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 뇌과학과 성선택으로 풀어본 성적 미학의 탄생
마이클 라이언 지음, 박단비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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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의 추동력은 환경 압박과 성 경쟁이다. 산업 시대 영국에서 대기가 스모그로 뒤덮이자 그을린 나무의 색과 비슷한 회색 나방이 우세종이 된 것은 환경 압박에 대한 진화다. 반면 유지비만 많이 들고 비행 및 생존 등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수컷 공작의 화려한 날개는 성 경쟁의 산물이다. 성선택은 이처럼 개체의 생존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기에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에겐 상당한 고민이었다. 물론 그는 이를 과학적으로 인정하고 분석한 성선택에 관한 책을 펴냈다. 책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는 이 성선택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재밌게도 오히려 환경압박보다 성선택이 더 큰 진화요인이라 주장한다. 

 성선택이 이뤄지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생물종이 당연히 유성생식을 해야한다. 그리고  번식 때 성비율의 균형이 무너저야 한다. 그래야 성경쟁을 하고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암수 성비가 비슷하지만  번식 때는 성비율의 균형은 대개 무너진다. 이는 수컷은 거의 항상 생식이 가능하지만 암컷은 수정이 이뤄지면 상당기간 생식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식을 원하는 수컷은 항상 많지만 그것에 응해줄 암컷의 수가 적기에 성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설사 암컷의 수가 수컷과 1:1대응이 되거나 암컷이 많은 경우라도 상당수 종의 강력한 수컷들은 많은 수의 암컷을 독차지해 다른 수컷의 짝짓기를 방해한다. 때문에 그런 종의 수컷들은 늘 암컷 부족과 경쟁에 시달린다. 다른 전제는 이 성 경쟁에서 미적인 요소를 인식할 감각 기관과 그를 바탕으로 이를 미로 인식한 암컷의 두뇌발달, 그리고 암컷이 미적인 것으로 수컷의 행동이나 신체요소, 혹은 그의 확장형의 발현이다.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성선택이 더 강한 진화의 추동력이라 주장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유전자의 전달을 위해 생성된 생존기계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존의 목적인 번식이고, 결국 길게 생존을 하는 이유는 번식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차례의 번식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저자는 파나마 운하의 퉁가라개구리를 연구했다. 봄만 되면 개구리는 밤에 시끄럽게 울어대는데 이는 번식을 위한 구애의 수단이다. 수컷은 암컷에게 자신의 정체와 위치, 짝짓기 준비 정도를 알려주기 위해 노래한다. 성적 아름다움은 개체의 형질과 그를 인식하는 감각기관과 두뇌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퉁가라 개구리는 소리를 내고 그것은 두 종류이다. 단순음성은 '퉁'소리와 복합음성인 '퉁+그륵'소리다. 그리고 복합음성이 더욱 내기 어렵고 비용이 요구되기에 암컷 퉁가라는 이를 더 선호한다. 울음의 지속시간과 여기에 들이는 에너지는 10%더 늘리면 수컷의 매력도는 무려 50%나 상승한다. 암컷은 소리의 크기로 수컷의 크기도 판별하는데 이는 크기가 클수록 대개 발음기관도 커져 소리가 크고 낮아지기 때문이다. 퉁가라 개구리가 크면 몇 가지 이점이 있는데 일단 크기는 수컷의 건강과 좋은 발달을 하는 유전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퉁가라개구리는 수컷이 암컷의 등에 올라타 교미를 하는데 이 때 수컷이 커야만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암컷은 단 한 번의 실패로 무려 6개월 후를 기약해야 하기에 이는 상당한 비용부담일 수 있다. 

 그리고 수컷의 울음은 두 가지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우선 대사량의 증가다. 울음을 내면 수컷은 에너지 소비가 무려 250%폭증한다. 그리고 이 비용은 복합울음을수록 더욱 증가하기에 수컷은 복합울음이 효과적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가급적 기피하고 단순울음을 내려고 한다. 또 다른 비용은 천적에게로의 위치 노출이다. 박쥐는 대개 개구리의 가음영역을 듣지 못하지만 파나마의 일부 박쥐는 놀랍게도 구애 울음을 탐지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울음은 커질수록 암컷과 더불어 천적에게도 자신의 위치는 노출된다. 수컷의 저음은 박쥐에게 덜 감청되는데 그래서 저음은 더 선호될지도 모른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에게 있어 이종교배는 반드시 피해야할 최악의 선택이다. 다른 종과의 교미는 에너지는 그대로 소비하지만 후세가 태어나지 않거나 태어나도 불임이거나 기형등 약체로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때문에 대부분의 종에서 구애자들은 선택자에게 자신의 종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리는 특징을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가 듣기에 다 비슷해 보이는 개구리들의 소리는 각각의 종에게 다 다르게 들린다. 그래서 암컷의 두뇌는 청각, 의사결정, 행동출력 체계까지 전체 신경 회로가 암컷으로 하여금 동물의 음성을 가장 매력적이고 성적으로 아름답게 느끼게 편향을 일으킨다. 어쩌면 최초의 성적 구애는 종구분을 위함에서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물의 성적 미학은 다음의 두 규칙이 절대적이다. 우선 동종의 짝을 구분하여 찾기, 그리고 그 동종의 개체 중 더 우월한 짝을 찾기가 된다. 동물의 성적 미학 차이는 감각기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당연히 상대방이 감지하지 못하는 모든 행위와 신체적 특징은 무의미 하기 때문이다. 암컷 개구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목청 껏 낼수도 없겠지만 내어서 무엇하겠는가.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동물의 감각기관의 기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모든 동물의 감각기관은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정보를 얻고 해석하게끔 진화한다. 우린 가끔 모든 정보를 수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비용적으로도 너무 큰 문제를 일으키고 두뇌가 처리하지도 못한다. 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올수록 뇌의 처리 효율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각기관은 일부 필요한 정보만을 수용하게끔 설계된다. 또한 감각 경로는 이걸로도 부족해 온갖 신호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뇌에 도달하기 전에 필터링한다. 

