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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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무문관이란 책에 대한 책이다. 엉뚱하지만 무문관이란 이름을 접하자마자 고교윤리시간이 떠올랐다. 당시 시험문제에 대한 검토가 있었는데 흥분한 윤리선생님은 아이들의 주관식 답안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웃음을 참지못하며 몸소 답안에 상응하는 구타를 실행하고 계셨다. 당시 문제는 맹자가 말한 굽히지 않는 거대한 마음을 사자성어로 쓰는 것이었다. 답은 호연지기이다.

 윤리선생님이 흥분한 까닭은 당시 유행하던 중국영화와 무협지 제목이 답안으로 난무한 까닭이다. 쳡혈쌍웅에 영웅본색, 영운문등 같은 답안이 등장했다. 이런 멍청한 놈들. 윤리선생님과 웃으면서 난 친구들의 엉뚱한 답안에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내 답에 대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답은 바로 '대도무문'. 무협지 제목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나름 답이라 생각하고 적었다. 잠시 후 내 번호가 호명되고 어안이 벙벙한채 나가 나역시 구타와 함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실 맹자라는 단서만 없었다면 엄밀히 그리 틀린 답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여튼......

 제목이 비슷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지만 책은 잠시 엉뚱한 추억으로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책은 무문 스님이 불교의 여러 화두를 48가지로 정리한 책이다.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가 이 알쏭달쏭한 화두들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달았다.

 무문관은 제목부터가 역설이다. 글자 그대로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작부터가 참 난해하기 그지없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글들이 화두로 무문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강신주는 48가지 애매한 화두를 기존에 제시된 순서와는 다르게 자신의 의도대로 재구성하였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순서 재구성의 의미는 모르겠다.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강신주가 여러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처럼 역시 주체로 당당히 서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이가 당당히 부처로 설 것을 요구하는 불교철학은 이러한 강신주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재료로 매우 유용하다. 사실 불교에 대해 관심을 꾸준히 갖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책한번 읽은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불교에 대해서 어느정도나마 이해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에서는 '성불'하라는 말을 인사처럼 한다. 책을 읽기전에는 무식하게도 이를 기독교의 '신이 함께하시기를'이나 우리말의' 안녕하세요'나 '부자되세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자그대로 성불은 '부처가 되라는 뜻'이다. 정말 심오한 인사가 아닐수 없다.

 어쨌든 이 같은 성불을 위해서 사람들은 수행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 석가모니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과 같은 부처가 되기를 원했지만,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한 말이나 사유들은 그 제자들에 의해 경전으로 이론적으로 정리되었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벗어나야하지만 뭔가를 알아야 창조도 있는 만큼 경전에 의한 공부도 중시되는데 이를 강조하는 것이 다들 아는 교종이다.

 하지만 경전을 중시하는 이런 교종은 당연히 많은 부작용을 안게 되는데, 우선은 경전 자체를 절대시하는 잘못된 풍토의 조성과 글자를 모르는 일반 평민들을 결국 성불할수 없게 되지 않느냐라는 문제였다. 실제로 초창기 우리나라의 유명 고승들은 모두 왕족이나 귀족출신알는 점은 이 같은 교종의 약점을 잘 드러낸다.

 이에 대응하는 것이 역사시간에 배웠던 선종으로 경전을 통해 부처가 되는 방법을 배격하고 사람 각자의 수행방법과 사유에 따른 성불을 강조한다. 선종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 '불립문자'로 글자 그대로 문자로 부처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강신주는 책에서 불립문자라고 하여 모든 문자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며 이때의 불립문자는 단순히 타인의 언어를 따르지 않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했는데 지극히 합당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또한 강신주는 책에서 시인과 부처가 매우 유사하다고 하였다. 양자의 공통점은 바로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불립문자는 문자자체의 배격보다는 주체로 선 자신만의 독창성의 결여를 배격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주체성을 갖춘 부처로의 이행 과정은 자칫 다른 사람과 세상은 신경쓰지 않고 자신만의 고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데 불교에서는 다른 사람 역시 성불의 과정으로 이끌어나가는 방편이나 자비, 보시를 강조한다. 방편은 중생의 수준에 맞추어 깨달음으로 이끌어가려는 노력이고 보시는 재산이나 재물, 생각등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행위를 말한다. 인상적인 것은 자비였는데 자비는 우정과 연민의 결합어로 아래에 대한 단순한 연민이 아닌 함께 나아가는 수평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책을 일독하고나서 알면서도 모를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여러 생각이 몰려왔다.

