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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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로 시작되는 이 책은 그 앞을 도무지 짐작하거나 예측할 수 없게 만듭니다. 책의 제목처럼 독자가 마치 '이방인'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독자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고, 주인공 역시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독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듯 합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북아프리카의 알제에 사는 평범한 하급 샐러리맨입니다.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 해수욕장에 가서 여자친구인 마리와 노닥거리다가 희극영화를 보면서 배꼽을 쥐는가 하면 밤에는 마리와 정사를 가집니다. 며칠 지난 일요일에 우연히 불량배의 싸움에 휘말려 동료 레이몽을 다치게 한 아라비아인을 별다른 이유도 없이 권총으로 사살합니다.

재판에 회부된 그는 바닷가의 여름 태양이 너무 눈이 부셔서 사람을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속죄의 기도도 거부하고 자신은 과거에나 현재에도 행복하다고 공언합니다.

과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한 고전입니다. 저자는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요구하고 있으며, 사회와 인간의 존엄성과의 근본적인 대립 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짧은 소설이지만 한번 읽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용이 상당히 심오하고 난해하고 숨겨진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이, ‘소설은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제시하는 것’이므로, 그의 의도를 단순하게 한가지로 정의내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아마 2~3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낄 듯합니다.

하지만, 이방인이 보여주는 일관된 진솔함을 통해, 우리는 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회보다 우선시되고, 사회가 바라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소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주인공 뫼르소처럼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비주류의 삶은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무리속에 억지로 끼어든 이방인의 삶과 같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 P44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 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 P51

사람들은 내가 말이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난 별로 할 말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말을 안합니다."하고 나는 대답했다. - P77

지내려면 물론 길게 느껴지지만 날들이 어찌나 길게 늘어지는지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 나서 경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하루하루는 그리하여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 P91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는 얼굴을 찾아서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같은 세계의 사람들끼리 서로 만난 것이 즐겁기만 한 무슨 클럽에라도 와 있는 것 같다는데 주목했다. 또, 내가 어쩐지 침입자 같고 남아도는 존재인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도 들었다. - P95

간수는 잠자코 있으라고 말하고 조금 있더니 ‘변호사들은 모두 그런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것도 또한 나를 사건으로부터 제쳐 놓고 나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가 나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벌써 그 법정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 P116

서로 떨어져 있는 우리의 두 육체 이외에는 이제 아무것도 우리를 서로 이어 주고 서로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없었으니, 어찌 내가 그러한 사정을 알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렇다면 그 순간부터 이미 마리의 추억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었다. 죽었다면 마리는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의 대상이 못 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죽은 뒤에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는 사실도 나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 P128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 P135

엄마는 종종 사람이 결코 전적으로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감옥 안에서, 하늘이 물들고 새로운 날이 내 감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면, 그 말에 동의하곤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내가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러면 내 가슴이 터져 버렸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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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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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이 된 한스는 독일 어느 시골 라틴어 학교의 학생입니다. 그는 언제나 1등을 차지하는 우수한 소년으로, 총명해보이는 이마, 빛나는 눈동자, 품위 있는 몸가짐으로 언제나 사람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받고 있습니다.

주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하면 신학교에 입학하여 대학을 갈 수 있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학생에게만 허용된 험난한 일이었습니다. 한스는 매일 밤늦도록 공부하며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합니다.

한스는 신학교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둡니다. 한스는 ‘하이르너’라는 소년과 친하게 되는데, 그는 한스와는 달리 자유분방하고 고대건축과 조각에 깊은 조예가 있는 시인이었습니다. 한스는 그에게 마음이 이끌립니다. 그러나 신학교의 엄격한 교육은 하이르너에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학교 규칙을 어기고 선생님에게도 반항을 하는 불량학생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한스는 그와 가깝게 지내지만 자신도 불량 학생으로 생각될까봐 점점 그와 거리를 둡니다. 한스는 그와의 우정을 배신했다는 생각으로 고민하지만, 겨울이 되어 두 사람은 다시 우정을 나눕니다. 그러나, 하이르너는 신학교를 탈출하고 결국 퇴학당합니다. 한스도 열등생으로 낙인이 찍혀 학교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사람들로부터 예전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중, 죽음의 그림자에 이끌려 나골트 강에 몸을 던집니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로 알려져있는 작품이자, 헤르만헤세가 성장소설의 대명사라는 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인 듯 합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가 학업이라는 막중한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스의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100년도 지난 시대의 교육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획일화된 잣대와 교육제도, 입시와 교육열 등 사회 현상이 이 소설속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유에 대한 꿈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질서라는 수레바퀴 아래 깔려 희생된 어린 영혼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으로서 반성하게 됩니다. 아울러,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하이르너처럼 자의적으로 자기만의 수레바퀴로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한스는 자신이 하일브론의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제 막 눈뜨기 시작한 남성다운 혈기가 그저 낯설고, 초조하고, 피곤하기만 한 상태로 어렴풋이 이해될 뿐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부르는 나뭇가지에 추파를 던질 때만 해도 한스는 작별을 고하는 자의 애절한 우월감을 가지고, 지금과 다름없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금 과거로 되돌아와 놀라움에 미소 지으며 잃었던 현실을 되찾은 것이다.

