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 스트리트
제니 잭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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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표지와 제목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파인애플과 스트리트?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책의 초반에 등장한다. 파인애플 스트리트 외에도 오렌지 스트리트, 크랜베리 스트리트가 있다. 길 혹은 해당 구역의 이름이 다 과일 이름이다. 이 특이한 거리의 이름은 실제 뉴욕에 있다. 그리고 스톡턴가의 며느리가 된 샤샤가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톡턴가는 꽤 명망 있는(아니 돈이 많은) 가문이다. 부동산 중개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1대 에드워드 코딩턴 스톡턴에 이어 2대인 칩 스톡턴 그리고 3대 코드 스톡턴에 이르기까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그들은 부동산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인물들이 되었다. 스톡턴가의 큰 딸인 달리, 둘째인 아들 토드의 아내인 샤샤 그리고 막내인 조지애나까지 그녀들이 이야기가 책 안에 담겨있다. 어려서부터 가진 사람들의 삶을 살았던 그들이지만, 이 집안만의 독특한 점이 있다. 우선 가족들끼리 너무 가깝다. 수시로 만나 식사를 하고, 아들인 토드는 자신의 새 옷을 사며 아버지 것까지 하나 더 사서 선물한다. 통화는 기본이고, 어머니의 발 마사지까지 해줄 정도인 집안 분위기에 샤샤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샤샤는 비슷한 수준의 있는 집의 딸은 아니었다. 그래서 토드의 어머니인 틸다는 썩 샤샤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샤샤가 살고 있는 집은 토드의 부모님이 과거에 살던 곳인데, 상당히 크지만 잡동사니가 엄청나다. 신혼을 시작하며 자신의 스타일로 집을 바꾸고 싶었던 샤샤. 남편이 토드가 부모님께 집을 좀 바꿔도 되냐고 묻자, 쿨하게 그러라고 하지만 막상 어디 어디를 이야기했더니, 갖은 핑계를 대면서 몇 달 살다 보면 오히려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말로 시어머니 짓을 한다. 그리고 이사를 기념해 식사 자리를 갖게 된 스톡턴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인 샤샤는 흰색 셔츠에 감색 바지를 입고 간다. 문제는, 그녀의 복장을 보고 초대되어 온 손님들이 직원인 줄 알고 술을 더 달라거나, 접시를 치워달라는 등의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괜스레 주눅이 든 샤샤. '자신의 옷차림과 얼굴에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쓰여있나?'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시누들이 샤샤를 괴롭히거나 시누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왠지 이들과 섞이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샤샤는 쉽지 않다.

한편 첫째 달리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의 삶을 살고 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틸라와 다른 삶을 선택하지만 글쎄... 온실 속 화초같이 자란 그녀인지라 삶이 녹록지 않다. 막내인 조지애나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있다.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하는 삶 속에서 그녀는 좌절한다.

사실 우리는 돈 많은 재벌의 삶을 동경한다. 소위 금수저의 삶을 살면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살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삶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사실을 또 깨닫게 된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은 없지만, 그 많은 부를 지키기 위해 그들 나름의 고민과 괴로움이 있다는 것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간관계와 여러 가지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도 마주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최대 재벌가의 딸의 자살 사건과 또 다른 재벌가로 시집가서 여러 이슈들을 뿌리고 결국 이혼을 했던 한 여배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남들은 동경하지만, 글쎄... 파인애플 스트리트 속 가족의 이야기처럼 남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어려움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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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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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추리소설은 시리즈가 많은 것 같다. 제대로 키운 주인공의 활약이 제대로 도드라지는 장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처음 접하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권은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이다. 눈매만 그려진 소설의 표지가 압도적이다. 알고 보니, 1977년(영국 출간 기준)에 나온 작품이라 하니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작품이었고,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단편소설집까지 포함해서 총 21권이라 하니 앞으로 갈 길이 멀다.

