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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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예수회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스티븐이 세상을 탐험하고 자신이 열심히 준비한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이 작품은 총 5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주인공 스티븐의 성장과정을 5단계로 구분하고 잇습니다. 저자인 제임스 조이스는 이 소설에 자기 자신의 성장과정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습니다.

1장은 스티븐이 아기일 대부터 클롱고우스 우드학교에 다녔던 아홉 살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 민족정신을 지배하던 정치적 독립과 이를 둘러싼 종교적 대립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외눈 안경을 쓴 아버지에게 안겼을 때 느끼는 독특한 채취로부터 시작하여 이웃집 소꿉친구인 신교도 여자아이와 결혼하겠다고 말하여 꾸중듣는 과정이 간략히 제시됩니다. 내향적인 스티븐은 반에서 우등생이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며 친구들로부터 조롱받기도 합니다. 어느 날 친구에게 떠밀려 변소 통에 빠지게 되고 그 일로 감기에 걸려 간호실에 누워 있게 됩니다. 성탄절에 집에 돌아와 저녁 만찬을 즐기며 집안 식구들끼리 벌이던 열띤 정치 논쟁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부당한 처벌에 항의하러 교장 선생에게 찾아가 그 부당함을 일일이 열거하게 됩니다. 연속되는 사건을 통해 주인공의 내향성, 예민한 감수성, 어린 자아에 대한 탐구, 권위에 도전하는 반항자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2장은 아버지의 파산으로 클롱고우스 우드 학교 대신 벨비디어 학교로 입학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노출되는 부분입니다. 집안이 몰락하여 학교를 그만두게 된 스티븐은 혼자 독서에 몰두하며 낭만적 몽상의 세계로 도피합니다. 초라하게 변모한 자신의 생활 주변에 대한 좌절과 반발심은 가까스로 다시 입학하게 된 중학교에서도 지속됩니다. 그의 작문은 종교적 정통 교리를 거스르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사회의 반항하였던 바이런을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하다가 친구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합니다. 현상 논문에 당선되어 그 상금으로 가족을 고급 식당에 초대하기도 하는 등 허세를 부리지만, 결국에는 돈이 다 떨어지자 전보다 더욱 씁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가정의 몰락과 개인적인 좌절감, 그로 인한 반발심, 그리고 점차 눈뜨게 되는 성적 욕망으로 스티븐은 첫

성 경험을 겪습니다.

3장은 타락한 영혼의 괴로움 속에서 지내던 그가 성모마리아의 음성과 아놀 신부의 설교를 들은 후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성 경험은 스티븐에게 깊은 죄의식의 흔적을 남겼고 수업 시간에도 고민합니다. 이에 제수이트파 학교에서의 연례 행사인 사흘 간의

피정에 참가합니다. 사제신부의 웅변적인 무시무시한 지옥의 설교는 그를 공포에 몰아넣는데, 어두운 죄의식으로 인해 철저하게 공포에 떨던 스티븐은 마침내 개심하여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고해하고 구원받은 새 생활의 환희에 빠져들며 끝을 맺습니다.

4장은 스티븐의 삶에 있어 중요한 변화의 과정을 그립니다. 구원의 환희가 일순간 지나가자 스티븐은 종교적 회의에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외면적으로는 학업에 있어서나 신앙 생활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스티븐에게 교장 선생님은 사제의 길로 나설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나

