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같이 술을 마신 사람은 입에 거품을 물고 노무현을 욕했다.
"대학 안나온 놈이라 역시 수준이 낮다" "나라가 불안해서 못살겠다" "끌어내려야 한다"
그나 나나, 무식한 김영삼과, 전두환, 노태우같은 대통령 치하에 살았던 처지에, 그리고 지난번 대통령이었던 김대중도 대학을 안나왔는데, 노무현만 동떨어지게 수준이 낮은 걸까? 그가 비난하는 근거가 왜곡으로 점철된 조선일보 기사였기에, "아, 그건 그렇게 말한 게 아니구요...이렇게 말했는데 보도가 그렇게 된 거죠" 따위의 변명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어찌되었건 노무현이 싫다는데, 변명한들 뭐하나. 그의 말이다.
"난 조선일보 나쁜 거 너보다 더 먼저-고등학교 때-알았지만, 너 그렇게 일방적으로 편들면 안돼!"

오랜만에 만나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왜 그렇게까지 증오에 찬 말들을 퍼붓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길이 없었다. 내 잘못이라면 노무현을 찍은 죄밖에 없는데, 그리고 아무리 뭐라한들 노무현은 4년여 동안 더 대통령 자리에 머무를 텐데.


대선 전 '좌파 자유주의자' 변정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누가 된다고 해도 이 나라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적어도 내 피부에 와 닿는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하다. 그리고 그게 정상적인 민주주의다]

내가 바라던대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내가 그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은 하루 20분 정도다. 뉴스는 안보지만 신문은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인데, 신문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니까. 그 나머지 시간 동안, 난 다른 일로 훨씬 더 많은 걱정을 한다. "오늘까지 논문 다 써야 되는데..." "xx교수는 왜 나한테 그런 걸 시키지?" 등등.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는 것보다, 자신의 상사가 그날 기분이 좋은지가 자신에겐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회창이 되었다고 해도 이런 태도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이회창이 되었다면 내 마음이 조금 더 너그러웠을 것 같다. 노무현의 잘못에는 그를 지지한 내 책임도 있지만, 대통령이 이회창이라면 "얘는 원래 이러니까"라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대선 전에는 상대방이 당선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다가도, 대선 다음날부터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게 옳든 그르든간에, 대부분의 소시민이 취하는 태도일 것이다. 감사원장 임명 동의안이 부결되고, 행자부 장관 해임안이 통과된다 해도, 그건 내 삶에서 너무 멀리 있고, 아까도 말했지만 아무리 떠들어봤자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마칠 것이다. 경제불황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규모가 커져버린 우리 경제는 이미 대통령의 손을 떠난 듯하다. 이런 내 생각과는 달리,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선이 끝난 지  열달이 다 된 지금까지도 노무현을 욕하느라 그 귀한 술자리 시간을 허비한다.

난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4년 반을 그렇게 증오 속에서 살 거냐고. 그러면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냐고. 노무현이 설령 품위없는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게 자신에게 별반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는 삶 속에서 더한 말들도 듣고 살지 않는가? 대통령의 수준이 너무 낮다지만, 그러는 자신은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되돌아봐야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보기에 어제 만난 사람에게는 노무현 대통령도 과분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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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당동을 처음 간 것은 92년이다. 중.고교 때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했던 탓에 교보문고를 가본 것도 대학에 온 이후니, 신당동을 스물여섯에 간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창 나를 따라다니던 여자애에게 이끌려 간 건데, 유명한 곳이라는 여자애의 말과 달리 맛에서 어떤 감동도 받지 못한터라 그 이후에는 한번도 간 적이 없다. 나중에 알고보니 신당동이 떡볶이로 유명한 곳이라던데, 내가 객관적이지 못해서 그런지 우리집 근처  떡볶이집이 그곳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았다.

