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나카오 사스케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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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 책은?

 

이 책 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인류의 먹거리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나카오 사스케, 일본인으로 생애 연도가 1916~1993년이니, 이미 작고하신 분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 시절, 유전 육종학과 재배 식물학을 전공하고, 활동을 시작하여 이다.교토 대학교 농학부 조교수로 재직했고 그 후로 몽고 서북 연구소 주사(主事), 기하라 생물학연구소 전임을 거쳐 오사카 부립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냈다. 다양한 연구활동을 해 많은 저서를 남기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인류가 이 땅에 생겨난 이래 먹고 사는 것은 문제 중의 문재였을 것이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먹거리가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데, 인류 초기, 그때에는 오죽했을까?

 

그래서 먹거리를 장만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살펴볼 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 먹거리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한 이 책, 의외로 흥미롭다.

 

먼저 이런 글 읽어보자.

 

보리 한 줄기, 벼 한 포기는 그 유용성 때문에 오늘날에도 가치가 있다.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문화재이다. 풀이 무슨 문화재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벼나 보리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식물이다. (14)

 

이 말이 언뜻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테지만. 다음 글을 읽어 종합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인간이 곡류를 모아 식용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별 것 아닌 일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위대한 발견이다. 대부분의 원숭이류는 볏과 식물의 이삭을 먹지 않고, 초식 동물인 소나 말도 짚이나 순은 먹지만 이삭은 좋아하지 않는다. (104)

 

이삭을 먹는다는 것, 그게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 수긍이 된다. 우리가 소처럼 짚을 먹고 있다고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삭 대신 볏짚을 먹고 있는 모습이라니!

더하여 현재 우리가 보는 벼의 모습을 원래의 벼와 다르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다.

 

저자는 그러한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벼의 모습을 비교해 놓고 있다. 원래 있던 야생종 벼와 현재의 품종 즉 재배종을 비교해 보자.

 

야생종의 특징은, 낟알이 손만 닿아도 우수수 떨어진다. 이를 낟알의 탈락성이라 한다.(18)

이런 성질은 야생종 낟알이 지닌 통유성이다.

낟알이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게 되면 벼 자체는 번식을 위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수확을 해야 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생긴다.

익은 낟알을 한꺼번에 거두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벼 이삭을 일일이 손으로 주워 거둬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글을 읽고 밀레가 그린 <이삭줍기>라는 그림을 살펴봤는데, 이삭을 줍는 여인이 완전히 허리를 땅에 닿도록 굽혀 손을 뻗어 이삭을 줍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으로 하나 하나 줍는다고 생각해보면, 그 일이 얼마나 고될 것인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야생종을 개량하여 벼가 익어도 낟알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삭의 탈락성을 비탈락성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면 일단 추수하기가 편해진다.

 

이런 이야기, 의외로 재미있다는 것, 새삼 느껴보게 된다.

농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지라, 이 책에 이야기되고 있는 것들 하나하나가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신기하게 여겨진다.

 

조리 방법의 다양화와 문명의 발달

 

예컨대 솥은 어떤 필요가 있을까?

별 시답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솥이 필요한 경우가 여럿 있다는 것, 이제 알게 된다.

솥이 필요한 것은 단지 밥만 안치고 해먹은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콩은 그냥 굽기만 해서는 먹기 힘들기 때문에 물을 붓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끓여야 한다. 자연히 솥이 필요해진다.> (111)

 

<바나나, 사탕수수, 감자류는 솥이 없어도 요리해 먹을 수 있다. 감자류는 직접 불에 넣어 구우면 된다. 실제 오세아니아나 뉴기니에서는 지금도 솥 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133

)

 

또 절구나 디딜방아가 왜 생겨났을까?

<벼룩처럼 작은 낟알의 속꺼풀을 벗기는 방법이 문제였다.

이런 난제는 절구와 절굿공이라는 간단한 도구로 해결되었다.>(133)

 

<비가 많이 오는 동남아시아나 중국, 일본에서는 발로 밟는 디딜방아가 발달했다.>(135)

 

다시, 이 책은?

