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사람들은 다 저마다 각자의 생활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표현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비슷하게 보여도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다르기만 하다. [나를 생각해]는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님을 편안하게 알려주는 똑똑한 소설이었다.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주요인물들을 떠올렸을때 여자들만으로 꽉찬 엘리베이터 속에 승원이라는 남자 하나만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실장이나 한사장, 박사장 등등 등장하는 남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떠올려지는 남자는 그 하나인 듯 했다.  나머지는 할머니 둘, 엄마 둘, 언니와 동거인과 동거인의 딸, 지나, 여배우, 옛친구 정민에 이르기까지 죄다 여자들만 있는데도 아마존같은 느낌이 아니라 한강에서 푸른 물고기들이 제 살길을 찾아 펄떡펄떡 뛰는 느낌을 전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실장이 며칠째 소식이 없는 극단 명우를 끌고 나가는 건 첫작품을 극단에 올리게 된 유안이다. 감히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홀로남아 반성일기를 써가며 살아가는 외할머니,명품조연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인생의 위안은 바람나 이혼해버린 남편이 아닌 여자친구에게서 찾고 있는 엄마, 싱글맘의 집으로 독립한 언니 재영의 가족구성원인 유안에겐 가난하지만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는 일이있고 뜨뜨미지근하지만 결혼을 생각해볼 수 있음직한 남자 승원이 곁에 있다. 평범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던 그녀의 일상이 변하게 된 것은 사라진 실장 대신 실장의 자리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계속 될 것만 같던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적신호가 켜지고 극 한편을 올리기 위해 성가신 일들은 죄다 그녀차지다. 결국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인지 연극은 대박이 나고 가정사는 화해모드 물살을 탔고 남자친구에게 가졌던 미련은 물탄듯 맹맹해져버렸다. 

공간이나 시간에 재약없이 그저 편안하게만 읽어도 좋을 소설은 서행의 속도로 독서를 이끌면서도 이야기가 가진 진국의 맛을 느끼게 만든다.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엄마 이전의 세대라면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변명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대는 재영이후의 세대로 갈린다. 이해하든지 말든지 남들의 시선을 중요시여기지 않으며 살아가는 무덤덤한 언니 재영이나 시시콜콜 변명따윈 해대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동생 유안은 그래서 같은 색깔로 겹친 교집합 내음이 나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무늬가 같지 않듯 인생의 무늬도 다르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이 새겨넣는 나이테도 인생마다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운명의 여신이 인간이라는 나무의 밑둥을 잘라 봤을때 그들 마음에 드는 나이테 문양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사람이나 될까. 읽는 내내 나는 유안이 되어 이 사람도 이해하려 애써보고 저 사람도 이해하려 애써보았다. 유안은 소설을 이끌어 가는 동시에 관찰자인 인물이가 관찰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와 나를 사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여정이 담긴 소설이 바로 [나를 생각해]였던 것이다.

p. 28 없는 것보다 낫잖아. 그 말은 너무 쓸쓸해서 몸이 타 들어갈 것만 같았다

사실 그랬다. 없는 것보다 나아 곁에 사람을 두는 삶은 얼마나 재미없고 쓸쓸한 삶일까. 반대로 없는 것이 더 나아 곁에서 치워버린 삶 또한 쓸쓸하긴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살아가는데도 제약도 많고 시비도 많고 신경쓸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소설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위로가 되고 따뜻함이 느껴지고 종국에는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힘을 소설이 가지고 있었다. 

