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근사한 나를 발견하는 51가지 방법 - 한 번만 따라하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혼자 놀이법
공혜진 글.그림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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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주로 혼자 먹는다.
우리 과에 교수라곤 나밖에 없고,
작년 9월부터 학교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조교를 없앴기에 완전히 혼자가 됐다.
매번 같이 밥먹자고 부탁하는 것도 귀찮고, 하다보니 혼자 먹는 게 편한 면도 있다.
다른 사람과 먹으면 무슨 주제로든 얘기를 해야 하고,
그러다 밥알이라도 튀면 좀 쑥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혼자 먹는 건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왠지 인간성이 파탄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
그런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난 꼭 잡지나 책을 들고 식당에 간다.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밥을 먹는 모습은, 이건 순전 내 생각이지만, 천생 학자 같다.

 

얼마 전부터 내 식사 파트너가 됐던 책은 <어쩐지 근사한 나를 발견하는 51가지 방법>이다.
이런 유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몇 가지 이야기’ 같은 제목은 십년도 더 지난, 외환위기 무렵에 유행했던 것인데다
‘어쩐지 근사한 나를 발견한다’는 건 아무래도 유치할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내게 배달된 지 몇 달간 책꽂이에 꽂힌 채 먼지를 맞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드디어 내 간택을 받았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일단 내용이 별로 어렵지 않으니 밥 먹으면서 보기 딱 좋다.
땅에서 단추를 줍는다든지, 천으로 만든 시계를 차는 행위는 분명 유치하지만,
중요한 건 행위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며,
저자의 설명을 듣다보니 그런 것들도 ‘한번 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나 십자수처럼 손재주가 필요한 일들은 그냥 패스했지만,
그런 게 필요 없는 일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나만의 루틴 동작 만들기’!
이걸 읽다가 감명을 받아 멋있는 걸로 하나 만들었는데,
앞으론 이게 내 루틴 동작이다!


혹시 나랑 있을 때 이 동작을 보면 “왜 저러나?”고 딱하게 보지 말고,
“아, 쟤의 루틴이구나”라고 너그러이 봐주시길.

혼자 밥을 먹고 싶은데 인간성 파탄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분들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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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15-01-2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실에서는 알라딘 잘 안들어오는데요.
잠깐 알라딘에 들어왔더니
마태우스님의 깜찍한 모습을 보고가네욤.
책리뷰도 맘에 들지만
오랜만에 보는 마태우스님을 보고 기분좋게 갑니다^^

마태우스 2015-01-29 13:57   좋아요 0 | URL
네...제 사진 보고 기분좋아지는 분이 계시다니, 저도 좋습니다!

꽃핑키 2015-01-2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 커피 마시다가 뿜었어요 ㅋㅋㅋ 내 노트북 어쩔 ㄷㄷㄷㄷ
노트북이야 닦으면 되고 ㅋㅋㅋ 덕분에 ㅋㅋ 힐링 제대로 하고갑니다 ㅋㅋㅋ 너무 귀여우셔요!! ㅋㅋ

마태우스 2015-01-29 13:57   좋아요 0 | URL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님도 멋진 루틴 하나 기대할게요!

순오기 2015-01-2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혼자 밥을 먹어도 마태님 감각은 죽지 않았어요!👍
혼자 산지 20개월쯤 되니까 혼자 사는 거 혼자 먹는 거...겁나지 않아요. 다만 남편이 천안에서 강릉으로 현장을 옮겨 마태님 보러 갈 명분이 사라졌다는 게...ㅠ

마태우스 2015-01-29 13:56   좋아요 0 | URL
글네요. 강릉이라뇨... 이번엔 제가 한번 내려갈게요. 지난번에 대접을 넘 잘받아서, 한번 저도 베풀고 싶어져요!

마립간 2015-01-2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루틴이면서도 인간성 파탄으로 보이는지조차 관심없는 저에게 마태우스 님의 글이 위 책보다 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5-01-29 13:55   좋아요 0 | URL
아유 그래도 제가 글을 매일 쓰는 게 아니잖아요. 책 하나 장만하세요...^^

soyo12 2015-01-30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무늬 남방이 참 멋지네요. ^.^.