 동물은 상대방의 미를 감지하기 위해서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학자들에게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 미를 발현하고 감지하는 유전자는 당연히 하나가 아니며 여러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모든 동물 및 인간의 성적 두뇌가 처리해야 하는 갖아 중요한 과업은 서로 다른 감각에서 오는 자극을 하나로 모아 통합한 다음 이것을 통해 새로운 배우자 감이 나의 성적 미학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된다. 

 구애를 하는 입장에서 상대방의 뇌를 자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어려운 점은 한 종의 구애행동은 대개 무척이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퉁가라 개구리만 해도 비슷한 주파수의 단순울음이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행동을 무의미하게 처리해버리는 뇌의 습성상 자극적일 수 없다. 때문에 수컷들은 이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해 성적 미학을 복잡하게 진화시킨다. 퉁가라 개구리의 복합음성이 그러한 대표적 예다. 하지만 이는 많은 비용과 위험을 초래하기에 수컷은 무조건적으로 복합음성을 내기보다는 상대적인 전략을 취한다. 경쟁 수컷이 많으면 복합울음의 빈도를 높이고 적으면 하지 않는 식이다. 이런 절대적 차이보다 상대적 비율로 우위를 점하려는 행동을 베버의 법칙이라 하며 이는 과도한 성적 미 진화의 브레이크로 작용한다. 

 성적 미학은 감각기관을 자극한다. 그리고 동물의 감각탐지는 크게 시각, 청각, 후각이 있다. 공작의 화려한 날개나 큰 덩치, 뿔등은 시각적 요소다. 구리고 새의 울음소리, 인간의 노래, 통가라 개구리의 울음을 청각을 자극한다. 다만 시각과 청각은 쾌감센터로 보내지기전 두뇌 하부의 중계국을 거쳐 더 많은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후각은 다르다. 후각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쾌감센터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시각과 청각 정보가 보내주는 미에 대해서는 계산하고 고민하나 후각정보에 대해서는 본능적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즉, 효과가 가장 직접적이고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서로의 우월한 유전자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 유전자가 발현된 간접적인 모습을 보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잘 탐지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후각에 의해서다. 인간의 몸에는 주조직적합성 복합체(MHC)라는 것이 있다. 이는 우리 면역 반응에서 기능을 하는 유전자 집합이다. 이들은 병원체나 기생충과 같은 이질적 형태의 세포를 식별하고 그것들이 확인되면 신체에 경고를 보내 t세포로 하여금 침입에 맞서게 하는 것이다. 

 MHC 유전자가 엄청나게 다양한 적군과 아군을 정확히 구분하려면 변이를 아주 잘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척추동물에게서는 MHC가 가장 변이를 많이 하며 상대방이 자신과 상이한 MHC를 가질 수록 자녀의 변이가 심해져 면역력이 강해지게 된다. 그리고 MHC보유 동물들은 바로 상대방의 체취로 이 MHC를 감지한다. 

 한 티셔츠 실험에서 남성들은 거의 3-4일간 씻지 않은 상태로 티셔츠를 입었다. 그들의 채취가 충분히 밴 티셔츠의 냄새를 여성들에게 맡게하였는데 여성들은 이 실험에서 자신과 상이한 MHC유형의 남성 채취를 더 매력적으로 느꼈다. 때문에 MHC차이로 인한 성적 매력도의 차이는 다른 성적 미학과는 다르게 매우 상대적인 요소가 된다. 나에겐 좋은 것이 남에게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동물의 성적 미학에는 시간과 기회도 하나의 중대한 변수로 작용한다. 동물에게 상대방을 탐지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의 성적 미학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기준도 까다롭다. 하지만 시간과 기회가 없다면 그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기준도 한없이 낮아지게 된다. 이는 매우 당연한 것으로 번식의 기회를 아예 상실하는 것 보다는 미덥지 못하더라도 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퉁가라 개구리 암컷은 한번 번식 기회를 놓치면 무려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기에 고르고 고르다 결국 어려우면 주변의 아무 수컷이나 잡게 되는게 결국 이득이 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한 실험에서 술집에서 이성에게 매기는 점수 실험을 실시하였는데 초반에는 정상적이던 점수가 술집 마감시간이 높을 수록 치솟았다. 기회도 중요해서 남성은 가임기인 여성의 사진을 더 매력적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여성 자신도 가임기에 더 톤이 높고 매력적이며 여성스럽게 목소리가 변화한다. 또한 여성은 가임기일수록 다른 여성의 매력을 더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금전적 보상도 공유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여성은 남성과 다르게 폐경하면 생식능력이 사라진다.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마감시간 효과가 이르게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여성은 중년이 되어 갈수록 섹스에 대해 더 많은 환상을 갖게 되고 실제로 더 많은 남성과 섹스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성적 미학에는 배우자 선택 복제효과도 있다. 모든 암컷과 수컷에게는 배우자는 잘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유전자의 전달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엔 자신만의 검증과 성적 미학 기준도 중요하게 자리하지만 다른 개체의 선택도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할 수 있다. 때문에 한 수컷이 다른 암컷에게 선택된다면 또는 심지어 많은 암컷에게 선택된다면 이는 일반 암컷의 눈에 매우 매력적인 요소로 자리하게 된다. 그래서 암컷들은 또래의 선택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는 매우 특이하게도 다른 종과 섹스하는 모습을 보아도 작용한다. 세일핀 수컷은 아마존 암컷과도 어울린다. 물론 둘은 비슷한 부류지만 엄연히 다른 종으로 세일핀 수컷은 아마존 암컷과 교미해도 자식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일핀 수컷은 당연히 세일핀 암컷과 어울리는 빈도가 훨씬 높긴 해도 적지 않은 빈도로 의도적으로 아마존 암컷을 노리기도 하는데 이는 명백히 배우자 복제 효과를 노리는 행동이다. 실제로 세일핀 암컷들은 아마존 암컷과 어울리는 세일핀 수컷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름다운 형질과 그를 선호하는 미학이 짝을 이루는 방식을 정리하면 세 가지다.

