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이가 들고나서 나에게 정착된 두가지 경향이 있다. 첫번째는 이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굉장히 힘들어졌기에, 기존에 있던 친구들을 유지, 보수, 관리하며 여생을 살아야겠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만나서 불편한 사람을 억지로 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불편한 자리에 나가 억지로 만든티가 역력한 웃음을 짓곤 했는데, 이제 그런 짓을 하기가 귀챦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때로는 만나기 싫은 사람도 봐야 하지만, 앞으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겠다는 얘기다. 두번째 원칙에 너무 충실해져서인지 최근 들어서 친구를 만나면 단점만 보이고, 그래서 안만나는 친구들이 늘어나는 느낌이다....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건 내가 "재는 원래 그런 애야"라면서 친구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걸 기꺼이 감내해 왔던 데 있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조금 올라가자 내 인내력이 많이 감소했고, 그래서 그 단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리라. 물론 나 자신도 그렇게 편한 인간이 아닐 것이며, 내 친구들 중에는 나의 그런 점을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참은 애들이 많을 것이다. 30세가 넘어서 "너 이런 게 나쁘니 고쳐라"라고 말하는 것은 "우린 안맞아. 그러니 그만 만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니깐.

편하기 짝이없는 친구 관계지만 그 관계를 잘 유지하는 건 이렇듯 어려운 일이다. 사소한 단점을 빌미로 하나씩 하나씩 맘 속에서 지워 나간다면 내 주위에는 친구가 하나도 남지 않겠지. 친구의 단점을 보기보단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인내력을 키워 나가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글과 실제는 많이 다른가보다. 어제 술자리에서 한 친구를 지웠다. 분명 내 친구로 알고 지내온 녀석이지만, 그는 내게 커다란 배신감만 던져줬고, 그걸 지적하는 나를 "편집적"이라며 비난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다신 날 볼 수 없을거야'라고.

난 그동안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친구가 많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뿌듯하게 여기기까지 했지만, 그게 그럴 일은 아닌 것 같다. 외환위기 전의 한국 경제가 그랬듯, 내가 친구라고 믿었던 애들 중에는 많은 거품이 섞여 있었던 거니까. 주변에 있다고 언제나 친구는 아니며, 중년이란 나이는 그 거품을 골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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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1-23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와닿는 글이네요...제서재로 퍼갈께요~^^ 저 중략된 원문이 궁금해서 끝까지 둘러봤는데 여기엔 없나봐요?? 아쉽네요..
 

 

 

 

내 직장은 천안이고, 난 홍대앞에서 매일 출퇴근을 한다. 힘들지 않냐고 하는 사람에게 난 이렇게 답한다. "출퇴근이....하는 일의 전부에요"

출퇴근을 하는지라 천안에서 술을 마시면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서울보다 물이 안좋은 게 가장 큰 불편이지만, 집에 갈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고속터미널은 9시 40분, 동서울에 가는 것은 10시가 막차며, 기차도 11시면 끊겨 버린다. 딱 한번 택시를 타고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땐 사정이 워낙 급했으니까 그랬지, 7만원을 주고 서울에 가느니 여기서 하루 자던지, 아니면 새벽 2시까지 기다렸다가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걸 택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천안에서 살지 않냐고. 그럼 더 문제니까. 서울에서 술을 마시는 게 일주에 서너번인데, 술마시고 나서 천안에 어떻게 내려가라고? 버스면 모르겠지만 기차를 타면, 그리고 잠이 들면 앗차 하는 사이에 천안을 지나가는데?

그래서 난 서울서 출퇴근을 하지만, 친구들은 천안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내게 전화를 건다. 난 서울서도 늘 볼 수 있는데, 서울서 만나는 게 더 좋은데. 방금도 그랬다. 친구 하나가 회사일 때문에 천안에 왔단다. "이따 보자. 술한잔 살께" 내가 제주도 쯤 되는 곳에 살았다면 먼 길을 날아서 온 친구가 반가웠겠지만, 지금은 과히 반갑지 않다. 이틀에 한번은 술을 쉬겠다는 결심이 깨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친구와 나는 지난주에 이미 술을 마셨거든. 그래도 어쩌겠는가. 천안이라는 지명에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데.

