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도 떠나지 않습니다 - 코드블루 현장에 20대 청춘을 바친 중환자실 간호사의 진실한 고백
이라윤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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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다'라는 단어는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쓰다'라는 뜻이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느라 힘을 들이고 애를 썼다. 그 하루들이 쌓이다. 축적의 시간.

그 시간들은 짙은 농도를 만들어낸다.

우린 어제도 잘 살아냈고 오늘도 잘 살아내고 있고 지금까지 잘해냈듯이 내일도 잘해낼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너무 무시하지 않기를.

미래를 너무 걱정하기 않기를 바란다. 오늘을 잘 살아낸 내가 그 증거이기에.

중환자실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십여 년 전, 중환자실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친한 언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저기 각종 기계음이 가득한 곳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서 미동조차 안 하던 언니의 모습을 보며 낯설고, 안타까웠고, 씁쓸했다. 얼마 전까지 같이 지내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언니는 하늘로 떠났다.

병원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지금까지 입원이라고는 출산했을 때가 전부였음에도 병원은 내게 공포스러운 곳이다. 그렇기에 간호학과 진학을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다. 나는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일반 병동간호사도 쉽지 않은데,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은... 더 상상이 안 간다. 각종 피 튀기는 상황들이, 드라마에서 보는 코드블루가 수시로 뜨는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닌가!

이 책의 저자는 외과계 중환자실 간호사다. 그것도 이젠 교육을 시킬 정도의 내공을 가진 베테랑 간호사다. 그녀의 글을 통해 만나는 간호사의 세계, 그곳도 중환자실은 역시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았다. 늘 9 to 6의 생활을 했던 내게, 3교대 근무는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지인 중에 대학병원 간호사를 오래 한 언니가 있었는데, 나이트 근무나 새벽 근무가 종종 있어서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책을 통해 실제로 볼 줄이야!

각종 환자들과의 이야기가 책의 내용인데, 역시 별의별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구나! 싶다. 보호대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로 링겔줄을 끊는 환자도 있고, 코로나 시국에는 격리실에서 환자에게 목졸림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소송까지 갔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ㅠ) 아무리 인식이 달라졌어도, 여전히 간호사가 아닌 아가씨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고, 막말을 내뱉는 보호자들도 있었다. 늘 사망과 닿아 있기에 그 어느 곳보다 조심스러운 중환자실임에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은 환자를 돌보는 것 보다 더 한 감정노동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참 많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그동안의 수고가 헛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물고 참아내기도 했단다. 이제는 후배간호사들을 다독이며, 그들을 이끌고 교육시키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워낙 인력난을 겪는 간호계인지라 매일이 힘들어 보였다. 특히 아픈 몸을 이끌고(해열제나 약을 털어넣거나, 너무 심하면 근처 병원에 가서 링겔을 맞기도 했다.) 출근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한 사람의 공백이 차지하는 상황들이 어떨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묵묵히 한다고는 하지만...똑같이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사명감이 한 스푼 더해지는 직업이 간호사가 아닐까 싶다.

현장에서의 실제적인 목소리를 마주하니, 그들의 상황과 헌신이 더 눈에 보여서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이러니 "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40%만이 현장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니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바다.


‘수고하다‘라는 단어는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쓰다‘라는 뜻이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느라 힘을 들이고 애를 썼다. 그 하루들이 쌓이다. 축적의 시간.

그 시간들은 짙은 농도를 만들어낸다.

우린 어제도 잘 살아냈고 오늘도 잘 살아내고 있고 지금까지 잘해냈듯이 내일도 잘해낼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너무 무시하지 않기를.

미래를 너무 걱정하기 않기를 바란다. 오늘을 잘 살아낸 내가 그 증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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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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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가.

원래 세계란 무엇인가.

애초에 나는 누구인가.

비가 내리고 날씨가 급 겨울이 되었다. 독특한 시각의 호러 작품을 마주하게 되었다.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작품들이었던 것 같다. 기시 유스케의 단편소설 4편이 담겨있는 이 작품집 속 가을비 이야기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다. 왜일까? 도대체 왜 가을비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 장에 옮긴이의 말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가 안 되는 작품도 더러 있었다.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해서 읽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첫 번째 나온 아귀의 논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책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짧은 작품이었음에도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전생의 업보가 이 작품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짝짓기를 하는 모든 생물들에 대한 원한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안타까움이 컸던 것 같다. 또한 작품 속 두 주인공인 다나구치 미하루와 아오타 요시카즈의 이야기 속에서 썸의 기운(?)이 살짝 느껴졌는데, 아오타 요시카즈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썸이 강제 종료(?) 되어서 더 아쉬웠던 것 같다.

