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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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53세 때 쓴 소설로, 인간의 성장기 체험을 아름답고 순수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가 자신의 삶의 체험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그의 영혼을 뒤흔들던 추억들이 담겨있습니다.

전반부는 뛰어난 젊은 학자인 나르치스와 다정다감한 소년 골드문트와의 만남과 헤어지는 내용이고, 중반부는 골드문트가 여자를 알고 수도원을 떠나 애욕의 편력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후반부는 골드문트가 수도원으로 돌아와 다시 두 사람이 우정으로 맺어지고, 골드문트가 지와 사랑을 융합시킨 마리아상을 조각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야기는 밤나무가 유난히 눈에 띄는 마리아브론 수도원에는 다니엘 원장과 그의 제자 나르치스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에 골드문트라는 어린 소년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곧 모든 사람들과 친해졌지만, 참다운 벗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끈 사람은 바로 나르치스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신과 정반대인 나르치스를 존경하게 됩니다.

어느 날 안젤름 신부의 심부름으로 고추 나물을 캐러 간 골드문트는 리제라는 집시 여인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떠날 결심을 하고 나르치스를 찾습니다. 나르치스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합니다. 골드문트는 약속한 장소에서 리제를 만나 육체적 쾌락을 즐기지만, 날이 밝자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후 골드문트의 기나긴 방랑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에게 마음을 쏟고, 사랑하는 방법, 사랑의 기교에 관해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방랑생활이 두 해가 지난 뒤, 골드문트는 두 딸을 가진 노기사의 저택으로 갑니다. 어느 날, 영주가 부인과 함께 놀러 온 것을 계기로 골드문트는 영주의 부인에게 접근함으로써 노기사의 딸 리디아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그녀와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런 후 리디아는 골드문트의 잠자리에 나타나 정사를 벌입니다. 언니의 행동을 눈치챈 동생 율리에는 골드문트의 방에 들어와 자신도 함께 즐기자고 합니다. 이에 놀란 언니 리디아는 뛰쳐나가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고백합니다. 골드문트는 당장 쫓겨나고, 리디아는 하인을 시켜 그녀가 짠 재킥과 소금에 절인 고기, 금화 하나를 건네줍니다.

길을 재촉하던 골드문트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해산 광경을 통해 쾌락과 고통은 동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빅토르라는 유랑자와 함께 유랑생활을 하지만, 도벽이 심한 빅토르는 골드문트가 잠자는 사이에 주머니를 뒤지다가 발각되어 목으로 조르고 달려듭니다. 골드문트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빅토르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그저 방황하다가 빅토르와 만났던 마을 근처에 쓰러져 크리스티네라는 부인에게 구출됩니다.

이후, 그는 어느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는 빅토르를 죽인 것을 참회하려고 청당을 찾았다가 성모 마리아상에 매혹되어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조각가 니콜라우스라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를 찾아 떠나 마침내 그의 제자가 됩니다. 그는 리스베트라는 아름다운 딸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골드문트는 여러 가지 얼굴들을 그리며 나날을 보내다가 우연히 아그네라는 총독의 첩과 눈이 맞아 육체의 쾌락을 즐기다가 들키게 되자 도둑으로 가장하고 구속됩니다. 감옥에서 그는 살아야겠다는 집념이 생겨 고해성사를 받으러 신부가 들어오면 그를 죽이고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신부는 그의 옛친구인 나르치스였습니다.

나르치스의 구원으로 그는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2년 동안 작품 제작에 열중할 수 있었으나, 작품이 완성되자 다시 방랑을 하기 시작합니다. 프란체스카라는 처녀에게 구혼을 했다가 실패하자 자신이 늙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리디아의 모습을 부각시킨 마리아 목조상이 완성되자 그는 방랑을 결심합니다. 나르치스는 자신이 친구에게 집착하고 있음을 개탄하며 골드문트를 떠나보내지만 그는 어느 날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와 나르치스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인물을 설정한 것은 그의 내면에서 살아 숨쉬는 이성과 감성의 거대한 움직임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듯한 강한 느낌을 줍니다.