읽어가며 녹아들며 나는 [나를 생각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소설에 내게 남긴 긍정의 힘과 유안이 내게 가르쳐준 "어떻게 살아야하는 거야?"에 대한 답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카시아 바람이 앞 이마를 스쳐간다. 발 밑으로는 저 넘어 저수지도 보이고, 아파트촌도 보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저 밑 아파트 촌 어딘가인데 나는 지금 아카시아를 머금은 바람이 부는 숲 어딘가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고작 책 한권 편히 읽어 보겠다고 나선 길이다. 그렇게 읽은 책을 다시 이야기 해보겠다고 넷북까지 챙겨들고 산사를 끼고 있는 산중턱 어딘가에 나는 지금 앉아 있다. 잠시 나의 세상이 나눠지는 시간이다.
 유안의 세계가 그렇다. 유안은 극단 명우의 희곡 작가이자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는 홍보담당이다. 그녀에게는 위장이혼후에 결국 다른 가정을 가진 아버지, 다친 동성친구와 살기위에 짐을 싼 어머니, 남자친구를 두고도 동호회의 동성회원과 동거에 들어간 언니, 만나면 먹고, 모텔을 가는일이 전부인 남자친구, 그리고 어느날 자신의 자리를 훌쩍 비우고 떠난 극단 명우의 실장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또다른 삶에는 <로맨틱 세계>가 있다. 그녀가 쓴, 곧 극단 명우에서 무대에 올릴 작품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세 쌍의 남녀의 사랑을 다룬 연극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또다른 세상인셈이다. 두가지 세상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등장인물들의 지독한 소통의 부제와 주인공이면서도 목적어가 될 수 없는 유안이다.

유안에게 아버지는 미완의 시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나면 더 쓸 말이 없다. 그런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는 친구인 한주아줌마와의 전화통화가 삶에 대부분이다.

엄마가 한주 아줌마와 통화하지 않는 틈을 타 준희 오빠가 유학을 떠나고 윤희가 아이를 낳았으며 재영이 자기 가족을 만들고 내가 승원과 연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 질 때도 있다. 엄마들이 통화를 멈춘 사이 우리들의 생이 흐른다.35p

이런 엄마에게는 유안말고 딸이 하나 더 있다. 동호회의 이혼한 동성친구와 동거를 하겠다고 집을 나가버린 재영이다. 재영과 엄마는 마트에서 어묵을 하나 고를 때도 언성을 높어여 하는 사이다. 하지만 그런 재영에게도 불편과 긴장을 감수하고도 잘 해 주려고 노력하는 동거인 유미연이 있고, 재영을 엄마2라고 부르는 그녀의 딸이 있다. 한쪽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통하지 않을 소통이 한쪽으로 어의없을만큼 쉽게 흐르고 있다. 엄마에게는 재영이 지아빠 닮아 나쁜년이고, 재영에겐 엄마가 딸에게 눈꼽만큼도 이해심없는 이기적인 엄마일 뿐이다.
이런 가족을 가진 유안에게는 사랑하는 승원이 있다. 만나면 먹는것과 모텔을 가는 일을 빼고 나면 별로 할 일이 없는, 없으면 허전하니까, 남들 다 하니까 하는 연애를 유안은 승원과 하고 있다. 연애를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에는 유안을 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승원을 보면서 유안은 지쳐간다.

승원과 나, 우리의 미래를 생각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승원이라는 한 남자를 생각할 때 이상한 새소리가 들렸다. 행인의 휴대전화 벨소리였다. 승원만 생각할 수는 없는 밤, 한순도 나지 않는 밤이였다. 120p


유안이 가진 또 다른 세상인 연극<로맨택 세계>도 평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갑자기 극장임대료를 선불로 달라는 박사장, 역활에 불만이 많은 여주인공,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단원들. 로맨틱 세계라는 유안의 세상을 밖으로 보여주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페이지가 뒤를 향해 갈수록, 이야기가 클라이막스로 흐를 수록 나는 책 제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생각해"

난 이제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를 위해 살고 이런거 싫어, 나만 생각하며 살아보려고 81p


글중에 엄마의 친구인 한주 아줌마의 말이다. 