 

문화라는 말은 영어 컬처(Culture)를 옮긴 말로서, 본래 재배를 뜻한다.

즉 문화란 땅을 일구고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본 뜻이다.

인류의 문화는 농경 단계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으므로 농작물 재배는 충분히 문화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문화의 본래 모습, 우리의 먹거리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것, 이 책은 우리가 그간 마치 공기처럼 의식하지 않고 사용했던 곡식이나 곡식을 이용하는데 필요한 도구 등이 어떻게 해서 문화가 되어 우리 곁으로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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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吾友我 : 나는 나를 벗 삼는다 - 애쓰다 지친 나를 일으키는 고전 마음공부
박수밀 지음 / 메가스터디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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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吾友我

 

이 책은?

 

이 책 오우아 : 나는 나를 벗 삼는다<애쓰다 지친 나를 일으키는 고전 마음공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박수밀, < 한양대학교 미래인문학교육인증센터 연구교수. 실학의 인문 정신과 글쓰기, 고전의 생태 정신, 동아시아 교류사를 공부하고 있다. 분과 학문의 경계에서 벗어나 역사, 철학, 교육 등을 가로지르는 통합의 학문을 지향한다. 옛사람들의 문학에 나타난 심미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의식을 오늘의 삶과 현실에서 재사유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 책의 내용은?

 

먼저 이 책의 제목인 오우아(吾友我)’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이 책의 제목이자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의 호이기도 한 오우아 吾友我나는 나를 벗 삼는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품위와 내 자존감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덕무는 나는 나를 벗삼는다.’는 말을 자신의 호로 삼아 오우아거사라고 스스로 일컬었다. (17)

 

저자가 이 말을 가져와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데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

 

먼저 책의 순서를 살펴보자.

 

1. 나는 나를 벗 삼는다_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길

2. 마음을 바꾸면 삶이 아름답다_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길

3. 멈춤을 알면 오래 간다_ 욕망을 다스리는 길

4. 내 삶의 주인은 나다_ 당당히 혼자서 가는 길

 

이런 순서로 되어 있는데, 저자가 나는 나를 벗삼는다라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순서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해서 먼저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 먼저다.

'잃어버린 나' 라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자세가 성립되지 못해서, 결국은 남의 생각에 휘둘리고, 남의 욕망에 휘둘려 살다보니, 자기 자신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을 일컫는 것이다.

몸은 자기 몸이로되, 몸을 움직이는 마음은 다른 사람이 들어와 주관하는 격이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조종간을 잡고, 나는 거기에 그저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나를 찾는 것이다. 내 마음의 핸들을 내가 다시 쥐고 달리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에게 휘둘려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다시 나를 찾았으면, 이제 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이제 나를 추동하는 욕망을 조절하는 것이다.

욕망, 그게 남의 욕망이 아니라 나의 욕망일지라도 그 욕망에 끌려 다니면 안된다.

그 욕망을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만,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이지, 욕망에 끌려다니면 역시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욕망이 나를 조종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이제, 당당히 혼자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도 통제가 가능해서 나는 나의 소신과 주관대로, 또한 욕망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그야말로 당당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에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순서를 따라가며, 나를 찾고, 욕망을 제어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나를 벗 삼아 살아가는 삶인 것이다.

 

그런 순서를 따라가며,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읽어가면, 어느덧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내가 나를 벗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옛사람들의 글은 지금도 유효한가?

 

저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전문학자인 나는 지금도 내 삶에서 경험하는 낙심, 외로움, 상처, 불안, 욕망 등의 감정을 그때의 사람들도 똑같이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

 

해서 저자는 옛사람의 마음에서 지금의 나를 배워보고 싶었다 한다. 그 옛사람의 문장에서 마음에 와 닿는 것을 찾아 읽으며 그 마음으로 들어가 음미하고 곱씹어 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

 

저자의 그런 마음은 독자인 나에게도 와 닿았다.

