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 20일(토)
마신 양: 소주 한병+알파

부제: 민주주의와 변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해 봤으니, 따스하기만 한 낮과는 달리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집회 때마다 내게 목도리를 빌려준 사람으로부터 "옷좀 제발 든든히 입고 오라"는 전화까지 받은 터였다. 그런데 난 무슨 배짱인지 봄냄새가 물씬 나는 옷차림으로 광화문에 갔고, 그 사람의 목도리를 빼앗아 두르고도 밤새 덜덜 떨었다. 추위에 대비해 마신 소주 4잔은 전혀 도움이 안됐다. 말이라도 잘 들리면 모르겠지만, 내가 앉아있던 시청 옆 도로는 마이크의 사각지대, 멍하니 앉아만 있으니 더더욱 추웠다.

추위보다 더 날 괴롭혔던 것은 최근들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변의. 어제도 분명 2차례나 일을 치렀건만, 저녁을 먹은지 한시간여가 지나자 어김없이 변의가 찾아왔다. 난 변의를 가장 잘참을 수 있는 자세로 바꾼 채 버텨야 했는데,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이렇게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자세가 훌륭하다고 변의를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는 일, 난 대략 여섯차례 정도의 방귀를 뀌었는데, 내 주위 사람들 중 유독 이탈자가 많았던 게 혹시 그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밤 9시경, 참다못한 난 같이온 사람들을 설득, 인근 술집으로 갔고, 엊그제처럼 술집 화장실을 막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막히진 않았지만 물을 세 번 내렸다). 한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다시금 광화문에 왔고, 빈곳을 노려 무대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신해철, 안치환, 정태춘 등 유명 가수들이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주최측이 표방한 '문화축제'라는 것도 어느정도 실감이 났다.

-내 친구 중 울산에서 올라온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 올 일이 있어서 온거지만, 자기 부인이 간김에 촛불시위에 참석하고 오라며 컵과 인터넷으로 뽑은 노래 가사들, 돗자리 등을 싸주었다고 했다. 훌륭한 부인이다. 앞으로 잘해줘야겠다.
-어찌어찌 해서 알던 여자애를 무대 앞으로 가다 만났다. 어머님이 촛불시위에 참가하시려고 전주에서 올라오셨다나? 또다른 남자애도 만났는데, 하여간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면 너무 반갑고, 진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예컨대 이런 것. "니가 그렇게 훌륭한 얘였구나!"
-이용할만한 화장실이 없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월드컵 거리응원 때 기저귀가 그렇게 잘 팔렸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내가 12시가 조금 못되어 빠져나간 것도 바로 소변 때문인데, 역시나 시청역 화장실 앞에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탄핵가결을 찬성하는 또라이들이 세종로에서 집회를 했단다. 2천5백명쯤 왔다는데, 극우 애들은 왜이리 게으른지 모르겠다. 독립신문의 꼴통 신혜식은 말한다. "탄핵반대만 문화집회냐?" 후후, 누가 뭐라나. 그래도 난 그들이 왜 세종로에 모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위란 건 원래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벌이는 수단, 국회에서 이미 탄핵안이 가결되었는데 왜 시위를 한담? 할 일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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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3-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클...민주주의를 지키는건 정말 어렵군요. 전 미리 겁먹어, 집에서부터 애들 쉬야 억지로 시키구...저녁 먹구 또 화장실 들렸습니다. 물론 애들 옷두 잔뜩 입혔죠..^^;; 과연 신해철이 오냐, 안 오냐..를 갖구 궁금해했는데, 역시 늦게까지 민주주의를 지키시면, 보답이 있군요.

연우주 2004-03-2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글과 상관없지만, 저도 습관적으로 한때 '남자애', '여자애'란 말을 잘 썼어요. 오죽하면, 군인애들, 이란 말까지 썼지요. 그러다 최근 들어 안 쓰는 이유는, 더 이상 제가 '애'자를 붙일만한 나이는 아니란 생각에서 였는데, 마태우스님은 아직도 쓰시는군요!
아, 그리고 민주주의 지키기 힘드네요. 정말.