12세기 슈루즈베리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수도사인 캐드펠은 허브를 키우며 약용 허브를 키우는 일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 15년에 걸쳐 향신료나 약재로 쓰이는 허브들을 키우며 정원을 가꾸는 캐드펠 수사는 식물재배뿐 아니라 눈에 띄지 않게 조는 방법도, 튀지 않게 자리하는 방법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침, 날카롭고 요란한 괴성에 잠이 깬 그는 대회의실 한복판 바닥에 콜룸바누스 수사가 대리석 바닥에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콜롬바누스 수사의 모습에 놀란 수사들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진료소를 담당하는 애드먼드 수사에 의해 겨우 경련하는 몸을 묶어서 진료소로 향할 뿐이다. 다음날 아침, 제롬 수사는 다른 수사들 앞에서 간 밤에 자신이 꾼 환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꿈에서 그는 성녀 위니프리드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위니프리드가 순교한 자리에 솟아난 샘물에서 목욕을 하게 되면 콜룸바누스 수사의 병이 나을 거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콜롬바누스 수사를 데리고 제롬 수사와 캐드펠 수사는 성녀 위니프리드가 순교한 귀더린으로 떠나게 되고, 다행히 제롬의 꿈처럼 콜롬바누스 수사는 병이 낫게 된다.

당시는 한참 성스러운 유골을 모시는 것, 그리고 성스러운 유골이 병을 고쳐준다는 신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캐드펠 수사가 몸담고 있는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도 콜롬바누스 사건을 겪으며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자신의 수도원으로 가지고 오자는 논의가 더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성녀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떡갈나무와 은으로 장식한 성골함까지 준비된 상황이다. 웨일스 출신인 캐드펠이 선택된 이유는 그곳이 웨일스어를 쓰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도원이 성녀의 유골 때문에 유명해지길 원했던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라는 임무를 자신의 심복인 수도사와 캐드펠에게 맡긴다. 이 일을 위해 주교와 왕자의 허락까지 받아놓을 정도니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 수 있겠다.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내줄 주민들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은 유골을 옮기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기 시작하지만, 협상을 통해 나름의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러던 중 반대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영주 리샤르트가 화살에 찔려 살해당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탐정이자 관찰자 역할을 하는 캐드펠인지라, 사건의 시작부터 과정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그 기록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사건이 풀어진다. 덕분에 꽤 흥미로운 추리를 마주할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상은 덤이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 보자면 과학과 기술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대인지라, 범인을 찾아내는 방법이나 사건의 시작이 되는 성스러운 유골의 능력과 관련된 부분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억지로 짜 맞춘듯하고 꼬고 더 꽈서 독자로 하여금 반전미를 선사하는 현대의 추리소설과는 사뭇 다른 풋풋한 맛(?)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수도원 안에서도 벌어지는 정치에 관한 내용도 마주할 수 있다. 과연 2권에서 캐드펠 수사는 어떤 사건과 마주할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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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꼴
문병욱 지음 / 북오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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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PD인 고진선은 얼마 전 기획안에서 물을 먹고 가재지구 재개발 건 다큐멘터리를 떠맡게 된다. 사내에는 이상한 소문까지 퍼져있는 터에, 취재에 앞서 사전 조사를 위해 가재 지구로 내려가는 진선과 후배 유미. 인터뷰를 위해 집집을 돌아다니며 사전 인터뷰를 하다가 한 집 앞에 서있는 여자를 만난다. 왠지 그녀는 음습한 기운을 담고 있었지만, 마치 자신들이 찾아올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지희는 오늘은 시간이 없고 다음에 오라는 말을 한다. 그날 이후로 진선은 왠지 모를 불안감과 함께 지희가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지희의 집을 찾은 진선은 지희네 집에 있는 어린아이의 사진을 본다. 늦둥이 딸인가 싶었는데, 20년 전 사망한 자신의 딸 영분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지희는 이 마을이 다른 마을과 다른 점이라면,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라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건넨다. 그리고 사진 한 장. 뭔가 사진에서 이상함을 느낀 진선은 전문가인 송이태 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진을 확인하던 송 기사는 소리를 지른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정말 이상했다. 모든 아이들의 눈이 지희의 딸인 영분에게 가 있는데, 사진 속 모든 아이들이 영분을 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희의 말대로, 이 마을에 아이들이 사고나 자살, 자해 등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영분이 그렇게 죽은 이후로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송 기사가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그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사실을 느낀 진선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이상한 기운을 느끼며 불안해진다.