나르치스는 소위 냉철한 이성과 직관력의 소유자입니다. 골드문트와 달리 철저한 수행자의 길을 걸으면서 금욕의 생활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직관해가며 성실한 생활에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골드문트(GOLD MUND)´는 직역하자면 ´황금 입술´이라는 뜻으로 정열이 넘치는 감성의 소유자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과 정열적인 생활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듯이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청아한 눈빛과 입가에 머금은 미소, 수려한 외모, 정열적인 생활, 누구와도 어울리는 달변가로서 그는 인기몰이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였습니다. 누구라도 추파를 던지면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사랑을 했습니다. 그의 내면의 지주였던 어머니와 수도원 생활에서 사귀었던 영원한 친구 나르치스만이 오직 그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르치스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골드문트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정화되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의 순간은 이성과 감성과의 만남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르치스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골드문트는 그의 물음에 답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일생과 최후에는 죽음에 내몰았고 전적인 희생 이후의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자유와 방종을 또다시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골드문트를 끝없는 방황으로 내몰았던 내면의 충동과 번민에 대하여, 그리고 그 방황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헤세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인공이 그렇듯이 골드문트는 고정된 관습의 세계를 거부합니다. 골드문트의 내면 심리에 조응되는 만큼의 현실만이 묘사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시대적 배경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그가 중세적 질서와 권위의 정신적 기둥인 수도원을 탈출하여 속세를 향해 정처없이 나아가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골드문트가 문제적 인물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골드문트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거부와 일탈은 그 자신의 자아 역시 미리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낯선 세계와 부딪히며, 때로는 존재의 위기마저 감수하는 그러한 모험을 거쳐 비로소 자신의 자아가 지나온 삶의 총화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골드문트가 마지막에 도달한 예술의 세계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고된 탐색의 끝에 얻어진 값진 자기 인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 우리 삶은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지, 두부 자르듯 나뉘어져 있진 않으니까요. 저는 나르치스도 아니고, 골드문트도 아니고, 둘 중 어느 것이 낫다고도 못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둘 중 어떤 방식으로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 다른 기질과 서로 다른 영혼, 인생, 깨달음이 있을 뿐이며 둘의 불꽃같은 인생을 보며 철저히 세속과 격리되고 보호되는 자신의 인생에 회의를 느낄 지라도 그것은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인간은 없지만, 이 두 가지를 늘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늘 고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간은 영혼 속에 깃들인 정신적인 측면과 육체적인 측면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합일시킬 것이며, 또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성과 감정의 대립, 정신과 육체의 양립, 신과 인간의 갈등이 두 주인공을 통해 극복 되고 융화되는 과정이 스토리 전반에 녹아 드는 불후의 명작임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시종일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혼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주옥같은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골드문트의 본성을 환히 꿰뚫고 있었으며, 서로 대립되는 기질에도 불구하고 그 본성을 아주 내밀하게 이해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골드문트의 본성은 바로 그 자신이 잃어버린 또 다른 반쪽이었기 때문이다
- P51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렇지는 않아. 나는 가야만 한다고 느끼기에, 그리고 오늘 너무나 놀라운 일을 경험했기에 기꺼이 떠나는 거야. 그렇지만 순전히 행복감과 만족감에 젖어 달려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내 생각에는 힘든 길이 될 거야. 그렇지만 멋진 길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 한 여자에게 속한다는 것,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잖아! 내가 하는 말이 어이없게 들리더라도 비웃지는 마. 그런데 보라구.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것, 그녀를 온전히 내 속으로 감싸고 또 그녀에게 감싸여 있다고 느끼는 것은 네가 <사랑에 빠진 상태> 라고 하면서 다소 비웃는 그런 상태와는 달라. 그건 비웃을 일이 아니야. 나에게는 사랑이 곧 삶으로 통하는 길이고 삶의 의미로 통하는 길이야. 아, 나르치스, 나는 네 곁을 떠나야만 해! 나르치스, 너를 사랑해. 그나마 잠 잘 시간도 없는데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주어서 고마워. 네 곁을 떠나려니 마음이 무거워. 나를 잊지 않을 거지?"
- P128

뤼디아가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 사랑스럽고 쾌활해 보여요. 그런데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면 쾌활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슬픔뿐이에요. 당신의 눈은 마치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거든요. 당신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가장 슬퍼 보여요. 당신한테는 고향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은 숲 속에서 나타나 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는 다시 길을 떠나 이끼 위에서 잠을 자면서 방황을 계속할 테죠. 그런데 저의 고향은 대체 어디일까요? 당신이 떠나가더라도 물론 저한테는 아버지도 계시고 여동생도 있죠. 제가 들어앉아 당신을 생각할 수 있는 방과 창문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마음의 고향은 사라지고 말 거예요."
- P182

