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융 심리학을 기본 바탕으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림자에 대한 책이다. 성에 관한 문제로 나중엔 결별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융이 프로이드의 제자인 만큼 프로이드 심리학의 기본 바탕인 이드, 에고, 수퍼에고 등이 등장한다. 책엔 주로 자아가 많이 나온다.

 골자는 비교적 간단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구를 가진 동물인 만큼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한 본능적 갈망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다 이런 욕구를 잘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나 다름 없는 우리의 문명은 이 욕구를 허용하지 않는다. 많은 문화권에는 여러 가지 금기사항이 있으며 허용되는 사회적 문화적 기준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로 인해 인간은 자아를 형성하여 그 사회의 문화적 틀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이 과정은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그림자가 생성되는 과정이자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사회적으로는 문화인이 되는 단계이다. 하지만 인간은 문화인이자 필연적으로 동물이기에 본능적 욕구를 갈망하며 그림자는 점점 커져나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일부인 그림자를 혐오하고 대면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수록 커져간다. 그림자가 커지면 인간의 심리적 시소는 붕괴되며 그것이 내적으로 향하면 정신병이나 우울증, 자살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외적으로 향하면 폭력이 자신의 가족이나 이웃, 사회의 소외계층이나 다른 민족, 다른 국가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인간이 선한 존재로 거듭나기보다는 그림자를 인정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켜나가는 전일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림자를 달래는 과거의 좋은 방법은 제의나 미사를 통해서였다. 포장되기 전의 교회 미사는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의식이었으며 사제는 그 폭력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제복을 입었다. 사람들은 그런 의식에 동참하며 그림자를 달랠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사는 그런 것을 모두 버렸으며 사람들은 그림자를 달랠 방법을 잃었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진 것이다.

 책은 그림자를 달랠 방법으로 종교, 운동, 예술, 다양한 취미활동, 음침한 소설이나 호러물, 잔혹한 영화 보기등을 든다. 이래서 성격이 비교적 온순하고 겁이 많은 사람도 좀비물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해결책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개인이 문화인으로 선한 삶은 살고 그러한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림자를 위한 행위도 해야함을 주장한다. 사람은 그림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을 남에게 투사하기도 하는데 투사의 대상은 주로 자신의 자식이나 배우자다. 투사된 대상은 남의 그림자에 자신의 그림자까지 얹혀 있는 셈이기에 그림자를 달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업보가 쌓이는 셈이다.

 

 

 

 

 

 

 

 

 

 

 

 

 

 그림자 책을 보면서 2년정도 전에 읽은 '왜 그들이 이기는가' 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장은 참 신선했는데 선진사회의 성공 요인을 본능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능적 욕구를 억누르거나 제대로 분출될 만한 통로를 마련하지 못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우며 이를 창의적인 부분이나 생산적인 부분으로 전환해주고, 긍정성을 부여한 사회가 성공했다는것이 이 책의 주장이었다. 그림자 이론과 매우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었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어둠을 빛과 하나로 보고 조화시키고자 하는 이런 생각은 사실 우리에겐 크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가 이미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철학을 국기로 가진 나라가 교육이나 사회 여러분야에서 전인적 인간이 가장 부족하다는 것은 역시 또 하나의 모순이지만.

