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을 위한 제3의 본성
정춘훈 지음 / 바이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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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를 대비하는 제3의 본성으로 최고의 나를 만나자!'를 캐치프레이즈로 하는 '아름다운 삶을 위한 제3의 본성'.



저자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공기업에 입사하여 정년을 앞둔 지금까지 근무해왔다.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은퇴 후 인생을 계획하며 고민을 하다가 제3의 본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다.

저자는 제1의 본성을 선천적 본성이라고 얘기한다. 태어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는 본성으로, 천부적 성향과 성격,유전적 정신력 등이 이에 속하며 변화하지 않고 확정적인 특성이 있다.

제2의 본성은 후천적 본성이다. 자라면서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는 본성으로 지식, 기술, 재능 능력 등이 주요 본성의 요소이다. 이 후천적 본성은 사회에 진출하기 전까지 형성된 것으로 변화시키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제3의 본성은 사회적 본성이다. 사회적 본성은 절제학적 본능이라고 한다. 사회 진출 후 급변하는 주위 환경에 적응하면서 성공적인 삶을 위해, 승리하는 생활을 위해 필요한 사고방식, 태도, 자세 등이 본성의 주요 요소들이다. 유연하고 변화하기 쉬우며 확장성을 갖고 있는 본성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나서 이 제3의 본성을 발휘해 성공적인 인생을 만들어가라고 조언한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업무에 이 제3의 본성을 적용하는 방법과 그 예시들을 말해준다. 적응이 필요할 만큼 많은 변화가 발생하는 이 시점에 필요한 능력이지만, 굳이 제3의 본성이라는 네이밍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유연성과 쉽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은 노력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 부분인데 이것이 '본성'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가볍게 읽어볼 자기계발서로는 적당한 듯하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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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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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에 휘말려 여기저기 하염없이 떠돌아다니다 전쟁이 끝나고 거액의 유산 상속을 받은 20대 한 여성이 겪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을 소개합니다.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은 표지에 앤티크 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도 '주인공이 언젠가 저런 빨간 스포츠카를 타겠지?'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처음 제목에서 '앨리스'라는 단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도시를 환상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는데, 호주의 '앨리스 스프링스'라는 지명을 따온 거라는 걸 2권에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도시는 앨리스처럼'은 주인공 '진 패짓'의 신탁 관리인 '노엘 스트래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진 패짓의 이모부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할 준비를 하면서 노엘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여동생 앞으로 유산을 남기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가 사망하자 노엘은 상속 절차를 집행하게 되는데 진 패짓의 어머니도 사망하고, 진 패짓 오빠도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어 결국 유산은 진 패짓에게 돌아갑니다. 많은 절차 끝에 결국 진 패짓과 연락이 닿게 되고, 진 패짓이 어릴 때부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긴 여정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진 패짓은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말레이시아(소설에서는 '말레이'로만 나오더군요)로 건너가 속기사로 일하고 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일본군에게 전쟁 포로로 억류되게 됩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 여성 포로수용소가 없기도 했고, 여성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몰랐던 군인들은 진 패짓과 일행들을 말레이시아 이곳저곳으로 걸어 다니게 하면서 떠돌게 합니다. 덥고 비위생적이었던 힘든 환경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어갔지만 딱히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던 그들은 일본군이 시키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어느 마을에서 호주인 포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 호주인은 진 패짓 일행들을 안타깝게 여겨 비누도 구해주고, 먹을 것도 구해주다가 일본군의 닭을 훔쳐 보내주었다가 그 일이 들켜서 죽을 정도로 맞게 됩니다. 진 패짓과 일행들은 그 일이 일어나자 다른 곳으로 바로 보내지게 되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진 패짓이 영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유산 상속의 사실을 알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가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우물을 만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던 진 패짓은 우물을 다 만들고 나서 그를 보러 호주러 갑니다. 호주에 가서는 그가 자신을 만나러 영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기다리면서 그가 살던 곳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호주에서 다시 만나게 된 진 패짓과 조 하먼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진 패짓이 구상한 사업들을 하나씩 실행해 가기 시작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너무 멀리 있는 도시에 나가야 했던 사람들을 위해 가죽 공방을 만들고, 돈을 번 사람들이 돈을 쓸 곳을 만들기 위해 아이스크림 가게를 만들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 쉴 공간으로 수영장에 영화관 등등...


시간이 지나 노엘이 직접 그곳을 찾았을 때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기 넘치는 곳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소설을 모두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돈이 있으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진 패짓이 유산 상속을 받지 않았다면 평생 영국에서 속기사 일을 하며 계속 살고 있었겠지요. 운이 좋았다면 진 패짓을 찾아온 조 하먼을 만났겠지만 그 당시 너무 외지에 살고 있었던 터라 결혼은 하지 못했겠지만요.


