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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평점 :
잡지 <월간 여성의 친구>의 기자인 '마쓰다'는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에서 유령이 목격되었다는 제보를 조사하게 되고, 그곳에서 1년 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단 야쿠자가 카바쿠라 호스티스 여성을 살해한 사건으로, 범인은 현장 인근에서 체포되었지만 피해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되었다. 사건 발생 시간은 오전 1시 3분. 마쓰다는 지난 이틀 연속으로 자신에게 걸려온, 1시 3분의 말 없는 전화를 떠올리며 뒷골이 오싹해지는데...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현장에서 그 피해자와 비슷한 모습의 유령이 목격되고,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바로 그 시각에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거듭 말은 없지만 끔찍한 소리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 오컬트 적인 설정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제노사이드]에 이어서 나의 인생책이 될지도!!' 하는 기대감과 '하지만 이걸 모 작가의 모 시리즈처럼 진짜 무미건조한 과학적 트릭으로 설명하면 진짜 실망할 지도..' 하는 걱정으로 책 페이지를 쉬지 않고 넘겼는데, 과연 다카노 가즈아키는 나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할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호러니까 불가능은 없다'고 무책임하게(?) 넘어가는 것도 아닌, 예상 밖의 전개와 결말을 이끌어냈다. 유령 목격담을 조사한다는 가벼운 시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전개였고, 300페이지 남짓한 분량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묵직한 볼륨의 사건이었다. 여러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조각도 부족함이 없는 퍼즐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전개를 보여준 작가의 신작답게 주인공부터 여러 등장인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까지 정말 빈틈없는 설정을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무도 그녀의 실체를 모른다. 출신지는커녕 본명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신원불명인 채로 사망했던 여자는 육체를 지닌 채로 이 세계에 존재했을 때조차
실체 없는 유령처럼 살아왔다."
책 속에 등장하는 형사는 해당 사건이 '종결사건'이라며 거리낌 없이 마쓰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데, 마쓰다가 의문을 품는 것처럼 나 역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범인이 검거되지 않았다면 분명 '미제사건'으로 남았을 텐데 피해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아도 '종결'될 수가 있구나.. 하는 것. 또 한 가지, 피해자가 부잣집의 영애였다면 오래도록 화제가 되었겠지만 피해자가 호스티스라는 게 밝혀지자 빠르게 관심이 식었다는 이야기를 보며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지만 너무 현실적이라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니 그 자체로 섬뜩해졌다.
이 책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과 달랐다. 뜻밖의 가벼운 시작, 예상치 못한 전개, 어딘지 모르게 작가답지 않게 느껴지는 결말까지. 시작이 가벼운 것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는 전개도, 강력한 반전의 한 방이 있는 게 아닌 결말도 뭔가 내 취향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냥 이 책 한 권이 완벽하게 내 취향이었다. 와, 다카노 가즈아키는 다카노 가즈아키구나.. 하는 생각을 결국은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10년의 기다림을 하루 만에 끝내버린 게 너무 아쉽지만 하루 만에 끝내지 않을 수 없었던 책 [건널목의 유령]. 제발 1년에 한 권씩 책 좀 써주시면 안 될까요!?!? 하는 편지라도 작가에게 써보내고 싶을 만큼 이 작가의 다음 책을 또 애타게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