옛사람의 글이라고,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고 해도 사람 살아가는 것은 같은 모양이다.

이 책을 통해서 옛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으로는 공감하게 되는 구절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는 점, 기록해 두고 싶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온통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천지다.

해서 마음판에 기록하는 것과는 별도로 여기 몇 꼭지 기록해 둔다.

 

어려서 배우는 것은 해가 막 떠오를 때와 같고,

젊어서 배우는 것은 해가 한 가운데 있는 것과 같으며,

늙어서 배우는 것은 밤에 촛불을 들고 있는 것과 같다. (175)  

 

<멀리 갈려면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72)  

중용 15장에 나오는 말이다.

 

행원필자이 行遠必自邇

등고필자비 登高必自卑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시작하고

높이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라

 

세상에는 참으로 발돋음하여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만

발돋음하지 않고서 미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73)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의 행로를 정한 다음에, 각각의 항목 세부 내용을 읽어가노라면, 그 내용들이 명확하게 내 마음에 들어와 각각의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해서 어떤 글은 잃어버린 나를 찾게 만들어주고, 또 어떤 글은 내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하며, 욕망을 다스리는 길을 안내해 준다. 그렇게 한 꼭지 한 꼭지 옛사람들의 글을 새겨보면, 이게 바로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책은 그래서 '내 안의 나'와 벗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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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 1980. 5. 27 그 새벽의 이야기
정도상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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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이 책은?

 

이 책, 꽃잎처럼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를 그린 소설이다.

 

저자는 정도상.

저자의 경력을 살펴보니,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그늘과 그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문체로 그려온 작가다. 1986년 평화의 댐 건설 반대시위사건으로 구속·제적되었다. 1987년 전주교도소에서 수감중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6월항쟁으로 사면 복권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 시점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시간적 순서를 따라 당시 광주에서, 특히 전라남도 도청을 중심으로 하여, 시간대별로 일어나는 일들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그려놓고 있다.

 

1980526일 저녁 7시부터 527일 새벽 515분까지의 기록이다.

 

그 시간에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계엄군이 광주 시내로 진입을 앞두고, 도시는 어둠의 침묵 속에서 숨을 죽이고 무언가를, 어떤 파국을 기다리고 있’(20)는 시점이다.

 

당장 내일, 당장 몇 시간 후에 계엄군이 중무장을 하고 시내로 진입, 도청을 향해 올 것인데거기에 있던 사람들의 상황은 어땠을까?

 

등장인물들은 그래서 당연히 실재했던 인물들이 이름만 바꿔 달고 나온다.

작품의 화자인 노명수는 투쟁위원회 대변인인 윤상우의 경호원 격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지금 나는 상우 형이 가는 데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경호하는 중이다. 상우 형은 그것을 몰랐다.”(19)

 

그렇게 투쟁위원회의 대변인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화자의 시각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각,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

 

왜 광주사람들은 총을 들었을까?

그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런 질문에 그래서 답해야 한다.

<당신의 부인이나, 딸이 정부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29)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시민들이 총을 들고 나섰다. 그렇게 나선 그들, 과연 계엄군에게 제대로 대항할 수 있었을까?

 

그 과정과 결과를 이 책은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입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시민군은 총을 쏘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시민군은 군대가 아니라 시민의 모임에 불과했다. 사람이 죽을까봐 겁이 나서 총을 쏘지 못하는 허망한 순간이 이어졌다.> (220)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당겨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221)

 

반면 거기에 진입한 공수대원들을 어땠을까?

 

<반면에 계엄군은 마구잡이로 총질을 하며 진격해 왔다.> (220)

<공수대원이 올라오더니 화장실 문을 열고 소총을 난사했다. 단발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223)

<그들은 무조건 난사를 한 다음에 대응사격이 없자 수색에 들어갔다.> (243)

 

그렇게 시민들은 진압되었고, 총과 군화발에 철저하게 무너져갔다. 그 과정에 이런 일도 있었다.

