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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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나온지도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 제법 무서워보이는 벽돌책인데, 이런 벽돌책이 집에 몇 개 있으면서 인테리어 기능만 하고 있다. 책읽기를 좋아해도 벽돌책을 잡기엔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 요소가 필요한데, 이번엔 얼마전 읽었던 '소득의 미래'란 책과 '미국의 미래'란 책이 동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그날 내린 빗소리와 들고 있던 커피향도 무언가 작용을 했다.

 다 읽고나니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파악, 그리고 해결책으로 기본소득등의 논의 및 제시가 이 책에 기반한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수 있다. 책은 좀 두껍고 시계열적 경제상황변화를 다루어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러다보니 지난 200여년간 온전한 자료가 남아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내용의 중심이 된다. 논의를 풀어내는 과정이 좀 지루하지만 많이 어렵진 않았고, 약간의 인내력과 경제에 대한 관심과 큰 불만이 있다면 누구나 읽어낼 책으로 보인다.

 자본주의는 생긴지 200여년 가량 됐다. 그 사이 엄청난 기술변천과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변화를 이끌어내었고, 우린 이로 인해 자본주의가 심화할수록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그 폐해가 쌓여만 간다는 인상을 갖는다. 당연히 지금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고 빈부격차가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피케티가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고찰해본 결과 자본주의가 오래될수록 빈부격차나 부의분배 문제가 악화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이 같은 문제들의 원인은 자본주의 자체의 심화 발전보다는 정치, 사회적 문제가 보다 관련이 있으며 결국 지금의 상황이 악화된것도 이 때문이었. 이것이 피케티의 진단이며 그러므로 지금의 문제 역시 글로벌 누진세라는 정치적 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게 그의 결론이다.

 피케티는 딱 두 가지 공식을 제시하는데(아마도 경제학계에선 공인된 항등식인듯 하다) 하나는 자본/소득 비율(국가경제에서 자본이 연간 국민전체소득에 비해 얼마나 되는가)은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과 자본수익률의 곱이라는 것이다. 자본/소득 비율은 오늘날 대부분의 부유한 선진국에서 6-7정도이며 자본수익률은 보통 5%이다. 그러므로 국가국민소득중 자본소득은 연 30%정도가 된다. 또 다른 식은 자본/소득 비율이 성장률 나누기 저축률과 같다는 것이다. 즉, 저축률이 연간 12%이고 성장률이 2%라면 자본/소득 비율은 6이된다. 저축률이 높을 수록 자본/소득 비율은 커지며 성장률이 낮을 수록 이는 낮아진다. 여기서 저축률이 높아 자본이 쌓일 수록 빈부격차가 확대되며 성장률이 높을 수록 자본이 흩어져 빈부격차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변화는 단기간에 지속되는게 아니며 수십년의 시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책에 의하면 경제성장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1인당 생산이 증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구증가다. 두 가지가 다 극도의 정체기였던 1800년이전까지는 세계의 경제성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 기간중 여러부침은 있었지만 세계의 인구성장률은 0.06%, 1인당생산증가도 0.02%로 사실상 제로성장시대였다. 하지만 산업혁명이후 1700-2012년까지 세계GDP성장률은 무려 연간 1.6%로 0.8%는인구증가, 0.8%는 생산량증가에 기인한 것이었다. 1%정도의 성장은 당장 몇년간은 눈에 띄는 변화를 낳지 않지만 수십년간 누적된다면 그 사회는 완전히 다른 사회로 탈바꿈한다. 그야말로 폭발적 성장이있던 셈인데 이중 피케티는 인구성장이 21세기에 사실상 제로로 수렴함으로써 성장률이 크게 정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본/소득 비율은 지금은 선진국에서 5-6으로 나타나지만 100여년전인 19세기 말에는 무려 7-8에 달했다. 당시 대부분의 자본은 자본가 계층이나 상류계층이 쥐고 있었고, 나머지는 극도의 노동착취와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깨부순 것이 경제공황과 세계1-2차대전,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경제정책 변화였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재산을 주식이나 채권, 자산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었는데 양차대전은 이를 극심하게 파괴했고, 경제공황은 주식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으며,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세율 강화와 임대료 안정, 통화남발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이들의 재산을 크게 감소시켰다. 또한 세계대전의 결과 주요식민지국가들이 독립하였는데 여기에 투자한 부유층들은 그 재산을 몰수당했다. 결국 1950년에 주요 선진국의 자본/소득 비율은 2-3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엄청난 감소였다. 즉, 통념적으로 경제공황의 케인즈주의식 성공적 극복이 시장자본주의의 폐해를 끝내고 새로운 경제시대를 연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충격이 자본의 강제적 재분배를 낳았고, 이것이 인구회복 및 성장과 더불어 이례없는 경제성장을 낳았던 셈인 것이다.  