사람들에게 정이 생기고 사업가 기질도 있었기에 때에 맞춘 적절한 사업이 가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살 곳을 구하려고 한다면 이미 상업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지구 계획이 잘 되어 있어 미래가 밝은 '진 패짓'과 같은 사업가들이 구상한 곳에서 살고 싶을 겁니다.


실화라고 하던데 그 당시에서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지금은 어떻게 변화하였을지 궁금하네요. '앨리스 스프링스'라는 곳과, '미드허스트', '윌스타운'.

팬데믹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면 꼭 가고 싶은 나라가 호주인데, 그에 관련된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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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걸려버렸다 - 불안과 혐오의 경계, 50일간의 기록
김지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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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가 급등하면서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기가 무서웠던 때가 있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집에서 코로나 동향을 확인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병원에서 코로나와 싸우고 있었다.

50일 동안이나.


코로나에 걸리면 격리 대상이 되고 확진자 번호가 입혀져 동선이 드러나고 추가 확진자가 생긴다.

그저 그 동선에 내가 다녔던 곳이 겹치지 않기만을 바라기만 했던 차에,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책을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감염되는 것만이 가장 두려울 일반 사람들에게는 정작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후유증이 생기고, 어떻게 아픈지는 상세히 알려진 바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책으로 자신이 코로나에 걸려 싸워온 50일간의 기록을 펴낸 저자에게 감사하며 저자의 힘들었던 그 생활을 들여다보았다.



표지의 사진은 책을 읽어본 결과 50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던 날의 저자 사진이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당시 저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책 날개에 저자의 간단한 소개 글이 실려있다.

면역력이 약해 사스와 메르스도 걸리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을 저자.

한순간의 방심으로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코로나에 걸리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달라졌을 그.

어떤 생활이었는지 들여다보자.



할머니의 장례식 후에 친구를 만나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고 다음 날,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고.

그리고 그다음 날, 친구는 자신의 코로나 확진 사실을 알려왔다.


저자는 바로 관할구 보건소에 전화를 하지만, 역학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사비로 검사를 해야 한다며 조금 더 기다려보란 말을 듣게 된다.

그러고 며칠 후에 저자 역시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 조치에 들어가게 된다.


급히 물건들을 챙기고 구급차를 타고 국립중앙의료원 별관에 입원하게 되는데, 입원실에서는 간단한 세면 정도만 가능하고 샤워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저자는 근 5주 동안을 물을 적신 수건만으로 몸을 닦으며 생활했다고 한다.

외부와의 접축은 일절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 밥은 도시락으로 나왔는데 항상 비슷한 메뉴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 증상이 호전되자 가족으로부터 그토록 먹고 싶었던 떡볶이를 건네받는다.

직접 얼굴도 보지 못하고 병실에 난 창문으로 손인사 밖에 할 수 없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저자의 증상은 열이 오르고 목이 따끔따끔 아파졌다고 한다.

38도까지 열이 올랐다고 하는 데 할 수 있는 치료법은 해열제를 먹는 것뿐.

너무 힘들어하면 병원에서 아이스팩을 주는 것 외에 달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코로나에 걸린 것도 서러운데, 막상 퇴원을 하고 나니 더 충격인 것은 주변 사람의 반응이었다. 완치가 되어 퇴원한 건데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하라고 하고, 운동이 부족하여 트레이너에게 연락을 하니 트레이닝이 가능한 지 윗선에 문의해보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코로나에 감염되어 확진자 판정을 받고 50일간의 힘든 병원 생활 끝에 완치되어 사회로 나왔는데, 정작 사회는 나를 확진자로 낙인을 찍고 격리를 시키려 한다. 서운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하니 이해는 되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쩌지 못한다.


입원 초기에 저자는 주변에 자신의 입원 사실을 알린다. 할머니 장례식이 끝난 후 가족과 식사를 한 경험이 있어 가족들도 자가격리 대상이 되어야 했고, 회사에서는 감염될 여지가 없었지만 자체적으로 재택근무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또, 머리를 하러 갔던 미용실, 가끔 술을 마시러 갔던 바에서도 직원들이 자가격리를 2주씩 했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감염된 것도 아닌데 괜히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시간이 지난 후 트레이너와 전처럼 운동을 하게 되었지만 회사에서는 권고사직과 다름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씁쓸하지만, 할 수 없이 퇴사를 해야 했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과연 감염된 사람보다 더 할까?