비운의 음악가와 그가 남긴 목소리의 비밀이 담긴 백조의 노래라는 작품과, 실종된 작가를 찾아 나선 이야기가 담긴 푸가도 흥미로웠지만 마지막에 들어있던 고쿠리상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우선 고쿠리상은 우리나라의 분신사바와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시작은 4명의 초등학교 6학년생이 죽음을 기도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곤도 다쿠야와 니지마 하루토, 고토 신이치, 오가와 가에데는 모두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는 마음으로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 하루토는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뇌종양 환자이고, 신이치와 가에데는 둘 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다쿠야는 과거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죄책감이 크다. 하루토는 한 기사를 통해 고쿠리상의 어둠 버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컬트 연구가인 우시쿠보 히로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고쿠리상 중 어둠 버전은 일명 러시안룰렛 버전으로 불리는데, 4명의 인물 중 다수는 해결책을 받게 되지만, 적어도 1명 이상은 죽음을 맞이한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4명은 폐 병원인 바크티 초후에 모인다. 우시쿠보 히로키의 진행으로 고쿠리상을 하게 된 4명. 그들 중 죽음의 카드를 뽑게 되는 인물은 누구였을까?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변호사가 된 다쿠야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주간 추상 기자인 노구치 ??페이였다. 그는 과거의 고쿠리상 이야기를 꺼내며 다쿠야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사건과 함께 그가 벌인 과거의 일을 다시금 조명하겠다는 이유였다. 결국 다시금 살인을 하게 되는 다쿠야. 그리고 그로부터 들은 과거 고쿠리상 4인방 중 사망한 하루토를 제외한 친구들이 현재도 과거 못지않은 끔찍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금 고쿠리상 게임을 제안하게 되는데...

각자가 받은 내용대로 자신이 가야 할 위치에 도착한 인물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쿠야 앞에 펼쳐진 고쿠리상의 진실은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책 속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의든, 타이든 자신이 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상황에 노출되게 된다.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또 원치 않는 다른 상황을 마주한다. 그래서 그곳에 매몰되기도 하고, 탈출하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벗어날 수 없는 괴담 속 주인공들과 우리의 삶은 과연 다를까? 우리 역시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고 있진 않은가? 코로나19를 지내오며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진 상황에서 가을비 이야기를 접해서 그런지 어둡고 침침한 작품 속 이야기가 낯설지만, 또 낯설지 않다는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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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려치는 안녕
전우진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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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맞으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이 한 줄이 내 뇌리에 꽂혔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마음교회 버스 운전사 손병삼은 손집사로 불리지만,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골초다. 그런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다. 바로 그에게 뺨을 맞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뉘우치게 된다는 것이다. 병삼의 어머니는 병삼을 낳고 오래지 않아 죽는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속상함을 아들 병삼에게 푼다. 늘 술 심부름을 시키고, 아들을 때린다. 아무 말 없이 얻어맞는 병삼을 보고 동네 이장이 아버지를 나무라기도 하고, 동네 할머니가 불쌍한 병삼을 챙겨주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폭행을 하는 아버지를 피해 저수지에 홀로 앉아 있던 병삼은 저수지에서 튜브를 타다 물에 빠진 정숙을 발견하지만,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물에 빠진 정숙을 향해 헤엄을 치다가 정신을 잃었던 병삼 옆에 외국인같이 보이는 한 남자(예수?)가 서 있었다. 인자한 미소를 짓는 그는 병삼과 정숙을 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병삼에게 한마디를 남긴다. 정숙의 몸은 구했는데, 정신이 없으니 정신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녀를 세게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병삼은 정숙을 살렸고, 그날 이후 그 능력을 갖게 된다.

일심은 추운 겨울날 정운사에서 발견된다. 다 죽어가는 일심을 구한 사람은 주지 우행 스님이다. 그리고 또 한사람 동암 스님. 동암 스님이 큰 화분에 길렀던 지네를 잡아 그것을 먹여 일심을 살린다. 그날 이후로 일심은 정운사에서 살게 된다. 우행은 동암에게 일심을 맡긴다. 일심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싫었던 동암은 일심을 단련시킨다. 그가 배웠던 소림사 무술을 일심에게 전수한다. 그리고 학교에 입학한 일심은 그동안 배운 무술로 학교짱이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짱이 된 일심은 빼앗은 도시락을 먹으며 또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병삼은 일심의 뺨을 때린다. 지켜보든 모두가 일심이 병삼을 때릴 거라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결국 일심은 학교를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은을 만난다. 하은은 김정석 목사의 딸이었는데,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일심과 가까워진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운 것은 절에서 살면서 배운 불경과 소림무술이 전부인 일심. 결국 일심은 하은을 성추행한 과외 선생을 손 봐준 것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된다. 2년을 복역하고 돌아온 일심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하은. 그리고 둘 사이에는 아들 한길이 생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데보라서(서보라)는 큰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녀의 겨드랑이 땀샘새를 맡은 남자들이 갑자기 그녀를 폭행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는 아빠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병원에서 트리메탈아민뇨증(생선냄새 증후군)의 변성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온 보라. 여성들만 가르치는 피트니스클럽 크로스핏 강사가 된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여자들을 괴롭히는 남자들을 응징하고 합의금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날, 호텔에서 강남 메디케어 건강검진센터의 최원장과 강남의 대형교회 재일교회 담임목사인 전재일을 만나게 된다. 전재일이 최원장에게 하는 행동에 이상을 느낀 보라는 그동안의 방법으로 재일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일이 꼬여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된 병삼에게 뺨을 맞고 졸지에 꽃뱀이 되고 만다. 한편, 그 일을 통해 병삼의 능력을 보게 된 재일은 그에게 자신의 교회 운전사로 오라며 현재 받는 금액에 2배를 제시한다.

