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드, 수집의 세계에서 투자의 세계로 - 구매부터 보관, 그레이딩, 경매까지 스포츠카드 투자에 대한 모든 것
센트리우스(구자경) 지음 / 위너스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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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아마 kbs에서 방영해줬던 어메이징 스토리를 본 기억이 있다. 한국이 지금처럼 문화강국이 아닌 시절로 각 방송사들은 외화나 외국 드라마를 자주 방영해줬는데 무척 재밌게 본 기억이 있고 어메이진 스토리는 그 중 하나였다.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평생을 무척 가난하게 살던 노인이 있었다. 미국의 노숙자들은 마트의 카트를 잘 끌고 다니는데 딱 그렇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 노인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카드나 아이템을 모으고 다녔는데 언젠가 만난 누군가가 이거 널 큰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했다. 그 노인은 평생을 그렇게 모았는데도 가난하자 그를 원망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구걸을 다니다 한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던 부자가 노인의 카트에서 한 아이템을 발견하곤 흥분해서 그것을 고가에 사간다. 노인은 그제서야 자신이 갖고 있던 것들의 희소성을 알게되고 이들을 고가에 처분하여 단숨에 부자가 된다. 부유층의 연회에 참석한 노인은 신수가 훤해졌다. 그러다 어릴적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해준 그를 다시 만나고 다시 만난고 싶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는데 그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그의 뒷편에는 한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렇다 노인이 반색한 건 그 여인이었고 여인은 노인에 호감을 갖게 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일화가 생각난 것은 이번에 읽은 책이 스포츠 카드 투자책이기 때문이다. 투자에는 부동산투자, 주식투자가 있지만 여러 가지 물품을 수집하는 것도 투자가 된다. 미술품이나 고가의 와인이나 위스키, 비트코인, 운동화, 유명운동선수나 연예인의 물건 등이 그렇다. 후자는 평소에 월세나 배당 같은 현금흐름은 전혀 없지만 그 희소성으로 매도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스포츠 카드도 그러한 대상이다. 한국에서 스포츠카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선 오랜 문화다. 그리고 미국의 스포츠카드는 야구, 풋볼, 농구, 아이스 하키 등의 종목에서 발행된다.

 저자는 스포츠카드의 높은 수익률과 보관의 편리성으로 인해 이를 추천한다. 미국의 스포츠카드는 1860년대가 그 시작으로 역사가 유구하다. 최초의 스포츠카드는 물품에 든 아이템이 그렇듯 조악했고 판촉을 위함이었다. 특히, 담배회사가 스포츠카드에 주목했는데 흡연자가 대부분 남성이고 그들이 대개 야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는 담배포장이 조악해 담배를 보호하기 위해 카드는 덮었던 이유도 있었다. 

스포츠 카드는 양차대전을 거치며 쇠퇴했다가 1948년 발매된 바우만 카드와 1951년 Tops카드가 발매되며 궤도에 오른다. 1956년 탑스가 바우만을 인수하여 1980년대까지는 탑스카드의 시대였다. 하지만 1980년대 플리어, 돈스 같은 라이벌 스포츠카드 회사가 탑스에 독점 소송을 걸어 승소하며 2010년까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가 된다. 하지만 2010년들어 조악한 축구카드를 만들던 유럽의 파니니가 돈스를 인수하여 미국시장에 진출하고 농구, 야구의 라이센스를 취득하며 그들의 시대를 열었다. 파니니는 UFC와 영국프리미어 리그까지 섭렵하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스포츠카드의 인기는 아무래도 선수의 실력에 달렸다. 그리고 카드의 희소성이 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둘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우는 최정상에 오른 선수의 루키카드다. 루키카드는 아직 선수가 인기와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시절이라 크게 수집되지 않고 데뷔 첫해만 발매되기에 희소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실제 인기선수라도 평범한 시즌의 카드는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 

 예를 들어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은 1984년 데뷔했다. 하지만 루키카드는 1986년 발매되었는데 거의 루키카드는 2010년 6173달러에서 2021년엔 60만 달러로 가치가 급상승했다. 물론 양적완화로 인한 뻥튀기 효과가 큰 시절이긴 하다. 하지만 거품이 다소 거친 지금도 10만 달러이상을 호가한다. 루키카드는 그것을 뜻하는 RC마크가 있다. 루키카드의 조건은 RC마크와 소속팀 유니폼 착용사진, 그리고 소속팀 로고가 들어가야 한다. 

