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관의 살인
다카노 유시 지음, 송현정 옮김 / 허밍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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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포는 숨기고

세이시는 막는다

마지막으로 아키미츠는 목을 딴다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주인공은 고액의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면접에서는 가족이 있느냐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를 물었고, 얼마 후 그는 합격 통보를 받는다. 알바의 내용은 3일 동안 한 섬에 있다 나오기만 하는 일이었다.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벌이도 괜찮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던 친구 도쿠나가가 연락이 끊긴 것도 있었다. 도쿠나가에게 빚을 지고 있던 주인공은 처음엔 연락을 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지만, 오랜 기간 그가 안 보이자 걱정이 되었다. 특히 도쿠나가가 마지막에 짭짤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는 말을 남겼기에 그가 했던 일이 이번에 구한 아르바이트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벌고, 친구의 행방도 찾겠다는 심정으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다. 우선 그에게 요구한 내용은 이렇다. 이름은 사토. 카리브해의 외딴섬의 기암관이라는 저택에 사흘 정도 머물게 될 것이고, 여행자로 말이 많지 않고 잘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함께 배를 타고 들어간 삼겹살과 안경에게 말을 걸었지만 괜히 싸한 반응만 돌아온다. 배에서 내려 기암관으로 들어서자 집사인 고엔마가 마중을 나왔다. 이곳의 주인은 미에이도 하루사다로 그는 지금 여행 중이었다. 대신 그의 딸인 시즈쿠, 시주쿠의 미스터리 연구회라는 대학 동아리 멤버인 야마네(삼겹살)와 사사키(안경) 그리고 하루사다와 사회인 마술 동호회에서 만난 텐가와 레이타가 초대되었다. 텐가와가 탄 배가 고장이 나서 당분간 가모 히비코와 선장이 함께 머물게 되었는데, 가모 히비코는 엽기 범죄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 있던 중, 사토의 옆방에 머무는 텐가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부르지만 자신의 맡은 역할 때문이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에 선잠에서 깬 사토는 옆방에 머무는 텐가와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텐가와의 방이 완전한 밀실이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범인은 어떻게 텐가와의 방에 들어선 것일까?

이 작품 안에는 두 명의 화자가 있다. 한 명은 사토이고, 한 명은 고엔마다. 사실 고엔마는 기암관의 집사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스텝이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부자들이 탐정 유희라는 이름으로 살인사건을 직접 주문하고 사건을 풀어가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잘 짜인 각본이 있고, 그 각본 안에서 고용된 아르바이트들은 각자 맡은 배역을 연기한다. 물론 정확한 내용은 스텝을 제외하고는 모른다. 바로 사토는 그렇게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이다. 문제는 텐가와를 살해한 범인이었던 의사 역할의 시라이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다. 과연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스태프들은 주문자의 구미에 맞게 극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사건이 진행될수록 사토는 불안해진다. 자신을 탐정으로 착각한 시즈쿠 덕분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알게 된 사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사토는 살기 위해 진짜 추리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억지스러운 내용들이 담겨있긴 하지만,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쪽지의 내용을 통해 추리를 해나가는 사토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반전 아닌 반전과 나름의 트릭들이 두 인물을 통해 하나 둘 풀어지기에 만족스럽다. 책의 말미가 나름의 열린 결말이었던지라, 사토의 다음 활약기가 은근 기대된다.

돈 앞에서 타인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취급하는 부자들의 유희. 그리고 그 유희에 장기 말과 같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알바생들.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몰랐기에 참여했겠지만, 역시 예상을 넘어서는 큰 보상에는 이유가 있을 수 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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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개정판)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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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쓸쓸함은 사랑을 약하게 만든다.

슬픔은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거기에 젊음이 더해지면 모든 것이 위태로워진다.

