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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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생충열전>을 낸 인연으로 을유문화사의 책을 종종 증정받는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을유가 책을 잘 만드는 출판사라는 점이다.

이번에 거기서 신간을 내면서 그 비결을 알 수 있었다.

내 책의 편집자는 편집을 하는 와중에 내게 수백통이 넘는 문자와 메일을 보냈다.

낮 동안엔 문자로 질문에 답을 하고,

집에 가서 컴퓨터를 켠 뒤 메일함에 들어가면 열통이 넘는 메일문의가 와 있었다.

그 편집자는 한 문장, 아니 한 단어조차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앞부분에서는 이렇게 말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표현 말고 좀 다른 표현을 해주시면 안될까요?”

이쯤되면 귀찮을 만도 하지만, 그의 지적이 모두 타당한 것들이고,

내 책을 잘 만들기 위해 편집자가 고생을 하는구나 싶어서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밤 늦게는 물론이고 주말까지도 그 편집자의 메일은 계속됐다.

이런 편집자와 같이 일하는 건 행운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비단 내 책에만 이런 꼼꼼함이 발휘되지는 않았을 터,

그 결과가 바로 을유에서 나온 책들은 다 어느 정도 이상의 퀄리티가 보장돼요라는 독자의 평이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는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집은 아주 유명한 저자가 아니면 팔리기 어렵다.

동화작가인 사노 요코는 매니아들 사이에서야 유명할지 몰라도,

난 그 이름조차 처음 들어봤다.

왜 이름이 낯이 익을까 생각해본 결과 존 레논의 아내였던 오노 요코랑 발음이 비슷한 탓이었다.

하지만 저자를 모르는 건 크게 상관이 없었고,

난 곧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에 빨려들어갔다.

유머도 곳곳에서 발휘되지만, 특히 좋았던 건 매사 조급해 하지 않는 여유였다.

예컨대 저자의 집 근처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저자에게 전날 밤 행적을 물었다.

그런데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게 아닌가?

여기에 대한 저자의 결심, “알라비아를 기억해 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날조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일기를 쓰기로 했다.” (221)

다 읽고 나니 책을 보내준 을유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는 책이긴 해도,

을유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사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책을 읽다가 마음이 아파지는 대목이 있었다.

211쪽을 보면 내가 나이 아흔다섯에 뇌연화로 편안하게 잠들 듯이 간다면....이리저리 상상해 본다.”는 구절이 있다.

실제로 저자는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저자 바람대로 95세까지 이런 유의 에세이집을 더 낸 뒤 뇌연화로 가셨다면 좋을 뻔했다.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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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5-2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 그 말같이 생각해요.
참 한국을 사랑했던 할머니세요.
제가 알 때 살아계시지 않았단 것이 안타까워요.

마태우스 2016-05-29 17:54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글에서도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는 분이구나, 싶었는데 사랑하기까지... 제가 살아계실 때 잘할 걸 그랬네요

갱지 2016-05-2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곱씹어보면 되려 무슨 경지에 다다른 듯한 늬앙스 입니다.

마태우스 2016-05-29 17:55   좋아요 1 | URL
그렇죠 제목이 아주 맘에 들더라고요. 근데 말이 그렇지, 자기 일은 열심히 하신 건 아닌지 싶던데요.

희망찬샘 2016-05-2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절반은 편집자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 읽지 못한 기생충열전이 급 땅기는데요. ^^ 사노요코님 새 책이 두 권 정도 더 최근에 눈에 띄네요.

마태우스 2016-05-29 17:56   좋아요 0 | URL
아, 글쿤요 책은 저자와 편집자가 만드는 거로군요. 사노요코님 새책이 또 나왔다니, 기대되네요

희망찬샘 2016-05-29 23:11   좋아요 0 | URL
아! 마태우스님같은 전문적인 글쓰기에는 이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제가 책을 내면서 느꼈던 점이랍니다. 편집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고생이 많으시구나... 하는! 점점 나아지는 책의 모양새를 보며 그런 생각 했더랬습니다. ^^

마태우스 2016-05-30 00:00   좋아요 0 | URL
희망찬샘님 갑자기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제가 님 댓글에 대한 답을 좀 건조하게 달았네요. 죄송합니다. 님 표현이 딱 맞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이번에 책 내면서 그걸 절실히 느꼈거든요. 저도 그렇지만 편집자 또한 이 책이 자기 거라는 인식이 없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제 책은 무수한 오타와 비문이 가득한 책이 됐을 거예요. 본인이 고치면 못잡아내는 게 많거든요

