리가 궁금하신 분들, 부정본능에 도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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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6-03-0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리뷰는 넘 잼나잖아요

마태우스 2016-03-08 10:35   좋아요 0 | URL
오옷 이런 격한 칭찬을.... 감사드립니다^^

시이소오 2016-03-0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몰라뵈서 죄송했습니다^^; 박사님 열혈팬입니다^^

마태우스 2016-03-08 12:18   좋아요 0 | URL
넹...? 지난번이라면 언제요? 암튼...방금 님 서재에 방문해서 한국인에 관련된 책 리뷰를 읽었습니다. 확실히 책을 읽으면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울나라 사람들이 다 책을 읽는다면, 좋은 사회가 될텐데 넘 안타깝네요. 책 안읽는 사람들에 의한 투표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4월 13일이 두렵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8 12:24   좋아요 0 | URL
아, 정희진처럼 읽기 페이퍼에서 댓글을 다셨는데 제가 그랬죠 `설마 서민 박사님은 아니시죠?` 답이 없으시길래 마태우스님 서재 방문해보고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 아직 알라딘 온지 얼마 안돼서요.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책 읽는 사회 자체가 천국일텐데...... 말씀처럼 두렵네요 ^^;

마태우스 2016-03-08 13:08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님 질문에 답을 못드렸군요. 부끄럽습니다 ㅠㅠ 제가 좀 게으르다보니 그런 사태가 발생한 듯합니다. 앞으로 엻심히 하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니에요. 미리 서재에 방문했어야 했는데요^^ 알라딘 유명인을 몰라본 제 불찰입니다^^

2016-03-08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6-03-08 14:46   좋아요 0 | URL
오옷....그 기사를 보는 분이 계실 줄이야. 부끄럽습니다.....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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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이 모두 나온 경우, 책이 더 좋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아마도 그건 책이 먼저 있고 그걸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기 때문이다.


책을 먼저 읽은 뒤, 즉 결말까지 다 알고 난 뒤 영화를 보면 아무래도 재미가 덜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영화 보기 전 책을 읽은 사람들은 다른 관객에 비해 우월감을 갖게 마련이다.


책 읽은 걸 티를 내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들은 책과 영화가 다른 부분들을 언급하며 불만을 토해내며,


“영화가 원작을 망쳐버렸다”는 결론을 낸다.


이 원칙은 영화 속편에도 그대로 적용돼,


다이하드 2를 본 관객들이 “1보다 못하다”며 거품을 무는 어이없는 현상이 벌어지곤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다이하드2는 ‘속편이 더 나은 영화’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네이버에서 영화 <캐롤>의 평점을 보고 놀라 극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부장 아내는 “바쁘다고 난리치더니 영화는 무슨 영화냐?”며 못가게 했고,


할 수 없이 책을 주문해서 읽었다.


아직 영화는 보지 않은 상태지만, 최소한 <캐롤>은 책보다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여자끼리 사귀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건 전혀 아니니 그게 이유라고 말하진 말자.


다만 주인공 테레즈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그리고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는 게


내겐 너무 힘들었다.


재미있는 책은 밤을 밝혀가며 읽게 되는 반면


이 책은 몰입이 힘들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했다. 


물론 이건 내가 남성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책이건 영화건 여자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걸 감안하면 


그것도 납득할 이유는 아니다.


아무래도 VOD가 나오면 그때 영화를 봐야겠다.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을 두 개만 써본다.


대니; 언제 오셔서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


테레즈: 고맙습니다. 그럴게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고마웠다 (47쪽).


이 책이 출간된 건 1952년, 그때도 ‘점심 같이 하자’는 게 다신 만나지 말자는 말로 통했나보다.




캐롤; ‘난 경쟁조차 할 수 없어.’ 이런 말 말이야,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대사가 바로 고전이지. 백 명이 똑같은 대사를 읊는 게 바로 고전이야.


엄마가 하는 대사와 딸이 하는 대사가 같고, 남편이 하는 대사와 정부가 하는 대사가 같지...


그럼 하나의 연극이 고전으로 등극하기 위해 사람들이 꼽는 조건이 뭘까?


테레즈: 고전이란....인간의 보편적 상황을 다루는 거죠 (231쪽).


고전에 대해 이토록 명쾌한 정의를 접하니 머릿속이 다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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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 2016-03-0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이 좀 있던데요. 존칭의 문제도 그렇고 상황의 잘못된 해석도 그렇고..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그래서 더 그리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네요.

