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번째 술

일시: 3월 5일

누구랑?: 초등 친구들과

마신 양: 소주 한병 +알파, 2차는 진토닉

느낀 점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때론 자신만이 힘든 수렁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위로받고 싶은 상처는 있는 법이다.

-초등 친구들 중 갈라선 애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놀라게 된다. 절세의 미녀 하나는 애 셋을 뺏기고 이혼했고, 몰라보게 이뻐진 모습에 내 넋이 나갔던 여인도 최근 헤어졌다. 부부란 외모만이 아니겠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파온다.

-갈라선 사실을 나만 알고 있었던 내 친구는 역시 이별의 슬픔을 안고있는 여인과 작년에 결혼했다. 난 몰랐는데, 지난 1월말에 아이를 출산했단다. 그날 들은 일 중 가장 즐거운 소식이었다.  

 

39번째 술: 사재기

일시: 3월 6일 토요일, 교보 뒤에서

누구랑?: 브로커랑 (이하 문답식으로 쓴다)

-교보에 왜 갔나?
=내 책을 사기 위해서다.

-아니 니 책을 왜 니가 사나?
-책이 나오면 한권 달라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그러는 건, 저자는 집에다 책을 잔뜩 쌓아 놨겠거니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출판사에서 저자에게 주는 책은 10-20권 남짓, 나머지는 전부 자신이 사서 줘야 한다. 내가 틈나는대로 교보에 가고, 알라딘에 책을 주문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집근처 서점을 놔두고 큰서점을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브로커는 또 뭔가?
=브로커를 두는 이유는.... 내가 계속 사면 사재기를 하는 걸로 오해받지 않겠는가. 그래서 시간이 있는 지인들을 동원해 책을 사게 한다. 큰서점에 가는 건, 작은 서점에 가면 내 책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왕 사는 거, 큰서점에서 베스트에 진입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한마디로 올-인이다!

-계산대를 달리하면서 두권씩 사는 이유는 뭔가?
=그건.... 사재기로 오인받을까봐.....

-브로커에게 일당을 주나?
=아니다. 일이 끝나면 밥과 술을 사는데, 대개는 술값이 책값보다 훨씬 더 든다. 요즘 내가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매일 술을 마시면 힘들지 않나?
=당연히 힘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올-인이다!

-지금까지 몇권이나 샀으며, 책을 줘야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한 100권 정도 돌린 것 같은데, 아직도 줘야 할 사람이 많다. 우리 어머니도 만만치 않다. 내가 책을 사놓으면, 친구분들 주신다고 다 가져간다. 아주머니들은 몇 명만 주면 삐진다고, 참석자 수만큼 책을 챙겨가신다. 화요일날도 아홉권이 필요하단다. 나도 다음주 목요일에 큰 모임이 있는지라 책이 더 필요하다. 한마디로 올-인이다!

* 브로커와 일대일로 마셨다. 생맥주를 3천cc씩 마셨는데, 그만 2차에서 정신을 잃었다. 브로커로부터 "술이 너무 약해졌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건 노력으로 되지만, 술은 아무리 마셔도 늘지를 않는다. 주량이 딱 소주 다섯병만 되면 소원이 없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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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0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량이라는 것이 대체 어찌 계산을 해야 하는 것인지... 저는 몸 상태 및 기분에 따라 술빨이 천양지차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비로그인 2004-03-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브로커 이야기나, 친구분들 이야기나, 왠지 마음이 짠~한데요. 교보베스트에 진입하셨는지?? 저라도 사재기가 아니고도 베스트에 진입할수 있도록 일조하겠숨다~ ^^

sooninara 2004-03-0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변에는 아직 이혼한 친구가 없습니다. 친구끼리도 다행이라고 말한답니다.
부부란 외모만이 아니라는 말이 ...맞는듯합니다..^^ 서로 못난얼굴을 어여삐 여기고 살아가야겠지요..
그래도 오래 같이 살다보면 어느순간 잠시동안은 우리남편이 권상우로 보일때도 있어요^^
사재기하시는군요..교보순위가 궁금해집니다..