마태우스 2004-03-2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어머, 우리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니, 반갑습니다!
우주님/쓰고 보니까 좀 이상하네요^^

가을산 2004-03-2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로만 보았던 화장실 문제를 이렇게 리얼하게 묘사하다니! ^^
씨~~ 인기 가수는 왜 서울에만 나오냐~~ !
대전은 주로 풍물과 춤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요.
전 초등학교 때부터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워서 참는건 이력이 났습니다.
하루종일 외출시에도 어떨때는 한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아서 저 스스로 '괜찮나?' 걱정되기도 합니다.

sunnyside 2004-03-2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주의를 위해 그정도의 변의를 참는건 제게 예사랍니다. ㅎㅎㅎ
(실은 .. 저와 함께 광화문에 갔던 이들이 '부녀회' 멤버들인데요. 우리 '조직'은 맥주를 마실 때마다 화장실 안가기 시합을 벌이곤 했답니다. ^^;)
 

 

 

 

 

 

일시: 3월 18일 (목)
누구와?: 사촌형, 매제 이렇게 셋이서
좋았던 점:
-게 껍질에다 밥을 비벼먹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사촌형에게 책을 드렸더니, 내 책을 100권이나 사주신단다^^
나빴던 점: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바람에 2차를 내가 쐈다.
-2차가 끝인 줄 알았는데, 밤 11시 반에 3차를 가잔다. 2차까지 가려고 페이스를 조절해 왔는데, 3차에서 조금 버티다 맛이 가버렸고, 언제나 그랬듯이 매제가 날 집에 데려다 줬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새벽 3시 반쯤에 내가 짐짝처럼 들려서 왔다고 T.T


주제: 김밥
오후 두시, 지금사 출근을 했다. 이왕 늦은 거, 할짓 안할짓 다 하다보니 이렇게 늦었다 (심지어 일요일날 아침, 테니스 코트 예약까지 가서 하고 왔다). 술마신 다음날은 라면이 댕길 때가 많다. 터미널 앞 포장마차에 들어가 라면과 김밥을 시켰다. 라면은 맛있는데 김밥은 영 아니다. 꼭 맨밥을 씹는 느낌이랄까. 속을 보니 단무지 쪼가리에 오이, 당근만 달랑 들어있다. 그나마 개수도 8개밖에 안되, 이럴 거면 그냥 공기밥을 말아먹는 게 나았으리라.

영등포 역 앞에는 한줄에 천원짜리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가 둘 있다. 나이든 아주머니는 왕래가 많은 오른쪽에, 젊은 여자분은 한산한 왼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젊은 여자분의 김밥은 목이 안좋아서인지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엊그제 배도 고프고, 아침부터 고생하는 게 마음에 걸려 천원을 내고 김밥을 샀다. 기차에서 먹는데, 세상에나, 너무나도 맛있다. 이런 김밥이 천원이라니, 남긴 남는 걸까? 남으니까 팔겠지 뭐... 그렇다면, 김밥 하나에 2, 3천원씩 받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를 남겨먹는 거야? 그래서 자두는 이렇게 말했나보다. "잘----말아줘 잘-----말아줘!"

김밥으로 일가를 이룬 <김가네> 김밥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은 대학로다. 그때 거기서 김밥을 먹으려면 문 밖에서 삼십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는데, 너무나 그 김밥을 좋아했던 나는 식당이 조금 한가해지는 밤 9시쯤 거기 가서 김밥을 먹고 퇴근하곤 했다. 쇠고기김밥, 참치김밥, 김치김밥 등 김밥의 종류를 다양화시킨 건 다 <김가네>의 공로다. 그집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자 대학로 일대는 김밥촌으로 변해 버렸고, <아찌롤 김밥> <정가네> 등 김밥집을 표방하는 간판이 무수히 내걸렸다. 하지만 맹목적 유행에 편승한 식당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고, 그래도 명맥을 이어가는 곳은 <쌍둥이네> 정도가 고작이다.