‘그의 행위와 삶이 그의 말씀보다 가치있으며, 그의 손의 움직임이 그의 의견보다 가치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나는 말씀이나 사상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행위 속에서, 삶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네.‘
- P186

"세상이 온통 죽음과 공포로 가득 차 있으니까 나는 늘 마음을 달래려고 이 지옥의 한가운데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을 꺾었던 것이지. 쾌락을 찾으면 잠시 동안은 공포를 잊을 수 있었지. 그런다고 해서 공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 한번 잘했네. 그러니까 자네가 보기엔 세상이 온통 죽음과 공포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쾌락을 도피처로 삼는단 말이로군. 하지만 그런 쾌락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일세. 그런 쾌락은 다시 자네를 황폐한 곳으로 몰아낼 걸세."
- P412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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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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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미안'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초기작입니다. 일단 책이 얇은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도 카스트 4가지 신분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승려 계급인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최고의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아버지는 영특하고 지식욕에 불타는 아들을 볼 때마다 기뻤고, 아들이 위대한 현인이자 사제로, 모든 브라만의 우두머리로 자라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차 브라만의 왕으로 추대될 촉망받는 청년이었으나,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고자 친구 고빈다와 함께 고행길을 떠납니다. 함께 고행하던 고빈다는 열반에 도달한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불가에 귀의합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자신은 해탈할 수 없음을 깨닫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 결과 정신세계에 머물면서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자아, 즉 감각의 세계에 있는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싯다르타는 여인 카말라를 알게 되고 상인 카마스바미 밑에서 상인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의 환희와 막대한 부를 누리지만 궁극적인 진리는 결코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생의 허무를 느끼고 절망하여 강물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브라만의 성스러운 음인 옴을 다시 듣게 됩니다. 그의 앞에 수 천개의 눈을 가진 ‘보디삿타바’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후 뱃사공 바스데바와 함께 지내면서 자아 탈피의 과정을 겪습니다. 뱃사공이 된 어느 날 카말라를 만납니다. 그녀는 싯다르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과 함께 석가의 임종을 보러 가다가 뱀에 물려 죽습니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의 임종을 통해 새로운 측면의 죽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즉, 죽음은 감각본능 세계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생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 즉 ‘윤회’의 일면임을 알게 됩니다.

카말라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그는 궁극적인 진리를 터득하면서 오랜 욕망의 속박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집니다.

싯다르타라는 주인공(흔히 우리가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인물)을 따라가며, 그가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는 모습을 그려나갑니다.

1922년에 쓰여졌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매우 완성도가 높고 현대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 불교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으면, 싯다르타와 그의 친구 고빈다가 왜 편한 삶을 놔두고 고행을 하려고 하는지부터 어렵게 느껴지실 듯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종교의 깨달음을 위한 불교 책으로 한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 과연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나, 자아를 위한 삶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합니다.

싯다르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어

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종교적 깨달음에 머무는 게 아니라, 삶의 지향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싯타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멸각시키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 P27

세존이시여,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당신은 그것을 얻기 위하여 나아가던 도중에 당신 스스로의 구도 행위로부터, 생각을 통하여, 침잠을 통하여, 인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얻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것에 관한 비밀, 즉 수십만 명 가운데 혼자만 체험하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침 속에는 들어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 P55

그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는 그런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 그러니까 돈이나 사소한 즐거움, 하찮은 체면을 얻기 위하여 애를 쓰고 괴로워하고 늙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이 서로를 욕하고 모욕을 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사문이라면 웃어넘길 수도 있는 그런 고통 때문에 그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으며, 사문이라면 없어도 괜찮다고 느낄 그런 것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 P104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몸소 맛본다는 것, 그건 좋은 일이야. 속세의 쾌락과 부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어린 시절에 배웠었지. 그 사실을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내가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안 거야. 그 사실을 단지 기억력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 눈으로도, 나의 가슴으로도, 나의 위로도 알게 되었어. 그것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로군!
- P144

강물은 어디에서나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강의 원천에서나, 강 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도처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 P157