연우주 2004-03-0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후배 중에 사재기 아르바이트 했던 후배가 있었어요. 모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한 두 권씩 교보에서 사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뿌리는 알바가 꽤 많다더군요. 후배 왈, 베스트셀러는 그렇게 다 허구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마태우스님의 사재기 얘길 들으니 더 미안한 걸요?
저자가 책을 많이 안 가지고 있어서 사서 주어야 한단 얘기 전에 들었는데 염치없이 달라고 해서 죄송...흑흑.

쎈연필 2004-03-0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마태우스님 책을 메인페이지 배너로 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마냥 웃기만 할 순 없는 글입니다. 참... 재밌으시고 사람 좋은 분 같네요.

마태우스 2004-03-0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주량이란 평균적인 양을 따지는 거겠지요. 그래서 전 소주 두병이지만, 어젠 정말 컨디션이 안좋았나봐요.
앤티크님/하하, 제가 열심히 살테니까 '일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니나라님/여기 분들이야 다들 즐겁게 잘 사실 것 같습니다. 특히 님은요!!

마태우스 2004-03-0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보라빛우주님/미안해하지 마세요. 책을 드리는 것에는 두종류가 있어요. 너무 기쁘게 드리는 분과, 어쩔 수 없이 주는 사람. 우주님을 비롯한 알라딘 분들은 당연히 전자지요.
자두상자님/아, 아닙니다. 사실 저는 책이 안팔려도 별 지장이 없는데요, 전업작가 분들이야 그렇지 않잖아요. 메인 배너는 그분들에게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사실은... 나쁜 점이 많은 놈인데요)

비로그인 2004-03-0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좋은 이웃 마태우스님이 책을 내셨으니 당연히 읽어봐야죠~ 담에 지인에게 선물받기로 했으니, 받으면 읽고 감상이라도 남기겠습니다. 어딘가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도움이 되겠죠?? ^^

비로그인 2004-03-0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께 책달라고 조르는 멜 보내고 나서 이글을 읽었습니다..아 제 손이 부끄럽네요.미안해하지 말라해도 무진장 미안하고 죄송합니다.**제 주위에서도 갈라지는 커플들이 많습니다.참 안타깝지요.인연을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으로 하나되는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마태우스님의 주량은 어느정도이신지...전 두꺼비 두마리는 거뜬히 잡을 수있지만은요...그것이 남편이 싫어하는지라 이제부턴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나의하늘이 싫어하는데 따라야하겠지요...슬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겠기에 오늘은 우울한 날입니다.
 

 

 

 

 

 

일시: 3월 3일
이유: 학장님이 지난 일년간 수고했다고 밥사준다고 해서...
좋았던 점: 얻어먹었다!
쑥스러웠던 점: 학생들이랑 술 몇번 마신 것밖에 없는데, 수고했다고 또 술을?
신기했던 점: 참석한 교수 중 한명이 전공의 시절 카지노에 빠진 얘기를 했다. 첫해에는 천만원쯤 따고, 둘째해엔 3, 4백을 잃었으니 6, 7백을 번거다. 단골 세탁소 주인이 "선생님, 저기 자주 가시더군요. 이제 그만 하세요"라는 말을 한 뒤 끊게 되었다나. 내 주변에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2차: 천안에 '팔육상회'라는 곳이 있다. 소주 댓병(혹은 참기름병)에 생맥주를 담아 주는데, 내가 아는 집 중에 맥주맛이 가장 좋다. 시원---하구... 서비스 안주로 맛있는 번데기를 주며, 우리가 시킨 두부김치도 어찌나 맛있는지... 대학가 앞이라 양까지 많아 금상첨화다. 그 주인, 복받을껴...

