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1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를 훔친 미술'로 유명한 작가 이진숙의 책이다. 저자는 책 '인간 다움의 순간들'에서 그것을 졸고라 칭하지만 사실 내가 본 미술 책들 중 '시대를 훔친 미술'은 단연 최고 중 하나다. 그 책에서 작가 이진숙은 서구에서 예술은 시대를 다소 앞서기도 때론 뒤따라가기도 하였는데 그것을 재밌게 잘 풀어냈다. 

 이번 책은 갤러리 101 시리즈 총 3권의 첫 번째 작품이다. 갤러리 101 시리즈는 제목처럼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시대를 조망하며 작가 101명의 삶과 작품, 시대에 대해 풀어낸 시리즈이다. 어찌 보면 시대를 훔친 미술을 더 상세하게 쓴 격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을 보다 보면 여러 작품과 작가들이 등장해 방향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책은 친절하게도 큰 장을 들어설 때마다 시대의 흐름과 주요 사건, 그에 따른 미술 사조를 설명해준다. 또한 책의 쪽의 좌측엔 작가의 이름 오른쪽엔 그 작가가 따른 사조를 기입하는 친절을 보이기도 한다.


1. 르네상스

 책 '인간 다움의 순간들' 은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를 다루는데 시기는 16세기부터 19세기 정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이 시기의 미술 사조를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르네상스다. 고대 그리스 로마 이후 서구는 종교가 지배하는 중세 천년의 암흑기에 있었다. 예술은 종교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연히 소재도 종교를 벗어날 수 없었다. 르네상스는 신에서 인간이 모처럼 중심이 되었으므로 예술의 소재도 인간으로 전환된다. 당시 르네상스의 근간이 되는 철학은 신플라톤주의다. 아름다움의 궁극적 원인인 이데아를 추구하는 미적 이상주의 자연을 재현하되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이상화태도다. 때문에 르네상스 시기의 작가들은 자연과 인간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려면서도 본질적인 미를 드러내기 위해 이상화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그래서 재현이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 재현은 눈에 보이는 자연, 사람을 그대로 묘사하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일점소실 원근법과 공기 원근법, 명암법 등 다양한 회화기법이 등장한다. 이런 경향은 19세기 인상주의 까지 지속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회화를 그리는 방법으로 프레스코화와 템페라가 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회칠을 한 후 젖은 상태에서 빠르게 그리는 수채화의 일종이며 벽에 그리다 보니 공공미술의 성격을 띄었다. 템페라는 계란 노른자에 안료를 풀어서 그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양자 모두 현실 재현에 부족함을 갖는 방법이기에 마침내 유화가 등장한다. 유화는 안료를 기름에 풀어서 그리는 방법으로 이로써 예술품은 더 강한 질감과 표현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으며 현실의 재현도 강력해졌다. 더 나아가 유화는 인간 심리의 미묘한 감정과 심리, 영혼의 미세한 떨림까지 표현 가능하게 하였다. 

 이 시기는 지금은 매우 흔한 이젤 페인팅이 등장한다. 이동이 가능한 이젤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게 가능해지면서 예술품은 사적인 재산의 일부가 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초상화가 등장한다. 기존에 초상화는 신화나 종교적 인물만이 대상이었으나 이젠 평범한 세속의 인물이 주인공이 되면서 개인의 가치가 서서히 증대됨을 보여주었다. 

 르네상스를 연 작가로는 이탈리아의 마사초가 꼽힌다. 마사초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그가 그림자를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중세 천년간 예술의 대상은 신이나 성인으로 이들은 모두 빛 그 자체이므로 그림자가 존재할 수 없다. 때문에 그림자를 그렸다는 것은 예술이 종교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며 그림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그림 안에 빛의 방향이 결정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원근법이 등장한다. 중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중시했기에 거리와 상관없이 중요한 것을 크게 그려넣었다. 그리다 보니 신과 성인, 왕이나 귀족이 크게 그러졌으며 평민은 그려지지 않거나 가장 작았다. 하지만 원근법이 등장하면서 신분과 상관없이 거리에 따라 크기가 달라졌다. 그 자체가 혁명적 시도였던 것이다. 

 중세에 등장한 그림 중 현재까지도 가장 가치가 높은 작품은 단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모나리자의 가치가 높은 것은 몇몇 장치 덕분인데 우선 평범한 여성이 등장하면서 심지어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웃음이 무슨 문제인가 싶겠지만 서양문화의 두축인 헬레니즘과 히브리즘 모두에서 웃음은 금기시된 것이었다. 양자는 무거운 엄숙한 문화인데 특히 중세엔 중교적 구원이 중요시되면서 현실의 삶은 경시되었다. 때문에 현실에서의 웃음을 작품으로 드러내는 것은 지금 여기서의 삶이 즐겁게 의미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된다. 심지어 모나리자에는 배경이 있는데 당시 초상화의 대상은 왕이나 귀족이었고 그들의 배경은 당연히 그들의 영지였다. 그런데 모나리자에는 당돌하게도 배경이 존재한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에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회화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려 넣는 일종의 명암법이다. 또한 당시만 해도 아직 캔버스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모나리자는 목판에 그려진 작품이다. 