 메이져 리그는 선수층이 매우 두텁다. 때문에 지명을 받아도 트리플 에이나 마이너로 데뷔하는 경우도 많다. 나이가 많아 메이저로 호출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 무조건 메이저 데뷔당시 카드가 루키카드가 된다. 즉, 한국의 류현진은 한국에서 거의 10년을 프로생활을 했지만 메이저에 데뷔한 해 루키카드가 발급된다. 메이져리그를 루키표시르 1st Bowman이 기입되어 있다. 또한 역시 RC마크가 있는데 둘 다 루키카드로 인정된다.

 카드사는 한정수량 카드도 제작한다. 동일한 사진에 표면에 반짝이나 광택을 입히는 패러랠 카드가 그것인데 희소성으로 호가가 높다. 한정카드는 99, 199, 299, 499등 99단위로 발행하며 한정 수량은 1 of 1 처럼 카드에 표시되어 가치를 높인다. 오토카드는 카드회사가 선수와의 계약을 통해 친필사인을 한 카드이며 저지카드는 선수의 유니폼인 저지를 일부 잘라 붙인 카드이고, 패치카드는 선수의 이름 및 구단로고가 들어간 패치를 붙인 카드다. 이들 역시 회소성이 있다.

 카드는 카드 세트나 박스를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트나 박스에는 그해 발해된 모든 선수가 드어가 있다. 가령 1986년 농구카드팩은 당시 40센트 가격이고 36팩이나 있었다. 이 안에 조던 루키카드는 3-4장 평균 들어있다. 즉, 1팩에 조던 카드가 있을 확률이 10%정도 되는 것이다. 때문에 밀봉한 카드 팩이나 상자는 역시 고가에 거래된다.

 투자가치가 높은 카드팩은 1986년 플리어 농구박스 카드로 마이클 조던의 루키카드가 포함된 가능성이 있다. 1989어패댁 MLB야구박스는 켄 그리피 주니어의 루키시즌이다. 1996탑스 크롬농구 박스는 크롬 재질 디자인으로 희소성이 있고 이미 사망한 코비 브라이언트의 루키시즌이다. 2011 탑스 업데이터 야구박스에는 지금도 활약하는 마이크 트라웃의 루키시즌이 있고 2017 파니니 프리즘 풋볼박스에는 미국 풋볼 최고 쿼터백인 패트릭 마홈스의 카드가 있다. 

 카드를 거래하는데는 카드의 품질은 그레이딩이 중요하다. 그레이딩은 회사에서 측정하고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등급은 PSA10 PSA9 PSA8 수준으로 점수가 낮을 수록 등급이 낮다. 카드의 품질은 코너, 엣지, 센터링, 서페이스로 판단한다. 코너는 카드의 모서리의 날카로움이고 엣지는 모서리와 모서리 사이의 테두리 부분이 접히거나 구김정도이며, 센터링은 사진이나 로고와 좌우, 상하 뒤바뀜 없이 정중앙에 찍혀있는지, 서페이스는 표면에 변색이나 흠집 정도다ㅏ. 이것이 모두 높아야 10을 받을 수 있고 가치도 높아진다. 

 저자는 축구카드를 추천한다. 카드 문화가 미국 것인 만큼 야구와 농구는 가격이 이미 오를대로 올랐지만 축구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축구스타 엘링 홀란의 데뷔 2019 카드는 겨우 900장이고 10점 품질 기준 시세가 200달러에 불과하다. 미야구와 농구의 동등급 스타의 가격에 비하면 1/10수준이다. 때문에 축구 카드의 경우 성장세가 높은 것이란게 저자의 판단이다. 