말이 나온김에 그간 갔던 신기한 술집을 몇군데 적어본다.
1) 학교종이 땡땡땡; 인사동에 있는데, 96년에 한번 가봤다. 전유성 씨가 만든 곳으로,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시락통에 안주를 담아주고, 술통은 주전자, 테이블은 학생 때 쓰던 책상, 의자는 그당시 걸상이다. 서랍 안에는 노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긴다. 지금은 이와 비슷한 곳이 많아서 신기할 것까진 없지만, 그땐 참 신선했다.

2) 조선호텔 지하(조선호텔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역삼동 어디께에 있는 호텔인데), 이름은 모르겠다; 재벌인 사촌형을 따라 한번 가봤다.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자기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에 놀랐을 뿐, 맥주맛은 뭐 그다지... 자기들이 직접 맥주를 만드는, 유식한 말로 하우스맥주라던데, 난 그것보다는 생맥주가 훨씬 더 맛있다. 맛을 몰라서 그런 건가?

3) 전에 말했던 피맛골; 아주 허름한 분위기의 막걸리집으로, 앉으면 이면수(물고기다)와 세숫대야에 든 막걸리를 묻지도 않고 준다. 그래도 사람이 미어터져, 최근 옆집을 인수해 2호점을 냈다. 앉을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집.

4) 벽돌집: 홍대점, 압구정점, 영등포점 등 문어발식으로 점포를 늘리고 있다. 고기집 그러면 아저씨들만 칙칙하게 앉아서 먹는 걸로 아는 사람이라면 벽돌집을 가시라! 다 여자다!!! 3천원짜리 비빔밥이 아주 맛있고,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맛도 깔끔하다. 병따개를 자석으로 만들어 위에 매달아 놓은 것을 비롯해 모든 게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홍대점은 참고로 식당 밖에 의자랑 TV를 갖다놨다. 그런 오만함마저 이해하게 만드는 좋은 집이다.

하여간 난 조용한 곳이 좋다. 그건 수다떨기를 즐기는 내 취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난 허름하건 화려하건, 조용한 곳을 선호한다. 헤비메탈이나 재즈가 나오는 곳에 가면 머리가 아파 술도 잘 안받는다.

* 말로만 듣던 '화랑'을 한잔 먹었다. 무지하게 비싸다는데, 내 타입은 아니다. 13도쯤 하는데, 난 소주가 좋다. 원래 25도이던 소주는 점점 내려가 최근들어 21도짜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18도인 청하와 무슨 차별화가 되겠는가? 소주가 점점 초심을 잃어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 소주 타락의 첫발은 그린소주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기존 소주보다 부드러운 맛을 주창하던 그린은 이내 소주시장을 석권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참나무통맑은소주 어쩌고 하는 것들이 시장을 어지럽히더니, 참이슬이 나오면서 23도가 되고, 급기야 21도까지 된 거다. 인근 러시아에서는 마시면 목에서 불이 나는 보드카를 마시면서 극기정신을 기르는데, 우리 소주는 도수를 올리지는 못할망정 내려가는 이유가 뭘까? 참고로 우리의 술 소비량이 슬로바키야에게 뒤져 2위에 머무는 것은 도수가 낮은 술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도수는,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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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3-0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소주는 23도는 되어야 합니다. ^^

비로그인 2004-03-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소주타락은 그린소주부터였습니다..소주는 역시 두꺼비 그것두 돌리는거말구 숟가락으로 따야하는 그 두꺼비가 제일입니다.두꺼비잔에 두꺼비가 잠기지않게 찰랑거리게해서 원샷..음,,종로 그 피맛골 막걸리집이지요??그집 확장하고나서는 그옛날의 그 막걸리 맛이 아니더라구요..실망해서 전 이제 안갑니다.홍대의 벽돌집 그 고기맛 끝내주지요.여자가 많다는말 맞아요.마태우스님이랑 어디에선가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천안에계시나요??제동생이천안에 살아서 가끔 가는데..팔육상회는 어느학교 주변에 있나요?번데기 서비스안주가 나온다니 꼭가봐야하겠습니다.....술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많아지네요.정겨운이들과의 술은 언제나 맛있지요..

