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복'을 넣고 클릭했더니 아무것도 없더군요. 그래서 신윤복으로...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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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4월 9일(금)
누구와?: 내 심복과 또다른 미녀 한명
마신 양: 소주 1병 반을 1차에서, 2차는 맥주 다섯병 가량, 보기 드물게 술을 잘받는 날이었다. 이런 날만 있다면...
내가 단대에 간지도 벌써 6년째가 되었다. 5년이 넘도록 혼자 있다보면 건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나 혼자 주임교수라고 설쳐봤자 알아주는 이도 없고, '과 회의'같은 것도 없이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하는 삶. 일견 편할 수도 있지만, 갈수록 나태해지기만 하는 느낌이다. 더구나 연구 능력이 없어서 기계들을 썩히고 있는 나로서는 심복이 와서 같이 일할 날을 꿈꿀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논문 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지라-표 하나만 있으면 스무장도 쓴다-심복이 실험을 하고 내가 논문을 쓴다면 환상적인 업무 분담이 아니겠는가?
우리과에 올 다른 한명의 교수가 내 심복이어야 하는 이유는, 교실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그녀야말로 나와 별 갈등 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단 나와 코드가 맞고, 정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예컨대 생판 모르는 사람이 와봐라. 나한테 "내가 이거 할테니 넌 이것만 해라"고 하다가, 내가 '이것'을 할 능력도 없다는 걸 알게되면 어떻게 나오겠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그래서 난 심복이 오기를 오매불망했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우리 과에 교수가 두명이 있을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학교측은 회의적이었다. 그나마 있는 놈마저 별 실적이 없는 판국인데. 작년에 낸 교수충원 계획은 그렇게 무산되었고, 올해 또 내겠지만 전망은 희박하다. 책이라도 많이 팔렸다면 "난 대중적 글쓰기를 해서 학교에 기여하겠다. 그러기 위해선 연구만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책은 현재 요시모토 바나나의 <몸은 답을 알고있다>에 비해 10분의 1도 팔리지 않았다 (너무 센 책과 비교한 느낌이...하핫). 오죽했으면 내가 로또라도 되가지고 학교에 기부금을 낸 다음 교수 뽑아달라고 조를 생각까지 했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I 대학에 있는 내 친구가 역시 자기 후배를 데려오려다, 일이 잘 안되어 버린 것. 우리와 달리 그 대학은 교수 자리가 둘 있었는데, 작년에 한분이 퇴임을 했으니 결원이 생긴 거다. 그 친구 역시 "내가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터라-나도 그렇지만 이건 사실 좋은 건 아니다-교실 후배를 뽑고자 했는데, 교실 후배가 박사논문을 올해까지 쓰지 못하게 되버렸다. 올해 안뽑으면 교수자리가 날라갈 판, 생각 끝에 친구는 내 심복을 대신 뽑을 생각을 했고, 내 지도교수와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남의 사람을 빼온다는 생각에서인지 그 친구는 날 피했고, 내 심복 또한 자기 때문에 둘 사이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단다. 글쎄다. 그게 그럴 일일까?
내 심복은 내 사람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고,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르는 단대만 바라보다 늙을 수는 없는 일이다. 6년이 다 되도록 그녀에게 약속한 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죽겠는데, 친구가 그걸 해결해 주니 나로선 오히려 고맙다. 물론 약간 서운하긴 하다. 난 다시는 심복처럼 잘맞는 사람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고, 심복 또한 그 친구와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나만큼 편하지는 못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친구 역시 '괴물'은 아니며, 서로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니, 뭘 보든지 가는 게 낫다. 물론 교수 채용은 공채고, 다른 사람들도 지원서를 내겠지만, 심복의 논문점수가 워낙 뛰어나니 무난히 되지 않을까 싶다. 서른을 훌쩍 넘기고도 모교에서 눈칫밥을 먹는 그녀가 안되어 보였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녀가 잘 되기를, 그래서 교수 대 교수로서 나와 만날 수 있기를 무지하게 바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없다면, 앞으로 우리 과에 사람을 신청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요즘 밥도 혼자 먹고 그러는데, 이러다 내가 더 이상해지면 어쩌지? 설마, 더 이상해지기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