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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교
EBS 미래학교 제작진 지음 / 그린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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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두고, 학교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건 전 세계적 현상이라 한국과 노르웨이, 인도, 싱가폴 네개의 나라 학생과 교사가 만나 미래학교를 만들고 그 결과물을 엮은 책이다. ebs책이니 다큐로도 나왔을 텐데 아직 보진 못했다.

 네 명의 교사는 고민했다. 수업은 어떤 교과를 할 것이며, 교육목표는 무엇인지, 교육과정은 어떻게 구성할 것이며, 미래 기술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몇명의 학생을 가르칠 것인지에 관해서다. 답은 하나하나 정해졌다. 언어는 당연히 공용어인 영어, 장소는 주최측이자 IT 강국인 한국, 학생은 각 나라의 학생을 3명씩 총 12명을 선발, 교과는 STEM에 사회과와 예술등 인문적 요소를 추가한 한국의 STEAM을 교육목표는 미래 역량은 3C로 창의성, 협업, 의사소통이었다.

 교육과정 디자인이 다소 어려웠는데 미래 역량의 배양을 목표로 강의는 최소화하고 학습들이 스스로 협업하여 배워가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3C와 더불어 메타인지 능력과 PISA지수의 향상도 목표로 삼았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무엇을 아는지와 모르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는 능력이다. 자기주도적 학습과 비슷하다. PISA지수는 PISA에서 계발할 것으로 교과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이다. 향후 해당 교과의 미래 학업성취도와 가장 관련이 높은 지수이며 한국학생들이 성적과 무관하게 대체적으로 이게 낮다.

 기술 수준은 3D 프린팅이나, 드론, 코딩을 적절히 활용했다. 하지만 미래 교육의 목표는 이런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런 기술과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다룰 컴퓨팅 사고력을 목표로 했다. 이런 부분의 한국과의 차이인데 한국의 부모들은 대개 이 기술자체의 습득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차례로 진행된다. 수학에서는 일상생활과의 관련성을 위해 지수함수 그래포와 수요공급곡선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수학과는학생들이 나이가 다르고 수준차가 많이 나 개별적인 상태파악이 힘들었는데 인공지능 학습을 통한 개별맞춤형 교육이 인상적이었다. 인공지능 학습은 중간정도 수준의 학생에게 가장 큰 효과를 보였다.

 다른 교과들도 비슷하게 수업이 이루어지는데 워낙 역량달성을 위해 융합적으로 시도되니 교과간의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미래의 성적표는 각 교과당 점수로 나타내는 객관식 시험이 아니고 해당역량을 달성하는 프로필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주목할 부분이다.

 수업을 마친후 학생들은 미래 역량 부분에서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 향상되었다. 처음엔 미래학교에 대해서 높은 기술 수준을 배우는 것을 기대하거나, 아주 어려운 것을 배우는 것을 기대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미래 역량 자체를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함께 달성하는 과정을 거쳐나가면서 이를 획득해나갔다. 결국 미래 학교의 미래 수업이라는 것은 역량달성을 목표로 미래 기술을 도구로 활용해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여 달성을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이를 교사가 개개인 혹은 협동과정을 돕는 것으로 보인다.

 무척 어려운 과제지만 이미 한국의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들이다. 책의 내용이 다소 얇아 자세한 수업과정을 알수 없어 아쉽다. 다큐를 보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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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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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사장 책을 모두 다 읽었다. 처음 나온 지대넓얕 시리즈 1-2권과 시민의 교양, 열한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까지. 그리고 이번에 더 뭐가 나올게 있나 싶었는데 영화시리즈의 스핀오프처럼 과거로 돌아가 지대넓얕 제로 편이 나왔다. 다루는 시기도 앞으로 당겨져서 축의 시대다.

 채사장의 책은 쉽고 가독성이 무척 높은 편이다. 그래서 책의 주제가 무려 철학과 종교, 경제학, 사회과학, 과학 등 상당히 많은 학문을 총체적으로 다룸에도 대중적이고 판매량이 높다. 무려 200만권을 넘게 팔았다니 대단할 뿐이다. 이번 책에서도 그의 종합적인 식견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고 이번에도 쉽게 썼다.