희망찬샘 2016-05-30 00:03   좋아요 0 | URL
제가 실례를 했나 살짝 걱정 되었는데 다행이에요. 안녕히 주무세요.^^

책이좋아 2016-05-3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신간은 교수님의 필생의 역작이라고 밝히신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겠죠? 너무 재밌어서 여러번 웃었어요 ^^ 게다가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대박 날 거라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6-06-06 02:34   좋아요 0 | URL
아...네. 맞습니다 ^^여러번 웃어주셨다니 저랑 코드가 맞는 것 같네요. ^^

북프리쿠키 2016-06-05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전과 콘서트 꼭 사볼거이야요!!반드시ㅋ

마태우스 2016-06-06 02: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 돼야 할텐데 갑자기 걱정이네용.

북프리쿠키 2016-06-0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담되세요?ㅎ 저에게 새로운 분야의 마중물이 될듯합니다. 또한 마태우스님께서 가장 잘하시는 분야라 믿~씁니다ㅎㅎㅎ (부담팍팍)

마태우스 2016-06-06 18:04   좋아요 0 | URL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꺼이 마중물이 되겠습니다!!

2016-06-13 0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3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09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3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0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 작가 위화가 보고 겪은 격변의 중국
위화 지음, 이욱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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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위화 작가를 참 좋아한다.

 

아마 <허삼관 매혈기> 이후부터인 것 같다.

 

허삼관이 피를 판 후 돼지 간볶음에 황주를 마시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냥 재미있는 소설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의 에세이집인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는 에세이집답지않게 탁월한 재미를 줬다.

 

다만 요즘 트렌드가 짧은 제목을 선호하는데 저게 뭔가, 하는 불만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낸 에세이집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도 똑같이 긴데,

 

글자수를 세어보니 14자로 같다.

 

이걸 보면 위화 번역자는 에세이집 제목은 14자로 쭉 가려나보다.

 

 

울산을 다녀올 일이 있어서 이 책을 집어들고 갔는데,

 

역시 위화의 에세이집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마르케스나 포크너, 매큐언, 오스터 등 유명 작가들이

등장해 심심한 재미를 선사한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갈 때 환승을 하느라 2시간, 올 때 1시간 40분에다

 

울산에서 일을 보기 전 50분 정도가 있었으니 충분히 다 읽을만 했지만,

 

강력한 훼방꾼 때문에 앞으로 30쪽 가량을 더 읽어야 책을 덮을 수 있다.

 

그 녀석은 다름아닌 스마트폰.

 

기차에서 내가 한 행동은 다음과 같다.

 

책을 좀 읽다가 (20분 가량) “아 참, 강정호는 안타 좀 쳤나?”라며 스마트폰 확인 (10).

 

다시 책을 좀 읽다가 (15분 가량) “아 참, 이대호는 안타 좀 쳤나?”라며 스마트폰 확인 (10).

 

다시 책을 좀 읽다가 (15분 가량) “, 오늘 농구 결과가 어떻게 됐지?”라며 스마트폰 확인 & 농구중계 시청 (20분 가량).

 

당연한 얘기지만 이 모든 것들은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못했을) 행동들이다.

 

조금 궁금하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놈의 스마트폰이 내 독서시간을 잘라먹고 있다!

 

내가 스마트폰 사기를 두려워하며 3년을 버틴 것도 다 이런 일이 생길까봐서였는데,

그런 일이 생기고 있다.

 

이 책처럼 재미있는 책에서도 집중을 못하면 어려운 책은 아예 못읽는 게 아닌가!

 

작년 알라딘에서 낸 통계를 보면 내가 책을 읽을 시간이 몇천시간 정도밖에 안남았다고 하던데,

 

그 시간을 쪼개서 스마트폰에 내주는 건 문제가 있다.