모두 나만 생각하는 세상에서 유안은 살고 있다. 그 세상에서 유안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는 유안에게 필요한 말은 한주 아줌마가 내뱉은 나만 생각하며 살아보려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결국은 나를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를 위해 움직인 일이 결국은 나의 일이 되어서 돌아온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고, 유안이 속한 세상도 그런 세상일 것이다. 그렇기에 유안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과 함께 지낸 시간들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를 생각하는 일이다. 그들과의 시간이 나를 있게 하고 소통되지 않는 그들의 삶의 방법이 나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문잔장에서 온전한 목적어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였다. 모든 것의 주어가 되었을 때 기쁘지만은 않은것 처럼.276p 

내 삶을 살면서도 내가 항상 목적어일 수 없을 때가 있다. 항상 내가 주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론 부사인 나도, 형용사인 나도 나다. 괜찮다.그때는 목적어인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면 되니까. 그럼 언제가 그사람이 부사일 때 나를 생각해 줄테니까..  

이 산 어딘가에 있는 산사에서 공양종이 울린다. 내려가야겠다. 나는 나를 생각해 주는 내 세상으로 다시 내려간다.아카시아 바람이 앞이마를 여전히 스쳐간다.  책을 덮는다. 책 제목앞에 가로를 하나 그려넣는다. (너를 생각하는)나를 생각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때 꽤 잘 나가는 극단이었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연극을 못 세우고 시간이 흘러버린 극단 명우. 그 명우의 홍보 직원이자 극작가인 장유안은 얼마 뒤 자신의 첫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되어 있었다. 인생의 제법 중요한 순간이었던 그때에 극단의 살림을 책임지던 실장이 사라져버렸고, 그녀는 졸지에 실장 임무까지 맡게 되지만 극단 식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5년 동안 사귀어 온 남자 친구는 이렇다 할 직업은 갖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로 연명 중이었고, 두 사람은 만나서 밥 먹고 모텔을 찾는 순서만 되풀이하며 서로의 감정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한편 극단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동료 작가는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때도 글을 잘 써서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그 친구 앞에서 십여 년이 지났건만 주인공 유안은 여전히 열패감을 느낀다. 

위장이혼을 했던 아빠는 따로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생겼다며 영영 엄마와 헤어져버렸고, 언니 재영은 동호회에서 만난 싱글맘과 전세금을 반씩 부담하며 동거 중이었다. 엄마는 재영을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려고 무지 애를 섰지만 재영의 결심은 확고했고 그들은 자주 충돌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로를 원망하며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에 바빴다. 엄마는 재영 때문에 아빠가 집을 나간 것이라고 하고, 또 그런 그들을 보며 유안은 엄마 때문에 아빠와 언니가 모두 떠난 거라고 탓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누군들 자기가 가장 중요하고 먼저 생각하는 대상이 아니겠냐만은, 이들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상대가 지나치다고만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찾을 때도 있지만 머리로 아는 것이 가슴으로 체득되는 것은 아니다. 


   
  왜 항상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걸 주고 더 많은 걸 실망하게 되는 것일까. 나의 오랜 친구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너이기 때문에 네가 실망스러운 거라고. - 200쪽  
   

 내가 열을 주었기 때문에 상대도 똑같이 열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관계는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무척 냉랭하게 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제까지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고 만다. 배우인 엄마는 아이의 학교 운동회에 갈 때도 완벽한 메이크업을 고수하는 분이시건만 할머니가 심장 마비로 홀로 계시다가 돌아가시자 헝클어진 모습을 보이고 만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할머니의 시골 집에서 딸들과 함께 잠든 날, 엄마는 왜 그동안 할머니에게 냉랭했는지를 고백한다.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야. 엄마는 그런 식으로 자꾸 나한테 들켰어. 그럼 털어놓든지. 그게 너무 서운한 거야. 하나뿐인 딸자식한테 친구처럼 터놓을 수도 있었잖아. 부모 노릇도 하고 싶고 자기 사랑도 지키고 싶었던 거지. - 263쪽  

할머니가 마음에 둔 사람은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출산을 하고 몸을 풀러온 딸을 위한 미역국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한 메주가 동동 띄워져 있었을 때 엄마가 느꼈을 노여움은 충분히 짐작 간다. 고백한 대로 감정을 들키면서 자꾸 아닌 척하는 게 서운했을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가 더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1순위, 엄마의 가장 큰 사랑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 말이다. 더구나 외동딸이었으니 그 사랑을 독점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부모 노릇도 하고 싶고 자기 사랑도 지키고 싶었을 거라는 추측도 틀리지 않겠지만, 자식에게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쉽게 꺼낼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할머니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했고,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할머니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도 모두 '나를 더 생각한' 사람들이다. 