 르네상스 시기는 개인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예술에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초상화가 그 증거다.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무려 상인계급의 첫 초상화다. 중세인은 거실이란 공동공간에서 거주했는데 그러다 문이 생기고 공간이 분할되어 사적인 공간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런 개인이 등장해 초상화와 더불어 자화상도 생겨난다. 1500년 알브레히트 뒤러는 놀랍게도 정면 초상화를 그렸는데 중세만 해도 정면 초상화는 신을 그릴 때만 가능했다.  


2. 매너리즘과 바로크

 매너리즘은 1520년에서 1600년까지 미술, 조화, 발전, 진보에 대한 르네상스적인 낙관을 잃어버린 시대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며 나타났다. 그래서 이들은 형식적인 유희에 탐닉하게 된다. 매너리즘적 인간은 르네상스적 확인과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로 그들의 신체는 고전적인 비례를 잃고 길쭉하게 변형되어 그려지게 된다. 바로크는 17세기에 번성한 미술 양식으로 찌그러진 모양의 진주라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 바로크 미술에서 인간은 분열하고 불안해진 세계를 살아가는 결점투성이 개인이다. 당시는 종교갈등으로 인해 구교는 권위회복과 교회의 영광을 위해 교회미술에 큰 관심과 투자를 했는데 이것이 바로크 미술의 원동력이 된다. 

 이 시기는 카라바조, 푸생, 루벤스, 벨라스케스, 램브란트, 프란스 힐, 페르메이르가 등장했으며 이들은 그림 앞에 마주서면 실제 사건을 보는 듯한 최고조의 환영주의를 이끌었다. 테네비브리즘이라는 극단적 명암대조법도 등장했는데 사건의 중요한 부분은 환하게 나타내고 나머지는 어둡게 처리하여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방법으로 카라바조가 시작해 램브란트가 이를 최고 경지로 이끌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는 스페인에서 독립한다. 네덜란드는 시민의 힘으로 독립하여 강한 자긍심과 원동력을 갖고 있었고 보통 사람들에 의한 황금기를 경험한다. 이런 평민들의 시대는 풍경화와 풍속화 정물화가 하나의 장르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카라바조는 회화의 세기인 17세기를 연 화가다. 그는 테네브리즘, 자연주의, 드라미티즘을 개발했다. 그의 자연주의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으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추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서 카라바조가 그린 몸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 생로병사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며 신성한 기적을 거부한다.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화의로 일국 일교의 원칙이 정해진다. 그래서 각 국이나 지역의 종교는 왕이나 제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예술도 이를 추종해 신의 영광을 찬양하던 미술에서 왕의 권력을 찬양하는 미술로 전환한다. 그래서 17세기 중반 이후 궁정 바로크 미술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 군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권신수설을 주장했고, 지동설을 옹호했는데 이는 천동설을 고집하는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태양과 비유되던 왕권을 강화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차원에서 자신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때문에 왕권의 정당성이 부족했던 프랑스의 마리 드 메디시스나 영국의 찰스 1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2세, 나폴레옹등이 요란하게 초상화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왕과 성직자, 광대를 모두 그린다. 그는 이들을 미화하지 않고 그려냈는데 그림에 담은 그의 인물 해석은 17세기의 관습과 편견을 넘어섰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신분이나 부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황도 그렸는데 그의 고집스러운 면과 불안한 표정을 그대로 그려내 교황자체가 매우 불안하게 여겼다고 한다. 


3.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루이 14세의 사후 그 손자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섭정시대가 등장한다. 그리고 섭정양식이라 불리는 섬세하고 장식적인 귀족 중심의 문화가 펼쳐지고 이것이 로코코다. 로코코 속 인간은 전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카사노바적 인간이거나 돈과 능력은 있으나 정치권력에서 소외한 인간이다. 신 고전주의는 퇴폐적 로코코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미술이다. 그리스 스타일을 모범 삼아 표현과 포즈에서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추구한다. 프랑스 혁명 초기 주요세력이 원하는 이성적인 사회질서에 상응하는 미적 이상을 보여주는 인간이 주인공이 된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의 보편적 미 원칙을 거부한다. 이성보다는 감정, 보편보다는 특수, 합리보다는 비합리를 추구한다. 신고전주의가 그리스 로마라는 보편을 지향했다면 낭만주의는 각국의 역사라는 개별을 향한 운동이다. 그래서 각국의 민족적 특성에 관심이 있었으며 예술가들은 인물의 개성에 주목한다.

 신고전주의는 로코코의 몽롱한 유희에서 벗어나 다시 의미 있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등장한다. 때문에 신고전주의는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교훈이 담겨야 하며 그래서 그 주인공은 영웅이다. 그래서 자크 루이스 다비의 그림에는 유독 죽음이 많으며 대상은 트로이의 핵토르나 소크라테스, 프랑스 혁명의 마라등이다.

