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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낮은산 키큰나무 14
김중미 지음 / 낮은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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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나 이외에 다른 것을 챙기는데 무관심하고, 다른 것에 감정적으로 잘 의지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으르다. 종교에서 자유로울수 있고, 동물도 키울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의 발달상 이유로 선생님께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을 권유하셨다. 진짜 싫어서 엄청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아들을 위한건데......귀차니즘을 뛰어넘을만한 동인이었다. 마침 직장 동료들이 적잖이 개를 많이 키우고 있어 물어봤다. 나같은 사람이 감당할 일이 맞는지.

 마냥 즐겁게만 키우는줄 알았는데 다들 의외로 고충이 많았다. 돈은 사람새끼 키우는 것과 거의 매한가지로 든다. 많은 노력이 든다. 애초에 시작을 한하는게 낫다 등등. 결정적으로 날 돌려세운 한마디는 이거였다. "애는 10년 키우면 집 나가지만, 개는 그대로 집에 있다." 아....... 강력했다. 그길로 애완견 입양은 포기했다. 이것도 이거지만 집을 일년에 몇달간 비우는일도 잦아 난감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나와는 상당히 반대의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크게 결핍되었다. 정서적으로. 그래서인지 애완동물 특히, 고양이를 무척 사랑하고 아낀다. 주인공 고양이는 총 3마리가 나온다. 모리, 크레마, 마루다. 모리는 눈치챘다시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따온 제목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집의 아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라 그리 붙였다 한다.

 고양이들의 삶은 기구하다. 모리는 곧 재개발 되는 시장에서 1살이 채 안된채 독립하여 출산을 하고, 어지러운 틈바구니 속에 새끼들을 모두 잃어 버렸다. 그리고 아사직전에 발견되어 입양된다. 크레마는 글자그대로 커피색이라 크레마인데, 주인아주머니와 딸을 괴롭히는 주인아저씨에게 맞서다 실명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가 입양된다. 원래 이름은 나비였다. 마루는 사람과 무려 8년을 살았다. 그리고 다른 고양이들을 모른다. 즉, 야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인이 가난했다. 월세방에서 나오고 고시원까지 밀려나자 어쩔수 없이 마루를 내보낸다. 즉, 고양이들도 크게 상처받으며 자란 결핍된 존재들인 것이다.

 주인들의 삶도 고양이 못지 않다. 사실상 사람 주인공인 연우는 엄마가 죽었다. 사회복지사였던 엄마는 격무끝에 심장마비로 죽었으며 쓰러진지 무려 30분 만에 발견되었다. 연우의 아버지는 아내를 죽인 국가를 상대로 업무상순직처리를 받기 위해 애쓰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연우의 아버지는 가족없이 힘들게 자라서인지 애완동물을 보고는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모리, 크레마, 마루는 차례로 연우집에 살게 된다.  

 소설에는 사회적 아픔도 자리한다. 앞서 말한 연우네 집은 사회복지사들의 열악한 업무환경을 지적하고, 크레마의 본래 주인은 잘 나가는 중국집을 하다 재개발이 시작되고 이를 반대하다 가정이 파탄난다. 그리고 마루이 주인은 돈이 없어 대학을 무려 6년째 다니고 있고 월세보증금마져 모조리 까먹어 고시원으로 밀려나는 지금 시대의 아픈 젊은이다.

 이처럼 사람과 고양이들은 모두 서로 결핍된 존재이기에 서로를 찾는다. 그리고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과정은 물론 쉽지 않다. 상처 치유의 마지막은 소설 말미에 입양된 고양이 레오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레오 역시 버려진 고양이지만 어려서부터 연우집에 세고양이와 자라난 끝에 사랑받으며 구김없이 자라난다. 사람과 고양이들 모두 어려서부터 그리고 성장과정이 그러했다면 모두 레오같았을 것이다.

 책에는 그런 장면과 생각을 이처럼 묘사했다.

"매사에 당당하고 자유로운 레오를 보면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된다."