 

<공수대원 하나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내려오는 고등학생들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집에 돌아가라고 해도 끝까지 남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눈에 익은 학생들이었다. 공포에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오호, 살려준다니까 그제야 항복을 했다고?” 소대장이 물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공수대원이 대답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호적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벌써부터 빨갱이질이야? 이런 것들은 아예 일찌감치 싹을 잘라야 해. 야 새끼들아, 살려줄 줄 알았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대장이 학생들을 향해 드르륵 총질을 해댔다. >(236)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이런 기록, 의미 있다.

<어떤 여자 한 분이 흰 양말 수십 켤레를 가져와 시신의 맨발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신겨주던 모습> (73)

 

소설적 장치 하나, 희순의 존재다.

 

이 작품에서 화자를 도청, 그 자리에 있게 한 인물이 있다.

희순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상우 형을 끝까지 지켜.”

아침나절에 YWCA에서 등사기 롤러를 밀 때 꿈결처럼 희순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순은 곁에 없었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어떤 계시처럼 느꼈다.>(18)

 

<나는 민주화도 투쟁도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다.>(67)

 

그런데 정작 희순이라는 사람은 작품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뒤로도 화자가 계속하여 희순에 대하여 생각하고, 회상하면서 그 존재를 부각시키는데, 정작 나타나야 할 희순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화자는 계속에서 이런 힌트를 던져주고 있었다.

 

<분수대를 돌면서 희순을 생각했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사랑.> (79)

 

이 말을 읽을 때에 알아봤어야 했다.

이 말이 말하고자 하는,어떤 이야기를, 눈치 챘어야 했다. 희순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그래도 그저 막연히 어디 멀리 가 있는 사람이거니 하면서, 그냥 읽었었다. 미심쩍은 마음을 자꾸만 무시하면서.

 

과연 희순은 어떤 사람일까, 어디에 있을까?

삭막하고 살벌한 그 현장에서 화자는 희순이라는 존재에 기대어, 죽음을 각오하고 버티고 있는데, 과연 희순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시, 이 책은?

 

<원하지 않았으나 운명이 나를 목격자로 만들었다. 나는 도청 마당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 (237)으니, 기록을 해야 할 것이다.

작가 정도상은 당시 광주에서, 도청에서 죽어간 사람들,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대신하여 이 작품을 쓴 것이다. 해서 이 책은 오롯이 역사의 기록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발언은 역사에 길이 새겨져, 기억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지난 아흐레 동안 이 도시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목격자입니다. 우리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한 치도 흔들림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록할 것입니다. 그 기록자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계엄군이 밀려오기 전에 어서 여기 도청에서 떠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충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어른들이 해야 합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은 살아남아 오늘의 목격자가 되어 역사의 증인이 돼주시기 바랍니다. (74-75)

 

당시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사람들이 이제 노년의 나이가 되어서,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증언하는 것을, 어제 그저께 매스컴을 통해 듣고 보면서, 위의 글을 다시 한번 새겨보았다.

 

이 책에는 광주의 그런 한과 눈물과 그리고 피가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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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 2 -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의 원작소설!
이병주 지음 / 그림같은세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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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2)

 

이런 대하소설, 결코 서두르지 않고 깊은 물을 이루며 흘러가는 강물처럼, 이야기는 서서히 흘러간다, 이제 전 10권중 두 번째 책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 느긋하게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면접한다 생각하면서, 읽어보자.

 

또 다른 여인, 박숙녀

 

장소와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 했는데, 조선조 말기 최천중 말고 또 어떤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1권에 여인들은 거의 다 등장했나 싶었는데 저자는 또 한명의 여인을 배치해두었다. 박숙녀!

최천중이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여인.

 

얼굴만 살펴보자.

 

그 여인의 얼굴을 청묘하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고, 그 모습에 배꽃의 정취를 느꼈기 때문이다. (164)

 

조금만 더,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문장들 음미해보자.