 기존의 형질이 선택자에게 이익을 주어 선택자들이 그에 대한 선호를 진화시키는 경우다. 가령 수컷 사슴의 작은 뿔이 육식동물에 대한 대항력을 높여 종의 생존을 높이는데 기여한다면 이를 암컷이 성적 미학으로 인지해 더욱 폭발적으로 진화하는 형태다. 두 번째는 형질과 선호가 동시에 진화하는 것이다. 어떤 종에서 갑작스레 새로운 형질이 나타났는데 이럴 선호하는 암컷의 선호도 같이 나타나 이 형질이 진화하는 경우다. 세 번째는 어떤 형질이 진화할 때 그것이 숨겨진 선호를 이용하여 즉각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경우다. 한 물고기 종은 꼬리 지느러미 부분에 긴 형태의 검 모양을 선호하여 수컷의 꼬리 지느러미에 긴 검 모양의 줄무늬가 진화했다. 반면 근연종은 그런 모습이 수컷에게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실험자가 한 수컷에게 그런 모양의 줄무늬를 부착하자 암컷들에게 큰 선호를 받게 되는 경우다. 이는 숨겨진 선호로 우연히 한 수컷이 그런 형질을 나타내게 되면 급격히 선호를 받아 진화하게 된다.

 책은 성적 선택과 이를 위한 성미학에 대한 재미난 지식과 원리가 가득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예가 많기를 기대했는데 애초에 실험에 적합하지 않고 상당히 많은 요소가 성적 미학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간인지로 기초적인 내용외에도 대개 동물의 내용인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척이나 재미있게 볼만한 책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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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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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재밌었다. 주제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러하며 만들어낸 세계도 완성도가 이전보다 더욱 높아졌다. 전작 '지구 끝의 온실'도 환경과 관련한 주제였지만 이 책도 사실상 그렇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환경파괴를 만들어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듯 하기도 하다.

 현대 인간 사회는 개별자로서의 인간 존재와 협력자로서의 인간 존재 중 사실상 전자가 승리한 상태다. 서구 문명은 인간을 독립적 이성을 갖춘 존재로 인식하여 자연환경과 분리시켰고, 그들의 과학 역시 그러한 전제조건과 분리되고 독립적이라 생각하는 실험 속에서 발달했다. 반면 다른 지역은 좀 더 주변 환경과 스스로의 문명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형태로 존재하곤 했다. 

 하지만 서구 문명의 이룩한 과학 기술이 더 강력했기에 이들은 다른 문명을 침탈했고, 각성한 다른 문명은 서구를 지난 200년간 추종했다. 그래서 지금 거의 모든 인간은 개별자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환경을 이용한다. 그 결과 인간의 개체수는 상당히 늘어났지만 다른 생물들은 설자리를 잃었고 엄청난 환경파괴와 가해자인 인간 자신도 위협을 느낄정도로 온난화로 인해 지구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반면 가해자인 인간은 자신의 이런 가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온난화가 자신을 침탈하자 그제서야 미온치 않게 반응하는 형국이다. 이러서는 안된지 않을까, 인간 자체의 인식과 정체성이 협력자로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작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책의 세계는 암울하다. 언제인지 모를 근미래 우주로부터 일종의 균류로 추정되는 것들이 지구로 침투한다. 이들은 우주를 떠돌면서 그 행성에 자신들을 뿌리내는 종 같은데 균류들이 그렇듯 제한없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보다도 무섭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침투한다. 침투된 생명체들은 변이를 일으켰다. 특히 인간은 자아를 잃고 광폭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우주 균류들, 아니 범람체라 부르는 이것들이 내뿜는 포자롤 광증 아포라 부르면 두려워한다.

 결국 인간은 이상하게도 범람체들이 침투하지 않는 지하(오히려 좋아할 법한 장소인데)에 몇몇 기지를 건설해 간신히 문명을 유지해나간다. 하지만 지하도 아니아. 환기구나, 통로 등 갖가지 경로로 범람체는 침투해왔고, 그 결과 지하기지는 몇몇 구역을 상실하곤 했다. 그리고 기계는 범람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광증아포에 침투되 광증을 보이는 이들을 실시간으로 체포하는 구금 기계가 돌아다니고 있다. 