 이후 회복기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강력한 부의 재분배가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이 황금기라 여기는 1950-1980년 정도까지의 시기인데 인구의 회복과 더불어 연간 5-6%수준의 상당한 경제성장이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 역사중 유일하게 경제성장률이 자본의 수익률을 넘어선 시기였다. 이로 인해 역사상 처음으로 무려 인구의 40-50%가 유의미한 재산을 갖춘 중산층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의 사회보장을 위해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자산의 확충과 의료 및 교육으로 대변되는 사회보장책들도 완성되었다. 이는 많은 재원을 요구하는 것들이었지만 꾸준한 인구성장과 경제성장률이 이를 상쇄해주었다.

 하지만 이 황금시기에 대한 영국과 미국, 유럽국가들의 인식은 다소 다른다. 유럽국가들은 전쟁의 직접 피해로 파괴가 극심하여 이 기간에 주로 회복하고 성장한 반면, 영국과 미국은 전쟁으로인한 직접 파괴가 적어 회복이 일어날 만한 여지가 적었고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성장률로 자신들이 많이 성장하지 못하고 다른 국가들에 따라 잡힌 쇠퇴의 시기로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기간에 영국과 미국도 긍정적 성장을 했음에도 이런 인식의 차이는 영국과 미국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하는 주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하여튼 이런 자유화로 인해 1980년대 이후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른부 100여년전에 있었던 세습자본주의가 부활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인구 정체로 인한 성장률의 둔화로 부의 재분배 효과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며, 이 기간에 주요 공공자산이 민영화 되었고,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장기적으로 크게 반등하여 자산을 보유한 부유층에 유리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1980년대 이후 미국에선 소득불평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상위 10%의 국민소득비중이 과거 30-35%정도였던게 2000년대에는 무려 15-50%까지 폭등했다. 더 세부적으로 살피면 그 중 상위 1%는 9%에서 20%로, 다음 상위 4%는 11%에서 12%로, 그 다음 상위5%는 12%에서 16%로 상승했다. 최상위일수록 부가 더욱 집중한 것이다.

 소득의 두 가지인 노동소득과 자본소득 중 당연히 부유층으로 갈 수록 자본자산이 많아 자본소득이 커진다. 하지만 19세기엔 상위4-5%만 되어도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많았던 반면 오늘날에는 상위1%수준이 되어야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많아진다. 이는 자본/소득 비율이 오늘날5-6정도의 과거의 7-8수준에 이르지 못할정도로 자본의 집중화가 덜 이루어진 측면도 있지만 수퍼경영자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과도한 급여와도 관련이 있다. 1980년이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등 영미권 국가들은 자유주의로 전환하며 법인세등을 크게 낮춘다. 미국의 법인세는 거의 반세기동안 70-80%에 달할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25%수준으로 유럽국가들에 비해서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남는 돈이 수퍼경영자의 몫으로 대부분 돌아갔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하여튼 인구의 정체와 경제성장률의 둔화는 전세계적 현상이며 성장률을 높이며 세계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중국, 인도등의 개도국도 결국은 선진국과 수준이 비슷해지며 인구정체와 성장정체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21세기는 전체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은 것이며 이로 인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장기적으로 높은 시대가 될것으로 피케티는 판단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습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며 이것이 발생시킬 극도의 불평등은 민주사회의 주요합의인 능력주의에 의한 합리적 불평등과 타인들의 그것에 대한 수용을 뿌리채 흔들게 된다. 이것의 해결을 위해 피케티가 제시하는 것이 글로벌 누진세다.

 누진세는 사실 오래된 생각이지만 오랜 기간 법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실현이 되지 못했다. 중산층과 하위층은 대부분의 자산이 주택 및 약간의 현금, 주식으로 양도 적고 파악이 간단하다. 또한 이들의 소득 역시 대부분 노동소득으로 원천징수의 대상이 된다. 반면 부유층은 재산의 포트폴리오가 매우 복잡하고 자산자체가 투자자산으로 잡혀 면세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누진세율을 적용하여 매우 높은 세율이 적용되어도 그들의 실제재산이 100이라면 면세대상이 너무많아 사실상 2정도에만 높은 세율이 적용되어 누진세가 무력화된다. 또한 부유층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조세피난처를 적극 활용한다. 전세계 재산은 현재 장부상 균형이 맞지 않는 마이너스 상태인데, 이는 조세피난처로 상당자금이 흘러들어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세계GDP의 10%수준으로 엄청난 금액이다.