 

황봉련의 아름다움이 요염하고, 왕씨 부인의 아름다움이 우아하고,

정씨녀의 아름다움이 단려하다, 이 박씨낭의 아름다움은 청묘하다고밖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청묘한 여인이 하얀 배꽃을 꺾어 황혼의 노을 속에서 우수를 달래고 있는 풍정.    

 

미장부, 연치성

 

또 하나, 2권을 달구는 인물이 등장한다.

연치성.

최천중의 꿈을 이루는데 각각 한 몫을 담당하게 되는 인물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데, 2권에서는 바로 이 미남자가 등장하여 여인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문무를 겸비한 것만 해도 걸출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청년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여 몇몇 처녀들이 상사병으로 드러눕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하여간, 연치성, 최천중과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최천중의 뜻을 이루어가게 된다. 이런 대화는 그래서 연치성이 최천중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어떻게 지리와 인물에 밝으십니까' 라는 연치성의 물음에 최천중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는 이 산천의 의미를 알려고 뜻을 세웠다. 억울하게 죽은 인물들의 한을 샅샅이 내 가슴 속에 새겨 넣을 원을 세웠다. 나는 그들 원혼들의 염력(念力)을 빌려 내 힘으로 하고, 이 강산에 보람의 꽃을 피울 작정이다. (90)

 

최천중을 이해하기 위하여

 

최천중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다른 인물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조조, 그를 난세의 간웅이라고 하지만 영웅치고 간웅 아닌 사람이 있었겠나. 미천한 출신으로 천하를 잡으려면 간(奸), 교(巧)도 출중해야 하는 법이여. 유독 조조만을 간웅이라고 한 것은 나관중의 취향이 만들어 놓은 일야.> (288)

 

그의 생사관

 

生者以生爲樂(생자이생위락)인데 安知死不又死爲樂(안지사불우사위락)이리오. (18)

 

살아있는 자는 살아있다는 그것으로 낙을 삼는데, 죽은 자는 또한 죽음으로 낙을 삼을지 모르는 일이다.

 

북강 양길의 문집, 홍북강시문집에서 인용한 한 구절이다.

이 글에 대하여 최천중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덧붙인다.

 

<최천중은 과연 그럴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死者)가 죽음을 낙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자세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맹수를 가지고 있다. (275)

 

우리 주변에 사람 같은 놈 그다지 흔치 않다. 인면(人面)을 쓴 채 돼지일 수밖에 없는 놈, 개 같은 놈 여우 같은 놈, 독사 같은 놈이 우굴우굴하지 않은가. 그놈들을 말살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부득불 우리는 맹수가 되어야 한다. (279)

 

스승인 산수도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연치성에게 들려주며, 최천중은 연치성에게 다짐한다.

 

<나는 내 속의 맹수를 죽이지 않으려고 한다. 조정의 고관들과 관속들이 호랑이처럼 이리떼처럼 백성들을 노략하고 있는 판국에, 순하게만 곱게만 살아갈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런 그의 뜻, 응원하고 싶다.

 

이런 시, 한 수 외우고 싶다.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

羅衫隨手裂 (나삼수수열)

不惜一羅衫 (불석일나삼)

但恐恩情絶 (단공은정절)    

 

술에 취한 님 비단 옷을 잡으니

그 손에 따라 찢어질까 두려워

한 벌의 나삼을 아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은정이 끊어질까 두렵사외다 (177)

 

매창의 시다.

저자 이병주 선생이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한시들, 경전들, 그밖의 시문(詩文)들을 별도로 음미해 보고 싶다. 해서 그의 책속에 인용되는 한시들을 모아 하나의 별권부록으로 만들어보면 어떨지!

 

하나 더!

 

인생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기엔 너무나 지루하고, 무슨 일을 하기엔 너무나 짧다.’ (289) 는 말은 내가 2권에서 꼽은 글 중의 글이다.

 

이번 읽는 것으로 이 책을 세 번째 읽는다.

그전 읽을 때에는 줄거리에 재미를 붙여서 줄거리 따라 읽느라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 세 번째 읽으면서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이 보인다.