그러고 보면 병에 걸려 아픈 것보다 정작 감염되고 난 후 자신이 확진자로 낙인찍힐까 봐 사람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재감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는 전문가 소견도 있는데, 사람들은 '걸렸었다'라는 이유로 그 사람을 기피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고 코로나에 대해서 이해하고, 조금 나아진 태도로 완치된 사람들을 대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 역시 한순간의 방심으로, 혹은 생각지도 못한 접촉으로 감염된 것인데 그것 때문에 낙인찍힌 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

그저 항상 조심할 뿐이다.

마스크를 꼭꼭 쓰고, 손을 잘 씻고, 내가 할 수 있는 예방을 할 뿐이다.


그러다 걸리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또 저자는 회사에 다니던 중 감염이 되었기 때문에 코로나에 걸린 사람을 위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정부에 신청해서 받고 있다면, 회사에서는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와의 싸움.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그저 우리는 항시 예방하고 위생적인 생활 태도를 준수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어서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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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 번역을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노경아 외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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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 말이에요.


저는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매일 책을 옆에 두고 지내요.

그렇게 책을 읽다가 어느 날 영어로 된 책도 읽어보자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언젠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길 만큼 실력이 늘면 번역에 도전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여기에 번역 일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경아, 김지윤,김희정, 조민경, 박소현 번역가분들은 일본어 혹은 중국어를 번역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와 번역 일을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 번역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섯 명의 번역가분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개개인의 에세이를 각각 묶어놓은 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책날개 부분에는 이렇게 저자분들의 소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중 특히 저는 만화를 좋아하는 데 만화를 번역하시는 분의 이야기도 읽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번역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일본어 번역가 노경아 님의 이야기.

노경아 님은 학창 시절 글쓰기를 좋아하고 외국어를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대학도 일본어 전공으로 진학했었어요.


그런데 취업은 전공이 크게 상관없는 유통업계 회사에 하게 됩니다.

이 회사에서는 번역을 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요, 잠시 아르바이트 격으로 교본 정도를 해본 게 다였습니다.


두 번째 회사에서 번역할 기회가 있었어요.

옆 팀에 일본어 계약서가 들어왔는데 노경아 님이 일본어를 한다는 것을 아는 친한 상사분이 번역을 부탁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하던 일이 재미없던 차에 일본어 번역을 접한 노경아 님은 게임을 하듯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한두 시간 만에 초벌 번역을 끝내버립니다.


번역을 훑어본 상사분이 "우와, 벌써 이걸 다했어요? 세상에, 이런 대단한 능력자를 곁에 두고 몰라봤군요." 하며 칭찬을 하시네요.


그러던 어느 날, 가끔 번역에 대해 찾아보기도 하고 번역 관련 책도 읽곤 했던 노경아 님은 퇴사하고 전업주부의 생활을 하다가 출판 번역 아카데미에 지원하여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수업을 듣다가 지원한 도서 번역 에이전시에서 샘플 테스트를 받게 되었는데요, 그 테스트에 통과해서 책 번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아카데미에 이야기하니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좋을 것 같다'라며 중도 환불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노경아 님의 번역가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번역을 하는 작업은 혼자 하는 일입니다.

회사처럼 여러 사람들과 같이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해야 합니다.

번역할 책을 받아 쭉 훑어보고 언제까지 번역을 끝내서 출판사에 보내줄 수 있는지 가늠해야 하고요, 원문에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인터넷과 자료를 찾아봐야 하고요, 번역한 글들을 훑어보고 틀린 부분도 고쳐야 하고요, 조금이라도 더 매끄럽게 다듬기도 해야 합니다.

번역 중에 특히 출판된 책을 번역하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모든 작업이 끝나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받아봤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만화를 번역하시는 박소현 님의 경우에는 번역한 만화책이 모두 1,300여 권에 달한다고 하네요.


번역을 하면서 책상머리에 앉아 쉼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조그만 글자를 살펴보느라 눈이 쉽게 피로해지지만 출판되어 나오는 책을 보는 기분과, 작업을 끝낸 뒤의 그 성취감 때문에 번역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번역가는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아서 어느 정도 이상의 번역료를 받지 않는다면 여러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된다고 합니다.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점점 책 한 권을 모두 옮기는 과정, 굉장히 뿌듯할 것 같아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저도 언젠가 제 이름으로 번역된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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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앤 가디너 퍼킨스 지음, 김진원 옮김 / 항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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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일 대학교는 1969년에서야 처음으로 여학생을 입학시켰습니다.

575명의 여학생들.