 앵그르는 터키탕을 그렸다. 그림은 특이하게도 원형인데 이는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남성 중심의 관음증을 의미한다. 앵그르의 시대에는 비너스를 그리는게 이미 낯간지러운 시기가 된다. 그래서 비너스의 자리에는 마음놓고 쳐다봐도 되는 새로운 약자인 오달리스크라는 동양 여자가 자리한다. 이는 남성위주의 제국주의적 시각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그리고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으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하지만 과거의 혁신적 강자 스페인은 아직도 절대왕정과 종교재판에 갇혀있는 전근대적 국가였다. 프란시스 고야의 그림은 그래서 어두운 낭만주의가 된다.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 누스나 5월 3일의 저항 등은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낭만주의에서 테오도로 제리코도 어둠움을 그린다. 그가 주목한 것은 시신과 정신병자다. 그는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려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러냈으며 정신질환자들을 초상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흔히 비정상으로 분류되던 그들을 초상화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제리코는 그들을 인간의 영역으로 복귀시켰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어리석음과 약함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제리코의 낭만주의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 철학과 신고전주의가 놓치고 있던 한 측면을 예술로 발전시켜 이후 현대 예술사에서 추가 중심으로 자리 잡는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19세기 초반에는 현재의 상황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빗대어 그리는 관행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건을 직접 다루는 역사화가 등장한다. 이는 새로운 역사적 주체인 민중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독일 낭만주의는 독일 국민의 민족 의식 자각과 관련이 있으며 그들은 신고전주의는 프랑스 양식으로 간주하여 거부하고 게르만의 뿌리는 찾으려는 노력으로 낭만주의를 전개시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처럼 이 책은 조선의 미술품에 대한 책이며, 진경산수화를 그려 사실상 조선의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연 정선 시대 이후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즉, 작품들이 모두 조선 후기라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품 자체에도 주목하지만 그림이 등장한 이유나, 민중들의 삶, 작가의 상황과 당대의 정치적 상황도 모두 다루어 책에 입체적 의미를 더했다. 

 그래서 화가는 주로 김홍도, 정선, 신윤복이 주로 등장한다. 김홍도는 그림을 그릴 때 인물과 사물에 집중하기 위해 바닥이나, 벽, 창, 문을 좀처럼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다. 김홍도는 기록에 따르면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음악에도 천재였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김홍도가 그린 사람과 동물 그림은 리듬감이 풍부하다. 김홍도는 정조대의 사람으로 도화원에서만 거의 30여년을 일했다. 그는 중인신분이었는데 당대 중인의 신분 상승 분위기와 정조의 사랑으로 48세의 나이에 충청도 연풍현감으로 발령난다. 이는 좀 쉬고 오라는 정조의 배려였다. 김홍도는 매사냥을 나가는 관료의 모습으로 당시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만 초상화를 남길 수 있었는데 김홍도도 현재는 남아있지 않지만 자신의 초상화를 남겼단 기록이 있다. 김홍도는 연풍현감을 지내다 탄했되어 물러났는데 바로 그해 복직하여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그린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그렸다. 그래서 저자는 이게 김홍도에게 일을 시키기 위한 일종의 작업이 아니었는지 의심한다.

 신윤복은 풍속화에 여인들을 무척 많이 남겼다. 기생이나 일반 여인네들의 삶을 상당히 자세히 그려 한때 국내에서 신윤복을 여성으로 상상한 영화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만큼 그는 여인들의 고단한 실존에 관심이 많았다. 신윤복의 부친은 신한평으로 그 또한 유명한 화가였다. 조선시대 중인은 계급과 직업을 세습하였는데 조선의 법도상 친인척은 같은 관청에서 상피하였다. 여기에 부친 신한평은 상당히 늦은 나이인 70이 넘어서도 도화원에서 근무하였기에 신윤복이 관청에 뒤늦게 진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여인을 많이 그렸으며 특히 길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무척 많이 그렸다. 

 정선은 진경산수 속 선비얼굴이 둘 이상 나오는 경우 대개 재미를 위해 한 명의 얼굴은 옆모습이나 뒷모습으로 구성하여 일부러 그려 넣지 않았다. 

 풍속화와 더불어 기록화도 당대 조선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장치다. 1719년은 기해년으로 숙종이 59세를 맞는 해였다. 당시 세자와 연잉군, 연령균은 숙종이 한 해 일찍 기로소에 들어가기를 청하여 기로잔치가 열렸다. 기로소는 70세 이상 정2품 이상 문신이 들어가는 곳으로 관료사회에선 최고의 영예였다. 왕은 60세에 들어갔는데 숙종은 일 년 일찍 들어가게 되었다. 왕이 60세를 넘기게 되는 것은 태조 이성계 이후 무려 300여년 만의 일로 상당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숙종은 아주 오래간만의 정실 왕비가 낳은 첫째 적장자로 상당한 정통성을 가진 오래간만의 임금이었다. 숙종이 일년 일찍 기로소에 들어간 것은 탁월한 판단이었는데 숙종이 바로 일 년후 승하하기 때문이다. 당시 숙종과 같이 기로소에 있던 기로신은 10명으로 당시 기로신들이 이 국가 경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것이 기해기사첩이다. 