병삼은 사실 다시 만난 일심(정바울로 개명함)이 목사로 있는 개척교회에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정바울 목사는 과거 전재일 목사와 과거에 얽힌 사연이 있었다. 재일교회로 옮기게 된 병삼은, 보라의 일로 찾아온 바울에게 사이비 누명을 씌우려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과연 병삼은 친구인 바울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을까?

작품 속에는 저자의 이름과 동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헷갈릴 정도다. (작가이고, 교보문고 대상을 받은 전작을 가지고 있고, 현재의 내용으로 작품을 준비하는?)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진짜 목사 정바울과 오히려 사이비 목사인 전재일. 종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는 걸까? 그럼에도 끝까지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병삼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정말 여기저기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을 텐데... 하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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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인 이야기 - 모험하고 싸우고 기도하고 조각하는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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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중세 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십자군 전쟁과 연결된 종교의 시대? 아니면 페스트로 유럽 전체가 피폐해진 상황? 내 머릿속 중세 시대는 결코 무지갯빛은 아니었다. 침침하고 어두운 잿빛에 가깝다고 할까?

과연 이 책을 읽고 나서 중세 유럽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바뀔까? 기대해도 좋다.

첫 장부터 등장하는 것은 종교도, 페스트도 아닌 무려 바이킹!이다. 우선 이 책은 중세 중에서도 유럽인들의 삶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첫 장이 바이킹이다. 바이킹 하면 바다의 무법자, 도둑들, 해적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바이킹에는 덴마크계, 노르웨이계, 스웨덴계가 있는데 그중 스웨덴계는 러시아 국가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현재의 복지국가로 손꼽는 북유럽이 바이킹의 후예라니... 놀랍다.) 바이킹은 야만인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잔혹하고, 남의 것을 빼앗는 도둑이 맞긴 하다. 하지만 바이킹이 이룬 영향에는 꼭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바이킹에 대한 묘사를 보면 분명 ' 야만족' 냄새가 물씬 나지만, 사실 그 시대에는 대부분 지역의 문화 수준이 고만고만하게 야만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히려 바이킹의 활동 결과 많은 지역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기독교를 수용하고 문화적 발전이 가능했으니, 말하자면 바이킹이 문명화의 선두에 섰던 셈이다.

현대까지 이어지는 내용 중에는 코르도바 모스크- 성당 이야기였는데, 같은 지역을 이슬람이 지배하다 기독교권으로 돌아간 에스파냐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행히 멋지게 지어진 모스크-성당은 여전히 존재한다. 문화권이 달라졌다고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성당이 되면서 일부는 무너뜨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두 문명의 공존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중세 하면 아무래도 종교(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교황의 권위와 황제의 권위의 충돌이 일어났던 것이 바로 중세니 말이다. 과연 세계 최상위의 권위는 누구에게 있을까? 교황의 권위에서 일어난 사건 중 하나는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가 과거에는 가난하고 기회가 없는 자들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참여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 십자군 전쟁에 가장 많은 참여를 한 계층은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이었는데, 오히려 전쟁에서 패한 후 모든 것을 잃는 경우도 상당했고 그들의 부를 가져간 인물들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상인들이었다. 과연 왜 기사들은 십자군 전쟁에 모든 것을 걸고 참여한 것일까?

기사들은 돈을 벌러 간 게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해 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죄를 참회하고 저세상에서 영원한 보상을 구하겠다는 열정이 끓어넘쳤다.

그 밖에도 페스트로 인한 사회적 변화의 이야기와 연옥의 개념의 등장 이후 급속도로 증가한 귀신 이야기, 500년 만에 밝혀진 메디치 가문의 살인사건의 진범 등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들이 허를 찌른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한쪽만 보고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웠는데, 무엇이든 양면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잿빛의 중세가 있었기에 이후 르네상스가 더 아름답게 꽃 핀 것 아닐까? 그런 면에서 중세는 불필요한 시대가 아니었다.