마태우스 2015-02-05 22:0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죠? 이거 집사람이 사준 거예요 제 눈으로 고를 수 없는 그런 남방이죠^^

신데렐라엄마 2015-01-3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개그 본능 작렬.... 아침에 이거 보고 배꼽이 빠질 뻔했어요!!!! 뭘 해도 웃긴 마태우스 님... 사랑합니다^^

마태우스 2015-02-05 22:08   좋아요 0 | URL
루틴동작 멋진 거 하나 정하졌나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데렐라엄마 2015-01-3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블로그와 트위터로 가져갔어요. 저도 루틴 동작 구상 중... ㅋㅋ http://blog.naver.com/dymg98/220257518701 https://twitter.com/jimo_jiho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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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리뷰대회에 응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라딘 대주주라는, 스스로 낸 소문 때문에 혹시 내가 1등이라도 하면 “짜고 친다”는 오해라도 받을까 두려웠던 탓이었다. 하지만 방송출연 수입이 끊겨 주말마다 라면을 먹는 현실을 타계할 생각에 리뷰대회를 떠올렸고, 대상도서를 검색하다 고른 것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었다. 


한 남배우가 운전기사를 뽑는다. 차를 고치러 맡긴 수리업체는 여성을 추천해 준다. 그 얘기를 들은 배우는 “그다지 달가운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11쪽) 하지만 그 여자가 운전 하나만큼은 잘 한다는 말에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한다. 이럴 때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녀”가 올 것 같았지만, 막상 온 여자는 “어느 모로 보나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17쪽). 하지만 자동차는 사방이 꽉 막힌 방 비슷한 공간이라 같이 있다 보면 친밀감이 싹트기 마련이다. 미녀도 아니고 말수도 적은 이 여자와 나란히 있다보니 그 배우는 자기보다 스무살 가량 어린 그 운전기사와 친해지며, 죽은 아내에 대한 얘기를 비롯한 내밀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제부터 둘이서 뭔가 이루어지나 하는 기대감에 다음 장을 넘겼더니 갑자기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아는 한 비틀즈의 <에스터데이>에 일본어로 가사를 붙인 인간은 기타루 한 사람밖에 없다.” (63쪽)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기타루’는 제1 장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내용도 이상해서, 차 얘기가 아예 없었다. 성큼성큼 책을 넘기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었다!


단편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집중할만하면 이야기가 끝나 버려, 밤을 새면서 읽어나갈 동력을 잃는다. 이 책이 단편인 걸 알고 실망했지만, 하루키의 글솜씨 덕분에 어느 정도 그 실망감을 만회할 수 있었다.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서, 자기 친구한테 미녀인 자기 애인과 데이트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기타루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다. 갑자기 끝나는 이야기에 실망하면 또 다음 얘기가 나를 기다렸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단편은 <기노>였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책 중간중간에 내 로망이 들어 있어서였다. 로망을 얘기하기 전에 소설 얘기를 잠깐 한다. 주인공인 기노는 운동화 세일즈맨으로, 출장이 잦다. 출장에서 하루 먼저 돌아온 날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걸 목격한 기노는 그 길로 집을 나와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찻집을 하는 이모가 나이가 들어 가게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었으니까. 결국 기노는 월세로 그 가게를 빌렸고, 저금한 돈의 반을 들여 찻집을 ‘바’로 개조한다. 2층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퇴직금도 남아 있었다. 거기다 집을 판 돈을 아내와 나눴기에 “한동안은 먹고살 수 있을 터였다.” (226쪽) 처음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기노는 “손님이 전혀 오지 않는 가게에서 기노는 오랜만에 마음껏 음악을 듣고, 읽고 싶던 책을 읽었다.” (227쪽) 


한때 나이가 좀 들면 책방을 할 생각을 했었다. 음료수를 파는 곳도 있으니 북카페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동네서점이니 사람도 많지 않아 임대료와 직원의 월급을 빼면 남는 건 별로 없지만, 거의 하루 종일 책만 읽을 수 있는 그런 곳이 내가 꿈꾼 책방이었다. 한 몇 년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내와 결혼하면서 꿈을 접었는데, ‘기노’를 읽으면서 그때를 다시금 떠올렸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행복했던 그때를 말이다. 이런 말을 아내한테 하니까 아내가 이런다. “그럼 내가 바람을 피워야 하는 거야?” 하지만 기노와 나는 몇 가지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첫째, 난 저금한 돈이 없다. 둘째, 기노와 달리 난 음식 만드는 데는 잼병이다. 셋째, 결혼해서 알게 된 건데 난 책만 읽는 것보단 아내와 강아지들과 더불어 사는 걸 훨씬 더 좋아한다. 그러니 여보, 바람 피우지 마. 내가 더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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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1-2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글은 언제나 유쾌해요.