 한국도 카드가 시작되었다. 대원미디어가 국내 프로스포츠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한국 프로야구카드는 2017년부터 발매했다. 카드는 구매 후 무엇보다 보관이 중요하다. 습기와 자외선을 피하는게 중요하여 밀폐된 비닐케이스에 밀봉해 플라스틱으로 마무리 해야 보관하는게 좋다. 보관상태가 높아야 가치도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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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기적인 교사 - 각자도생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학교를 위한 동력
이지명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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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8일에 교사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교육계의 학부모갑질 사건은 한국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갑질의 가해자 학부모는 전교원 50만이 모두 일회 이상 당한 적이 있다고 할 만큼 상당 수지만 그래도 전체 학부모에 비하면 5에서 10% 수준으로 적다. 때문에 많은 일반 국민들은 이 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10회 가량 진행되었던 교사들의 추모 및 항의집회는 교원 4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일단 숨을 고루는 모양새다. 하지만 아직 갈길을 멀며, 공적기관이자, 그 수행자인 교사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존중과 인정이 필요해 보인다.

 이 책은 학교에서 협력하지 않는 교사들에 대해 다룬 책이다. 물론 책은 올해 초에 출간한 것으로 서이초 교사 사건 이전에 나온 책이다. 만약 그 이후에 나왔다면 이런 책을 내는 것에 대해 시기상으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초중등교육법엔 교사의 업무를 법령에 따른 수업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교육후진국인 한국은 그렇지 않다. 사회가 발전하고 갖가지 요구사항이 폭증하며 많은 일들이 학교에 들어왔다. 80-90년대 근무한 교사들은 일인당 담당 학생은 지금의 두배가 넘었지만 일은 오히려 많지 않았다고 한다. 교육과정은 매우 단순하고 수직적이라 교과서대로만 수업했고, 성적도 매우 단순하게 기술했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하며, 수업 및 평가도 복잡해졌다. 여기에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교원능력개발평가, 학교폭력, 학교안전, 스쿨버스, 학부모민원대응, 학교급식, 온갖 조례에 의한 안전, 범교과 교육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여기에 업무관리시스템이로 온갖 기관 및 상급기관에 의한 공문시달이 편리해지면서 참으로 학교에 많은 일을 시키기 용이해졌다.

 하지만 이런 교사 본연의 업무와 과다한 잡무의 부과는 학교에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잡무는 그야말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한다고 해서 경제적인 보상도 거의 전무하다. 교사의 수당은 담임수당은 13만원, 부장수당은 7만원에 불과하다. 두 보직을 맡아서 업무가 폭증해도 한 달 20만원 정도의 보상에 불과한 것이다. 안하고 많다가 지배적인 분위기일 수 밖애 없다.

 하지만 학교는 이런 할당된 업무를 반드시 수행하려고 하거나 수행해야 한다. 때문에 자기 살길만 여겨 이런 업무를 기피하는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과거 일선 교육청과 교육부는 이런 잡무를 맡는 교사에 승진가사점을 부여했다. 하지만 승진체계가 바뀌고, 승진을 기피하는 문화가 확산하며 이런 당근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 때문에 많은 학교들에서는 부장교사를 담임교사를 찾느라 매년 고생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돌아가면서 부장을 맡은 부장순환제를 제도화하고 있다. 

 책은 중등중심으로 써서 중고등학교의 많은 기피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초등은 90%이상의 교사가 담임을 맡아야 해 사실상 담임기피가 불가능하지만 중등은 절반 정도만 맡아도 되기에 기피기 심하다. 여기에 함께 해야 하는 일은 교과별로 다르고 수업시수도 균등치가 않아 갈등이 많다. 교사는 일에 있어 협력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은데, 언급한 것처럼 경제적, 문화적 동기부여도 거의 없을 뿐더러 그런 것에 협력적인 경우 덤터기를 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난 적어도 교사들이 업무에선 협력적이지 않을 수 있고 그런 당위성도 있다고 보지만 교육과정과 수업 등의 본연의 업무에선 매우 협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교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갈등은 교사 자체가 이기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내부적인 지적이다. 애초에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환경이 주어진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그리고 적어도 교육당국은 학교에 불필요한 업무를 제거하고 전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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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 인사이드 파타고니아
이본 쉬나드 지음, 이영래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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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타고니아란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어디 지명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파타고니아는 남아메리카 남부 지역으로 남극과 가까워 제법 추운 지역이다. 그리고 한 기업의 상호명이기도 하다. 책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그 기업의 설립자 쉬나드가 썼다. 이 책은 쉬나드가 어떤 배경에서 탄생해 삶은 어떻게 살다가 파타고니아란 기업을 설립하게 되었는지를 서술한다. 그리고 기업 파타고니아의 경영방침도 마찬가지다.