입학하자마자 그 여학생들은 기존의 남자 위주의 학교 분위기를 동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그 노력의 역사가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한국보다 월등히 여성이 살기 좋아 보이는 미국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기 위해 오래된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고등교육에 대해 공부하다가 박사 학위 논문으로 1969년에 예일 대학교에 들어온 첫 여학생들에 대해 써보기로 합니다. 앤 가디너 퍼킨스 역시 예일 대학교 졸업생이었거든요. 앤 가디너 퍼킨스는 1977년에 예일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역사를 공부하면서 [예일 데일리 뉴스]에 글을 써 3학년 때 편집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처음으로 예일 대학에 입학한 여학생들이 처했던 상황을 몰랐었죠.

수십 년이 지나 그에 대해서 찾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유로워 보이던 미국의 유명 대학 예일 대학교가 268년 동안 남학생의 성지였다가 여학생을 받아들였다니,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해서 살짝 놀란 마음으로 이 책을 접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대학교나 여성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답답한 상황을 해결해나가는지도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일 대학교가 여성 대학생을 받아들이기로 한 1969년 당시에는 아이비리그의 대부분 학교들이 여성을 받으면서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려는 남자 대학생들의 비율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학교는 남녀공학이라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예일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그 당시 예일 대학교의 총장 브루스터는 남자 학생들만 있는 예일 대학교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과 일부 교수진이 여자 학생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어쩔 수 없이 승인하게 됩니다.


총장 브루스터는 이후 예일대에 입학한 여성 대학생들에게 아주 큰 방해물이 됩니다. 답답하도록이요...




예일 대학교에 입학 승인을 받아 처음으로 예일 대학교에 들어오게 된 여성 대학생들은 처음에는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예일 대학교에 나도 다니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문제점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디를 가나 남학생들밖에 없는 현실을요 여러 기숙사에 여학생들을 나누어 배치해 다른 여학생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강의를 들으러 가면 남학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감내해야 했으며, 일부 몰지각한 교수에 의해서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분노한 예일대 여성 대학생들은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힘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여자 기숙사의 안전을 요구합니다. 그 당시 외부인도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여성 대학생이 기숙사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외부인이 침입해 나쁜 일을 당할 뻔한 사건도 있었고, 심지어는 차를 몰고 온 사람들에 의해 강간을 당한 대학생도 있었으니까요. 큰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총장 브루스터는 기숙사게 자물쇠 설치를 승인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동아리부터도 그렇습니다.일부 동아리에서는 여학생을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학생들만으로도 충분하고 여학생이 들어오면 수준이 낮아진다며 말이죠. 입학 성적은 여자 학생들이 훨씬 뛰어났는데 말입니다. 입학 지원서를 받을 때 남자 학생들은 7:1의 꼴로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면, 여자 학생들은 그 두 배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습니다. 남학생 할당제 때문입니다. 남자는 무조건 1,000명은 입학해야 하고, 나머지를 여자로 뽑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또, 운동 동아리에서 여자들로 구성된 동아리를 만들 수 없어 여학생들끼리 모여 제대로 된 장비나 공간 없이 자신들이 준비한 장비만으로 연습해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자 학생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어 비어 있는 교실에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예일 대학교에 처음 생긴 여성 단체 '시스터후드'입니다. 시스터후드 멤버들은 학교 내외에서 예일 대학교의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든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예일 대학교에 첫 여자 대학생이 입학한 해는 1969년 9월, 1972년 9월에 이르러서야 남학생 1,000명 할당제 정책이 폐지되고 남학생 60퍼센트, 여학생 40퍼센트를 뽑게 됩니다.


이 사이에 예일 대학교 안에서, 또 밖에서 연방정부에 이르기까지 성차별 문제로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여학생이 강간을 당해 낙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예일 대학이 위치한 코네티컷 주에서는 불법이라 합법인 뉴욕 주로 가서 수술을 받고 돌아와야 하는 문제들도 있었죠. 결국 코네티컷 주에서도 낙태금지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게 되고, 현재 2020년의 대한민국과는 달리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술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미국의 197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한국에서는 이렇게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여 항의를 하고 근거를 들어 주장을 해도 갑갑하고 꽉 막힌 남성 권력자(마치 브루스터와 같은)들은 전혀 공감을 못하고 있죠.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국 역시 아직까지도 갈 길이 더 남은 상태입니다. 한국보다야 나은 위치겠지만요.


결국 저는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해가며 이렇게나 인식 차이가 크다는 것에 낙담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부당한 일에 항의하면 조금씩 나아질 거란 희망을 조금이나마 가지려고 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솔직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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