우리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은 맛으로는 최고다. 쇠고기에다 내가 좋아하는 햄, 계란 등이 잔뜩 들어있어 뚱뚱하기만 한 그 김밥. 부피 때문에 쉽게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맛은 정말 죽인다. 그러고보면 어머님의 김밥을 안먹어본지가 십년은 지난 것 같다. 내일 점심으로 김밥을 싸달라고 해볼까? 에이, 아니다. 한끼의 쾌락을 위해 나이드신 어머님을 괴롭혀 드릴 수야 있나. 오늘 또 술을 마실테니, 내일 아침은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어야겠다. 참고로 내가 끓이는 라면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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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 정문 앞에서 김밥 파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꼬마 김밥 한 봉지에 천원, 단무지랑 시금치, 당근...그런 야채만 들었는데도 아주 맛있었어요. 총학생회 진군식 날에는 학생들 배고프다며 김밥을 그냥 공짜로 돌리시고는 했지요. 학교마다 그런 아주머니들은 꼭 한 분씩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 분들은 아무도 언제부터 김밥을 파셨는지 알 수도 없고, 늙어가지도 않는다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요. 10학번 위 선배때도 계셨고, 그 때도 고 모습 그대로 셨다죠, 아마?(...어, 갑자기 여고괴담 졸업앨범이 생각나는 -.-;;;)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이라... 얻어먹고 싶어지는군요.^^

플라시보 2004-03-1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님과 저는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군요. 첫째. 술 마신 다음날이면 라면이 무지하게 땡긴다. 둘째. 김밥을 아주 좋아한다. 저는 술 마신 다음날이면 꼭 콩나물을 넣은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북어국도 좋고 다 좋지만 라면이 제일 땡깁니다. 저는 라면만큼은 저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끓여준 라면이 월등하게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밥. 언젠가 친구가 저를 위해 한입에 다 넣기 버거울 뚱뚱한 김밥을 싸 줬는데 앉은 자리에서 8줄을 먹으니까 기절을 하더군요. 지금도 저는 도시락을 싸지 않은 날이면 우리 회사안 편의점에서 아줌마가 직접 말아주는 한줄에 천원짜리 김밥을 사 먹습니다. 그집 김밥은 여느 가계들과 달리 엄마표 김밥 처럼, 전문적인 맛이 나질 않아서 좋습니다.

비로그인 2004-03-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 매점에서 팔던 김밥은, 정말 얇고 든것도 없는데 맛나서 참 신기했죠. ^^ 김밥을 쭉 좋아했는데, 전 장우동 김밥이 첨 나왔을때 신선한 충격이었답니다! 커서 씹기도 힘들었지만, 한동안 엄청 빠져살았다는...요샌 다양한 김밥집도 많지만요. ^^ 담에 마태우스님 라면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세요~~

마태우스 2004-03-19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라면에 콩나물을? 흠..전 라면에 계란만 넣습니다. 참치도 가끔... 오징어와 삼겹살을 오삼불고기라고 하던가요? 라면과 김밥도 그것처럼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음식이죠. 근데 여덟줄은...후후. 좀 심하시네요?

마태우스 2004-03-1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김밥에 얽힌 추억은 다들 있으시군요. 제가 끓인 라면을 드시고 싶다구요? 주인장 모임 때 블루스타라도 가져가야하려나 봐요^^
앤티크님/사람들 중에 김밥으로 맞아본 추억은 없는가봐요??^^ 노하우는... 라면 가닥이 꼬불꼬불할 때 불을 꺼야 합니다. 더 지체되면 맛이 없지요. 그리고 물을 어느정도 넣는가가 중요한데요, 갯수가 많아질수록 물 맞추기가 어렵죠. 그게 감인데요, 전수가 불가능할 듯...

