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경찰에 의해 사건이 풀어지는 형태의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물론 직업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형태도 좋긴 하지만, 탐정은 실생활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약간의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데 반해, 경찰은 실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직업군이다 보니 조금 더 실제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추리 소설들의 경우 유독 탐정이나 경찰이 사건을 풀어가는 형태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시리즈물도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군마 현경 수사 1팀의 가쓰라 경부가 사건을 풀어내는 주인공이다. 총 5편의 단편소설이 연작소설 형태로 책 안에 담겨있다. 그중 4번째 등장한 가연물이 바로 이 책의 표제작이다. 가연물(可燃物)이 뭘까 싶었는데, 불에 타기 쉬운 물건을 말하는 단어였다. 제목처럼 해당 사건의 초점은 방화범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오타시 주변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화재는 쓰레기봉투에서 시작되었고, 다행히 불이 커지지는 않았다. 첫번 째 화재는 쇼와마치3가의 쓰레기 수거장에서 일어났는데, 편의점을 가던 주민 이소마타 요이치가 화재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후, 옆 민가 마당의 수도와 양동이를 통해 진화를 한다. 다행히 불은 번지지 않았지만,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 수도와 양동이를 사용한 것 때문의 경찰 조사를 받을 지경에 이른다. 그 이후 비슷한 방화가 여러 건 일어난다. 12월이라 날이 추워지고, 건조한 기후 탓에 방화가 커질 것을 걱정한 현경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가쓰라 팀이 오타시로 파견되어 사건을 조사한다. 소방본부의 하타노로 부터 해당 사건들의 조사 결과를 들은 가쓰라는 팀원들을 나누어 잠복을 하게 한다. 그 결과 간 밤에 이상한 행동을 보인 3명이 확인된다. 공원에서 음주를 하던 청년 중 한 명이 불 켜진 라이터를 모래밭을 향해 던지는 행동을 했다. 19세의 오고 미네오. 또 한 사람은 쓰레기장 앞까지 갔다가 걸음을 멈춰서 일반 쓰레기를 한참 쳐다보고 다시 돌아간 70대의 남성 오노하라 다카유키. 마지막은 쓰레기 수거함에 불붙은 담배를 넣으려다가 다시 꺼낸 30대 중반의 남자 다카야나기 미쓰루. 문제는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더 이상 방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일까? 혹시 가쓰라 팀의 조사를 범인이 보고 발을 뺀 것일까? 하지만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본부를 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디에도 해결될 방법이 없는 중에 가쓰라는 처음 방화가 일어났던 쓰레기봉투 사진을 보고 범인을 찾게 되는데... 과연 그는 어떻게 범인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표제작보다는 낭떠러지 밑이라는 작품이 더 기억에 남는다. 스키를 타던 일행 4명이 실종된다. 실종 신고를 한 것은 같은 일행 중 혼자 같이 나서지 않은 하마즈 교카와 그가 머문 스키장 산장의 주인인 아쿠타미 쇼지였다. 당일 일행은 백 컨트리(코스로 벗어나 자연 속을 활강하는 것)를 하자고 했고, 초심자인 하마즈만 제외하고 넷은 그렇게 길을 나섰는데 10시 반이 넘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가쓰라 경부 팀을 비롯하여 소방서와 지역 소방단, 주민, 스키장 구조팀으로 이루어진 수색대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조난자 중 고토 료타와 미즈노 다다시가 낭떠러지 밑에서 발견된다. 발견 당시, 고토 료타는 사망한 상태였고, 미즈노 다다시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망한 고토 료타의 시신을 살펴보던 중, 주된 사인은 경동맥이 찔리면서 일어난 과다출혈 때문으로 밝혀진다. 자상에 사용된 흉기는 끝이 뽀족한 물건으로 보이는데, 아무리 주변을 찾아도 흉기로 쓸만한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사망시간은 밤 22시에서 새벽 2시 사이로, 현 상황으로 보자면 범인은 미즈노 다다시로 보이지만 어디에서도 흉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일행 중 한 명인 누카다가 혼자 산장으로 돌아온다. 누카다를 조사하던 경찰 무라타 가쓰라는 누카다로 부터 과거 교통사고로 사망한 미즈노의 어머니의 사고의 원인이 고토 료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운전을 험하게 하는 고토는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그의 뒤에서 운전을 하던 미즈노의 어머니는 고토의 차를 피하려다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운전하는 레미콘과 사고를 낸다. 사고로 레미콘 운전자는 물론 미즈노의 어머니도 사망하게 되고, 사고의 배상 때문에 미즈노의 가족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미즈노는 모르는 상태였다. 이 사실을 들은 가쓰라 경부는 과연 미즈노가 해당 사건의 진실을 알았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흉기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 걸린다. 하지만 역시 가쓰라다. 전혀 예상치 못한 흉기의 소재를 발견하게 되는데...