마태우스 2004-03-0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iz70님/홍대앞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반갑군요. 팔육상회는...제 기억에는상명대 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하여간 두꺼비가 제일입니다. 숟갈로 따구요... 두꺼비를 아시는 걸 보니 님도 연배가 좀 되시나봐요?

sooninara 2004-03-0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숟가락으로 따는 두꺼비..전에 저희집에 몇박스가 있었습니다..이유가 소주가 돌리는 뚜껑으로 바뀌는데 친정아버님이 병따개 두꺼비를 좋아하셔서 박스째 사재기하신거죠...
아마 병따개가 돌리는 따개로 바뀌면서 감미료가 바뀐걸로 아는데..그게 소주맛을 다르게했나봐요^^

마태우스 2004-03-0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음...감미료의 교체... 그게 소주타락의 시작이었군요
 

 

 

 

 

 

요즘 내가 쓰는 술일기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술이라는 거대한 악에 홀로 맞서 싸우는 한 인간의 처절한 무용담이 아닌가 싶다. '연간 180일 이하'를 목표로 열심히 금주하자는 술일기의 취지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제 겨우 61일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36번을 마셔버렸다. 12월에 신나게 퍼마실 걸 생각하면 미리부터 저축을 해야 하건만, 저축은커녕 빚을 내서 돈을 쓰는 격이다. 이런 추세라면 180일은커녕 250일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오늘은 술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날짜: 3월 1일
술: 소주 한병+알파, 2차 가서는 맥주 다섯병?
상대: 생존퀴즈 모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좋았던 점: 모임이 영원하리라는 영감을 얻었다
나빴던 점: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10시쯤 정신을 잃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무리했나보다.

-오늘 출근하는 기차 안에서 설사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태극기를 안달았다.

부제: 사랑 만들기

전에도 말했지만, 생존퀴즈라는 퀴즈프로가 있었다. 1회만 하고 끝이 났지만,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 한데 그 모임에 나오는 이들은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이 1라운드 탈락자다.

모임 멤버 중 오갑숙(가명)이라는 여자가 있다. 절세의 미인은 아니지만 정말 '참한' 여인네다. 성격이 좋으며, 잘 웃어주고, 말도 잘한다. 능력있는 회사원이며, 술도 제법 잘한다. 몸이 비쩍 마른 것, 그래서 굴곡이 없는 것은 단점에 속할 것 같다.

백선엽(가명)은 키가 크고 잘생겼다. 그리고 착하다. 그리고 박사과정 학생이다. 외모로 보면 에이 플러스를 주고픈 그에게 말이 너무 없는 것은 단점일 것이다. 모임 내내 입을 열지 않아, 그런 것을 못참는 나한테 늘 괴롭힘을 당한다. "여기에 대해 백선엽 씨의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상황을 백선엽 씨가 정리해 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그래도 그는 큰 눈을 껌뻑거리며 빙긋이 웃을 뿐이다. 퀴즈 대회에 나갔을 때도 침묵만 지키다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난 그 둘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임 참가자의 대부분이 둘이서 잘되는 것을 지지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답답하리만큼 진전이 없다. 여자는 분명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데, 남자의 속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모임 때마다 그 둘을 맺어 주려고 난리 부르스를 춘다. 한번은 귀가할 때 둘을 같이 보내기도 했다. "두분, 손잡고 같이 가요!" 물론 그 둘은 끝까지 손을 잡지 않았다. 남자에게 물었다. 우리가 그러는 게 싫으냐고. 아니란다. 그리고 모임만 있으면 꼬박꼬박 나온다. 그렇다면 남자도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어제 모임 때도 우린 시종일관 둘이 잘되야 함을 역설했다. 자세한 건 살아봐야 알겠지만, 어울리는 한쌍이 잘되는 건 보는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건 억지로 되지 않는다. 주위에서 밀어주니 뭐니 해도, 될 커플은 되고 안될 커플은 안된다. 그런 걸 잘 알면서도 그 둘을 맺어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남자가 워낙 숫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겠다. 그러는 게 도움이 될지. 오늘, 백선엽이 오갑숙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 둘이서 한번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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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0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갑숙이었다면. 그래서 백선엽을 좋아라 하는 맘이 있었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남자가 좀 적극적인 것이 모양새가 더 이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가 안하고 혹은 못하고 있음 나라도 확 하고 덤벼야죠.^^

