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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내가 좋아하는 스텔라K님께 교회에 관한 책을 써달라고 한 적이 있다.
종교의 교리 이런 게 아니라,
신자 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겪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던 차에 이기호가 쓴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란 책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했다.
작가에게 죄송하지만 이 책은 내가 처음 만나는 이기호의 작품이었다.
내 관심사인 ‘교회오빠’ 얘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책도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미진은 어디로’라는 첫 번째 소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작중 주인공인 소설가 이기호는 중고나라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책을 파는 것을 본다.
판매자가 내놓은 50여권의 책은 1-3그룹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었는데
자신의 책은 3등급으로 가격도 가장 쌌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은 다음 구절이었다.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
그룹 1, 2에서 다섯권 구매시 무료증정”
그가 올린 책들 중 무료증정이라고 표시된 책은 자기 책이 유일했다.
이기호는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직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은 광주에 살지만, 판매자가 일산에 산다기에 “저도 그쪽 근처인데 직거래하시죠”라고 말한다.
약속 당일 이기호는 광주에서 KTX를 타고 행신역에 내린 뒤 약속장소인 정발산역으로 간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너무 재미있는 거다.
그 다음 소설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2009년의 용산 철거 사건에 관한 얘기였다.
무거운 얘기겠거니 했는데, 이기호의 시각은 다른 데 맞춰져 있다.
그날 오기로 했던 크레인 중 한 대가 오지 않는 바람에 희생자가 더 컸다는데,
이기호는 그 크레인 기사를 만난 얘기를 소설로 만들었다.
왜 당일에 오지 않았는지 크레인 기사가 늘어놓는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것도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덩달아 내 시각도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두편을 읽자마자 인터넷에 들어가 이기호의 책들을 검색했고,
죄다 주문해 버렸다.
미리 그의 책을 읽은 분들이 재미만은 보장한다고 했으니,
당분간은 자투리 시간에 읽을 책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나머지 단편들도 재미를 주는 동시에 저자 나름의 독특한 시각을 엿볼 수 있었지만,
책 전체에 걸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얘기는 의외로 마지막 소설(?)이었다.
‘이기호의 말’이란 제목인데,
이건 소설이 아닌, 작가 자신의 말이었다.
보통 이 공간에는 아내에게 감사드린다, 같은 말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저자 자신이 낸 교통사고에 관한 얘기가 담겨 있었다.
이게 충격을 준 이유는 저자가 베풀고자 했던 작은 선의가
타인에 의해 엄청난 배신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원래 소설을 읽으면, 특히 이번 책처럼 찌질한 군상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구나’는 생각이 들고,
서로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기호의 말’은 그런 생각을 다 쓸어내 버리고,
타인에게 과잉으로 친절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더운 여름철, 이기호의 책과 함께 버텨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