 

 

 

사람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기 삶을 기록하고 더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내가 이렇게 처절한 반성문을 쓴 것 역시 내일부터는 그러지 말겠다는 결심을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거대한 스마트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빠져나오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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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5-29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역시 거대한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ㅎㅎ
저 역시 스마트폰이 독서를 방해한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음, 전 스마트폰에 살짝만 손가락을 담그렵니다. 필요한 정보와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정보를 가려내는 혜안과, 과감하게 클릭질을 자제할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마태우스 2016-05-29 10: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그걸 어떻게 길러야 할지, 기르는 게 가능하긴 한 건지 몰겠네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게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뭔가를 좋아하면 궁금함도 그만큼 커지잖아요....

나비종 2016-05-29 10:13   좋아요 0 | URL
궁금함의 범주를 조절하면 됩니다. 좋아하시는 스포츠 경기의 결과나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 하는 거죠. 대개의 인터넷 서핑에서 훅 지나가는 시간은 기사를 확인하고 난 후에 이루어지거 같거든요. 다른 신문에서는 그 뉴스를 어떤 식으로 썼나. .다른 인간들의 견해, 그게 은근 궁금해지는 거라ㅎㅎ

마태우스 2016-05-29 12:51   좋아요 0 | URL
옷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나비님 전문가시군요. 전 기껏해야 충전을 하지 말자, 정도였는데.ㅠㅠ 글구 제가 정말 나쁜 건 남들 댓글 보는 걸 즐겨요. 그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답니다 ㅠㅠ

나비종 2016-05-29 13:36   좋아요 0 | URL
다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ㅠㅠ 본문보다 댓글을 더 즐겨보는 1인입니다. 북플에서도 마찬가지구요ㅡㅡ;

마태우스 2016-05-29 13:50   좋아요 0 | URL
아아 님도 댓글을...ㅠㅠ 댓글읽는 재미가 좀 쏠쏠해야 말이죠. 정말 재미있는 댓글이 많아요. 한심한 댓글도 없진 않지만, 천재적인 댓글을 읽으며 영감을 얻는답니다. 근데 그러다보면 시간이 한두시간은 금방 간다는...ㅠㅠ

나비종 2016-05-29 14:05   좋아요 0 | URL
방앗간에서 가래떡 나오는 걸 보신 적 있으신가요? 모락모락 따끈하고 부드러워보이는 떡이 끊임없이 꾸역꾸역 나오죠. 님의 댓글이 가래떡 댓글이라^^; 끊임없이 그 댓글에 댓글을 달고 싶어지게 하신다는ㅋㅋ
저 역시 공감가는 댓글을 보고 그분들의 공간에 들어가서 머물다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훅 갔네요ㅠㅠ 아, 그렇다고 상주하면서 댓글이 탄생하기만 주시하는 스토커는 아닙니다. 책읽다가 댓글 알림음에 다만 손빠르게 반응할 뿐ㅎㅎ

마태우스 2016-05-29 17:57   좋아요 1 | URL
방앗간 가래떡에 비유하시다니, 멋지십니다. 이런 비유력을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배워야 한다고 봐요. 저도 님 덕분에 즐거웠어요. 감사드려요!

비연 2016-05-30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심지어 야구를 틀어놓고 책보다가 몇 점 났지? 라며 보고 또 좀 보다가 그럼 어제 메이저는? 이러면서 보고... 스마트폰을 끄던가 해야지 정말... 이란 생각을 하고 꺼봤는데 왜 이렇게 불안? 암튼... 마태우스님의 말씀에 심히 동감요...=.=;;

마태우스 2016-06-02 02:28   좋아요 0 | URL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반갑네요 그래도 전 길가면서 스맛폰하는 건 절대 안하려고 합니다. 안하려고 한다는 건 가끔 한다는 뜻..ㅠㅠ

북프리쿠키 2016-06-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잠자기전 습관적으로 30분 정도봐야 허한 마음이 달래지는것 같아 괴롭습니다. 특별히 볼 것도 없으면서~~

마태우스 2016-06-02 02:29   좋아요 0 | URL
오옷 30분밖에 안하신다고요. 부럽습니다ㅠㅠ 전 한바탕 보고나면 1시간은 훌쩍 간다는....ㅠ
 
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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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를 드디어 다 읽었다.

거의 한달 가량 가방에 이 책을 넣어두고 다닌 느낌인데,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은 2013년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이다.

둘째, 저자인 엘리너 캐턴이 그 상을 받을 당시 무려 28세로,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셋째, 책이 1권은 525, 2권은 670쪽으로 매우 두껍다.

내가 남자인 탓에 캐턴이 미녀작가라는 것도 얘기한다.