우선 성불이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각자 주체로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이루고 깨달음에 이르러야 하는데 모두가 주체로 서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라는 점이다. 주체로 살아가기 어려운 이유는 각자가 삶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면 서로간의 충돌이 있을 수 있고, 고대시대의 노예처럼 자신의 주어진 삶의 여건이 주인으로 일어서기 매우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둘다 가능한 것 같다. 주체로 서는 것 자체에는 앞서 말한 것 자비처럼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고려와 연민을 갖고 나아가는 과정이므로 자신만의 욕심을 갖고 다른 사람과 충돌하며 일어서는 것은 애초에 성불일수 없다. 또한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한계가 있을지라도 그안에서 주인이 될 수 있다. 불합리한 정권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돈과 직위를 보장하나 노예가 되는 길이며 반면 그에 항거하고 따르지 않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잃더라도 주체로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체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인간은 동물이고 근원적으로 결핍되고 타인과 다른 생물및 사물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가 되는 것이 천상천하유아독족으로 표현되긴 하지만 다른 것들과의 연기를 강조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애초에 이런 관계를 인정하고 나아가니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주체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강신주는 동양과 서양의 철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주체로의 나감을 강조한다. 때문인지 주체성의 철학과 타자성의 철학의 기준으로 다양한 사상들을 구분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답은 인간의 내부에서 찾느냐 외부에서 찾느냐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강신주의 친절한 설명을 읽고도 책 부록에 등장하는 무문관의 원전을 보면 도무지 해석과 이해가 어렵다. 정말이지 문이 없는 관문에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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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5-2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영삼대통령이 즐겨 사용했던 대도무문(大道無門) ..

고교 윤리시험에 대도무문을 쓰신걸 보면 92년도 즈음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신문도 열심히 읽고 뉴스도 잘 보는 성실한 학생 이였을듯..

닷슈 2017-05-23 22:48   좋아요 0 | URL
진짜그랬음 호연지기를 맞췄겠죠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 넘치는 생각 때문에 삶이 피곤한 사람들을 위한 심리 처방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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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생각이 너무 많거나 내가 공상이 심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을지 모른다. 어릴 때의 문제라면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그렇다면 여러가지 생활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정신적 과잉활동인이라고 한다. 책은 그들에 관한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우뇌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좌뇌가 발달한 일반인들처럼 순차적, 원인, 결과적 사고가 잘 안되는 편이며 마치 마인드 맵처럼 하나에 대해서 여러가지 관련 사고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은 간단하게 대처하는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고려하여 실행하기 때문에 행동이 둔하고 비효율적이고 강박적으로 보이며 답답해 보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예를 들어 스키 리프트를 탄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약간의 위험을 잠시 느끼다 곧 익숙해지겠지만 이들은 리프트가 멈춘다면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면 살수 있을까, 그물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떨어지는 무게를 견딜만한가? 스키를 차고 있으면 떨어질때 위험하지 않을까? 등등의 별의별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윤리적 기준 또한 높고 우뇌 발달형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역시 지나치게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상처받으며 거절을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속칭 호구가 되기 쉽상이다. 간단한 문제에 대해 아니요를 할줄 모르기에 대부분 무리하게 일을 하게 되며 어쩌다 간신히 거절을 할때도 온갖 것을 고려하여 힘들게 간신히 말한다.