한편,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는 현석과 하령을 찾아가는 진선. 진선을 보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두 사람과 정황을 보니 자신도 들었던 통통 튀는 소리와 영분이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얼마 후, 하령과 현석은 사망하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영분의 저주가 진선 자신에게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책 안에는 진선의 과거 이야기와 영분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엄마인 지희는 남편이 외도로 떠나고, 큰 아이는 잃어버린다. 둘째인 영분은 마을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영분의 죽음에 마을 아이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희는 자신의 딸을 그렇게 만든 아이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복수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주술과 저주의 힘을 빌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저주가 자신의 삶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작했다는 데 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입장에서 당연히 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복수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복수의 모습이 너무 끔찍하다는 데 있다. 왕따의 경험이 있었던 진선이기에, 닮은 꼴은 그런 둘의 접점이 된 것 같다. 지희의 복수는 결국 다른 사람들 또한 자녀를 잃고 슬픔의 기억만 고스란히 가지고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상처만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섭고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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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책세상 세계문학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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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있게 도전! 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 앞에서 완패당했다. 지난달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을 읽었다. 내 나름 흥미로웠고, 꽤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리고 한 달도 채 안돼서 만나게 된 작품은 풀베개다. 푸르디푸른 연두색이 가득한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첫 장을 넘기고 고개를 갸웃했다. 한 장을 더 넘기고, 책을 덮었다. 분명히 소설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에세이였나? 싶어서 다시 확인해 봤는데, 분명 소설이 맞았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쓰는 게 너무 힘들다. 서평을 쓰려면 내가 읽은 이 책에 대해 나 나름의 감정과 이해가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풀베개를 한 줄로 말하자면 '글쎄...' 쉽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기피하는 장르인 시가 책 안에 상당수 담겨있다. 뭔가 설명이 오고 가지만 또 시가 등장한다.(오히려 시가 더 이해하기 쉬웠다고 하면 이상할까?)

화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근데, 시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다. 그가 거니는 장면이나 누군가를 만나면 그에 알맞은 시가 등장한다. (장르가 다르지만, 뮤지컬 같다고 할까? 열심히 연기를 하다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이 책 역시 산문적인 설명을 하다가 시가 등장한다.) 풀베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라면 비인정(非人情, 인간의 의리나 인정 따위에서 벗어나 그것에 구애되지 않는 일)과 하이쿠다. 인정과 비인정을 오가며 나는 이곳저곳을 다닌다. 화가가 직업이기에, 그가 다니는 곳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 나미가 등장한다. 나와 나미는 무슨 관계일까? 나와는 다른 면을 지닌 여성 나미와 대화를 나누는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녀를 보면 볼수록 어렵다. 왜일까? 왜 나는 나미의 얼굴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결론은 마지막 장을 넘기며 한 줄로 정리가 된다. 마지막 한 줄을 읽고 나니, 예전에 들었던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화룡점정. 장승요라는 화가가 절의 벽에 그린 용의 그림에 눈이 없었다. 눈을 그리면 용이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나미의 얼굴을 그리지 못했을까? 그녀에게서 그가 찾는 감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미가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나는 비로소 그 감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나미의 그림을 완성한다. 용의 눈을 그린 것처럼, 나미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다.

앞에서 말한 하이쿠는 17음으로 이루어진 일본 정형시를 말한다고 한다. 뜻을 알고 나니, 왜 이리 책 안에 시가 많았는지 이해가 된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는 하이쿠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17음 하니 갑자기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있었다. 내용과 전혀 상관없겠지만, 책을 읽고 내가 건진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자, 조금 화가 났다고 가정하자.

화가 난 것을 바로 열일곱 자로 표현해 본다.