진/우맘 2004-03-0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술일기의 취지가 금주였나요? 주량 늘리기, 혹은 모두 뻗게 하고 살아남기가 아니구요?
ㅋㅋㅋ 술이라는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이라... 그 거대한 악을 이 한몸 다바쳐 '마셔 없애겠다'는 숭고한 희생정신.^^

마태우스 2004-03-0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셨겠죠^^ 하지만 세상에는 님처럼 멋진 여성분이 그리 많지 않나 봅니다. 하기사, 그러니까 님의 존재가 더 돋보이는 거죠.
진우맘님/술일기의 취지를 모르셨다니, 서운합니다!!!!

비로그인 2004-03-0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일기의 취지는 금주였으나, 점점 변질되어 가는거 같은데요...ㅎㅎ 저 엄청난 가명의 두분, 앞으로 어떻게 진전되어가는지도 들려주세요~ 계속 제자리 걸음일거 같은 불안이...^^;;

paviana 2004-03-0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가명이 아니라 실명같아요..ㅋㅋ 꼭 거대한 악에 맞서 싸워서 승리하세요.정말 넘 웃고 가서 행복합니다 .
 

 

 

 

 

 

초등학교 동창들과 오대산에 다녀왔다. 이 나이에도 친구들과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내가 너무 행복한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멤버; 여행을 간 멤버는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유부녀, 이혼녀, 이혼남, 독신남에, 이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얘는 요즘 걸핏하면 나한테 술마시자고 전화를 건다-임신한 아내와 싸우고 집을 뛰쳐나온 친구, 그야말로 드림팀 아닌가? 남편을 버리고 여행을 온 유부녀가 준재벌에다 뻑하면 "오늘은 내가 쏠께!"라고 외치던 애였고, 또한 알아주는 미식가였던 덕분에, 편하고 즐겁고 맛있는 이틀을 보낼 수 있었다.

갈 때; 내 특기는 수다다. 차를 타고 있는 동안 난 쉴새없이 수다를 떨었는데, 이따금씩 대화에 참여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수다를 떠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피곤하단다. 어쨌든 그 수다 덕분에 차들이 꽉 밀린 머나먼 길을 즐겁게 갈 수 있었다. 허물없는 친구들이라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편했다.

1차: 감자전, 닭도리탕, 만두국을 안주로 각자 취향에 따라 술을 마셨다. 나와 친구1, 친구2는 소주를, 여인1은 백세주를 마셨고, 친구3은 유부녀가 가져온 '설화'-정종이란다-를 두병이나 마셨다. 소주 4병을 셋이서 나눠 먹었으니, 내가 마신 건 한병이 조금 넘을게다. 손님이 다 없어지자 우린 구석에 놓여 있던 기타를 집어들고 노래를 불렀다. 취미로 그룹활동도 하고있는 친구3이 기타를 쳤으며, 80년대 학번답게 이문세, 비틀즈, 최호섭-세월이 가면-동물원, 김현식, 유제하의 노래들을 불렀다. 나보다 노래 가사를 더 많이 아는 애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2차: 유부녀가 가져온 양주를 놓고 숙소에 모여앉았다. 너무 혹사했는지 내 몸이 술을 잘 받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마셨다. 술이 약한 친구3은 가자마자 뻗었고, 강적인 친구1은 새벽 2시에 나가떨어졌다. 잘하면 우승하겠네, 했지만 3시가 조금 못되어 뻗어 버렸다. 그래도 2등은 했으니 그런대로 만족하련다. 그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좀 힘들었다.