 책은 우주와 인간에서 시작한다. 나도 우주 관련 책을 가끔 보는 편인데, 볼때 마다 느끼는 점은 한결 같다. 신비롭고 광활하며 경이로운 우주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규모를 갖는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 성과는 그 광활한 우주가 심지어 여러 개일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놓고 있다.(다중우주론이다. 책에서도 상세히 다룬다.) 이렇게 우주는 스케일이 압도적인데 인간은 고작 우주의 천억개이상의 은하 중 하나의 은하에 속해있다. 그것도 아주 변두리에. 그리고 그것도 항성이 고작 하나뿐인 태양계에 속하고 태양계에서도 크기가 제법 작은 지구라는 행성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은 많이 향상되었긴 하지만 이 지구에 대해서도 완전히 알지 못하고, 역시 다루지도 못한다. 이 작은 행성에서 서로간에 아둥바둥거리고 산다.

 이런 인간은 우주에서 정말이지 티끌만한 존재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생각도,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란 생각도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 한마디로 이런 생각으론 더 이상 존재의 의미를 찾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채사장은 이 책에서 기발한 생각을 제시한다. 우주라는 존재가 생겨나서 최초로 우주이자 우주의 일부인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의 존재이유를 고민하며, 더불어 그 과정에서 우주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노력하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우주의 자기반성과정이 되는게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인간이 지구상의 생물과 다른 가치를 지닌 점이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 식으로 자신에게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주에게 그런 비슷한 과정을 해준다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우주자체로서 우주를 고민함으로써 우주를 가치롭게 하고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우주에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주 자체인 인간도 존재론적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이런 존재론적 의미 부여과정을 하는 것이 인간만이라는 가정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영화에 나오는 다른 외계인들이 이미 그것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한다고 해서 인간만의 값어치가 떨어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동시대에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유용한 학문적 발견을 하는 사람들에게 동등한 값어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물론 역사는 일등만 기억하긴 한다.) 하여튼.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이 올바르려면 적어도 인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그냥 우주에 속하는 부속으로서의 일부가 아니라 우주와 자신은 하나라는 생각을 마땅히 가질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생각은 매우 신비롭기도 하고 우리에게 익숙치 않으며 뭔가 잘못되거나 무속적인 생각마저 들게한다. 이는 우리가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 오랫동안 길들여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사장은 사고중지란걸 하고 우리와 우주가 사실은 하나라는 생각을 해볼 것을 이 책으로 제안한다.

 이런 우주와 인간이 하나라는 일원론적 생각은 사실 오래된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최근 현대과학의 성과가 이런 일원론적 생각을 뒷받침 한다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최신예 성과이면서 인류를 머리아프게 만드는 양자역학이 그렇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속도와 위치를 둘다 정확히 잴수 없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다. 관찰자의 행위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자는 파동이면서도 어떤경우는 입자처럼 느껴지는데 유명한 이중슬릿실험은 광자가 두 가지 성질을 모두 보여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파동같던 녀석이 관찰 행위가 영향을 미치자 입자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멀리 떨어진 양자가 동시에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주고 받는 양자얽힘 현상은 의식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이런 일원론적 생각을 뒷받침한다. 즉, 겉으론 크게 무관해 보이는 나의 나의 의식은 자아, 그리고 세계로서의 우주가 의식수준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처럼 보인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자아와 세계가 하나라는 일원론적 생각의 과학적 근거가 된다.

 이런 신박한 생각으로 채사장은 과거 축의 시대에 드러난 인류의 일원론적 생각들을 고찰한다. 증거가 없었을 뿐이지 사실 우린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축의 시대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 개체간의 물리적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고 경쟁이 심화되던 시기다. 약탈과 경쟁, 전쟁이 난무했고, 서로간에 속이는 생존경쟁이 과거와 다르게 만연해졌다. 이런 시기 인간종에겐 당연히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축의 시대의 베다와 우파니샤드, 불교, 유교와 도교, 기독교, 서양철학이다.

 이중 가장 오래된 것은 베다와 우파니샤드다. 인도 아리아인에서 비롯한 것으로 베다가 세계의 생성에 관해 신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라면 우파니샤드는 정반대로 세계에 대해 철학적 설명을 하는 책이다.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자아에는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순수한 상태인 아트만이 있다. 그리고 이 아트만은 우주의 원리인 다르마에 의해 끝없이 윤회하는 존재이다. 윤회의 모습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카르마인데 우리가 아는 업보다. 윤회와 업은 우리가 아는 선악 개념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안에서 거스름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즉, 자아로서의 나의 행위와 의지가 우주의 그것과 합치할때 윤회를 끊고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범아아일여라 한다.