갈대 2004-03-1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스프는 언제 넣어야 맛있는 라면이 되나요? 어떤 사람은 끓기 전부터 넣어야 맛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면이랑 함께 넣어야 맛있다고 하니 알 수가 없어서요

마태우스 2004-03-2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음... 저는 라면을 넣고난 뒤 스프를 넣습니다. 스프를 미리 넣으면 너무 오래 끓어서 맛을 내는 성분이 변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갈대 2004-03-2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감사합니다^^
 

 

 

 

 

 

내게는 조그만 홈페이지가 있다. '개나 소나 다 있는 홈페이진데, 내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부탁해 30분만에 만들었다. 그게 2001년 6월이니, 벌써 3년 가까이 홈피와 더불어 살았나보다. 30분만에 만든 홈피니 모양이 영 안이쁘고, 요즘 유행하는 한줄답변 기능도 없다. 하지만 외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을 채워나갈 내용물이 아니겠는가? 화려하게 생긴 홈피들이 다 황무지로 변하는 와중에서도 내 홈피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게 가능했던 건, 하루라도 업데를 안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탓이리라.

자신의 홈피는 자유롭게 자기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 난 거기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내키는대로 쓸 수 있었다. 아주 솔직하게. 내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조차 홈피의 존재를 가르쳐주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어찌어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20여분 가까운 숫자가 매일 내 홈피를 찾아주신다. 홈피를 가꾸면서도 내가 많이 성숙해졌다고 느끼지만, 거길 오시는 분들로부터 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지난 토요일, 홈피 최초의 오프모임을 가졌다. 지방에 계시거나 민주주의를 지키러 광화문에 가신 분들이 많아서인지 나까지 다섯명밖에 안되는 조촐한 모임이었지만,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여자 넷에 남자라곤 나 혼자이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모두 반가운 분들이었지만, 시나리오 작가인 여자분을 알게 된 게 특히나 기뻤다. 나이답지 않은 다양한 인생경험, 그리고 그걸 유머스럽게 풀어나가는 언변, 수다의 왕으로 군림했던 나는 그녀의 위력 앞에 그저 웃기만 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러 못간 게 미안하긴 했어도 어제 저녁의 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오늘부터 민주주의를 열심히 지키기로 했다. 지금 난 광화문에 간다).

-나빴던 점: 그저께부터 몸이 이상신호를 보낸다. 술을 많이 먹은 다음날에도 멀쩡하기만 했던 내 소화기관이건만, 최근의 혹사를 견디지 못했나보다. 그래서 어젠 약을 먹고나서 술을 먹어야 했는데, 약을 먹고도 속이 안좋아 좀 자제해볼까 했지만 시나리오 작가분이 고량주를 어찌나 잘마시는지, 그 페이스를 따라가다가 엄청 마셔버렸다. 지금도 영 속이 안좋다. 오늘은 기필코 술을 쉬어야겠다. 이러다...일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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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14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술 마시는 실력(?)을 보면 마치 작년의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거의 날마다 술을 먹었더랬죠. 먹을 사람이 없으면 혼자 집에서 먹었다는. 언젠가 혼자 청하 까먹고 다음날 무지 아팠던 적도 있었어요. 작년 10월 이후로 한 달에 한 번 술을 먹을까 말까인데, 특히 올해 2월부턴 한 번도 안 먹었으니 술꾼 이제 알콜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양입니다~

2004-03-14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3-15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4-03-15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 넷에 마태우스님. 분위기 정말 좋았겠네요. ^^;;; 술맛이 물맛 같으셨던게 아닌지.

마태우스 2004-03-15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하하, 그래도 고량주인데, 설마 물맛 같기야 했겠습니까^^
연보라빛우주님/알콜중독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저는 언제쯤 그럴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요. 우선 본인의 의지가 없어서 말이죠....

비로그인 2004-03-1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모임이었겠어요~ 마태우스님이 조용히 웃고만 계셨다니, 시나리오 작가분의 언변은 어느정도실지. ㅎㅎ 건강유의하세요~
 

 

 

 

 

 

41번째, 일시: 3월 11일(목)

마신 양: 소주 14잔 정도?

좋았던 점: 지난번 모일 때는 비싼 고기집에 가는 바람에 회비를 3만원이나 내고도 고기를 4점밖에 못먹었다. 허기가 져서 공기밥을 두공기 먹었는데-김치에다가-이번엔 광우병 때문에 두부집에서 모여, 두부라도 실컷 먹었다.

