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1
정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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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이 행복이나 적응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아이를 낳는다.

불일치와 박탈 상태에 있을 때 출산을 기피한다.

p.175

14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작년 말 이직을 했다. 14년을 다니면서 연애와 결혼, 두 아이를 출산했다. 두 아이 모두 출산을 5일 남겨두었을 때까지 출근을 했다. 큰 아이를 낳고 6개월 만에 직장에 복직했다. 진통하면서도 회사에서는 전화가 왔고,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으면서도 노트북으로 일을 했다. 육아휴직 중에도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나가 잔업을 처리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볼 수 있지만, 7년 전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그나마 그렇게 했기 때문에 4개월이나마 육아휴직을 (겨우) 받을 수 있었고, 복직 후 남은 8개월을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적응 시간을 3일 밖에 갖지 못한 채 떼어놓은 아이는 아침마다 울었고, 눈이 팅팅 부은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영화를 누리려고 핏덩이를 떼어놓고 출근을 하는 건가...!'하는 자괴감에 매일같이 울면서 출근을 했다. 둘째 때는 그나마 상황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핸드폰에 어린이집 번호가 뜨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전화의 상당수는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열이 날 때 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친정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셨던 터라, 아이의 육아 공백을 상당수 채워주셨다. 남편은 출산휴가조차 쓸 수 없는(쓸 수는 있지만, 남편이 빠지면 그 여파가 팀원들에게 가기에 차마 쓰지 못했다.) 상황이었던 터라(출산 당일만 자리를 지켰고, 퇴원 후 조리원으로 이동할 때도 친정 부모님이 도와주셨다.), 출산 후 육아부터 지금까지 육아는 모두 내 몫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와닿는 것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으로 직접 겪어낸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10개월가량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4개월이 채 못되어 다시 취업을 했던 이유는 올해 3월 큰 아이의 입학 때문이었다. 돌봄교실 신청 자격 요건이 맞벌이부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는 입학과 동시에 늘봄 학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가슴 한 편에는 엄마의 퇴근시간까지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내일모레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반 인원은 총 18명이다. 여아가 10명, 남아가 8명. 총 4개의 학급으로 1학년 전체 인원은 80명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 학교는 학생 수가 많은 편이라 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작년에 비해 5,000명이 줄었다고 하는데 이제서야 그 말이 피부에 와닿았다. 그래도 내 주변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매스컴에서는 그런가 싶었는데 인원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매년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정부는 아이를 낳게 하려고 많은 세금을 투입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왜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는 것일까? 단지 돈 몇 푼에 아이를 낳는 무모한 짓(?)을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앞에서 내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했는데,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실제적인 수치로 대입한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할 때도 많지만, 매일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상당수다. 너무 힘들 때는 내가 왜 아이를 둘이나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아무리 세대가 달라졌다 하고, 인식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육아와 살림의 대부분은 엄마의 몫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경력과 아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세대 속에서 여성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아이를 낳기에는 모든 상황이 이미 답정너가 되어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도 맞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아이를 낳지 않아야 될 수많은 이유가 산재해있다. 출생률은 단 한 가지 이유가 해결된다고 급등하지 않는다. 바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0.6의 출생률의 다양한 이유를 하나하나 꼽고 있다. 20년간 4차에 걸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대안들을 통해 변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저자는 그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설명한다. 단시간에 해결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들이 너무 많다. 아예 대한민국 대개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 사람의 인식이 아닌, 다변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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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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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흠칫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 생각하고 책을 봤는데, "있다" 였기 때문이고, 사회과학 분야의 책일 거라는 생각과 달리 장편소설이었다는 것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작가의 이름이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는데, 작년 꽤 선명한 이미지를 남긴 단편소설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시작은 이 책의 주인공인 김한섭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작과 끝이 이어져 있는 기분이다. 한섭씨로 불리는 그는 전직 2선 국회의원이자 사회부 장관 출신이다.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가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마주하는 한섭은 인사도 마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그에게 아쉬움을 느낀다. 자신을 못 알아봐 준 것에 대한 아쉬움도 그중에 일부 있긴 했지만, 그걸로 마무리하기에는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한섭은 사실 공치사를 하거나, 생색을 내는 정치인과 선이 좀 다르긴 했다. 대학시절 군부가 세상을 장악했던 시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운동권 학생이었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목도하며 착한 사용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은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되었다. 물론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한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그는 사회부 장관으로 노인복지에 관한 정책을 끌어내어서 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가의 재정으로만이 아닌, 기업들의 도움을 끌어내기도 했고 결국 그 일로 복지정책을 완성해 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야당 후보인 이동현은 공약으로 노인연금을 폐지를 시작으로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노인들에게 주던 핸드폰 보조금 폐지 등을 내세운다. 결국 그가 대통령이 되자, 사회는 노인에 대한 모든 복지정책을 폐지하기 시작한다. 졸지에 노인들은 생계를 걱정할 지경이 되고 만다. 결국 노인 범죄와 자살률이 치솟기 시작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노인들이 식당에 들어서면 선불로 계산을 받는 식당들이 생겨난다. 무임승차 폐지뿐 아니라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도록 막기까지 하는 상황이 연거푸 계속되자, 한섭을 필두로 노인들이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하기 시작한다. 과연 한섭과 노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까?