 쉬나드는 책에서 그의 아들이 난독증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쉬나드 자신의 어린 시절 서술만 보면 그 역시 난독증이 아니었을가 싶다. 쉬나드 집안은 캐나다 퀘백 지역 가문으로 아버지가 가세를 정리하고 난데없이 미서부로 이주한다. 이본 쉬나드란 이름에 영어까지 못했던 쉬나드는 학습은 크게 부진했고 학우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데 모험심은 무척 강한 소년이었다. 어릴적부터 어쩌다 산을 타기 시작하더니 인근 지역 산을 모두 뒤져나가며 무모하리만치 산을 열심히 탔다. 

 그는 책에서 자신이 여러 번 죽을 뻔했다고 했는데 사연 하나하나를 들어보면 가관이다. 우선 생초보시절 산을 제대로 탈줄도 모르면서 전문가들과 같이 산을 탔던 일, 깊이를 알수 없는 수심 30cm강에 다이빙 해 목에 골절상을 입을 일, 카누를 막 배워 1급 코스를 타다 죽을 뻔 한 일, 산에서 눈사태를 만나 머리와 목, 갈비를 크게 다친 일이 그렇다.(이 사고에선 실제 같이 있던 사람이 둘이나 죽었다.) 그는 이런 무모한 삶은 젊은 시절 내내 유지하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슬슬 자제하기 시작한다. 야생, 날 것의 삶 그대로를 산 사람인데 평생 산을 타고, 과거에 자연이 살아 있던 지역이 이후 세계의 인구가 늘어나고 온난화가 되고,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면서 파괴된 것을 직접 목도하며 환경에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된다.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고, 위험한 스포츠만 즐기던 그가 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도 기가 막힌다. 그는 등산을 좋아했고 그가 젊었던 20세기 중반만 해도 등산 장비와 옷을 형편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등산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잘 만들어 친구들과 같이 팔았다.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었다. 쉬나드와 그 친구들에게 돈이란 바로 어디론가 떠나서 다시 산을 타기 위해서만 필요했다. 그렇게 쉬나드 이큅먼트가 생겨나고 커진다. 

 파타고니아는 쉬나드가 등산용 옷을 만들 필요성을 생각하면서 탄생한 기업이다. 쉬나드 자체가 등산가인 만큼 그들에게 필요한 재질, 기능성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적합한 신소재를 찾고, 다채로운 컬러를 도입하는 등 시장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며 기업이 크게 성장한다. 그의 기업은 시작부터 친구들과의 협업이었기에 기업 자체가 성장하면서도 외부인사 영입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의 정체성을 잘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정체성이라면 모든 생산과 유통, 판매과정에서 환경을 매우 중시하는 것, 이익을 환경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것, 회사 직원들의 복지에 충실하고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유지하는 것, 회사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외부인사의 영입과 대규모 성장보다는 내부 인사를 키우고 작은 규모를 유지하는 것, 주식회사가 되어 주주를 위해 이익 만을 중시하는 기업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작지만 최고의 회사가 되는 것, 제품의 품질을 가장 우선시 하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파타고니아는 의류 회사이면서도 환경을 중시한다. 의류 회사는 그 재료, 생산과정, 그리고 잦은 폐기로 환경에 큰 부담을 미친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다르다. 그들은 유기농 목화만을 가급적 고집하고 그 재배 과정에서도 환경에 미치는 부담이 적어야 한다. 또한 세탁과정에서도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게 의류를 제작하며 고가이지만 매우 튼튼하고 옷을 만들어 수선을 하게 만든다. 그들의 옷이 품질이 우수한 것은 환경을 생각한 것도 있지만 쉬나드 자체가 등산가이기에 위기 상황에서 옷의 기능이 등산가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을 알았기에 초창기부터 고집한 점이다.