밝은색을 잃어버린 화가가 그린 그림과 같았다.

p.104

몇 년 전, 같은 제목의 공지영 작가의 책을 읽었다. 같은 상황이지만, 겪는 사람마다 자신의 상황이 다르기에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자신의 입장에서 쓴 책을 같이 읽으며 독자들은 좀 더 입체적으로 이들의 상황을 마주할 수 있어서 꽤나 매력적인 구성인 것 같다.(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이 책 보다 먼저 읽었는데, 그때도 참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작가인 아오키 준고(윤오)는 자신의 책 "한국의 친구, 일본의 친구"가 한국에서 꽤나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상황이기에 출판사의 요청으로 방한한다. 그리고 공항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최홍(베니)과 마주친다. 서로 당황한 이들의 눈빛. 과거 홍과 준고는 연인 사이였다. 공원에서 러닝을 하던 홍과 전 연인 고바야시 칸나와 이별에 아파하던 준고는 우연히 마주친다. 그리고 홍이 떨어뜨린 인형을 주워든 준고. 둘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빠져들 것을 예상한다.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된다. 둘이 동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준고의 전 연인이었던 칸나가 준고를 찾아온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는 칸나는 준고 옆에 서 있는 홍을 마주한다. 그리고 준고로 부터 연인 홍이 생겼다는 말을 전해 듣는 칸나.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홍과 준고는 통하는 게 많은 연인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는 가장 행복했을 시점을 기점으로 조금씩 벌어진다. 시작은 준고의 아르바이트였다. 넉넉한 집안의 딸인 홍은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 스스로 벌이를 하지 않아도 생활의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준고는 달랐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어머니와 첼리스트 아버지를 두었지만, 어머니가 집을 떠난 후 준고는 차마 아버지에서 손을 벌릴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자연스레 아르바이트는 늘어나고 홍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준고는 홍이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홍 또한 향수병에 시달리며 낯선 일본에서 유일한 안식처인 준고가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해주길 바랐다. 둘의 생각 차이 때문일까? 이렇게 벌어진 둘 사이는 결국 한 사건으로 깨지고 만다. 홍은 다시 한국으로 떠났고, 준고는 홍과의 이별을 되새기며 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펴낸다. 물론 이 책을 통해 홍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다행히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고, 홍과 이별한 지 7년. 준고는 한국에 온다. 그리고 그날, 출판사 통역사로 나온 홍을 마주한 것이다.



사실 홍은 출판사 사장인 최한의 딸이었다. 갑작스레 통역사가 나오지 못해 홍이 대신 나왔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준고가 본명이 아닌 필명 사사에 히카리를 썼기 때문에 홍은 저자가 준고일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 재회했지만 둘 사이는 살얼음판이었다. 준고는 홍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통역사가 교체된다. 홍의 집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준고의 사인회에 한 남자가 다가온다. 자신은 홍의 약혼자로 오늘 밤 홍에게 청혼을 하려고 한다는 말을 전한다. 과연 준고는 홍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와닿았던 것은 사랑은 상대가 마음을 받아주었을 때 진정한 사랑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나의 사랑을 전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상대가 그것을 사랑이 아닌 부담으로 받아들인다면 과연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준고와 홍 그리고 칸나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다시금 발견했던 시간이었다.



사실 처음 읽을 때, 냉정과 열정 사이와 같은 내용(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남녀)일 거라 생각했는데, 헤어진 연인의 재회는 맞지만 상황은 달랐다. 츠지 히토나리 버전에서는 남주인공인 준고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낸다. 이번에는 홍의 입장에서 쓰인 공지영 작가의 버전을 읽어봐야겠다. 과연 홍은 어떤 감정과 상황을 겪어냈을까?



참고로 이 작품은 쿠팡 플레이에서 방영될 작품의 원작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마주한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고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쓸쓸함은 사랑을 약하게 만든다.

슬픔은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거기에 젊음이 더해지면 모든 것이 위태로워진다.