언니 재영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딸이다.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은 말없이 다 사주었지만 재영에게는 왜 그것이 필요한지부터 묻곤 했다. 재영은 아버지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아버지는 재영에게 상의하여 신중하게 골랐다. -248쪽 

재영은 자신이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심하게 행동했고 그것은 아빠를 서운하게 만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안은 집 안에서도 또 열패감을 느껴야 했다.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속으로 생각할 때는 늘 '재영'이라고 이름을 부른 것도 그런 감정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우연히 만난 아빠에게서 빨래 냄새를 맡고 그것으로 현재의 아빠가 자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확인을 하고 싶었던 재영은 아빠의 냄새가 안정된 새 가정의 냄새로 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진짜 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밤, 유안은 오랫동안 방치해뒀던 자신의 블로그에 아빠에 관한 글을 쓴다. 

전체 공개, 스크랩 허용, 검색 허용 버튼에 체크하고 글쓰기 저장 버튼을 클릭한다. 아버지를 비공개 카테고리에 넣지 않은 건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바깥, 전체 공개 카테고리에 있는 게 더 나았다. 아버지는 내 블로그에서 깨어나 모락모락 숨을 토해 낸다. new 표시가 달린 아버지 글은 24시간 후에 new를 떼어 버리고 고요히 침잠할 것이다. 내가 컴퓨터를 부팅할 때마다 야금야금 전기를 먹으며 살아나는 내 아버지. 아. 따뜻한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있었던 기억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참 이상하다. 몸이 사라진 곳에서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252쪽


나는 이 글을 보면서도 유안이 아버지를 위해서 썼다고 밝혔지만,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로가 필요한 것은 그녀였다. 그리고 이렇게 씀으로써 정리가 되어 그녀가 평안을 찾은 것은 퍽 다행이라고 여긴다.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화를 돋우는 인물은 승원이었다. 그가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것은 속상한 일이지만, 구하려고 애도 쓰지 않은 것은 더 속상한 일이었다. 공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가 계시지만 그 곁을 도우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속상하다. 제3자가 곁에서 본다면 유안이 왜 그 관계를 지속하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실도 답이 없지만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오늘을 견디며 살아온 연인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   

“어떻게 살래? 이 말이 제일 싫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어떻게 살 거냐는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거잖아.” -292쪽 

연극계를 떠나 카페를 차린 한 사장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뭐냐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나는 저 답이 가슴에 콕 박혔다. 오랜만에 전화 통화하는 사람이 묻는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과 맥락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승원의 열패감도 이해가 가고, 그가 유안에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는 마음가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방법이 나빴다. 비겁했고 저열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찌질함을 보태어 더 화가 났다. 유안이 다시 그에게로 가서 주저앉고 같은 패턴을 반복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유안은 승원보다는 건강했고 용감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시를 저평가한 친구의 말을 듣게 된 후 다시 시를 쓸 수 없었던 그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극작가로 일어선 것이 고마웠다. 그것도 배고플 게 뻔한 연극 세계에서 살아남았으니 더 대단하다.  

솔직히 작품은 중간까지는 몰입이 쉽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가장 임팩트가 컸을 레스토랑의 정전 씬은 극적인 상황에 비해 너무 싱겁게 지나갔고, 고교 때 단짝 친구 정민의 자살 소식을 전하는 장면도 무덤덤하기만 했다. 건조한 것도 아니고 무심한 것도 아닌, 뭔가 밍숭맹숭하고 양념이 덜 된 느낌으로 진행되던 소설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같이 자아냈다. 승원이 유안을 밀어내고 난 다음부터일 것이다.  