 불교는 우파니샤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띤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으니 불교에서는 아트만과 같은 고정 불변의 자아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자아는 있지만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즉, 뭐라고 언어로 표현할 만한 것이 아닌 것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우해서는 고성제와 집성제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상태인 멸성제에 도달해야하며 이를 위해서 도성제의 8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이 팔정도인데 팔정도의 정도는 단순히 바른 것이 아니라 중도의 상태를 말한다. 이 중도는 단순히 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니며 역시 자아와 세계가 서로 하나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생각하고 행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체유심조에 이르게 된다.

 중국의 도가에서는 도덕경이 등장한다. 도덕경의 도는 우주의 진리이며 덕은 개인의 내면으로 자아다. 도가 우주의 법칙과 질서라면 덕은 그러한 도의 본질이 반영된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이처럼 노자는 인간의 근본 심성이 우주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으며 그런 면에서 범아일여를 생각한 사람 중의 하나다.

 유교는 도교의 이런 탈세속적 측면과는 다르게 보다 급하게 느껴지는 세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유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인인데 이는 인간사이의 실천덕목이다. 이처럼 유교의 가르침은 현실 가르침으로 실천적 학문으로서 우주와 세계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측면이 상당히 빈약했다. 더군다나 중국에서는 도교 이외에도 불교라는 강력한 철학이 퍼진다. 유교의 학자들은 이런 불교의 영향을 받아 사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데 그래서 등장한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성리학이다. 성리학의 태극도설은 음양론과 오행론을 접목하여 인간과 세계의 존재원리를 설명하고 역시 이는 범아일여의 일맥과 상통한다.

 자아와 세계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생각의 서양에서도 일원론적 생각이 마침내 등장한다. 그것은 칸트에 이르러서였는데 칸트는 이성을 신봉하는 합리론과 경험을 신봉하는 경험론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합리론은 완전한 도구로서의 이성에 대한 증거를 댈수 없었고, 지식의 확장도 설명할수 없었다. 경험론은 완벽한 경험이란 없기에 결국 진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다 외부와 내부의 세계를 분리하는 이분법을 전제한다. 때문에 칸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세계를 내부로 옮겨다 놓는다. 즉, 눈앞의 외부세계는 내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삭과정을 통해 내면에 그려진 현상세계라는 것이다. 범아일여와 상통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외부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나의 감각기관과 의식의 제약하에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칸트는 외부 세계를 기존의 물체와 구분해 물자체로 부른다.     

 이처럼 인류는 현대 양자물리학의 성과와 부합하는 일원론적 생각들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어왔다.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 막혀 우리가 이를 오래도록 잊은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현대 과학의 성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서양에 의해 촉발되었고, 일원론적 사고를 다시 돌아보게 된 것도 이로 인함이다. 일종의 모순이랄까나. 앞으로 과학이 발달할수록 우리가 우주에 대해 더욱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할 수록 일원론적 생각을 더욱 강해질 것이란 생각이든다. 우리가 복잡해하는 양자현상이나 양자얽힘등의 여러 문제는 몇차원 위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아무것도 아닐수 있다. 3차원의 존재인 우리가 이차원 및 일차원을 거기 그려진 존재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 잘 조종할수 있는 것처럼말이다.(소설 플랫랜드에 이런 장면이 많이 나온다. 종이 위의 양쪽끝에 그려진 졸라맨 둘은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린 종이를 구부려 그들을 겹치게 함으로써 순식간에 만나게 할수 있다.)  이렇게 인간이 우주와 일체로서 우리가 속하는 차원의 한계를 넘어 우주자체를 이해하고 깨닫는 날이 올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도구와 눈은 책이 말하는 것처럼 일원론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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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4
장 노엘 파비아니 지음, 필리프 베르코비치 그림, 김모 옮김, 조한나 감수 / 한빛비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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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로 배우는 시리즈는 재밌으면서도 유익하다. 한권이고 만화이기에 부담없고 재밌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만은 않다. 알찬 지식거리로 충만한 편이다. 만화로 배우는 공룡과 곤충 시리즈를 보았고 이번엔 의학이었다. 다른 시리즈도 아마 많을듯 싶다. 이러다 why시리즈 처럼 되는거 아닐런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의학시리즈는 앞선 공룡이나 곤충편보다 재미면에서 많이 떨어졌다.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고 했던게 아닌가 싶다. 장들이 좀 많고, 불과 2-3쪽에 이런걸 모두 담으려하니 큰 줄기가 느껴지지 않고, 들어오지 않는 지식만 많았다. 아쉬웠다.