어제, 십여년만에 다시 신당동을 찾았다. 갑자기 거길 간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돈이 별로 없었던 때문인데, 둘이서 먹는 떡볶이 세트-만두와 계란, 라면, 오뎅과 떡볶이를 찌게처럼 담아놓은 것-가 8,100원밖에 안했으니 내 계략은 성공한 셈이다. 맛은? 물론 끝장이었다. 한창 먹을 나이인 20대에도 맛이 없던 떡볶이가 성장기를 지낸, 이미 미식가로 변해버린 나한테 무슨 맛이 있었겠는가. 먹는 내내 투덜댔다. 우리집 근처 포장마차로 갈 것을. 어제가 마침 '신당동 떡볶이 축제'일이라 20%가 할인되어 1600원을 벌지 않았다면 그 후회의 깊이가 더 컸을 거다. 축제, 그렇다. 어젠 '떡볶이 축제'라고, 무대를 만들어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떡볶이집 주인들이 내건 경품엔 자전거 등 탐나는 것들이 많았고 사회자가 구경꾼들을 여러차례 즐겁게 해줬지만, 신당동 떡볶이가 우리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은, 그런 떠들썩한 무대보다는 맛있는 떡볶이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게 아닐까. 

물론 한집만 가봤으니 다른 집은 맛있을 수도 있겠다. 내 입맛이 워낙 까다로울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우리가 간 곳은 사람이 가장 많은 집이었고, 같이 간 사람 역시 "맛이 없다"는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니, 신당동 떡볶이가 별 특별한 게 없다고 주장해도 되지 않을까?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그 집의 벽면에 유명 연예인들의 싸인이 잔뜩 걸려 있었다는 거다. "맛이 가게 맛있네요"라는 표인봉의 글귀를 필두로 하지원, 지오디 등 나도 알만한 연예인들이 입을 모아 그집의 맛을 칭찬하고 있다. 연예인들이 맛의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그들의 말이
무시할 수 없는 신뢰성을 손님들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로 맛도 없는 떡볶이를 잔뜩 과대포장해 놓은 그들에게 '인간이 되라'고 말하고 싶었다.

거기 써놓은 말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그들이 쓰는 언어가 빈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맛있어요" "정말 죽이네요" 대충 이런 식이다. 하기사, TV에 나오는 맛집 탐방을 갔을 때도 그들은 그런 말밖에 쓰지 못했다. 1등한 소감을 물으면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라고,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냐면 "팬 여러분, 사랑해요!"라는 천편일률적인 말을 쓰는 그들이, 맛집에 간들 얼마나 멋진 표현을 하겠는가. 이건 사실 교육의 문제다. 고등학교를 나와서 자기 의사를 그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는 건, 말하기와 글쓰기 교육이 잘못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던가. 그럼 너는 우리집 근처서 파는 맛있은 떡볶이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 건데, 라고 물을거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몇년간 묵은 귓밥을 한큐에 파내는 느낌...
-보름만에 머리를 감은 기분...
-떡볶이가 갈비나 생선회보다 우월한 음식임을 증명해주는 쾌거
-더운 여름날, 달리는 말 위에 앉아 강가를 거니는 그런 맛
-파도가 치는 해변에서 꿈에 그리던 미녀를 만난 느낌