 

 

바이킹에 대한 묘사를 보면 분명 ‘ 야만족‘ 냄새가 물씬 나지만, 사실 그 시대에는 대부분 지역의 문화 수준이 고만고만하게 야만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히려 바이킹의 활동 결과 많은 지역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기독교를 수용하고 문화적 발전이 가능했으니, 말하자면 바이킹이 문명화의 선두에 섰던 셈이다.

기사들은 돈을 벌러 간 게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해 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죄를 참회하고 저세상에서 영원한 보상을 구하겠다는 열정이 끓어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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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로 된 무지개
이중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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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지. 당신들이 알 수 없는 사연들이 있어.

그때, 강철로 만들어진 그 세상에서, 참을 수 없이 차갑고 견딜 수 없이 견고했던 그때 그곳에서

무슨 비명들이 되 울렸는지, 당신들은 몰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제목이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이 안 났는데, 책을 읽고 보니 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의 마지막 시구였다. 책을 덮고 나니 씁쓸함이 마구 피어오른다. 역시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되는 걸까?

서기 2078년 현재. 남과 북은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고 통일이라고 하기는 좀 뭐 한 상태다. 2064년 김정은 정권이 무너진다. 북한의 젊은 장교들의 쿠데타 때문이다. 4년 후인, 2068년 남한과 북한은 연방정부 수립에 합의하게 된다. 남한도 북한도 있고, 연방정부도 있는 아주 이상한 형태로 말이다.

연방수사국 이영훈 경위는 한 사건을 맡게 된다. 살인사건이다. 죽은 사람은 이기철로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말이 개발업자지 상태 안좋은 건물을 슬쩍 고쳐 비싼 값에 파는 악덕 부동산 업자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원산 별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문제는 그에 대한 기록이 잠겨있다는 것이다.

3년 차 경사인 박세욱이 부산에서 평양으로 발령이 난다. 인사를 하고 들어온 세욱에게 연방수사국 평양지부 강력3팀장 정준희가 말을 붙인다. 그의 파트너는 이영훈인데, 그는 업무 외에 이영훈을 감시하는 일을 맡아야 한단다. 도대체 이영훈이 무슨 일을 벌였길래, 스파이까지 필요한 걸까? 이렇게 낯설고 좋지 않은 상태로 둘은 만난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특이사항이 자꾸 발생한다. 영훈이 확인하려는 인물들마다 전부 정보가 잠겨있었던 것이다. 조인철, 박윤석, 윤민희, 이기철까지 말이다.

그리고 동흥동 김태성의 아파트에서 협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총을 들고 위협하는 범인은 태성에게 약을 먹기를 종용한다. 그가 죽인 사람들의 수만큼 알약을 먹으라는 것이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약을 먹거나(알약은 심장약으로 과다 복용 시 사망한다) 총에 맞거나... 어차피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범인은 태연히 알약을 한 번에 삼키면 바로 구급차를 불러주겠다는 말까지 전한다. 과연 이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조윤선 연방수사국 서울지부장이 정 팀장에게 전화를 한다. 북조선 평양공안서 강력범죄대응반 반장인 안은경이 닫힌 자료를 열람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조사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상황을 파악하라는 명령을 받은 영훈과 세욱. 가보니 사망한 사람은 이정현으로 사업가였는데, 그의 아내인 이선예가 신고를 했다. 근데 이상하다. 그 집의 주인은 김태성과 진미옥인데 말이다.

이로써 죽은 인물 중 정보가 잠겨있는 인물들은 총 5명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과거 북한에서 고위직을 활동했던 인물들로 탈북을 했다는 것과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뭔가 뒤가 구린데, 이상하게 안은경은 사건을 빨리 덮으려고 한다. AI가 그렇게 판단했다는 이유지만, 영훈은 뭔가 찜찜하다.

"눈이오면 잠깐 덮이는 듯 싶지. 하지만 봄의 따스함에 결국 모든게 다 드러나."

이와 더불어 과거의 사건들이 조명된다. 세욱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과, 영훈과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이 한 번에 잘려나갔던 이유들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과거는 현재의 사건과 어떤 연결이 있을까? 설마 했던 상황이 그대로 펼쳐져서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각 상황들이 절묘하게 이어져서 남과 북의 현실을 바라보게 해줬던 것 같다.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지. 당신들이 알 수 없는 사연들이 있어.

그때, 강철로 만들어진 그 세상에서, 참을 수 없이 차갑고 견딜 수 없이 견고했던 그때 그곳에서

무슨 비명들이 되 울렸는지, 당신들은 몰라."

"눈이오면 잠깐 덮이는 듯 싶지. 하지만 봄의 따스함에 결국 모든게 다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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