사우나를 즐기는 장관, 국민들과 소탈하게 곰국 한 그릇 먹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정치인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지라 김한섭의 모습은 색다름을 넘어 호감과 실제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사실 책 속 이야기는 과장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의학이 발전해서 기대수명은 점차 늘고 있다. 결국 소설 속 이야기는 언젠가 우리 사회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100세를 넘게 사는 시대에서 노인들의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다행히 책 속 노인들의 모습은 태극기 부대를 연상시키지는 않았다. 아마 한섭이 정도를 지키며 이들을 대변했기 때문일 테지만,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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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Blu (리커버)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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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너무 거대하고 잔혹해서,

내 마음이 현실에 발을 내리지 못할 따름이라고 자기 분석해 보기도 한다.

너무도 생생한 아오이와의 나날들, 그 망령과도 같은 과거가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두 개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주인공인 아오이의 입장에서 기록된 Rosso와 쥰세이의 입장에서 기록된 Blu.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더 생경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누구의 입장이냐에 따라 이야기가 펼쳐지는 색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리라. (역시 이 책이 두 권으로 만들어진 이유를 Blu의 마지막 장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아가타 준셰이는 지금 피체에 있다. 그는 고미술 복원가의 삶을 살고 있는데, 공방의 대표인 조반나를 상당히 신뢰하고 어머니이자 멘토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와의 특별한 관계 중에는 조반나의 모델 역할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것도 누드모델 말이다. 조반나의 모델이라는 사실이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조반나의 애정을 받는 준셰이인지라, 준셰이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공방 사람들이 있긴 하다.

현재 준셰이는 메미라는 이름의 일본과 이탈리아 혼혈인 여자친구가 동거를 하고 있다. 메미는 밝고 쾌활하지만, 이국적인 외모와 달리 이탈리아어를 거의 못한다. 굳이 배우려고 하지 않기도 한데, 그 안에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자신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다.

뛰어난 실력의 준셰이는 프란체스코 코사의 그림 복원을 거의 마무리 짓던 중, 누군가의 침입으로 그림이 찢긴 것을 알게 된다. 평소 자신을 좋게 보지 않는 다카나시의 짓이라 생각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조사가 들어가고 공방 내부인의 소행일 거라는 추측으로 공방은 들썩인다. 그러던 중, 조반나는 결국 공방을 닫기로 결심한다. 조반나의 공방에서의 생활이 행복했고, 그곳을 떠난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준셰이는 방황하기 시작한다. 결국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준셰이. 유명한 화가인 할아버지 옆에서 미래를 고민하던 차에,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메미를 만나게 되는 준셰이. 일본으로 돌아오자, 아오이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져간다. 학창 시절 아오이와 함께 지냈던 곳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동기인 다카시의 방문을 받는 준셰이. 그로부터 아오이의 이야기를 건네 듣게 된 준셰이는 아오이의 주소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헤어지게 된 큰 이유였던 사건이 자신의 오해라는 사실과, 그 일에 자신이 극도로 증오하는 아버지가 얽혀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오이와의 약속을 기억하는 준셰이는, 갑작스러운 조반나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다시 피렌체로 향한다. 10년 후 5월 25일. 아오이의 30살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 이들의 약속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냉정 속에 열정을 숨기고 걸어가는 듯한......