소설이라고 하지만, 사건을 풀어내는 가쓰라의 시선은 정말 특별하다. 작가는 이미 사건 곳곳에 여러 정보들을 뿌려놓은 상태다. 아니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드러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가쓰라의 몫이다. 실마리를 통해 사건이 풀어지면 독자는 허를 찔린 기분이 된다. 매력적인 경찰이자 탐정인 가쓰라 경부.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시체를 부탁해
한새마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 으스스하다. 귀여운 곰인형의 반이 피로 보이는 빨간 물이 들어있다. 한번 만난 적 있는 작가인 한새마 작가의 신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다. 총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는 이 작품의 두 번째 작품이 표제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다. 신기한 것은 각 작품마다 엄마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등장한 엄마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미스터리 소설이라서 그런지, 각 소설은 각자의 색을 가진 반전이 담겨있다. 허를 찌르는 반전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음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앞의 소설들 보다 뒤의 등장한 소설들이 좀 더 강렬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각 소설들에 등장하는 것은 "죽음"이다. 물론 죽음의 상황이나 누가 죽었는지 등 다양한 것은 소설 속 엄마들을 닮았다.

표제작인 엄마, 시체를 부탁해는 중3 딸 예나의 전화로 시작된다. 밤늦게 걸려온 전화에서 딸은 엄마에게 사람을 죽였다는 고백을 한다. 딸이 벌인 일을 저버릴 수 없었던 엄마는 딸 대신 시신을 처리하기로 한다. 딸은 자신을 몰래 따라와서 성폭행을 하려고 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선반에 있던 돌로 괴한의 머리를 내리쳤다고 한다. 정당방위이라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엄마는 딸을 들여보내고 혼자 사건이 벌어진 친정집 앞 텃밭에 구덩이를 판다. 그리고 시체의 옷을 다 벗긴 후 땅에 묻는다. 시체에서 눈에 띄는 가슴의 피어싱과 파란색 골무는 따로 챙긴 채 말이다. 피 묻은 옷가지는 모두 태워서 증거를 없애고, 혹시 몰라 땅 위에는 비닐과 함께 사두었던 비료를 올려둔다. 겨우 상황을 마무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집을 찾아온다. 한 일이 있는지라, 내심 경찰의 방문이 부담스러운 엄마에게 경찰은 딸의 소재를 묻는다. 평일 낮에 딸은 당연히 학교에 있었다. 얼마 전 사망한 채 발견된 정은정이라는 여학생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날, 딸은 어디에 있었냐는 물음이었다. 물론 그날의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감이 있었던 엄마는 며칠 전 걸려온 같은 학교 서연 엄마의 전화를 받고 회의가 열리는 학교로 향한다. 문제가 된 것은 은정의 사망과 관련해서 학교 홈피에 올라온 내용 때문이었다. 자신의 딸은 은정의 사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는 엄마. 하지만 과연 은정의 사고와 예나는 아무 상관이 없을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은 마더 머더 쇼크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물에 빠지고 있는 차 안에 있는 한 여자. 차 유리창에는 자신이 5개월 된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는 말이 쓰여있다. 하지만 혜나는 기억이 없다. 드문드문 생각나는 기억들로 미뤄보면 자신이 정말 아들 노아를 죽인 것 같다. 카시트에는 아이가 없고, 안전벨트는 송곳이 꽂혀있어서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손등에는 믿지 말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도대체 누굴 믿지 말라는 것일까? 그때 전화가 걸려온다. 혜나가 다니는 정신과의 의사였다. 자살을 의미하는 문자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근데 뭔가 의심스럽다. 약 봉투에 들어있는 약이 10개도 넘는데, 의사는 자신을 그렇게 많은 약을 처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씩 차오르는 물. 도대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혜나는 필라테스 강사로 결혼 후 6개월 만에 임신을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혜나는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그래도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은오 덕분에 하루하루를 버틴다. 친절했던 시어머니 정인은 혜나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돌변한다. 한참 코로나로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조리원이 아닌 집에서 몸조리를 하기로 한 혜나. 하지만 며칠 만에 아이를 막 대한다는 이유로 도우미를 자르고 자신이 그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 정인.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게 하고 잡일을 혜나에게 시킨다. 그렇게 혜나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다. 정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혜나는 과거 자신의 필라테스 학생이자 유아교육과 출신이었던 이나를 베이비시터로 채용한다. 하지만, 이나의 행동이 뭔가 의심스럽다. 자신의 남편을 유혹하는 이나의 모습과 퇴근이 늦게 되면 이나를 바려다 주는 은오 덕분에 혜나의 의심을 더 심해진다. 혹시 자신에게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이 아닌 다른 약을 추가로 먹인 게 바로 이나일까?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정말 혜나는 아들 노아를 죽인 살인자일까?