* 한스는 정신을 가다듬고, 열심히 일을 계속해 나갔다. 소년 시절의 장난기어린 놀이를 그만둔 뒤로 이제껏 무엇인가 눈에 드러나는 유익한 물건을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기쁨을 맛본 적이 없었다...한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의 찬가를 듣고 또 이해했다. 그것은 적어도 초보자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고, 산뜻한 매력을 풍기는 것이었다. 한스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와 인생이 커다란 선율에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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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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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싱클레어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가정은 신앙심이 깊고 평화로우며 부모나 누나들 또한 사랑으로 충만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면서 어두침침한 뒷골목, 역한 냄새가 나는 방 등 집에서 보지 못한 또다른 어두운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같은 반 친구였던 포악한 성격의 크로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낸 엉뚱한 무용담을 하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크로마에게 갖은 협박과 위협을 당합니다. 이대에 의젓하고 지혜로우며 이상한 마력을 지닌 데미안이 나타나서 싱클레어를 위해 크로마를 물리쳐 줍니다. 이때부터 데미안은 진정한 친구이자 스승으로서 싱클레어에게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이별하게 되고, 사춘기를 방황과 술로 허송하게 됩니다. 이때 한 소녀의 등장으로 싱클레어의 방황은 멈추게 되고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나갑니다. 소녀의 초상화를 그린 싱클레어는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내고, 그에게서 선과 악, 신과 악마를 한몸에 지닌 신으로서 영혼의 요구를 억제하지 않는 아플락사스를 언급한 편지를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 세계에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됩니다. 그의 영혼 속에 한 운명의 여인이 들어와 있었고, 그것은 데미안이었습니다.

싱클레어는 대학에 진학하고 아플락사스적인 운명의 여인을 찾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됩니다. 그러던 중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에바부인을 보는 순간 그가 꿈꾸던 여인임을 직감하고 운명의 여인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참전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부상당한 싱클레어는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실려갑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싱클레어는 그의 옆에서 데미안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데미안은 그에게 에바부인의 키스를 전해줍니다. 그 후 싱클레어는 다시 깊은 잠이 들고, 깨어났을 때 데미안은 없었습니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된 진정한 삶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중학교 때인가 한번 읽었다가 30년도 넘어서 다시 읽어본 책입니다. 이런 내용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기억이 안 나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문구는 바로 ‘새의 알’입니다. 알속의 새는 밖을 동경하지만 그런 세상을 만나려면 자신을 둘러싼 두꺼운 알을 깨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타파할 때 그 새는 또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겠죠.

감수성이 풍부한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두 소년의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전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듯합니다.

억압된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 싱클레어의 관념적 방황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나에게 데미안과 에바는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데미안과 에바는 곧 싱클레어였고, 자신을 찾는 여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를 도와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74 다른 쪽이 사나이인데다 제 색깔도 분명해. 그는 자기 처지에서 보면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이따위 회개를 비웃고 그냥 제 길을 끝까지 가니까.지금까지 분명히 자기를 도와준 악마한테서 비겁하게 마지막 순간에 등을 돌리지 않는 거지. 그게 바로 제 색깔이고 성격이야.

p78-79 그렇게 똑똑한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 전혀 없지.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야.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죄악이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신 속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p110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p129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기를 포기하고 차라리 정해진 규정의 손길에 붙잡혀 보행자의 길을 걷기를 선택하는 거야

p136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p163-164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아닐 때만 두려움을 갖는 법이야.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자기 안에 있는 모르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끼리의 공동체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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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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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사람들이 좋은 책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은 하지만 실제 읽지는 않는 책이라죠(마크트웨인) 1984는 하버드대를 비롯해 미국 유명대학의 필독서로 추천되는 책이고 TIME,Newsweek 같은 잡지에서도 항상 추천목록에 오르는 책입니다만 실제 이 책을 읽어봤냐고 물어보면 아직 못읽었다는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마크트웨인식으로 생각하면 1984는 확실히 고전입니다.

