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규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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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きみ)が代(よ)は千代(ちよ)に八千代(やちよ)に
さざれ石(いし)のいわおとなりて
こけのむすまで
임금의 대는 천년만년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위의 것은 일본의 기미가요의 가사다. 우리 입장에선 기가막힌다. 한일축구중계마다 일본 선수들이 나름 비장미를 갖고 부르고 음악도 심상치 않던데 겨우 저런 내용이었다니. 국가라면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니 보통 혁명이나 국가의 건국이념이나 아름다움등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이건 철저히 한국인의 생각이다.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긴 하겠지만. 근데 책 국화와 칼을 읽어보면 저 짧디짧은 일본의 기미가요에는 사실 일본 국가의 사회구조를 관통하는 이념과 그 상징은 천황에 대한 관점이 매우 잘 드러난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 국화와 칼은 상당히 오래된 책이다. 저자가 1946년에 이걸 썼고 자신은 이미 1948년에 죽었을정도니 말이다. 2차대전 중 미국과 영국등의 연합국은 일본군과 싸우며 상당히 놀란다.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인데. 이녀석들은 좀처럼 항복이란걸 몰랐고, 천황만세라는 말을 하며 자살 폭탄 공격을 일삼기 일쑤였다. 굉장히 잔혹하여 적군의 포로를 학대하거나 잘 살려두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참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나하나를 잡고 보면 생각보다 온순하고 점잖으며 교양이 있었다. 연합국은 일본 점령을 앞두고 그들을 용이하게 지배하기 위해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그들의 이런 모순점을 파헤쳐 제목자체에 드러낸 책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오래 체류하며 그들의 일상과 일거수 일투족을 느끼고 공감하며 책을 써냈다. 그래서 책 내용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상당히 깊으며 오늘날까지도 상당히 통용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이란 나란 기실 거의 변하지 않은듯 싶으니 말이다.

 

1. 일본의 사회규범이자 도덕법칙인 사회계층질서의 유지

 각 사회의 윤리체계나 문화는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들의 환경에 적응하여 생겨난 것이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이 최우선 과제인 생물은 처음엔 각개격파식으로 나아갔겠지만 곧 집단으로 협력하며 생활할 때 적응도가 높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새로운 이타적인 행동양식의 탄생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경우 이를 발전시킨 것이 윤리나 도덕의 시작이다. 서양문화권에서는 이런 기초적인 것에 기반해 기독교 윤리와 고대 그리스철학을 토대로 자신들의 윤리를 발전시켰고 동아시아에서는 토착윤리에 불교와 도교, 유교가 버무려져 윤리체계가 성립했다. 양자의 윤리는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적어도 절대적인 원칙이나 규범이 있다는 저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동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일본의 규범이나 도덕은 상황윤리적이다. 즉, 자신의 사회관계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올바른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유교윤리를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였는데 중국의 경우 인이 가장 중시되는 반면 일본인 인보다는 효와 충을 우선적인 원리로 삼았다. 중국의 인은 천자와 관료제의 전제가 되는 것으로 이들이 인을 올바르게 베풀때만 이들의 권력이 정당화된다. 하지만 인이 사라질 경우, 반란이나 민란은 이루어질수 있는 것이며 이는 실제로 무수한 왕조교체의 실제 원인이나 명분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천황제는 영원히 유지되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인의 이런 요소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은 충과 효를 위주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위계적 사회질서의 유지에 이를 적용시킨다. 위계적 사회질서를 모든 사람이 따르는 매커니즘이 바로 일본의 사회규범이다. 이는 모든 계층의 사람이 자신의 직분이나 신분에 맞는 행동과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이처럼 분수에 맞게 살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일본인이 자신의 직분에 맞게 살게끔 하는 주요 원리로 온(恩)이 있다. 온은 상급자나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받는 것으로 일본인은 이를 불편해하지만 마땅히 받아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 온에는 가장 높은 것이 천황에게서 받는 것이며 다음으로 부모나 주군, 스승, 그외 사람들에게서 받는 것이 있다. 문제는 이 온이 죽을때까지 노력해도 만분의 일도 갚을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즉, 일본인은 평생 온의 굴레에 갇혀 상급직분의 사람의 명령이나 그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온을 갚는 행위를 온가에시(報恩)라고 한다. 여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무(義務)이고 다른 하나는 기리(義理)다. 기무는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으로 당연히 시간적 한계가 없어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것이다. 천황이나 법률, 일본 국가에 대한 충, 효, 임무등이 해당된다. 반면 기리는 자기가 받은 온과 같은 양만큼만 같으면 되는 것으로 시간적 한계가 있어 해결이 가능하다. 기리는 역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세켄에 대한 기리,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다. 세켄에 대한 기리는 주군이나 가까운 친척, 타인등에 대한 것이며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는 타인에게 모욕이나 비난을 받을 경우 그 오명을 씻어야 하는 의무, 예절의무 등이다.

 이런 일본의 도덕률은 의무에 대한 극단적인 변제와 철저한 자기 부정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엄격하고 개인을 옭아메는 도덕률에도 일본사회는 오관의 쾌락을 적극적으로 허용한다. 여기에도 이중잣대가 적용되는데 위의 기리나 기무를 침해하지 않는 영역안에서라면 쾌락이 적극적으로 허용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이 성적으로 상당히 문란한 것은 어쩌면 이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같은 쾌락의 허용은 기무와 기리에 지친 일본인들에게 상당한 위안을 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인은 또한 하지(수치심)에 매우 민감하다. 이는 자신이 이름에 대한 기리를 다 못하거나 기무를 잘 지키지 못할 경우 타인으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 생겨난다. 일본인은 법적인 죄의 중대성보다는 오히려 이 하지의 중대성에 무게를 둔다. 예를 들어 한 사무라이가 한 암살범으로부터 자신의 주군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는 그 암살범을 제거 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바쳐서 접근하기도 하고 각종 탈법과 위법, 비윤리적 방법을 동원해 마침내 그를 제거한다. 그러면 일본사회에서는 이 사무라이는 칭송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지는 일본사회의 도덕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외적 동인이 된다.