홀로 생각에 잠기며 바닷가로 향하던 스티븐은 친구들이 자신의 이상한 이름을 놀려대며 부르는 순간 예술가로서의 숙명적 미래를 자각하게 됩니다. 해변에서 물장난치는 한 소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창조할 새로운 예술의 비전을 체험하며, 이 서정적 현현(Epiphany)의 장면에서 이 소설은 극적인 정점에 이릅니다. 이제 경건한 생활로 돌아온 그가 정작 교장의 성직자 제안을 거절하게 되는 심리적 이유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갈 길이 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개울에서 만나게 되는 한 소녀에 대한 묘사는 이 장에서뿐 아니라 소설 전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5장은 대학에 입학한 스티븐이 속에서만 꿈틀대던 가정, 조국, 교회에 대한 반기를 밖으로 표출하고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는 내용입니다. 이미 사제의 길을 포기한 스티븐은 대학에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합니다. 대학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독자는 주인공이 겪고 있는 부모와의 갈등과 내적 고뇌를 목격합니다. 또한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하는 스티븐의 미학 이론들이 피력됩니다. 예술적 자유를 추구하는 자신의 영혼을 가로막는 사랑하는 여자와 가족, 종교, 편협스러워져만 가는 아일랜드의 문화적, 사회적 풍토를 거부하고 스티븐은 마침내 조국의 ‘아직 창조되지 않은 양심’을 발견하기 위하여 조국을 등지고 유럽으로 떠날 결심을 굳힙니다. 더불어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적 사상을 빌려와 자신만의 예술에 대한 정의 및 신념을 확고히 설명하기도 합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해방은 좌절과 분노, 욕망과 증오의 뜨거움을 적정 온도로 바꾸어낼 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스티븐은 자신의 욕망과 분노에 휩쓸리다가도 이내 거기서 빠져나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온전히 자신의 것인지를 되묻고 바라보는 내적 시선을 확보하려 합니다. 실제로 그의 예술관의 핵심은, 예술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타인의 감정과 사유를 특정한 방식으로 유도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소설에 대해 전례가 없었던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평범한 것으로 나타났던 것은 이제 전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직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 정체성의 일부를 탐험하며, 개인에게만 속한 것과 우리가 함께 있는 것 사이의 공간을 탐색하며, 마음의 변화, 기분과 감정의 흐름을 탐구합니다. 한 청년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조이스의 소설을 그렇게 마법적으로 만들고 본질적으로 문학적으로 만드는 것은 개인에게만 속한 것. 또한 우리 각자에게 속한 고유한 것의 정복이기도합니다.

정체성이 발생하는 방식, 우리를 형성하고 우리를 만드는 사건을 다룹니다. 이러한 상황은 모든 사람에게 다소 동일합니다. 우리는 가족으로 태어나고 그것이 우리를 받아들이고 우리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인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언어를 배우고, 우리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언어는 우리가 좋아하든 싫든 우리가 한 부분이 되는 문화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생활반경이 넓어지고 학교교육이 시작되며 사회화 과정이 더욱 공식화됩니다. 우리는 언어, 문화 및 사회에 대해 배우고 가족 내 첫 번째 정체성에 새로운 정체성이 추가됩니다. 스티븐은 소부르주아 가문의 아일랜드 가톨릭 아들로 등장하여 소설 후반부에서 이 모든 범주에 대항하여 아일랜드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가톨릭 종교를 거부하고 중산층을 거부하며 존재를 고집했습니다.

마치 산문시와도 같은 함축미와 일관된 상징, 형식적인 전통을 거부하는 실험정신은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듯했습니다. 또한, ‘의식의 흐름’기법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성격창조보다는 의식의 내면세계를 밀도 있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관된 사건이나 성격구성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엄격한 학교생활, 대학에서의 예술 심취와 유학의 길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의 흐름이 주인공의 의식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3인칭으로 쓰여졌지만 이야기는 그의 삶의 각 곳곳에서 스티븐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미묘하게 변합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거장 제임스 조이스의 두번째 작품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현대 성장소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소설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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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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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일리아스』는 우리에게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화의 신 에리니스는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자기만이 불청객임을 알고는 부아가 나서 신들도 참석한 피로연의 많은 손님들 앞에서 황금의 사과를 던지며 최고의 미인에게 주라고 외치고 사라집니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딸들인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모두 이것을 차지하려고 만만치 않게 경쟁합니다. 거북해진 주신 제우스는 최고의 미인을 스스로 지명하지 않고 프리아모스 왕의 미남 아들 알렉산드로스(파리스)에게 심판하도록 합니다. 헤라는 그에게 재물을 약속하고 아테네는 무사의 영광을, 또한 아프로디테는 미모의 여인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유리한 심판을 내려 그녀에게 황금의 사과를 주었습니다. 실제로 천하제일의 미모를 가진 여인은 이미 아가멤논 왕의 동생인 스파르타 왕자 메넬라오스에게 시집간 헬레네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황금의 사과의 대가로 그녀를 원했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약속대로 그를 헬레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 안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힘을 얻은 알렉산드로스는 메넬라오스의 집에서 귀한 손님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머물다가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로 데려갔습니다.

