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랑데부 미술관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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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바로 부암동이다. 대학 재학 시절 동아리 총 본부가 부암동에 있었기에 정말 많이 들어봤지만 아직도 다녀오지 못한 곳이 바로 부암동이다. 그래서일까? 책 이름에 대놓고 동네 이름이 들어간 이 책이 익숙하지만 낯설었던 내 기억을 일깨웠기에 더 궁금했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동네 부암동에는 아주 특별한 미술관이 있다. 이곳에는 일정 기간 동안 한 사람만을 위한 단 하나의 작품만 전시된다. 한 작품만 전시되는 것도 특이한데, 그 작품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작품이라니... 미술관도 나름 영리를 목적으로 할 텐데(부암동 랑데부 미술관은 H그룹 재단에서 만든 곳이다.), 아무리 모 기업이 부자라도 특이하긴 하다.

미술관 이야기는 바로 윤호수라는 청년이 미술관에 출근을 하면서 시작된다. 아나운서 지망생인 윤호수. 번번이 낙방하던 차에 H그룹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낙방이다. 근데, 며칠 후 전화가 걸려온다. 혹시 아나운서가 아닌 미술관 행정직으로 근무할 생각이 없느냐는 전화였다. 실망스러웠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호수인지라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미술관으로 출근하기로 한다. 물론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짐 싸서 나올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처음 들어선 미술관에서 호수를 맞이한 사람은 학예연구원인 손다미였다. 미술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학예실장 오영균과 인사를 나눈 후, 다미의 안내로 미술관 전시실로 가는데 오실장의 뒷말에 마음이 상한 호수. 오늘만 출근하고 마려는 마음으로 전시실로 향하다가 청소를 하는 할머니를 만난다. 처음 보는 할머니는 호수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호수는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술관을 살펴보니 정말 한 사람만을 위한 단 하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실 옆에는 사연의 방이라는 곳이 따로 있었다. 전시된 작품을 보고 자신도 사연을 남기고 싶다면 그 방에 들어가 글을 쓰면 된다. 남겨진 사연 중 하나를 뽑아 미술관에 소속된 화가가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전시된 작품을 보고 난 후 방명록에 글을 남겨도 좋다. 호수가 갔을 때 전시되는 작품은 한 젊은 카페 사장의 사연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카페를 냈지만 매출 저조로 카페를 접게 되었고, 유일하게 남은 노트북마저 고장이 나서 너무 속상했던 사연자는 희망을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전시실 안에는 자전거가 한 대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 페달을 밟자 조금씩 화면에 불이 들어오면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힘들지만 목소리의 응원을 받으며 호수는 페달을 밟았다. 힘은 들었지만, 작품이 주는 여운은 컸다. 호수 역시 오랜 시간 준비했던 아나운서가 되지 못해 낙담하고 있었기에 사연자의 이야기가, 작품을 감상한 다른 사람들의 방명록이 다르게 느껴졌다.

책 안에 등장한 사연자들은 각기 처한 상황이 달랐다.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70대 노인인 춘호는 위층에 이사 온 아이 때문에 층간 소음을 겪으며 날카로운 성격이 더 날카로워진 춘호, 조폭으로 일하다 이제는 일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 대오, 자신과 같은 꿈을 꿨던 아버지지만, 춤을 추고 싶다는 딸의 꿈을 거절하는 아버지와 딸 해주의 사연, 전직 야구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은퇴를 한 후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는 정배 등 다양한 사연들이 어우러져 각자의 작품으로 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의 갑작스러운 일로 랑데부 미술관 직원들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화가였던 다미와 호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하지만 힘을 합쳐 작품을 완성한다. 그리고 베일에 감춰져 있던 화가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실제 있는 미술관은 아니지만, 이런 미술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미술과 친하지 않은 나지만, 관람객들의 사연을 통해 사역자뿐 아니라 감상한 사람들 누구도 서로를 돕고 위로해 주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 감동적이었다. 사연자들의 사연을 곱씹고 고민하며 작품으로 만들어낸 화가의 정체가 반전 아닌 반전이었는데 중반부가 넘어가고 나서 나 역시 갑자기 한 인물이 떠올랐는데 그가 정말 화가였다. 물론 그들의 관계나, 실제 직업 등은 정말 놀라웠지만 말이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공감해 주는 것. 그리고 그런 따뜻한 위로가 담겨있었던 포근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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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어던질 용기 - 진짜 내 모습을 들킬까 봐 불안한 임포스터를 위한 심리학