 

2. 일본이 사회계층질서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이유

 정리하면 일본사회를 움직이는 규범은 결국 사회계층의 유지다. 일본은 이를 위해 중국의 유교윤리중 효와 충사상을 자신들의 사회계층유지의 맞게 번안해 온을 만들어내었으며 그 온을 실행하는 것이 기무와 기리다. 기무와 기리는 어쨌든 평생 갚기 힘든 것으로 사회피지배계층의 일본 국가 자체와 상층부를 위해 평생 노력해야하는 동인을 제공하며 이로써 사회체제가 유지된다. 온을 갚는 과정에서 일본인은 하지로 인해 혹은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로 인해 외적인 혹은 내적인인 강압을 받게 되며, 그래서인지 허용적인 쾌락의 추구로 잠시 위안을 추구하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어쨌어 이렇게 폐쇄적인 형태의 사회규범이 일본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이점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은듯 한데. 그가 남긴 한줄에서 힌트를 얻자면 결국 안전이 아닌가 싶다. 베네딕트는 책에서 일본인들이 사회계층적 질서를 유지하고 거기서 맡은 바 기무와 기리를 할 때 안전을 느낀다고 말했다. 온을 갚는 행위의 목적이 자신의 안전확보에 있다는 점인데 결국 이것이 이 체제의 목적이 된다. 일본에 안전이 중요한 이유로는 두 가지 정도가 생각이 든다. 우선 그들의 자연환경이다. 지진과 화산활동, 태풍과 해일이 몸추지 않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끊임없는 불안을 느끼고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을 법 하다. 다음은 섬이라는 특성이다. 일본은 중국, 한국과는 달리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섬으로 고립되었다보니 각종 전쟁이나 사회적 동란에서 달아날 곳이 마땅치 않다. 실제로 중국이나 한국의 고대민들은 전란을 피해 서로의 나라로 이민하는 것이 잦았다. 하지만 섬인 일본은 도망갈 곳이 없으니 아무래도 안전확보가 더욱 어려웠고, 이로 인해 절대 변하지 않는 안정적 사회질서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절대 변하지 않는 정치질서가 천황제였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역사에서도 인간의 욕심으로 정권교체는 무수히 일어났지만 천황은 허수아비일지언정 변하지 않았다. 아무도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으니 심지어 지금까지도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3. 일본의 이런 체계가 낳은 문제

 일본의 이런 사회유지규범이 낳는 문제는 사회의 보수성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계층유지를 위한 질서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에서 그 사회질서의 붕괴는 일어날 수 없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이식받고 그토록 높은 국민소득과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민주화를 이룰수 없었던 요인이다. 사회계층 유지가 사회의 주 목적이다보니 민주사회에서는 보기 드물고 정치인들의 자리 대물림도 아직까지 일어난다. 문제의 아베도 기시노부스케의 외손자이며 무례한 발언을 일삼은 고노외상도 고노담화를 한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다음은 사회전체의 비윤리성이다. 일본사회의 윤리는 내면적 절대규범이 없다보니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올바른 행동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충의 최고점이 있는 천황이 전쟁수행을 명하자 그들은 옥쇄를 각오하고 실행하며 전쟁에 자신을 희생했고, 그 천황이 항복할 것을 명하자 바로 순한 양이되어 미국인들을 받아들였다. 즉, 사회기득권층이 내린 전체적인 판단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려 저항하던가 비판적 판단을 내리기 매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지금의 한일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일본 시민은 소수일 수 밖에 없으며 일본이란 나라 자체가 언제든지 잘못된 방향으로 쉽게 방향타를 틀 수 있는 위험성을 내재하게 된다.

 

4. 이런 폐쇄성에도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이유

 일본사회의 이런 폐쇄성에도 그들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매우 의외의 일이다. 물론 사회계층질서의 유지를 위해 상층의 판단에 쉽게 따라가는 일본대중을 생각한다면 근대화로의 전환에 하층민의 저항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천황 폐하의 명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방향을 전환할 상층부가 된다. 실제로 서구 세력이 접근하였을때 도쿠가와 막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과 별 차이 없는 쇄국을 단행했다. 하지만 막부는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새로운 계층이 이자릴 차지 하게 된다.

 이들은 근대 이후 성장한 상인계층이었는데 이들은 사무라이 계층과 결탁해있었다. 일본의 사회질서는 그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계층간의 교류가 가능했는데 부유한 상인이 자신의 아들을 사무라이의 양자로 입적한다던가, 서로 통혼하는 방식이 가능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부유한 상인이 사무라이 계층이 될 수 있었고, 이로써 양계층은 결탁해왔다. 때문에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기존의 국가지배계층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기득권이 유지된체 사회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되었다. 실제로 유신 정부는 근대화를 단행하면서 서구적 법개혁을 했지만 상층부의 기득권을 보장해주었다. 토지대장을 몰수하고 계급제도도 철폐했지만 다이묘들에게 기존에 받던 조세의 절반을 보장해주었고, 토지대장을 몰수한 시점에는 향후 그들이 받아야 했던 봉록을 일시불로 지급해주었다. 일부의 상류계층들을 자본주의가 시작한 시점에 이미 자본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고 국가가 주도하던 산업을 불하받아 지금의 일본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즉,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회계층질서를 다른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국이나 중국의 근대화의 길패가 결국 사회지배계층이 결국 자신의 기득권유지를 위해 미적거렸던 것이 하나의 큰 원인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성공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어찌보면 일본은 뿌리부터 서구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이 주창했던 '동도서기'에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도서기에 불과했던게 현재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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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이야기 :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그리고 석유 -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그리고 석유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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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욕에 대한 생물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애초에 우린 채워지지 않는 그릇인게 분명한데, 특히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한 의식주 욕구와 더불어 사회적 위치를 과시하여 번식과 생존을 더 유리하게 하는 과시욕이 있기에 사치품에 대한 욕망도 상당하다. 이 책이 다루는 상품은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다. 모두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지만 이중 생존에 필수품은 소금 하나뿐이다. 물론 석유도 이젠 생존 필수품에 가깝긴하다. 하지만 나머지 모피, 보석, 향신료는 그렇지 않다. 