 주인공은 태린이라는 여자아이다. 광증에 지나칠 정도로 강한 저항성을 보이는 태린의 꿈은 파견자이다. 파견자는 책 제목이기도 한데 이들이 하는 일은 그 위험한 지상으로 나아가 범람체를 채집하고, 인간의 영역을 늘리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일이 위험한 만큼 이들에게 높은 지위와 보수가 따랐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태린이 파견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이제프 파로딘의 존재때문이다. 그녀는 제1의 파견자로 태린이 어릴 적 보살펴주고 지상에 대한 꿈을 심어준 소위 멘토 이기 때문이다.

 태린은 파견자 시험에 임한다. 하지만 이즈음 태린에게 이상증세게 나타나는데 난데 없이 무슨 소리가 뇌리에 울리는 것이었다. 태린은 시험 중 이 존재로 인해 패닉에 빠져 이론 시험을 망치고 만다. 하지만 태린은 뇌리의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고 대화를 시작하며 그와 소통한다. 그리고 그를 이용해 가장 어려운 실전 시험을 1등으로 통과한다. 하지만 태린은 자신이 솔이라 명명한 이 존재에 의해 실전시험에서 포집한 위험한 범람체를 지하도시 한복판에서 풀어버리는 범죄를 범하고 만다. 

 그로 인해 태린은 추방의 위기에 놓이나 이제프가 나서 태린은 파견자로 임명하고 가장 위험한 실전임무에 투입하는 조건으로 그를 구한다. 그렇게 태린은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향하고 범람체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그를 다루는 과정으로 치닿는다. 

 작가가 내놓는 결말은 좀 재밌기도 하고 고민스럽다. 어쩌면 그런 선택이 개별자로 변해버린 인간을 치유할 유일한 방법같기도 하다. 무척 재밌는 소설로 두껍지만 높은 가독성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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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역사는 독특한 점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왕조의 수명이 유독 길다는 것이다. 신빙성이 부족하지만 고조선은 거의 2천년, 고구려, 백제 700년 정도, 신라는 900년, 발해 200년, 고려 500년, 조선 500년이다. 중국은 거의 대부분의 왕조가 200-300년 정도의 수명을 보인다. 한국은 이에 비하면 무척이나 긴 편이다. 고작 200년이었던 발해의 수명이 상당히 의례적으로 느껴진다.

 가장 최근의 왕조는 역시 조선과 고려다. 둘 다 강역이 한반도 정도로 만주 지역을 상실한 왕조였고 역사도 500년 정도로 비슷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거의 조선에만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사극이나 영화, 책 등의 저작물은 고려가 아니라 조선이 주제다. 이유는 아무래도 두 가지 일 듯 하다. 아무래도 시기적으로 훨씬 가까워 관심과 공감이 가고(조선은 가깝게는 100년에서 멀면 500년 전이지만 고려는 여기에 500년을 더 멀리 해야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는 막강한 기록물 덕분에 창작물로 다루기 무척 편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한 책을 조금 보았지만 고려 관련 저작물이 적어서 인지 나도 고려에 관해 본 책은 위 6권 정도가 전부다. 물론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공영방송에서 고려-거란 전쟁이 인기 속에 방영 중이기에 박시백의 고려사를 오늘 들춰보았다. 박시백은 조선왕조실록도 거의 10년 동안 그렸는데 기록이 풍부해서 1권 당 거의 왕 1명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이번 고려사는 역시 기록이 부족해서 딱 5권으로 끝나는 듯 하다. 4권까지의 내용이 원갑섭기이니 아마도 5권이 마지막일 것이다.

 고려는 조선과 제법 다르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고, 유지기간 내내 중원이 안정되었기에 철저히 사대할 수 밖에 없었다. 신분제는 고려보다 발전했고 능력주의 국가였지만 지나친 유학에 대한 신봉이 자주성과 스스로의 발전, 국제관계에서의 뒤쳐짐을 낳았다. 특히, 근대 들어 해양세력의 대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중국에만 의지한 나머지 임진왜란을 겪고 급기야는 일본에 의해 망국하고 말았다. 

 고려는 불교국가다. 물론 이는 신앙과 기복의 측면이고 통치이념은 조선 만큼은 아니지만 유학에 의지했다. 유지 기간 내내 중국이 안정되지 못했기에 자주성은 조선보다 강했지만 강한 북방왕조에 의해 끊임없이 침략당했다. 그래서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국시에 걸맞지 못하게 만주로의 진출을 커녕 내내 방어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골품제와 매달렸던 신라에 달리 과거제를 도입하여 신분제가 진일보 하였다.

 박시백의 고려왕조 실록은 역시 태조부터 시작한다. 태조 왕건은 뛰어난 능력으로 통일을 이뤄낸다. 견훤은 강대한 적이었는데 태조는 구 신라 세력과 호족 세력에 유화책을 견훤은 강경책을 펼쳤다. 이것이 차이가 되어 태조에겐 여러 세력이 귀순해왔고, 견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견훤은 후계구도에 실패하고 큰 아들 신검의 쿠데타로 실각하며 통일이 이뤄진다 견훤이 후계를 제대로 세우거나 집안 단속 잘하기, 혹은 신라 세력에 유화책을 썼다면 통일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조의 이런 유화책은 통일엔 성공적이었지만 고려 초기에 적잖은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태조는 호족의 기득권을 모두 보장하고, 왕씨성을 남발했으며, 많은 호족 딸을 부인으로 삼는다. 그렇다보니 2대 임금 혜종, 3대 정종이 정치적 격랑에 휘말려 빠르게 승하한다. 아마도 암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4대 광종이 강한 힘으로 노비안검법등을 시행하고 호족 세력을 숙청하기 시작하자 안정을 찾는다. 고려 초기엔 중국의 정세가 흔들려 많은 중국, 발해, 여진, 거란 귀화인이 고려로 들어온다. 고려는 이들은 잘 받아들여 국력을 강화한다. 