열일곱 자로 표현할 때는 자신의 분노가 이미 타인의 것으로 바뀌어 있다.

화를 내거나 하이쿠를 짓는 일은 한 사람이 동시에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 47

다행이라면, 이 책이 나에게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풀베개 안에는 소설가이자 시인의 독후감도 들어있고, 작품 해설도 들어있다. 작품 해설 덕분에 그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자, 조금 화가 났다고 가정하자.

화가 난 것을 바로 열일곱 자로 표현해 본다.

열일곱 자로 표현할 때는 자신의 분노가 이미 타인의 것으로 바뀌어 있다.

화를 내거나 하이쿠를 짓는 일은 한 사람이 동시에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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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하여
이토 히데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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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뽀삐와 다롱이라는 이름의 개 두 마리를 키웠다. 집을 재건축하게 되면서, 더 이상 키울 수 없었던 터라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댁으로 보냈는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명절 때마다 다롱이와 뽀삐를 만나러 간다는 반가움에 시골을 향했고, 몇 개월 만에 만나는 뽀삐와 다롱이는 여전히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줬다. 물론 집에서 키울 때마다 많이 커진 몸에 놀라기도 했지만, 뽀삐는 여전히 애교가 많았고 다롱이는 여전히 똑똑했다. 그리고 다음 해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더 이상 뽀삐와 다롱이를 만날 수 없었다. 다롱이는 집 앞 찻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고, 뽀삐는 다른 집에 줬다고 했다. 이미 한 번의 이별을 겪었던 터라, 식음을 전폐할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오래전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거나 뽀삐와 다롱이를 닮은 개들을 만나면 한 번씩 아이들이 생각난다.

펫 로스(Pet Lose)라는 용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바로 반려동물들의 사망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는 상실감을 나타내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잠깐의 우울감 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이별의 아픔을 심하게 겪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지 않다고 한다. 사실 반려동물들의 경우 평균 10~20년 정도를 살기 때문에,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다 보니 자연스레 반려동물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도 인식 자체가 반려동물과의 이별로 인한 상처 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반려동물의 모습이 다르듯, 펫 로스를 겪는 주인들의 모습과 반응도 다르다. 생각보다 잘 털고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꽤 오래 우울감에 빠져 정신과 치료나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며 얼마 전, 한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반려동물의 사망 후 처리에 관한 기사였는데, 사망한 반려동물을 땅에 묻는 것은 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반려동물의 사후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태워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어떻게 가족과 같이 십수 년을 함께 지낸 동물의 마지막을 그렇게 처리할 수 있을까? 물론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서 과거에 비해 반려동물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겠지만, 가족과의 이별에도 시간이 소요되듯이 반려동물과의 이별 역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책 안에는 여러 사람들의 펫 로스의 경험들이 담겨있다. 일본 저자의 책이기에 일본 연예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펫 로스를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담들이 담겨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간접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는, 동물들 역시 주인의 감정을 안다는 사실이다. "아픈"에 너무 집중하여 남아있는 소중한 시간을 서로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채우지 말라는 부분이 특히 와닿았다. 동물들 역시 주인들의 감정과 표정, 상황에 영향을 받기에 주인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라도 약을 먹이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을 때 동물들은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어 주인을 힘들게 만드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치료가 힘든 상황이라면, 고통을 줄여주고 서로를 편안하게 해 줄 정도의 약물이면 충분하다. 치료에 힘을 쏟을 시간에 오히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서로 보듬아 주고 보낼지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아픈 아이"라는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펫 로스 기간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평범한 일상을 보내도록 노력해 보자. 책 안에는 펫 로스를 극복하는 방법들도 소개를 하고 있다. 때론 또 상처받기 싫어서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동물에 대한 애정이 컸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펫 로스에 관한 책이지만, 상당 부분 가족들과의 관계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이별은 누구든 아프고 힘겹다. 떠나보내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해 보자. 그리고 지금 펫 로스로 힘겹다면, 내 동물이 그동안 내게 주었던 기쁨의 시간들을 떠올려보자. 조금이나마 펫 로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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