택시는 쉬이 오지 않았다. 승원의 연락이 오지 않는 휴대전화 액정 화면은 막막하고 맹랑했다. 이토록 작은 세상이 나의 전부를 거머쥐고 있었다. – 224쪽  

휴대전화의 작은 액정 화면에 매달려 그것이 그녀의 온 세상을 지배했던 것처럼, 그 순간에는 독자도 작은 책의 두쪽 화면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서 몰입했다. 클라이막스가 늦게 찾아오긴 했지만, 꾸준히 언덕을 향해 올라갔고, 무리수를 두지 않고 차분히 내려오며 작품은 완성되었다.  

어제까지 내 삶의 중심이 나였던 인물이, 오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내일부터는 나를 향한 사랑을 타자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람직하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이제는 나를 사랑하는, 나만 생각하던 나를 조금은 벗어나 그 생각에, 그 마음에, 그 행동반경에 또 다른 사람이 깃들 여지가 생겼다면 그 사람의 삶은 보다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원하던 사랑 곁에 머물 용기를 얻고, 새롭게 다가서는 사랑을 향해서도 좀 더 기꺼이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나만 생각하던 내가, 이제는 나도 생각하는 나로 바뀔 때가 되었다. 그런 나를 응원하는 나를 생각해.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11-05-2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참여했습니다. 지화자~

다락방 2011-05-28 00:42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참 줄거리 정리를 잘해요. 본문 요약을 잘한달까요. 저는 줄거리 요약이 안되서 리뷰를 잘 못쓰겠거든요.
잘 읽었어요. 저랑 좀 다르게 느낀것 같고 그게 당연하지만, 읽으면서 아, 이럴수도 있겠구나 싶어서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어요.

마노아 2011-05-30 14:51   좋아요 0 | URL
작가 분도 책 읽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보면 무척 놀랄 것 같아요. 다락방님은 어찌 느꼈는지 다음에 얘기해줘요. 무척 궁금해요.^^

하늘바람 2011-05-29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참여 축하드려요 전 아직
마노아님 서평 읽으면 이거 참 따라 안 읽을 수기ㅏ 없답니다

마노아 2011-05-30 14:51   좋아요 0 | URL
하핫, 하늘바람님에게는 또 어떤 의미를 '나를 생각해'가 될까요. 저마다 다른 의미의 탄생이 반가워요.^^
 

 윤여정!!! 

  글을 읽는 내내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이 책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누가 배역을 맡으면 좋을까?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이미지가 잡히지 않으나 딱 한사람의 이미지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명하다. 바로 윤여정씨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한번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맡을 배역은 무엇일까? 엄마다. 주인공 유안의 엄마! 난 이 소설을 보는 내내 윤여정이 이 역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없는 아버지와의 이혼, 그리고 연기로 다시 돌아온 그 열정,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대는 치열함, 집에서도 고상하게 보이고 싶고 철없는 행동,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 뿌옇게 내뱉는 담배연기...연기를 하다보면 꼭 그 사람에게 맞는 배역이 있다고 윤여정이라는 배우에게 꼭 들어맞는 배역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배우 윤여정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던지는 대사에, 그리고 행동 하나 하나에서 그녀의 자취를 느끼는 것은 이 책을 읽어가는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딴에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만 조금만 그 속을 들춰보면 모두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자기의 사랑을 위해 할아버지를 독수공방으로 만든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조롱하기 위하여 여자를 데리고 온 할아버지, 친구 한주에 대한 마음과 이혼의 아픔을 애써 숨기고자 딸을 탓하는 엄마, 위장 이혼을 하지만 다른 여자를 만나 다른 가정을 꾸린 아버지, 반발하여 나가는 재영, 만나면 커피마시고 모텔로 직행하는,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어 헤어진다는 승원, 그리고 승원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는 유안! 모두들 자기 입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 충실하지만,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그들은 상대방에게 배려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배려를 몰라주는 상대방이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 강변한다. 그들은 자기식의 배려를 강요하고 있을 따름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나만 생각하고 있어락 말한다면 덜 답답할 것을. 