 피케티는 부유층의 대해 글로벌 누진세의 형태로 글로벌 자본세를 제시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부유층의 연간 소득은 상당히 파악하기 어렵다. 때문에 피케티는 비교적 낮은 세율로 그들의 전체재산이 평균적으로 벌어들일 만한 소득에 일괄적으로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글로벌 자본세를 주장한다. 이런 낮은 글로벌 자본세는 연간 국민소득의 3-4%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생각보다 작지만 큰 의미를 지닌다. 우선 부의 불평등을 막을 것이고 금융 및 은행제도에 효과적인 규제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 글로벌 자본세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가 필수다. 자본의 이동이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만큼 세계 은행간 자본의 이동 및 흐름에 대한 고도의 투명성을 갖고 협력하지 않으면 결국 자본은 조세피난처 같은 곳으로 피난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위기를 겪은 이탈리아는 고도의 누진세를 정치적으로 고려했지만 자국내 자본의 대규모 이탈을 우려한 나머지 구상에만 그치고 만 전례가 있다.

 21세기가 새로운 세습자본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자본에 대한 역사적 자료 고찰을 통한 자본주의의 변화,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자체의 속성으로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결국 깊지만 보다 정치사회적 요소와 관련이 깊었다는 것, 글로벌 자본세에 대한 생각은 이 책을 통해 많이 배운 요소였다. 하지만 10년정도 전의 책이어서인지 4차산업혁명과 관련한 생산력의 급격한 증대 가능성을 다루지 않은 것은 다소 의외의 측면이다. 성장률이 인구증가와 생산력의 증가로 이루어진다면 인구의 정체엔 동의할수 있으나 생산력의 증가역시 정체할지는 미지수다. 피케티는 이에 대해 그간 자본주의 생산력이 산업혁명 초기만큼의 큰 급격한 변화없이 완만히 증가했음므로 그런 추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았지만 지나치게 추세에만 의존한 보수적 시각이란 생각이다. 물론 4차산업혁명자체가 일자리를 많이 만들지 않을 것이 자명해보이고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한 생산력의 증가는 결국 자본의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기에 성장률이 피케티의 예상을 웃돌더라도 그게 부의 재분배에 기여할것 같지는 않다.

 이런면은 감안하더라도 좋은 책이었고 자본주의의 역사적 일관성과 변천을 많이 배울수 있는 책이었다. 그의 다른 책이 곧 출간한다니 기대해본다. 새로운 시류를 잘 담아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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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의 미래 - 앞으로 10년, 일과 소득의 질서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원재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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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저자의 뭔가 야심만만해 보이는 표지사진과 책 제목만 본다면 이건 투자책 같았다. 소득의 미래라니까 주식이 어디로 움직이고 부동산은 어찌되니 그걸 미리 사라는 그런 책들 말이다.(사실 난 그런책도 무척 좋아한다. 실천은 하지 않지만......)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기본소득을 하자고 주장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논거로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사람들의 소득이란 것이 어떻게 변해왔고 규정되었는지, 앞으로는 이렇게 될것이 자명하니 기본소득 이외엔 체제유지의 답이 없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생각보다 많이 재밌었으며 배울점도 많았다.

 

1.소득의 탄생

 우리는 보통 월급제로 받는 소득을 매우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나의 능력에 따라 일한 만큼 받는 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이는 매우 합당한 것이기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소득이라는 것은 지극히 최근에 생겨난 개념이다. 자본주의 태동전엔 대부분이 농민으로 자급자족을 하였고, 잉여물을 팔거나 교환을 통해 거둔 이익도 그리 크지 않았고 지극히 일부만 누릴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태동해서도 노동자의 확보방안으로 초기엔 소득이 아닌  노예제로 시작한다. 노예에게 소득이란게 있을리 만무했다. 노예가 아닌 자국민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가두어놓고 최저의 생계유지만을 지원하는 사실상 인신구속의 형태로 나아갔기에 소득이란 개념은 희박했다.

  자본주의 초기 무렵 농민들은 쉽사리 노동자가 되지 않았다. 자본가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가 공장에서 하루종일 열심히 일해주기를 원했지만 필요할때만 일하고  원할때는 쉬는 오래된 농부의 일상사이클이 이를 허락치 않았다. 공장의 갖은 구애에도 농민들은 공장에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이에 국가와 자본이 결탁한다. 영국같은 경우 인클로저운동이 일어나 사실상 농민들에게 생계수단을 박탈해  공장으로 몰아넣었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수단을 동원했다. 또한 초기 공장은 가내수공업 제품에 비해 큰 경쟁력이 없었다. 품질도 비슷했고 생산성도 낮았다. 하지만 기술개발로 생산성이 크게 향상하여 마침내 가내수공업 제품을 품질과 가격에서 압도하게 되고 노동자를 공장에 유치하기 위해 가내수공업 요소의 공장도입과 익숙한 환경의 제공으로 점차 노동자들을 공장에 발을 붙이게 된다.