 

한달 가까이에 걸쳐 이 책을 읽은 건 단순히 책이 두꺼워서만은 아니었다.

예컨대 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이보다 더 두꺼워도 열흘 내에 읽어버리지 않았던가.

이 책이 힘들었던 건 이야기의 스케일이 큰데다

파면 팔수록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느낌을 준 까닭이다.

읽을수록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라 책을 덮을 때마다 배가 고팠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요즘 더 배가 나왔다)

앞서 말한대로 이 책은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한강 작가가 올해 이 상을 타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과거 기억을 상기해보면 한강 작가의 책도 너무 어려워서 읽기가 힘들었다.

그 기억 때문에 <채식주의자>를 읽지 않았지만,

그것 역시 만만한 책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그저 경이롭다.

한강 작가의 책이 1, 2, 4위를 독점하고 있으니 말이다.

상을 타면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책이 좀 난해하다보니 한강 작가의 책을 읽는 게 독서량의 증대로 이어지기보단

일회성으로 그칠 것 같다는 점이 아쉽다.

외국의 인정을 받은 후에야 책을 읽기보단 평소 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눈을 갖고 책을 읽으면 좋으련만.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느낌표>라는 공중파 프로에서 선정된 책들이 날개돋힌 듯 팔렸지만,

그게 독서습관의 정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니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느낌표에서 내는 퀴즈를 맞춘 사람에게 60초 동안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다 가져갈 권리를 줬다.

내가 봤던 회차에서 당첨이 된 남자는 그 시간 동안 정말 미친 듯이 박스에 책을 쓸어담았다.

대충 봐도 200권 이상의 책이 박스에 담긴 것 같은데,

그걸 보면서 저 사람은 평소 책을 읽지 않을 거야라고 확신했다.

그가 평소 책을 좋아했다면 자신과 맞지 않는 책은 안읽게 된다는 것도 잘 알았을 테니,

마구잡이로 박스에 책을 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날 그가 담은 책 중 과연 그가 읽은 책은 얼마나 될까.

이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난 이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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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16-05-29 0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가지 다 동감입니다. 첫째 작가 한강의 책이 어려울 것 이라는 것. 저는 채식주의자를 영화로 봤는데요 어려웠습니다. 영상이 그럴진대 책은 더 어렵겠지요. 사놓은지 오래된 한강의 시집이 한권있는데요 한번 읽어볼까 합니다. 둘째 자신과 맞지 않는 책은 안읽게 된다는 것. 저는 자기 계발서가 영 맞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사지도 않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책을 한권이라도 더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태우스 2016-05-29 02:06   좋아요 0 | URL
코난님 동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게다가 새벽 두시에 동감해주시니 더 감사하네요! 채식주의자가 영화로도 나왔군요 으음. 저도 자기계발서가 맞지 않지만, 그래도 미움받을 용기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더군요. 책의 쟝르보다도 클라스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용.

stella.K 2016-05-2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60초 동안 200권이 가능한가요? 자기는 안 읽어도 남 좋은 일 시켰겠죠. 아니면 나 느낌표에서 가져 온 책이라고 전시하고 자랑하던가.ㅋ 저도 마태님 생각엔 기본적으로 동감입니다만, 이렇게라도 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게 일견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가 그 상으로 인해 위상이 높아졌으니 이제라도 책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번역가들도 좀 대우 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태우스 2016-05-29 12:48   좋아요 0 | URL
책꽂이에 있는 걸 마구 쓸어담았으니, 사실 200권이 더 됐을 것 같습니다. 글구 스텔라K님처럼 ˝이제라도 책 읽어야겠다˝는 분이 많아진 건 좋은 일이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사실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마지막 말씀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번역료가 너무 짠데다, 십여년 전과 비교할 때 전혀 오르지 않았답니다.

CREBBP 2016-05-2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님 기사를 본적 있는데, 그동안 년에 2천부 가량씩 팔렸대요. 그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 그리고 독자들이 책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럽고 미안해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어렵게 써서 죄송하다는 것처럼.. 소설을 사회에 대한 하나의 질문으로 읽어주셨으면 한다고..