 지금 우리의 의학은 상당히 서구에 의존하고 있다. 동양의학도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효과나 신뢰도 면에서 서구의학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실제 기능도 그정도 인지 모른다. 그렇다보니 이 책도 서구의학의 발달만을 다룬다.

 서구의 과학이 그렇게 발달한 것처럼 의학도 사람의 몸, 동물, 식물등을 연구하면서 발전해온다.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의학은 발전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대 도서관이 불타고, 로마인은 의외로 의학에 큰 관심이 없었으며 이윽고 중세암흑기로 이어지며 서구의 의학발전은 정체기에 머무른다. 이때 중요한 발전을 이룬게 이슬람세력에서의 의학이다. 이때 나온 선구자들이 그리스 시대의 의학과 이집트 의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 그리스, 로마시대의 의학이 명맥을 유지한다.

 서구의학 발전을 가로막은 것은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종교적 터부와 보수적 생각때문이었다. 둘은 같이 결합하기도 했는데 한 학자의 이론이 종교적으로 인정받으면 이를 반박하는 것은 굳어진 신앙을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예로 갈레노스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의학이 그러했는데 이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지는 혈액의 순환론이 받아들여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 사이 많은 이가 화형당하기도 했다.) 종교는 환자를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 콜레라나 흑사병, 천연두, 나병환자들은 처음엔 종교에서 치료의 대상이었지만 차차 악마에 씌인 사람이너 저주 받은 사람,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 정신병자도 대개 마찬가지.

 보수적 의사들은 새로운 생각을 가로막기도 하였는데 하비의 혈액순환론은 그래서 받아들여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수술기구 및 손을 소독해야한다는 당연한 생각, 맨델의 유전법칙등도 마찬가지였다. 감염부분은 다소 놀라운데, 중세나 근대의 의사들은 수술기구 및 자신의 손을 전혀 닦지 않았고, 심지어 전날 시체 해부 연습을 한 손으로 다음날 아이를 받곤 했다. 그러다보니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가 무려 40%에 달했다고 한다. 기가막히는데 한 의사는 시체를 해부하다 메스로 자신의 손을 감염시키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다음날 사망했다.

 이처럼 감염은 인간을 오래 괴롭혔는데 인간의 면역체계에 대해 알지 못했고, 감염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지 못해서였다. 현미경의 발달과 백신의 발달, 그리고 철저한 방역과 소독은 이런 감염으로부터 인간을 상당히 해방시키게 된다. 수술장갑은 꽤 오랜 후에나 만들어졌는데 한 의사가 사랑하는 사람이 손을 독한 약물에 소독해 망가지는 것을 보고 만들어냈다.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심장의 바이패스 수술이나 장기이식 등의 역사도 지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모두 20세기 후반에나 가능해졌으며 면역억제제를 발견하고, 심장을 잠시 멈추고도 수술이 가능한 순환기 등이 개발되고 나서였다.

 마취제의 개발도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불과 100년 정도인데 그 이전엔 짜르고 베고, 가르는 외과수술이 모두 마취없이 이루어졌단 이야기다. 마취약은 세가지가 같이 쓰이는데 프로포폴로 수면은 유도하고 모르핀으로 통증을 완화하며, 쿠라레로 근육을 이완시킨다. 이로써 환자가 고통없이 수술을 받고 의사도 안정적으로 외과수술을 하는게 가능해졌는데 쿠라레의 경우 근육을 이완시키므로 호흡기 계통도 마비시켜, 환자가 숨을 제대로 못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인공호흡기의 개발이 이루어진다.