나 역시 두 아이를 낳은 후 심한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특히 둘째 때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물론 하루 먹고 너무 독해서 중단하긴 했지만...) 그래서인지 혜나의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특히 혜나도 나처럼 직장을 다녔었기에 집 안에서 24시간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주는 우울감이 더 심했을 것 같다. 물론 혜나가 처한 상황은 몸서리치도록 치밀하게 준비된 상황이긴 했지만 말이다. 특히 이 소설 속에는 같은 병을 앓은 두 여성이 등장하기에,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녀들이었지만, 다른 입장이었기에 둘의 비교가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단편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뭔가를 예상하기 전에 사이다 급으로 진행되는 상황도 무척 만족스럽다. 책 안에 등장하는 엄마들 중에는 모성애가 넘치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의 엄마들도 있다. 그래서 더 색다른 느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포스터 심리학 -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신감 회복훈련
질 스토다드 지음, 이은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무척 관심이 가던 책이 있었다. 한참 아이와의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데다가, 내 단점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보이는 것 같아서 고민이 되던 때였는데 책 표지의 한 글귀가 눈에 와닿았다. 아쉽게도 위시리스트에만 있었지만, 덕분에 그 단어를 눈여겨보고 기업하게 되었다. 그 책의 제목은 임포스터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과거 내가 관심 있게 봤던 임포스터가 생각났다. 이번에는 부모를 넘어 좀 더 확장된 독자들을 향한 책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임포스터는 무엇을 의미할까? 임포스터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가면 증후군이라고 한다. 자신이 거둔 성공이 실력이 아니라 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불안 심리를 일컫는 말이 바로 임포스터다. 가면 증후군이라고 부르지만, 저자는 임포스터에 질병을 의미하는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질병은 다수가 아닌 소수, 특정 군이 걸리는 것인데 비해, 임포스터는 70% 이상의 사람들이 경험할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불안 심리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자존감이 낮다. 완벽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때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바로 포기한다. 그래서 상당수는 시도도 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과 같이 일하는 것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을 즐기고, 결과물이 타인에게 어떻게 판단될까에 집중하기에 스스로 압박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설령 결과가 좋아도 내 능력보다는 단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지극히 내 탓을 한다. 내가 무능력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붙인다.