마태우스 2015-01-28 00:54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리뷰대회의 강자 블랑카님, 이번에도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페크pek0501 2015-01-2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수가 많으면 리뷰대회에서 뽑히는 건가요?
글 재밌게 읽고 보태고 갑니다. ^^

마태우스 2015-01-28 00:54   좋아요 0 | URL
그럴 리가요. 사실 제 스타일의 글은 리뷰대회에 적합하지 않죠. 리뷰를 못쓰니까 유머코드로 만회하는 거라...^^ 암튼 님의 마음은 감사히 받을게요

paviana 2015-01-2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더러가 떨어져 살짝 결승까지 별 무리없이 가겠구나 안도했었는데....
어엉 베르디히한테 질 줄이야..ㅠㅠㅠ
근데 변가보다 마태님이 더 형 아니신가요? 글케 보이던데 =333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김경 지음 / 이야기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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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님(이하 존칭생략)이 소설책을 냈다.

설마 우리가 아는 그 김경?

패션지 에디터로 일하면서

톡톡 튀는 글로 사람들 마음을 후련하게 해줬던 그분?

맞다. 바로 그 김경.

네이버에서 김경을 검색하면 여러 명이 뜨지만,

내가 아는 그분을 제외하면 다 가짜 김경이다.

김경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나 역시 내가 김경의 팬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다른 팬들이 부러워할 일이겠지만, 난 김경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삶에서 잊지 못할 50대 장면에 포함된 그 만남은

경향 필진의 밤이라고, 경향 측에서 자기 신문에 글을 쓰는 필진들을 초청했을 때 극적으로 성사됐다.

연말인데다 집이 천안이라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고,

자리배치 결과 왼쪽과 오른쪽은 물론이고 테이블 전체에 아는 이가 없어 온 걸 후회하며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건너편 테이블에 김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난 뒤 갑자기 온 보람이 생겼다.

김경은 티 안나게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광채를 본다.

그 뒤부터 난 이제나 저제나 인사할 기회만 엿봤지만,

나 역시 숫기가 없는 인간이라 자리가 파할 무렵에야 겨우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김경에게 다가가 ..팬이어요.”라고 한 것.

김경은 토끼같은 표정으로 누구신지요?”라고 했지만,

난 좋아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눠서 기쁜 마음이 더 컸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인기칼럼 연재하는 나를 모르다니! 너무해요!”라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 그가 첫 소설책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를 냈다.

인터뷰집과 에세이 부문에서 탁월한 글솜씨를 발휘했던 김경인지라

소설은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경의 소설은 김경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글에서 기대하는 발랄함이 주인공들을 통해서 철저하게 구현이 됐으니까.

김경 자신의 자전적 소설로 추측되는 이 책의 소득은

저자가 글과 삶을 일치시키는, 그런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다짜고짜 익명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전 애인을 동원해 그 남자에게 달라붙는 다른 여자들을 처리하는 주인공이라니,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가?

김경 자신의 분신인 주인공 김영희는 회사를 그만둘 때 이런 사직서를 쓰려고 했다.

 

[사 직 서

 

지겨워서 그만둡니다.


2011923

김영희]

 

하지만 김영희는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끓어오르는 게 내 안에 남아 있어서 또 다시 편지를”(235) 쓴다.

그냥 한줄로 보내는 게 더 김경다운데라며 아쉬워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무려 15페이지에 걸쳐 전개되는 그 편지는 이 책의 가장 빛나는 부분으로,

음미하며 읽다보면 저자가 왜 굳이 이 편지를 책에 집어넣었는지 깨닫게 된다.