 정신적 과잉활동인들은 셜록홈즈 갖기도 하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여 상당히 관찰력이 뛰어나고 그런 감각이 공감각적으로 작용한다. 당신의 목소리는 마치 노란색 같군요라는 말이 가능한 것이다. 종합적이고 동시다발적 사고에 감각이 민감하니 관찰력과 이로 인한 종합적 판단력이 홈즈 수준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정신적 과잉활동인들이 좌뇌편향적인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특히, 거부하지 못하는 정신적 과잉활동인들에게 계속 자기의 일을 떠넘기고 윤리적임을 악용하는 악마들을 매우 증오한다.

 인간의 뇌는 영유아시절 발달초기에 뇌세포들의 네트워크들이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것이 성장에 따른 경험을 통해 추려지고 효율적인 가지치기를 통해 적은 수의 네트워크들만이 남게되는데 정신적 과잉활동인들 같은 경우는 마치 이 가지치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 같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일들이 어린아이들 경우처럼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아마도 시간도 이사람들에게 여전히 늦게갈것만 같다.

 저자는 정신적 과잉활동인들의 상당수가 영재이고 높은 감성지능과 종합적인 판단력을 지녔음을 높게 평가한다. 그리고 사회가 이들의 특성을 인지하고 잘 활용했음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프랑스책인 이 책에는 정신적과잉활동인이 15-20%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이런 특성을 잘 드러내지 않음을 감안해도 상당히 높은 수치라 생각된다. 한국에서 측정한다면 과연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 반토막 수준이 아닐지. 우리 사회는 더욱 이러한 이들을 허용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책을 보며 자신이 정신적 과잉활동인인지 아닌지, 아니면 내가 어렸을때 그러했는지를 생각해보는것도 재밌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어려서는 정신적 과잉활동인에 가까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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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5-15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책을 진득하게 못 읽고 여러 권을 수시로 번갈아 읽으며 또 책을 사고 있는 저를 생각하면 뜨끔하네요;;

닷슈 2017-05-15 08:41   좋아요 0 | URL
그건 장점인것같습니다

cyrus 2017-05-15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홈스 시리즈를 정주행 독서 중입니다. 어렸을 때 만났던 홈스에 대한 환상을 조금씩 벗기고 있습니다. 정말 닷슈님의 말씀처럼 홈스는 자신의 정신이 쉬게 하는 걸 참지 못해요. 정말 그런 사람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해요. 왓슨은 가상 인물이니까 제외.. ^^;;

닷슈 2017-05-15 19:26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걸감당할사람이있다면 그역시도 연구대상이죠
숙적인 모리어티도 홈즈처럼생각이 많았을지궁금하군요

cyrus 2017-05-15 19:28   좋아요 0 | URL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어요. 제가 홈스 시리즈를 다 읽고나서 쓰고 싶은 글의 주제가 홈스와 모리어티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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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시작으로 '강신주의 맨얼굴의 당당한 인문학'을 3년정도 전에 읽었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그 후로 강신주의 책을 잡지 않고 있었는데 아내가 이 책을 사두었고, 최근 참여하게 된 독서토론회에서 이 책을 때마침 선정하여 보게되었다. 이러니 책을 보게된 이유가 상당히 타의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은 보게 될 인연이었단 생각도 든다.

 그동안 강신주를 책이든 방송에서든 자주 봤던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모습이 많이 사라졌던 느낌이 든다. 책은 한때 지나친게 아닌가 싶을 만큼 쏟아져 나왔었고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종편이든 가리지 않고 여러 종류의 방송에 많이 출연했었다. 이렇게 사랑받던 한 사람이 어느 순간 희미해져가는걸 보면 연예계든 학계든 소비라는 것이 매우 유행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 읽었던 책이나 강연을 곱씹어 보면 강신주는 항상 사람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것과 당당히 주체로 설 것을 주장했었다. 그래서 강연이든 책이든 혼란에 빠져있꺼나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게 만드는 역할을 많이 했으며 그 도구로 철학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솔직해 지지 못하고 주체로서 서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를 지적했다.  