마태우스 2016-03-06 18:47   좋아요 0 | URL
네 번역에 대한 얘기는 저도 들었어요. 근데 제가 원서를 읽어본 것도 아닌지라 이 부분에 대해선 아는 게 없고요, 다만 읽기가 어려웠던 게 번역 때문만은 아닌 듯해요. 문장이 이해 안되는 건 없었으니까요. 그 행동과 말들이 이해안가는 거라서요...

책한엄마 2016-03-0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왜 그랬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래도 반백년 버텼으니 다시 그만큼 버티면 이 책도 고전 대열에 들어가겠어요.
대작 소설 마태우스도 고전이 되길 빌어봅니다.

마태우스 2016-03-06 21:40   좋아요 0 | URL
음, 테레즈가 너무 까칠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어요. 사랑을 하면 최소한 그 사람한테는 관대해져야 하는데, 별로 그렇지가 못했거든요. 글구 이 소설이 반백년간 읽힌 건 아니고 영화 땜시 잠시 뜬 거 아닌가요...?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엔 글쎄요. 읽어본 경험상 부족하다고 봐요. 글구 마태우스는.잊어주세요ㅠㅠ

자몽 2016-03-1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얼른 가부장아내님을 모시고 영화로 보고 오세요
영화로는 놓치게되는 감정선을 느끼고 싶어
책을 읽고나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훨씬 좋았답니다.^^

마태우스 2016-03-21 00:51   좋아요 0 | URL
그죠그죠. 책보다 영화가 더 낫죠? 조언 감사드립니다. 근데...아무래도 VOD로 볼 것 같네요ㅠㅠ
 
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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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미미여사는 수많은 책을 내면서도 늘 최상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마술같은 작가였다.


예컨대 3권으로 된 <솔로몬의 위증>은 정말 정성스럽게 쓴 책이 


이런 거구나, 라는 걸 여실히 보여줬고,


시시때때로 쓰는 시대물을 읽고 나면 


미미여사가 희대의 천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음의 방정식>은 좀 의외였다.


일단 분량.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난 다른 책을 사면 딸려오는 부록인 줄 알았다.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 얄팍한 분량 때문인데,


이 책의 분량은 오히려 바나나에 미치지 못했다.


책표지에 어떻게 장편소설이라고 쓸 수 있는지, 내가 저자였다면 지우자고 했을 것 같다.


둘째, 사건.


꼭 사람이 죽어야만 좋은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음의 방정식>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몰입하기엔 너무 경미했다.


책을 덮고 난 뒤 ‘이게 뭐야?’는 반발심이 일어난 건,


미미여사 책으로는 처음이었다. 


차라리 사립탐정과 변호사가 섬이라도 탔다면 덜 아쉬웠을 것 같다. 



그래도 난 미미여사를 좋아하니, 이 상황에 대해 변명을 하고 싶어졌다.


교보에서 미미여사 책을 쌓아놓고 파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미미여사가 준 재벌은 될 거라고 생각하며,


<음의 방정식> 같은 책을 내는 걸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책을 많이 판다고 해서 꼭 부자는 아니다. 


<부자아빠>라는 책으로 대박을 친 로버트 기요사키를 보라.


비슷한 내용을 계속 우려먹으며 책을 계속 내다가 결국 파산을 했다!



존 그레이는 어떤가.


<화성남자> 첫 번째 책만 가지고도 평생 먹고살 것 같았지만,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돈독이 어지간히 오른 걸 보면 사업하다가 크게 망하기라도 한 건가보다. 


미미여사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무슨 이유든 돈이 급히 필요했고,


그래서 이 책을 낸 것이리라.


누구나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고, 미미여사는 그 누군가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미미여사의 팬이라면 이해해 주자.


보증을 서서 망했을 수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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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3-0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땅투기 한건 아니고...보증요?^^
코난도일은 쓰기 귀찮아 ..하는데 터무니없는 액수를 불러도 자꾸 응해줘서 (그만큼 인기있어서)할 수없이 썼다고 하던데...
뒷사연이 그럴까요? ^^
전 아직 안 읽어서..기대중인데 다들 그런분위기
얼마나 망쳤나..봐야 겠어요.ㅎㅎ
재미있는 얘기 잘 읽고 갑니다.
그러고 보면 믿고 보는 ㅡ이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부담스런 말인지..실감을 합니다.
좋은밤 되세요. ^^

마태우스 2016-03-04 00:1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잠깐 땅투기 생각했는데 요즘 일본에서 땅투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코난도일이 그랬던 건 미처 몰랐네요.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님도 좋은 밤 되시길.