오다카 지에 지음, 정미애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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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임포스터 관련 책을 두 권 읽게 되었다. 먼저 읽은 책은 임포스터 심리학이고, 이번에 읽은 책은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이다. 단순히 제목만 보자면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임포스터의 뜻을 알게 되면 바로 이해가 될 것 같다. 임포스터를 우리 말로 옮기자면, 가면 증후군, 사기꾼 증후군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이 거둔 성공이 실력이 아니라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불안심리를 말하는 임포스터는 증후군이라는 이름과 달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심리 불안이다.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을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임포스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책 안에는 임포스터가 생기는 원인을 비롯하여 증상은 물론 임포스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담겨있다. 저자가 심리상담가이기에 좀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요즘 SNS가 활성화됨으로 임포스터가 더 많아졌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과거에 비해 SNS를 통해 갑자기 유명세를 얻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얻게 된 유명세에 기분이 좋기도 하겠지만, 대단한 노력 없이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는 생각에 자신의 실력을 폄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포스터는 성공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등장한 개념이기 때문에 그런지, 상대적으로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승진이나 합격처럼 특정한 자격을 얻은 사람들에게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문제는 임포스터도 방치하게 되면 자신감이 하락하고, 일의 의욕이 사라지고, 번아웃을 겪는 등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설명과 예시를 곁들여 임포스터로 고민인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책을 읽다 보니 임포스터와 낮은 자존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모두 임포스터를 겪는 것은 아니지만, 낮은 자존감이 계속된다면 임포스터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임포스터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마음을 구조화 시키는 것이다. 마음의 구조화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구조화란 해당 개념을 도표나 수식 등을 통해 눈에 보이게 도식화하는 것을 말하는데, 마음의 현 상태를 언어를 통해 시각화, 언어화하는 것을 말한다. 즉, 현재 내 마음의 상태를 글 또는 그림 등을 통해 표현해 보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이 느껴져도 막상 눈으로 보는 것과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한 구조화 해놓게 되면,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과거에 구조화 해놨던 것을 떠올리며 해당 상황을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된다.

임포스터들은 내 판단보다는 타인의 판단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그렇기에 타인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때가 많다. 이 또한 낮은 자존감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는데, 저자는 타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말고 내 스스로 내 마음의 주도권을 쥐도록 조언한다. 물론 무 자르듯 당장에 무언가를 확 바꿀 수는 없지만 조금씩 생각의 전환을 해본다면 어제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출간된 임포스터를 읽은 후,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를 읽고, 임포스터 심리학을 읽으면 좀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임포스터 심리학보다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가 좀 더 구체적이고 쉽게(초심자 입장) 임포스터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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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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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경찰에 