갑자기 생각하려니 이런 것밖에 떠오르는 게 없지만, 그래도 천편일률적인 표현보다는 낫지 않는가. 우리 국민의 64%가 하루 50단어 이하만 쓰고 살아간다는 통계를 상기하면서, 당연한 말보다는 가급적이면 아름다운 문장을 쓰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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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그의 호가 '우암'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추앙받는 학자이며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좋은 말을 했다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난 모 잡지를 읽다가 다음 대목에서 가슴이 뜨끔했다.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우암 송시열 하면 우선 그가 주장했다는 북벌론이 떠오르고, 다음으론 그 골치 아프고 복잡한 당파.당쟁이 떠오른다]
나름대로 국사가 전략과목이었다고 자부했지만, 송시열과 북벌론을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는데? 예전엔 알았는데, 세월이 지나서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모른다. '역사에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도 아는 것을.
사실 난 상식 쪽으로는 그다지 아는 게 없다. 글을 워낙 많이 쓰니까 아는 게 많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글 많이 쓰는 건 내가 집요해서 그런 거지, 아는 거랑은 큰 상관이 없다. 초등학교 동창인 표진인도 날 과대평가한 사람의 하나인데, 그의 권유로 지금은 없어진 퀴즈 프로에 출연한 적이 있다. 15명 중 9명을 뽑고, 다시 3명을 뽑아 결선을 해서 이긴 사람은 500만원을 독식하는 형식이었는데, 세상에, 난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물론 남들이 부저를 하도 빨리 눌러 난 말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지만, 내게 기회가 왔더라도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구상했던 곳이 갈라파고스 군도라는 것도, 그해 스포츠스타 중 상금액수가 1위인 사람이 미하엘 슈마허라는 것도, 그 밖의 다른 문제들도 난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녹화가 끝난 뒤의 마음은 참담했지만, 내 상식의 현주소를 확인한 것은 값진 성과였다. 요즘들어 책을 많이 읽긴 해도, 서른 전에는 전혀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터라 사막에 집을 짓는 격, 없던 상식이 갑자기 생길 리는 없었다. 그 뒤 난 겸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독서량과 상식이 비례한다면, 그리고 지금같은 추세로 계속 책을 읽는다면, 십년쯤 후에는 퀴즈프로에 한번 도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시 그 잡지로 돌아가자면, 내가 읽은 글은 장정일이 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는 책의 리뷰인데, 그 글을 보면서 우리가 아는 지식이란 지배계층의 시각에서 본 편향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시열은 효종 때 이름을 드날린 학자인데, 양반의 수탈이 문제가 되던 그 당시, 송시열은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세금을 더 내는 '대동법'을 맹렬히 반대한 양반 부호들 편에 섰으며, 효종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북벌론'을 반대하는 대신 자식이 죽을 때 부모가 상복을 얼마나 오래 입느냐를 놓고 벌어진 당쟁-일명 예송논쟁-에
힘을 쏟았으며, "자신의 논리에 반대하는 동료 유생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인 조선 최초의 유학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북벌론=송시열'의 등식이 성립되는 것은 그가 속한 서인정권이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정권을 잡음에 따라, 그리고 일제와 해방 이후에도 온존함에 따라서 그런 잘못된 신화가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역사 거꾸로 보기'식의 책이 수없이 나오는 와중에 특정한 책 한권을 보고 "아, 그건 그렇구나"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지배계층의 시각에 따라 역사가 왜곡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 않는가? 책에 기술된 내용들이 그렇게 신뢰성이 없다면, 책만 달달 읽는다고 그게 온전한 지식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퀴즈 프로에서 "북벌론과 관계있는 학자는?"이란 문제가 나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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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가판대에 놓인 스포츠신문들은 하나같이 부부교환-스와핑-을 하다 적발된 사람들의 기사를 1면 톱으로 다루고 있었다. 스와핑이란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다. 스와핑 사이트가 인터넷에 버젓이 개설되고, 회원수가 6천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놀랍다.

