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지음 / 북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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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죽은 사람도, 죽인 사람도 명확하다. 하지만 제목의 뜻은 말미에 가야 확실히 이해가 된다. 도대체 누굴 죽인 걸까?

담배를 소지했다는 사실이 발각된 고원택. 혼을 내는 여선생님을 겁주려다가 교사가 넘어져 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문제는 당시 영어교사가 임신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다행히 유산이 되지 않았지만, 이 일로 정학에 처해진다. 기분이 좋지 않던 고원택은 삼인방(고원택, 허필진, 오선혁)과 뒷산에 모여있다가 근처로 캠핑을 왔던 한 남학생을 만나게 된다. 돈을 뺏고 괴롭히는 과정에서 남학생은 넘어져 죽게 된다. 소지품을 뒤져보니 그의 이름은 백도진이었다. 이미 정학 처분까지 받았던 터라 원택은 필진, 선혁과 함께 남학생의 시신을 파묻는다. 결국 남학생은 실종 처리가 된다. 9년이 지난 어느 날, 원택이 잔인하게 난도질 된 상태로 승용차 위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의 입안에서는 쪽지 한 장이 발견된다.

9년 전 너희 삼 인방이 한 짓을 이제야 갚을 때가 왔어.

갑작스러운 부고 문자에 필진과 선혁은 당황스럽다. 고등학교 졸업 후 딱히 원택과 연락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을 찾은 둘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형사였다. 그리고 원택에 관해 묻는다. 원택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들은 둘은 쪽지를 보자 사색이 된다. 그리고 얼마 후, 필진과 선혁은 남들의 눈을 피해 만나기로 한다. 둘의 중간 지점에 있는 모텔에서였다. 먼저 도착한 필진은 선혁에게 방 번호를 보낸다. 방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지만, 인기척이 없다. 전화를 걸자, 방 안에서 벨이 울린다. 문을 연 선혁에 눈앞에 피 웅덩이에 목을 맨 필진의 시신이 보인다. 그리고 또 쪽지가 남겨져있었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필진의 아내가 온다. 그리고 필진의 아내는 범인으로 선혁을 지목한다. 길을 나서며 필진이 자신이 연락이 안 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범인은 선현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이미 앞선 고원택 살인사건을 조사 중인 강차열과 최인욱 형사는 용의자로 의심되어 잡혀온 선혁을 마주한다. 왜 필진을 만나기로 했는지 추궁하지만 선혁은 입을 열지 않는다. 이제 다음 타깃은 선혁이다.

선혁은 불안한 와중에 9년 전 자신들의 손에 죽은 백도진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백도진의 가족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도진의 학교인 은 파고 등 학교를 찾는다. 하지만 개인 정보인지라 학교 측에서는 도진의 정보를 알려주기를 꺼려 하고, 차라리 동문회를 찾아가 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동문회에 전화를 건 선혁은 전화를 받는 사람이 백도진이라는 사실에 경악하는데...

중반부를 지나면서, 사건의 범인은 윤곽이 드러난다. 사실 삼 인방을 노리는 범인이 누구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실수가 불러일으킨 한 가족의 파탄과 9년간의 상처가 페이지를 넘기면서 드러난다. 모든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한다. 이들에 의해 죽은 사람은 단지 그 남학생 하나였을까? 한 사람이 살해되었지만, 그 여파는 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는 걸 보면 제목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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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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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모르는 그 이전의 역사, 맵디매운 추위를 견뎌내며

이 땅에 도달한 바이칼호 나그네들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뜁니다.

p. 61

세 번째 만나는 이어령 교수의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제목은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이다. 1권이 별의 지도, 2권이 땅속의 용이 울 때였는데 1권은 천(天), 2권은 지(地) 그리고 3권은 인(人)이다. 바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이야기를 각 권에 담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주제인데, "바이칼 호"라는 낯선 지명이 등장한다. 바이칼호는 러시아의 호수인데, 이 바이칼호와 한국인의 얼굴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인종 이야기가 등장한다. 흑인(니그로이드), 백인(코카소이드), 황인(몽골로이드)로의 구분한 용어가 실제 상당히 인종차별적이고 특정 인종의 우월성을 뜻하는 말이라는 내용과 함께 과거 몽골병이라고 불렸던 병(다운증후군)은 몽골인 형 백치라고 보고되었다고 한다.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이 몽골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씁쓸하기만 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루시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데, 바로 현생인류가 흩어졌다고 보인다. 그중 몽골로이드는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누어지는데, 어느 곳으로 이주해서 살게 되었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시베리아의 추운 기후를 견디며 정착한 이들은 북방계(신 몽골로이드)이고, 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 이들은 남방계(고 몽골로이드)가 된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바이칼호는 바로 북방계로 우리나라는 북방계가 60% 이상이라고 한다. 코카소이드에 비해 코가 낮고 뭉툭하고, 쌍꺼풀이 없이 두툼해진 눈을 가졌으며, 광대뼈도 튀어나온다. 저자는 바로 이런 한국인의 얼굴이 기후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맹렬한 추위를 이겨낸 한국인의 피 속에 바로 그런 유전적 요소가 얼굴로 드러났다고 말이다. 바로 바이칼호의 추위 속에서 살아남은 한국인들 말이다.

