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게 비가 내리던 날, 살이 꺾인 우산에 의지해 갈 길을 가다 홧김에 대학로의 ‘판타지움’ 극장에 가서 ‘한반도’ 표를 샀습니다. 평소에도 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비가 그걸 앞당긴 거겠지요. 보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가 강우석이 만들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제가 생각해도 좀 특이합니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비아냥이 영 불편했기 때문이죠.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던 시절의 반작용 탓이지만, 그것 역시 또다른 극단이 아닐까 싶더라구요. 국가 이야기만 나와도 비웃고 매도하는 게 쿨한 걸로 생각되는 현실이 전 불편합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요? <무궁화꽃>이 300만부가 넘게 팔리고, 월드컵 때마다 태극기의 물결이 일어나는 우리나라에서 말입니다.
강우석은 말했습니다. “국가와 민족,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 저 역시 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거, 그거 존중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인종주의같이 반사회적인 주제를 강요하는 게 아닌 바에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반도>를 비난합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국가를 비웃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한반도’라는 영화 제목에서처럼 이 영화가 ‘대한민국’을 외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인데 말입니다. 그건 마치, <애마부인>을 보고 나서 “너무 야해서 낯뜨거웠다”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국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왜 굳이 ‘한반도’를 보는 걸까요?
정말 잘생겼지요?
‘한반도’에 대해 비난을 하려면 영화에서 국가를 말하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했다든지, 설득력이 떨어졌다든지 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액션 영화에 멜러적 요소가 없다고 비난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굳이 한반도를 찾아서 보고, 국가를 얘기하는 게 촌스러운 일인 것처럼 비웃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은 왜 한반도를 재미없게 봤냐는 제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정치인을 너무 미화해서요.”
학생 때 미화부장을 해봐서 아는데요, ‘미화’가 없는 영화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반도’에서 아무리 대통령을 미화했다 해도, <에어포스 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텐데 말입니다.
결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전 이 영화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시종일관 박진감이 넘치더군요. 스필버그가 말했고 강우석이 따라서 말했듯이 영화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숭고하고 좋은 것일지라도, 재미가 없으면 꽝이잖습니까? 애국을 역설하는 게 촌스러움으로 탈바꿈되는 이 시대에, 그런 주제를 가지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강우석에게 전 찬사를 보냅니다.
첨언: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빗줄기가 더 굵어졌더군요. 올 여름, 비 정말 징그럽게 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