 고려는 성종대에 이르러 상당히 안정된다. 하지만 거란이 침공한다. 이들은 북방을 평정하고, 송을 치려했는데 그려려면 후방의 고려를 평정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고려 조정은 거란에 적대적이었고 쉽게 호응하지 않았다. 이에 3차례에 걸친 침입이 이뤄지나 고려의 군사력은 막강했다. 거란은 진군할 때 마다 고려의 여러 성을 점령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진군해도 후방이 불안했고, 늘 늘 이로 인해 급습을 받거나 격퇴되었다. 3차침입에선 강감찬에 의해 귀주에서 10여만이 섬멸된다. 이 사건 이후 거란과 고려의 관계는 안정된다.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써주며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었고 거란 역시 고려의 매운 맛을 본 후 더이상 침공하지 않는다

 이후 준동한 것은 여진이었다. 윤관과 척준경을 필두로 이들을 어렵사리 제압하고 동북 9성을 쌓지만 워낙 성간 거리가 멀고 변방이라 관리가 어려웠다. 여기에 거란 전쟁으로 국력이 크게 소모된 상태였다. 결국 여진의 요청에 고려조정은 9성을 내준다. 20만 대군이 수년에 걸쳐 어렵게 얻어낸 땅이었다. 여진은 이후 거란을 멸하고 금을 세운다. 하지만 금은 요처럼 고려에 고압적이었으나 침공하지 않았다. 고려의 강성함, 그리고 여진황제의 조상이 고려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따른다. 하여튼 고려는 거의 100여년간 모처럼의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평화는 내부에서 깨어진다. 어리석은 임금 의종이 즉위하는데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방탕했다. 고려판 연산군이랄까. 그는 재위 20년이 넘어 무신 정변에 의해 실각한다. 이후 고려는 난장판이 되는데 정중부, 경대승, 이의방, 이의민 등 집권자가 계속해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이 난장판은 최충헌이 최씨무신정권 시대를 열며 안정된다. 최충헌은 정치적 감각이 있어 정국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입맛대로 정부제체를 조직하고 세대를 넘어서는 장기집권 시대를 열게 된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 그리고 최항, 최의까지의 시대다. 그리고 이 최씨 집권 시기에 원이 일어선다. 초기 고려는 원, 거란과 협력하여 금의 잔당을 토벌하는 등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원은 고려에 슬슬 무리한 요구를 시작한다. 이에 원 사신 저고여가 살해당하고 이를 빌미로 고려를 침공한다. 고려는 최씨무신정권으로 인해 상당히 국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여기에 원은 사상 최강의 군대로 고려는 전역이 초토화된다. 고려 조정은 사신을 달래어 몇 차례 원의 군대를 물리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최우에 의해 강화도로 천도한다. 최우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원에 반드시 저항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최우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육지를 버리면서 백성들은 생지옥에 빠지게 된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식량이 부족했고 고려의 전술은 청야전술로 삶의 터전도 버려야 했다. 각지에서 살육 약탈이 일어났고, 원으로 끌려간 고려 백성만 수십만이었다. 이 기간은 거의 40년에 달하는데 어쩌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피해는 이 때에 비하면 오히려 약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최씨 정권이 최의 때에 끝나면서 강화가 이뤄진다. 고려 원종은 이후 황제가 되는 쿠빌라이이 잘 항복하면서 그의 관심을 산다. 그래서 고려는 작은 나라임에도 오래 버텼고 무엇보다도 항복을 잘 했기에 국력에 비해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쿠빌라이는 원종의 요구를 많이 들어주었지만 남송과 일본의 점령에 집착한다. 남송은 정복하지만 일본 원정은 태풍에 의해 계속 실패한다. 고려는 배를 만들고 병사를 보내는등 시달리자만 쿠빌라이가 죽고나서는 이 문제가 끝난다.

 고려는 제법 대접을 받았지만 원의 제후국으로 상당한 간섭을 받았다. 이전에 양계 지역이었던 곳들이 쌍성총관부와 동녕부로 원의 영토로 전락하고 삼별초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탐라도 빼앗긴다. 고려의 왕들은 원의 공주와 혼인하였고 어려서 원에서 자라나게 된다. 고려는 이전까지 중국의 왕조들에게 제후국을 칭하면서도 사실상 황제에 해당하는 정부조직과 칭호를 사용해왔는데 이게 모두 불가능해진다. 또한 왕은 원에 친히 입조하였고 원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왕이 교체되는 일도 많았다. 이러다보니 고려가 아닌 원에 충성하고 배신하는 자들이 많았다.