의해 사건이 풀어지는 형태의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물론 직업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형태도 좋긴 하지만, 탐정은 실생활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약간의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데 반해, 경찰은 실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직업군이다 보니 조금 더 실제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추리 소설들의 경우 유독 탐정이나 경찰이 사건을 풀어가는 형태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시리즈물도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군마 현경 수사 1팀의 가쓰라 경부가 사건을 풀어내는 주인공이다. 총 5편의 단편소설이 연작소설 형태로 책 안에 담겨있다. 그중 4번째 등장한 가연물이 바로 이 책의 표제작이다. 가연물(可燃物)이 뭘까 싶었는데, 불에 타기 쉬운 물건을 말하는 단어였다. 제목처럼 해당 사건의 초점은 방화범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오타시 주변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화재는 쓰레기봉투에서 시작되었고, 다행히 불이 커지지는 않았다. 첫번 째 화재는 쇼와마치3가의 쓰레기 수거장에서 일어났는데, 편의점을 가던 주민 이소마타 요이치가 화재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후, 옆 민가 마당의 수도와 양동이를 통해 진화를 한다. 다행히 불은 번지지 않았지만,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 수도와 양동이를 사용한 것 때문의 경찰 조사를 받을 지경에 이른다. 그 이후 비슷한 방화가 여러 건 일어난다. 12월이라 날이 추워지고, 건조한 기후 탓에 방화가 커질 것을 걱정한 현경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가쓰라 팀이 오타시로 파견되어 사건을 조사한다. 소방본부의 하타노로 부터 해당 사건들의 조사 결과를 들은 가쓰라는 팀원들을 나누어 잠복을 하게 한다. 그 결과 간 밤에 이상한 행동을 보인 3명이 확인된다. 공원에서 음주를 하던 청년 중 한 명이 불 켜진 라이터를 모래밭을 향해 던지는 행동을 했다. 19세의 오고 미네오. 또 한 사람은 쓰레기장 앞까지 갔다가 걸음을 멈춰서 일반 쓰레기를 한참 쳐다보고 다시 돌아간 70대의 남성 오노하라 다카유키. 마지막은 쓰레기 수거함에 불붙은 담배를 넣으려다가 다시 꺼낸 30대 중반의 남자 다카야나기 미쓰루. 문제는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더 이상 방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일까? 혹시 가쓰라 팀의 조사를 범인이 보고 발을 뺀 것일까? 하지만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본부를 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디에도 해결될 방법이 없는 중에 가쓰라는 처음 방화가 일어났던 쓰레기봉투 사진을 보고 범인을 찾게 되는데... 과연 그는 어떻게 범인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표제작보다는 낭떠러지 밑이라는 작품이 더 기억에 남는다. 스키를 타던 일행 4명이 실종된다. 실종 신고를 한 것은 같은 일행 중 혼자 같이 나서지 않은 하마즈 교카와 그가 머문 스키장 산장의 주인인 아쿠타미 쇼지였다. 당일 일행은 백 컨트리(코스로 벗어나 자연 속을 활강하는 것)를 하자고 했고, 초심자인 하마즈만 제외하고 넷은 그렇게 길을 나섰는데 10시 반이 넘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가쓰라 경부 팀을 비롯하여 소방서와 지역 소방단, 주민, 스키장 구조팀으로 이루어진 수색대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조난자 중 고토 료타와 미즈노 다다시가 낭떠러지 밑에서 발견된다. 발견 당시, 고토 료타는 사망한 상태였고, 미즈노 다다시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망한 고토 료타의 시신을 살펴보던 중, 주된 사인은 경동맥이 찔리면서 일어난 과다출혈 때문으로 밝혀진다. 자상에 사용된 흉기는 끝이 뽀족한 물건으로 보이는데, 아무리 주변을 찾아도 흉기로 쓸만한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사망시간은 밤 22시에서 새벽 2시 사이로, 현 상황으로 보자면 범인은 미즈노 다다시로 보이지만 어디에서도 흉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일행 중 한 명인 누카다가 혼자 산장으로 돌아온다. 누카다를 조사하던 경찰 무라타 가쓰라는 누카다로 부터 과거 교통사고로 사망한 미즈노의 어머니의 사고의 원인이 고토 료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운전을 험하게 하는 고토는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그의 뒤에서 운전을 하던 미즈노의 어머니는 고토의 차를 피하려다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운전하는 레미콘과 사고를 낸다. 사고로 레미콘 운전자는 물론 미즈노의 어머니도 사망하게 되고, 사고의 배상 때문에 미즈노의 가족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미즈노는 모르는 상태였다. 이 사실을 들은 가쓰라 경부는 과연 미즈노가 해당 사건의 진실을 알았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흉기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 걸린다. 하지만 역시 가쓰라다. 전혀 예상치 못한 흉기의 소재를 발견하게 되는데...