 이 책 역시 그러하다. 인간은 행복하고자 하는 동물이고, 그 과정에서 감정을 반드시 드러낸다. 이 감정에 솔직해야만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감정을 우리는 반드시 확실히 구분하고 알아야하는데 여기서 도구로 제시하는 철학은 스피노자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의 동물임을 파악하고 감정을 중시한 철학자로 이 때문에 매우 혁명적인 사람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따라서 책은 스피노자가 제시한 48가지 감정을 제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스피노자의 이 감정에 대한 정의, 관련한 고전 소설, 그리고 역시 관련한 그림, 마지막으로 자신의 어드바이스로 1개 감정에 대한 장을 구성해 나간다. 제법 재미있는 구성이면서도 어찌보면 산만한 구성인데 이런 형태로 책이 만든 이유는 마지막 장에 나온다.

 어쨌든 책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관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윤리학을 제시함에 있어 인간의 이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이성이란 것이 결국은 전체사회를 위한 것이며 개인의 욕망은 통제되고 검열된다. 즉, 살아있는 나의 윤리학이 아닌 것이다. 반면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욕망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결핍된 유한자인 만큼 반드시 욕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욕망의 윤리학이며 진정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도덕의 출발이라는 것이 결핍된 존재인 개인의 욕망을 넘어선 집단에서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함이라는 면에서 봤을때 윤리학의 출발을 개인의 욕망에 둔것은 매우 탁월해 보인다. 그런면에서 이성이라는 것은 집단의 욕망을 조절하기 위한 도구란 측면이 있고, 보다 추후에 생겨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진화론과 연결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책에서는 그러한 부분을 찾을수는 없었다.

 책에는 인상적인 구절도 무척 많았다. 반드시 맞다고 볼순 없지만 그래도 무릎을 탁하고 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p188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의 구분.

이루었을때 허무하다면 타인의 욕망,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욕망

예를 들어 부모의 사회의 욕망과 바람에 의해 명문대 좋은 학과를 갖지만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음을 알고 허무하고 방황한다면 타인의 욕망인 셈이고, 아니라면 자신의 욕망인 셈.


p238

아름 다운 사랑 이야기로 무장한 고급 포르노의 시절이 바로 우리의 젊은 시절.


p258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


p266

영광의 이면에는 멸시와 경멸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 영광에 집착하면 스스로 고독을 감내해야 함. 사랑과 유대의 가치를 망각하고 타인을 경쟁상대로만 생각함.


p356

두려움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과거의 실패경험에서 비롯한다.


p367

동정은 동등한 상대에게서 갖으며 연민은 한 수 아래의 상대에게 갖는다.

그래서 동정하는 말과 행동은 상대방은 때론 화를 내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동등함과 상대가 생각하는 동등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듯 하다.


p374

온건한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공포가 드리우는 짙은 그늘이 있다. 즉, 온건함이 자발적이 아니며 언제든지 약자에겐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애시엔 온건해보인 남편이 결혼하니 폭력적이더란게 대표적인 예.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렇게 많이 세분화한 감정을 철학자의 도구를 빌려 고전소설과 그림에 드러난 부분을 인용하여 그리고 저자의 경험을 이용하여 보여준다는게 무척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이에는 크게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어 솔직하고 당당하게 주체로서 일어나는 것에 인상깊으면서도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다. 인간의 본성을 깊이 드러내어 보고 싶은 것도 우리의 본성이지만 감추고 싶은 것도 본성이 아닐런지. 저자는 인간은 결핍된 유한자이고 인생이 유한하기에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고 하지만 평생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 행복일 수 도 있다.

 그래서인지 강신주의 책과 강연은 시원하면서도 무언가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저자의 책과 강연이 폭발적으로 등장했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식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언젠가 저자의 책에서 본적이 있기도 하지만 강신주는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적 성과들이 인문학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강신주의 작업은 과학적 성과를 살짝 등에 업는다면 상당히 빛날수 있고 공통적인 부분도 적잖다는 생각에 무척 아쉽다.