밝은색을 잃어버린 화가가 그린 그림과 같았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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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태양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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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소.

인간은 로봇과는 달리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공격성을 드러내는 법이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서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잖소.”

2056년 온 세계는 기후 재앙으로 끔찍한 지경에 이른다. 이미 녹아버린 빙하로 인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나라도 상당수가 되다 보니, 그로 인한 난민들을 받아들여주는 나라와 난민 입국을 불허하는 나라가 생겨난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 이후 계속되는 전염병은 또 다른 바이러스로 진화하고 공격성을 심하게 지닌 검게 탄 피부에 빨간 눈을 가진 좀비들이 대한민국 곳곳을 점령하게 된다.

한 아파트에서 한 남자가 깨어난다. 머리가 아프지만,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나마 로봇 폴리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 터라, 폴리를 불러 현 상황을 확인한 남자는 자신이 한 달 만에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AI 개발자인 박기범 박사. 그는 우선 자신을 수술했던 윤 박사를 통해 자신의 상태에 대해 듣게 된다. 아내인 고영희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때 연결된 전화에서 영희는 미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좀비들의 창궐로 현재 모든 교통수단들은 멈춰있는 상태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현재 다니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출발하는 배뿐인지라, 기범은 그 배를 타고 가기로 한다.

뇌 수술을 받은 기범은 자신의 연구가 성공했는지를 알고 싶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AI 네트워크를 연결해 보지만, 계속 실패를 거듭하고, 함께 연구한 세계 각국의 연구진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기범의 쪽지에 답을 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자신의 차에 있는 USB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가 한무리의 좀비 떼어를 보고 겨우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그날 밤. 기범이 사는 아파트에 온라인 주민 회의가 열리게 된다. 자신이 문을 열어서 좀비가 들어온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탐탁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아파트 보안요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같이 미국으로 떠나자는 연락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같이 떠날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유는 좀비로부터 도망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란다. 나이 많은 노인과 챔피언, 아이와 아이 엄마까지 총 6명은 겨우 아파트를 벗어나 부산으로 향하지만 가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이미 출생률의 감소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좀비 떼어의 등장으로 사망률이 출생류를 훨씬 앞지르는 상황이 된다. 이 와중에 미국 대통령 대니얼은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뜻을 김성혁 대통령에게 밝힌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군인들을 넘기면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으로 건너오는 것을 수용하겠다고 한다. 물론, 그들과 함께 박기범 박사가 같이 입국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한편, 부산으로 출발한 이들은 일본의 화산 폭발과 지진, 쓰나미 등으로 유일한 배편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보안요원이라 말했던 김승만은 사실 한국항공 민항기 조종사로 180여 명이 항공기를 타고 미국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무리에게 전한다. 하지만 민항기를 훔치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기범과 전직 국방부장관 출신인 노인 정창수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하지만, 폭풍우 속에서 김승만과 세계적인 프로그래머 마크툽 김지섭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다. 결국 이들은 함께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하지만, 좀비 떼어의 출현으로 이들의 이동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는데...

“얻는 거? 우리가 지금 뭘 얻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당신들이 1년 365일 틀어놓는 에어컨 때문에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졌어.

일자리를 잃은 내 가족들은 전기 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 에어컨도 켜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에 익어갔고 말이야.

하루만이라도 시원한 곳에서 푹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밤 기도했지만,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40도가 넘는 열대야가 계속됐어.

낮이고 밤이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뜨거워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우리들의 처지를 당신들이 아느냐고!

우리가 얻고 싶은 건, 그저 사람답게 사는 거… 그냥 삶뿐이야.”

사실 책을 읽을수록 이 모든 상황의 진실이 밝혀진다. 인과응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올여름도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의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었다. 나 역시 집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에어컨을 계속 켜고 살았으니 말이다. 이들의 울부짖음 앞에서, 50도가 넘는 평균기온 속에서 결국 끔찍한 재앙을 마주한 우리의 모습이 그저 소설 속 한 장면으로 치부하기에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기후변화가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소.