소설이라고 하지만, 사건을 풀어내는 가쓰라의 시선은 정말 특별하다. 작가는 이미 사건 곳곳에 여러 정보들을 뿌려놓은 상태다. 아니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가쓰라의 몫이다. 실마리를 통해 사건이 풀어지면 독자는 허를 찔린 기분이 된다. 매력적인 경찰이자 탐정인 가쓰라 경부.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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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시체를 부탁해
한새마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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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으스스하다. 귀여운 곰인형의 반이 피로 보이는 빨간 물이 들어있다. 한번 만난 적 있는 작가인 한새마 작가의 신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다. 총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는 이 작품의 두 번째 작품이 표제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다. 신기한 것은 각 작품마다 엄마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등장한 엄마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미스터리 소설이라서 그런지, 각 소설은 각자의 색을 가진 반전이 담겨있다. 허를 찌르는 반전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음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앞의 소설들 보다 뒤의 등장한 소설들이 좀 더 강렬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각 소설들에 등장하는 것은 "죽음"이다. 물론 죽음의 상황이나 누가 죽었는지 등 다양한 것은 소설 속 엄마들을 닮았다.

표제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는 중3 딸 예나의 전화로 시작된다. 밤늦게 걸려온 전화에서 딸은 엄마에게 사람을 죽였다는 고백을 한다. 딸이 벌인 일을 저버릴 수 없었던 엄마는 딸 대신 시신을 처리하기로 한다. 딸은 자신을 몰래 따라와서 성폭행을 하려고 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선반에 있던 돌로 괴한의 머리를 내리쳤다고 한다. 정당방위이라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엄마는 딸을 들여보내고 혼자 사건이 벌어진 친정집 앞 텃밭에 구덩이를 판다. 그리고 시체의 옷을 다 벗긴 후 땅에 묻는다. 시체에서 눈에 띄는 가슴의 피어싱과 파란색 골무는 따로 챙긴 채 말이다. 피 묻은 옷가지는 모두 태워서 증거를 없애고, 혹시 몰라 땅 위에는 비닐과 함께 사두었던 비료를 올려둔다. 겨우 상황을 마무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집을 찾아온다. 한 일이 있는지라, 내심 경찰의 방문이 부담스러운 엄마에게 경찰은 딸의 소재를 묻는다. 평일 낮에 딸은 당연히 학교에 있었다. 얼마 전 사망한 채 발견된 정은정이라는 여학생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날, 딸은 어디에 있었냐는 물음이었다. 물론 그날의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감이 있었던 엄마는 며칠 전 걸려온 같은 학교 서연 엄마의 전화를 받고 회의가 열리는 학교로 향한다. 문제가 된 것은 은정의 사망과 관련해서 학교 홈피에 올라온 내용 때문이었다. 자신의 딸은 은정의 사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는 엄마. 하지만 과연 은정의 사고와 예나는 아무 상관이 없을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은 마더 머더 쇼크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물에 빠지고 있는 차 안에 있는 한 여자. 차 유리창에는 자신이 5개월 된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는 말이 쓰여있다. 하지만 혜나는 기억이 없다. 드문드문 생각나는 기억들로 미뤄보면 자신이 정말 아들 노아를 죽인 것 같다. 카시트에는 아이가 없고, 안전벨트는 송곳이 꽂혀있어서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손등에는 믿지 말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도대체 누굴 믿지 말라는 것일까? 그때 전화가 걸려온다. 혜나가 다니는 정신과의 의사였다. 자살을 의미하는 문자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근데 뭔가 의심스럽다. 약 봉투에 들어있는 약이 10개도 넘는데, 의사는 자신을 그렇게 많은 약을 처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씩 차오르는 물. 도대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혜나는 필라테스 강사로 결혼 후 6개월 만에 임신을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혜나는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그래도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은오 덕분에 하루하루를 버틴다. 친절했던 시어머니 정인은 혜나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돌변한다. 한참 코로나로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조리원이 아닌 집에서 몸조리를 하기로 한 혜나. 하지만 며칠 만에 아이를 막 대한다는 이유로 도우미를 자르고 자신이 그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 정인.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게 하고 잡일을 혜나에게 시킨다. 그렇게 혜나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다. 정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혜나는 과거 자신의 필라테스 학생이자 유아교육과 출신이었던 이나를 베이비시터로 채용한다. 하지만, 이나의 행동이 뭔가 의심스럽다. 자신의 남편을 유혹하는 이나의 모습과 퇴근이 늦게 되면 이나를 바려다 주는 은오 덕분에 혜나의 의심을 더 심해진다. 혹시 자신에게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이 아닌 다른 약을 추가로 먹인 게 바로 이나일까?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정말 혜나는 아들 노아를 죽인 살인자일까?