 필수품이건 사치품이건 이들은 강한 인간의 욕망을 불러왔고, 이 욕망은 자원의 회소성과 지역적 편중성으로 더욱 배가되었다. 구하기 힘든 만큼 더욱 과시가 쉽고, 비쌌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사람들이 목숨걸고 피를 부를 만큼 이를 얻기 위해 별짓을 다했기 때문이다. 다섯가지 필수품이 만들어간 사람들의 역사를 살펴보자.

 

1. 소금

 지금은 지천에 널린게 소금이며 나트륨과다로 문제가 되지만 사실 소금은 생존에 필수품이다. 농경이전엔 육식을 많이 하여 육류의 소금기를 먹었기에 소금은 필수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농경으로 육식이 크게 줄자 소금은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 되었다. 즉, 소금의 교역은 농경의 역사와 함께한다는 셈이다.

 현재는 바닷물을 가두어 점차 농도를 올려가며 최종적으로 소금을 얻는 천일제염업이 있지만 과거엔 그런 방법이없었다. 또한 알았다 하더라도 천일 제염업은 강한 바람과 햇살, 드넓은 갯벌을 필요로 하기에 애초에 할수 있는 장소도 드물다. 동아시아에서도 한중일중 한국만이 가능하다.  

 어쨌든 그렇기에 문명의 발달은 소금과 함께했다. 세계 4대문명은 모두 강 하류에서 시작하는데 여기엔 물과 식량과 더불어 소금을 구하기 쉽다는 이점이 작용한다. 동아시아의 홍산문명은 큰 강을 기고 있지 않음에도 염수와 염호를 인근에 갖고 있었기에 발흥이 가능했다고 저자는 본다.

 소금으로 교역을 시작한 것은 우선 유럽의 페니키아인들이다. 그들은 나라의 뒷쪽으로는 높다란 레바논 산맥이 자리하고 자신들의 평야는 협소하여 애초에 바다로 진출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들은 이집트의 소금호수에서 조염을 가져와 이를 물에 놀이고 끓여 최초로 정제염을 만들었다. 유럽의 지중해는 워낙 깊은 바다에 해안이 대부분 절벽이기에 소금생산지가 무척 적었다. 페니키아는 이런 소금의 회소성으로 유럽 각지를 누비며 부강해졌다.

 다음 타자는 베네치아였다. 원래 베네토 지역에 거주하던 이들은 무시무시한 훈족이 쳐들어오자 살기위해 고려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바다로 도망가는 것이었는데 마침 앞바다 갯벌에 섬이 있어 그리로 도망갔고 그렇게 훈족을 피할수 있었다. 무사히 도망쳤다라는 이탈리아 말에서 베네치아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위치가 비잔틴과 슬라브세계, 서방세계와 이슬람세계, 알프스의 여러 협로와 수로를 통해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로 연결되는 천혜의 중계지역이다. 이런 위치를 통해 자신들의 앞바다에서 천일제염업으로 소금을 생산했고 이를 팔았다.

 소금으로 흥한 마지막은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청어산업으로 흥했는데 한 어부가 청어를 쉽게 손질하는 칼을 발명한다. 이 칼로 청어의 손질이 매우 빨라졌고, 보관을 위해 소금이 필요해졌다. 과거엔 어선의 어업시간과 반경이 짧았는데 물고기를 잡아서 빨리 돌아오지 않으면 모두 썩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어를 잡은후 바로 내장을 손질하고 소금에 절이면 무려 1년이상 보관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 어선들의 조업시간과 활동반경은 매우 넓어졌고, 어획량도 급증한다.

 네덜란드 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바다 정제염을 대거 확보하고 이를 한번 더 정제하여 소금의 질을 엄청나게 올렸다. 그들은 분업화도 시도하여 청어 손질에 각 단계가 있었고 이를 통해 균질품을 생산할수 있어 청어가 매우 인기가 좋았다.

 

2. 모피

 모피는 가죽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다. 쥐부터, 비버, 담비, 사슴, 곰, 너구리등 털이 많은 동물의 가죽을 주로 칭하는데 이 모피는 해당동물의 절명과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영토확장을 불러왔다.

 모피는 털가죽동물이 있는 모든곳에서 교역대상이었지만 러시아서 우선 흥했다. 러시아는 1581년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린 후 이반 4세가 모피교역을 목적으로 코사크 용병에 의한 동진을 시작했다. 당시 시베리아에는 고작 인구 20만에 120여개의 부족만이 존재하여 이렇다할 장애물이 없었다. 경제적 동인과 장애물이 없음이 함께 작용하여 하루에 100km2 이라는 놀라운 속도로 동진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무려 100여년간의 남획으로 시베리아에서 모피가 더이상 구하기 어려워지자 러시아는 남진하여 중국의 모피를 노리게 된다. 이에 청이 긴장하여 조선에 파병을 요청한 것이 나선정벌이다. 임란과 병란 이후 국방을 강화한 조선은 5천이상의 조총병을 갖고 있었는데 이들이 이 때 활약한다. 화력이 당시 러시아군을 앞서 조선은 이들을 쉽게 격멸하였고 당시 러시아인들은 조선인들의 모자를 보고 머리가 큰 녀석들이 무섭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에서 좌절한 러시아의 모피 욕심은 동으로 이어져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로 향한다. 거기서도 모피가 아작나자 다음은 물개와 바다사자의 차례가 된다.

 모피러시는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17세기 러시아의 모피가 바닥나자 북미지역이 새로운 공급처로 자리한다. 북미에는 비버가 많았기에 동부의 넓은 숲지역에서 비버사냥이 이어졌고, 인디언들과 네덜란드인들이 교역을 했다. 비버 남획은 심각하여 1720년까지 무려 2백만 마리의 비버가 사라졌고 18세기의 기록을 보면 한 해에 평균 비버 26만 너구리 23만 여우 2만 곰 2만5천등 50만 마리가 넘는 털가죽 동물이 사냥당했다. 특히, 비버는 잡기가 무척 쉬우면 반면 번식력이 낮기에 금방사라지고 만다.

 모피가 동부에서 사라지자 골드러시 마냥 서부러 사람들은 향한다. 서부의 산맥 너머에 모피가 많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하지만 모피가 생각보다 많지 않자 역시 러시아처럼 해달과 바다표범 사냥에 나섰다.