이따가 영안실에도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술에 잔뜩 취해서 그런 데 가면 남들도 별로 안좋아 할테고, 실수를 할지도 모르는데. 언젠가 친구의 모친상 때, 술을 왕창 마시고 거길 가는 바람에 영안실 사이를 막아주던 벽을 쓰러뜨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지 않던가 (그집에서는 내 말만 나오면 그 얘기를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마셔는 주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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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교실 동문들의 신년회 날이다. 번잡한 12월을 피해 조용한 1월에 만나서 보람찬 새해를 다짐하게 된지가 벌써 몇년째다. 나같은 아래것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건만, 난 오늘 모임에 안갈 생각이었다. 1월 1일, 세번째로 들른 교수님-홍선생님-댁에서 술에 취해 무슨 행패를 부렸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기억이 안나는 전날밤이 사람을 얼마나 무섭게 하는지를. 크게 잘못한 일이야 있겠냐만은, 그래도 난 무서웠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하고 출근을 했는데,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술마시고 깽판친 죄보다 신년회에 안나온 게 어찌보면 더 큰 죄일지 모르고, 내가 그날 민폐를 안끼쳤을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슬쩍 교실에다 전화를 해, 내가 그날 어땠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이럴 수가. 아무일 없더란다. 내가 갑자기 사라졌고, 걱정되서 내 뒤를 쫓은 후배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달려갔다고 한다. 흠...그렇다면 내가 가장 바라는 상황일세. 일정을 바꿔 난 모임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고 기차표를 끊었다. 비록 정장은 못했지만.

1차는 정말이지 따분했다. 55세가 넘지 않으면 말도 못하는 분위기라, 난 책상 밑으로 책을 꺼내 독서를 하거나,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메시지를 보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이드신 분들을 보내고 2번째 교수님의 통솔아래 무늬만 단란주점인 <다모아>를 갔다. 양주와 맥주가 나왔고, 난 늘 하던대로 홀짝홀짝 술을 마셨다. 가끔씩 호방하게 웃기도 하고. "음하하하하" 그런데... 후배 하나가 이런다.
"선생님, 술 드시면 안되는데.."
뭔가 이상해서 난 그녀를 옆방으로 끌고갔다.
"왜 안돼지?"
"지난번처럼 그러실까봐...."

그랬다. 1월 1일, 홍선생님 댁에서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열심히 술을 마시던 중, 자신의 새해 포부를 말하라고 했을 때 내가 이렇게 말했단다.
나: 작년보다 나은 한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멀쩡할 때 늘 하던 소리다)
홍: 그래? 작년엔 어땠는데?
나: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니가 알지.
이 말과 동시에 난 집에 가야 한다고 가방을 메고 나왔다는데, 물론 이 사건에 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내 심복이 "아무일 없었다"고 한 것은 이게 평소에 늘 있던 일이라서 그랬다나? 하기사, 홍선생님한테 내가 그간 못할 짓을 많이도 했다.
술에 취해 "언니"라고 부른 적은 부지기수고, "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줄 알아?"라는 말도 했다고 하고, 그밖에...으흐흑. 하여간 우리 홍선생님은 마음도 좋으시다. 내 깽판을 다 받아 주셨으니 말이다. 혹자는 내가 술취한 척하면서 반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어쨌든 오늘도 기본은 했다. 기본이란 소주 한병, 혹은 맥주 다섯병 이상을 말하는데, 이 기준에 미달하면 술마신 것으로 카운트가 안된다. 그러니까 난 소주 두잔씩 마시면서 "나 매일 술마셔"라고 하는 사람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아니 그 사람은 밥 한숟갈 먹고 "밥 먹었어!"라고 그러는가? 좌우지간에 1일 마시고, 3일날 마시고, 오늘 또 마셨으니, 징검다리로 마시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고, 이대로 간다면 180일 이하의 꿈도 달성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럼...7일날도 마실까? 물론이다. 그날은 중1 때 과외하던 애들끼리 술약속이 있다. 9일은? 그날은 쉬지만, 아쉽게도 8일날 술약속이 있다. 이래저래 생기는 술약속 탓에, 이틀에 한번도 사실 쉬운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겠지. 180일 이하로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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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이 지방에서 올라왔다. 레이니 선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원칙대로라면 나도 같이 그 공연을 봐야겠지만, 난 그런 류의 음악을 끔찍히 싫어한다. 시끄러운 전자악기 소리에 소리만 질러대는 가수들, 그런 곳에서 두시간을 있는 건 내겐 지옥이다. 내가 사는 홍대앞은 그런 류의 공연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난 한번도 그런 곳에 간 적이 없다.

여친에게 말했다. "공연 끝나고 전화해. 맥주나 한잔 하자"  밤 9시가 넘은 시각에 여친은 전화를 했고, 난 대충 옷을 챙겨입고 대학로로 갔다. 여친은 혼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알던 인터넷 카페 회원 셋과 함께였다. 그런 류의 팬클럽은 전부 여자들인 줄 알았던, 그래서 여자들이 바글바글할 줄 착각을 했던 나는 여친과 같이있는 애들이 시커먼 남자들인 걸 확인하고는 실망으로 가슴이 무너졌지만, 이내 적응해 그런대로 즐겁게 술을 마셨다. 그들은 20대 초반의, 한눈에도 착해 보이는 애들이었다.