 노동자의 초기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급여는 매우 적었고, 상대적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이 공장에 구속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낮은 급여와 혜택에로 자본가는 초기자본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생계수단을 공장에 의지하게 된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근로조건 향상 요구를 시작해다. 시대는 새로운 힘의 균형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복지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확보하고 꾸준히 재생산내기 위해 적지 않은 급여에 평생고용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아는 4대보험이라는 것도 시작되었다. 제대로된 급여를 받는 소득이라는 것이 시작된게 사실상 이 시점이다.

 

2. 세계화의 시작, 선진국 중산층의 붕괴

코끼리 곡선이란게 있다. 지난 20년간 전세계 소득 분위별 1인당 실질소득증가율을 나타낸 곡선인데 그 생김새가 마치 코끼리 같기 때문이다. 곡선에선 세 집단이 두드러지는데 개발도상국의 신흥중산층과 선진국의 중하위노동자, 전세계 최상위 1%집단이다. 지난 20년간 이 셋중 가장 큰 승자는 개발도상국의 신흥중산층이고, 다음 수혜자는 1%집단이다. 그리고 가장 큰 손실을 본 집단이 바로 선진국 중하위층 노동자다.

 세계화의 초기에 많은 학자들과 진보층들은 세계화의 결과로 부익부빈익빈이 심화하여 자본주의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 생각은 실제로 맞아 세계화의 결과 전세계적으로 빈부격차는 매우 심화되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론 나라별로 좀 양상이 달랐는데 선진국 클럽들이 후진국 클럽들과의 격차를 더 벌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것과는 달리 개발도상국들이 더 크게 부를 늘려나갔던 것이다. 세계화가 본격화할 무렵인 1993년 G7의 세계경제비중은 무려 67%에 달했다. 하지만 세계화가 꾸준히 진행된 2014년 그 비중은 46%까지 줄어들었다. 그 비중만큼의 부를 개발도상국들이 차지한 것이다. 

 이는 세계화의 3가지 기술때문인데 바로 상품이동비용의 감소와 지식 이동비용의 감소, 사람의 이동비용의 감소다. 세계화의 초기까지만 해도 이 셋 중 상품이동비용만 낮아지는 상황이었기에 생산지와 소비지만 분리되었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지역에 생산기지를 두는 비교우위론의 시대였다. 하지만 전화와 전신정도에만 의존하는 지식의 이동비용은 전혀 줄지 않았기에 혁신은 주로 고급인력이 모인 곳에서 일어났고 따라서 생산기지도 몰려있는 소위 클러스트의 시대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터넷과 무선통신의 보습이로 지식의 이동비용이 급감하며 상황은 변화한다. 이때부터 클러스터가 붕괴한다. 지식의 외주화가 가능해지면서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가 본격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개발도상국들은 지식을 얻기 어려워 선진국을 따라가기 매우 어려웠지만 지식의 외주화가 이루어지며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체화할수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선진국 내 생산클러스터에 종사하던 중하위 노동자들은 소득기반을 잃고 붕괴하기 시작했고 그 부를 고스란히 개도국 중산층 노동자들이 차지한다. 트럼프를 당선시키고 유럽각지의 극우파의 정치적 기반은 바로 이들의 분노에 기반한다.

 하여튼 이 시기 국제적 큰 수혜자가 한국과 중국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에서 회복한 이후 가격경쟁력은 중국등의 개도국에 뒤지고 품질 및 기술에서는 일본 미국 유럽에 뒤진다는 소위 샌드위치 위기론에 시달렸기에 무척 의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한국은 20여년간 국민소득은 무려 3배 이상 끌어올렸으며 세계적인 기술수준을 가진 기업들을 갖게 되었다. 사실 샌드위치론은 강점이었는데 가격은 선진국의 그것보다 싸면서 개발도상국들보다는 훨씬 고부가가치의 산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시기 선진국들은 많은 제조업 기반을 아웃소싱한데 비해 한국은 제조업 기반을 대부분은 국내에 유지하고 있으면서 지식외주화를 통한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압축성장해나갔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빈부격차가 심화하는문제가 있었지만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3. 자동화의 시작

세계화가 계속 무르익을 무렵 4차산업혁명이 시작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로봇을 필두로 하는 이 혁명은 제조업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많은 로봇과 시스템의 도입으로 자본이 초창기부터 그토록 목말라하던 노동에 대한 필요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제 자본은 생산성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드는 노동을 밀어내고 자동화를 택하고 있다. 특히 임금이 상당히 상승된 지역일수록 이런 혁신이 먼저 일어나는데 자본이 노동임금에 대한 부담으로 이런 혁신기술을 보다 빨리 도입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상승하면서 한국내 유독 키오스크가 많아 지기 시작한 것도 이런 흐름에 해당한다 볼 수 있다. 