 책을 보면서 지금껏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현대의학의 발전이 얼마나 더디고 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상당성과가 극히 최근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놀랐다. 유전공학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개발로 의학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 책이 좀 소홀했던게 미래 의학의 방향인데, 그부분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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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9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 51개의 질문 속에 담긴 인간 본성의 탐구, 동식물의 생태, 진화의 비밀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병화 옮김 / 이랑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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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온지 좀 오래된 책이지만 다양한 주제로 생태학과 진화론의 관점에서 책을 엮었다. 환경과 생태에 대해 생각치 못한 여러 새로운 관점을 얻은게 소득이다. 기존 생각과 많은 것이 달랐다. 관점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1. 인간

 인간의 독특한 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뛰어난 색구분 능력과 털이없는 것이다. 포유류 중 색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도 색약이 있는데 주로 X염색체로 인해 발생하므로 이것이 하나뿐인 남성에게서 10배넘게 나타난다. 적과 녹색의 구분은 익은 과일을 구분하게 하며 독과 독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므로 매우 중요했다. 또한 과일은 노랑과 파랑으로도 익기때문에 이 색들의 구분도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털이 없는데 이로 인해 몸 표면의 많은 땀구멍으로 놀라운 냉각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오래달리기능력과 오랫동안 일할 수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즉, 장시간 사냥과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털과 두꺼운 가죽으로 뒤덮인 많은 포유동물들이 장시간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비춘다면 이는 인간만의 큰 장점이다.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머리 부분에 털이 남아있는데 이는 털이 가진 노폐물 배출 효과때문으로 본다. 아미노산에는 황화수소 독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머리털을 통해 배출할 수 있다. 때문에 육식을 많이 하는 동물일수록 털이 많고 냄새가 독하다.

 인간은 태생을 통해 아이를 낳는다. 새끼의 생존력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라 많은 포유류가 이 방식을 선호하지만 인간만큼 출산에서 고통을 겪는 포유류는 없다. 실제로 개나 고양이만 봐도 한방에 새끼를 너덧씩 낳기도 한다. 인간이 고통을 겪는 이유는 인간의 머리가 크기 때문인데 두뇌가 유난히 발달한 인간은 몸대비 머리가 무척 큰 아이를 낳게 되므로 출산에서 고통이 커진다. 물론 큰 머리가 주는 이점이 워낙 크기에 대두를 포기할 순없다. 그렇다면 골반 크기를 늘리면 어떨까? 실제로 인간 여성은 사춘기를 지나 골반이 커지긴 한다. 하지만 출산의 고통을 면할 만큼 커지긴 어려운데 이는 직립보행때문이다. 직립보행의 역할을 골반의 크기를 제약하며, 지금보다 더 커질 경우 임신 시 탈장의 우려가 커진다. 출산의 고통은 이래저래 피할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2. 새

 새의 깃털은 날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많은 증거가 이미 날기전 부터 깃털이 있었음을 반증하는데 이는 깃털이 초기엔 다른 역할로 생겨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는 체온이 무려 42도 정도다 되는데 이렇게 뜨거운 이유는 물질대사를 놓이기 위해서다. 새는 진화과정에서 비행하게 되었는데 높은 에너지를 요하는 비행을 위해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른 물질대사로 요산이나 황화수소 등의 독성물질이 빠르게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동물처럼 털을 이용한 배출을 한다. 새가 깃털갈이를 자주하는 이유다.

 새는 포유류 이상으로 적응력이 높지만 파충류나 양서류처럼 여전히 난생을 하고 있다. 이는 역시 새의 높은 체온과 관련한다. 체온이 높으면 새끼가 체내애서 발생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을 낳았고, 바깥은 춥기에 역설적으로 알의 제대로 된 발생을 위해 바람을 잘 막아주는 촘촘한 둥지와 알품기가 필요하다. 새는 알을 매우 자주 낳는데 때문에 알껍질의 형성을 위한 인산칼슘이 늘 대량으로 필요하다. 인산칼슘은 이빨을 만들기 위한 주 재료기에 새들이 이가 없는 이유는 알을 자주 낳아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 상식과 다른 생각들

 흔히 영양 공급이 클수록 동식물이 생존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상당히 많은 생물들이 영양이 항상 부족한 상태에서 생존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질소고정 방법을 인류가 터득하게 되면서 지난 백년간 전세계의 산과 들, 강, 바다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비료가 살포되었다. 때문에 전지역이 항상 비옥한 상태이며 이는 영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생존을 잘 하는 생물들의 수를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역설적이게도 충분한 영양의 종의 다양성을 줄여버린 것이다.(인간도 충분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대사증후군과 비만의 증가다.)