 "그들은 나를 떠난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다시 사랑할 새로운 존재, 다시 맺어야 할 새로운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 장면들이 소설의 주제이다. 사람은 오랜시간 동물과 함께 해왔다. 처음에 학자들은 사람들이 동물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것을 일종의 사치로 생각했고, 최초의 동물과 함께하는 것은 철저히 가축화를 통한 실용적 목적으로 봤었다. 하지만 생활의 여유가 없는 원시사회에서도 동물이 사람과 함께하는 형태의 유골들이 발견되고 이러한 생각은 뒤집어 졌다. 서로 결핍된 존재들을 오랜 시간동안 서로를 채워주며 살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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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8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물, 특히 개가 사람의 표정만 보고도 감정 상태를 알아채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닷슈 2017-06-08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놀라운데요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동물간 그런관계가 만들어지진않았겠죠
 
여자의 하루에 관한 거의 모든 심리학 - 정신과 의사에게 말하기엔 너무 사소한 일상심리 이야기
선안남 지음 / 웅진윙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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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의 심리를 다룬 책은 참 많다. 하지만 남자의 심리를 다룬 책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역시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자들의 여러 심리를 재밌게 다룬 책이다. 글쓴이만의 독특한 시각과 심리를 설명하는 나름의 이유가 재밌다. 심리들이 일상과 관련있고, 하루의 특정시간대 주로 일어나는 것들을 나누어 다루다보니 더 독특한 면이 있다. 그리고 각장마다 간단히 에피소드와 관련한 심리학 용어를 설명하기도 한다.

 다 재미있게 읽고나니 머릿속에 두 가지 큰 질문이 남았다.

 

 첫번째는 왜 여자들은 겉모습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일까

 두번째는 왜 여자들은 다른사람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일까 이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룬 모든 에피소드들은 위 두가지 질문에서 모두 벗어나지 못한다. 위 두 질문에 대한 그때그때의 감성과 글쓴이의 매력적인 해석 및 비유가 이 책이란 생각이다.

 

 우선 여자들의 겉모습에 대한 많은 노력에 대해서다.

여자들이 겉모습에 들이는 노력은 사실 남자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다.  책에 의하면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화장을 하는데 들이는 시간이 평생 2년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세끼를 꼬박 먹는 사람의 평생 식사기간과 비슷한 정도인데, 아무리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7-8년이 길다해도 이는 상당한 시간투자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각종 악세사리와 여러 의류들, 소장품들을 고르는 시간과 돈을 생각한다면 겉모습에 대한 금액과 시간규모는 더욱 아득해질수 있다.

 이처럼 여성들이 겉모습에 많은 시간과 금액을 투자하는 이유는 우선 성경쟁과 관련지을 수 있다. 입술색을 더욱 붉게 해주는 립스틱, 얼굴을 어려보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여러 화장법,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긴 머리, 키와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하이힐, 몸매를 드러나게 하는 여러가지 옷들은 남성의 성적 본능을 더욱 자극시키는 것들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성파트너를 얻을 수 있다면 이런 노력은 충분한 보상이 있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의 겉모습에 대한  노력이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시키는 부분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성경쟁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은 여성간의 경쟁 혹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성향때문이다. 사실 남여평등시대에 많은 여성들은 위와 같은 견해에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며 자신들의 겉모습에 대한 노력은 개성의 발현이고, 남성이 아닌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포츠 머리를 한 여성이나 엄청난 근육질의 여성등 남성들이 보편적으로 성적 본능을 느끼기 어려울 만한 겉모습에 많은 노력을 들여 만들어내는 여성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보편적인 경우를 벗어난 남성성을 많이 가진 소수의 여성들이라고 볼수 있어 매우 특수한 예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외에도 여성들의 겉모습에 대한 노력중 남성의 성적 본능을 끌지 않을 만한 것들이 충분히 있다. 가령 보석이나 꽃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고 이와 비슷하고 겉모습을 가꾸려는 노력들이 그런한 것들이다. 이런 형태의 겉모습은 사실 남성에게 이렇다할 성적어필을 하지 못한다. 여성들은 색에있어서도 핑크색등 밝은 계열의 색을 선호하고 겉치장에 이용하지만 그러한 색들이 반드시 남성에게 성적자극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것들은 밝은 계열의 원색을 선호하는 여성의 눈의 진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되며 상당히 많은 것들이 그러한 부분의 변용이라고 보는 편이다. 이에 발달한 인류문화는 이 변용을 더욱 부채질 했을 것이다.