아내를 잃고 분개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 왕과 의논하여 트로이 원정군을 편성합니다. 원래 만약 헬레네를 남편에게서 뺏는 자가 있으면 힘을 합하여 복수하기로 맹세했던 그리스 여러 영주들 -예를 들면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 기라성 같은 영웅들 -은 이제 유괴당한 헬레네를 찾아오기 위해 각기 자기의 부대를 이끌고 참가한다. 총사령관 아가멤논 휘하의 10만 대군이 원정길에 오르기 위해 아울리스에 집결했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아가멤논 왕이 사냥 중에 아르테미스 신의 사슴을 죽인 탓으로 갑자기 바람이 자버려 그리스 함대는 출항할 수 없게 됩니다. 예언자의 말에 의하면 아가멤논 왕의 맏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기 전에는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가멤논은 오딧세우스에게 시집을 보낸다는 구실로 맏딸을 보내어 희생시키자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합니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 잔인한 희생을 알고는 영영 남편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p249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도 않을 것이오

트로이 섬에 도착한 그리스 군은 해안에 진을 치고 트로이 성을 공격하기를 9년, 트로이 성주 프리아모스 왕은 이미 늙었으나 그의 용맹한 아들 헥토르의 분투와 이웃 나라 동맹군의 응원으로 끈질기게 대항합니다. 그들은 그리스군의 으뜸가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두려워하여 성문을 굳게 잠그고 들판에 나와 싸우기를 꺼려했으며 한편 신들은 변덕스럽게 이편을 도왔다 저편을 도왔다 합니다. 그리하여 사상자는 헤아릴 수 없고 기나긴 혈전이 계속되었으나 트로이 성의 함락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언 원정한 지 10년째 되는 해를 맞이하는 그리스 군 내부에 영웅간의 불화가 생기는 데서부터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p354 우리 중에 가장 용감한 자들이 모두 복병으로 뽑혔다고 한다면-그럴 때 전사들의 용기가 가장 잘 구별되지요. 누가 겁쟁이고 누가 용감한지 금세 드러나니까요. 비겁한 자는 수시로 안색이 변하고, 그의 기개도 마음속에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지 못하오. 그래서 그는 자꾸만 옮겨 앉고 앉은 채 발을 바꾸며, 또 죽음의 운명을 생각할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마구 뛰고 이빨이 덜덜 떨리니까 말이오. 하나 용감한 자는 일단 전사들의 복병에 참가하고 나면 안색이 변하지 않을뿐더러 그리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한시라도 빨리 참혹한 전투에 뛰어들기를 원하지요

이 책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10년과 마지막 해에 약 51일만을 다룹니다. 전편 부분에서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왕이 아킬레우스에게 점령한 도시에서 데려온 여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아킬레우스는 전공과 명예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고 몹시 분노합니다. 그는 부하들과 같이 자기 함선에 틀어박혀 싸움터에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아킬레우스 없이 계속됩니다. 발 빠르고 용맹한 그를 겁내어 아직까지 성 밖으로 나오지 않던 트로이군은 총사령관인 헥토르의 지휘하에 들판으로 쏟아져 나와 일대 공세를 취한다. 그리스군도 이아이스, 디오메데스, 오딧세우스 등이 선전하지만 후퇴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어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이때 비로소 아가멤논은 자기의 경솔을 후회하고 아킬레우스에게 사자를 보내 많은 선물로 보상할 뜻을 전하며 출진을 간청하나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선진 가까이까지 밀린 그리스군은 방루와 참호에 의지하여 버티어 보려 하나 이미 많은 장병들이 쓰러지고 함선이 모두 불타 버릴 듯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릅니다. 이 때,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이 곤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다시 한번 출진하도록 권해보는 데서부터 중편 부분이 시작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파트로클로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갑옷과 투구를 빌려 입고 나가 싸웁니다. 그는 적병을 무찌르며 전진하다가 너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처음에는 그를 아킬레우스인 줄 알고 두려워했던 트로이군의 반격을 받아 헥토르는 그를 죽이고 갑옷을 벗깁니다.

p528 이건 헥토르의 말이다. 이런 헥토르도 동생 파리스에게는 엄청나게 비난을 퍼붓는다. 하기야 파리스가 데려온 여자 하나로 인해서 나라가 망하고 망한 나라의 백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고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과 어둠 속을 헤매는 복수의 여신에 있소이다. 아킬레우스에게서 내가 손수 명예의 선물을 빼앗던 그날 바로 그분들이 회의장에서 내 마음 속에 사나운 광기를 보내셨기 때문이오.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놓으셨는데 난들 어쩌겠소?