 다음은 도시와 시골이다. 흔히 자연이 잘 보존된 시골지역이 더 다양한 생물종이 보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땅이 과도하게 영양화되기 전, 많은 생물들이 풀이 듬성등섬 자라는 빈땅에서 따사로운 햇볕에 달궈진 땅에서 진화했다. 많은 작은 동물은 생존이 이 열기가 유리하다. 하지만 땅이 영양화되면서 풀이 많이 지게 되었고, 땅에 그늘과 습기를 제공해 냉각시켜버렸다. 작은 동물이 사라지고 곧 큰 동물도 들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콘트리트와 영양이 적은 도시에선 오히려 이런 생물이 자라기 유리하다. 실제로 도시에 수 자체는 적지만 더 많은 생물종이 존재한다고 하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따로 없다.

 마지막은 대형동물의 증가다. 환경파괴로 인간이 대형동물을 절멸시키거나 꾸준히 개체수를 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자각한 이후 대형동물의 수는 지난 백년간 전반적으로 늘었다. 일단 사냥을 금지시켰고, 에너지 과잉으로 생물량이 전체적으로 늘면서 대형동물도 늘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문제도 생겨났다. 대형동물 중 위험한 포식자는 그래도 인간 주변에서 많이 제거되어 중형초식동물이 많이 증가한 것이다. 이들은 마땅한 포식자가 없어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고, 숲에서 작은 나무나 뿌리를 먹어치워 숲의 자생력을 파괴한다. 개체수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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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교육 정책피디아 - 교육을 교육답게, 학교를 학교답게, 교사를 교사답게
한기현 지음 / 맘에드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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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실제론 교육에 상당히 관심이 없는 편이다. 물론 말이 안되게 여겨질 것이다. 반세기 이상 이어지고 있는 한국 특유의 광풍적 교육열기를 학생으로서 직접 체험을 했든 아니면 부모로서 지원을 했든간에 모두가 총력전의 형태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총력전에 각 가정에서 사용한 돈과 시간, 감정 에너지의 소모는 정말 엄청났을 것이다. 그리고 총력전이기에 승자든 패자든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이처럼 한국은 교육에 관심이 있어보이지만 실상은 대학입시를 위한 성적향상에만 관심이 있다는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때문에 어떤 의도로 나오는 교육정책이든 한국사회의 학부모와 학생은 오로지 입시를 위한 성적향상의 관점에서만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사회적 평등, 평생학습, 개인의 성장과 행복, 다양성 등은 모두 후순위다. 이렇다보니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과학과 외국어 부분의 인재양성을 위해 설립한 과고와 외고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의 교육이 이렇게 된 데 이유를 찾는다면 우선 소위 개천에서 용난다는 신화를 들 수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잘 작동했던 이 원리는 기존 기득권세력이 무너진 한국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사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계층이동을 통해 성공했기에 순작용을 오래도록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계층간의 경제력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이 사다리는 이미 걷어차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사다리를 경험한 소수와 그것을 본 다수가 이 신화를 아직 견고히 믿고 있다.

 다음은 이 사다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서열화와 경쟁 논리다. 누군가를 사다리로 올려보내려면 반드시 줄 세우기가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학연, 지연, 혈연논리에 대한 강한 반대 급부로 이 사디리엔 무엇보다도 공정성이 중요했다. 때문에 시험은 장강명이 '당선, 합격, 계급'에서 말한 것처럼 공채나 객관식 시험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선발된 인원의 실제 역량보다는 상대적 잘함에 초점을 두게되었다.

 마지막은 강한 중앙집권화다. 우리 헌법은 교육의 전문성 보장을 위한 자주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허상을 뿐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정부에 의해 강력히 통제 받고 있으며 실제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교육방향을 늘 휘청거렸다. 그러다보니 교육정책은 비전문가인 정치인이나 소수 고위 공무원 혹은 현장경험이 전무한 일부 교수에 의해 수립되었다. 이렇게 수립된 정책은 아래로 향하게 되고 많은 예산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사라지면 교육현장엔 아이들과 교사들의 괴로움만 남을 뿐 아무런 유산과 효과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중앙집권적이며 서열화와 경쟁으로 대표되는 우리 교육에도 10여년 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바로 혁신 교육이다. 교육감이 선출직으로 변경되면서 정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진보교육감들이 어려운 분위기에서 당선될 수 있었고, 그렇게 분 혁신교육의 바람이 이젠 거의 전국으로 번지게 되었다. 