이 순간 싯다르타는 운명과 싸우는 일을 그만두었으며, 고민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의 얼굴 위에 깨달음의 즐거움이 꽃피었다. 어떤 의지도 이제 더 이상 결코 그것에 대립하지 않는, 완성을 알고 있는 그런 깨달음이었다. 그 깨달음은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뻐하는 동고동락의 마음으로 가득 찬 채, 그 도도한 강물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채, 그 단일성의 일부를 이루면서 그 사건의 강물에, 그 생명의 흐름에 동의하고 있었다.
- P199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 P206

가르침은 아무런 단단함도 아무런 부드러움도 아무런 색깔도 아무런 가장자리도 아무런 냄새도 아무런 맛도 갖고 있지 않아.그 가르침이라는 것은 말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지.자네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바로 이 가르침이라는 것 바로 그 무수한 말들이 아닐까 싶어.그 까닭은 말이지,해탈과 미덕이라는 것도 윤회와 열반이라는 것도 순전한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고빈다 우리가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다만 열반이라는 단어만이 존재할 뿐이지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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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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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니체’ 하면 이 책을 쉽게 떠올릴 만큼 이 책과 니체는 밀착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예언서, 잠언, 철학책 중 어디에 속할까요? 이 책의 구성은 여느 철학서와는 다릅니다. 크게 4부로 나뉘어져 있고 이 각각에 20개 정도의 독립된 이야기가 있고, 앞에 10개 단락으로 된 긴 머리말이 있습니다. 다양한 주제가 망라되어 있으며, 전혀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인 철학책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책의 등장 인물이자 주인공은 물론 단연 차라투스트라입니다. 그는 10년간 산 속에서 명상을 마치고 새로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으로 내려옵니다. 이는 마치 예수가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나 갈릴리 호수로 구도자의 길을 떠난 후 40일 간의 명상을 거친 후 다시 돌아 오는 장면과 겹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적인 유사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니체를 왜 찾아 왔는지, 그는 누구인지, 우리에게 무엇을 설파하려고 왔는지가 중요합니다.

제1부에서 ‘세 변화에 대하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나 이제 너희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아이가 된다”

낙타는 스스로가 삶을 견뎌야 할 고통으로 생각하고, ‘삶은 고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착하면서도 인내심이 많은 동물입니다. “짐깨나 지는 정신(낙타)은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짊어진다.” 그러나 이 낙타로 정신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정신은 다른 변신을 꾀합니다. 정신은 사자로 변합니다. 사자가 된다는 것은 정신이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이 사자는 자신이 섬겨온 주인을 찾아 나서며, 마지막 신에게 대적하려 하여, 신의 한 형태인 용과 일전을 벌입니다. 마땅히 해야 함을 할 줄 알고, 창조된 모든 가치를 아는 사자,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를 강탈하는 사자가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자는 어린 아이의 순진 무구와 망각을 알지 못합니다.

사실 니체에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책이 아니라 ‘신은 죽었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 말을 안다고 해서, 니체를 단언해서는 안됩니다. 니체는 누구보다도 극단적이고, 누구보다도 신랄합니다. 그에 대한 이해는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니체의 철학은 많은 걸 담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초인과 최후의 인간에 대한 구분입니다. 그에 따르면 최후의 인간은 곧 허무주의입니다. 초인은 신앙에 의존하는 최후의 인간을 극복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의 철학은 쉽게 말해 형상적이고 내세적인 관념에 대한 파괴입니다. 인간은 현상에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세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두번째로 주목할 점은 역시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니체가 기독교 그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니체가 예수에 대한 찬양과 믿음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그의 주장이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만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로 주목할 점은 그가 보여주는 일종의 '인간다운' 교훈입니다. 니체는 말하길,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시련으로 생각하지 말며, 선과 악을 자신의 안에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자연적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신에 대한 의존을 벗어던지고 창조의지를 깨우쳐, 세계를 사랑하고 나를 극복하며 나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낙타와 같이 고뇌를 받아들이고, 사자와 같이 독립적으로 외부의 영향을 부정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새로운 창조활동으로 나아가야합니다. 하지만 그 창조성은 필연적인 구조, 즉 영원회귀 안에 갇혀있습니다. 즉, 삶은 계속 반복해서 살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인간이 자기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 삶을 긍정해낼 수 있는가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읽었다기보단 한번 훑어보았다고 보는게 맞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방대한 상징 체계와 성경을 비롯한 고문헌을 자주 인용한 탓에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비판을 하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조차 도통 알아차리기 힘들었습니다.