242쪽을 읽다가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그 후 책을 잠시 접고 파안대소를 할 수 있게 만든 저자를 향해 감사인사를 드렸다.

주인공의 행적대로 강원도 평창에서 집을 짓고 화가 남편과 살고 있다는 김경,

그로 인해 평창은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곳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별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김경을 잠시라도 좋아했다면, 이 책과 함께 우주로 나가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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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1-1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경향신문에서 김경의 칼럼을 읽고 마태우스님의 이 리뷰를 떠올렸어요. 저는 김경을 잘 모르고 그러므로 팬도 아니었지만, 이 책은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마태우스 2014-11-17 02:16   좋아요 0 | URL
어머나 님 덕분에 무플방지 했어요..>! 감사. 제가 잘해야 하는데, 요즘 사정이 많이 어렵습니다 흑흑.

노란곰 2014-11-21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의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를 보고는 (물론 제목때문에 엄청 고민하다 하이드님 리뷰보고 읽었어요) 김경의 글은 무조건 읽게 됐어요. 역시 마태우스 님도 팬이 되셨군요.

제 맘 속에 담고 있는 사직서의 문구는,

˝너 때문에 그만둡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던지고 덩실덩실 춤추며 나오려구요. 아ㅡ

마태우스 2014-11-21 12: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노란곰님 전 아직 패배자 그 책을 안읽었는데요 좋은 책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 경향 칼럼들과 김경님의 인터뷰집에 반해서 팬이 됐는데요 아직 부족한 팬이군요 제가 ㅠㅠ 글구 너 때문에 그만둔다, 이것도 멋진 사직서네요.^^ 그래도 웬만하면 그만두심 안됩니다...
 
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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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야당을 여당보다 더 욕하고 있다. 

사실 야당의 행태를 보면 욕을 안하기가 힘들 지경인데,

그런 답답함을 가진 사람들이 강준만 교수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위 진보진영이 보여주는 한심한 행태들을 나열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 이 책은

역시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물론 진보의 잘못이 단순히 싸가지 없음이냐는 반박이 가능하겠지만,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 밥 쳐먹어”라는 말을 손자가 했을 때 

방에서 이를 잡던 할아버지가 과연 그 메시지에만 주목해 순순히 밥을 드시러 나오겠느냐를 생각한다면

싸가지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만은 없으리라.


예컨대 다음 대목을 읽고 무지하게 찔렸다.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을 어리석고, 탐욕스럽고,

더 나아가 사악하다고까지 생각하는 한 민주당은 필패하게 되어 있다...

놀라운 사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논객들과 언론인들의 대부분은

그런 시각으로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을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203쪽)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상대가 분노하게끔 조롱하면서도 그걸 풍자나 정당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는 내용까지 읽으면

“이건 딱 내 얘기잖아!”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정치라는 게 어차피 숫자로 결판나게 마련이고,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데,

새누리 지지자들을 ‘어리석은 사람들’로 취급하면서 그 어떤 설득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내가 그간 썼던 글은 참 싸가지 없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썼던 ‘이제 유권자를 욕할 때다’라는 글은 그 하이라이트로,

거기서 난 맹목적으로 새누리만 지지하는 유권자가 정치 후진화의 일등공신이라고 얘기했다.

정몽준 아들이 주장한 ‘국개론’의 다른 버전인 이 글은 욕을 무지하게 먹었고,

댓글 중엔 “새누리당이 이 글을 좋아합니다”는 내용이 여럿 있었는데,

내가 그닥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사실은 다행이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진보의 최후 집권전략’이란 부제처럼 강교수는 진보의 집권을 바라는 충정에서 이 책을 쓴 반면,

난 새누리와 그 지지자를 조롱하는 것으로 떠보려는 사악한 마음을 갖고 글을 쓴다는 점.

진보의 집권보다는 내 명성을 쌓는 것에 급급하다보니

<싸가지 없는 진보>를 읽었다고 그간의 행태가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얘기다.

글 한편 쓸 때마다 몇천명씩 찾아와서 댓글을 달아주는 건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력이니까. 

강교수님의 지적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대통령님을 부탁해요>를 쓴 건,

다 나 잘되려고 한 거였다.