상당히 섬세하게 짜여진, 작품 전체 곳곳에 뿌려진 복선들, 완벽한 작품을 쓴 조지 오웰은 이런 생각을 지니고 스스로가 사는 것이 무척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고통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 모든 정보가 통제되어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만 받아들여야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실재라고 믿어야 하는 세계, 조지 오웰이 상상한 30여년 후의 세계가 단순히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주변에 현존했고 지금도 세계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을 세계라는 점이 너무나 끔찍하게 다가오네요.

소설속 인물 오브라이언을 통해 자꾸 되풀이되는 이 말은, 특히 윈스턴을 고문할 때 마치 "너의 과거나 의식은 모두 없애버리고 그곳에 있는 검은 것은 다 없애라"하면서 결국에는 윈스턴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배반하게 만들며 윈스턴을 통째로 새로 만들어 새로운 곳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소설 속 과거를 검은 곳이라 말하면서 조지오웰은 그가 살고 있던 현실을 잘 꼬집어 내었고, 고문을 통해 인간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본질을 다 던져 버렸죠. 그리고 나서 말합니다.

“승리를 얻었다. 그리고 그(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다.”

검은 것을 다 던져버리고, 나의 밑바닥을 다 던져버리고 다시 체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만나겠죠. 윈스턴은 굴복해버린 자신의 모습이 죄스럽고 그로서 사랑을 부정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그러한 심정자체도 진정한 인간이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지요

책은 음산하고 무겁고 가슴 저며 오는 그런 내용이었고 무한 영감과 또 소름돋는 처절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역사기록마저 조작, 변조되고 소리소문없이 증발되는 사회, 일거수 일투족 감시당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회, 정상적인 소수는 미쳐버리지 않고서는 살수 없는 이곳에서 세뇌당하고 모진 고문을 견뎌내려 하지만 결국 흡수되고 변화하는 윈스턴의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괴로울 정도의 내용이 지속되어 가슴 한쪽이 서늘할 정도로 공포스러웠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의 소련의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려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확연히 들어나는 소설이긴 하지만 기술되어 있는 그 내용을 읽어나감에 있어서 그냥 소설 속의 내용으로 그치지 않고, 이미 1984년은 수십년 전에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러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고, 바로 지금 우리세계에도 일부, 일부의 내용은 언뜻 사실처럼 보이는 이야기에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있습니다.

동물농장에서 보였던 우화적인 표현은 아주 사라지고 극사실적인 표현을 무미건조하게 기술하여 오히려 그 섬뜩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진 듯 합니다.

보통 어떤 책을 읽던지 마지막 장을 덮으면 속 시원하고 기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마음이 괴롭더니 마지막까지도 마음을 무겁게 하네요.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긴 하지만 1984를 읽는 내내 저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장씩 읽어갈때마다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았기 때문이에요 작품과 관련해서 과거, 현실, 미래에 대해 끝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어떤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v게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닌가 싶네요

조지오웰이 이 책을 1948년에 탈고했다고 하고 얼마 후 1950년에 사망했습니다. 그 당시 그가 내다본 1984년의 모습은 참으로 서글프고 무시무시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입장에선 미래 SF소설쯤 하나를 쓴 것 같은 느낌일 텐데, 그 시간들의 역사를 아는 현재의 우리로선 그가 보여준 이 선지자적인 식견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거의 마지막에 윈스턴의 회상 속에서 보았던 장면, 엄마가 빗속을 뚫고 가서 사온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잠시나마 배고픔과 지루함을 잊고 마치 혁명 이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엄마하고 동생하고 마음껏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참 찡했어요

조지 오웰의 소설은 동물 농장 밖에 안 읽었지만, 이 작품이 훨씬 더 인상적이네요. 동물농장에서는 시니컬함이 있다면, 1984는 절실함이 묻어나는 책인 것 같아요.

읽으면서도, 지금의 현실 세계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은근히 무섭다는 생각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극한에 상황에 놓였을 때 육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억압으로 인간이 어떻게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새삼 확인한 듯합니다. 그래서 너무 슬픕니다.