고전(古典)이란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어 본 적 없는 책’이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무수한 시대를 건너오며 살아 남은 강력한 힘을 가진 책일 것입니다.

책에는 우리에게 주는 주옥 같은 구절이 참 많았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고 중심이 되는 주제는 누가 왜 만들어 놓은지도 모르는 가치와 규범에 복종하고, 미리 정해져 있던 길을 따라 의미 없는 삶을 살지 말고,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읽었던 책들에서 많이 봤던 내용입니다. 그만큼 니체의 영향을 받은 책들이 많다는 것이겠죠

또한, 철학이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 학문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나만의 철학을 가져야 겠다고 느꼈습니다.

참으로, 천천히 죽을 것을 설교하는 자들이 존경하는 저 히브리 사람은 너무 일찍 죽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의 때 이른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불운이 되었다.
그가, 이 히브리 사람 예수가 알고 있었던 것은 히브리 사람들의 눈물과 비애, 그리고 착하고 의로운 자들의 증오 뿐이었다. 그리하여 죽음에 대한 동경이 그를 엄습했던 것이다.
그가 황야에 머물러 있으면서 어떻게든 착하고 의로운 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그는 사는 법을 배우고 대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웃음까지 배웠을 것이다!
내 말을 믿어라, 형제들이여! 그는 너무 일찍 죽었다. 내 나이만큼만 살았더라도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철회했으리라! 그는 철회할 수 있을 만큼 고귀한 자였다!
그러나 그는 채 성숙하지 못했다. 그 젊은이의 사랑은 미숙했고, 인간과 대지에 대한 그의 증오도 미숙했다. 그의 마음과 정신의 날개는 아직도 묶인 채 무거웠다.
- P127

무언가 서로에게 줄 것이 있어, 자신에게 넘쳐나는 것이 있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받고 싶은 것이 있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이다. 풍성한 토양에서 자라는 사랑의 식물은 서로를 선물하는 친구를 만들어주지만,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는 사랑의 식물은 상대방을 구속하는 가시 울타리로 자라난다
- P130

참으로, 형제들이여, 그때가 오면 나는 다른 눈으로 내가 잃은 자들을 찾으리라. 또 다른 사랑으로 그대들을 사랑하리라.
언젠가 그대들은 나의 벗이 되어야 하며, ‘하나의’ 희망을 품은 아이들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면 나는 세 번째로 그대들과 함께 하면서 위대한 정오를 축복하리라.
위대한 정오란 인간이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길의 한 가운데에 서 있을 때이며, 저녁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길을 최고의 희망으로서 축복하는 때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새로운 아침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몰락해 가는 자는 자신이 저 너머로 건너가는 자임을 알고 스스로를 축복할 것이며, 그때 그의 인식의 태양은 그에게 정오의 태양이리라.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위대한 정오에 우리의 마지막 의지가 되기를!
- P136

니체는 삶에 대한 사랑을 ‘운명애’(amor fati)라고 불렀다. 그는 그것을 ‘운명과 대결하지만 패하고 마는’ 터키 식 운명론이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복종하다 쓰러지는’ 러시아 식 운명론과 구분지었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해 주는 것이다. 물론 그 창조에는 고통이 따른다. 재창조되기 위해 하나의 삶은 다음 삶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 P148

시도와 물음, 그것이 나의 모든 행로였다. 그리고 참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을 배워야한 한다. 이것이 나의 미감이다. 그것은 좋은 미감도 나쁜 미감도 아니며, 내가 부끄러워 하지도 숨기지도 않는 나의 미감이다."이것이 지금 나의 길이다. 그대들의 길은 어디있는가?"라고 나는 나에게 길을 물은 자들에게 대답했다. 말하자면 모두가 가야할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 P346

얼마나 많은 일이 아직도 가능한가! 그러므로 부디 그대들 자신을 넘어서서 웃는 것을 배우라! 그대들의 마음을 고양시켜라, 그대들 멋지게 춤추는 자들이여, 높게! 더 높게! 그리고 멋지게 웃음 짓는 것도 제발 잊지 마라!
웃는 자의 이 면류관, 이 장미꽃 다발의 화관, 그대들에게, 형제들이여, 이 화관을 던진다! 웃음은 신성하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므로 그대들, 차원 높은 인간들이여, 배우라, 웃는 것을!
- P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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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리 아셰트클래식 1
쥘 베른 지음, 쥘베르 모렐 그림,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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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해저 생명부터, 전설 속으로 사라진 고대문명 아틀란티스, 그리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까지.....저 바다 아래에는 또 무엇이 숨어 있을까요?