안주: 숙소에서 마실 때, 내가 먹을 안주로 참치캔을 하나 샀다. 젊은 시절, 너무 속이 상할 때마다 난 참치캔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었는데, 오랜만에 그 생각이 나서였다. 하지만 막상 먹으려고 하니 젓가락이 없었고, 결정적으로 캔을 따는데 꼭지만 떨어져 버렸다. 캔만 딸 수 있었어도 1등할 수 있었는데....

동성애: 이반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우리들은 남자 친구들끼리 서로 좋아한다는 식의 농담을 가끔 한다. 오는 차 안에서 내가 친구2와 사귀니 뭐니 했는데, 그만 결정적인 장면을 들켜버렸다. 내가 친구2와 껴안고 있는데 유부녀가 우리방에 왔다가 그걸 보고 놀란 것. "너희들, 진짜였구나!"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전모는 이렇다. 내가 쓴 책을 그에게 주면서 "다 네 덕분이다"는 뜻으로 포옹을 한 것. 그 순간에 들어오다니, 정말 드라마가 따로없다.

귀가; 원래 일정은 2박3일이고, 지금 다른 친구들은 속초에서-오대산서 1박을 한 후 속초로 왔다-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지만, 난 사정상 먼저 왔다. 이유인즉슨 내가 없으면 벤지가 밥을 잘 먹지 않으며, 내일 아침 테니스를 쳐야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없으면 벤지가 변을 보지 않는다는 것. 대변도 많이 누는 녀석이라 사흘을 참는다면 몸의 3분의 1 이상이 대변으로 가득찰 터, 그래서 난 1박2일 이상의 여행은 거의 하지 못한다. 원래는 친구2 차로 서울에 오기로 했는데, 그가 미녀의 유혹에 넘어가 안가기로 했단다. 배신을 당한 나는 어떻게 서울에 올까 고민하다가, 양양에 공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두 번밖에 없는 서울행 비행기에 극적으로 올라탔다. 차를 탔으면 엄청나게 밀렸을테고, 피로가 쌓여 내일 테니스도 대충 쳤겠지만, 난 8시도 못된 시각에 서울에 왔고, 지금 집에서 편안히 글을 쓰고 있다. 출혈이 크긴 했지만 역시 돈이 좋다. 돈=편안함.

착각: 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먼저 와서 미안했다. 더 미안한 건, 내가 없으면 수다떨 사람도, 술자리를 주도할 사람도 없으니 남은 애들이 재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집에 와서 메시지를 보내니 웬걸, "우리 너무 재밌게 놀고있어!"라는 답이 날아온다. 으음, 그렇군. 내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군!

회상; 2월의 마지막 이틀간을 다시 떠올려 본다.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 추억은 오래도록 내 머리에 남아, 내가 힘들 때마다 완충제가 되어 주리라. 내게 이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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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02-2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를 위해 비행기를 타시다니.......놀라움이었습니다....하긴 저사진과 흡사하다면 사랑스러울만한데.......그리고 혹 친구분들이 우리가 벤지만도 못하단거지??...그럼서 보란듯이 더 잘노신게 아닌지....ㅋㅋ.....근데.....저그림의 벤지는 어린시절 만화에 나왔던 그강아지 아니어여??.....예전에 그 뭐지??....덩치 큰 흰강아지옆에 또 쪼그만 푸치(?)인가 쬐그만 강아지도 있었던.....자꾸 그강아지가 생각나네요.........^^

비로그인 2004-03-01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사랑이 정말 눈물겹네요...ㅠㅜ 참치캔 얘기를 들으니 저두 옛생각이 나고, 착각 부분에선 또 실실 웃고 말았다는..ㅎㅎ 4년에 한번 온다는 2월의 29일을, 너무 즐겁게 잘 보내신거 같아서 좋네요~~ ^^

