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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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작으로 꼽혀서 연극이나 영화 소설 등으로 많이 다루어져나왔는데 이 작품 또한 가장 추천하는 연극 중 하나입니다. 꿈과 환상적인 요소가 많아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공연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아테네의 시슈스 히포리타의 결혼식이 임박했을 때, 마을의 처녀 허미아는 부친이 정해준 사랑하는 라이샌더와 함께 아젠스의 숲에 몸을 숨깁니다. 디미트리아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고, 디미트리아스의 옛 애인 헬레나도 숲으로 들어갑니다. 숲에는 많은 요정들이 살고 있으며 이 숲을 지배하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왕비 타이터니아가 인간처럼 부부싸움을 합니다.

때마침 공작의 결혼식을 축하하려는 마을 사람들이 소인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랑의 비약을 가진 요정 바크가 뛰어들어 갖가지 우스운 일들이 전개됩니다. 결국 디미트리아스와 헬레나, 라이샌더와 허미아가, 시슈스 공작과 히포리타와 함께 결혼식을 올리고 마을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상연되어 모든 일이 즐겁게 끝납니다. 아테네의 귀족과 서민들, 요정이라는 세 세계가 숲에서 한데 모여 서로 친근한 관계를 맺으면서,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세계가 펼쳐집니다.

 

피라무스와 시스비가 주된 줄거리를 반영한다고 불 수 있는데, 불운한 피라무스와 시스비의 사랑, 이들의 밀회 및 사랑의 도피의 주제가 다 아테네의 두 쌍의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뛰어난 코미디 창작 능력으로 어긋난 사랑의 운명에 눈물 흘리는 젊은 남녀와 이들에게 마법을 거는 요정들이 어우러져 벌어지는 소동을 유쾌하게 그려 낸 작품입니다. 대가의 넘치는 상상력은, 한바탕 곤혹을 치른 후 진정한 사랑에 눈뜨는 주인공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낙관적이고 희망 가득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한 가지 사랑만이 아닌 여러 방식의 사랑을, 웃음을 통해 즐겁게 보여줍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것은 매우 보람 있는 동시에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작품을 한번 읽어서는 전체의 요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읽어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다시 읽어도 여전히 그의 작품은 ​​새롭고 신선하다고 느껴질만큼 지루하지 않습니다. 또, 그러한 과정은 독서의 경험을 재미있고 알차게 만들어줍니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는 항상 발견하고 주의를 집중해야 할 새로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동화처럼 읽을 수 있고 아동이 읽어도 좋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명작 중에 명작입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환상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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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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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 뭐라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계 최고의 극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37편의 드라마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TV, 영화,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그의 드라마 중 몇 편의 내용은 세계 각국의 남녀노소에게 진부하리만치 친숙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4대 비극(리어왕,오델로,맥베스,햄릿) 외에도 생전에 37편의 희곡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4대 비극이 무겁고 음침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그의 희극들은 삶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희극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한 여비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가지고 있는 배를 담보로 하여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립니다. 그리고 돈을 갚을 수 없을 때에는 자기의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써 줍니다.

포샤는 구혼자들에게 금ㆍ은ㆍ납의 세 가지 상자를 내놓고 자기의 초상이 들어 있는 것을 선택하게 합니다. 바사니오는 납으로 된 상자를 골라잡아 구혼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배가 돌아오지 않아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남장을 한 포샤가 베니스 법정의 재판관이 되어, 살은 주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샤일록은 패소하여 재산을 몰수당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받습니다. 그 후 안토니오의 배는 돌아오고 샤일록의 딸 젠카도 애인 로렌조와 결혼합니다.

긴장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으며 눈길을 끄는 읽기입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 및 인종 차별적 발언에 대해 가장 논란이 많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하나이기도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마음이 할 수 있는 모든 경험과 감정을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진실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당시 런던 시민이 가지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반유대 감정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작품에서 샤일록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적 인물로서 묘사되고 있는 점이 이목을 끕니다.