 

특히 그의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다른 각도로 보자면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고전에 대한 그의 신선한 해석을 엿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래서 그의 소설 면면에 묻어나는 새로운 고전 해석을 읽게 되는 기쁨도 맛보게 되니, 그의 소설을 읽을 때에 느끼는 기쁨은 그래서 일석 삼사조가 된다 할 것이다.

 

장차 어느 출판사에서 그의 책에 녹아있는 그러한 것들을 뽑아내어 <이병주의 고전 해석집>이란 제목으로 출판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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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 1 -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의 원작소설!
이병주 지음 / 그림같은세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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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碑 (1권)

  

이병주, 그의 글은 그윽하다.

 

그윽하다는 말은 깊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의 글이 어디 그윽하기만 한가? 길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글은 유장(悠長)하다.

 

유장한 것은 이런 대하소설에서 더욱 빛이 난다.

그가 집필한 대하 역사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를 손에 들면서 느끼는 감회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글이 그렇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책을 대할 때는 어떤 설렘이 앞선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몇 번째 대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의 글을 펼치면 설렌다. 더하여 책에서 묵향의 내음을 맡는다. 글이 새겨진 종이에서 배어있는 향기를 맡는 기분이 든다.

이런 대하소설, 결코 서두르지 않고 깊은 물을 이루며 흘러가는 강물처럼, 이야기는 서서히 흘러간다, 10권이니, 1권을 읽으면서는 그저 나타나는 인물들 형체만 익혀도 좋다.

 

아까운 그릇, 어긋난 인물, 최천중

 

우선 등장인물부터 살펴보자.

 

먼저 주인공인 최천중.

장소와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 조선조 말기, 그야말로 나라는 풍전등화, 세상은 혼탁의 시대, 그런 시대가 최천중 같은 걸물을 만들었다.

 

그를 설명하는 여러 문장이 있다.

 

아까운 그릇인데 때가 어긋난 인물 (216)

그에겐 상도(常道)가 비도(非道). , 범상한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용이 될 생각은 없고 용을 만들 작정이다. (218)

 

여주 신륵사에 묵고 있던 그의 시야에 포착되어 이윽고 등장하는 인물은 미원촌의 왕씨 부인이다. 그녀를 통하여 최천중은 천하를 얻으려는 꿈을 꾼다.

이 책은 그런 꿈의 기록이다.

 

그의 꿈을 이루는데 각각 한 몫을 담당하게 되는 인물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데, 각 사람마다 연결되는 그 인연을 맺어주는 이야기가 재미를 만들어준다.

 

이 소설의 남주인공이 최천중이라면 여주인공은?

단연코 황봉련이다.

 

황봉련과의 만남, 요즘 같으면야 자전거를 타고 가다 부딪혀 인연을 만들지만 어디 이런 역사물에서 그런 일이 가당하겠는가? 그 둘의 만남과 남녀로서의 섞임은 한 폭의 그림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활동사진으로 묘사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이런 리뷰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이병주 선생의 동서고금의 온갖 서적을 인용하는 그 솜씨에 독자인 나는 그저 감탄하고 경탄한다. 그의 붓에서 자유자재로 흘러나오는 경전들, 시문(詩文), 사연들이 줄줄 흘러나오며 엮여지는 글들을 놀람으로 맞이하고, 기쁨으로 음미하게 된다.

 

황봉련, 장자를 논하다

 

이런 글, 읽어보자.

먼저 저자는 최천중을 장자를 숭앙하는 인물로 설정한다. (34)

 

그런 다음, 황봉련의 입으로 장자를 들려준다.

 

최천중이 침어낙안 폐월수화 (沈魚落雁 閉月羞花)’를 거론하자, 황봉련이 답한다.

 

본래의 뜻은, 인간 세상에서 일컫는 아름다움이란 별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전 풀이했어요. 침어낙안이니 미인도 보잘 것 없는 것이고, 폐월수화니 그게 무슨 대단한 것이냐고 장자는 말한 거예요. (267)    

 

맞다. 황봉련이 말한 게 맞다.