죄송합니다, 강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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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0-0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언제나 최종 장바구니 결제에서 밀렸는데, 이번에 장바구니 결제할 때는 반드시 넣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마태우스님. 땡투는 당연히 마태님께로! ㅎㅎ

마태우스 2014-10-02 14:48   좋아요 0 | URL
어마나 감사합니다 님의 땡스투가 제게 큰 힘이 되네요^^ 글구 이런 말씀 안드리려 했는데 제가 웬만하면 다락님한테 땡스투한답니다!!

브라우니 2014-10-0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만 누르고 가기 아쉽기도 하고^^ 그럼 어떡해야 할까 답답해 5장의 내용이 너무 궁금합니다
특히 새누리당의 도덕 부분이요

마태우스 2014-10-02 14:50   좋아요 0 | URL
어찌할까 답답하죠. 책을 읽어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구요. 야당이 저모냥인데 여당 지지자한테 왜 여당 찍냐고 하는 것도 참 웃기긴 합니다 ㅠㅠ

Mephistopheles 2014-10-0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롱이냐 설득이냐...
그런데 설득조차 조롱으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보니...

마태우스 2014-10-02 14: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게 저같은 사람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게 해가 된다네요 암튼 답답합니다 야당이 잘하면 웬만하면 지지할텐데....ㅠㅠ 메피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연락도 통 못드렸네요

긴봄 2014-10-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글이 설득적일 필요는 없죠.
마치 3일동안 꽉 막혀 있던 속을 시원하게 빡! 뚫어주는 것 같은
마태우스님 스타일의 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4-10-02 14:51   좋아요 0 | URL
긴봄님, 격려 감사드립니다 근데 제 스타일의 글은 당장은 속을 뚫어드릴 수 있어도 오래가지 않는답니다ㅠㅠ 야당이 잘해야 할텐데요

하늘바람 2014-10-0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교수님 손석희씨와 이야기하는 걸 보고 이책 재밌겠다했어요. 진짜 궁금하네요

마태우스 2014-10-04 23:36   좋아요 0 | URL
아 그거 보셨군요.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싸가지가 없으면 안된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그런 책이죠!

2014-10-03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04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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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강준만 교수의 <감정독재>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의 속편격인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이하 왜사니)이 지난 6월 출간됐다.

속편은 웬만해서는 안팔리게 마련이고,

내가 <기생충열전2>를 안쓰고 있는 것도 전편의 명성에 흠이 갈까봐인데,

<왜사니> 역시 세일즈 포인트 면에서 전편의 반도 안된다 (7천 vs 3천)

<왜사니>가 전편보다 더 흥미로운 실험들을 가지고 인간의 심리를 분석했고,

혹시 속편으로 인식될까봐 제목을 완전히 바꿨다는 점에서 이 책의 판매부진은 좀 아쉽다.


이 책에 나오는 흥미로운 사실들.

1) 새롭게 깨달은 사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사진을 보면 실물보다 못나왔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나 역시 그렇다.

왜 그럴까? 

“얼굴의 좌우가 정확히 대칭인 사람은 많지 않은데, 거울은 사람의 얼굴을 반대로 보여준다.”(189쪽)

하지만 사진은 좌우가 바뀌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니

당사자로서는 생소할 수밖에.


2) 역시 새롭게 깨달은 사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가는 이유가 뭘까?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어렸을 때 사람들은....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해가 갈수록 이런 경험들 중 일부가 자동적인 일상으로 변해서...”(201쪽)

즉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마련이라

시간이란 열차가 기억이란 정거장을 경유하지 않은 채 마구 내달린다는 것.

실제로 연령대별로 사람을 불러놓고 “3분을 마음 속으로 헤아리시오”라고 했더니

중년층은 3분 16초를 3분이라고 인식했고 60세 이상은 3분 40초를 3분이라고 말했단다.

즉 “생리시계가 느려지니 실제 시간은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같은 쪽)


3) 알고 있었지만 새삼 공감하는 사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구매하는 순간에 느끼는 지출의 고통이 경감된다.”(235쪽)

카드결제 기간이 일주일이라면 사용 대금은 현재보다 줄어들 것이란다.