  한국의 자동화 위험별 취업현황을 살펴보면 고위험에 43% 중위험에 39% 저위험군에 18%의 취업자가 종사하고 있어 매우 취약한 상태다. 물론 4차산업혁명의 결과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난다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까지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새로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아직은 미약한 인공지능과 고도의 시스템을 양산 관리하는 직종인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수도 적지 않다. 이런 고도의 새로운 일자리에는 재숙련을 통한 재취업도 쉽지 않다. 과거 직장을 잃은 마부가 자동차 공장에 취직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4차산업혁명의 결과로 직장을 잃은 택시기사가 드론시스템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하여튼 자동화는 고숙련이나 저숙련의 일자리보다는 중숙련의 일자리를 빠르게 밀어내고 있다. 고숙력의 경우 아직 자동화로부터 안전한 직종인 경우가 많고 저숙련의 경우 자동화 시스템과 기기를 도입하는 것보다 아직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숙련 노동자가 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경우가 많고 이들이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 중간정도의 학력으로 3-4인 가구를 부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4. 해법은 기본소득

 이런 산업변화의 흐름은 피할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 효율적이고 경쟁력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노동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 정부의 해결책은 보통 두 가지이다. 먼저 고용주 찾기다. 많은 일자리가 외주화에 외주화를 거치다보니 고용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외주화의 금지로 이를 해결하려 들지만 지식과 사람의 이동비용이 매우 낮아졌고, 플랫폼에 의해 자유롭게 노동하는 형태가 많아진 지금 이는 시기를 놓친 적합하지 않은 해결책이 되어버렸다.(개인적으로는 세계화초기 즉 10여년 전에 했으면 효과를 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해결책은 자격제한이다. 고용주 찾기 대신 노동자를 사업자로 간주사고 장벽을 쳐주는 것이다. 택시면허 제한 같은 게 그런 것인데 이 역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신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거나 폐쇄성이 문제가 된다.(타다사태를 보자)

 결국 과거 소득을 만들어낸 국가와 자본이 새로운 지향점을 찾을 때가 되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 핵심은 정규고용의 틀밖에 있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사회정책을 기획하는 것으로 이는 기본소득제도와 국가에 의한 완전고용제다. 기업은 이에 반발할수 있겠지만 기업이 결코 국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기업도 이에 마땅히 따라야한다고 저자는 본다. 근거는 두가지로 우선 기업이 만들어내고 이용하고 있는 산업기반과 혁신기술이 실제론 정부에 의존했다는 점과 데이터기술시대 데이터의 소유가 기업에 독점될수 없다는 것이다. 예로 애플이 만들어낸 아이폰의 혁신적 기술은 모두 애플과 스티브잡스가 만들어냈다고 생각되지만 인터넷 기술은 미국방성, 개인서비스 시리는 미방귀고등연구계획국이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테슬라의 전기차기술은 나사가, 미국바이오산업의 신물질과 신약의 75%는 미국립보건원 연구실에서 나온 것이다. 데이터의 경우도 플랫폼 기업시대에 매우 중요해져 데이터를 차지한 기업은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된다. 하지만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데어터 생산과 제공을 노동으로 볼 수 있으며 때문에 데이터를 통한 부 역시 공유하는 공공의 부가 되어야 한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불특정다수로 생산하는 것을 플랫폼이란 길목을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특정기업이 모두 독차지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불특정다수고 고루 나누어 갖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계약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의 정당성은 우리 사회가 벌어들이는 상당액이 앞서 말한 것처럼 공공의 자원을 사용하는 정부의 기술에서 나오고 데이터 역시 공공재의 성격이 하다는 점에서 생성된다. 또한 사람들의 고용은 점점 불안해지고 있으며 결국 국가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의 경우 사람들에게 안정성을 높여 위험을 감수하게 하므로 혁신성을 높여 4차산업에 적합한 인재나 기업이 생성되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점이 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의 방식은 어떤게 적합할까. 저자는 현금지급, 개인지급, 보편지급, 정기지급, 구직조건에 무관한 지급을 주장한다. 현금으로 지급해야 보다 넓은 선택권을 주고 물품으로 지급시 하자와 공정성 문제를 막을 수 있다. 개인지급은 가짜로 가구를 만드는 폐해를 방지하는 면이 있으며 보편지급은 선별지급이 불러일으키는 상대적 박탈감과 낙인효과, 그리고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의 낭비를 막는다. 정기지급은 최소생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매달 지급해야 함을 의미하며 목돈 지급의 경우 개인의 무모한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정기 지급이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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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임승수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시리즈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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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정도의 나이대는 뭔가 빚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9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녀 독재정권을 모르고 운동권의 끝무렵을 살짝 경험했다. 당구보다는 스타를 했으며 그래서인지 선배들이 읽은 소위 무서운 책(자본론이나 공산당선언같은)들도 본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상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의식적으로도 뭔가 뒤쳐지고 빚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아왔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느낌일수도 있다. 하여튼 그래서 이런 생각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맑스의 자본론은 언젠간 반드시 읽어야만 할 것같은 느낌을 받는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가 사진 않았다. 아내가 직장 연수에 저자가 오길래 저자 직강 기념 사인을 받고자 구매한 책이다. 몇년을 우리 집 서가의 아내코너에 붙어있던 걸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잡아서 보게 되었다. 가끔 이런 결정은 내가 하는것인지 다른 누가하는것인지 궁금할때가 있다.