 모피사냥을 현재도 진행중이다. 덴마크는 연간 1200만 마리의 밍크를 사육하며 중국은 1800만 마리에 달한다. 캐나다에서는 한해 털가죽과 오메가 3등을 위해 30여만 마리의 바다표범을 사냥하며 털이 희고 복슬복슬한 새끼의 경우는 사냥꾼이 가죽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산채로 잡아 껍질을 벗긴다고 한다.  

 모피는 아시아에서도 인기였다. 과거 고조선은 모피 무역의 중심지였다. 철기나 청동기 이전엔 모피를 가공할 만한 도구가 마뜩지 않았는데 고조선 인근에서 나는 흑요석이 아주 적합했다. 하지만 흑요석은 화산활동이 강하게 일어난 곳에서만 있었던 것이기에 무척 희귀했고 이로 인해 고조선은 모피와 흑요석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모피 교역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 시대까진 잘 이어지지만 북방을 상실한 고려 이후로는 수입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모피  수입국이 되었으며 이 사치품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부를 손실하게 되었다. 반면 모피교역을 장악한 이 지역의 야인들이 성장하여 강한 나라들을 세우고 우리와 중국을 위협하게 되었다.

 

3. 보석

보석의 역사는 유대인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본디 보석은 금이나 은에 비해 값어치가 없었는데 모래가루를 이용해 연마하던 것을 유대인들이 물레를 이용한 연마기술을 개발한 후 광채가 살아나자 가치가 폭등한다. 유대인들은 개방적이던 이베리아 반도에 많이 거주하였는데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달성후 추방령이 갑작스레 내려진다. 그들에겐 불과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당시 스페인 인구의 무려 6.5%가 유대인이었다.

 항상 쫓겨나고 핍박받은 유대이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터전을 떠날 준비를 갖추는 습관이 있었다, 바로 재산을 적당히 분할하는 것이었는데 3분의 1은 현금 3분의 1은 보석 3분의 1은 기타 식이었다. 이런 식의 재산분할이 포트폴리오의 유래다. 보석은 그중에서도 환금이 용이하고 이동이 편해 선호대상이었다.

 유대인들은 개종하거나 가까운 포르투갈이나 북아프리카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으로 이주한다. 이때부터 벨기에 앤트워프가 보석 산업의 중심지가 되기 시작한다. 보석중 최고는 다이아몬드인데 희귀하던 이것이 19세기 남아공에서 대규모 광산이 발견된다. 당시 남아공 일대는 네덜란드 출신의 보어인이 자리잡고 있었고, 영국은 다이아몬드를 노려 무려 45만의 군대를 파견한다. 당시 보어인은 인구 50만정도의 병력은 최대 고작7만수준으로 영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영국은 보어전쟁을 일으켜 21만을 수용소에 강제수용하여 2만이 숨졌고 그들의 집과 토지를 강탈했다.

 이런 영국의 무도한 짓거리를 영국의 학자 존 앳킨스 홉슨은 목도하고 돌아와 책을 쓴다. 제국주의는 국가내의 부유층이 사치를 위해 정부의 통치를 강탈해서 외국의 몸에 빨판을 박아 그들의 부를 빼내려고 제국을 팽창시키는 기생적인 사회과정이란 내용을 담은 제국주의론이다. 이 책에서 후진국의 경제가 선진국에 종속된다는 종속이론이 발전하였고, 이는 레닌 이론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학자는 영국에선 인정받지 못했지만 세계대전가지 예언했다고 하니 대단할 따름이다.

 다이아몬드 하면 극악무도한 드비어스 사가 생각난다. 드비어스사 이름의 유래는 의외로 창립자가 아닌 남아공의 가난한 농부이다. 이 형제는 다이아 광산을 판면서 그 대가로 회사이름에 자신들의 이름이 쓰이기를 요구했다니 그것이 유래다. 드비어스는 유대인들의 회사로 이들이 악명이 높은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고가의 독점 정책을 장기간 펼쳤으며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익을 생산지 및 원산지와 전혀 나누지 않고 오히려 그 지역에 피를 부르는 정책만 감행했다는 점이다.

 드비어스는 초기 회장인 세실로즈가 남아공 정계에 진출해 총독이 되면서 법과 정책을 자기 회사에 유리하게 집행하며 힘을 키워간다. 그들은 이를 이용하여 다이아 광산을 독점하고 병합해갔다. 세실 로즈 사후엔 오펜하이머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그는 회사의 막강한 위치를 이용하여 공급을 조절하고 가격 조작으로 약한 경쟁사를 파산위기에 몰아넣은 후  헐값에 강탈하는 수법을 즐겨 사용했다. 대공황은 그에게 기회여서 위기에 몰린 다이아 광산을 매입했고 싼 값에 나오는 전세계 다이아를 헐값에 매집했다. 이후 견고해진 독점적 위치를 이용 고가로 다이아몬드를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비어스의 공급체계는 생산자-드비어스-사이드홀더-소매상으로 이어진다. 드비어스는 유리한 위치를 이용 10캐럿에 고작 15달러의 가격으로 다이아몬드를 생산자로부터 공급받는다. 드비어스는 놀랍게도 판매자를 자신들이 지정하는데 이들이 사이드홀더다. 사이드 홀더로 지정되어 드비어서로부터 다이아를 살수 있게 되면 엄청난 이익을 얻으므로 사이드 홀더는 드비어스에게 아주 비싸게 다이아를 구매한 후 이를 더욱 비싸게 소매상으로 넘기며 소매상은 이를 더욱 비싸게 소비자에 판매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15달러짜리 10캐럿 다이아는 무려 12만 5천달러에 이르게 된다. 과정마다 10배이상의 폭리를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러시아와 결탁한 레비에프의 등장으로 드비어스의 위치는 예전만 못하다. 한때 그들의 사이드 홀더중 하나에 불과했던 레비에프는 러시아의 다이아 광산을 이용 공급을 시작했다. 그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접근해 아프리카 생산지에서 원석 가공을 제안하여 그들에게 일자리와 부를 나눠주겠다고 접근하여 호응을 얻어 시장을 잠식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최근엔 다이아매장이 아닌 인터넷을 통한 구매 등 공급처가 다양화 되면서 다이아 가격은 다소 하락하는 추세라고 한다.