왜? 결제기간이 짧아질수록 신용카드는 심리적으로 현금과 같아지기 때문인데,

결제기간이 6개월쯤 되면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쓰겠지만,

가입업소의 부담이 커질 것이기에 지금처럼 한달마다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 마련됐단다.

내 인생의 큰 실수 중 하나는 바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는 것,

그 바람에 내 통장이 돈이 들어오자마자 빠져나가는 ‘정거장’이 돼 버렸다.


4) 알고 있었지만 들으니까 걱정되는 사실.

“커플들이 나이가 들면서 서로 닮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함께 사는 오랜세월 동안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흉내낸 결과 똑같은 얼굴 근육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탓이란다 (130쪽)

예쁜 아내를 자랑으로 아는 나는 이 대목을 읽고 깊은 고민에 빠졌는데,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들은 서로 따라 하려는 동기가 약하기 때문에 닮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부터 아내한테 너무 잘해주지 말아야겠다. 


끝으로 마케팅 한 마디. 

이런 유익한 상식이 많은 이 책을 제목이 너무 길다고, 또는 속편이란 이유로

사보지 않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당장 이 책을 지르시라.

이왕이면 신용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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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4-08-10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지르셨다는 페이퍼 쓰시고 정작 소개가 없길래 궁금했었는데 이런 책들이었군요. ㅎㅎ 신용카드로 지금 지르러 갑니다.

마태우스 2014-08-11 16:12   좋아요 0 | URL
앗 말미잘님 이 책은 아니구요, 제가 엊그제 지른 책은 이거에요.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100자평쓰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100자평쓰기
정은정 지음


유령 퇴장 100자평쓰기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100자평쓰기
천명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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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8-10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용카드 안 쓰려고 무진장 노력하는 중입니다.
ㅎㅎ 요즘은 돈 넣어두고 체크카드 쓰거나 현금 쓰는데, 가계부를 보면 확실히 소비가 줄었어요~^^

마태우스 2014-08-11 16:12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게 현명한 거죠. 저도 한달만 신용카드 대금이 안빠져나가면 그때부터 현금 쓰려고요. 근데 꼬박꼬박 빠져나간다는...

다락방 2014-08-10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르겠습니다. 신용카드 대신 적립금으로! ㅎㅎ

마태우스 2014-08-11 16:13   좋아요 0 | URL
아 네...적립금이 많으시군요 부럽부럽

책읽는여름 2014-08-1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구입을 강력 추천하는 리뷰라니!!! 저도 단호박으로 유명한데, 정말 단호하십니다 ㅎㅎ

마태우스 2014-08-11 16:13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책에 자신이 있어서 단호해졌는데, 막상 그러고나니 불안한 마음도 조금은 있사옵니다...ㅠㅠ

좋은날 2014-08-1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마태우스 2014-08-11 16: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팬1 2014-08-1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번 보니깐 생각나는데요..전에 "블랙홀 웜홀 타임머신"이라는 책이었나...거기서 보니깐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라지는건 5살에게 1년은 삶의 1/5이지만 50살에게 1년은 1/50이라 그런거라고...맞는 말이고 이해도 빨리 됐지만 물리학자라 그런가 참 삭막한 계산법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ㅎㅎ 4번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는게...마태우스님이 조만간 슈퍼미남으로 탈바꿈할수도 있다는 의미인거 같아서...미리 축하드립니다.ㅎㅎ 그나저나 지름신 제대로 받아가네요. 꼭 신용카드로 지를게요~!!

마태우스 2014-08-11 16:14   좋아요 0 | URL
팬님, 제가 슈퍼미남이 될 확률이 과연 있을까요..ㅠㅠ 요즘 관리를 전혀 안해서 예전으로 돌아갔는데..ㅠㅠ

카스피 2014-08-1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있는 카드로 부러뜨리는 상황이라.... ㅠ.ㅠ

서민 2014-08-12 09:4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현명하십니다...^^

순오기 2014-08-1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23 빛고을 무등도서관에 오시네요~~격하게 환영합니다!^^
버선발로 마중하려고 저를 데려가 줄 봉사자를 수소문중입니다.
물론 「기생충 열전」도 밑줄 그어가며 읽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