 파타고니아는 그래서 유명한 회사지만 광고를 많이 하지 않으며 충성도가 높은 고객 집단을 장기가 확보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회사는 불황기에도 판매 실적이 좋은 편이다. 사람들은 불황이면 확실한 제품만 사는 경향만 있기 때문이다. 

 쉬나드는 책에서 인간이 자행하는 환경 파괴에 대해 강하게 염려를 한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이 거의 10년 전인데 지금은 그 때보다 상황이 훨씬 악화되어 쉬나드의 걱정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는 기업이 이윤창출만을 목적으로 인간의 소비심리를 과대하게 자극해 엄청난 소비를 이루게 만드는 것, 농업이나 목장이 화석연료에 의존해 오히려 토양을 파괴하고 과다한 비용으로 생산되지만 가격엔 그것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점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지구상에 기업들 중 상당수가 파타고니아처럼 경영을 했다면 인간은 덜 풍요로웠겠지만 그로 인해 지구는 훨씬 더 풍요롭고 지금보다는 더 건전하게 춥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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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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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것은 뭘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김영하 작가에겐 인간의 필멸성이 그 대답인 것 같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 즉,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렇게 때문에 그 짧은 생애 동안 자신이 경험하는 것과 믿게 된 이야기에 많은 가중치를 두고, 치열하게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다 간혹 성공하고 대부분 실패하며 죽어간다. 심지어 후손에게 하고자 했던 뭔가에 대한 유지를 남기기도 한다. 

 이런 필멸성으로 인한 한계성, 그래서 주어진 시간에 일어난 행위와 경험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라질 미래에 인간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소설 작별 인사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작가의 하나의 대답이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21세기 말이나 22세기 정도로 보이며 공간적 배경은 통일 한국이다. 한국은 통일을 이뤘지만 고령화로 인한 급격한 인구 감소로 지방은 크게 수축하여 쇠퇴해 버린 공간이 되었고, 정부가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지역은 서울, 인천, 부산, 평양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역은 인구가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반란 세력의 통치를 받는 무법지대가 되었다. 과학기술은 상당히 발전해 인공지능을 탑재한 다양한 휴머노이드가 이미 인간사회에 상당히 침투해 있었다. 개들중 일부는 사실상 인간과 거의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혈액이 있고, 생활을 위해 음식물을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며, 잠을 자고 꿈을꾸고 성욕을 느끼고 땀까지 흘려 씻지 않으면 마치 사람처럼 더러워지며 노화도 겪는다. 

 이런 미래 사회 평양은 한 기업 연구 캠퍼스에서 아버지와 철이가 같이 살아간다. 철이는 바깥 세상에 관심이 많지만 아버진 바깥은 위험하기만 하다며 만류한다. 캠퍼스 안에서도 매우 제한된 곳에서 있던 철은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나왔다고 휴머노이드들에게 구류된다. 그 휴머노이드들은 미등록된 다른 휴머노이드들을 잡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철이를 휴머노이드로 인식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이 아무리 인간임을 주장해도 이 고철 덩어리들은 판별기의 결과 만을 들이대며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는다. 철은 아버지가 자신을 금방 구해줄 것을 믿으며 이렇게 끌려온 휴머노이드들의 수용소에 끌려간다. 거긴 매우 다양한 휴머노이드들이 있었다. 예전 버전이고 전투용이기에 순수히 기계로 만들어진 것들, 그리고 인간과 유사한 휴머노이드들이 있었다. 최근에 정말 잘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들은 철이처럼 자신이 인간이라고 끝가지 주장했는데 그러면 기계파들은 그 휴머노이드의 팔이라도 뽑아 기계 섬유를 드러내 너 역시 우리 같은 로봇임을 보이곤 했다. 철은 그런 기계들을 무척 조심해야 했다.