 혁신교육을 한마디로 정리하긴 쉽지 않지만 거칠게라도 표현한다면 학생입장에선 개개인의 성장과 발전 및 행복에 중점을 두고 교육이 학생의 삶과 관련하도록 하며 장기적으로 자신이 얻은 지식을 문제해결에 활용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교사입장에선 국가나 교육부로부터 교육의 자율성을 얻고 개인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동료교사와 협력하여 학생중심의 교육과정을 수립 운영하는 것이다.

 책은 이런 혁신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 6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우선 교육청 개혁이다. 현재 이름만 지원청이며 사실상의 간섭기관인 교육청을 정책사업을 줄임으로써 진정한 지원기관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정책사업은 80%이상 줄일 것을 목표로 하며 남는 예산은 학교에서 자유롭게 쓸수 있게 목적예산이 아닌 형태로 내리도록 한다. 또한 교육청의 여러 국과 부를 통폐합하고 정책사업의 감축으로 남는 일반공무직은 일선 학교로 내리면 교원업무 정상화에 더 큰 보탬이 되리라고 본다.

 다음은 교원업무정상화다. 우리나라의 교원은 초중등교육법에도 업는 학교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각 학교의 돌봄서비스와 방과후 학교다. 두 제도는 맞벌이 부모가 많고 살인적 노동강도와 비정규직이 많은 한국의 현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마땅히 복지의 업무로 보건복지부나 각 지자체가 수행해야함에도 정부는 이를 학교에 떠넘겼다. 때문에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학교는 적지 않은 인력을 이 사업에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 모든 업무는 교사의 몫이다. 이런 업무를 제거하고 교원에게 충분한 시간을 부여할 때 학생의 교육에 고민하는 교원 고유의 업무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게 교원업무정상화다.

 그리고 이런 업무정상화로 교원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 여유는 반드시 연구하고 협력하는 학교 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원들은 오랫동안 하향식 정책과 과중한 업무로 전문직임에도 스스로 연구하고 전문적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상실해왔다. 교원업무정상화가 된다면 학교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능력과 학생중심의 교육과정과 지자체및 마을공동체를 활용한 교육을 장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네번째는 학교의 민주화다. 교육의 주요목표가 민주시민의 양성임에도 학교현장은 놀랍게도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학교의 모든 권력과 결정권한은 학교장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승진과 관련한 인사권도 학교장이 모두 갖고 있어 민주적인 운영이 쉽지 않다. 때문에 승진제도에 대한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며 교사나 학부모에 의한 내부교장선출제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각 시도교육감들이 교장공모제의 비율을 높이고 승진체계 전체를 개편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늦었지만 매우 긍정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다섯번째는 혁신학교 네트워크의 구성과 확산과 혁신교육지구 및 혁신클러스터와 확산이다. 혁신학교는 처음엔 단위학교로 시작했지만 혁신학교과 확산되면서 그 성과가 서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초기 일부 혁신학교는 그 운영이 성공적이었음에도 구성원이 교체되자 바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네트워크의 구성및 확산은 이에 대한 대비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놀랍게도 지자체와 각 지역 교육지원청은 서로 따로 교육정책을 운영하고 있었다. 교육관련 지원사업이 지자체에도 있었다는게 놀랍긴 한데, 서울교육청과 서울시의 협력으로 처음으로 지자체와 교육청의 일원화된 교육정책 운영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특정 인사에 의한 지자체의 편중된 교육지원이 줄어들었고, 사업의 중복성도 개선되었다. 또한 지역의 우수한 교육자원활용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런 혁신지구 사업은 위에서부터 강요된 측면이 크며 이로 인해 교육현장에서 많은 업무로 다가오는 점도 책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혁신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현장의 사례나 연구성과를 보여주는 책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교육현장 뿐만 아니라 혁신교육과 관련한 교육부, 교육감, 교육청, 교육지원청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 입장에서의 정책사업과 문제점을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소중한 책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인은 교육에 관심이 없고 대학입시를 위한 성적향상에만 관심이 있다. 교육에 관심을 가질때 교육은 진정 올바른 방향으로 바뀔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교육에 특히 혁신교육에 관심을 가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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