  작가의 기가 막힌 의도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난 전자에 이 책을 걸 수 있다. 로맨틱한 세계는 소설의 미니어쳐이다. 승원과 유안의 이야기를 담은 스마트한 시대의 커플 이야기,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재영의 이야기를 담은 성적 소수자의 사랑이야기, 유안을 바라보는 오연출을 떠올리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 소설과 연극을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작가의 말이 더 생생하게 들린다.  

  이 책에는 두 부류의 남자가 등장한다. 유안의 삶에서 튕겨져 나가는 남자와 받아들여지는 남자. 전자의 대표는 승원과 아버지이다. 유안이 끊임없이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유안을 떠난다. 유안은 끊임없이 그들을 그리워하지만 그 그리움이라는 것은 전원을 꺼버리면 사라져버리는, 24시간이 지나명 생명이 다하는 블로그의 글과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지만 추억은 없다고 할까? 추억은 있지만 감동은 퇴색해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후자의 태표는 오연출과 장실장이다. 어느날 무책임하게 유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라져버린 장실장. 그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은 유안에게 무거운 짐이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유안은 장실장을 미워하지 않는다. 외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장실장의 부재를 안타까워한다. 

  유안에게 아버지보다 더 듬직한 존재는 장실장이다. 무책임한 아버지와 유안을 믿고 신뢰하는 장실장. 장실장이 아버지의 대척점에 있다면 승원의 대척점은 단연 오연출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가다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든지 같이 넘어져야 한다면서 종로 한 복판에 누워줄 수 있는 오연출의 찌질함은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어서 헤어진다는 승원의 쿨함보다 더 매력적이고 로맨틱하다.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만약 유안이 결혼을 하고 진지하게 연애를 한다면 상대는 오연출이지 않겠는가?  

  장실장과 오연출을 보며 입에서 맴도는 한마디가 있다. "너만 생각해!" 나는 나를 생각해라는 제목이 이상하게 "너만 생각해"라는 말로 들린다. 괜시리 오지랖 넓게 상대방을 배려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기식의 배려를 강요하는 것이 될 뿐 진정한 배려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자기의 인생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장실장이나 오연출 같은 사람이 진심을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라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과거 아픔을 혼자서 삭히기 어려운 시절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나를 떠나 버린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내가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온갖 것이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하고, 더 상처를 주고, 이것이 반복되고. 그 시절 친구가 나에게 해준 한마디..."너만 생각해!" 그렇다. 괜시리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미련한 행동이다.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하고, 무례하게 행하는 행동이다. 그냥 그럴 때는 "나만 생각"하면 된다. 

  오늘도 힘들어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고 행여라고 사랑의 아픔, 인생의 아픔을 달래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한다. 

  "너만 생각해..."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aint236 2011-05-25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님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저도 참가요. 덕분에 재미있는 소설 하나 읽었습니다.
 