 그림자 책을 보면서 인간의 필연적인 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았다. 악은 매우 말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존재가 자신이 뭔가를 얻기 위해 다른 존재를 해치거나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스스로 양분을 얻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인 동물이나 식물을 해할 수 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 악을 행할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악을 동등하게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둘은 하는 일이 달랐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오랜 세월을 보낸 수렵경제시절 남자는 집단으로 사냥을 했고, 여자는 채집을 주로했다. 둘다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를 해하는 것이지만 채집은 다른 존재를 해하는 정도로 끝날수 있는 경우도 많았고, 식물이라는 존재의 고통을 인간이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그림자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하는 사냥은 동물을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은 매우 잔혹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었기에 훨씬 많은 그림자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거기에 인간 사회 내에서도 남성은 수컷이고 사냥을 위해 수직적 관계롤 어느 정도 형성했기에 자신들 간의 짝짓기를 위한 지위 및 부를 얻기 위한 경쟁으로 더 많은 그림자가 필요했고 생겨났을 것이다. 반면 여자는 짝짓기 경쟁이 남성에 비해 훨씬 적고,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관계가 많아 보다 적은 그림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번식을 위해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육아해야 했기 때문에 그림자는 더욱 옅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한 존재를 키워내기 위해선 아무래도 빛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그림자를 짊어져서인지 남성은 전반적으로 여성보다 악하다. 살인이나 폭력, 강간, 교통사고 등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여러지표에서 여성을 압도하며, 내적으로 향하는 그림자도 감당하기 어려워 각종 약물이나, 술, 담배에도 훨씬 많이 외존한다. 수명도 그래서 더 짧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악하고 그림자가 짙었기에 더 빛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자가 창의적인 부분이나 문화예술과 관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슴을 저미는 명곡이나 문학작품은 그림자가 짙어지는 이별이나 극도로 부조기한 현실속에서 잘 탄생하며 심지어 그렇기에 몇몇 예술가들은 그런 경험을 원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예술가나 음악가, 주요 학자들은 남성의 비중이 여성보다 많다. 과거 여성들에게 교육기회가 전무했기에 그랬던 면이 훨씬 더 크겠지만 남성의 그림자가 더 짙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비교적 완전한 평등사회가 올지라도 이런 분야에서 남성이 조금 더 두각을 나타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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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8-09-16 09:09   좋아요 0 | URL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더 나은 세상 -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피터 싱어 지음, 박세연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실천윤리학으로 유명한 피터싱어가 83가지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책이다. 단기간에 쓴 책은 아니고 최대 10년 이상전부터 날카로운 주제들을 중심으로 짧은 글을 모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것 싱어가 유태인계라는 점과 웬지 유럽인일 것이란 느낌이 있었는데 호주인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싱어는 지금은 아니자만 서핑을 즐겼고 엄격한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 심각한 주제에 대해서 세네장 정도로 글이 짧게 다루어지기에 많은 주제를 경험할수 도 있지만 그만큼 깊게 맛보기도 그리고 좀 이해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는게 이 책의 특징이다.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가는 견해가 많았는데 생각할 여지가 있는 부분들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1. 보편적 윤리란게 가능한가?

 이 오래된 질문에 싱어는 과감히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선현들과는 상당히 다른데 싱어가 보편적 윤리로 삼는 것은 놀랍게도 공리주의에 기반한다.(보통 공리주의는 상대주의 윤리설에 속한다) 과거 싱어는 보편적 윤리를 의심하였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보편적 윤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과거 사람들은 자신들과 그 사회에 존재하는 윤리적 성향에 대해서 그 근거를 신이나 절대적 법칙, 이성이나 양심, 감정등에서 찾았다. 하지만 공리주의 윤리학의 창시자인 벤담은 이를 행복에서 찾았는데 사회구성원의 절대적 행복의 양을 더욱 크게 하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것이었다. 뭔가 대단한 것에서 윤리를 찾던 사람들에게는 어이없는 생각이었겠지만 이는 이타성의 발달이 결국 적합성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있고, 적합성을 곧 행복으로 여기는 유기체의에 대한 진화론의 입장을 받아들인 다면 매우 그럴듯한 설명이 된다.

 실제로 몇몇 진화론자들은 이런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행복이나 윤리성에 대한 보편성으로 인해 보편적 도덕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이타성이나 행복에 관한 인간의 판단과 그에 대한 주관성은 상당히 일관성이 떨어지는 편인데, 정말 냉철하게 계산적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그런걸 해준다면 보편성이란걸 획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이 그걸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식은 역시나 상대적일 것 같다는 느낌.

 

2. 동물에 대한 윤리

피터싱어는 동물에 대한 윤리의식으로 상당 기간을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그가 육식으로 돌아갈 유일한 가능성은 배양육 정도인데, 현재의 기술수준으론 이미 고령인 싱어는 아마도 채식만하다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싱어는 동물을 윤리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과 완전히 동등한 수준은 아니며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법인 같은 성격정도로 대우할 것을 주장한다. 예를 든다면 선거권이나 교육받을 권리 같은 것은 없지만(역시 딱히 의무도 없다.) 법적 인격체로서 윤리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문화적 상대주의도 배격하는데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행동들에 대해 문화적 상대주의로 취급받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싱어는 종교의 자유란 딱 다른 사람과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범위까지라고 잘라 말한다.

 용어에 관한 부분도 재밌다. 많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동물을 지칭할 때 사물을 지칭하는 관계대명사 that을 많이 쓴다. 주어로도 it을 쓴다. 하지만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특정동물에 대한 윤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점차 관계대명사 who를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실제로 소를 나타내는 cow who는 현재 40만건 정도에 cow that은 60만건으로 아직은 사물이 많지만 과거에는 거의 1:9정도 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아진 수치다.