 원은 고려에 처녀를 요구하기도 하였으며 환관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려는 이 때만 해도 조정에서 거세된 환관이 없었는데 원의 요구에 의해 환관과 처녀는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들 처녀와 환관이 원에서 처신이 좋았고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고려 여인들과 환관들이 원제국 내에서 상당한 권력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이에 고려에서는 딸과 자식을 환관으로 만들어 원으로 자발적으로 보내는 일도 성행하게 된다. 

 책의 4권까지의 내용은 원간섭기 까지다. 이후 원이 무너지며 공민왕이 들어서고 고려의 마지막 개혁이 실패하며 조선으로 넘어가는 내용이 5권의 내용이 될 듯하다.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의 1권과 상당히 겹치게 될 듯한데 고려의 입장에서 망국을 자세히 서술하면서 차별성을 두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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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보호자의 돌봄 아래서 시작한다. 이 때 보호자인 부모는 내가 무한한 돌봄과 보호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자식에게 무척이나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런 부모의 그늘은 정신적으로도 깊게 남아서 거의 평생을 간다. 그래서 사람은 다 늙은이가 되어서도 죽는 순간 부모를 찾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의 부모가 언젠가는 돌아가시리라는 걸 염두에 둔다. 하지만 이는 다소 막연한 생각에 불과해서, 막상 상황이 닥치면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실제로 오래도록 부모의 절대적 돌봄을 받다가 갑작스레 거꾸로 돌봄을 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자식들은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부모에 대한 돌봄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돌봄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는 자식이 정상적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자식이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장애인이 되어 더욱 많은 돌봄을 요구하는 상태가 되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책' 다시 만날 때까지'와 '내 인생의 무지갯 빛 스승', '자폐 아빠와 아들의 작은 승리'는 장애인 자식을 만나 자식의 인생을 산산히 갉아넣어가며 버티고 또 버티는 부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자신의 생애를 거의 포기하면서도 자식을 놓치 못하고, 그리고 그러면서 자식과 더불어 자신의 매우 어려운 새 인생을 그려나간다. 

 돌봄 문제는 고령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한 한국사회에서 가까운 시일내에 가장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할 것이 분명하다.(여기에 한국은 그 적은 출산률 속에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선천적 장애아들이 태어나고 있다.) 책 '일하는 딸들'에서는 이런 부모 돌봄 문제에 관한 책이다. 책에는 세계 최고 선진국이지만 복지에서만큼은 소홀한 미국답게 저자 자신이 돌봄을 직접 해결하고 고민해야할 여러 문제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소회가 담겨 있다. 

 미국도 고령화가 심각하긴 매한가지다. 인구 3억 4천만 미국 인구중 매일 1만의 미국이 65세가 된다. 2050년이면 이 고령층이 지금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현재 170만명인 돌봄 제공자는 2030년엔는 무려 570만에서 66만에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정에서 수행하는 재가 돌봄 서비스는 대부분 건강보험이나 저소득층 의료 보호예산으로 제공되는데 두 곳 모두 벌써 재정압박상태라 향후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고령하가 덜한 미국이 이럴진데 노인인구만 급격히 늘어날 한국은 어떨지 상상이 어렵다. 

 결국 이런 국가재정과 사회안전망의 빈큼은 가족의 무보수 노동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에서 무보수로 노인이나 18세 이상 장애인을 돌보는 미국인은 무려 4400만 이상이다. 이들은 대개 여성이고 40대 후반이다. 최근 남성 가족 돌봄 제공자도 늘고 있지만 아직 여성에 비하면 적다. 돌봄 제공자의 역할은 평균 4.6년이다. 그리고 이들이 돌봄에 투여하는 시간 주당 평균 24.4시간이다. 이 무보수 돌봄 노동자는 갑작스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돌봄에는 의료, 법률, 금융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돌봐야 하니 당연히 의료상식이 요구되고, 부모가 온정신이 아니거나 거동이 되지 않으면 당연히 법률적 대리와 금융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도움을 주는 곳은 공식적으로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돌봄 제공자들은 22%가 이로 인해 건강의 악화를 느끼게 된다. 

 이런 과도한 돌봄 업무로 돌봄 제공자의 70%는 자신의 직장 업무를 조정하게 된다. 그들은 부담이 적은 업무를 택하고 무급휴직을 하며, 조기 퇴직하기도 한다. 그런데 돌봄 노동자의 상당수가 40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40대는 인생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가장 돈을 많이 필요로 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런 일의 감축으로 인해 이들은 많은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소득이 줄고 각종 직장 보험혜택도 줄기 때문이다. 

 돌봄은 끝을 알 수 있는 것와 아닌 것이 있다. 끝을 알 수 있는 돌봄은 노령화한 부모가 암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수년 내에 죽음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이며, 끝을 알 수 없는 돌봄은 자신보다도 어린 장애자식 돌봄이나 부모인 경우, 노화, 뇌졸중, 치매 등으로 인한 경우로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어 돌봄이 필요하지만 당장 돌아가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다. 양자의 차이는 매우 크다. 전자는 그래도 힘들지만 끝이 보이기에 버텨내게 되지만 후자는 정말로 언제까지 내가 이일을 해야하는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기 가족을 돌보는 평균기간은 4년이지만 무려 15%가 10년 이상 이일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어려운 돌봄을 해결하려면 사회적 노력과 개인적 노력 양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은 무급휴직을 허용하지 않는 몇 안되는 나라다. 사회적으로 이 가치를 인정하려 노력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족 돌봄 노동자는 무급으로 연간 무려 370억 시간을 사용한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해도 무려 4700억달러의 비용이다. 그리고 미국의 기업은 기업에서 일하는 개인의 연간 돌봄 제공으로 생산성 손실이 무려 171억에서 336억 달러에 이른다. 때문에 현명한 기업 관리자라면 돌봄 제공 직원을 지원하여 이들이 생산성 손실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책에는 사회적 지원이 워낙 미비해서 그런지 개인적 방책을 강조한다. 개인이 돌봄에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 사회가 돌봄을 강하게 요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이타적 이미지 심지어 축복이라 칭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기대에 개인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 하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그 개인은 자신의 삶은 살아가는 사람이고 부모이자, 직장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고, 여기에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저자는 돌봄 노동자는 자신의 삶과 돌봄 사이에 정확한 경계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음의 4가지 질문을 강조한다.