  또한 이런 형태의 겉모습에 대한 여성간의 경쟁은 성경쟁이라기 보다는 자연히 여성들 자신간의 경쟁을 띈다. 여성간에서도 이러한 형태로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것은 반드시 성경쟁이 아니더라도 여러면에서 유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간의 경쟁이 반드시 성적경쟁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과연 남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여성들의 겉모습에 대한 노력이 지금과 같을지 궁금하다. 전혀 없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여성간의 경쟁으로 남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가지 않을런지.

 

 두번째는 왜 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많이 신경쓰는가이다. 이는 여성이 관계지향적인 뇌를 가져서라고 볼수 있다. 여성들은 오랜 기간 육아를 하고 가정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말을 전혀하지 못하는 어린 유아를 돌봐야 했고, 집단 내에서 같이 생활하는 여성들과 수렵 및 여러 상호작용을 해야 했다. 때문에 자연스레 남성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공감하는 관계지향적 뇌를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수렵을 위해 식물 및 열매 구분을 뚜렷히 하기 위해 여성의 눈이 원색에 보다 민감하게 진화하고, 고작 하루 7-8천 단어를 말하는 남자에 비해 1만2천 단어 이상을 말할만큼 언어적 의사소통에 능하게 진화한 것도 모두 이때문이다.

 때문에 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많이 신경을 쓸수밖에 없다. 관계지향적 뇌를 가졌기에 글자그대로 관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 대한 민감성, 여러 사람의 동의를 반드시 구하고자 하는 성향, 인정을 받고 자하는 성향, 서로를 챙기고 보듬고자 하는 성향들은 현대에 그래도 남아 여성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많이 신경쓰고 의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반드시 친구를 만나며, 매우 긴시간을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인정을 받고 자 분투하며, 상당히 시기도 하고 질투도하며 싸운다. 또한 긴시간을 고민을 함께하고 그럴경우 대부분 같이 울어주며, 친구의 생일은 반드시 챙긴다. 또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경우 같이 고민하고 친구의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겉모습을 위해 평생 부단히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쓰기만 하는 여자들은 무척 주체적으로 보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만 그럴까. 남자도 마찬가지다. 가볍게 친구와 스쿼시를 즐기던 두 절친 남자들에게 둘이 모두 아는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두사람의 경기를 본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프랜들리 하던 게임은 전쟁을 방불케 변하며 미소역시 사라진다. 웃기는 것은 이 경우 여자의 미모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며 그 여자에 대해 둘다 이성적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일은 그렇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남자가 성경쟁을 위해 들이는 노력은 또 얼마나 무시무시 한가. 집에 비싼 자동차에, 좋은 직장까지 어찌보면 여성의 그것보다 스케일이 더욱 어마어마하며 고통스럽기 그지 없다.

 거기다가 남자는 관계지향적인 여성과 다르게 체계형뇌를 갖고 있어 위계질서에 민감하다. 때문에 조직을 위해 죽기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가끔하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서로간에 의지하지 않으며 힘들면 오히려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남자들에게도 어떤 주체성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둘다 상당히 타자지향적이다.

 

 그렇다고 남자나 여자나 주체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결핍된 행성에서 결핍된 존재인 동물로 진화하여 거기에 서로 의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와 문화를 구성한 인간이 애초에 완전히 주체적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주체성은 애초에 타자지향적인 것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런지. 물론 타자지향에는 적당히라는 것이 있어야 할테고 자신과 사회 우주에 대한 꾸준한 생각이 있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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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스승의 날은 참으로 대단했다. 학교에서의 엄청난 공식행사. 스승의 날 노래 제창(사전연습까지 시켰다.), 선생님의 차 트렁크가 걱정될 정도의 선물 세례, 선생님은 쉬셔야 하니 학부모중 특별 직업이나 특기가 있는 분이 초청되 대리 수업까지 했다. 그랬던 것이 거의 모두 사라졌다. 많은 국민들(특히 화훼업자분들)도 아쉬움이 짙을 정도로 꽃마저 금지되었다. 작년 대학교수에 대한 커피한잔 증정 소동은 많은 논란을 나았다. 몇몇 학교는 여러 우려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아예 스승의날을 재량휴업일로 쉬거나 운동회를 거행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문재인대통령의 간단한 지시에 의해 세월호 기간제교사 두분에 대한 순직처리가 진행되게 되었다. 그토록 어렵다더니 다소 허망하기까지 하다. 역시 많은 일은 몇몇 사람의 의지에 달린 경우가 많다. 그 말많던 반값등록금을 비록 서울시립대에 한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하자 마자 단행해버렸다.

