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재구성> 포스터를 봤을 때, 영화를 보고픈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자카르타> 비슷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영화의 질을 담보해줄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박신양이 있긴 하지만, 그는 벌써 몇 번의 실패로 내 신임을 잃은 터, 이문식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조연에 불과했다. 염정아? 그사람 영화 중 내가 감명깊게 본 게 뭐가 있더라?
하지만 딴지일보에서 영화평을 쓰는 사람으로부터 "졸라 재밌다"는 말을 들은 뒤, 상황은 급변했다. 그 영화는 꼭 봐야하는 영화가 되었고,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쓴 영화평도 의도적으로 피했다. 보고난 결론이다. "안봤으면 큰일날 뻔했다!"
영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오션스 일레븐>이었다. <오션스..>에서처럼 범행의 준비가 치밀하고 계획이 천재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꽤 잘만든 범죄영화 아닌가? 결말도 나름대로 상큼했던 것 같다. 물론 박신양보다는 브래드 피트가 더 멋지고, 김선생보다는 조지 클루니가 더 느끼하다. 이것도..사대주의의 일종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화는 차량 추격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차 여러대가 작살이 난다. 그걸 보면서 느낀 점, "와, 우리 영화도 저런 게 가능하구나..." 옛날에 <투캅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때 그랜져 한 대가 부숴졌는데, 그걸 위해 중고 그랜져를 샀다는-아닌가? 영화 관계자 차를 빌렸던가?-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헐리우드에서는 쓸데없이 차를 부수는데... 하면서 말이다. 정말 한국영화 많이 좋아졌다. 옛날에야 한편에 십억 들이면 고액이었지만, 요즘은 백억짜리 영화도 나오지 않는가? 100억이면 천만불에 가까우니, 웬만한 헐리웃 영화의 5분의 1까지 육박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판에 종사해본 사람은 그 마당이 복마전이고, 수익의 분배가 매우 비상식적이라고 하지만, 외형적으로만 그렇단 얘기다.
인상적이었던 이문식의 대사.
"카프카를 알아? 그게 부조리야. 내가 제비랑 친해요. 그런데 집은 몰라!"
부끄럽지만 아직 카프카를 읽지 않았다. 어렵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는데, 그걸 깨려고 몇 달 전에 샀다 (짝짝짝!). 그런데...역시 아직 읽지 않았다. 내공을 좀 쌓고 읽자는 생각 때문에. 지금 밀린 거 두 개만 읽으면 곧바로 읽어야겠다. 카프카가 부조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책 안읽으면 영화 보기도 이렇듯 힘들다.
역시 이문식이 했던 인상적인 대사.
"'마'가 들어가는 말 중 좋은 말이 없어요. 마리화나, 대마, 경마, 임마!"
'마태우스'도 그런 보기에 들어갈 수 있겠다. 하지만 '마냐'는 아니다^^ '마립간'도 아니다.
영화를 볼 때 주의할 점. 너무 생각을 하지 말라! 난 너무 영악한 나머지 중간쯤에 이미 진실을 알아 버렸다. 그러니 반전이 있어도 심드렁할 수밖에. 이건 순전 온갖 음모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 때문, 정치의 불안정이 스릴러 영화를 재미없게 만든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