 

4. 향신료

염장은 식품의 보존에 그만이었지만 배부른 유럽의 중세귀족들은 계속된 염장식품에 싫증이났다. 그들은 신선한 스테이크를 선호했는데 향신료를 뿌려 맛과 고기 비린내를 제거하고 보관도 오래가는 스테이크를 좋아했다. 문제는 향신료가 열대성 작물이라 유럽에선 전혀 재배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몽골제국의 붕괴로 안정적인 교역루트가 이슬람에 막히자 유럽의 향신료 가격은 폭등한다. 이 경제적 요인은 대서양에 인접했으며 이제 막 통일에 성공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모험을 감행하게 한다. 이들은 향신료의 주산지인 인도로 향했는데 차이가 있다면 포르투갈은 동으로 스페인은 서로 향했다는 점이다. 아메리카의 존재를 몰랐기에 이 승부를 포르투갈의 승리로 끝난다. 동남아와 인도 일부를 차지한 포르트갈은 중국남부 까지 진출했으며 해적소탕을 미끼로 건 포르투갈의 제안에 중국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포르투갈은 요즘 회자되는 이란의 호르모즈 해협인근을 차지했는데 이로 인해 무역풍에 구애받지 않고 거래가 가능해져 거래의 회전수를 획기적으로 높여 막대한 이익을 누릴수 있었다.

 포르투갈의 뒤를 이은 것은 네덜란드와 영국이었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영국은 인도를 위주로 교역했는데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만들고 아시아 요역을 주도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막대한 권한을 이회사에 부여했는데 해상교역권, 식민지 개척 및 관리권, 관리임명권, 전쟁선포권, 치외법권등 사실상 국가나 마찬가지의 권한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동인도회사는 빠른 타이밍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단과 행동이 가능했다.

 영국은 인도에서는 모직물을 중국에선 차를 교역했다. 차는 녹차, 우롱차, 홍차로 분류되는데 차 잎을 따 온도, 습도, 시간을 잘 맞추면 차 잎이 효소가 산화작용으로 발효되어 검게변하는데 이것이 홍차다. 반쯤 발효되면 우롱차가 된다. 영국인이 차를 즐기게 된 것은 과거 냉장고가 없이 차를 배로 운반하다보니 더운 열대에서 차 잎이 자연히 홍차가 되어서 그렇다. 영국 출신으로 홍차를 즐기던 미국인들은 보스턴 차사건 이후 커피로 돌아섰는데 그래서 아직도 영국은 차문화가 미국은 커피문화가 발달했다.

 

5. 석유

 첨단 산업이 발흥하고 4차산업혁명시대를 눈앞에 두며 석유는 과거의 산업 느낌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2011년 기준 세계 5대 기업중 4개가 정유회사이며 이들의 순이익은 매출의 무려 10%이상일정도로 석유의 위력은 아직 건재하며 지배적인게 사실이다.

 석유는 1855년 조지 미쉘이 석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성분분석을 의뢰하며 발흥한다. 보고서 결과 석유는 다양한 물질로 분류가 가능함이 밝혀졌고, 값싼 공정으로 당시 고래 기름을 활용하던 램프에 사용할 기름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보였다. 이후 불과 15년뒤 사용처가 아직 불분명한 석유에 사람들이 몰려 무려 75개의 유정이 개발된다. 검은 러시의 시작이었다.

 고래가 남획되어 개체수가 줄자 석유는 더욱 중요해졌다. 램프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는데 석탄을 활용하는 방법도 고래 기름을 대체할 수 있었다. 석탄을 증류하여 조명용 가스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발 우려와 가스관이 필요해 가정용으론 사용이 힘든 점든 애로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석유에서 나온 등유는 폭발위험과 가스관, 소음이 모두 발생하지 않았다.

 초기엔 지금은 오히려 가치가 낮은 등유만이 석유의 증류과정에서 필요했다. 나머지 휘발유나 경유, 찌꺼기는 모두 버려졌다. 특히 휘발유는 불이 너무 쉽게 붙고 폭발위험이 높아 처치곤란의 위험물질이었다.

 석유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록펠러다. 록펠러는 발상이 남들과 달라 유정개발보다는 석유의 정유와 운송이 돈이 된다고 보았다. 그는 정유량이 매일 달라 운송에 애를 먹던 철도회사에 일정량을 운송하는 조건으로 싼 가격에 계약을 체결해 경쟁자들을 운송비에서 압도했다.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다른 회사들을 인수합병하기 시작했고,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다. 그는 독점에 대한 생각도 남들과 달라 독점이 시작되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지면 양질의 제품을 균질하면서도 싼 가격에 공급할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의 회사 이름은 이런 철학을 반영하듯 스탠더드 오일이었고 가격도 독점적 지위 구축후 80%가 내려갔다. 물론 이윤은 그가 다 먹지만 말이다.

 록펠러는 석유가 당시 위스키나 포도주 통에 담겨 운반되어 이송중 휘발되거나 새는 경우가 만았던 것을 최초로 철제탱크를 개발하여 운송하는 생각도 해냈다.

 이렇게 새로운 연료로 등장한 석유를 모든 나라가 반긴 것은 아니었다. 석탄과 다르게 석유는 지역적 편중성이 컸다. 그러다 보니 수입을 해야 했는데 그러려면 지금도 그렇지만 안정적인 교역로가 필요했다. 또한 영국이나 독일 같이 석탄이 풍부한 국가는 자국에 관련 산업과 일자리가 많이 구축되었기에 석유로의 전환이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석탄을 사용한 증기선은 무려 10km에서 적의 눈에 띄는등 문제가 많았기에 결국 영국과 독일도 석유로의 전환을 피하지 못한다.

 잘나가던 스탠더드 오일은 반트러스트법에 의거 1911년 무려 34개사로 강제분할된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세력을 규합해 미국에는 엑슨과 모빌, 쉐브론, 텍사코, 걸프등의 정유사가 힘을 키웠고, 영국엔 BP, 로열 더치쉘이 있었다. 이 7개의 회사를 세븐시스터즈라고 하며 이들은 1975년 OPEC가 등장하기 전가지 세계 석유의 공급을 독점하며 균일 가격에 석유를 공급하며 큰 이윤을 누려왔다.