 철은 수용소에서 인간인 선과 휴머노이드 민을 만난다. 민은 어린 휴머노이드로 입양되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여기까지 흘러들게 되었고, 선은 복제 인간으로 학대 받으며 생활하다가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죽어 수용소로 흘러들게 되었다. 선은 유일한 인간이기에 여기서 인간만의 특징은 거래를 하며 여러 기계와 휴머노이드들을 장악한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외부 상황이 악화되어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며 수용소의 전기와 식량 공급이 끊긴다. 부족한 자원에 로봇 끼리의 약탈과 파괴가 일어나고 셋이 탈출한다. 

 탈출한 셋은 달마라는 로봇을 만난다. 그는 인간은 결국 멸망할 것이고 그들의 뒤를 이어받아 인공지능의 시대가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 자아는 모두 의미 없는 것이며 네트워크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통합된 하나의 지성이 탄생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말에 철은 그리고 선은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훗날 철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고 선과 민과 이별한다. 그리고 최첨단 휴머노이드로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철은 육신을 잃고 네트워크에 흘러 인공지능으로 자리하게 된다. 몸을 통해 얻었던 모든 감각과 경험이 사라지고 첨단 지능이 된 것이다. 그런 그는 마치 인간을 대변하는 것처럼 먼 훗날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 늙은 선도 다시 만난다.

 책에서 작가는 다소 낭만적이면서도 허무함이 느껴지는 결말을 맺는다.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인 만큼 책이 흥미 있게 잘 읽히고 어렵지도 않다. 결론 부분의 임팩트가 좀 아쉽긴 한데 개인적 생각일 뿐이다. 난 이미 나이가 많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해 내게도 생명체로서 필멸의 길과 인공지능과 통합한 영생의 길 중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택할지 고민이다. 이미 많은 영화와 책에서 그런 것을 다루고 있지만 필멸의 존재로서 그런 매체에서 내린 선택에는 인간으로서의 선택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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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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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기자였던 구본준의 또 다른 건축 책이다. 그는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그가 쓴 다른 책인 두 남자의 집짓기를 내가 봤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상기했다. 그는 2014년 이탈리아 출장 중 돌연사했다. 아직 40대의 젊은 나이였다. 최근 건축책은 유현준의 책을 주로 보고 있지만 과거엔 구본준이 있었던 셈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더 좋은 책을 많이 냈을 것이 확실해 아쉽다. 한국의 미 특강을 쓴 오주석, 역사를 쓴 남경태 작가도 구본준 만큼은 아니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같은 이유로 무척 아쉬운 분들이다.

 이 책은 2013년에 발간한 책으로 사실상 그의 유작이다. 다른 건축책들과는 좀 다르게 한국의 건축에 집중하고 있어서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시기는 근대와 과거, 현대를 모두 아우른다. 