책에는 얼굴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역시 이어령 교수만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다. 얼굴 속에 담긴 한국인의 문화, 표정들, 수천 년을 이어진 미소와 성형과 화장 그리고 눈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인의 얼굴을 풀어낸다. 얼굴과 이름. 내 것이지만, 나보다 남이 더 많이 부르고 보는 게 바로 얼굴과 이름이라는 것. 그렇기에 얼굴도 이름도 어찌 보면 나보다 남을 위해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는 데 나 역시 공감한다. 당장의 우리는 미남과 미녀를 원하지만, 내 얼굴 안에는 그동안 조상들이 뿌리를 내리며 버티고 살아온 역사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너무 원망하고 미워하지는 말자.

이번에도 이어령 교수의 책을 읽으며 예상치 못한 포인트들을 여럿 만났다. 한국인이라 하지만, 한국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을 꿰뚫고 이야기하는 그의 안목에 다시 한번 놀랐다. 천지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고, 앞으로 이어지는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는 어떤 내용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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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세 영어 말문을 트는 결정적 순간 - 아이와 교감하는 영어 그림책 학습법
오로리맘 지음 / 넥서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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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교육에 대한 부분은 늘 고민이 되는 것 같다. 영어가 서투르고, 학창 시절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지라, 아이에게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하고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시작하기에는 모국어도 영어도 다 놓치게 될 것 같아서 시작하지 않았는데, 책을 막상 읽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 막 36개월이 된 둘째를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말이 또래보다 빨랐던 큰 아이의 경우 영상을 좋아하지만, 유독 영어로 나오는 영상은 거부를 했다. 어느 정도 언어에 대한 인지가 생기고 보니, 무슨 말인진 모르겠는 영어보다는 내가 당장 알아듣는 우리말이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이집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수업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올해도 방과 후 영어수업을 듣고 있긴 하지만 아이가 영어에 대해 과민반응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둘째 역시 벌써부터 영어로 나오는 동화나 영상에 거부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심정이지만, 나나 남편이나 둘 다 영어를 가르칠 엄두가 안 나서 고민 중이었다.

저자는 두 가지를 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강조한다. 우선 영어는 뭘 모를 때, 언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0~3세 시기에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영어는 언어이기에, 실제 영어권에서 자주 활용하는 내용을 접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물론 시중에도 많은 영어 그림책이 있지만, 영어가 교재가 되기 시작하는 순간 언어적 역할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기왕이면 우리나라식으로 편집된 책보다는 실제 영미권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는 원서가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니기 때문에 지식이 아닌, 쉽게 흥얼거리고 라임을 따서 배울 수 있는 일명 마더 구스 시리즈를 활용하는 게 좋다고 한다. 마더구스는 워낙 국내에도 잘 알려진 부분이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특히 마더구스의 경우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본 부분을 다른 책에서 또 만날 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아이가 익히기 편한 부분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래로 연결되는 부분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영어 노래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저자처럼 영어 전공자가 아닌지라, 발음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로 나처럼 고민하는 엄마 아빠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들에게 저자는 엄마 아빠의 발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어차피 음원 등을 통해 발음을 확인할 수 있고, 아이들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옳은 발음과 다른 발음을 구별할 수 있는 귀와 눈이 생긴다고 하니 우선은 영어를 낯설어하지 않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발음에 자신이 없다고 영상으로 노출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흥미가 사라질 수 있으니 서툴더라도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려보자. 긴 시간이 아니더라도, 매일 꾸준히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나가고 때론 음원의 도움을 받아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라는 언어를 습득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영어 그림책의 시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색, 모양, 장난감 등이 등장하는 책으로 골라보자. 그리고 여러 권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면, 일상의 곳곳에서 책에서 마주한 상황과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때 책을 다시 한번 언급해 보자. 자연스럽게 책에서 구사했던 단어와 문장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책 속에는 발음 고민에 빠진 부모들을 위한 조언뿐 아니라,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는 방법, 영어 원서를 구매할 수 있는 서점, 언어로 습득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영미 문화 등 아이와 함께 영어를 익히기 위해 부모들을 위한 여러 가지 팁과 조언들이 담겨있다. 덕분에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해결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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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 당신의 헤테르토피아 - 진주의 기억과 풍경 그리고 산책자
김지율 지음 / 국학자료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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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만 보고 철학 서적인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낯선 단어가 하나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헤테로토피아가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찾아보니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공간을 말하는 단어라고 한다. 이상적인 공간인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이상적이어서 실제 하지 않는 상상 속의 공간을 말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유토피아 보다 훨씬 나은 공간이 헤테로토피아가 아닐까 싶다. 이상적이지만,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있다니 말이다. 단어의 뜻을 알고 보니, 궁금했다. 저자가 생각하는 헤테로토피아는 과연 어디일까? 그녀가 나고 자란 곳,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곳 진주. 바로 이 책은 가까이 지내는 지인 K와 진주 토박이 저자가 함께 진주의 곳곳을 둘러보며 자신의 고향이자 헤테로토피아인 진주를 소개하는 책이다.