 기로신이어도 건강상의 이유로 기로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요건에 해당되어도 왕의 미움을 받았다면 참여하지 못했으며 품계가 다소 미달하는 경우 품계를 올려주어 기로잔치에 참가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회에는 기로신의 자제들도 관직에 있다면 참가할 수 있었는데 이 경우 기로신들의 영예는 더욱 배가 되었다. 왕의 베푼 연회가 끝나면 기로신들은 왕이 하사한 음식과 술을 갖고 돌아가 따로 사적연회를 열었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보다 편한 진정 즐기는 장소는 이곳이었을 것이다. 기로신들은 기념으로 자신의 초상화도 남겼는데 숙종이 승하하고 경종이 즉위하자 정권이 바뀌며 같이 기로잔치를 즐겼던 이들이 서로의 파벌에 따라 죽고 죽이는 사화를 겪고 마니 이 또한 슬픈 일이었다. 

 책 후반부에는 영조대의 기로잔치가 또 나오는데 숙종대와 여러 모로 차이가 있어 이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점을 배우다
강은주 지음 / 이봄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사 책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미술 사조의 변화에 따른 흐름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사회적 변화를 따르거나 또는 선도하는 예술의 흐름에 주목하기도 하고, 혹은 단순히 시대 순으로 연대기적으로 가기도 하며, 관심 있는 예술가에 따라 서술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미술사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관점에 따름이다. 책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은 독특하게도 여성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바라봤다. 이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시도인데 책을 읽기 전부터 과연 미술사로 다룰 만큼 여성 예술가가 많았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물론 책은 이런 관념부터 비판한다. 미술 사조를 충분히 잘 따르고 대표할 만한 여성 예술가도 적잖이 있으며 이들은 그간 주류 미술계로부터 실력과는 무관하게 주목받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미국의 미술 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1971년 처음으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에세이로 이 문제를 처음 거론했다. 그는 미술사 책들이 계보 서술적 방식을 취하면서 주류 화가만을 설명하고 나머지, 특히 여성 미술가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여성을 미술계에서 지웠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미술사 계보에서 제외된 건 이런 편견 외에도 시대적 한계도 있는데 소위 주류에 들기 위해서는 중요 미술 학교 졸업이나 작품 거래, 미술관 전시 등 과거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권리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 미술가에게 불리했던 또 하나의 조건은 미술계가 천장화나 조각상 처럼 상당한 육체적 노동과 정신 노동이 동원된 대작에만 주요 위치를 부여하고 장식이나 수공예 등 여성이 강하고 주로 천착했던 분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양식은 육체적 힘이 강한 남성이 더 유리하고 애초에 이런 대작의 의뢰는 남성주류 예술가에게만 의뢰되었으며, 이런 작품의 제작을 위해 필요한 기술 역시 남성에게만 전수되었다. 

 책은 이런 구조적 요인 이외에도 각 시대 예술 작품에 반영된 젠더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첫 번째는 누드화다. 서양 예술에서 누드는 빌렌드로프의 비너스를 시초로 본다. 하지만 서양 예술에서 누드는 그리스 로마 시대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여성에 집중한다. 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탐닉하고 대상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대부분으로 그래서 작품의 누드 여성들은 대부분 전면보다는 등을 보이는 수동적 자세가 많으며, 신체 역시 미적으로 이상화하기 위해 목이나 허리가 과도하기 길어지는 등 왜곡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 로마시대엔 남성 누드화가 많았는데 이는 당대에 여성보다는 젊고 아름다운 남성의 모습을 성적으로 탐닉하는 것이 대세였고 그 외엔 영웅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런 누드화에 변화를 보인 것은 마네의 올랭피아다. 여기서 여성의 누드는 당당히 전면을 향하고 있고 관객을 응시한다. 마네는 실제 활동하는 매춘부를 그렸는데 그렇기에 이를 바라보는 남성관람객들은 더욱 불편했을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몸도 실제적이고 피부 역시 핏기가 없고 얼록이 있는등 이상화한 기존 누드와는 매우 차별적이다. 구스타프 쿠르베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세상의 기원이란 작품에서 여성의 체모가 그대로 드러난 생식기를 그렸다. 그는 하층민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드러냈는데 그런 양식이 여기에도 반영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젠틸레스키란 여성 화가가 등장한다. 그는 자화상을 그렸는데 대부분의 남성은 물론 여성화가들도 자신의 자화상을 매우 전형적으로 미화해 그린 것과는 정반대의 시도를 했다. 당시의 자화상은 남성의 경우 정면의 모습에서 몸을 옆으로 틀어 위풍당당하고 이상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여성의 자화상도 비슷했으며 화가 자신이 높은 지위가 아님에도 마치 귀족여성처럼 그리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은 소매를 걷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젠틸레스키는 유딧과 하녀에서도 여성의 주도적 모습을 그린다. 기존의 유딧과 하녀는 사람의 목을 베는 장면임에도 매우 수동적이고 부자연스럽게 살해하는 장면이 많았다면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하녀와의 공조, 그리고 적극성이 눈에 띈다. 그는 유딧과 하녀를 3부작으로 그렸는데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고 살해를 위한 협력에만 집중하는 하녀와 유딧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젠틸레스키는 '수잔나와 장로들' 작품에서도 여성의 주도성을 표현한다. 수잔나와 장로들은 고대 로마의 이야기로 아름다운 수잔나의 모습을 늙은 장로들이 염탐하는 장면이다. 다른 작가들은 수잔나는 염탐당하는 위기의 수잔나를 오히려 관능적으로 그리거나 수동적으로 그린 반면 젠틸레스키는 염탐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18세기 들어 여성화가 중에서도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시는 로코코 시대로 귀족들은 초상화와 실내장식을 위한 정물화를 소비했다. 여기에 부를 쌓은 평민계층도 예술품의 소비자로 등장하여 후원계층이 많아졌고 시장도 커져 여성 예술가의 공간이 넓어졌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풍속화와 정물화는 여성이 강점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예술은 아카데미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여성은 사실상 여기에 발을 들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카데미에선 주류 미술은 역사와 신화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필수적인 인체드로잉을 가르쳤기에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힘든 여성들은 이 분야에서 활약할 수 없었다. 