인간은 로봇과는 달리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공격성을 드러내는 법이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서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잖소."

"얻는 거? 우리가 지금 뭘 얻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당신들이 1년 365일 틀어놓는 에어컨 때문에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졌어.

일자리를 잃은 내 가족들은 전기 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 에어컨도 켜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에 익어갔고 말이야.

하루만이라도 시원한 곳에서 푹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밤 기도했지만,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40도가 넘는 열대야가 계속됐어.

낮이고 밤이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뜨거워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우리들의 처지를 당신들이 아느냐고!

우리가 얻고 싶은 건, 그저 사람답게 사는 거… 그냥 삶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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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 흔들리는 삶을 위한 괴테의 문장들
임재성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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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항상 껍질을 벗고 새로워져야 하며, 항상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야 한다.

한층 새로운 자아를 만들기 위한 변화를 평생 동안 멈추지 마라.”

한참 쇼펜하우어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책은 괴테의 문장들이 담겨있지만, 니체와 쇼펜하우어도 등장한다. "인간이 되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라는 제목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한편으로 내가 받아들인 그 의미가 맞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책의 제목을 내가 느낀 식으로 다시 붙여보자면, 삶을 산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라고 붙이고 싶었다. 문제는 힘든 일입니다로 끝나면 안 된다는 데 있다.

삶이란 것 자체가 원래 고통이라고 쇼펜하우어는 누누이 외친다. 하지만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아닌 괴테의 책인 이유가 다음에 있다. "그럼에도 삶이 지속된다면 희망은 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 남아있던 것이 희망이었듯, 괴테 역시 삶에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또 오늘 하루를 버텨야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무척 피곤하기 때문이다. 출근 준비와 두 아이의 등교, 등원 준비를 동시에 한다. 시간이 부족하기에, 내 입에 들어갈 무언가를 넣을 시간을 과감히 뺀다. 차례차례 아이들을 보내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나면 온몸이 땀 범벅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한다. 늘 문을 열고, 불을 켜는 일은 내 몫이다.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고 오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고, 쫓기듯 오후 업무를 하고 다시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둘째의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둘째를 픽업하고, 학원을 마치고 오는 큰 아이까지 데리고 오면 야근이 시작된다.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 내일 보낼 것들을 챙기고, 큰 아이 숙제를 봐주고 나면 밤이다. 가끔은 내가 선택한 삶에 답답함을 느낀다. 뭐 하나만 튀어나가도 삶 전체가 뒤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더 강박적으로 스케줄에 맞춘다. 아이들의 다른 반응(목욕하기 싫다거나, 반찬 투정을 하는 등)에 나도 모르게 격한 반응이 오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종교와 의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고통"의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고통의 문제가 사라지는 순간, 제일 먼저 사라질 것은 종교와 의학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고통은 필요악일까?

어리석게도 인간은 고통 속에 있을 때라야 비로소 자기 내면을 직시한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지?’,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라며 자조 섞인 의문을 던진다.

고통의 이유를 발견하려는 몸부림이다.

아이러니다. 고통 앞에서 인간은 성장한다. 그렇기에 고통은 계속 존재한다. 적어도 이 한마디가 뼈 때리는 나름의 위로가 되었다. 책 안에는 이런 문장들이 상당수 있다. 마음에 닿는 문장들을 적다가 책 전체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기에, 이보다 더 진하고 깊은 맛은 직접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았던 괴테는 과연 이런 내 괴로움을 알까? 속속들이 같은 경험을 하진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또 끄덕여지고, 눈물이 나는 건 책 안에 글귀에서 위로를 받아서가 아닐까 싶다. 한 줄 건너 한 줄에 또 멈춘다. 다행이라면 그냥 방관하고, 포기하고, 주저앉지 않도록 다독인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내 삶을 채찍질하기 보다, 다른 시각을 선사해 준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1.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분

2. 자살 충동에 휩싸이는 분

3. 하루하루 버틴다는 기분으로 살고 있는 분

삶이 늘 행복하고, 매일 꽃길만 걷고 있다면 오히려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쓴맛이 나는 삶을 겨우겨우 헤엄치듯 살고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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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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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훨씬 더 큰 전쟁이라는 숲속에서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의 나뭇가지를 딛고 서 있었다.