나 역시 두 아이를 낳은 후 심한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특히 둘째 때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물론 하루 먹고 너무 독해서 중단하긴 했지만...) 그래서인지 혜나의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특히 혜나도 나처럼 직장을 다녔었기에 집 안에서 24시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주는 우울감이 더 심했을 것 같다. 물론 혜나가 처한 상황은 몸서리치도록 치밀하게 준비된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특히 이 소설 속에는 같은 병을 앓은 두 여성이 등장하기에,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녀들이었지만, 다른 입장이었기에 둘의 비교가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단편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뭔가를 예상하기 전에 사이다 급으로 진행되는 상황도 무척 만족스럽다. 책 안에 등장하는 엄마들 중에는 모성애가 넘치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의 엄마들도 있다. 그래서 더 색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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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포스터 심리학 -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신감 회복훈련
질 스토다드 지음, 이은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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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무척 관심이 가던 책이 있었다. 한참 아이와의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데다가, 내 단점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보이는 것 같아서 고민이 되던 때였는데 책 표지의 한 글귀가 눈에 와닿았다. 아쉽게도 위시리스트에만 있었지만, 덕분에 그 단어를 눈여겨보고 기업하게 되었다. 그 책의 제목은 임포스터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과거 내가 관심 있게 봤던 임포스터가 생각났다. 이번에는 부모를 넘어 좀 더 확장된 독자들을 향한 책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임포스터는 무엇을 의미할까? 임포스터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가면 증후군이라고 한다. 자신이 거둔 성공이 실력이 아니라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불안 심리를 일컫는 말이 바로 임포스터다. 가면 증후군이라고 부르지만, 저자는 임포스터에 질병을 의미하는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질병은 다수가 아닌 소수, 특정 군이 걸리는 것인데 비해, 임포스터는 70% 이상의 사람들이 경험할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불안 심리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자존감이 낮다. 완벽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때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바로 포기한다. 그래서 상당수는 시도도 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과 같이 일하는 것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을 즐기고, 결과물이 타인에게 어떻게 판단될까에 집중하기에 스스로 압박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설령 결과가 좋아도 내 능력보다는 단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지극히 내 탓을 한다. 내가 무능력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붙인다.

저자 역시 임포스터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녀 역시 그녀가 성취한 결과물(책도 여러 권 냈다.)에 대해 불안해하고,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다른 이유들을 들이대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다.(대놓고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저자는 임포스터를 5가지로 나눈다. 전문가 유형, 완벽주의자 유형, 독주자 유형, 타고난 천재 유형, 초인 유형.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두 모습의 사람이 둘 다 임포스터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회피형이다. 일을 미루고, 포기하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성과가 없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워커홀릭이다. 살과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심취해서 일을 한다. 이 둘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이 둘은 모두 임포스터다. 전자는 불안과 고통을 돌파하기 힘들어서 포기한 것이고, 후자는 그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다. 이 둘의 기저에는 스스로를 불신하는 임포스터가 깔려있다. 단지 그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임포스터 자체가 최악은 아닌 게, 임포스터는 어떤 면에서는 더 높은 성취를 이루어내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울감과 번아웃, 무력감이 나타나 스스로를 갉아먹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포스터는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소수자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 이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 채워져야 하는 부분의 극심한 결핍을 경험하는 경우 임포스터가 많이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백인보다는 유색인종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임포스터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임포스터의 근본적인 치료(?) 법은 없다. 그저 생각의 전환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심리적 유연성.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운동 중에는 특히 유연성을 요구하는 동작들이 많다. 몸이 유연하면 운동을 할 때 덜 다친다. 마음 역시 그렇다. 마음에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임포스터는 스스로 딱딱하게 굳고 갇힌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에게도 좀 더 너그러워지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임포스터로 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은 책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책을 읽으며 나는 왜 임포스터를 경험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공보다 실패에 대한 기억이 더 많고 깊이 자리 잡아서가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다. 또한 칭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이유가 될 것 같았다. 서양에 비해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많은 임포스터를 만들어 낸 것 같다.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코너로 몰아붙이기 보다 심리적 유연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연습. 책 안에 여러 방법들을 기억하고 적용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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