 18세기엔 행복한 어머니 상이 예술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계몽주의 사조와 여성의 사회 진출 때문이다. 전통적 귀족은 혈통계승에만 집중하여 자녀를 출생만 하고 자신들은 인생을 즐기며 쾌락에 빠져사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유모에 양육하고 학령기가 되면 기숙학교에 진학하고 정략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부모와 자녀간 애정을 없었다. 계몽주의는 이 부분을 비판하고 부모가 직접 자녀는 양육해야함을 강조했기에 행복한 어머니 상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자 이에 불안함을 느낀 남성들이 여전히 여성들을 가정과 육아에 붙잡기 위해 이에 편승한 것도 이에 한몫했다. 이런 예술적 흐름은 평민을 넘어서 귀족과 왕족의 그림에까지 나타났으며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리앙트와네트란 그림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19세기엔 여성의 사회진출이 더욱 활발해지고 활동하는 공간도 넓어진다. 직업군도 다양해져 기존의 유모와 가정교사외에도 카페 여급이나 무희, 발레리나, 술집 종업원 등으로 확장한다. 하지만 한계가 뚜렸하였고 매춘부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여성의 사회진출을 성적 타락과연결시키는 예술적 시도가 많아졌으며 이에 타락한 여성상이 등장한다. 

 타락한 여성상의 대표적 시도는 팜므파탈이다. 팜므파탈은 관능성과 이를 바탕으로 남성을 파괴하는 파멸성을 가진다. 팜므파탈의 주요 소재는 이브와 샬로메, 유딧, 데릴라다. 이브는 남성에게서 태어나 인류에 선악과 수치심을 가져온 원죄의 상징이다. 샬로메는 헤롯왕의 의붓딸로 관능적인 춤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인물이다. 유딧은 원래 유대민족의 영웅이지만 적장의 목을 베는 팜므파탈로 변형된다. 데릴라는 삼손을 유혹해 그를 파멸로 이끄는 인물이다. 이 같은 팜므파탈은 산업혁명으로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피임률이 올라가며 전통적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이처럼 미술 작품 속 여성의 이미지에는 시대 흐름에 따라 중시되는 사회적 가치관이 투영된다.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책은 산업혁명 초기까지를 다루며 후속 권을 예고한다. 아마도 현대 예술에서 여성의 약진과 여전한 한계 및 제약에 대해서 다룰 듯 하다. 다음 권도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컬러의 말 : 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 컬러 시리즈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이용재 옮김 / 윌북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이야 무척이나 색이 다채롭고 화려하며 가격이 싸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화학이란게 발달하기 전까지 인간은 색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무척이나 지난했고 위험했으며 원료도 적었다. 그래서 색을 특정 계급이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로마 황제의 보라색은 무척이나 귀했기에 고약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색이 될 수 있었고 귀한 청금석에서 나오는 울트란 마린이란 파랑은 값비싼 그림이나 성모마리아의 색이 될 수 있었다.

 책 컬러의 말에는 이런 색들의 종류와 의미 과거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수록되었다. 약간 백과사전식 느낌이 강하게 나는데 이런 측면에서 컬러의 힘보다는 다소 읽기 힘들고 깊이가 부족하단 느낌이다. 

 서양은 동양과 다르게 색을 회화에서 화려하게 쓰지만 늘 그랬던 건 아니다. 서양에서도 색은 부족했고 그래서인지 과거 소묘가 순수와 지성을 상징했고 채색은 천박하고 여성적이라고 천시했다. 하지만 색이 많이 확보되기 시작하며 이런 경향도 변화한다. 