 교직에 대해서는 세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성직자관, 전문직관, 노동자관이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사망자에 대한 추이가 아직 완전치 못한 며칠간. 언론들은 학생들의 희생에만 과다하게 집중했다. 당시 언론의 느낌은 교사의 사망률을 지켜보는듯 했는데, 마치 교사의 사망률이 학생보다 낮기라도 하면 엄청나게 물어 뜯을 기세였다. 하지만 언론의 기대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을 보호하려다 순직했다. 3월에 새로 발령받아 수학여행과는 사실 거의 무관한 단원고 교감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자살까지 했다. 문제는 이런 교사의 순직에 대해서 한국민들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당시 존함은 잘 기억나질 않지만 전교조 출신의 한 선생님은 교사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한국사회의 문화를 강하게 꼬집었다. 공직중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수 있을까? 대부분의 대답은 아마 군인일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소방공무원과 경찰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 교사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유사시 우리는 교사의 죽음에 대해 매우 당연히 생각하고 심지어 요구하느니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다소 무섭게도 학부모인 어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들 역시 매우 순진한 얼굴로 내가 물에 빠지면 선생님이 목숨걸고 저를 구하셔야죠라고 교사에게 아주 당연스럽게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관점이 교사에 대한 성직자관이다. 교사의 일을 신성시하고 성직처럼 대하며 그에 맞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성직자가 신도를 지키기 위해 순직한다고 해서 우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이를 잘 대표한다고 볼수 있다.

 이런 성직관때문에 세월호 순직 교사들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순직처리하는 절차와 그에 걸맞는 대우는 결국 노동직 관이다. 성직자가 순교했다면 단지 기릴뿐 뭔가를 물질적으로 보상하지는 않는다. 순직한 기간제 교사 두분에 대해 순직처리가 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업무에 대해서는 성직자관을 요구하면서 정작 노동자로서 인정을 하지 않은 부분이라 할수 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는 다르게 노동자로서의 여러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사회 여러 기득권층이나 교총에서 전교조를 비판하는 부분 역시 교사를 노동직으로 본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교조는 현실로서 교사를 노동자로 바라본다. 이른 역시 그래서 전국교직원'노동' 조합이다.

 이처럼 교사를 노동직으로 보지 않는 사회의 관점때문에 교사는 5월 1일 노동자의 날에 쉬지 않는다. 스승의 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교사를 노동자로 보지 않는 관점이 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반면 교사를 변호사나 의사처럼 전문직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바로 전문직관이다. 이는 과거와 다르게 교사의 교수능력이 강조되면서, 그리고 교직이 얻기 어려운 직업이 되면서 강조되고 있다. 또한 임용고시라는 국가고시를 틍과해야 교사가 된다는 점에서 전문직관이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의 성과물인 교육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측정될만한 산출물이 없거나 측정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면에서 교사를 전문직으로 보기 어렵게 한다.

 문제는 교사에 대한 이 세가지 관점인 성직자관과 노동자관, 전문직관이 서로 충돌한 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반적인 문화가 교사에게 성직자이길 요구한다. 이는 상당히 전통적인 유교적 관점이기도 한데 학생을 위한 마땅한 희생, 높은 도덕성에 대한 요구, 학생의 대한 사랑과 헌신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또한 현대에 들어와 교사로서 학생 교육을 위한 전문성을 갖추고 높은 교수학습능력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전문직으로서의 요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교육과정에서 학교폭력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과거와는 다르게 법적으로 처벌하는데 이 경우 교사는 철저히 노동자가 된다. 성직자나 전문직이 그러한 경우에 처하는 경우는 좀츠럼 드물다.