 1.우선 부모님에 대해 내가 아는 어떤 정보가 의사 결정에 유용한가. 

 2.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바탕으로 볼 때 갖아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3.부모님께 최선이라 판단되는 것은 무엇인가?

 4.돌봄제공자로서 내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부모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신호를 늦게 볼 수록 사태는 악화하고 돌봄의 강도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미개봉상태로 쌓은 우편물들, 잦은 부모의 넘어짐, 식사 생활의 변화(갑작스레 요리를 하지 않고, 유통기한 지난 음식이 냉장고에 있거나 냉장고거 텅비어 있음), 기억력의 감퇴, 정돈이 안된 상태, 운전 능력의 저하다. 이는 부모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 능력, 인지적 능력이 감퇴되었음을 보이는 징후다. 

 저자는 더불어 돌봄 노동자이자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장전을 제시한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권리가 있다.

 당신은 경계를 설정한 권리가 있다.

 당신은 생활비를 벌 권리가 있다.

 당신은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당신은 건강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로 지닐 권리가 있다.


 한국은 저출산에 급격히 고령화하고 있다. 수십년 내로 65세 이상 인구는 넘쳐나고 이를 돌볼 가족 돌봄 노동자마저도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 노인 빈곤률이 세계 최고이고 국민 연금등의 사회 안전망도 형편없다. 이런 상황에 평균 수명은 세계 5위 안에 든다. 적은 가족 돌봄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뒤로하고 부모의 부양에 뛰어들게 될 가능성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높은 것이다.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이를 개인에게 맡기지만 말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놔야 할 것이다. 부모 돌봄에 매달리게 될 젊은이가 출산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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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온다 - 일본의 부상, 한국 경제의 위기
김현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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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외 팽창은 3번 있었다. 첫 번째는 1592년 임진왜란, 두 번째는 대륙침략과 태평양 전쟁, 세 번째는 2012년의 팽창으로 인도 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시도다. 이 세 번째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국의 중국 견제와 합류하여 세계적 흐름을 타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시들한 일본엠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온다'라는 책 제목이 걸린 것은 바로 이 흐름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 한국이 보기에 소위 넘사벽 강국이었다. 일본은 1968년 서독을 추월해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 타이틀을 2010년 중국에 넘겨주기 전까지 무려 40여년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오일쇼크 이후 미국 경제가 주춤한 사이 에너지 절약형 제품과 가볍고 작고 얇고 짧은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1980년이 되자 심지어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미국을 추월했다. 1989년 세계 20대 기업에서 일본 기업은 무려 14개일 정도였으며 이 증대된 부로 미국의 핵심자산을 대거 구입하기도 했다. 

 이랬던 일본은 이후 30년간 장기침체에 빠져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다. 4번의 충격이 있었다. 우선 1985년 플라자 합의다. 달러당 240엔이던 환율은 120엔으로 초강세전환하게 된 합의다. 대미수출이 큰 타격을 입자 일본 정부는 기준금리를 내리고 내수를 진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이런 고환율에도 호조를 보이자 국내에 엄청난 통화가 돌게 되었다. 이에 부동산과 주가가 폭등했는데 버블이 일어나 붕괴하게 된다. 이때 자산들은 1/3에서 1/4까지 떨어졌는데 투자한 개인과 기업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다음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다. 버블 붕괴 후 근근히 버티던 일본 경제는 이로 인해 완전불황에 빠지게 된다. 한계 기업이 도산하고,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도 부실화했다. 경제와 금융이 엮인 복합 불황으로 실업률이 5%에 달했다. 이를 제 1취업 빙하기라 한다. 15-64세의 생산인구도 처음으로 줄기시작했고 본격적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지게 된다. 수요가 약해지니 기업은 가격을 내렸고, 가격이 내려가니 소비자는 더 내려갈 기대감으로 구매를 미룬다. 고이즈미 총리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로 고용을 유연화하여 위기를 탈출하려 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일본사회에 처음으로 양극화란 멍애를 낳게 된다.

 세 번째는 2008금융위기다. 일본은 크게 충격을 받아 2009년 -5.4%성장하고 실업률도 무려 5.5%달한다. 제2취업 빙하기였다. 엔화강세도 겹쳐 수출도 부진했다. 이 충격으로 2009년 처음으로 정권이 야권으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환경, 의료, 복지를 중시했다. 내수는 회복되었지만 수출기업이 부진해 비판받았고, 결정적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붕괴한다. 2012년 다시 집권한 아베는 3개의 화살 정책을 제시하며 등장했다. 이는 과감한 금융완화, 적는 재정, 감세와 규제 완화다. 이를 통해 주식과 부동산이 상승했고, 기업실적이 좋아지고 실업률이 내려갔다. 