나빴던 점: 선배 한분이 깽판을 치는 바람에, 소주를 아무리 마셔도 안취했다...

부제: 시간강사 단상

우리 사회에서 시간강사는 노예 그 자체다.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소리를 듣긴 하지만, '보따리 장사'라는 자조적인 표현대로 전임이 되는 그날까지 열악하기 그지없는 신세를 감내해야 한다. 시간당 2만여원이 그가 지식을 팔아서 받는 대가며, 그마저도 방학 때는 없다. 강의를 하러 여기, 저기를 다녀야 하는 것도 고달프지만, 조금 일찍 오면 마땅히 있을 곳도 없다. 전임교수의 눈밖에 날까 두려워 이사, 경조사 등에 빠짐없이 참석해 노동력을 제공한다. <세기말>이나 <플란더즈의 개> 같은 영화에서도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지가 묘사되는데, 신랑감 순위에서 50위가 농부고, 51위가 인문대 박사라는 대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성 어쩌고 하면서 스스로를 포장하는 대학 사회가 강좌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는 시간강사의 처우에 무관심한 것은 범죄 그 자체다. 그들에게 쓸 예산이 없다면,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교수들의 봉급을 깎아서라도 돈을 더 주면 안되는 걸까.

한성 천안 동문회-한성고를 나오고 천안 지역에 근거지를 둔 사람들의 모임-에도 시간강사가 하나 있다. 지금 , 전임이 되는 것은 이미 글렀다고 봐야 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물론 나역시 그런 그에게 공감한다. 하지만 그는 정도가 심했다. 모일 때마다 그 소리를 하니 지겨울 법도 한데, 어찌된 게 갈수록 깽판의 강도가 커져간다. 제 스스로 흥분해 선배도 몰라보고 난동을 피우며, 쌍욕도 서슴치 않는다. 그걸 제지하는 다른 선배에게 "내가 한달에 얼마 버는지 알아?"라며 대들 정도니, 알만하지 않는가.

모든 전임 교수에게 적대감을 가진 듯한 그는 다른 교수와 싸운 걸 무슨 굉장한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데, 엊그젠 여성 도의원에게 "미친년"이라는 말을 내뱉어 그녀를 울린 걸 무려 네 번이나 얘기를 했다. 그가 전임이 못된 것이 어쩌면 그의 괴팍한 성격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로 인해 화기애애해야 할 동문회가 언제나 썰렁해지니, 앞으로는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선배도 처음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을 터, 십수년에 걸친 시간강사 생활이 그의 인성을 피폐시켰으리라. 또하나의 노예제도로 일컬어지는 시간강사 제도는 이렇듯 도처에서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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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번째, 일시: 3월 12일

마신 양: 소주 한병+알파, 맥주 2병

왜 마셨나?: 여의도 집회가 끝난 후, 홍대앞에 와서 뒤풀이를 했다. 원래는 그 근처 포장마차에서 마시려고 했는데, 모든 술집은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새로이 깨달은 점: 사람들은 자신이 노빠로 보일까봐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일반 시민이고, 탄핵에 분노해서 나온 거야"를 거듭 강조함.

나빴던 점:
-술값을 내가 냈다.
-술값을 미리 냈는데 주인이 안냈다고 우겨서, 한판 붙을 뻔했다(안그래도 기분이 나쁜데..)
-한사람이 안주발을 세워서 힘들었다. 안주 하나 더하자니까 결사반대한 것도 그사람이었다. 그건 안주 많이먹는 사람의 특징인가보다.
-새벽 두시에 들어갔더니 벤지가 굶고 있었다. 미안해 벤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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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1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상황에서 안주빨 얘기나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안주빨에 상당히 찔리는군요. 저도 안주빨 엄청 세우는데...ㅠ.ㅠ