저자 역시 임포스터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녀 역시 그녀가 성취한 결과물(책도 여러 권 냈다.)에 대해 불안해하고,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다른 이유들을 들이대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다.(대놓고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저자는 임포스터를 5가지로 나눈다. 전문가 유형, 완벽주의자 유형, 독주자 유형, 타고난 천재 유형, 초인 유형.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두 모습의 사람이 둘 다 임포스터라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회피형이다. 일을 미루고, 포기하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성과가 없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워커홀릭이다. 살과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심취해서 일을 한다. 이 둘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이 둘은 모두 임포스터다. 전자는 불안과 고통을 돌파하기 힘들어서 포기한 것이고, 후자는 그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다. 이 둘의 기저에는 스스로를 불신하는 임포스터가 깔려있다. 단지 그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임포스터 자체가 최악은 아닌 게, 임포스터는 어떤 면에서는 더 높은 성취를 이루어내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울감과 번아웃, 무력감이 나타나 스스로를 갉아먹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포스터는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소수자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 이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 채워져야 하는 부분의 극심한 결핍을 경험하는 경우 임포스터가 많이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백인보다는 유색인종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임포스터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임포스터의 근본적인 치료(?) 법은 없다. 그저 생각의 전환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심리적 유연성.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운동 중에는 특히 유연성을 요구하는 동작들이 많다. 몸이 유연하면 운동을 할 때 덜 다친다. 마음 역시 그렇다. 마음에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임포스터는 스스로 딱딱하게 굳고 갇힌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에게도 좀 더 너그러워지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임포스터로 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은 책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책을 읽으며 나는 왜 임포스터를 경험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공보다 실패에 대한 기억이 더 많고 깊이 자리 잡아서가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다. 또한 칭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이유가 될 것 같았다. 서양에 비해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많은 임포스터를 만들어 낸 것 같다.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코너로 몰아붙이기 보다 심리적 유연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연습. 책 안에 여러 방법들을 기억하고 적용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개정판)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이 호수가 둥글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그니까 이렇게 앞으로 뛰어가면 다시 그가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그에게 멀어지면서 다시 그에게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원의 신비였다.

그러니 이 원에서 들어서 버린 나는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모두가 그에게로 가는 길이다.

P. 136

드디어 두 권의 책을 읽었다. 몇 년 전에 최홍 버전(공지영 지음)의 책을 읽었었는데, 그때와 또 느낌이 달랐다. 좀 더 입체적으로 이들의 사랑이 보였던 것은 준고 버전(츠지 히토나리 지음)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참 좋지만, 참 힘들다.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힘든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다. 그럼에도 사랑은 그만한 아픔의 가치가 있는 것도 맞다. 그래서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 결심하면서도 또 사랑에 한 발을 내딛는 게 아닐까 싶다.

준고 버전에서 보이지 않던 부분이, 최홍 버전에서는 보였다. 준고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최홍은 이렇게 생각했다가 두 책을 읽으며 보완되어 마침내 하나가 된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이 두 권을 꼭 다 읽기를 권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여성이고, 한국 사람이기에 홍의 이야기가 더 공감되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다. 유난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나름의 이유로 올해 처음 일본을 다녀왔다. 물론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썩~들지 않았다.(일본이라서 라기보다는 여러 다른 이유들 때문이겠지만...)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 간 홍은 낯선 일본의 공원에서 준고를 만난다. 첫눈에 그와 깊은 사랑을 할 것 같다고 느낀 홍은 그렇게 준고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된다.(물론 준고는 홍에게 집을 내주고 나간다.) 처음에는 그와의 사랑을 부단히 잘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일본인이기 이전에 홍에게 유일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이들의 사랑에도 파열이 생긴다. 유난히 외로움을 타는 홍은 준코와 같이 있고 싶었다. 아니 준고의 삶에서 자신이 1순위가 되길 바랐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첫사랑 같았던 사람과 헤어진 이유도 그의 삶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너무 협소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내가 우선인 삶은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홍 역시 그랬다. 그래서 준고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늘려가는 것이 탐탁지 않았고, 자신에게 소홀해지는 것이 서러웠다. 집안의 반대도 있었다. 첫 손녀인 홍을 애틋하게 여겼던 할아버지는 일본에 대한 반감이 심했었고, 그랬기에 아버지 역시 사랑하는 일본 여인과의 결혼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 준고와의 관계가 벌어질수록 그 사이로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껴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준고가 홍과의 약속을 어겼던 그날. 홍은 더 이상 준고와 함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곳을 떠난다. 사실 홍은 준고가 잡아주길 원했고, 조금만 더 홍에게 시간을 내줬다면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에 준고는 홍의 감정을 읽을 줄 몰랐다.