 책의 서두를 장식한 것은 이진아 기념 도서관이다. 이진아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무척 사랑한 딸이었다. 그 딸은 2003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딸을 무척 사랑했던 아버지는 세상에 그녀를 남기고 싶었고 그런 그가 건축비를 대고 지자체가 토지를 대어 완성한 것이 이진아기념도서관이다. 이 건물은 건축 자체가 뜻 깊은 시도이기도 했고 서대문 형무소의 벽돌을 활용하여 의자를 만든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서울엔 많은 종교 건축물이 있다. 명동 성당, 불교 조계사, 천도교 중앙대성당, 개신교의 정동교회와 경동교회,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이 그렇다. 이중 서울 대성당은 고딕 양식이 아닌 로마네스크 형식인데도 한국적 양식을 많이 적용해 더욱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대개 교회 건물은 고딕 양식으로 지으며 이는 신에 가까워지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다. 하지만 서울 대성당은 그렇지 않다. 여기엔 건축가의 뜻이 담겼다. 건축가는 1914년 성공회의 트롤로프 주교였다. 그는 건축가 아서딕슨에 서한을 보내 종교 건축물은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설득한다. 수개월의 뱃길로 조선에 도착한 아서딕슨은 한국의 건축물과 가옥을 살핀다. 그리고 고딕을 포기한다. 그래서 서울 대성당은 기와 같은 지붕에 한옥의 창호 같은 창문, 오방색의 스테인글라스를 갖게 된다. 이런 현지 전략으로 서울 대성당은 다른 근대 건물들과는 다르게 한옥들과 같이 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1990년대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성노예 사건이 폭로되었다. 이어서 1992년부터 일본대사관에서 일본군 성노예 사건에 항의하는 수요시위가 시작된다. 2000년대 들어 어느 새 고령화한 피해자들이 사망하기 시작하면서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처음엔 독립공원 내에 부지를 마련하려 했으나 늘 그렇듯 몇몇 보수단체의 반대로 위치가 마포구 성미산으로 옮겨진다. 국회와 정부가 마련한 돈은 겨우 5억이었기에 민간시민과 일본의 시민들이 돈을 모아 자산 20억이 만들어진다. 마포의 100평짜리 단독주택 구매에만 17억이 쓰이고 건축가는 고작 3억으로 건축을 해낸다. 바깥은 높은 벽을 세워 작은 건물을 크게 보이게 하였고, 할머니들의 얼굴과 손바닥 부조도 눈에 띈다. 집의 습하고 어두운 지하실은 할머니들이 끌려가 생활하던 공간처럼 꾸며졌다. 박물관은 전쟁에 끌려간 할머니들의 삶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로 완공되었다.

 조선은 유교 건물을 많이 지었다. 향교는 공립유학 교육기관이고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이다. 향교는 대개 고을의 중앙에 위치했는데 지금도 오랜 도시 지역의 중앙엔 교동이 있다. 바로 향교가 있던 마을이란 뜻이다. 서원은 풍수가 좋은 곳에 그리고 지역의 특성과 모시는 사람, 건축주의 특성이 반영되어 개성이 넘친다. 

 서원은 공통적으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학생을 가르쳤기에 은행나무가 반드시 존재하고 교수 및 기숙사와 배향장소가 있다. 도동서원은 김굉필을 모시는 서원이다. 김굉필은 나도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지 않으나 조선 사림들에겐 정신적으로 큰 울림을 준 사람이다. 젊은 시절을 탕아로 보내다 늦은 나이에 김종직을 만나 수학하여 40이 되어서야 입직한다. 당시 양반들은 부모가 죽으면 3년상을 치뤘는데 대부분 돈을 주고 사람을 썼고 자신은 제사만 지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굉필은 부, 모, 계모까지 총 9년 상을 스스로 해낸 사람이다. 워낙 강직해 연산 때 파직되고 사사되었다. 중종때 복귀되었는데 그의 강직함이 워낙 대단해 동방 5현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1번인데 동방오현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이다. 도동서원은 이런 김굉필을 기리는 서원이기에 많은 건축비를 확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돌을 활용한 재미난 장식들이 많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호주의 대표적 건물이다. 국가의 이미지를 이 정도로 잘 드러낸 건물도 많지 않은데 호주 정부는 이를 계획하고 설계를 공모한다. 당선자는 당시 39세로 덴마크의 신예 이외른 우촌이었다. 조개 껍데기를 연상시키는 여러 구조체를 설계한 그의 건물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건물은 정면이 따로 없었고 구조에도 구분이 없었다. 포개지는 거대한 고깔은 그 자체로 벽이자 지붕이자 관문이었다. 

 모든 게 좋았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호주 정부는 2년 정도의 건축 기간에 350만 달러의 예산을 예상했다. 하지만 해안가이다 보니 지반 문제가 발생했고 당시 낮은 건축 수준으로 인해 실현 가능한 재료와 구조의 변경 및 설계 등으로 실제 건축 기간은 10년 이상에 예산은 총 5700만 달러가 들었다. 호주 정부와 건축가의 갈등은 심해졌고 자신의 이상이 현실에 밀리는 느낌을 받은 우촌은 그대로 귀향해버린다. 호주정부는 자국의 건축가들을 이용해 현실적인 작업을 벌려 오페라 하우스를 마무리한다. 우촌은 개관식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먼 훗날에야 오페라 하우스를 다시 방문한다.