난 스와핑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그럴 마음은 없지만, 스와핑이란 게 꼭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그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지 않는가?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게 아닌 바에야,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쾌락을 즐기든 우리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혹자는 '미풍양속'이나 '사회윤리'를 들먹이지만, 전국 곳곳에서 성업중인 러브호텔과 날이 갈수록 팽창하는 매매춘 산업을 보건데 별 설득력이 없는 듯하다. 스와핑의 장점은 부부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고, 남녀 공히 쾌락을 즐길 기회가 보장된다는 거다. 오랜 세월, 우리네 가정을 유지해 온 건 전적으로 여자들의 인내에 기인했다. 선비의 나라라는 조선만 해도 한다하는 양반들은 첩들을 여럿 거느렸고, 나라를 돌봐야 할 왕은 왕비 외에도 수십, 수백의 후궁을 뒀다. 남편이 첩들에게 한눈을 파는 사이, 우리 여인들이 겪어야 할 마음고생은 얼마나 컸을까. 그 전통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여자의 바람은 용납 못할
사건이지만, 남자의 바람은 그럴 수도 있는 실수로 치부된다. 여자들이 고객인 호스트바는 단속의 대상이 되지만, 남자들은 원하면 언제 어느때고 단란주점과 룸살롱, 터키탕, 안마시술소, 청량리 등지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을 안을 수가 있다. '남자들은 성욕이 강해서'라는 강변을 하지만, 그건 여성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우리 사회 분위기 탓이지 여성에게 성욕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들이라고 남자들처럼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남자들이 이미 시들해진 부인의 몸 대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를 비밀스럽게 즐겨온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면, 부부의 동의를 얻으며, 여성에게도 쾌락의 기회를 제공하는  스와핑은 훨씬 더 진보적이다. 혹자는 '가정의 해체'를 논하지만, 이미 세계 최고의 이혼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 책임을 스와핑에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와핑을 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실제 부부들이 원해 모였고 부부금슬도 좋아졌다"고 하지 않는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난 스와핑을 찬성하지 않는다. 내 말은 스와핑을 하자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남성만을 위한 성매매 산업을 단속하자는 말이다. 호스트바에 대한 단속처럼 스와핑에 대한 단속 역시 여성의 즐길 권리를 박탈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편향된 시각이 담겨 있다는 거다.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 아주머니를 불러 난리 부르스를  추는 게 스와핑과 도대체 뭐가 틀린가? 남자들 몇몇이 단란주점에 몰려가 20을 갓 넘긴 여자의 속살을 더듬는 게 스와핑보다 덜 나쁜 이유가 뭔가? 스와핑과는 달리 그 행위에는 부부간의 동의도 없지 않는가. 결론은 이거다. 좀 공평해졌으면 좋겠다는 것. 스와핑이 나쁘다면, 매매춘도 금지하자. 남자에게 즐길 권리가 있다면, 여성에게도 좀 나눠주자. 여성들의 인내를 전제로 한 '사회의 기강'은 이제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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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걸려왔을 때, 난 시험감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부지런히 눈을 좌우로 돌리는 학생들을 감시하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복도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송승헌(가명) 동생인데요..."
송승헌이라면 내가 고교 때 연대장을 했던, 그야말로 미모와 학식을 겸비한 친구다. 작년에 만났을 때 이미 대머리가 되어 있어 날 실망시킨 그 친구. 그의 동생이 왜 내게 전화를 했을까?
"저희 형이 형 얘기를 많이 하더라구요. 사실은 제가 프루덴셜에 다니는데요, 찾아뵙고 말씀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아하, 그러니까 날더러 보험에 들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군. 난 '지금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오래 통화는 못하며, 만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미 ING 보험에 가입했으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고, 다음주 수요일 정도에 보기로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제, 그를 만났다. 아무리 거절을 못하는 나지만, 난 보험에 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 비싸지 않은 부대찌게를 주문한 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라면사리와 만두, 쏘세지를 추가로 시켰다. 목소리도 비슷하고 외모도 형을 닮았지만, 형보다는 훨씬 못생겼다. 의례적인 덕담이 오갔다.
"형 TV에 나오신 거 다 봤구요, 형한테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뵙다니 영광이네요"
영광은 무슨... 밤에 술집에 가면 늘 나를 볼 수 있는데. 난 이렇게 내 입장을 밝혔다. "내가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결혼 생각이 없어서 보험을 들 욕구가 없는데다, ING라는 걸 이미 든 상태라..."

하지만 밥 한그릇을 다 비우기도 전에, 난 그의 고객이 되어 버렸다. 만성활동성 간염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도 못했다는 그의 딱한 처지 앞에서 "안된다"는 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 마음이 약했다.
"까짓것, ING 해약하고 하나 들죠 뭐"
20만원이 넘는 걸로 하라는 걸 10만원 선으로 깎은 것만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무슨무슨 보장을 해주고...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난 그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험이란 게 자신을 위해 드는 측면도 분명 있겠지만, 내가 보험을 들겠다고 한 건 순전 그를 위한 거였으니까. 그가 말하는 동안 난 머리속으로 이 생각만 했다. "ING를 어떻게 해약하지?"
ING를 들도록 만든 친구가 이미 그 회사를 그만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영등포로 가는 도중 여친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그냥 보험 들었어"라고. 금방 답장이 왔다. "만난다고 했을 때부터 그럴 줄 알았어"
후후, 내가 보험에 들 걸 나만 몰랐지, 남들은 다 알고 있었나보다.
생각해 보면 거절을 했으면 좋았을 일들이 너무도 많다. 몇십만원짜리 토익아카데미, 이코노미스트 잡지, 주간한국, 내셔널 지오그라픽, 뉴스위크.... 그 중 본전을 뽑은 게 과연 얼마나 된담? 뉴스위크 같은 건 아예 비닐조차 뜯지 않고 버리지 않았던가. 이렇게 위안을 했다. "보험은 좀 다를거야"라고. 그나저나 거절은 어떻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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