마태우스 2016-05-29 12:49   좋아요 1 | URL
제가 글은 저렇게 썼지만, 사실 소설이 다 쉬워야만 하는 건 아니죠. 제가 너무 가독성 측면에서만 생각했네요.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雨香 2016-05-31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의 인정을 받은 후에야 책을 읽기보단 평소 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눈을 갖고 책을 읽으면 좋으련만.˝ 공감합니다.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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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더 체격이 크고...”

정유정 작가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늘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의 소설만 쓰는 작가가 이렇게 유쾌하다니.

한강 작가가 멘부커상을 받은 게 부럽지 않느냐는 기자의 유치한 질문에도

정작가는 시종 재치있게 입담을 과시한다.

 

인터뷰에서 받은 충격과는 별개로, <종의 기원>은 좀 아쉬운 작품이었다.

물론 정작가가 굉장히 글을 재미있게 쓰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고,

이 책 역시 책 첫머리부터 가졌던 궁금증이 갈수록 커지며 읽는 나를 빨아들인다.

책장을 넘길수록 드러나는 진실들이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더 커다란 궁금증을 낳는다.

그게 완전히 해소되면서 카타르시스를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소설의 결말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아마도 이건 사이코패스에 대한 저자와 나의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사이코패스는 그렇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고 인간미도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악의 교전>에 나온 그 선생처럼

별다른 이유없이 수십, 수백명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정작가는 이번 책에서 그 사이코패스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너무도 많은 분량을 할애했는데,

그게 궁금증의 해소로 이어지기보단 아쉬움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7년의 밤>을 읽고 정유정 작가에 꽂혔던 나는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와 그 이후 작품인 <28>을 읽고 실망한다.

그리고 다시 <종의 기원>이 아쉬움을 던져준 걸 보면,

<7년의 밤>이 정작가의 대표작으로 계속 남아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 해법은 <종의 기원>

앞으로 쓸 시리즈의 프리퀄이 되는 것이다.

스포일러긴 하지만 사이코패스를 표방한 유진은 잡히지 않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그 이후 그가 벌이는 잔혹한 범죄극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괜찮을 듯 싶다.

정작가를 포기할 마음이 아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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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6-05-2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무 보고팠던 책이어요

마태우스 2016-05-28 23:42   좋아요 0 | URL
네 재미는 있답니다 읽으셔도 후회는 안하실 듯요

남희돌이 2016-05-2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게 이어져도 재미있겠네요. 유진의 행보가 갑자기 뚝. 그렇게 끊겨서 저도 아쉽긴 했어요.

마태우스 2016-05-28 23:43   좋아요 0 | URL
그죠 미드 중 덱스터라고 있는데, 전 한번도 안봤지만 그게 사이코패스 살인마 얘기 아닌가 싶네요. 암튼 주인공인 유진이 덱스터처럼 그려진 시리즈를 기대하려고요. 사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탄 배 안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 아무도 없는 배가 발견되는, 그런 시나리오라면 아쉬움이 해소됐을 듯요

북프리쿠키 2016-05-2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7년의 밤밖에 아직 접해보지 않았는데 참고하겠습니다!!

마태우스 2016-05-28 23:43   좋아요 0 | URL
아직까진 그게 베스트예요!!
 
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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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한 아버지의 밥을 차리느라 결혼을 꿈도 꾸지 못하는 여자 (한파특보),

 

사업을 말아먹고 남편과 떨어져 시골에 숨어사는 여자 (흉몽)

 

남편을 교통사고로 보낸 뒤 트럭을 몰며 사는 여자 (폭염),

 

김이설의 단편집 <오늘처럼 고요히>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극한상황에 몰려있다.

 

아니 어떻게 이리도 불행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책을 읽다보면

 

그에 필적할 또 다른 주인공이 나타나곤 했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이전의 단편은 까맣게 잊고 새 단편에 몰입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근 하루만에 책을 다 읽어 버렸다.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다음에서 알 수 있다.

 

어제 강의록 준비 때문에 새벽 4시에 자면서

 

오늘 아침 천안에서 가락시장까지 버스를 타고 가며 눈을 붙이려 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졸리지도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극한상황을 설계할 수 있는지, 작가의 능력에 그저 감탄하고

 

사람들이 왜 김이설!”을 외치는지 알겠다.

 

 

외부강의를 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소설은 왜 SF가 없느냐고,

 

과학 전공자들이 소설을 좀 써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소설이란 게 우리가 외면하던 현실을 드러내 줌으로써

 

세상의 변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라면,

 

SF보다는 <오늘처럼 고요히>가 소설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한 게 아닐까 싶다.