사실 진주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나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진주 남강에 왜장을 안고 투신한 논개와 몇 년 전 특이한 고명이 올라간 진주냉면과 비빔밥이 내가 진주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책을 읽고 나니 진주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릴만한 것이 여러 개 생겼다.

책을 쓸 때 저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게, 책의 도입부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첫 번째 페이지에 진주 남성당 한약방의 한의사 김장하 선생을 소개했다. 도대체 김장하 선생이 누구길래, 책의 첫 장을 장식하는 걸까? 싶었는데 막상 책을 읽고 나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에 연신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주 사람 하면 누구나 남성당 한약방 약을 먹어봤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좋은 재료로, 다른 한의원에 1/3 가격으로 약을 지어줬기 때문이란다. 약이 저렴하다고 유명한 것은 아닐 텐데,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선생은 평생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성경 속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선생은 자신을 가진 걸 나누어주면서도 흔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벌어들인 돈은 아픈 사람들의 눈물이니, 그 돈이 썩지 않도록 흘려보내었다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편으로는 정말 요즘 같은 때에 흔치 않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개의 테마로 진주를 소개하는 책 안에는 진주의 다양한 면모가 담겨있다. 극장과 기차역, 논개가 떠오르는 남강과 축제, 박물관과 시장 등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진주의 참 맛을 글과 사진을 통해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중앙시장의 상인들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 대학에 재학 중인 주점 사장님부터 어머니를 이어 복집을 운영하는 전직 간호사 출신 딸의 이야기, 4대째 이어받은 장의사 사장님과 공예사 사장님 이야기 등 그들이 중앙시장을 지키고 이어온 이야기 속에는 눈물과 감사와 보람이 가득 담겨있었다. 20대의 주점 사장님을 제외하고는 다들 60대로 평생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분들이었는데, 변함없이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들이 또 다른 생동감을 넘치게 했던 것 같다.

글만큼이나 곳곳에 담겨있는 사진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된 것 같다. 흑백사진도, 화질이 좋지 않은 사진도 모두가 어우러져 또 다른 글이 된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책에 소개된 곳을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인 지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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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강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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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눈물 끝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편안한 잠을 자고 곱게 자는 사람들, 고속도로를 달려온 삶 속에서는

절대로 창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조는 억압, 모순, 구석, 이 속에서 나옵니다.

p.214

언제부턴가 이어령 교수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오히려 생전보다, 사후에 책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쌓인다. 이제 주옥같은 이어령 교수만의, 이어령 교수의 위트가 녹아있는 책들이 언젠가는 끝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꾸준히 읽었던 한국인 이야기는 완결이 되었고,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어령 교수가 생전에 남긴 강연과 축사 등을 모은 책이다. 사실 강의라고 해서, 교수 재직 시절의 강의록인가 싶었는데, 다양한 장소에서 자신만의 색을 풀어낸 강연과 축사들은 여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관점을 불러일으킨다.

첫 번째 등장한 축사는 가장 최근의 것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는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떨치던 2021년 서울대학교 비대면 졸업식 축사이니 말이다. 역시 이어령 교수는 졸업을 하는 학생들에게 색다른 시선을 안겨준다. 비대면 수업을 받고 학위를 수여받은 최초의 학생들이라는 말로 말이다. 그러면서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마스크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말이었다. 마스크는 내 건강과 타인의 건강을 같이 지킬 수 있는 물품이라는 것. 무한 경쟁에 내 몰린 현대사회에서 마스크는 나뿐 아니라 타인까지 지켜주는 것인데, 물론 마스크를 강제적으로 썼던 것도 맞지만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기억에 남는 강연은 세종대에서 열린 강연이었는데, 이 강연에는 세종대왕(학교 이름 때문에 더 강조한 것 같다.)을 비롯하여 욘사마 배용준과 일본 나라 현,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알렉산더 대왕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더 흥미로웠다. 세종대왕 하면 떠오르는 한글. 그 한글은 바로 세종대왕이 창조한 우리의 글자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태종에 이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을까? 교수는 아닐 거라고 이야기한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왕이 된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왕위를 지키기 위해 흘렸던 수많은 피를 지켜봤을 것이고, 자신에게 왕위가 넘어오면서 두 형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 또한 봤을 것이다. 바로 그런 눈물이 창조의 씨앗이 되어 대왕 세종을 만들었던 것이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아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채롭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많은 강연과 책을 남겼다. 책 속에 등장하는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만한 것이 없었다. 매일 새로움을 얻기 위해 다양한 상황 속에서 똑같은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 단지 나이가 젊다고 젊은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이 책 곳곳에서 하게 되었다. 선생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 곁에 남겨진 저서들을 통해 그의 신선한 시각과 생각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창조를 이루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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