샤일록의 몰인정, 잔인성, 돈에 대한 탐욕을 풍자한 동시에, 독선적이고 편협한 기독교 사회에 대한 야유를 담고 있습니다.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기독교인이며, 그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되고, 지나치게 자신을 박해하기 때문에 안토니오를 미워합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이런 샤일록의 심리 상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런 면에서 이 극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행하는 인신공격, 편협한 언행을 고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의 화신이고 안토니오는 의리있는 불운한 상인일 뿐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형적이고 뻔한 인물들이 보기에 따라 선악이 갈리며 해석에 따라 운과 불운이 뒤집히기도 합니다. 마치 기승전결로 완결되지 않는 위대한 자연과 같았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돈을 갚지 못한 조건으로 안토니오에게 살덩이 1파운드를 요구한 샤일록이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유대인들에 대한 심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샤일록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악인으로서보다는 박해받고 고통 받는 비극적 주인공으로 더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릴 적 읽은 내용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언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메시지는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욕망과 적개심에 가득한 한 인간과 그를 용서하는 자비, 그리고 그 속에서 아우성 치는 고뇌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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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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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낸 하루는 어떤 하루였나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낸 하루였나요? 아니면 지독한 현실에 맞서 싸운 하루였나요?

이 작품은 작가 솔제니친이 스탈린을 조롱한 죄목으로 체포돼 수용소 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입니다.

새벽 5시, 언제나처럼 기상 신호가 울렸습니다. 두껍게 성에가 얼어붙은 유리창을 통해서 짤막한 음향이 희미하게 흘러 들어왔습니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늦잠을 자는 일이 한 번도 없었으나, 오늘은 웬일인지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온 몸이 쑤시고 오슬오슬 추웠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그들 104 작업반은 '사회주의 촌락' 건설장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허허벌판 눈 덮인 작업장,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곡괭이를 휘둘러야 합니다. 밖으로 나갔던 전직 해군 중령인 부이노프스키가 막사 안으로 들어와 "기운을 내라! 영하 30도는 내려갔는걸!" 하고 외칩니다. 슈호프는 늦잠을 잔 것이 당직 간수 타타르에게 들켜 본부로 가서 훈훈하게 타오르는 페치카 옆에서 마루 청소를 했고, 그것이 끝나자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사를 끝낸 슈호프는 숟가락을 방한화에 꽂고 의무실로 가서 진단을 받았으나 퇴짜를 맞고는 막사로 돌아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새 작업장의 벽돌을 쌓는 일을 하는 대열에 낍니다. 반장 추린(수용소 생활 19년의 고참)은 일을 잘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을 사랑합니다. 그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적군에서 쫓겨나 체포된 인물로서, 투지와 강한 신념으로 작업반을 잘 이끌어 갔습니다. 줄을 지어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걸어가는 슈호프의 머리 속에는 갖가지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p83 형식적으로 말한다면, 슈호프가 수용소에 들어온 죄목은 반역죄이다.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또 일부러 조국을 배반하기 위해 포로가 되었고, 포로가 된 다음 풀려난 것은 독일 첩보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어떤 목적을 수행할 계획이었는지는 슈호프 자신도, 취조관도 꾸며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목적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결정을 내렸다 . 즉,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반면, 인정하면 얼마가 됐든지간에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서명했던 것뿐이다

 

그는 독소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돌아왔으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고, 지금까지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8년을 보냈고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석방되는 것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믿지 않고 체념과 주저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슈호프의 일이란 것이 남의 심부름도 하고, 장갑을 짜주기도 하고, 얼마간의 잔돈을 얻으면 먹는 일과 담배를 사 피우는 일이 고작입니다. 정직하며 순진한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칠 줄도 모르고, 남의 것을 빼앗을 줄도 모르는 순수한 농민이었습니다. 게다가, 뛰어난 잔재주도 없고 자기보다 약한 자를 잘 도와주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습니다.

작업장에 도착한 그는 반장을 도와 언제 몸이 아팠었느냐는 듯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영하 30도를 넘는 추위 속에서도 수용소에는 훈훈한 인심이 있습니다. 슈호프는 오후에도 열심히 작업을 하고 몸도 아주 거뜬해졌습니다. 그렇게 슈호프는 자기의 형기가 시작된 날로부터 꼭 10년(3,653일)을 하루같이 보냅니다.