 흰색은 타자성을 품고 배타적이고 전제적이며 신경질적이다. 과거엔 흰색으로 리드화이트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맹독성이었다. 그래서 사용자와 제조자는 납중독에 걸렸다. 백악도 흰색으로 많이 썼다. 백악을 물속에서 갈고 닦으면 켜켜이 갈라지는데 맨위의 가장 곱고 하얀 켜가 파리 화이트로 고급 흰색이었고 아래 급이 낮은 것들이 백악 초크로 미술에 많이 사용되었다. 

 노랑은 인간에게 질환의 전조색이다. 그리고 황색재난, 나치가 유대인에게 부여한 노란별 등 선정주의에도 잘 쓰는 색이다. 하지만 노랑은 가치와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금발은 서양에서 이상적인 머리색으로 취급된다. 중국에서 노랑은 포르노와 황제의 색이고, 인도에서는 영혼세계의 색이며 노랑은 무엇보다 황금의 색이다. 금발은 서양에서 타락한 성적 이미지의 색이면서도 인기가 좋아 동화주인공의 절대다수가 금발이다. 미술에서 금박은 밝은 부분은 흰색, 어두은 부분은 검은색으로 만들어버려 효과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의 가치로 인해 금박은 사용되었다.

 빨강은 권력과 더불어 욕말 및 공격성 같은 치열한 색이다. 그리고 매춘부의 색이자 악마의 색이기도 하다. 빨강은 권력과 강하게 연결된다. 영국군의 레드코트와 로마장군의 색이다. 또한 국가정체성에 가장 인기가 있는 색으로 빨강이 사용된 국기는 75%나 된다. 빨강은 성적 매력으로 작용해 빨강은 입은 여종업원은 남성고객에게 팁은 26%나 더 받는다고 한다. 반면 성적은 떨어뜨리고 스포츠 경기력은 올려준다. 

 보라색은 특별하고 권력을 상징하는 색이다. 로마 집정관의 색이고 통치자의 색이다. 4세기 로마에서 보라는 오직 황제만이 사용했으며 위반자는 사형이었다. 비잔틴의 여왕은 왕손을 짙은 와인색의 방에서 출산했다고 한다. 

 파랑색은 의외로 서양에서 폄하되왔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빨강 검정 흰색을 삼색으로 숭상했다. 특히 로마인에게 파랑은 야만의 색이었다. 야만으로 대적한 켈트인이 이를 몸에 발라 사용했기 때문이다. 반면 고대 이집트는 파랑을 선호했다. 변화는 12세기에 시작된다. 프랑스의 유력귀족이자 고딕건축의 신봉자인 에보르 쉬제르가 신의 색이라며 파랑을 신봉했다. 그는 생트비 수도원 재건축을 감독했고 장인들이 유명한 코발트색 창문을 만드는 기술을 사용했다. 동정녀 마리아는 원래 어두운 색을 입었는데 이것이 파랑으로 변모한다. 그래서 중세부터 마리아의 색은 귀한 염료인 울트라 마린으로 바뀐다. 파랑 중 하나인 인디고는 인도에서 와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인디고는 교역로가 단순하면서도 통과지점이 많아 가격이 매우 비쌌다. 서양의 신항로 개척이 이뤄지고 식민지가 생겨나자 가격이 하락했고 19세기 말 인공인디고가 개발되자 평범해졌다. 파랑은 천대의 색에서 귀한 색이었다 평범해지며 오히려 대중의 색이 되어버렸다. 청바지가 대표적인데 청바지의 파랑은 패션의 민주화를 상징한다. 

 녹색은 시골의 편안함과 환경친화적 장치를 연상시킨다. 많은 문화권에서 녹색은 정원이나 봄과 연결되며 긍정적이다. 낙원이 곧 정원을 뜻하는 아랍권에서는 녹색은 12세기에 주도권을 잡는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랑한 낙원의 색이 녹색이다. 그래서 이후 아랍권의 국기는 녹색이 자리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컬러의 힘 - 내 삶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언어 컬러 시리즈
캐런 할러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에 빛이 있기에 세상은 온통 색으로 가득하다. 물체는 빛을 받아 일부를 흡수하고 나머질 반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색은 그 물체가 반사한 색이다. 고등학교 때 식물이 청색광과 적색광에서 잘 자라고 오히려 녹색광을 싫어해 반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색은 그 물건의 본질 같지만 실상은 반사하기에 어쩌면 본질과 가장 먼 셈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변이 색으로 가득하니 인간은 당연히 색을 잘 구분하게 진화했다. 