 

-오일쇼크음모론

1970년대 제4차 중동전쟁으로 발발한 오일쇼크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경제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은 마이너스로 치달았는데 한국의 마이너스 경제성장은 이 시기와 아이엠에프시기, 서브프라임모기지론사태 시기 이 세시기 뿐이다. 하여튼 당시 미국은 재정적자와 달러와의 가치 하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미국은 유가상승이 절실했는데 유가가 상승하며 석유의 결제화폐인 달러의 수요가 늘어나고 이를 통해 달러가치 상승과 재정적자의 감소 두마리 토끼를 한방에 잡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영국 역시 유가상승이 필요했다. 당시 영국은 북해유전을 발견했는데 시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당시의 유가로는 채산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은 3배정도 유가 상승이 필요했다.

 이로 인해 세븐시스터즈의 비밀회동이 그해 5월에 열렸는데 공교롭게도 불과 5개월후 제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세계는 미증유의 오일쇼크에 빠졌고, 유가는 그들의 기대 이상인 4배로 상승한다. 유가의 상승으로 미국과 영국, 세븐시스터즈는 노래를 불렀지만 다른 나라들은 막대한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에 시달리게 된다. 이 사건으로 빈국에서 부국으로 부가 대거이동했는데 경제위기는 항상 이런식으로 진행된다.

 

-아프간 침공

미국은 석유산유국이지만 소비량이 워낙 많아 세계패권의 유지를 위해 석유공급이 늘 필요했다. 중동다음으로 전략적으로 미국에 중요한 지역은 그래서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가 된다. 이 지역의 유전은 싱싱한 새로 발견한 유전이었고 해저시추임에도 채산성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스피해에는 무려 2천억 배럴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배럴당 100달러로 계산해도 무려 20조 달러가 되는 금액이다. 이를 미국이 놓칠리 없는데 문제는 이 지역에 다양한 나라가 얽혔다는 것이다.

 카스피해 주변엔 이란,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카자흐, 우즈벡, 타지키스탄이 있다. 이 지역엔 미국의 적인 러시아, 중국이 인접해서 카스피해의 석유를 이들이 차지할 우려가 있었다. 미국으로선 어떻게든 카스피해의 석유를 인도양쪽으로 끌어오는게 필요했으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국가가 아프간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초기 탈레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그들과 협상한다. 하지만 탈레반의 조건을 수용하기 어려웠던 미국은 협상 결렬후 우리가 다 아는 거짓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한다.

 

- 이라크와 이란

두차례나 전쟁을 치루고 지도자인 사담후세인 마저 제거한 미국은 지금으로선 믿기 어렵지만 오래도록 이라크와 친했다. 이는 이라크를 완충지대로 삼아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석유공급선을 안정화시키고 우방 이스라엘의 안보확보를 위함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한다. 하지만 전쟁후, 사담이 중동의 패자를 노리며 쿠웨이트를 침공해 석유공급선을 위협하자 전쟁을 개시한다. 이 전쟁은 한번 더 이어지게 되는데 이땐 사담이 감히 석유의 결제를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꾼 것에서 야기된다. 결국 미국은 한번의 전쟁을 더 치루고 사담을 제거한다.

 2차대전후 영국은 이란의 민주정권인 모사데크 정권의 석유국유화로 인해 갈등한다. 미국와 영국은 모사데크와 갈등관계였던 팔레비2세를 지원해 백색혁명으로 이란에 친미국가를 세운다.하지만 이란 전통세력의 반발이 계속되어 팔레비 왕조는 고작 20년후 이슬람혁명으로 전복된다.

 

-셰일가스

셰일가스는 수직으로 석유층을 파내려고 수평으로 강한 수압으로 지층을 분쇄하여 석유를 채취하는 방식이다. 과거 채산성이 없던 것이 기술이 개발되거 유가가 상승하며 경제력이 생겨났다. 미국은 셰일가스의 등장으로 최대의 석유수입국에서 더욱 막강한 산유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셰일가스로 무려 400만 배럴의 자체 수요를 충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OPEC에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갑작스런 400만 배럴의 수출감소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OPEC의 단합은 붕괴되고 2010년대에 끊임없이 오르던 유가는 하락세로 돌아서게 된다. 셰일가스는 오일쇼크 못지 않은 이득을 미국에 챙겨주었는데 우선 정적인 러시아와 베네주엘라가 몰락한다. 남미의 반미 세력의 중심이 차베스의 베네주엘라는 차베스의 사망과 유가폭락후 지금의 파탄에 이르렀으며 승승장구하던 러시아의 경제사정도 상당히 나빠지게 된다.

 반면 미국은 수입의 대체로 가격경쟁력이 살아나 제조업이 살아나게 되고, 달러 강세가 시작되었으며 민간소비가 진작되어 최상위 선진국임에도 무려 3%대의 경제성장률을 유가하락후 수년간 유지하게 되었다. 저유가는 한국에도 호재였다.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며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화 약세의 불리한 정황이 호전되었고, 수출경쟁력이 강화되었으며 저금리가 유지되어 인플레이션 통제가 가능했다. 또한 수출경쟁력 강화와 유가수입으로 인한 적자가 대폭 개선되어 큰 폭의 흑자를 수년간 기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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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철학 -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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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철학사를 정리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은 의심에 초점을 두어 정리한 책이다. 남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에 대해 문제점을 갖고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간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총 10명이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드, 하이데거, 샤르트르, 비트겐슈타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벤야민, 포퍼, 아렌트다. 책 자체도 두껍지 않고 한 철학자당 짧게 두 항목정도의 핵심사안만 다루어 이해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재밌는 책이었다. 인상적인 부분만 정리해보았다.

 

1. 마르크스

"자유로운 개인을 탄생시키면서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킬 개인의 자유와 역량을 퇴화시키는 것이 현대의 패러독스다."

- 실제로 그렇다. 지금 사회가 딱 그렇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돈과 여가, 상품들을 주지만 딱 그걸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종속시킨다.