내가 갔을 때, 그들은 이미 소주 네병을 비워놓은 상태였다. 그때까지 먹은 안주는 조그만 냄비에 담긴 조개탕이 전부. 내 20대 시절이 생각났다. 그땐 나도 찌게를 여러번 덥혀 달라고 하면서 술을 마시곤 했었지. 2천원이면 소주 두병에 계란말이 안주를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고, 남이 남기고 간 안주를 먹는 게 전혀 흉이 아니었었지. 난 그들에게 '삼겹살 두루치기'와 '낚지볶음소면'을 시켜줬고, 잠시 후 계란탕을 더 시켰다. 그들과 어울려 소주를 한병쯤 마셨고, 2차를 가서 맥주를 세병쯤 더 마셨다. 집에 들어간 시각은 새벽 2시. 피곤해서인지 금방 잠이 들었다.

이로써 난 새해들어 두번째 술을 마셨다. 얼마 안마신 것 같지만, 새해가 시작된지 사흘간 두번을 마신 셈이니 그리 성공적인 출발은 아니다. 오늘은 안마셨지만, 내일 난 또 술약속이 있다. 모교 동문들과의 신년회다. 안갈 수는 없지만, 그리 내키지 않는 것이, 새해 첫날 선생님 댁에서 어떤 깽판을 쳤는지 아직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갈까 말까, 지금도 난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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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4-0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레이니 썬'은 '시끄러운 전자악기 소리에 소리만 질러대는 가수들'은 아닌데요 ^^; 엄청난 파토스가 느껴지는 그룹입니다. 마태우스님 술일기 예술입니다! ^^
 

2004년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새해 첫날에는 모교 교수님들 집을 돌면서 세배를 하는 전통이 있는데, 어제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맨 처음 간 집-채선생님댁이다-에서 중국요리에다 맥주 4캔과 양주 석잔을 마셨다. 난 양주보다는 소주를 좋아하지만, 선생님 댁은 양주를 마음껏 먹는 몇 안되는 좋은 기회이기에 좀 마시는 편이다. 와인은 전혀 못먹는 내가 양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술은 발렌타인이다. 맛은 구별하지 못하지만 햇수가 오래될수록 비싸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채선생님은 발렌타인 17년산을 꺼내 놓으셨고,  난 석잔을 마셨다. 그거밖에 안마신 이유는 다음 번에 들를 이선생님 댁에 고급 양주가 있을 거였기 때문.

작년에  이선생님 댁에 갔을 때, 난 발렌타인 30년산을 처음으로 먹었다. 맛은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먹었다는 사실만 생각나지만, 하여간 먹었다. 술맛을 안다는 내 동료는 "역시 틀려!"라면서 아는 체를 했지만, 그에게 눈을 가리고 구별해 보라면 12년과 30년도 구별하지 못할 것임을 확신하는 바다.

몇년 전, 이선생님 댁에서 발렌타인 17년이 나오기에 귀한 술이라고 생각해서 옆에다 끼고 홀짝홀짝 다 따라 마셔버렸다. 술이 거의 비어가자 선생님은 갑자기 "어, 술이 없네?" 하면서 21년을 꺼내놓으시는 거다. 급한 마음에 남은 17년을 다 비우고 21년을 허겁지겁 마셨는데, 얼마 안있어서 다들 일어나는 분위기다. 나도 따라서 일어났는데, 일어나다가 그만 몸이 기우뚱 하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아픈 것보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기에 굉장히 쪽팔렸던 기억이 난다.

발렌타인을 그래도 몇번 먹어본, 그것도 30년까지 먹어본 사람이니 이제 좀 의젓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이선생님이 꺼내놓으신 21년산을 어찌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나만큼 발렌타인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듯 홀짝홀짝 따라마셨고, 다음 차례인 홍선생님 댁에 가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홍선생님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떠왔다는 싱싱한 회를 보자 난 그만 이성을 잃어 버렸다. 회를 어찌 술 없이 먹겠는가. 맥주를 두병쯤 마시고, 몇년산인지 기억도 안나는 양주를 마셨다. 그 다음 일은 기억에 없다. 택시 아저씨가 깨우는 바람에 난 내가 집에 도착한 것을 알았는데, 그때 시각은 놀랍게도 오후 7시 40분이었다. 그럼 도대체 몇시에 맛이 간 걸까? 혹시 실수는 하지 않았을까? 온갖 걱정들이 머리 속을 어지럽히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련다. 며칠만 잠복해서 선생님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리실 테니까. 그리고, 내가 어디 실수 한두번 하나? 후회가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새해 첫날 그래도 알차게 술을 마셨다는 데 만족한다. 첫날부터 마시면 한해 내내 마신다는 말도 안되는 말은 잊어 버리자. 첫날은 첫날이고, 오늘은 오늘의 삶을 살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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