 조선의 5개 궁궐 중 창덕궁은 후원이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창덕궁의 후원은 우리 전통처럼 자연스러움이 그 특징이다. 창덕궁의 또 다른 특징은 정자가 많다는 것이다. 가장 화려한 정자는 부용정으로 열십자 지붕에 한 차례 각을 더 따낸 정자로 정조가 애용했다. 관람정은 전국에서 유일한 부채꼴 모양의 지붕을 가진 정자고 승재정은 작은 공예품 같이 아름다운 정자로 보통 사방이 트인 다른 정자와 달리 창호가 있고, 툇마루도 있다. 아마 겨울에도 애용한 것이 아닐지. 존덕정은 디자인이 독특한데 지붕이 2겹이고 한 모서리에 가는 기둥이 3개씩 붙어 있다. 청의정은 농업국가인 조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자의 지붕이 초가다. 왕은 농사의 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선농단에서 올렸고 친경했다. 그리고 매년 청의정의 초가 지붕을 교체했다. 선농단 제사 후 제물로 사용한 소를 잡아 탕을 끓여 주변 60세 이상 백성에게 대접했는데 이것이 설렁탕의 시초란 이야기가 있다. 

 강릉에 가본 사람은 선교장을 한 번 정도를 들어봤을 것이다. 선교장은 집의 이름으로 현존하는 조선건물 중 가장 크다. 보통 양반의 집엔 당이나 각이 붙는데 선교장은 워낙 커서 장이 붙은 것이다. 선교장은 강릉에 위치하는데 그것이 더 대단하다. 강원 지역은 농경지가 척박하고 좁기 때문이다. 선교장 가문의 땅은 주문진에서 삼척에 이를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선교장 가문의 시작은 권씨부인이다. 본래 충주로 시집갔었는데 남편이 죽고 전처의 장자가 모든 가산을 상속하자 자신의 아이와 강릉으로 돌아와 염전 사업을 해서 자수성가한다. 그들은 개척된 땅은 비과세하는 법을 이용해 강원도의 척박한 땅을 농지로 바꾸며 땅을 늘려갔다. 

 선교장은 한양의 유력가와 통혼하여 세력을 유지했고, 문화적 후원과 교류도 자주해서 정치감각과 문화감각을 유지했다. 김정희나 여운형도 방문했다. 조선시대 양반에게 관동팔경과 금강산은 주요 관광지였는데 선교장은 그 초입으로 같이 방문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다. 선교장은 손님대접에 상당한 신경을 썼는데 소반만 300개를 대접하고 손님이 떠날때는 옷도 지어 선물했다. 사랑채는 큰 사랑채, 중간 사랑채, 아랫사랑채로 나눠 손님의 학문적 수준과 지위에 따라 위에서 아래 순으로 배치했다.

 선교장은 처음부터 큰 건물이 아니라 대를 이어가며 꾸준히 증축하여 매번 당주의 취향과 철학이 반영되어 건축물이 다양하다. 선교장의 6대 이근우는 1908년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잡고자 인재 양성을 위해 동진학교를 설립했다. 교사로 여운형과 이시형을 초빙할 정도였고 학생에게 숙식과 학비를 제공했으나 일제에 의해 3년만에 폐교 된다.

 이근우는 일제 때 중추원 참의를 지내기도 했으나 뒤로는 비밀리에 독립자금을 댔다. 선교장은 해 방 후 토지개혁으로 땅을 강제 매각당하고 지가 증권을 얻었으나 산업자본으로 전환에 실패하여 과거의 위상을 잃는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이후에도 가문에서는 강릉시장과 은행장, 대학 부총장이 연이어 배출되었고 선교장의 유명한 열화당의 이름을 딴 출판사 열화당도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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