전우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분개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이야기가 종말되기 시작하는 후편 부분입니다. 복수하기로 결심한 아킬레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만든 새 갑주로 무장하고 싸움터로 나가 종횡무진으로 적병을 무찌릅니다. 몰린 트로이군은 성 안으로 쫓겨가고 헥토르만이 홀로 남았으나, 아킬레우스는 그를 쳐서 죽이고 그 시체를 수레에 매달아 끌고 갑니다. 파트로클레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 밖에도 포로 열 두 명의 목을 베고 성대한 장례식을 올리기로 합니다. 이때 트로이의 프리아모스가 신의 도움을 얻어 남몰래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증오의 화신처럼 분노했던 아킬레우스도 가엾은 노왕의 모습을 보자 늙은 자기 아버지의 생각이 나서 배상을 받고 시체를 돌려준다. 약속대로 양군은 장례식을 위해 일시 휴전했으나 이미 헥토르를 잃은 트로이군의 패배는 명백해집니다.

p503 불화는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사라지기를! 그리고 현명한 사람도 화나게 하는 분노도 사라지기를! 분노란 똑똑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콤해서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연기처럼 커지는 법이지요. 꼭 그처럼 저는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에게 분노했지요. 하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지요.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어요

책의 주요 내용은 전쟁에 관한 내용이지만, 오히려 ‘아킬레스의 분노’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그리스 군대가 미케네의 왕이자 그리스 군대의 지도자 인 아가멤논이 전쟁의 전리품으로 납치 한 아폴로 사제의 딸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 군대가 아폴로가 보낸 전염병에 휩싸이면서 일리아드가 열립니다. 결국 아가멤논은 항복하지만 테살리아의 동맹군 인 미르 미돈의 왕 아킬레스에 속한 여성을 대신합니다. 이것은 그의 분노로 싸움에서 철수하는 위대한 영웅인 아킬레스의 분노를 촉발했습니다. 아킬레스는 야만적이고, 복수하며, 무자비하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도 아름답고, 매우 용감하고 맹렬하게 충성하며, 억누를 수 없는 사랑과 은혜, 친절과 공감 능력이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열화 같은 분노가 빚어내는 잔인한 전쟁의 이야기이지만, 방대한 규모의 전투 장면과 용사들의 용맹이 독자들의 마음에 생생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노를 터뜨리고 복수심에 불타고 혹독한 살육을 마구 하던 영웅도 마침내 고통을 통하여 연민에 도달하게 되고 인간의 고귀한 가치인 높은 품위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허구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군사 서사시 중 하나 일지 모르지만, 실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는 두 발의 뒤쪽 힘줄을 뒤꿈치에서 복사뼈까지 뚫고 그 사이로 소가죽 끈을 꿰어서 헥토르를 전차에 매달아 머리가 뒤에서 끌려오도록 해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이름난 무구들을 전차에 올려놓고 자신도 올라 채찍을 휘두르며 말들을 모니 말들도 마다않고 나는 듯이 달렸다. 헥토르가 끌려가자 그 주위에서는 먼지가 일고, 그의 검푸른 머리털은 양쪽으로 흘러내려 전에는 그토록 곱던 그의 머리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었으니, 제우스가 이제 그를 적군에게 내주어 그 자신의 고향 땅에서 그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 P559

아무리 괴롭더라도 우리의 슬픔은 마음 속에 누워있게 내버려 둡시다. 싸늘한 통곡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신들은 비참한 인간들의 운명을 정해놓으셨소. 괴로워하며 살아가도록, 하나 그 분들은 자신은 슬픔을 모르지요. 제우스의 궁전 마룻바닥에는 두 개의 항아리가 놓여있는데 하나는 나쁜 선물이, 다른 하나는 좋은 선물이 가득 들었지요. 천둥을 좋아하시는 제우스께서 이 두 가지를 섞어 주시는 사람은 때로는 궂은 일을, 때로는 좋은 일을 만나지요. 하나 그분께서 나쁜 것만 주시는 자는 멸시의 대상이 되지요