 책은 제목처럼 자본론을 매우 잘 정리해놓았다. 물론 자본론을 직접 본적이 없는지라 정말 잘 정리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해가 잘 가게끔 했다는 점에선 정리를 잘 한책이 분명하다. 하지만 제목처럼 원숭이도 이해할만큼 쉬운지에 대해선 좀 동의가 안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책은 제법 어려울 수도 있겠다.

 맑스는 당시 사회의 주 발전원리이면서도 해악이 많은 자본론의 핵심을 파헤치려고 노력했다. 맑스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핵심은 이윤이었는데 바로 이 이윤은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가치에서 생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잉여가치는 판매자도 자본가도 아닌 바로 노동자가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노동가치론이다.

 상품이 생산되고 판매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M-C( 노동력, 생산수단)-P-C'-M'

처음의 M은 초기자본이다. C는 상품으로 여기에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투입된다. P는 생산이며 C'은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투입되어 생산된 상품이다. 밀가루 공장에서 사람과 기계를 돌려 국수를 생산한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를 판매하면 이윤이 발생하며 그래서 처음의 M은 M'로 늘어난다. 이 과정은 자본주의의 작은 사이클로 이 과정은 이윤이 발생하는 한 무한히 반복되며 M은 점차 늘어나 돈에서 자본으로 변모하게 된다.

 상품의 가격, 즉 교환가치는 이 과정에서 불변자본(시설, 원재료)+가변자본(노동력)+잉여가치의 합으로 결정된다. 불변자본의 가격은 그대로 반영되며 가변자본은 노동자의 임금이고 잉여가치가 자본가의 이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의 가격이 이 공식에서 1000원인 경우 불변자본이 300원이라면 700원의 일부만을 노동자에게 급여로 지급함으로써 자본가가 이득을 얻고 착취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 가변자본인 노동자의 급여는 사회적으로 노동이 재생산가능한정도로 책정된다. 즉, 의식주를 해결하고 후대 노동자인 자식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돈이 지급된다는 뜻이다. 자본가는 당연히 가변자본을 최소화하려하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와 법적규제 등으로 이는 한계가 존재한다. 즉, 최저임금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가는 다른 식으로 착취를 강화한다. 바로 생산력의 증가다. 방법은 두가지다. 우선 기술을 발전시켜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자의 필요시간은 줄지만 이를 그대로 유지시켜 이득을 착취한다. 빵하나를 생산하는데 3시간에서 기술발전으로 2시간이 필요함에도 여전히 근무시간을 유지해 1시간 분을 더 착취하는 것이다. 물론 기술발전이 늘어나도 이윤율은 그대로다. 하지만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가 커짐으로써 자본가는 이득을 얻는다. 

 다른 방법은 성과급제다. 성과급제의 도입은 노동자에게 이득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의 강도를 높여 착취량을 늘린다. 물론 자신의 급여도 높아지지만 착취량도 늘어나기에 자본가의 이득이 높아진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있지만 기업간의 경쟁으로 인해 기술발전은 필수적으로 따라온다. 기술이 발전하면 상품을 생산하는데 노동자의 필요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기업은 그럼에도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유지시켜 착취를 강화한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에 따른 착취의 강화로 잉여가치에서 노동자의 분량은 점차 줄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좀처럼 알아체지 못한다. 이는 자본주의체제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물건의 가격이 계속 상승하기 때문이다. 기술발전으로 빵값은 1000원에서 500원으로 줄어 사실 이전의 반만큼만 일해도 생활이 가능해보이지만 인플레이션으로 빵값이 여전히 1000원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노동자는 여전히 예전만큼 일해야 한단 생각이 든다. 인플레이션은 여러모로 착취의 도구인 셈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가변자본(노동력)의 투입량은 점차 줄고 불변자본은 투입량이 상대적으로 늘어간다. 이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라고 한다. 가변자본의 투입량이 점차 줄어드므로 고용이 줄어 산업예비군과 빈곤층의 수는 나날이 늘어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자본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자동화된 오늘날 비정규직과 빈부격차,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것은 이 같은 분석과 잘 합치한다.