 인간은 1700만 개의 색을 구별한다. 그런데 구분할 수 있는 색은 단 3가지로 빨강, 초록, 파랑이다. 인간의 눈은 광수용기가 2개인데 적은 빛을 감지하는 간상체와 많은 빛과 색채를 처리하는 추상체다. 추상체는 다시 세 개로 나뉘는데 L추상체는 파장이 긴 빨강을 구분하고, M추상체는 중간 파장인 초록을, S추상체는 파장이 가장 짧은 파랑을 구분한다. 개는 추상체가 두 개뿐인지라 색인지가 되지 않으며 인간은 대개 여성이 남성보다 색 구분을 잘 한다. 일부 여성은 유전적 변이로 이 추상체가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경우 무려 이론상으로는 1억개의 색 구분이 가능해진다. 

 색은 간상체와 추상체를 거쳐 눈으로 들어오고 화학물질이 방출되며 이것이 뇌의 시상하부로 향한다. 시상하부는 신진대사, 식욕, 체온, 수분 조절, 수면, 자율신경계, 성기능과 재생산의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즉, 색채는 위와 같은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텐이라는 사람은 학생들이 특정한 톤의 색채를 선호하고 이것이 그 학생의 성격과 예술적 표현에 관심이 있음을 주장했다. 이를 토널 색채 팔레트라고 하며 이텐은 이것을 4가지 성격 유형과 관련지었고 다시 사계절과 관련시켰다. 라이트는 색채 시스템이 7가지 성격이 있다고 보았다. 우선 모든 톤은 사람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색채의 심리적 영향을 보편적이다. 모든 명암, 색조, 농담은 4가지 색집단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모든 색은 그 색이 속한 색집단의 다른 색과 잘 어울린다. 모든 사람은 4가지 성격 유형 중 하나로 분류된다. 모든 성격 유형은 어느 한 가지 색집단과 일치한다. 색채 계획에 대한 반응은 성격 유형의 영향을 받는다. 

 사실 색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한다. 인류가 진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색을 활용하고 색과 상호작용하는 능력도 향상했다. 그래서 신경과학자, 생물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심리학자에게 색채는 점점 더 중요한 연구주제가 되고 있다. 

 개인이 색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3가지다. 우선 색채에 대한 개인적인 연상이다. 특정, 색상, 색조에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어떤 것이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가령 좋아하는 축구티의 색, 그리운 할머니의 가디건 색등이 주는 심리적 영향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이 뿜어내는 붉은 색의 느낌은 한국인과 라이벌 일본인에게 자못 다른 의미일 것이다. 다음은 문화적 상징적 의미다. 한 사회안에서 특정 색채는 깊은 문화적 전통을 갖는다. 가령 한국인에게 붉은 색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중국에서 붉은 색은 황제의 색이자. 행운의 색이다. 마지막은 심리학적 의미로 색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는 진화의 영역과 관련하는 보편적인 부분이다. 

 학자들의 연구결과 모든 언어가 색채를 동일한 방식으로 분류한다. 단지 색을 묘사하는 단어의 수에 차이가 있을 뿐인데 이는 색채가 인간의 공통적 심리기제가 오래전에 진화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문명권에서 색의 구분은 가장 빛과 어둠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검정과 흰색이 가장 먼저인 것이다. 다음은 빨강, 초록, 노랑, 파랑의 순이다. 이는 파장 길이 순으로 가장 긴 것에서 짧은 순으로 향한다. 그 다음은 분홍, 보라, 갈색, 회색, 주황의 순이다. 

 각각의 색은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갖는다. 

 빨강은 눈에 띄고 신호, 정지, 경고 표시에 적합하다. 따뜻하고 에너지 있고, 흥분되고 남성적이며 성욕을 상징한다. 하지만 분노와 짜증, 피로, 격렬한 논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빨강은 육체적 에너지 수준을 높이나 피로와 부담을 유발하기도 한다. 빨강이 주변에 많으면 긴장되며 남성들은 빨간 옷을 입은 여성에 끌린다. 이런 이미지로 인해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코카콜라나 맥도날도 같은 회사가 이 색을 사용한다.

 분홍은 양육과 돌봄, 따뜻한 사랑의 색이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힘없는 느낌이다. 마케팅에선 감정적 호소력, 공격적 감소효과 차분함에 이용된다. 

 노랑은 우리를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자존감을 높인다. 단점은 짜증, 불안, 조바심, 우울, 자살충동이다. 노랑은 햇빛의 색으로 행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객이 아이인 경우 많이 사용되며 많은 유아기관의 색은 노랑이다. 노랑은 패스트푸드의 색이며 맥도날도는 빨강과 노랑을 같이 이용하여 빠른 움직임으로 사람을 고양시켜 회전을 빨리한다.

 주황은 친근하고 에너지가 높으며 사회적 상호작용과 대화를 촉진한다. 풍요로움의 상징이나 유치하고 경솔하며, 싸구려로 보이기도 한다. 주황은 넉넉하고 긍정적인 느낌이 있어 저가 항공사 이지젯과 명푸믑랜드 에르메스의 색이기도 하다. 주황에 검정을 섞으면 전통적 가치와 고품질의 감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갈색은 안심하고 안전한 느낌이다. 협력적이고 편안하고 따뜻하나 지루하고 생기가 없다.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이기도 하다. 오랜 전통의 호텔과 클럽이 사용한다.