[그장소] 2016-03-04 00:13   좋아요 0 | URL
부동산 ㅡ투기 ..정도 ..뭐 모르죠 저 먼 이국의땅을 사고 파는지 ㅡ미미여사가 그렇단건 아니고..일본의 경우...ㅎㅎㅎ
예 마태우스님도 달달한 밤 되세요!^^

diletant 2016-03-0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의 방정식>은 독립적인 장편으로 나온 작품이 아니고요.
<솔로몬의 위증>이 처음에 양장본으로 나오고
몇 년 지난 뒤에 문고본으로 나오면서 거기에 새로 들어간 중편이더군요.
일종의 부록이랄까? 번외편인 셈이지요.

저도 처음에 <음의 방정식> 받고 잠시 당황했다가 찾아보니 저렇게 된 이야기길래
미미 여사의 잘못이 아니라
마치 신간 장편처럼 선전 문구를 뽑아놓은 출판사가 오버했다고 생각했어요.

마태우스 2016-03-06 12:17   좋아요 0 | URL
아 출판사의 오버군요. 이런 뒷얘기 유용하고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nomadology 2016-03-04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사장님이 보증을 서신걸까요?

마태우스 2016-03-06 12:17   좋아요 0 | URL
글게요 그렇게 되는군요^^

다락방 2016-03-0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그레이.. 저렇게 많은 책을 냈는지 몰랐네요. 그것도 저런 식으로요. 하핫

마태우스 2016-03-06 12:17   좋아요 0 | URL
사골도 아니고 우려먹기 정말 쩔지요. 저도 찾다가 놀랐다는...

푸른희망 2016-03-0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인적으로 우리 출판사의 과욕이 아닐까싶습니다만~~

마태우스 2016-03-06 12:17   좋아요 0 | URL
뭐 좋아서 그런 것보다 어려워서 그랬다, 라고 이해하려고요. 요즘 다 어렵잖습니까.

책한엄마 2016-03-0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은 별로인 책인가봐요.솔로몬 위증조고 빠지면 이 책을 봐야겠습니다.

마태우스 2016-03-06 12:18   좋아요 1 | URL
결론이 별로라기보다, 그냥 좀 밋밋하다고나 할까요. 갈비탕에 갈비가 없는 그런 느낌...?

moonnight 2016-03-0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증^^;;; 그렇군요. 저는 괴물 읽다가 접었어요.ㅜㅜ 왜이리 안 읽히는지ㅠㅠ 아무래도 미미여사와는 잠시 이별해야할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16-03-06 12:18   좋아요 0 | URL
아 죄송합니다. 괴물이 별로였군요ㅠㅠ 저도 사실 미미여사의 현대물을 더 좋아해요. 미미여사는 제가 잘 돌볼게요!
 
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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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신자인 어머니는 끊임없이 내게 성당을 다닐 것을 요구했지만,


내 소원은 “빨리 엄마보다 힘이 세져서 성당에 끌려가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난 초등학교 4학년쯤 됐을 때 잃었던 일요일을 찾을 수 있었다 


(힘은 좀 약했지만, 달리기를 엄마보다 잘했다).


그렇게까지 성당이 싫었던 이유는 물론 ‘귀찮아서’였지만,


하느님에 대해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바로 노아의 방주로, 도대체 하느님은 왜 노아 가족만 남긴 채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엾은 동물들까지 모두 없애 버렸느냐는 점이었다.


스스로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나 관대함 같은 건 없었던 것일까,라는 회의는


철이 들면서 점점 커져만 갔다.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은 바로 이런 회의를 다루고 있다.


명 소설가답게 저자는 카인이 아벨을 죽인 후 정처없이 떠도는 와중에 


만나는 사건들을 토대로 자신의 회의감을 독자에게 전달했는데,


회의론자인 나로선 이 책이 흥미롭게 읽혔지만,


신실한 종교인이라면 읽기 거북한 순간이 꽤 자주 있을 것 같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이때 아브라함에게 논리적이고,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인간적인 반응이라면 


여호와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것이었을 테지만” (94쪽)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했지요. 


여호와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왜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163쪽)


-여호와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 유일하게 그 말을 믿은 롯은 도시를 


떠나라는 명을 받는다. 그런데 롯은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을 어겨 소금기둥이 된다.