 

"생산력 발전이라는 역사 과정은 마치 생산력을 가장 많이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계급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사발전 과정에서는 지배적인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장에 기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시점이 있다. 이 시기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모순으로 치닫고 사회적 혁명의 기준이 싹트게 된다."

- 분배가 안정되고 사회정의가 나름 실현되면서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고, 다시 이 왕조의 지배층에 의해 분배가 뒤틀리고 불의가 커지면서 생산력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착취가 더욱 커져 다시금 망해고 새 왕조가 들어서는 중국과 한국의 왕조 교체공식은 이 통찰에 거의 합치한다. 왔다 갔다 하는 면도 있지만 생산력 발전이라는 측면으로 인류가 향해간다는 점도 부인하긴 어렵다.

 

2. 니체

"기독교는 사람들의 신앙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항상 구체적 현실속의 궁핍과 위기의 비상사태를 만들어낸다."

"현실의 삶을 지옥으로 그려야 사람들은 천국을 기원한다."

"사람들은 허무주의가 기독교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하지만 니체는 기독교가 허무주의의 근원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특정 의도, 의지,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어떤 목적에 전가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목적의 개념은 사실 우리가 고안한 것이며 사실은 없는 것이다"

- 신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철학자 답게 종교에 대한 독설이 강하다. 종교가 척박한 현실을 정당화하고 이로 인해 기득권의 유지를 돕는다는 속성에서 위 말은 정말 옳다. 현세가 아름답다고 하는 종교는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종교의 없음이 사람들에게서 윤리와 존재의 이유를 허문다는 점에서 목표를 상실한 허무주의를 상실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보인다. 오히려 내적으로 그런 것을 찾을 필요도 없는데 찾으려하고,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종교를 찾는 다는 면에서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 종교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역발상이 맘에 든다.

 인간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것도 아니고 목적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발상도 좋다. 하라리가 인류3부작에서 지적해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한 허구와 비슷하다고 본다. 삶의 목적, 가치, 등 여러가지는 행복해지고 오래 살기위한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결국 우리가 만든거고 사실 없는 게 맞다.

 

3 . 프로이드

"행복이 영원히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

"개인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쾌락원칙을 따르나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공동체에 순응해야 한다"

"우리는 진화과정을 통해 너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만들어졌다"

"프로이트에 세명제"

1. 인생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쾌락 원칙의 프로그램이다

2. 쾌락 원칙은 행복해지기 위한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부과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완수될 수 없다

3. 성본능을 목적달성이 금지된 충동으로 바꿈으로써 행복을 찾을 수 있다.

- 인간을 포함한의 목적이 결국 유전자 전달과 그를 위한 성공적 번식과 생존이며 행복은 그 과정에서의 부산물이다. 우리에겐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지만.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우린 너무 행복해져서도 너무 불행해져서도 안된다. 경주마가 양극단에선 멈출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이를 너무 잘 파악한듯하다. 거기에 인간의 행복이란게 집단 생활을 시작한 시점에선 그리고 협력이 공리를 더욱 크게 한다는 점이 유전자에 반영된 이후로는 인간은 집단을 떠나선 정의되기 어려워졌다.

 프로이드의 세명제는 정말 완벽해 보인다. 세번째 것을 성본능이 아니라 그냥 그것을 포함한 일반적 본능으로 했다면 말이다.

 

4. 아렌트

"경제는 필연성을 해결하고 정치는 자유를 추구한다"

"정치는 난민이나 잉여처럼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단순히 행정적 기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세계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정치다"

"잉여존재가 즉면한 진정한 위태로움은 경제적 궁핍뿐만 아니라 공동세계를 상실한 무세계성이다"

"제3제국의 악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 악을 인식하게 되는 특징을 상실한 것이다"

- 지금은 경제와 정치가 분리되는걸 상상하기 어렵지만 저때만 해도 그리고 좀 전에도 학자들은 둘은 분리해야 마땅하다고 본듯하다. 자본주의가 본격화하며 경제가 정치를 잠식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거의 모든 국가가 그러하고 경제적 실패는 곧 정권의 상실로 연결된다는 면에서 이런 우려는 타당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어느 나라건 정치가 잘 안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사회 소외계층의 경제적으로 가난해질 뿐더러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낼 공간, 그리고 정치를 통해 이들이 함께 나아갈 공동공간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인상적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록 이게 안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경제가 잘 나가다 어려워지면 우경화하여 이게 더욱 안되는 듯 하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정말 극악한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 사람들은 국가나 법의 명령, 혹은 그걸 포장한 거짓말로 인해 악함에 대한 민감성을 상실하고 그 행위를 자행한다. 나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까운 일본이 그러하다. 그들은 대동아 공영권이란 허황된 주장에 말려 대부분의 국민들이 한국과 중국을 서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논리에 묻혀 식민지배와 전쟁에 동조했다. 백여년이 지났고, 민주국가로 탈변했지만 무늬만 그런지라 여전히 자국 보수 우익의 논리에만 몰려 현재 갈등상황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악이 되지 않으려면 꾸준히 공부하고 진실을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긴 일본 탓만 하기도 그렇다. 우리도 여러번 잘못된 논리에 묻혀 잘못된 정치인을 뽑지 않았는가. 그가 우리 소외계층에게 한짓을 본다면 우리 역시 평범한 악이 된적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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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잠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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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며칠을 못잤다. 더우니 게임에 삼매경에 빠져, 하루 밤을 세었다가 낮과 밤이 뒤바뀌어버렸다. 차츰 시차를 회복중인데, 그래서 어제 겨우 2시경에 잠들수 있었다. 휴가가 끝나기전 빨리 회복해야 한다. 이번 읽은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과 관련한 소설로 소재도 독특하고 재밌었다. 잠을 못자는 시점에 잠에 관한 소설을 읽으니 남일 같지도 않았다.