모순과 불합리, 폭력과 증오로 뒤덮인 세계에서 오직 권력만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의 횡포와 통제 아래 인간이 지켜낼 수 있는 인간성이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마지막엔 그저 빈껍데기 같은 존재로 남아버린 인간의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작가가 정말 천재라는 생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여운이 많이 남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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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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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 말을 들으면 참으로 묘해지면서 기분이 들떠집니다. 누구라도 사랑은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처음에 '사랑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남녀 간의 애뜻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할 때 필요로 하는 기술이 적혀 있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보호, 책임, 존경 등 많은 것들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남녀간의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었죠  사랑의 대상에는 남녀간의 사랑 말고도 형제간의 사랑인 형제애와 어머니와 자식간의 사랑 또는 아버지와 자식간의 사랑,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자기애와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신적 존재에 대한 강렬한 사랑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사랑의 대상을 크게 모성애와 성애, 자기애, 신의 사랑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종종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랑과 마찬가지로 부모에 대한 사랑도 자기애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지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에도 자기애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감각, 분리와 슬픔의 감각은 생각의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의 과정이 멈출 때 뿐입니다. 생각은 불가피하게 소유의 느낌을 기릅니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질투심을 배양하는 소유의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질투심이 있을 때 당연히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질투심은 사랑의 표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질투심은 생각의 결과입니다.그것은 감정적인 내용의 생각의 반응입니다. 소유하거나 소유 당했다는 느낌이 가로막힐 때, 그 자리를 질투심이 차지합니다. 그것은 생각이 사랑의 역할을 하여 모든 문제와 슬픔을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사랑의 최대의 걸림돌입니다. 생각은 '있음'과 되어야함'간에 분리를 일으킵니다. 이 분리에서 도덕이 나옵니다. 도덕과 부도덕은 어느 것도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도덕 구조는 사랑이 아니고 시멘트와 같은 경화과정입니다. 생각은 사랑을 창조하지 못하며 사랑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자기애는 부모를 사랑하는데 있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그 기반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누구든지 자기 혼자서 몸소 겪어야 하는 개인적인 경험이며 자신 스스로가 능력을 만들며, 자신의 감성과 사유 속에 이루어져야 행복한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데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그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대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영화에서도 소재로 쓰입니다. 성애는 다른 사람과 완전히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융합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갑작스럽게 왔다가 일시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그런 감정이 아닙니다. 요즘 세대들에게 있어 잘못된 성애는 육체적인 사랑행위가 사랑이라는 포장에 의해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가는데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어디까지가 진정한 사랑인지 궁금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에 대한 강렬한 믿음 즉 '신에 대한 사랑'은 인간 내면에 있는 정신적 지주로서 인간의 원초적인 유대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종교의 발달은 인간과 자연과 하나의 세계라는 일치감에 비롯되었으며 우리는 자연을 버려서도 안 되며 자연을 황폐화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옛날 단군신화에서도 엿 볼 수 있듯이 "토템"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신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은 스스로 만든 사물에 자신의 정신과 힘을 쏟아 부어 숭배한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거듭되고 지금의 종교적 신은 정의와 진리와 사랑의 원리이며 신에 대한 사랑은 사고를 통한 신에 대한 지식이 아닌 신과의 일체성을 경험하는 강렬한 감정적 행위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는 점도 많았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사랑도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나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주는 올바른 사랑의 관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성숙한 성찰적 사랑이야말로 자기를 되찾고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처음 만난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은 일시적일 수 있으며 그 동안 그들이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반증해줍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면 무관심으로 그리고 이기주의적으로 변모하기 쉽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의지와 행동입니다. 의지가 없이는 행동이 이루어질 수 없고 행동이 없는 사랑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감정의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한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이라는 것은 몸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그 완성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 받고 있고, 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그 사람의 이용 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현실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지혜도 '돈'으로 환산되고 아름다움도 '돈'으로 환산되고 정의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참된 자아를 상실한 것이 사랑을 상실한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러한 자아의 상실 따라서 사랑하는 능력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설교나 도덕적 교훈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누구나 사랑이 없는 인간관계의 황량함과 처참함을 절감하고 있고 사랑의 회복이 긴급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러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사랑이 자연적인 일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제는 기술적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어도 사랑을 천부적인 능력으로 보지 않고 훈련과 인내와 습득이 필요한 능력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현대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 책인 듯 합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사랑의 실상과 기술이 우리에게 사랑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술술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지만,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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