책이든 영상이든 바닷 속을 비추는 방식은 대개 판타지적입니다. 바다의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줍니다.

‘해저2만리’는 초등학생 때 열심히 읽었던 책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자세한 장면들은 가물가물했습니다.

1866년 세계 각지의 바다에서 괴물생명체가 출몰하여 선박들을 공격합니다. 이에 미국 정정부는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원정대를 발족하고 프랑스의 유명 박물학 박사 피에르 아로낙스와 그의 하인 콩세유, 고래잡이 명수 네드 랜드가 여기에 참가하게 됩니다. 반년에 가까운 탐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해 모두가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을 무렵, 마침내 괴물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순양함이 혼란에 빠진 와중에 아로낙스 박사, 콩세유, 네드 랜드는 바다에 빠집니다.

‘괴물 생명체’에 의해 구출받게 된 세 사람은 그것이 생명체가 아닌, 초현대적 과학 기술로 제작된 잠수함 노틸러스호임을 알게 됩니다. 잠수함의 주인 네모 선장은 육지 세상을 등지고 해저 세계를 탐험하는 바다의 은둔자였습니다. 그는 아로낙스 박사 일행에게 노틸러스호의 보안을 위해 육지로 보내주지 않는 다신 자신의 탐험에 동참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들은 홍해의 산호초, 비고만 해전의 잔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전설의 대륙인 아틀란티스 대륙의 유적 등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네모 선장에게는 비밀스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에 아로낙스 박사는 그를 미심쩍게 생각합니다. 네모 선장은 다른 나라에서 모진 박해를 받았고 이에 대한 복수를 위해 부하들과 함께 노틸러스호에서 숨어 지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노틸러스호는 국적 불명 군함의 공격을 받지만 오히려 그 군함을 격침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네드 랜드는 아로낙스 박사에게 노틸러스호를 탈출할 것을 제안합니다. 아로낙스 박사와 네드 랜드는 노틸러스호가 노르웨이연안에서 표류하던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탈출한 후 두 사람은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합니다.

주인공들이 전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신기한 해양 현상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몸길이 8미터짜리 대왕오징어나 진주의 종류와 채취방법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저자인 쥘 베른은 실제로 20세기를 거의 경험하지 못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지금 읽어도 현대적이라 느껴지는 SF소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상상 과학과 바다 전설의 만남일 겁니다. 소설 제목처럼 잠수함 노틸러스는 기나긴 해저 여행을 떠납니다. 노틸러스는 그저 바다 밑바닥을 둘러보지 않고, 온갖 신비하고 기이한 바다 전설을 만납니다. 바다 모험의 로망들을 지속적으로 자극합니다. 주인공들이 노틸러스에 타기 전에 이미 소설은 '거대한 바다 괴물'를 화제로 등장시킵니다.

상상력은 그저 바다 괴물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노틸러스는 난파선을 방문하고 엄청난 보물들을 수집합니다. 네모 선장과 일행은 사라진 아틀란티스 유적을 방문합니다. 그들은 바다 목장으로 소풍을 나가고, 비밀스러운 바다 통로를 지나갑니다. 거대한 갑각류나 사나운 상어와 싸우고, 난폭한 고래들을 도살합니다. 그러나, 왜 네모 선장이 무서운 복수를 꿈꾸는지 자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아로낙스는 네모 선장의 진짜 정체를 모르고, 노틸러스가 어떤 배를 침몰시켰는지 모릅니다.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이유는 경험할 수 없는, 혹은 경험할 수 있다 해도 두려움 때문에 접근조차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닷속, 그 중에서도 깊숙한 ‘심해’라는 공간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실감나는 묘사 덕에 마치 생물도감이나, 해저생물 관찰일지를 읽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졌고, 그 덕에 목마른 지적 갈증을 조금이나마 채워주었습니다.