제목의 의미가 무척 궁금했는데, Rosso에서는 마주할 수 없었던 제목을 Blu에서는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제목은 아가타 준셰이가 보는 아오이의 모습이었던 걸까? 냉정 속에 열정을 숨기고 있는 여인 아오이와 그녀를 사랑한 준셰이의 이야기를 10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하다.



과거가 너무 거대하고 잔혹해서,

내 마음이 현실에 발을 내리지 못할 따름이라고 자기 분석해 보기도 한다.

너무도 생생한 아오이와의 나날들, 그 망령과도 같은 과거가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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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리커버)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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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정겨운 냄새를 맡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아주 정겨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냄새라기보다 공기였다.

쥰세이의 냄새. 또는 그 시절의 우리들 냄새.

십수 년 만에 다시 읽게 된 냉정과 열정사이. 내가 읽었던 책은 주황색의 하드커버로 되어 있는 책이었다. 아오이와 쥰세이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았다. 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흐른 시간만큼 내 마음이 달라졌나 보다. 그때와는 또 다른 감정의 선을 느꼈으니 말이다.

일본인이지만, 지금은 일본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둘. 미국에서 태어난 아가타 쥰세이와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았던 아오이는 일본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둘은 그 시간을 서로만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미워했다. 사랑의 기억이 강렬해서였을까? 헤어진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쥰세이와 아오이는 서로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 권으로 만들어진 냉정과 열정사이의 Rosso(Rosso는 이탈리아 어로 빨강을 뜻한다.)는 아오이의 편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아오이 곁에는 미국인 애인인 마빈이 있다. 마빈은 첫눈에 아오이에게 반했고 구애를 했다. 그와의 몇 번의 데이트를 한 아오이는 그와 함께 살게 된다. 늘 아오이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을 행복해하는 마빈. 아오이 역시 그를 좋아하지만, 순간순간 그녀를 감싸는 쥰세이와의 기억은 마빈과의 관계를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일본 유학 전에 일했던 지나와 파올라의 보석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아오이에게는 소꿉친구인 다니엘라가 있다. 그녀는 애인 루카와 결혼을 하고 딸을 출산한다. 다니엘라, 루카 그리고 아오이와 마빈은 넷이서 종종 데이트를 했었기에 다니엘라는 아오이가 마빈과의 결혼을 미루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아오이가 일본에 다녀온 후 많이 변했다는 사실만 느낄 뿐이다.(물론 쥰세이와의 일을 다니엘라는 잘 모른다.)

I was so in love with him.

마빈의 누나 안젤라가 한동안 마빈의 집에 머물렀다. 그녀는 이혼녀로 이곳저곳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아오이 역시 양면적인 모습을 가진 안젤라를 좋아하고, 안젤라 역시 동생의 애인인 아오이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안젤라는 아오이의 마음을 마빈보다 정확하게 안다. 그녀가 마빈보다 더 마음에 품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난히 비 오는 날은 감정적으로 추락하는 아오이. 신기하게도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있는 동안 유난히 비가 자주 왔던 것 같다. 읽기 시작한 날도, 읽는 중에도, 책을 덮은 날에도... 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왠지 비가 오니까 아오이의 마음에 자꾸 가닿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사실 왜 이렇게 아오이가 비를 싫어하는가 싶었는데... 중반부를 넘어서 이유가 등장한다. 충분히 싫어할 만하다... ㅠ)

사람의 감정은 이상하게 스스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물론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어찌 보면 이들 사이에 왜 이렇게 긴 시간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실제 이유가 자신들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또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서로에게 조금 더 솔직했다면, 서로 안에 쌓인 상처들을 공유했다면 긴 시간 서로를 향해 풀어내기 힘든 감정선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함께 있는 시간이 좋긴 하지만, 또 아팠기에 이별을 선택한 그들이지만 서로가 남긴 그림자는 생각보다 진했기에 매 순간순간 서로를 찾아 헤매는 둘의 모습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과연 이 둘은 어떻게 될까? 서로를 향한 그리움 때문에 다시 마주할까? 아니면 그 그림자를 조금씩 지워갈까?