 이처럼 맑스는 노동에서 잉여가 발생하고 이 잉여가치를 두고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하고 자본가에 의해 착취가 이루어지는 자본주의를 잘 설명한다. 이 책덕에 자본론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지만 역시 언젠가 원전을 봐야한단 생각이다. 물론 자신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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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이시의 1대 99를 넘어 - 부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11가지 액션플랜
로버트 라이시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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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로버트 라이시는 클린턴 대통령때 노동부장관을 했던 사람이다. 이 책을 쓴 시점은 2012년으로 오바마가 밋 롬니에 맞서 재선이 불투명한 상황이었으며, 우리나라에 나온 시점은 2015년이다. 그리고 난 이걸 2018년에 읽었다. 이런 시간차가 나니 좀 그런데 저자가 오바마가 재선되고 얼마나 기뻐했을 것이며 트럼프가 당선된후 얼마나 낙담했을지 대충 상상이 간다.

 과거 세계화의 덫을 읽었을 때만해도 20대 80에서 10대 90의 사회란 말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좀 무리한 주장이 아니냐란 말과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1대 99이며 이 주장은 지금 전혀 무리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러다 99.9대 0.1이 될지도 모르겠다.

 책은 1977년을 중요한 해로 다룬다. 1977년은 역사상 처음으로 스태그플래이션이 일어난 시점으로 2차대전 이후 자리잡은 케인즈주의가 종언을 이룬 해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점에 미국은 베트남전의 여파로 화폐의 금본위제를 폐기하여 자신들의 화폐를 불태환화폐로 만들어버렸다. 이후 자본주의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달려왔는데 그래서인지 이 기간동안 인플레이션은 물려 2000%에 달한다. 돈이 실물경제와는 상관없이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풀린 것이다. 그리고 1999년 말년의 클린턴은 무슨생각이었는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엄격히 분리하던 스티브-글래스법을 폐기한다. 그 말로는 2007년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경제위기였다.

 저자는 바로 이 시기에 미국이 얼마나 망가졌음을 말한다. 경제위기의 부담과 위험은 모두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지고 있으며 부유층과 최고경영자들은 자신들의 회사를 망친 책임이 있음에도 거액의 보너스를 타거나 회사가 망하는 시점에 파생상품에 투자해 오히려 수익을 거둔다. 대마불사라고 이 큰 기억의 책임자는 모두 빠져나가고 무너지면 안되기에 거액의 공적자금이 투여된다. 그리고 이는 납세자의 세금에서 나왔다.

 과거 미국은 상당히 높은 세율을 자랑해왔는데 이 책이 나온 시점에서 부유층의 세율은 역설적이게도 납세자의 평균세율보다도 낮아졌다. 이는 정부가 계속해서 이들의 세율을낮추기도 하였고, 이들의 소득이 대개 자본이득으로 잡혀 낮은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이런 부유층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적용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워싱턴에 뿌려왔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돈을 받은 정치인들은 그들의 도구가 되어주었다. 2010년엔 정치인을 향한 기부금의 제한마져 풀려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이처럼 부유층으로 부터 걷는 세금이 줄면 악순환이 일어난다. 우선 그들의 세금이 줄어 전체적인 연방적자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78년부터 지금까지는 부유층 위주의 경제질서가 확립되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착각이 발생해서 그렇지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계속해서 감소해왔다. (과거 70-80년대 우리부모님들의 경우 주로 아버지만 벌어 가계의 유지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맞벌이가 아니면 어려워진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이는 여권의 신장문제만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의 구매력이 감소하며 이로 인해 세수는 더욱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연방세수가 더욱 줄어드는데 이로 인해 연방정부는 오히려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를 강화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공공부문의 예산을 삭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공공부문의 감소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큰 타격으로 다가오며 이는 정치권과 부유층에 대한 공격보다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다른 국가의 노동자나 자국의 교사나 공무원집단으로 향한다.