'인류로 인해 슬픈 자연은, 그럼에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을 것이다. 바다는 어찌 보면 인류 문명의 증거 그 자체일 지도 모르겠다. 바다는 지구의 첫 생명이자, 가장 마지막 숨결일 것이다.' - 마티아스 피카르

물론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든, 실제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항상 남아 있다
- P22

사랑하고 말고요! 바다는 아주 중요합니다. 바다는 지구의 10분의 7을 덮고 있지요. 바다의 숨결은 건강하고 순수합니다. 바다는 드넓은 황무지이나, 여기서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사방에서 고동치는 생명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바다는 거대하고 초자연적인 존재가 살 수 있는 환경입니다. 바다는 움직임과 사랑 그 자체예요.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바다는 살아 있는 무한입니다
- P99

아아, 그 광경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왜 우리는 느낌을 서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우리는 유리와 금속으로 만든 이 가면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왜 서로에게 말을 할 수 없는가? 왜 우리는 물에 사는 물고기처럼 살 수 없는가? 하다못해 땅과 물을 오가는 양서류처럼 살 수는 없을까?
- P252

그게 인류의 특권이라는 건 알지만, 심심풀이로 생명을 죽이는 따위의 잔인한 짓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참고래같은 남극 고래는 인간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온순한 고래입니다. 그런 고래를 죽이는 것은 저주받을 짓이예요.
- P414

"아닐세. 누구 목숨이든 귀중한 건 다 마찬가지야.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보다 더 훌륭한 인간은 없네. 자네는 너그럽고 친절해."
- P473

매너티는 바다표범과 마찬가지로 해저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고, 그리하여 열대의 강어귀에 번성하면서 강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풀을 없앤다. ‘인간이 그런 유익한 동물을 거의 다 죽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나? 썩어가는 풀은 공기를 오염시켰고, 오염된 공기는 황열병을 일으켰고, 황열병은 이 아름다운 지방을 파괴하고 있네. 유독성 물질은 따뜻한 바다에서 번성했고, 그 피해는 라플라타 강에서 플로리다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지! 투스넬의 말을 믿는다면, 이 전염병은 바다에서 고래와 바다 표범이 사라졌을 때 우리 자손엑 닥칠 재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오징어와 해파리가 우글거리는 바다는 전염병의 거대한 온상이 될거야. 바다에는 조물주가 커다란 위장을 주면서 해수면 청소를 맡긴 포유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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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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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지저귀고 시끄러워야 봄에 적막한 기운만 감돈다면 얼마나 황량할까요? 만일 우리가 사는 땅에 세상의 모든 새들이 사라진다 어떤 느낌일까요?

 아이들에게 들려줄 새소리가 없다는 , 숲 속을 거닐며 새소리를 들을 없다는 , 훨훨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을 없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입니다.

미국 한가운데쯤 곡식이 자라는 밭과 풍요로운 농장들 사이에 모든 생물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은 계절별로 경관이 아름답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평화의 노랫소리 끊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은 고기를 잡으러 가까운 시냇가로 나가곤 했습니다. 특히 마을에는 다양한 종류의 새로 유명했는데, 봄가을 이동기를 맞은 철새 무리를 구경하려고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어느 낯선 병이 지역을 뒤덮어 버리면서부터 마을은 사악한 마술에 걸린 가축 떼가 죽어나가고 새들도 오지 않고 꽃도 피어나지 않을 아니라 아이들과 주민까지 없는 질병을 앓다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유는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위험하고 치명적인 유독물질로 공기토양하천바다 등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를 자연은 원상태로의 회복은 불가능한데 오염으로 말미암은 해악은 생물의 세포조직에도 스며들어 돌이킬 없는 재난을 불러옵니다..