 배경은 프랑스로 이 나라가 이리 잠을 못자는줄은 몰랐다. 20명 중 10명가량이 잠을 잘 못자고 상당수는 수면제를 정기 복용한다. 잠은 무려 인생의 삼분지 일을 차지하고, 장기기억의 형성과 창의적인 면, 건강 등 다수의 신체작용과 관련한 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나 프랑스나 잠을 천시하고 중요시하지 않는다. 너무 많이자면 안좋다는 우화나 동화도 참 많다. 잠을 자주자도 좋고 권장하는 문화적 흔적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책에 의하면 잠은 5단계다. 잠이들려는 1단계와 얕은 잠의 2단계 느린잠의 3단계 깊은 잠의 4단계다. 꿈은 4단계에서 꾸기 시작하며 5단계에서는 꿈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갈등이 해결, 해소된다. 5단계는 역설수면 단계로 잠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각성에 가까운 단계다. 이 단계들은 10에서 50분이 걸리며 깨지 않으면 자는동안 이것들이 계속 반복된다. 책은 여기서 독창적으로 6단계의 잠단계를 설정하며 이게 소설의 단초가 된다.

  6단계는 더욱 각성상태이며 아직 인류는 여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에 도달하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람이 프랑스인 카롤린이다. 카롤린은 의사로 수면전문가다. 그녀의 아들은 자크이고, 남편은 프랑시스 클라인으로 항해사다. 카롤린은 어려서 몽유병으로 큰 상처를 입었는데 소설에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아무래도 남동생을 다치게 한듯하다. 이는 치유되지 않아 카롤린은 커서 아들이 생겨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 몽유병상태에서 폭식을 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남편 프랑시스는 무리한 세계 항해기록에 도전하다 사고로 사망하여 일찍 퇴장하고, 소설은 수면 6단계를 찾아 말레이시아로 까지 떠나는 카롤린과 그녀를 찾아나서는 자크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주제가 워낙 흥미롭다 보니 재밌었다. 지난번 읽었던 고양이에서의 실망을 만회한 느낌. 재밌는 아이디어도 몇개 있었는데 이들은 잠의 6단계에 도달한 후, 사람의 꿈을 이미지와 하는데 성공하고 이를 극장상영하기도 한다. 정말 재밌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엉망일수 있겠지만. 미래 실제 이런 사회가 올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밌고 끔찍하고 야한 꿈을 집에있는 간단한 장치로 영화하해서 스스로 보고 너튜브에 올린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재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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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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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발다치가 낳은 에이머스 데커의 3번째 시리즈다. 작년에 나왔고, 이 책의 마지막을 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4번째 시리즈도 아마 예약되어 있는듯 하다. 데커는 여전히 과잉기억증후군에 시달?리고 있고, 그 덕에 FBI에서 일한다. 하긴 모든 걸 기억하고 이것을 조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커라면 굳이 FBI가 아니더라도 어느 직업이든 가능할 것 같긴하다.

 이번 시리즈는 스케일이 커졌다. 1,2편도 개인을 다소 넘어서는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사건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3편은 나라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물론 처음엔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여러 퍼즐을 조합하니 그리되었다는걸 알게되지만.

 데커는 워싱턴 D.C의 FBI의 본부인 후버빌딩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늘 그날 같은 아침이었지만 데커앞의 남자가 갑작스레 총을 뽑았다. 놀라는 사이 남자는 데커 뒤의 여자를 쏘았는데 여자는 즉사한다. 그리고 남자는 데커가 말릴틈도 없이 그대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쏜다. 남자는 그럼에도 살았지만 잠시 연명했을 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유언을 남기고 죽고만다.

 데커는 자신앞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데 뭔가 이상하다. 조사할수록 두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면식도 없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 가해자인 데브니는 보안 관련 기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딸 넷을 둔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피해자인 버크셔 역시 대체교사로 근무하면서 호스피스 병원에 봉사활동을 나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가해자인 데브니에게나 만 집중하는 사이 데커는 특유의 감각을 발휘해 버크셔에 집중한다. 버크셔를 알아보니 이 여자 이상한데가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가족도 전혀없었고, 특히 지난 10년 이전의 기록이 전혀 남아있질 않았다. 거기에 봉급이 낮은 교사임에도 최고급 아파트에 고급 승용차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퍼즐은 쉽게 풀리진 않지만 데커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도움을 받아 역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 시리즈를 3권이나 보게되니 공통점이 보인다.

 우선 데커의 친구가 하나씩 늘어간다는 것이다. 1편에선 데커의 사건에 관심을 보인 재미슨, 2편에서는 사건의 당사자였던 마스 3편에선 DIA요원 브라운 하퍼다. 이렇게 친구가 늘수록 데커는 사회성도 늘어간다. 이번 편에선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생길수록 파괴된 인간성이 회복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항상 비가 내린다는 점이다. 오하이오든 앨라배마든 텍사스든 심지어 워싱턴이든 데커가 가는 곳은 항상 비가내린다. 마치 영화세븐같은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그리고 데커가 맑은 날을 싫어하는 점도 작가가 고려한듯 하다. 데커가 맑은 날을 싫어하는 이유는 화창한 날에 딸과 아내 처남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공통점은 데커가 사건 해결 국면에서 사실과 가정을 살핀다는 점이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데커는 사실과 가설을 구분해서 가설을 검토해나간다. 이 과정후에 중대한 국면전환이 있음을 물론이다.

 또 다른 것은 데커가 대화를 하며 우연히 힌트를 얻는 다는 것이다. 교체란 말에 영감을 얻는 식인데 실제 다른 추리물도 그런 장면을 많이 보이기도 하지만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다. 뭐 실제로 그런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은 슬슬 범인이 보인다는 것이다. 1편을 보고 느낀 것이지만 데이비드 발다치는 범인을 뜬금포로 던지지 않는다. 범인은 대개 초반부터 등장하는데 워낙 믿을 만한 인물이거나 슬쩍 지나치는 경우라 범인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이 결국 범인으로 시리즈에 나오는 경우가 많아 솔직히 2편과 3편에서는 읽으면서 범인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1편은 패턴을 몰랐으니 당했지만 말이다.

 이번 편은 사실 3작품중 스케일과 규모, 액션면에서는 가장 커졌지만 재미의 밀도는 가장 떨어졌다. 순식간에 100페이지를 순삭하는 몰입도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매력적이지만 발다치도 조금지친듯 하다. 이번편이 영화에 가장어울리기도 하는데 그런걸 작가가 노린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반드시 나올게 확실한 4편도 기대해본다. 대커가 연애란걸 하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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