가을산 2004-03-1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통에게 투표하긴 했지만 노빠(여기서의 의미는 노사모)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친정이나 시댁에 가면 골수 노빠 취급 당합니다. 유일하게 노통을 찍었기 때문에. --+
대선이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시댁에 가면 '지금도 노무현 찍은거 후회 안하세요?'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고, 남편도 정치적인 입장은 저와 대립됩니다.
친정 부모님은 제가 노무현에게 투표한 것을 아신 이후로는 - 작년 추석에서야 아셨음 - 아예 반년째 왕래가 끊긴 상태입니다. 두분은 이 정권 아래에서는 이민이라도 가실 태세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딸이 '배신'을 했다는 것이 무척 충격이었나봅니다.
저도 나름대로 '앞으로는 명절 때 우리 만날 필요 없이 노무현 사진이나 보지'라는 새어머니의 명언에 상당한 내상을 입은터라 - 아마 기생충학 교수님들에게서 받은 마태우스님의 내상과 비슷할까요? - 당분간은 저도 마주치기가 싫습니다.
정치 때문에 가족 관계에까지 금이 가다니, 저희 집안도 좀 유별난 것 같습니다.

마태우스 2004-03-1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님/우주님은 괜찮습니다. 여자잖습니까<--이거 남녀차별인가요?
가을산님/역시 인간사란 것은 갈등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 때문에 갈등을 겪는 건, 좀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갈대 2004-03-1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저희 집은 모두 노빠로 통일입니다^^; 만약 부모님께서 야당을 지지하고 이번 탄핵에 찬성했다면 제 성격상 가만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부모자식간이라도 옳지 않은 길을 고집한다면 절대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소신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우스 2004-03-1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우와................... 정말 다행인 듯................
 

 

 

 

 

 

드디어 40번째를 돌파했다. 70일 가량 지난 시점에서 40번이니, 12월의 특수를 감안하면 200번을 넘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좀 안정이 되려나...

부제: 가부장의 벽을 넘어서

일시; 3월 10일 수요일
참석자: 내 친구 둘, 박노준(가명. 이하 박), 장돌십(가명, 이하 장)

1. 박
'박'은 초등학교 때부터 내 친구였다.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지만, 그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동안 난 외적인 화려함만 쫓으며 그를 멀리했고, 그가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고, 앞으로는 그로부터 받은 우정을 갚아갈 생각이다.

'박'은 애처가다.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박'처럼 "아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는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작년에 아내가 난소암으로 병원신세를 졌을 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내 곁을 지켰다.

'박'은 남자들이 환장하는 유흥주점에 가지 않는다. 그게 '박'의 빛나는 부분으로, 나처럼 여권이 어떻고 하는 놈들이 뻑하면 그런 곳에 가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 그는 타락한 우리를 따라 몇번 그런 곳에 갔지만,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안가겠다고 선언했고, 그 후부터는 자신의 결심을 지킨다.

내가 아는 가장 착한 사람인 박에게는 시련이 여럿 닥쳤었다. 아버님의 사업이 부도를 맞아 아버님이 감옥에 갇히는 일을 겪기도 했고,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 위기에 처했었다. 그때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것은 평생의 미안함으로 남을 것 같다. 지금 그는 인천 제부도 근처의 직장에 출퇴근을 하는데,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아침 6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있단다. 몸은 힘들지만 그의 집에는 사랑이 넘치고, 그런 그를 보면 나도 즐겁다.

2. 장
장은 공처가다. 아닌 게 아니라 부인을 좀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는 늘 "부인이 무서워서 딴짓을 못한다"고 말을 한다.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어릴 적부터 성실하고 모범생이었던 그가 대단한 딴짓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정말 부인에게 잘한다. 그런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난 기꺼이 여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곱 살 연하의 부인과 너무나 잘 놀아주는데, 얼마 전 첫 얘기를 낳은 뒤에는 더더욱 극진해졌다. 그의 말이다. "기저귀 갈고,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는 거랑, 청소하는 건 내가 해" 틈나는대로 애까지 본다는데, 그것 말고 할 일이 또 뭐가 있을까? 하지만 그의 아내는 거기에 길들여져 그걸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는데, 심지어 "조금 더!"를 주문하기도 한단다.