다시 만난 냉정과 열정 사이 속 쥰세이와 아오이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나이를 먹고,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그때 마주하지 못한 여러 가지 감정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십여 년 후에? 아님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냉정과 열정사이를 다시 마주하고 싶어졌다. 그때의 쥰세이와 아오이는 또 다르게 다가올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순간 정겨운 냄새를 맡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아주 정겨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냄새라기보다 공기였다.

쥰세이의 냄새. 또는 그 시절의 우리들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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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릴랜드 라이큰 글, 오현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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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지인들과 옛이야기를 하다가 여름성경학교 때 기억나는 프로그램으로 천로역정을 꼽는 경우를 꽤 자주 목도했다. 아쉽게도 모태신앙인 나는 천로역정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아동부 교사를 했던 고모의 방에서 성경에 관한 만화에서 얼핏 제목을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그 내용이 어떤지는 몇 년 전 천로역정을 직접 읽어보고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처음 접한 천로역정 역시 꽤 유명한 기독 출판사에서 나온 작품이었는데, 다시금 천로역정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천로 역정 앞에 붙어있는 (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또한 함께 곁들여진 천로역정 보드판을 보는 순간, 내가 가르치는 유년부 아이들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고 있는 기간이 한참 겨울 성경학교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과거 지인들의 말처럼 우리 아이들 또한 보드판을 통해서라도 천로역정을 한번 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예배 후 2부 순서 때 활용을 생각 중이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천로역정의 저자는 존 버니언이다. 그는 천로역정의 스토리를 순식간에 떠올리고 집필했다고 한다. 책을 쓰면서 그에 살을 입히는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지만, 이미 쓴 책을 망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가 고민했던 것은 비유의 성격을 입은 작품 때문에 주변인들로부터 비판을 받을까봐였다고 한다. (사실 저자의 말처럼 성경 속에도 수많은 비유가 등장한다. 그 뜻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는 비판을 받더라도 우선 책을 내보겠다는 생각으로 결국 천로역정을 세상에 내놓았고 예상치 못한 큰 인기를 얻으며 현재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과거에 읽었음에도 이 책이 액자식 구성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의 화자는 한 동굴에서 우연히 잠을 청하게 되었고 꿈을 꾸게 되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바로 천로역정 속 이야기는 바로 화자의 꿈속에서 마주한 장면인 것이다. 꿈속 주인공인 크리스천은 책(성경)을 읽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너무 무거운 짐이 자신의 등을 짓누르는 탓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기만 하다. 결국 크리스천은 짐을 벗고 싶었다. 그래서 깊은 밤 혼자 울부짖던 중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크리스천은 그를 전도자로 소개한다. 전도자는 크리스천의 고민을 들은 후 그에게 빛을 따라 좁은 문을 향해 가면 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 그렇게 크리스천은 가족을 남겨두고 길을 떠난다. 알다시피 크리스천의 여정은 쉽지만은 않다.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섰지만 길을 나서자마자 낙심의 늪에 빠지게 되고, 크리스천과 동행하던 팔랑귀는 크리스천을 두고 떠난다. 겨우 늪을 빠져나오지만 이번에는 사기꾼 세상의 현인과 율법주의라는 사람에게 속아 좁은 길을 떠나가게 된다. 또한 아볼루온과 미신, 사심 등을 만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행이라면 그들의 유혹의 때마다 크리스천을 돕는 해석자, 선의, 믿음, 소망 등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 책은 상당수 비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가 책을 통해 등장시킨 이름들은 이름이 상징하는 것처럼 신앙인의 삶을 가로막고 진리를 놓치게 만드는 여러 가지의 유혹과 시험, 어려움들을 뜻한다. 이 책이 4백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바로 천로역정 속에 등장하는 많은 문제들이 현재에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많은 유혹과 시험들에 노출되어 있고(과거보다 더 많아졌다.), 그로 인해 우리가 머물고 걸어가야 할 좁은 문을 떠나 엉뚱한 길로 갈 때가 많다. 그리고 크리스천처럼 잘못된 길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일깨우는 성령의 음성과 예배시간 설교, 기도와 주위 동역자들의 조언들을 통해 다시금 제 길을 찾게 되기도 한다.

천로역정 중간중간 내용에 대한 설명이 어우러져서 한결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고, 책 속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천로역정 가이드가 담겨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크리스천처럼 여전히 우리는 쉽지 않은 여정 중에 있다. 당장의 편한 길처럼 보이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말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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