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사람이 꿈꾸는 최상의 사회를 ‘유토피아’라 한다. 흔히 낙원 또는 이상향이라 부르는 곳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란 말 속엔 어디에도 없는 장소란 의미도 있다. 그만큼 쉽게 찾거나 머물 수 없는 곳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지극히 부정적이고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그 어느 곳에도 없다는 ‘유토피아’를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찾아 헤매는 이유다.
해나와 에이브 역시 ‘유토피아’에 살기를 원했다. 그들이 처음 선택한 유토피아는 ‘태양의 도시 아르카디아’ 였다. 아르카디아는 누구나 평등하게 일한 몫을 똑같이 나누고 자유로운 사랑을 지향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낼 아르카디아 하우스를 꾸리는 데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그곳에서 그들의 작은 조각 비트가 태어났다. 해나와 에이브는 아르카디아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라 믿었기에 비트가 그 안에서 행복하길 바랬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아르카디아가 점점 몰락하는 것을 괴롭게 지켜보던 해나와 에이브는 비트와 함께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새롭게 찾은 곳은 아르카디아의 바깥 ‘축복받은 자의 섬’ 이었다. 그곳에서 비트는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이별과 상실이 가득한 그곳에서 비트의 유일한 기쁨은 딸 그레테뿐이었다.
서서히 나이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많은 것과 이별하고 더 많은 것을 상실해가는 과정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불운이 끝없이 반복됐다. 정말 유토피아는 없는 것일까? 어느덧 중년이 된 비트는 믿고 싶지 않았다. 비트는 더 늦기 전에 해나, 그레테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이상향’을 찾기로 했다. 그곳은 과연 어디고, 그들이 도착한 곳에서 원하는 행복을 만날 수 있을까?
세상이란 작은 조각과 조각이 모여 만드는 곳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족을 이루고 가족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그렇게 사회와 국가가 생겨난다. 소설은 그 세상을 닮았다. 글자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과 문장이 어우러져 한 권의 책을 이룬다.
책 속에 담긴 세상은 우리네 세상처럼 허술하고, 아리고, 또한 견고하고 아름답다. 한 권의 책은 결코 거대한 세상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데, 로런 그로프의 소설은 그 세상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위치에 있다. 그녀의 소설은 빨리 읽을 수가 없다. 인간적인 슬픔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문장 때문에 자주 읽는 것을 멈추게 된다.
‘아르카디아’를 읽는 내내 비트가 과연 이상향을 찾을까 궁금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나는 깨달았다. 우리에게는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게 이상향을 만나는 일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