작품 속에서 슈호프가 살아가는 공간인 수용소은 죽음에 맞닿아 있습니다. 수용소는 생존이 어려운 가혹한 조건을 재소자들에게 강요합니다. 재소자들은 극한의 추위와 싸우며 종일 중노동에 시달립니다. 죽과 빵으로 구성된 형편없는 식사는 재소자들의 건강 유지에 충분치 않고, 간수들의 가혹한 대우 역시 재소자들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p75 이렇게 이루어진 계획량 초과에 따른 이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은 수용소를 위한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건설 공사에서 수많은 이익금을 얻게 되고, 그것으로 장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다. 규율감독관 볼코보이의 채찍 수당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죄수들은 저녁 식사 때 이백 그램짜리 빵을 보너스로 받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백 그램의 빵이 수용소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속 많은 등장인물이 죽 한 그릇, 담배 한 개비와 같은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배신하고 정제되지 않은 이기심을 표출합니다. 수용소 생활을 3개월밖에 하지 않은 부이노프스키 중령조차도 먼저 식사하던 재소자들에게 ‘죽을 다 먹었으면 빨리 일어나라’고 호통치고는, 정작 자신은 죽을 다 먹고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식당의 따뜻함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사정은 ‘죄수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그것은 다른 죄수다’라는 슈호프의 생각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지극히 평범한 죄수가 수용소에서 겪게 되는 하루의 생활을 유머러스하고 담담한 필치로 묘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소련의 강제 수용소 생활을 가벼운 해학적인 솜씨로써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의 눈을 통하여 많은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선명하게 그리면서 이른바 ‘수용소’라는 이름의 소련 사회를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자유로운 삶의 가치, 행복이라는 것의 조건, 타인과의 관계, 마지막 자존심마저 버린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이 되는가,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며 또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 희망은 무엇이고 절망이란 또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떠올랐습니다. 또, 육체적인 고통과 허기짐이 인간 개체의 행복감을 결코 밑바닥까지 빼앗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불행 속의 행운이 행복 속의 불운보다 더 우리를 기쁘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증오속의 사랑이, 사랑속의 증오보다 더 두터운 사랑이듯이.

우리 모두의 일상은 마치 형기를 치르는 듯 질곡의 터널과도 같습니다. 생계에 갇혀서, 병에 갇혀서, 공부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 그 가운데 기쁨이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다는 것, 다달이 조금이나마 돈벌이가 있다는 것, 4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언제나 곁에 있어서 하찮게 지나쳐버리고, 멀리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인가에 매달려 삶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순간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겠습니다.

지루한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앉은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스토리 전개의 흥미진진함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동녘 하늘이 푸르스름해지고 밝아오긴 했지만, 아직 수용소 주변은 어두컴컴하다. 뼈를 애는 가느다란 동풍이 뼈 속에 스며드는 것 같다. 점호를 하러 가는 순간만큼 괴로운 순간도 없을 것이다. 어둡고, 춥고, 배는 허기진데다,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지내나 하고 생각하면 눈 앞에 캄캄하다
- P36

저녁이 되어 이때쯤 여기서 인원 점검을 받을 때 그 다음 수용소 문을 통과하여 막사 안으로 돌아올 때 죄수들에게는 이때가 하루 중에서 가장 춥고 배고플 때이다. 지금 같은 때는 맹물 양배춧국이라 해도 뜨뜻한 국 한 그릇이 가뭄에 단비같이 간절한 것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단숨에 들이켜게 된다.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 P157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나, 기나긴 하루의 작업에 대해서나, 이번 주 일요일은 다시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나, 아무 불평이 없는 것이다.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테지!
- P175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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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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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전장에 나가는 기사들은 갑옷 속에 부인이 준 손수건을 고이 간직했다고 합니다. 또 Tony Orlando & Daw의 명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에서도 감옥에서 출소한 주인공은 옛 애인에게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면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손수건)을 매달아 달라고 노래합니다. 손수건이 사랑의 징표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 애인에게 받은 손수건을 잃어버린 댓가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오셀로와 그의 연인 데스데모나입니다. 물론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의 간계로 사랑에 대한 의심이 싹트게 되지만 비극의 결정적인 원인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선물한 손수건이었습니다.

베니스 공국의 원로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는 흑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게 되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합니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사이프러스 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자, 오셀로는 이 섬의 수비를 위하여 처(데스데모나)와 함께 사이프러스로 떠납니다.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는 갈망하던 부관의 자리를 카시오에게 빼앗긴 데에 앙심을 품고 두 사람에게 복수할 것을 계획합니다.

사이프러스에 도착한 날 밤 이아고는 주벽이 있는 카시오에게 일부러 술을 먹여 소동을 일으키게 하고, 오셀로에게 부관의 자리를 파면 당하자 이번에는 데스데모나를 통하여 복직운동을 하도록 권장합니다. 이아고가 계획한대로 카시오는 데스데모나를 만나 복직시켜 달라고 간청하고, 데스데모나는 이를 불쌍히 여겨 오델로에게 카시오의 복직을 간절히 부탁합니다.