살인적인 회사일에 시달리느라 하루 세시간밖에 자지 못한다는 그는 내가 부탁하면 언제든 시간을 내어 준다. 예컨대 내가 사재기를 하러 교보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그는 없는 시간에도 흔쾌히 따라가 줬다. 그는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좋은 테니스 파트너이기도 하다.

"난 말야, 집에 가면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 재떨이 그러면 마누라가 재떨이를 갖다주고, 리모콘 그러면 리모콘을 갖다주지" 나보다 불과 몇 년 위의 선배가 한 얘긴데,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이런 사람은 존재한다. 장과 박의 존재가 돋보이는 건 바로 그래서이고, 그게  내가 그들을 더더욱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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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3-1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과 박을 저의 남편에게 소개시켜주세욧! ^^

비로그인 2004-03-1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있는 친구들이고 가장들이네요!! 부럽다~그런 남자들이...

진/우맘 2004-03-1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는 갑자기 장의 부인이 궁금해지는군요. 살인적인 격무에 시달리며 세 시간 밖에 못자는 남편에게 기저귀, 빨래, 밥, 설겆이, 청소를 맡기면....본인은 뭘 하는거지요?
마광수의 외뿔에서 이런 글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주병 환자는 언제나 왕자님을 찾지만...필경은 머슴하고 결혼하게 된답니다. 아무리 멋진 왕자님도 공주병 환자와 결혼하면, 이내 머슴으로 변모하고 마니까요. (대략의 내용^^ 정확히 기억 안 남^^;;)
흠...하기사, 다른 부부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샘나서 툴툴거리는 듯^^;;;

플라시보 2004-03-1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에 제가 누군가와 결혼을 해서 재털이! 그럼 재털이로 비오는날 먼가 풀풀 나도록 패 줄 것이며 리모콘! 하면 리모콘을 부메랑처럼 휙~ 던져서는 정확하게 리모콘 하고 말한 그 입을 맞출 겁니다. 흐흐. 그런 남자를 만나지 않으려면 어째야 하는 걸까요? 사실 결혼 전부터 그런 티를 팍팍 내면 여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할테니 아마 연애시절에는 철저히 숨기겠지요? 그래놓구선 결혼하면 슬슬 본색을 드러내리라 생각합니다. 사전 감별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저에게는 그걸 간파해 내는 눈이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기필코 결혼 전에 데불고 살아 볼랍니다. 어느날 '재털이!' 라고 말하면 '13번 탈락. 싸게 싸게 짐싸 주시고 다음 타자 입장' 할래요. 흐흐

갈대 2004-03-1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결혼해서 장의 경우처럼 될까 두렵습니다...

2004-03-11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04-03-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의미심장한 시대변화이군요...^^....울신랑은 어느편에 속하나??...시부모님과 같이 살기전에는 공처가 비슷하게 행동을 하던데...(안하면 나한테 피(?)를 봤거든요..^^)...요즘은 님의 선배처럼 되어가네요...남자들은 부모님앞에서 마누라도와주는건 좀 힘든가봅니다...그래도 내가 일부러 시킬때도 없지않아 있지만서두요...암튼 님의 친구분들이 부럽군요..아니지!! 친구분들의 부인이 부럽군요..ㅋㅋ...친구를 보면 그사람을 안다고 했는데 그럼 님도.....음~~ 마태우스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군요...^^...그리고 저는 이 술먹는 횟수 카운트를 보면 저의 페이퍼중 카운트를 보는듯하군요...이카운트수도 저를 이기셨습니다요....^^

마태우스 2004-03-12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장의 부인은...애를 낳았잖습니까.
갈대님/호호, 그럼 갈대님도 일등신랑감이시군요!
플라시보님/자유롭고 독립적인 지성이신 님께서 가부장 남편과 살 수는 없으리라는 걸 저도 잘 안답니다. 마지막에 쓰신 방법이 아주 좋군요.

마태우스 2004-03-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그럴 수는 있지만, 소개시켜 드린다고 부군이 바뀌지는 않겠지요. 걔네를 보니까 그런 건 타고나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책읽는 나무님/저도 그 친구들의 부인이 부럽다니깐요...
폭스바겐님/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