 

십년쯤 전 김이설 작가님과 잠깐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둘이서 만난 건 아니고, 내가 속한 모임에 잠시 나오신 건데

 

그때가 작가님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였나 그 전이었나 헷갈리지만,

 

아무튼 그 당시만 해도 난 김이설 작가님이 이렇게 잘되실 줄 몰랐고,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말도 거의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작가님이 이렇게 멋진 책을 연달아 내실 줄 미리 알았다면

 

그때 좀 잘할 걸 그랬다.

 

 

참고로 난 작가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작가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신 같은 존재니, 어찌 평범한 인간과 같을 수 있겠는가?

 

가끔 날보고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원래 있는 기생충에 대해 기술하는 책을 냈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건 아니기에

 

그때마다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손사래를 치곤 한다.

 

그런 경우가 잦다보니 귀찮아서 네 작가 맞습니다라고 한 적도 몇 번 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내가 작가라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작가면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를 쓴 분한테도

 

'작가님'이라고 불러야 하잖은가?

 

아무튼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람을 보면 같이 놀기 싫은데,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이 너무도 많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배려가 없고 비인간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와중에도 열심히 책을 써가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김이설 작가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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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6-04-28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설 작가님 저도 좋아하는 작가예요:) 마테우스님도 존경합니다:) ㅎㅎ 오늘 이 책 읽다 자야겠네요>_<

마태우스 2016-04-28 09: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ellas님, 저랑 좋아하는 작가가 같아 반갑네요. 근데 저는 저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나쁜놈이라는....-.- 근데 새벽에 안주무시네요. 저도 주로 밤에 일하는데 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기억의집 2016-04-2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설 작가의 책은 안 읽었지만,,,, 불행이라면 필립 로스만 하겠습니까! 네메시스 읽으면서 하아,,, 이렇게 불운한 삶을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그려내다니,하며 놀라워하며 읽었습니다. 김이설도 필립 로스과군요!

마태우스 2016-04-28 09:1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기억의 집님, 필립 로스 책 딱 하나 읽었던 것 같은데, 그 책은 불행에 관한 책은 아니었어요. 네메시스를 제가 안읽었네요. 좋은 책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희망찬샘 2016-04-28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한 상황... 읽고 나면 맘이 좀 안 좋을 거 같아요.

마태우스 2016-04-28 23:04   좋아요 0 | URL
안녕하셨어요. 근데 의외로 맘이 안좋진 않아요. 극한상황 속에서 희망이 피어나는 내용도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절망하다 끝나는데,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든가 그러지 않는 게 신기했어요.

페크pek0501 2016-04-2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도 `작가님`이라고 불러야 하잖은가?
- 어떻게 요런 생각을 하셨는지... 마태우스 님의 유머는 죽지 않고 늘 살아 있군요.


<오늘처럼 고요히>, 이 책에 대해 호평하는 글을 많이 보게 되네요. 장바구니에 담겠사와요.
궁금해서 구입하게 될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16-04-29 22:01   좋아요 0 | URL
헤헤 저만큼 그분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겠어요^^ 암튼 이 책,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나비종 2016-04-30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궁금해졌으니 리뷰어의 역할을 충분히 하셨습니다. ^^

마태우스 2016-04-30 22:20   좋아요 0 | URL
아 네...나비종님 감사합니다. 리뷰에 대한 가장 좋은 찬사네요^^

나비종 2016-04-30 22:29   좋아요 0 | URL
뒤에 댓글을 더 쓰려했는데, 엔터키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그래서 그만 두었습니다ㅎㅎ
음. . 제가 쓰려던 댓글은, 저 역시 작가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요. 창의적인 면에서 치밀한 예술가이며, 세심하게 주변을 관찰해야 한다는 점은 과학자와 통하는 점도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같이 놀기 싫은 1인에 속하지 않아서요~ㅋ

다락방 2016-05-17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처음 단편 하나 읽었는데 너무 쎄요, 마태우스님. 흑흑. 쉬었다 그 다음 편을 읽어야겠어요 ㅜㅜ

북프리쿠키 2016-06-0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추천감사드려욤~읽고싶은 책에 담아놨어요!! 제가 이런 분야에 취약했는데 이 기회에 김이설 작가님 입문토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