 파랑은 세계적으로 가장 무난히 선호되는 색이다. 사고의 논리성과 명료성, 고요한 정신과 사색을 의미한다. 하지만 차갑고 무관심하며 냉담한 느낌도 준다. 음식의 경우 독성이 있거나 안전하지 못함을 의미해 식욕을 떨어뜨린다. 금융회사와 은행의 상당수가 파랑을 사용하는데 정직과 신뢰, 전문성이 높아보이기 때문이다.

 초록은 본능적 안정감, 평온과 조화와 균형이다. 하지만 정체와 지루함도 준다. 초록인테리어는 전원같은 편암함을 주므로 최근 맥도날도 조차 인테리어에 초록을 도입했다. 

 보라는 고차원적 우주, 영적 각성과 사색, 심사숙고의 진리탐구를 의미한다. 내향적이고 멍해지며 현실감각을 상실하기도 한다. 색을 만들기가 매우 어려워 오랜 기간 왕족, 부유층, 성직자의 색이었으며 로마의 아우구스투스는 자신만이 보라를 쓰도록 하기도 했다.

 회색은 중립의 색으로 색채가 없어 시선을 끌지 않는다. 편안함과 숨기에 적합하고 외부세계와의 차단을 의미한다. 지나치면 심신이 피로하고 고갈된다. 현대사회는 매우 급박하게 변하는 사회로 그래서인지 현대에는 안정감을 위해 회색이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흰색은 순수와 평화, 정화, 순결, 단순, 명쾌하다. 차갑고 무신경하며 무미건조하기도 하다. 위생적이고 질서정연하나 환자입장에선 춥고, 고독하다. 그래서 최근 병원과 학교는 흰색에서 탈피하고 있다.  

 토널배색조화는 자연의 모든 색이 4개의 토널 색군에 위치하고 같은 색군은 언제나 조화롭고 사람은 성격에 따라 이 토널배색군중 하나를 선호한다는 이론이다. 

 봄은 따뜻하고 선명하며 밝고 섬세하다. 노랑이 섞이고 검정은 없다. 명랑하고 밝고 봄을 연상시킨다. 워터멜론, 피치, 하늘색, 아쿠아마린, 라일락, 크림색이다. 봄의 성격유형은 외향적이고 즉흥적이며 장난기가 많고 친절, 다정하며 열정적이며 야외활동을 즐긴다. 그래서 집은 자연광이 필수적이고 마당이 넓고 발코니를 선호한다. 옷은 얇고 가벼우며 구김이 적은 직물을 선호하며 가볍고 동적인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여름은 파랑이 섞여 시원하고 섬세하며 우아하고 은근하고 점잖으나 무겁지 않은 색이다. 로즈핑크, 플럼, 세이지, 파우더 블루, 라벤더가 이런 색이다. 여름 유형의 사람은 냉정하고 침착하며 평정을 유지한다. 조용하고 평온한 집을 좋아하고 부드러운 곡선과 우아한 선의 가구를 좋아하고 비례와 균형을 좋아한다. 조용하고 품격있는 스타일을 선호하며 타원형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가을은 짙은 노랑을 포함하고 검정을 포함하는 색군이다. 가을을 연상시키고 안정적이고 사랑스럽고 묵직하다. 올리브, 포레스트, 틸블루, 가지색, 민트 오렌지, 아이보리 화이트가 이런 색이다. 가을 성격의 사람은 따뜻하고 보살핌을 잘하며 외향적이고 타인에 관심이 많다.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선호하고 자연의 질감과 색을 선호한다. 패션도 자연의 질감과 색을 선호하며 오래된 금, 호박, 비취, 황옥의 준보석류 악세사리를 좋아한다.

 겨울은 순백과 순검정을 포함하는 유일한 색군이다. 대담하고 극적이며 마젠다. 레몬 옐로, 필라박스 레드, 아이스 블루, 순회색이 포함된다. 담대하고 차가운 성격이며 타협을 모른다. 세련되고 극적이며 압도적인 느낌이다. 취향과 스타일이 담대하고 압도적이며 자신감이 있다. 정확한 선과 깨끗한 집을 선호하고 표면이 광택이 있고 각진 느낌을 좋아한다. 대비가 뚜렷한 색채를 선호하며 옷도 윤곽이 중요하다. 

 책의 후반부는 자신에게 맞는 색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자신에 맞는 토널군을 찾는 설문도 있는데 나는 여름에 속했다. 대개 맞는 느낌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채도가 좀 떨어져 편안한 보라 느낌을 좋아한다. 라벤더에 가까운 색이다. 하지만 정작 자동차, 직장, 집, 옷 중 그런 색은 단 하나도 없다.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맞나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11-28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네요.
스펙트럼을 연관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전달 안되는 명칭이란 생각을 항상 합니다.^^
색깔에 관련된 심리학 책들도 많이 나오죠
에바 헬러의 책도 재미있었던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