이아고는 은근 슬쩍 오델로에게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델로는 이아고에게 이들의 감시를 부탁합니다. 에밀리아는 남편 이아고의 부탁으로 오델로가 선물한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훔쳐냅니다. 데스데모나를 대하는 오델로의 행동은 점점 차가워지고 데스데모나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나 크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델로는 카시오가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갖고 있다는 이아고의 말을 듣고 아내를 저주하며 복수할 것을 결심합니다. 데스데모나를 대하는 오델로의 행동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아무 것도 모르는 데스데모나는 계속 카시오의 복직을 간청합니다.

이아고는 오델로의 곁에서 계속 화를 돋우고 오델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이도록 부추깁니다. 경솔하게도 그를 믿었던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목졸라 죽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에밀리아에 의해 폭로되자 오셀로는 슬픔과 회한으로 자살하고 이아고는 가장 잔혹한 처형을 받습니다.

신분을 초월한 축복받지 못한 결혼의 비극, 여자들은 손수건을 잘 관리할 것, 남편들은 질투를 하기 전에 과학적인 증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두 남녀의 결혼에 문제가 있긴 했으나 악의 화신인 이아고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조화된 음악의 세계였습니다. 흔히 오셀로를 사랑의 비극이라고 평하는 것은 흰 눈처럼 완전무결한 사랑이 오래된 탑처럼 무너져가는 실상이 이 작품의 주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오셀로의 영혼을 어둡게 했던 절망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비로소 구제됩니다. 그가 데스데모나의 시체 위에 쓰러져 통곡하며 이아고의 흉계를 깨달았을 때, 데스데모나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직 자기만을 사랑했다는 것을 각성했을 때, 자기의 과오를 뼈져

리게 느끼고 여지없이 패배했음에 눈을 떴을 때 오셀로는 사랑의 살인자인 이아고에게 승리하는 것입니다. 즉, 절망 속에서 죽은 맥베스와는 달리 오셀로의 죽음은 죽음으로써 영혼을 구제받고 있으며, 그를 사로잡고 있던 질투의 올가미를 벗어나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가 됩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사랑을 전제로 합니다. 맥베스가 권력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오셀로는 전형적인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비극이 국가적 혼란의 원인으로 발전하지 않고 순전히 개인 간의 갈등과 그 갈등으로 맞이하게 되는 비극이라는 점입니다.

오셀로의 행동이 이 비극을 만들어가도록 부추겼을지는 몰라도 막상 음모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이아고’라는 인간 내면의 사악함이 없었다면 이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한 인간의 증오심과 복수심이 전혀 다른 양상에서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점이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들과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장군님, 남녀에게 좋은 이름은 소중하시죠, 우리의 영혼과 직결된 보물이니까요. 제 지갑을 훔친 자는 쓰레기를 훔쳤으며 그것은 있다가 없어지고 내게서 그자로 수많은 사람 손을 옮겨 다녔겠지요. 하지만 훌륭한 제 이름을 약탈해 가는 자는 스스로 부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이 없는 저는 정말로 가난해지는 것을 빼앗아가는 셈입니다.
- P109

질투하는 사람에겐 공기처럼 가볍고 하찮은 물건도 성경 말씀처럼 강력한 확증이야. 이게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무어인은 벌써 내가 준 독약 먹고 변했어. 위험한 상상은 그 본질이 독약인데 맛이 고약한 줄 처음엔 거의 모르다가 약간씩 핏속으로 퍼지기 시작하면 유황불처럼 타는 거야. 그렇다고 했잖아
- P117

이건 이유가 있단다, 이유가 있단다 내 영혼아, 저 순결한 별들에게 밝히진 않겠지만 이건 이유가 있단다. 그래도 난 피를 흘리거나 눈보다 더 희고 설화석고 묘상처럼 매끄러운 그 살결에 상처를 내진 않으리라. 그래도 그녀는 죽어야 해. 안 그러면 더 많은 남자를 배신할 테니까
- P180