- P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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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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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일반적인 개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와 같이)은 아마도 이 이야기보다 프로이트와 프로이트 정신 분석과 더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을 쓴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3대 비극작가로 꼽힙니다. 괴테는 “소포클래스 이후 그 어떤 사람도 내게 호감을 주지 못한다. 그는 순수하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쾌활하다. 현존하는 소포클래스의 작품이 몇편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유감이다”라고 그를 극찬했습니다.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 <클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를 가리켜 테베 3극이라고 하며 오이디푸스를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붙잡고 있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p49 내 그대에게 이르노니, 그대가 진작부터 라이오스의 살해자라 선언하고 위협하며 찾는 그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소. 그는 명목상으로는 이방 출신의 거주자이지만, 나중에는 태생부터 테바이 사람임이 드러날 테고, 그 행운에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오. 그는 눈 뜬 자에서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이국 땅을 향해 지팡이로 앞으로 더듬으며 가게 될 것이오. 또 그는 자기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버지로서 함께 살고 있으며, 자신을 낳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씨 뿌린 자이자 그의 살해자임이 드러날 것이오. 그러니 들어가서 이것을 따져 보시오. 그대가 만일 내 말이 거짓임을 밝혀낸다면, 그때는 내가 아무 예언술도 모른다고 떠들어 대시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인 아버지 라이오스와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왕은 이미 ‘아들에게 살해당한다’라는 신탁을 받고 있었으므로 아들이 태어나자 왕비에게 죽이라고 명령했고 왕비는 시종에게 그 일을 시킵니다. 차마 아기를 죽일 수 없었던 시종은 아이를 산속의 한 나무에 매달아 놓습니다. 아이가 발견되었을 때 그의 발은 퉁퉁 부어 있었고, 그 부은 발을 보고 아이의 이름을 오이디푸스라 했습니다. 아이는 마침 자식이 없던 고린도의 왕에게 바쳐집니다.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그런 기괴한 일을 피하기 위해 고린도를 떠납니다. 테베를 여행하던 중 좁은 길을 서로 먼저 가려다 시비가 붙은 테베의 왕 라이오스를 죽입니다.

아울러 테베의 골칫거리였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를 구합니다. 테베의 왕으로 추대 받고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합니다. 그 사이에서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습니다. 그가 살해한 왕은 아버지였고 그가 결혼한 여인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신탁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테베는 그의 선정 아래 평화와 번영을 누립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범죄를 알고 있던 신들은 심판을 시작합니다. 테베에 역병이 돌자 오이디푸스는 델포이로 사람을 보내 신탁을 구합니다. 신탁은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 복수하면 역병이 물러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언자 티레시아스는 살해자가 바로 오이디푸스임을 알려 줍니다. 친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에 몸서리치던 오이디푸스는 아내마저 자살하자 아내의 옷에 달려 있던 황금브로치로 자기 두 눈을 찌릅니다. 그리고 나라를 크레온에게 맡기고 유랑에 나섭니다. 딸들과 함께 오랜 세월 갖은 수난과 고초를 겪으며 세상을 떠돌다 마침내 클로노스에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현명한 클로노스의 지배자 테세우스의 도움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운명은 신들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운명은 한 마디로 거역할 수 없는 힘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을 오이디푸스라는 개인이 거역하려고 합니다.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어떻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합니다.

오이디푸스는 결코 운명 앞의 단순한 제물은 아닙니다. 그는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포기하면서 파멸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독자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오이디푸스는 진정한 의미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신의 계획과 자신의 행동 사이에서 생겨난 괴리를 무한한 고통 속에서 극복해낸 영웅이었습니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던 한 인간의 삶이, 운명이라는 덫에 빠져 불행한 암흑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들이 나누는 대사를 통하여 그 내면까지 통찰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파멸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 진실을 추구하였으며, 그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을 숨긴 굴욕적인 삶 대신,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파멸적인 결과를 당당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등장인물의 직접적인 행동이나 대사로서만 줄거리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글의 흐름이나, 혹은 각주 없이는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삶과 내 존재에 대한 가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주체적인 자아상을 되새겨 볼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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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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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작으로 꼽혀서 연극이나 영화 소설 등으로 많이 다루어져나왔는데 이 작품 또한 가장 추천하는 연극 중 하나입니다. 꿈과 환상적인 요소가 많아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공연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아테네의 시슈스 히포리타의 결혼식이 임박했을 때, 마을의 처녀 허미아는 부친이 정해준 사랑하는 라이샌더와 함께 아젠스의 숲에 몸을 숨깁니다. 디미트리아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고, 디미트리아스의 옛 애인 헬레나도 숲으로 들어갑니다. 숲에는 많은 요정들이 살고 있으며 이 숲을 지배하는 요정의 왕 오베론과 왕비 타이터니아가 인간처럼 부부싸움을 합니다.