장자에는 이렇게 나온다.

 

사람들은 모장과 여희를 미인이라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녀를 보면 깊이 들어가고 (魚見之深入)

새들이 그녀를 보면 높이 날아가고 (鳥見之高飛)

고라니와 사슴이 그녀를 보면 반드시 달아난다.

이 넷 중에서 누가 올바른 미색을 안다고 생각하는가?

(장자<제물편>, 기세춘 역, 95-96)

 

그러니, 그 뜻이 다른 의미로 관용적으로 굳어져 버린 것을, 독자는 알게 된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집념이란, 그것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 갖지 않은 사람에겐 원래 터무니가 없어 뵈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 (13)

 

미지(未知)의 시인을 대한다는 것은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81)

 

도를 통한 사람은 천자문에서도 천리(天理)를 읽는 법이다. (95)

 

달빛 아래 보아야만 그 진미를 알 수 있는 꽃이 있고,

햇빛에서 보아야만 진미를 알 수 있는 꽃도 있다. (350)

 

이런 글, 생각을 키운다

 

이런 대화 읽어보자.

 

- 조물주는 왜 이런 것까지 만들어놓았습니까?

- 다 뜻이 있을 것이다.

- 그 뜻을 알고 싶단 말입니다.

- 몰라도 되는 건 알 필요가 없지.

- 그래도 꼭 알고 싶은걸요 뭐.

- 그런데 알고 싶으면 왜 공부는 하지 않고....(303)

 

이런 글 읽고,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기쁨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 한 수 외우고 싶다.

 

情多處處有悲歡 정다처처유비환

何必?桑始浩歎 하필창상시호탄

 

다정한 사람은 무엇에건, 어느 곳에서건 슬픔과 기쁨을 느낀다.

천지가 진동하는 대사건이 있어야만 큰 슬픔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73)

 

어디 이것뿐인가. 도처에 꽃처럼 피어 유혹하는 시들을 만나 그 뜻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한시의 그윽함에 반하게 될 것이다.

 

이병주의 손에 의해 창조된 여인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읽어보는 이병주의 글이기에 다시 한번 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참으로, 흥미 있게, 셀레어 가면서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이 아까워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음미해 가면서 읽었다.

 

이번에는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문장 하나 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며 읽었다.

이병주, 그가 쓰는 문장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그 문장에 반해, 그 문장을 타고, 그 문장이 보여주는 정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여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저자의 붓끝을 따라가 보면, 창세기의 에덴 동산에서 울려퍼졌던 아담의 감탄사가 다시 재현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컨대, 황봉련이 가마를 타는 장면이다.

 

황여인은 우아한 동작으로 가마에 올랐다. 그 동작이 구 총각의 눈엔 한 폭의 그림이었다. (200)

 

이 글을 읽고, 잠시 그 모습을 그려본다.

아직 여인을 모르는 구 총각의 눈엔 황봉련의 존재 자체가 우아함 자체였을 것이다. 그 우아함이 살아 움직이며 사뿐히 (이런 표현 용서하시라, 이 정도 단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나의 치졸을!) 걸어 가마에 오르는 모습은? 천상의 선녀가 하강한 듯 보였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그의 뇌에서는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 가지고 감탄하고 말고 하느냐고?

그럼, 다른 정경, 여인이 등장하는 그림과 그림, 보러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떨지? 내 필력이 달려, 묘사를 못하는 거, 안타까울 뿐!

 

사족, 하나

 

이 소설이 드라마화 되어 독자들을 만난다 하니,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염려되기도 한다. 최천중의 역을 맡은 탈렌트가 과연 그 역을 제대로 풀어낼지, 아니면 소설 속에 이미지로 남아있어야 할 그 모습이 의외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지? 그래도 일단 기대를 해보자. 이번 주 일요일 밤이다. 517일 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데....그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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