 상당히 잘 이해가 되는 시나리오였는데 지금의 한국상황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정치흐름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저자는 역행주의자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역행주의자인 이유는 이들의 역사의 흐름을 뒤로 끌고가 예전에 자신들이 매우 유리했던 환경으로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세기 말 독점자본주의의 출현, 그리고 1차세계대전이후의 경제공황, 2차대전후의 공산주의에 대한 대항으로 꾸준히 경제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제도와 법안을 만들고 실현해왔다. 이것들을 모두 없애고 19세기 말경까지 시계를 돌리고 싶은 자들이 역행주의자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미국 공화당 내에 포진하고 있는데 깅리치를 거론하며 그의 등장후 공화당이 매우 극단적우파가 되었음을 경계한다. 이들에게는 반대쪽와의 어떤 타협도 없고 자신들만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공통된 부분을 찾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없다. 마치 한국의 어느 정당과 매우 유사해보인다.

 그리고 결국 이런 역행주의자를 막아내는 것은 국민의 손에 달린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해 증세를 실현하고 공공복지를 강화하는 정권을 창출하고 계속 밀어달라는 것이다. 단지 뽑아놓고 바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개혁을 실현해나가도록 지원해달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게도 매우 의미있게 들리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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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 - 저출산 고령화 시대, 경제 성장의 비밀 맬서스부터 케인스, 슘페터까지 다시 배우는 인구의 경제학
요시카와 히로시 지음, 최용우 옮김 / 세종서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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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전세계 인구는 어느덧 80억을 향하여 순항중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출산율 저하와 이로 인한 고령화, 그리고 결국 인구감소로 이어지는 역방향 흐름을 자국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느 덧 한국은 출산율 세계최저를 찍고 말았는데, 예상보다 연간 촐생아 30만선이 5-6년 빠르게 붕괴되었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생색만 낼뿐 시민들이 이렇다할 살만한 복지환경을 구축하지 못하고, 성장을 위한 차세대 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대가가 크다. 10여년간 저출산대책으로 100조정도를 썼다는데 그 돈은 모두 어디로 휘발된 것일까?

 어쨌든 이런 인구의 감소는 한 나라의 노동공급과 소비재에 대한 수요를 모두 떨어뜨려 결국은 그 나라의 경제성장을 멈추고 쇠퇴시킨다는 점에서 문제로 다가온다. 적어도 산업혁명 이후, 일시적인 전쟁이나 경제불황이 아니었다면 인구가 장기적으로 줄고 따라서 경제도 쇠퇴한 예는 없다는 점에서 이런 환경변화는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으로 다양한 통계자료와 역사적 고찰을 통해 인구감소가 반드시 경제쇠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우선,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의 관계다. 흔히, 인구가 늘어나면서 노동공급과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 경제도 더불어 성장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가 책에서 보여주는 그래프를 보면 적어도 산업혁명 이후 시기 인구의 성장과 경제성장은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 실제로 그 기간동안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인구가 겨우 2배정도 성장한 반면 경제는 수십배 성장했다. 그리고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미의 여러 가난한 나라들이 인구가 선진국 이상으로 짧은 기간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빈국상태에 남아있는것도  좋은 반례다.

 저자는 결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단순한 인구증가가 아닌 혁신임을 강조한다. 혁신은 산업혁명처럼 하드웨어적인 부분이 크게 바뀌는 것도 있지만 소프트한 것도 있다. 가령 대부분의 선진국시장에서 출산률의 감소로 기저귀 시장은 진즉에 수요포화에 이르렀지만, 기저귀 회사들은 고령층을 겨냥한 어른용 기저귀의 출시로 수요포화를 해결했다. 저자는 이런 스프트적인 방법도 혁신에 포함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혁신이 인구와는 큰 상관없이 경제성장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구가 크게 줄어듦에도 인간은 혁신에 의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물론 인구가 줄면 소비가 줄어드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빵의 갯수가 정해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사람이 이런 반드시 필요한 것만 소비하는 동물이 아님을 지적한다. 실제로 인간은 필요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다양하게 소비한다. (나만해도 굿즈와 책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내가 읽어낼수 있는 이상의 책을 구매하고 만다.) 이런 유혹적인 소비들은 광고나 유혹에 의해서도 생겨나지만 앞서말한 소프트적 혁신에 의해서도 생겨날 수 있다. 때문에 인구가 줄어들어도 혁신이 여전하다면 여전히 경제는 성장할수 있으리란게 저저의 주장이다.

 책도 얕고 주장도 쉬운 편이지만 이런 쉬운 주장을 위해 너무 다양한 과거 인구론이나 과거의 여러 통계추이를 살피는 듯 한 느낌이 많이 든 책이다. 할말이 너무 간단한 나머지 여러 근거를 찾은 셈인데, 그 근거가 주장과 많이 관련이 없어 보이는. 그런 느낌이다. 책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통념에 대한 반대생각을 접할 수 있다는 접에서 가볍게 일독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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