 책에는 48가지 감정이 있는 만큼 사용한 48개의 고전소설과 48개의 그림이 있다. 당연히 책을 보다면 내가 몇개나 아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의 경우 소설은 고작 3편 그림은 0편이었다. 인문학적으로 빈곤함을 느낀다. 그리고 48가지의 감정중 삼분의 이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인간은 보다 세부적으로 분류하여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강신주의 선택이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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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7-05-07 22:24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결국 그런것도 내면적인거나 성찰적 인것이아닌 실용적 차원의유행이어서인것같습니다

2017-05-07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까미 2017-05-1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몇년전 읽었을 때 인상 깊었는데 강신주 작가의 동영상까지 많이 보고 그랬는데
어떤 시원한 곳을 찌른 것 같아서 좋았던것 같아요
작가 자신도 이유는 있겠지만 새로운 발전을 가지고 더 활동하면 좋겠어요

닷슈 2017-05-14 17:58   좋아요 0 | URL
저도 강신주 작가님 활동이 갑작스레 뜸해짓서 좀 아쉽습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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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서강대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하여튼 건명원이라는 곳에서 저자가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모음집이다. 그래서 매우 잘 읽힌다. 좀 시간이 있다면 하루면 다 읽을 수 있다. 흔히 모음글들을 엮은 책은 주제의 일관성에서 좀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다행히 이책은 그런 면도 전혀 없다. 오히려 일관된 주제를 여러 용어로 약간의 차이나는 관점에서 계속 주장하는게 약간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았다.

 여러 용어와 다양한 삶의 이야기, 과거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이 책이 말하는 것은 하나 인것 같다. 바로 우리 만의 철학을 갖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만의 철학을 갖기 위해서는 사회나 문화 등 세속의 삶에 매몰되지 않고 자존감과 자신의 속이 알찬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장자가 말하는 '진'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만의 철학을 갖자는 주장이 새롭진 않다. 내가 아주 어린 나이였던 90년대부터, 혹은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이전부터 그러한 담론은 있었으며 어느 정도 실천하는 분들도 계셨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지금더 설득력을 얻는 것은 현재 한국사회가 경제, 사회, 문화 여러 측면에서 거의 지금의 시스템과 영토내에서의 한계점이 이르렀고, 과거의 독창적 철학자들 역시 주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철저히 철학의 수입국이라 말한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철학은 단순히 공자나, 맹자의 동양철학과 데카르트, 칸트, 플라톤 등의 서양철학의 내용이 아니다. 바로 시대를 앞서 나가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을 날카롭게 꿰차서 설명하는 높은 시선에서의 전략적 차원의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을 갖지 못한 국가는 아무리 뛰어나도 전략가가 짜놓은 장기판에서 놀아나는 전술가가 될수 밖에 없다. 장기판의 룰은 모두 전략가가 정하며 전술가는 아무리 뛰어나도 그룰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의 강국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철학을 같고 있다. 중국의 동양철학, 일본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탈아입구, 영국은 언어철학과 논리실증주의, 프랑스는 실존주의, 독일은 관념론, 미국은 실용주의, 러시아의 사회주의가 그것들이다. 

 반면 한국은 철학의 수입국으로 과거에는 중국의 동양철학, 최근에는 서양철학과 미국의 실용주의들을 수입해서 따라가는데 급급한 형편이다. 때문에 저자는 우리가 새로운 판을 짜고 시대를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따라가기만 해서는 지금처럼 중진국정도에 도달하는 것이 한계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평화상을 제외한다면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없으며,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국인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외국의 시스템상에서 자라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저자는 남의 철학을 따라가기만 하는 자들을 그들의 세계에 종속된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왕조들이 중국철학을 주체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사대적으로 흐른 부분들 오늘날 미국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 모습들은 이러한 부분을 매우 잘 보여준다. 이런 종속들은 물론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수 없듯이 새로운 철학적 시선을통한 창의력의 발산은 뭔가로 꽉 채워진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우리나라 왕조들의 높은 수준의 문명국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 그리고 지금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로 거듭날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강력한 철학을 가진 문명국이 존재하고 이를 잘 수입하여 활용하였던 결과 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이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는 것 같다.