무언가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느낌에, 성호는 인숙의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가장 내밀한 도덕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p.47

 이슈가 되고 있는 작품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읽었다. 한국 밖으로 나가 살아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한국을 떠난 주인공들이 외국에서 겪는 각종 인종차별의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왜 이 책을 읽기 전에 파친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고은지가 드라마 파친코의 작가진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중반부까지는 혼란스러웠다. 한 집안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나니, 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생각보다 많은 인물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그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아내는데도 정리가 필요했다. 덕분에 초반에 몰입하기가 좀 힘들었다. 한국의 시대상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대놓고 사건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아픈 숫자들이 등장하기에 숫자만 봐도 당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가령 1980년(광주민주화운동), 1995년(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세월호 참사)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요한과 단둘이 살던 인숙은 성호를 만난다. 변변치 않은 형편의 성호는 인숙을 만나기 위해 간 곳에서 우연히 인숙의 아버지 요한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첫인상부터 썩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성호였지만, 인숙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요한에게 할 정도로 인숙을 사랑했다. 물론, 인숙 역시 그랬다. 결국 둘은 결혼을 허락받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요한의 행방불명과 죽음. 요한의 죽음은 정말 당혹스러웠다. 군사정권과 독재를 넘어서자 또 다른 군사정권이 등장한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요한은 잡혀가고, 고문을 당하고 다행히 풀려난다. 하지만 풀려나자마자 뛰었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는다. 요한을 총으로 쏜 교도관들은 자신의 죄를 무마하기 위해 요한이 공산주의자로 보였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껴 맞춰 그의 죽음을 은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성호와 결혼을 한 첫날밤. 성호는 다음 날 미국으로 떠난다고 통보를 한다. 그리고 그와 첫날밤을 치른 후 성호는 막 결혼한 신부 인숙과 어머니 후란을 두고 떠난다. 졸지에 시어머니와 같이 살게 된 인숙은 임신을 하게 되고, 만삭에도 닭을 잡으며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아들을 출산한 인숙은 5주 된 헨리와 시어머니 후란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여전히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짓을 한다. 왜 그러는 걸까? 도대체 왜!!! 어떻게든 아들과 며느리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며느리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하지만 남편 성호는 그런 시어머니를 제지하기 보다 그냥 방관한다. 그 모든 말은 온전히 인숙이 감당해 내야 한다. 인숙과 성호에 대를 이어 헨리와 아내 제니 그리고 하루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사 곳곳의 이야기들과 닿는다. 


미국에서 만난 로버트는 바로 인숙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로버트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강제징용, 제주 4.3사건과 6.25전쟁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성호로부터 방치된 인숙이 유일하게 쉼이 되는 인물이 바로 로버트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나라에서도, 또 넓은 세계 속 우리의 입지에도 진전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한국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p.233

 현대사 속의 굵직하고 끔찍한 상처들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역사의 순간들을 관통하는 인물들은 그 안에서 그 모든 상처들을 몸으로 체득한다. 어느 누가 아프지 않을까? 묵묵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맞을까? 상처를 방관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슬프기도 했다.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일등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또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깊은 여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들은 훨씬 더 큰 전쟁이라는 숲속에서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의 나뭇가지를 딛고 서 있었다.

무언가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느낌에, 성호는 인숙의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가장 내밀한 도덕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 P47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나라에서도, 또 넓은 세계 속 우리의 입지에도 진전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한국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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