강렬하고 짧은 이 이야기가 책의 제목을 더 각인시키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이어서 2장부터 17장까지 드린계 농약과 유기 염소계 농약인 DDT, BHC 등의 살충제와 농약이 새, 물고기,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에게 미치는 파괴적 결과를 4년간의직접조사를 바탕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모두 17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단계별 내용이 모두 인간의 이기심과 부주의로 빚어내는 화학약품에 따른 환경오염과 자연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배후에 생태적 연관 관계에 대해 무지하고 탐욕에 눈이 먼 전문가정책 당국자기업의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간이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화학물질은 그대로 땅으로 스며들어 물을 오염시키고 물고기를 떼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 대지에 뿌려진 살충제나 제초제는 토양으로 흡수되어 위에 생존하는 식물을 죽이므로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자연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자연은 서서히 병들어 갑니다. 또한, 핵전쟁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절멸 가능성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심각한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로 인한 환경오염입니다. 물질들은 식물과 동물의 세포조직에 축적되는데, 심하면 세포를 뚫고 침입해 유전물질을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화학물질이 우리에게 주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모르는 인간은 농지와 숲을 대상으로 화학물질의 공중살포 범위를 확대하였고, 살생 목표인 해충이나 잡초만이 아니라 화학약품이 뿌려진 지역에 사는 사람도 화학물질인 독극물을 뒤집어쓰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자주 거론되는 ‘DDT 유기 할로겐 화합물에 속하는 살충제이다. 물질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중추신경계의 마비 증세를 보이며 체내에 축척이 되어 암을 유발하거나 기형아를 태어나게 하는 부작용을 유발하는 독성이 강한 화합물입니다.

지구의 역사는 생명체와 환경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입니다.모든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생존과 진화를 거듭해 왔지만 지구 탄생이후 인간이라는 생물종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지구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기술적 진보와 경제적 번영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오만함이 결국 인류의 파멸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수도 있다는 또한 두려운 진실입니다.

인간은 이쯤에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입니. 그동안 고집해온 관념을 바꾸고 인간이 우월하다고 믿는 오만함도 버려야 합니다.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다양하고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간이 해충이나 잡초를 제거하려고 화학물질을 살포할수록 인간이 자리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화학적 방제를 대신할 있는 대안을 찾고자 한다면 다양한 선택이 존재합니다. 저자가 인류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많이 늦은 지금이라도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라는 것입니다. 생태계가 살아나고 먹이사슬이 제대로 형성되면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평화롭게 살아갈 있을 것입니다. 해충이니 잡초니 이름을 붙여 제초제나 살충제 화학물질을 만들어 마구잡이로 살포하는 것은 결국 지구를 병들게 하고 인류를 멸망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에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침묵의 봄은 다행히 아직 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책이 나왔기 때문에, 살충제와 여러 환경문제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아직 침묵의 오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앞으로의 환경문제가 중시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경고가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인간의 이기심과 과학적 자만심을 버리고 인간의 겸손함을 드러내야 할 때입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500여 종의 화학물질이 등장해 사용된다. 이 놀라운 수치가 암시하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 매년 500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인데, 이는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런 신물질 중 상당수는 인간이 자연에 대항해 벌이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31

죽음에 이른 얼룩 다람쥐의 모습은 특별하다. 몸을 웅크린 책 앞발로 가슴을 잡고 있었다. ... 머리와 목은 축 늘어졌고 입에는 더러운 흙이 들어 있었는데, 불쌍한 다람쥐가 죽어가면서 땅을 물어 뜯기라도 할 듯 몸부림쳤음을 알려준다 - P126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가 잠시 권력을 맡긴 관리들이다. 이들은 아름다움과 자연의 질서가 깊고도 엄연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깐 소홀한 틈을 타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 P154

자기만족을 위해 자연을 일정한 틀에 꿰맞추려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다가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결정적인 역설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이 만든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곤충은 자신에 대한 화학적 공격을 우회적으로 피해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자기만족을 위해 자연을 일정한 틀에 꿰맞추려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다가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결정적인 역설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이 만든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곤충은 자신에 대한 화학적 공격을 우회적으로 피해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 P273

내성이란 개인별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다른 생명체보다 유독 물질에 영향을 덜 받는 능력을 타고났다면 살아남아서 후손을 낳을 가능성도 더욱 커진다. 내성이란 수많은 세대를 거치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100년 동안 세대가 평균 세 번 바뀐다. 하지만 곤충의 경우에는 며칠 또는 몇 주 단위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 - P303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 경외감을 잃어서는 안된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살충제 같은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면 야만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 P304

새롭고 상상력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들, 그 생명체의밀고 밀리는 관계, 전진과 후퇴이다. 생물들이 지닌 힘을 고려하고 그 생명력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해 갈 때, 곤충과 인간이 이해할 만한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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