 네 번째는 코로나 팬데믹이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일본 재흥의 상징으로 여겨 여기에 너무 집착한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대비가 너무 소홀했고 이전 아시아를 덮친 감염병의 여파도 적었었기에 대응 메뉴얼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병이 퍼지자 외국인의 방일을 전면 금지하고 가게 영업을 제한했으나 2020년 무려 -7.8%역성장을 하게 된다. 

 일본의 이 네 쇼크는 결국 30년간 겨우 0.8%성장이라는 제자리 걸음으로 귀결되었다. 세계 주요선진국들은 성장한계에 도달하면 대개 연간 2% 정도의 성장을 이론상 하게되고 실제로 그러했는데 일본은 상당히 예외적 저성장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 

 일본이 이렇게 대처를 못한데 대해선 우선 대미굴종의 자세가 꼽힌다. 사실 플라자 합의는 일본 입장에서 상당한 주권침해였지만 일본 지도층은 의외로 이를 쉽게 받아들였다. 2차대전 이후 형성된 일본 지도층의 대미굴종 자세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쟁당시 미축귀영이란 용어로 미국에 대한 증오감을 국민에 심었지만 패전과 동시에 친미주의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 우산하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켰기에 이런 태도가 만성화하였다. 또한 이들은 지역구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기득권이 영원히 유지된다.

 또 다른 원인은 무책임의 구조다. 일본 정치권은 진정한 책임을 지기 보다는 여론이 악화하면 수상자리를 놓고 자신을 지지하는 다른 이를 내세워 막후 정치를 펼친다. 이런 식이다보니 일본의 불황기에 수상교체기는 무척이나 빠른 편이다. 

 한국은 전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내 선진국에 진입했다. 한국은 그 과정에서 1950년의 농지개혁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초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얻어낸 일본의 자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트남 전 참전으로 미국에서 얻어낸 돈의 역할이 상당한 작용을 했다.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였는데 이것이 큰 작용을 했다. 한국 기업은 항상 좁은 내수 시장으로 힌해 해외시장진출과 영업, 해외 시장 인수합병을 염두에 둔다. 그리고 한국은 자국 내에서도 경쟁사를 강하게 인식하고 경쟁하며, 단기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한국은 매출 점유율 확대를 늘 추구하며 가격경쟁력을 위해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력을 한다. 한국은 또한 트랜드를 중시하고 디자인과 마케팅에 공을 들인다. 이런 전략은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래서 한국기업의 황제경영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경영자가 전권을 휘두르기에 빠르고 신속한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내수시장에 관심이 많고 장인정신을 중시하며, 종업원 경영체제다. 그러니 내수시장에 관심이 많고, 서로 간 협조지향적이며 안정적이고 장기적 전략을 선호한다. 그리고 인재육성을 중시하고 기술과 품질 경쟁을 한다. 이는 경제가 안정적이고 기술혁신도 크게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선 강점이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시기를 놓친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에서 일본이 실패한 이유다. 

 일본에게 2010년은 치욕의 한 해다. 세계 2위를 중국에 내준데 이어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과의 충돌로 인한 외교 전쟁에서 희토류 등의 압박으로 인해 중국에 사실상 굴복하게 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 한국에선 이명박이 갑작스레 독도에 방문하게 된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당한 이 충격으로 강한 반중 반한 정서가 생겨난다. 일본정치권은 이를 적극이용했고 이로 이냏 아베가 다시 집권하게 된다. 

 중국을 강하게 의식한 일본은 아베가 쿼드와 인도 태평양전략을 구사하여 중국을 봉쇄하려 했고 미국의 트럼프가 이후 이것에 호응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여기에 바이든 정권도 힘을 싣고 있는데 한국의 보수 정권이 여기에 너무 쉽게 호응한 것이 문제다. 

 미중패권 전쟁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첫째는 디커플링 전략으로 양자가 직접 맞붙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10년간 GDP가 3% 중국은 4%가 감소하게 된다. 다른 전략은 우회적 대결로 미국과 서방자유진영이 연합해 중과 대결하는 구도다. 이 경우 미국은 1%감소하는 한편 중국은 무려 8%역성장을 하게 된다. 한국은 둘다 좋지 못하며 5%정도 역성장을 하게 된다. 유럽연합은 3% 일본은 2%역성장인데 비해 한국은 유독 타격이 크다. 이는 우리가 내수가 작은 통상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쉽게 블록화되지 않고 꾸준히 대결구도에서도 중과 교역하면 오히려 1%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호한 전략적 입지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중과 미일사이에서 모호한 위치를 고수하면서도 다른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인도와 아세안 시장이다. 양자모두 연간 5-6%의 고도 성장 지역이다. 특히, 아세안은 건설업도 활발하고 한류가 활발해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다. 한국인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으로 이런 것을 추구하려 했으나 역시 보수정권이 폐기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너무나도 쉽게 얻은 것도 없이 미국, 특히 일본이 원하는 구도에 한국이 편입된 것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표한다. 사실 역사상 한국은 일본의 진출에 대해 희생자의 입장이었고 한번도 동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3번째 흐름에 얻는 것도 없이 너무나도 쉽게 동조한 것이다. 그 결과는 대규모 무역적자다. 뉴스에 의하면 30년래 최대의 무역적자가 올해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한다. 외교가 경제이고 안보가 되는 지금 시점에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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