 때문에 지금 한국사회에서 교사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말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또한 시대 변화에 따라 요구하는 관점이 제각각인 것이다. 그렇기에 교사는 힘들다. 과거와는 다르게 높은 수준의 교육적 요구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연찬하고 교사가 되는 과정도 매우 지난해졌지만 그 대우와 권리는 실제 전문직의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며 다른 전문직과는 다르게 전문성이 무어라고 딱히 말하기도 어렵다. 또한 교육헌장과 문화에 따라 사랑과 헌신으로 성직자처럼 학생을 교육하려 하지만 그 열정은 때로 오해받기도 하며 성난 민원에 의해 손쉽게 자신의 인권이 침해되거나 소모적인 법적싸움에 쉽게 휩쓸리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이 반드시 하나로만 정리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럴수도 없다. 실제로 교사라는 직업은 이 세가지 관점을 모두 요구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전에 그 세가지 관점을 모두 충족시킬수 있는 문화와 사회적 합의 및 지원 역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 아닌지 스승의날을 맞아 그리고 순직처리 되실 두 기간제 선생님을 보며 생각해본다.

 

 

-기간제 교사에 대해-

(기간제 교사는 교직의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교사와 동일한 점은 하는일이 같다는 것이며 다른 점은 국가고시인 임용고시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연금등의 혜택이 없고 고용이 불안하지만 실제 학교에서 학생들은 누가 정규교사이고 누가 기간제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하는 일은 대동소이 하다.

 교직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비교적 일치하는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기간제교사에 대해 큰 문제가 없는 편이다. 초등에서 기간제 교사는 임용고시 합격자가 임용대기기간동안 잠시 현장경험을 쌓는 것이거나 아니면 한두해 낙방시 하는 것들이다. 물론 보건교사나 사서교사 영양교사 상담교사의 경우는 초등역시 비정규직인 기간제교사에 크게 의존한다.

 중고등학교인 중등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중등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초등과는 달리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 전국의 수많은 사범대, 그리고 교육대학원 졸업생들, 게다가 일반 학과에서 교직이수과정을 거친자들까지 무수히 많은 공급원이 존재한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학입학은 초등에 비해 수월한 반면 임용고시의 합격은 매우 요원하다.

 때문에 중등학교들은 초등에 비해 기간제 교사에 매우 의존한다. 대부분의 교사가 담임을 맡아야 하는 초등에 비해 중등교사들은 절반정도만 담임을 하면 된다. 때문에 담임은 중등에서 기피업무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담임업무는 기간제 교사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많으며 교내에서의 기피 업무들 역시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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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생 때 사회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말 한 마디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했던 말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리스크(risk)가 크다.”

리스크라는 단어 때문에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처음에 그 분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제가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제자가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걸 보면서 사회 선생님이 했던 말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닷슈 2017-05-16 13:32   좋아요 0 | URL
진짜 그런것같습니다

nama 2017-05-1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의 ‘중등교사들은 절반정도만 담임을 하면 된다‘는 사실과 좀 다릅니다. 학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중학교에서는(고등학교는 다를 수 있음) 부장교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교사가 담임을 맡게 됩니다. 원로교사인 경우에나 겨우 담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간제 교사가 교내에서 기피 업무를 맡는 건, 안타깝지만 사실이고요.

닷슈 2017-05-16 13:08   좋아요 0 | URL
음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읽은책이랑 현장이랑 좀다르네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를 보고 싶습니다. 제러드의 총균쇠와 최근의 저작인 어제까지의 세계, 그리고 제3의 침팬지를 보았습니다. 제러드의 책은 웬만하면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문명 3부작 중 문명의 붕괴를 빠뜨리고 말았네요. 이 빈공간을 채우고 싶습니다. 생물학자이면서 지리학자이고 또한 진화론도 보고 있는 제러드이 통섭적 학문세계에 좀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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