 책에서는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진인 수준의 개인이 요구된다고 한다. 좀 돌려 말한다면 자본주의의 구조와, 여러 이념들, 사회 현상의 흐름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눈으로 파악하고 판단 할 수 있는 진정한 시민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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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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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채사장 책을 이것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지대넓얕부터, 시민의 교양, 열한계단까지. 의도인듯 아닌듯은 잘 모르겠지만 이것들을 모두 읽고 보니 채사장은 독자인 우리에게 무언가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지대넓얕을 통해서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구조와 실체를 조망하는 눈을 가지라는 듯 하고, 시민의 교양에서는 자본주의 체제하의 국민에서 벗어나 시민이 되기를, 그리고 아직까지는 마지막인 열한계단에서는 더 나아가 이 우주속에서의 자기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파악하라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꽤 단계적인 지도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 열한계단은 채사장의 책들중에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채사장은 헤겔의 정반합의 변증법을 통하여 자신의 자아가 성장한 과정을 밝힌다. 문학과 기독교-불교-철학-과학-군대-자본주의-죽음의 경험-신비주의 등 채사장은 자신이 성장하면서 정신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열한계단으로 독자를 이끌어 나간다. 

 가끔 채사장은 자신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것들과 대화를 한 것을 책에서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자기 자신이 재수생- 입대예정자 등으로 바뀌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책의 초반부에 채사장은 우리에게 여행을 떠날 것을 권한다. 이 여행은 어려운 여행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떨치고 새로운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편하고 익숙한 환경을 좋아하도록 진화했기에 새로운 자신에게서 낯선 것을 향해 떠나는 일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은 새로운 경험과 지식과 지혜, 무엇보다 새로운 자기 자신의 지평을 갖게 된다. 

 실제로 지식수준이나 쓸데 없는 한국의 학력과 관계없이 우린 주변에서 그저 나이만 먹은 사람과 정말 나이를 드신 분들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매일 단순히 평생을 같은 방법으로 아무 생각없이 노를 젓는 사공과, 다양한 노젓는 방법 및 심지어 노의 재질과 모양을 강구하며, 거기에 배의 모양과 재질 모양도 강구하고, 강물의 흐름과 기상까지 고려해나가며 평생을 노를 저은 뱃사공의 말년은 매우 크게 다를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은 마지막 부분이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데 채사장은 신비주의에 가장 관심이 많다고 한다. 상당히 현실을 강조하는 느낌이 드는 저자이기에 다소 의외인 부분이기도 한데, 채사장은 실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러한 것들이지만 사람들이 현실에 눌려있고, 관심이 많아 듣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거란다. 신비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죽음에 가까운 경험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교통사고로 벨트까지 안한 상태에서 거의 죽을 뻔했으며 이를 계기로 인간의 삶에 대해 더 깊은 지혜를 얻게 된다. 이러한 성찰은 자아와 우주와의 관계,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 우주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대답과 질문으로 더욱 깊어진다. 

 이처럼 열한계단은 이전의 채사장들의 책처럼 편안한 안내라던가 뭔가 답을 주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물론 전의 것들도 그런 성격이 강한 건 아니지만. 채사장의 변증법적 성장과정은 공감이 가능 부분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 그 방향성이 정 반대이거나 그 일부만 따라간 경우도 있고, 아주 다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비교해보며 자신을 반추해보는 것도 책의 하나의 재미 일수 있다. 또한 중간중간 종교나, 윤리적문제, 우주에 관한 생각, 자본주의에 관한 생각, 남자라면 군대가 파괴한 나의 정신 등에대해서 생각해보고 공감하는 것도 이책을 보는 재미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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