불쌍한 데스데모나, 네 아비가 죽어서 다행이다. 그에게 네 혼인은 치명적인 것이었고 순전히 슬픔 때문에 늙은 명줄 끊어졌어.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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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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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 던진 이 말은 400년간 인간의 삶 속에 존재하는 가장 원초적인 고뇌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그렇기에 ‘햄릿’은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자리매김했고, 지금까지도 연극, 뮤지컬, 오페라, 영화 등으로 끊임없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덴마크 왕국 수도의 엘시노아 성에서는 왕자 햄릿이 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부왕이 죽자 숙부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르고 그는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와 재혼하였습니다. 햄릿은 어머니의 이런 행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혹시 숙부가 부왕을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왕의 모습과 닮은 망령으로부터 그 동안의 사정을 들은 햄릿은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은밀히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이러한 계획을 들키지 않도록 미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어느 날 성에 한 극단이 들어온다. 햄릿은 그들로 하여금 부왕과 숙부와 어머니인 왕비와의 관계와 비슷한 연극을 하도록 합니다. 연극을 보던 숙부 클로디어스는 독살 장면이 나오자 예상대로 퇴장해 버립니다. 이로써 햄릿은 망령의 말이 사실임을 확실시하게 된다. 숙

부에게 복수를 하려던 햄릿은 실수로 연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플로니어스를 살해합니다. 이 충격으로 오필리아는 실성해서 물에 빠져죽고 플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는 아버지와 누이의 원수를 갚겠다고 왕에게 청합니다.

왕 클로디어스는 레어티스에게 복수심을 자극하여 독을 묻힌 검을 가지고 햄릿과 대결하게 합니다. 거트루드는 클로디어스가 햄릿에 게 주려고 준비했던 독주를 마시고 죽고, 햄릿도 친구에게 세상에 진실을 알릴 것을 부탁하며 독이 묻은 칼에 찔려 숨집니다.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최종 도달점은 무덤이고 사랑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고 죽는다는 것-인간과 사랑은 둘 다 죽음을 숙명으로 가진다는 생각이 햄릿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 낙인처럼 햄릿의 정신을 뜨겁게 지지고, 그의 정신은 죽음에 관한 고뇌의 불길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죽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는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아갈 수 없다. 바로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만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오늘 죽음을 선택하면 죽음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오늘 사랑을 선택하면 사랑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욕심을 위해 살다가 욕심 때문에 죽은 왕. 복수를 위해 살다가 복수 때문에 죽은 왕자. 결국 삶과 죽음은 하나였습니다.

돈은 꾸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아라. 왜냐하면 빚 때문에 자주 돈과 친구를 함께 잃고, 또한 돈을 빌리면 절약심이 무디어진단다. 무엇보다도 네 자신에게 진실되거라. 그러면 밤이 낮을 따르듯 남에게 거짓될 수 없는 법.
- P34

인간이란 참으로 걸작품이 아닌가!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하며, 생김새와 움직임은 얼마나 깔끔하고 놀라우며,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고,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이 지상의 아름다움이요 동물의 귀감이지
- P75

모든 사람을 각자의 값어치대로만 대접하면, 태형을 피할 사람 있어요? 당신의 명예와 가치에 버금가게 그들을 대접하시오, 그들의 자격이 모자랄수록 당신의 선심은 더욱 값질 테니까
- P85

자네가 날 얼마나 형편없는 물건으로 생각하나. 자넨 날 연주하고 싶지. 내게서 소리 나는 구멍을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자넨 내 신비의 핵심을 뽑아내고 싶어 해. 나의 최저음에서 내 음역의 최고까지 울려보고 싶어. 그렇다면, 여기 이 조그만 악기 속엔 많은 음악이, 빼어난 소리가 들어 있어. 그런데도 자넨 그걸 노래 부르게 못해. 빌어먹을, 자넨 날 피리보다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를 무슨 악기로 불러도 좋아. 허나, 나를 만지작거릴 순 있어도 연주할 순 없어.
- P119

진정으로 위대함은 큰 명분이 있고서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명예가 걸렸을 땐 지푸라기 하나에도 큰 싸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럼 난 어떤가? 아버지는 살해되고 어머닌 더럽혀지고, 내 이성과 내 혈기가 강력히 미는데도 모든 걸 잠재우는 한편, 창피하게도 이만 병사의 임박한 죽음을 보지 않는가? 그들은 명성이란 환상, 속임수 때문에 침실처럼 무덤으로 가며, 그만한 숫자가 시비를 가리거나, 전사자를 파묻을 묏자리로도 충분치 않은 땅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가? 오, 지금부터 내내 생각이 피비리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 없으리라.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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