7년의 시간이 흐르고 출판사 통역자가 쓰러지는 바람에 홍은 그 자리를 대신했다가 작가가 되어 한국을 찾은 준고와 마주친다. 전부터 홍의 옆에는 민준이 있었다. 준고 버전에서는 깊이 있게 등장하지 않았던, 민준이 홍 버전에서는 좀 더 비중 있게 등장한다. 15살에 처음 만난 민준이 왜 여전히 홍의 곁에 남아있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일본 여인과의 사랑을 포기했던 이유도 등장한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홍 버전으로 만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좀 더 색다른 맛이 있었던 것 같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었던 준고에게 나 역시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자와 여자이기에,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기에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조만간 쿠팡 플레이에서 이 작품을 반영한다고 하니, 이 둘의 사랑이 영상으로는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이 호수가 둥글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그니까 이렇게 앞으로 뛰어가면 다시 그가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그에게 멀어지면서 다시 그에게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원의 신비였다.

그러니 이 원에서 들어서 버린 나는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모두가 그에게로 가는 길이다. - P1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고 쓰는 한자어 알·쓰·한 1 -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력 향상을 위한 알고 쓰는 한자어 알·쓰·한 1
박원길.박정서 지음 / 박영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문해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사실 문해력이라는 것이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 문장을 해석하려면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말의 상당수가 바로 한자다. 바로 한자를 알아야 제대로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 문해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다행이라면, 나는 중. 고등학교 6년 내내 한자를 배웠었다.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 교수가 내준 첫 번째 과제는 한자로 된 전공서적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뜻을 이해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공서적 여기저기 쓰여있는 한자를 한글로 해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겹치는 단어들이 상당수 있긴 했지만,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한자에 대한 필요성을 자각하고 한자 공부를 시작했었다. 당시 내가 공부했던 책은 한자의 생김새를 통해 연상작용으로 한자를 쉽게 암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었다. 덕분에 한자를 공부하는 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1급 자격증을 준비하려고 책을 구입했다가 이러저러 이유로 접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런 내가 다시금 한자 공부에 대한 생각이 든 것은 큰 아이 때문이다. 올해 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가 방과후 수업을 통해 한자 공부를 하더니 한자에 재미를 붙였다. 집에서 공부하는 탭에도 한자가 나오기에 자연스럽게 한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매일 일력을 통해 사자성어와 한자를 눈으로 익히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이 아는 단어가 나오면 흥미가 커졌다. 문제는 가끔 아이가 한자를 물어오는데, 아는 단어도 있지만 더러 낯선 단어가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아이보다 먼저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았는데 과거 내가 공부했던 책과 비슷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알고 쓰는 한자어(알 쓰 한)는 현재 총 2권이 나왔다. 책 사이즈가 크지 않아서 들고 다니기 부담도 없고, 두 페이지 분량에 한자단어가 세 개 등장한다. 처음에는 세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한자성어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또한 저자의 뜻이 있었다. 세 개 중 처음 나오는 한자는 기본이 되는 한자이고, 그 이후에 등장하는 두 한자는 응용한 자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한자 아래에는 음과 뜻이 나온다. 우선 눈으로 한번 훑고 나면 바로 이어서 한자를 쉽게 암기할 수 있는 설명이 등장한다. 스토리텔링이나 연상작용으로 공부를 하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알쓰한이 바로 그렇게 한자를 설명해 주고 있다. 연관되는 이야기와 함께 또 연관되는 한자어를 같이 만날 수 있기에 어렵지 않게 한자를 습득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 한자에 대한 별도의 설명뿐 아니라 한자 구조도 따로 나와있다. 등장한 한자가 사용된 단어나 낱말, 사자성어도 같이 곁들여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급수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 해당 한자가 몇 급에 등장하는 한자이고, 부수와 총 획이 어떻게 되는지를 별도로 표기해 주어서 기본기도 공부할 수 있다.

각 한자어의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하루에 3페이지 정도씩 꾸준히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1권에는 3급~8급까지의 한자가 등장한다. 한자는 많이 써보는 게 도움이 될 텐데, 책에 QR코드를 통해 별도의 필사 노트와 오디오북이 제공되기 때문에 활용한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