누구도 왜 그녀가 그런 벌을 받아야 했는지 그 이후로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호기심을 치명적인 죄로서 벌하고 싶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지능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117쪽)


-어릴 적 들은 노아의 방주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욥의 이야기였다. 

욥은 하느님께 늘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은 악마와 내기를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욥이 하느님을 믿을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돈과 소유를 모두 잃는 벌을 받을 참이라니,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가 의롭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163쪽)



마지막으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해보자. 방주를 보면서 카인은 묻는다. 


정말로 지금 인류를 멸하고 나면, 그 다음에 나오는 인류는 똑같은 오류, 


똑같은 유혹, 똑같은 어리석음과 범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189쪽)


이 대목에 격하게 공감하는 것이, 그 당시 세상이 지금 우리사회보다 더 타락했을 것 같지 않아서다. 


하느님이 불편부당이신 분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신다면 이럴 수 있을까.


그래서 난 카인의 다음 선언에 격하게 공감한다.


한마디로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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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2-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지요? 저도 열다섯살 때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그래서 아마도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더 교회를 싫어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제겐 못볼 꼴 많이 보여준 데가 교회거든요. 그런참에 이 책은 진짜 재미있게 읽히더라고요. 물론 리뷰에 언급하셨듯이, 종교인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한 소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게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마태우스 2016-02-16 19:25   좋아요 0 | URL
오 님도 갔다오셨군요. 아무래도 경험해보면 더 싫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엄마가 강제로 끌고 성당에 가지 않았다면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저도 참 재미있게 봤어요. 요즘 유행하는 시간여행도 나오고요.

로자 2016-02-1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저희 아이들이 위의 마태우스님 댓글같은 말을 한답니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연대에 대해 몸에 배이게 해 줄 수 있는건 종교가 가장 쉽지 않나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저의 그런 마음이 아이들에게는 강요와 협박으로만 느껴졌던 것도 같아요. 강요는 딱 초등학생때까지만 통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때는 복사도 하고 그랬는데...마태우스님도 복사하셨지요?

궁금한 소설이었는데 마태우스님 리뷰를 보니 꼭 보고싶네요.

마태우스 2016-02-16 22: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젠 안헷갈리는 로자님^^ 사실 강요를 안했다고 해도 제가 성당에 갔을까 그것도 의문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릴 적부터 독실한 신자가 되는 경우도 많은 걸 보면 제가 그냥 고집이 센 것도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복사가 뭐지요?? 혹시 유아영세를 말씀하신 거라면, 당연히 했지요. 제가 네살 때 성당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면서 힘들어했던 기억, 아직도 난답니다 글구 소설은 재밌습니다

로자 2016-02-16 23:44   좋아요 0 | URL
복사는 미사때 사제 옆에서 사제를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해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흰옷 입고 꾸벅꾸벅 졸다가 종치는 타이밍 놓치고 그러잖아요 ㅎㅎ

마태우스 2016-02-18 09:22   좋아요 0 | URL
아 그거요. 제가 종교는 안믿어도 그건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복사하는 애들 보면 다들 귀엽게 생겼더라고요. 전 그래서 안된 게 아닐까요...^^

별족 2016-02-17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를 읽었는데, 기독교의 신은 `편애하는 신`이죠.
`편애하는 신`그러니까, 차별하는 신께 차별적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이 기독교도,라고 생각해요.ㅋㅋ

마태우스 2016-02-18 09:21   좋아요 0 | URL
멋진 말이네요 차별적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니, 모든 게 다 이해됩니다

transient-guest 2016-02-23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당시엔 성당에 마태우스님의 눈을 확 뜨게 해줄 어여쁜 여자동무가 없었나봅니다.ㅎㅎ 신앙은 믿음의 영역이니 하나씩 따지면 사실 답이 없더라구요. 의심이 별로 없는 저는 잘 듣는대로 믿어왔는데, 새삼 교회가 아닌 성당을 다녔다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그래도 배우고 의심하고 따질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막히지 않았으니까요. 지인들 중 교회다니는 분들을 보면, 네, 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6-02-23 09:34   좋아요 0 | URL
네 제가 그때 절두산성당에 다녔는데요, 다 어른이었고 저만 어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또 제가 이성에 눈을 안뜰 때라-초등 전이었거든요-이끌어줄 여자동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글구 전 나름대로 신을 믿고 기도도 합니다. 단지 종교기관을 다니지 않을 뿐이죠. 신자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위안을 얻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