근 6개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앞으로는 너만 생각해’이다. 그리고 이 책 <나를 생각해>를 읽었다.
기억 속에 삼형제를 나란히 무릎 꿇어 앉히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백하기를 끈질기게 기다리는 화난 엄마가 있다. 까마득히 어린 나는 내가 그랬노라고 허위자백을 했다. 아마도 자백이 불러올 엄마의 관용에 기대를 걸며 셋이서 긴 시간 벌을 받기보다 혼자 벌을 받는 게 낫다는 계산을 했나 보다. 허위자백으로 형제들에게 떨어질 벌이 가벼워졌는지 기억에 없지만 그때의 행동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처음으로 남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다는 자의식 때문 아닐까 싶다.
위장 이혼이 진짜 이혼이 돼버린 배우 엄마와 사는 유안이 있다. 유안의 할머니와 엄마, 언니, 그리고 유안 자신으로 이어지는 모계의 가족은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며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는 가족들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를 주고 아파한다.
-우리 집안 내력인가 봐. 진실을 자꾸 숨긴다.
-그 진실이 뜨거우니까 그랬겠지.
그들은 깨진 유리처럼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모습 같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을 쫓아가다 보면 여전히 가늘지만 질긴 끈으로 이어져 있다.  
극작가이자 홍보담당자인 유안이 있다. 유안은 협찬을 얻기 위해서는 폭탄주를 마시고 막춤을 추면서도 자신이 쓴 희곡에 대해서는 배우와 타협하지 않고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다. 지나가버린 과거에 변명하지 않고 기껍게 자신의 능력을 시험대에 올린다. 5년째 연애 중인 유안이 있다. 일상처럼 돼버린 오랜 연애가 끝난 순간에도 유안은 무연히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온 감정을 실어 연인을 붙잡으려 한다.
소설은 가족과 일과 사랑이라는 그물 속에서 유안과 유안을 둘러싼 사람들을 촘촘하게 잘 엮어 보여준다. 제각각 다른 형태의 삶을 살며 사랑을 하는 인물들을 통해 서로의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틀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침내 할머니가 남긴 편지들에서, 유안이 블로그에 쓴 아버지 글에서 유안을 통해 작가는 그들을 보듬고 위로한다. 세상을 향한 작가의 포용력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
아버지, ‘밥’이라고 해봐요. 나는 아버지 옆으로 가 입을 크게 벌리고 말했다. 아버지는 신문을 보던 시선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밥. ‘사과’ 해봐요. 사과. ‘벌레’ 해봐요. 벌레. 내 귀에 희미하게 닿는 아버지 음성. 나는 아버지 목소리를 더 잘 듣고 기억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사랑해요’ 해봐요. 녀석. 아버지가 쑥스럽게 웃는다. 사랑해요.
다 커서 아옹다옹 함께 나이 먹어가는 형제들에게 문득 그때의 일을 물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벌을 준 엄마조차도 그런 일이 있었냐며 반문했다. 내 행동은 누구의 기억 속에도 흔적을 남기지 못한 무의미한 행위였는데도 나는 그때의 허위자백을 선행상장처럼, 등짐처럼 지고 나이를 먹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앞가림을 잘하면서 다른 사람까지 챙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앞가림은 제쳐두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거나 훈수를 두는 사람으로 나이를 먹은 건 아닐까. 나의 삶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수고와 노력을 하지 않고 그저 공허한 말로 걱정을 하고 훈수를 두며 사소한 우월감과 함께 만족했던 건 아닐까. 이 소설은 나에게 나를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좀 늦긴 했지만 이제는 나를 생각하라고, 지금은 타인의 상처나 힘겨운 감정들에 눈길을 주지 말고, 쓸데없는 허위자백 같은 건 하지 말고 유안처럼 자신의 능력을 의심 없이 믿고 보듬고 챙기라고 말이다.

유안의 모습에서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만난 적은 없지만 긴 시간 글을 놓지 않고, 묵묵히 한곳을 보며 꾸준히 걸었을 작가에게 애정을 보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uperfrog 2011-05-2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태님^^ 예전에 알라딘마을에서 잠시 활동하다 오랜만에 다시 돌아와 이벤트에 참가해봅니다!! 참가는 하면서도 너어어무 오랜만이라 스스로도 초큼 뻔뻔하단 생각이 들어 뻘쭘하네요...쿨럭쿨럭...;ㅂ; 그래도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태님, 여전히 멋지셔요!!!ㅎㅎㅎ (아래 어룸님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어룸 2011-05-21 02:2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오마주 넙죽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1-05-20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들어왔다가 이 리뷰를 보고 "어 내가 잘못 들어왔나?'라고 헷갈렸더랬어요^^ 너무 오래 이벤트계를 떠나 있었네요. 감사드려요 슈퍼포그님. 이 썰렁한 이벤트를 빛내 주셨네요 아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Arch 2011-05-2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참 좋네요. 저도 언젠가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