쎈연필 2004-03-01 0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드림팀... 이 대목에서 뒤집어집니다 ㅎㅎㅎㅎㅎㅎ

플라시보 2004-03-0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두상자님 의견과 동일. 그 외에도 수시로 뒤집어지다 갑니다.^^

paviana 2004-03-0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동창들 정말 좋죠..저도 그때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호칭의 반이 욕이랍니다.이나이에 그애들 아니면 언제 그렇게 불려보겠습니까? 말달리자는 노래에서 제일 제가 감명받은 부분이 `차 있으면 빨리 가지' 인데, 비행기는 더 빠르군요..좋은 여행 부럽네요..

마태우스 2004-03-02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또 놀러 오세요!
파비아나님/인터넷이 아니었던들 그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을테니, 인터넷에 감사하렵니다.
자두상자님/어, 그말이 웃겼나보죠? 드림팀 맞는데...
책읽는나무님, 앤티크님/지금 현재에 있어서 벤지는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벤지에게 저는 우주일 테고요. 그런 벤지에 비하면 제가 벤지에게 소홀한 편이죠.
 

 

 

 

 

 

어제는 십며칠만에 술을 안마시는 날이었다. 정말 간만에 저녁을 집에서 먹기로 어머님과 약속까지 한 터. 학교 일이 늦게끝나 딴지에 도착한 건 밤 8시 15분이었고, 그때부터 싸인을 시작해 9시 40분쯤 끝을 냈다. 내가 싸인을 하는 동안 딴지 친구들은 맞고를 치거나,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싸인을 마친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 제가 맥주라도 한잔 대접해야 하는데, 집에 일이 좀 있어서...핫핫"

그의 말이다. "무슨 말이어요? 맥주라도 한잔 해야지!"

알고보니 그들은 일을 다 끝내놓은 뒤 날 기다린 거였다. 그런 충정을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난 영등포 근처의 맛집 <벽돌집>으로 갔고, 고기를 안주삼아 소주 두병을 나누어 먹었다. 하지만 그 둘이 마신 건 잘해야 반병 정도일테고, 나머진 모두 내 입으로 들어갔다. 소주 한병 초과부터는 술 한번으로 치는 관행상, 어제도 '쉬는 날'이 아니었다. 주당들과 오대산에 놀러가는 오늘도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실 것은 당연한데, 난 언제나 쉬게 될까?

집에 갔더니 어머님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날 기다리고 계신다.

"저...어머니...사실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엄마가 소리를 치신다. "너, 오늘은 약속했어!"

그 서슬에 놀라 이렇게 반격했다. "누가 뭐랬나요? 빨리 밥 줘요!"

난 낚지볶음에다 밥 한공기를 비벼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술도 알딸딸하고 배가 불러 잠이 오지 않았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렇다고 어제의 술자리가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액자가 딸린 이효리 사진(산사춘 광고)을 얻었으니까! 담주에 출근하면 내 연구실에 걸어놓아야겠다. 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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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되요~ 제발 한번쯤 쉬어주세요~ 옥체보존하시라니까요~ >0< 어머니는 서운하셨겠어요...전화라도 주시지...

nalchong 2004-04-2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늘 장마처럼 댓비가 쏟아져도 기분이 좋을 것같습니다. 연구실 틈새로 목격한 이효리 사진의 출처를 알게되었으니까요!! 이래저래 '잰 뭐지~'하는 뒷끝을 남기게 될까봐 글을 남기는 것이 조심스러웠는데요...저의 궁금함의 한토막이 해결되는 기쁨에 그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앞방 교실의 연구원으로 잠시 있었더랬거든요. '그 이효리 액자는 어디서 난 것일까'하는 생각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직접 여쭈어볼까도 생각했었다니까요....우연의 음악에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절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