때마침 공작의 결혼식을 축하하려는 마을 사람들이 소인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랑의 비약을 가진 요정 바크가 뛰어들어 갖가지 우스운 일들이 전개됩니다. 결국 디미트리아스와 헬레나, 라이샌더와 허미아가, 시슈스 공작과 히포리타와 함께 결혼식을 올리고 마을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상연되어 모든 일이 즐겁게 끝납니다. 아테네의 귀족과 서민들, 요정이라는 세 세계가 숲에서 한데 모여 서로 친근한 관계를 맺으면서,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세계가 펼쳐집니다.

 

피라무스와 시스비가 주된 줄거리를 반영한다고 불 수 있는데, 불운한 피라무스와 시스비의 사랑, 이들의 밀회 및 사랑의 도피의 주제가 다 아테네의 두 쌍의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뛰어난 코미디 창작 능력으로 어긋난 사랑의 운명에 눈물 흘리는 젊은 남녀와 이들에게 마법을 거는 요정들이 어우러져 벌어지는 소동을 유쾌하게 그려 낸 작품입니다. 대가의 넘치는 상상력은, 한바탕 곤혹을 치른 후 진정한 사랑에 눈뜨는 주인공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낙관적이고 희망 가득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한 가지 사랑만이 아닌 여러 방식의 사랑을, 웃음을 통해 즐겁게 보여줍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것은 매우 보람 있는 동시에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작품을 한번 읽어서는 전체의 요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읽어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다시 읽어도 여전히 그의 작품은 ​​새롭고 신선하다고 느껴질만큼 지루하지 않습니다. 또, 그러한 과정은 독서의 경험을 재미있고 알차게 만들어줍니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는 항상 발견하고 주의를 집중해야 할 새로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동화처럼 읽을 수 있고 아동이 읽어도 좋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명작 중에 명작입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환상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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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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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 뭐라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계 최고의 극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37편의 드라마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TV, 영화,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그의 드라마 중 몇 편의 내용은 세계 각국의 남녀노소에게 진부하리만치 친숙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4대 비극(리어왕,오델로,맥베스,햄릿) 외에도 생전에 37편의 희곡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4대 비극이 무겁고 음침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그의 희극들은 삶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희극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한 여비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가지고 있는 배를 담보로 하여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부터 돈을 빌립니다. 그리고 돈을 갚을 수 없을 때에는 자기의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써 줍니다.

포샤는 구혼자들에게 금ㆍ은ㆍ납의 세 가지 상자를 내놓고 자기의 초상이 들어 있는 것을 선택하게 합니다. 바사니오는 납으로 된 상자를 골라잡아 구혼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배가 돌아오지 않아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남장을 한 포샤가 베니스 법정의 재판관이 되어, 살은 주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샤일록은 패소하여 재산을 몰수당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받습니다. 그 후 안토니오의 배는 돌아오고 샤일록의 딸 젠카도 애인 로렌조와 결혼합니다.

긴장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으며 눈길을 끄는 읽기입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 및 인종 차별적 발언에 대해 가장 논란이 많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하나이기도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마음이 할 수 있는 모든 경험과 감정을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진실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당시 런던 시민이 가지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반유대 감정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작품에서 샤일록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적 인물로서 묘사되고 있는 점이 이목을 끕니다.

샤일록의 몰인정, 잔인성, 돈에 대한 탐욕을 풍자한 동시에, 독선적이고 편협한 기독교 사회에 대한 야유를 담고 있습니다.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기독교인이며, 그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되고, 지나치게 자신을 박해하기 때문에 안토니오를 미워합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이런 샤일록의 심리 상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런 면에서 이 극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행하는 인신공격, 편협한 언행을 고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의 화신이고 안토니오는 의리있는 불운한 상인일 뿐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형적이고 뻔한 인물들이 보기에 따라 선악이 갈리며 해석에 따라 운과 불운이 뒤집히기도 합니다. 마치 기승전결로 완결되지 않는 위대한 자연과 같았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는 돈을 갚지 못한 조건으로 안토니오에게 살덩이 1파운드를 요구한 샤일록이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유대인들에 대한 심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샤일록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악인으로서보다는 박해받고 고통 받는 비극적 주인공으로 더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릴 적 읽은 내용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언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메시지는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욕망과 적개심에 가득한 한 인간과 그를 용서하는 자비, 그리고 그 속에서 아우성 치는 고뇌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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