 이런 의인화적 표현은 주로 사람과 비슷한 영장류이거나 반려동물인 경우 그 비율이 더욱 높아지는데 동물에 대한 사람의 윤리의식도 자신들과 얼마나 동등하고 가깝냐에 따라 차별화 됨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사람의 윤리성은 자기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은 근연집단으로부터 차차 그 외연을 넓혀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발전과정이란 생각이다.

 

3.삶은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이 부분은 한 챕터의 일부로 크게 다룬 부분은 아니었지만 인상적이었다. 특히, 우리가 미래세대의 권리를 위해 그들을 태어나게 해야하는가 부분이 관심이었다. 싱어는 태어날 미래세대가 큰 질병이나 장애로 의미없는 고통스런 생애를 살아가야 할 경우, 마땅히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판단한다. 실제로 싱어는 가족이 치매를 앓는 경우를 겪었기에 그 생각은 더욱 실제적이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불우 이웃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무책임하게 장애나 가정형편이 어려우면서도 마치 조선시대 흥부처럼 자신의 부양능력을 넘어선 자식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고는 한다. 능력이 되지도 않으면서 왜 낳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그러한 배경에서 자라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이렇게 입양보낼 것이면 왜 낳을 거이며 이렇게 버릴 것이면 왜 낳았느냐고.

 하지만 거꾸로 생각할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장애와 질병을 갖고 있는 한 부부가 그 자신들의 형편에 의해 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리고 만약 그 아이가 불가능하겠지만 어떤 의식이 있다면, 그런 경우에도 부모의 결정에 동의할지는 실제로 미지수다. 그런 경우 그 존재는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부모에게 말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자신이 우리 부모님이 단지 아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경제적 사정이거나 내가 장애를 가진 기형아라는 이유로 낳지 않는다면 나란 존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양자가 모두 동의하는 의미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당장 내일 지구에 소행성이 떨어진다던지, 아니면 정말 태어나자마자 가능성 없는 질병에 고통속에 며칠을 살다가 다시 죽어야하는 경우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게 아니라면 적어도 일단 생겨난 생명엔 가능성을 주어야 하는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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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보고나서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뭔가 인간으로 나아가는 듯한 해골에, 아슐리안 주먹도끼. 그리고 저자는 종교전문가다. 뭔가 색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은 여러모로 예상을 엇나갔다. 우선 제목과는 좀 다르게 아주 초기부터 오늘날 까지의 인간 발전사를 언급하는 부류의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인간을 있게 한 초기특성의 발전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그 중 무엇이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말하려고 했다.

 책에서 말하는 인간다운 특성은 상당히 여러가지가 등장한다. 장거리 달리기 능력, 요리, 예술, 도구 제작능력, 불의 사용, 이타성, 늑대를 개로 만든 능력 등이 그것들이다. 이 중 인상적인 것을 몇개 정리해보았다.

 

우선 불의 사용이다.

저자는 불의 사용을 에너지의 원천이자 변화 무쌍한 불을 인간이 인위적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의미지었다. 이런 의미화도 좋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책에서는 불의 사용을 언어나 달리기, 직립보행등 다른 것들에 비해 주변적으로 다룬 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었다.

 저자는 불의 사용으로 인간이 비로소 동물의 사체를 두고 과감히 맹수를 물리치는 것이 가능해졌고, 맹수의 보금자리였던 동굴을 쟁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또한 불로 인해 빙하기를 이겨내고 추운 지역으로의 이주가 가능했으며 요리의 시작도 불로 인해 가능했다고 본다. 고기를 굽는등의 행위로 이미 상당히 소화과 된거나 마찬가지인 음식의 섭취로 인해 어금니와 송곳니등 공격적인 신체부위가 감소하고 턱관절이 줄어 결과적으로 머리뼈가 가늘어지고 이로 인해 두뇌의 용량이 커지는 신체구조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불로 인한 음식물에서의 칼로리의 섭취 증가도 이를 도왔을 것이다. 또한 불로 인해 다른 야생동물들 처럼 사냥감을 제자리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위해 이동시킬 필요가 생겨났는데 이로 인해 화로에서 함께 식사하는 인간 특유의 문화가 생겨났다고 본다.

 그리고 과거 태양에 의해 생물학적 시간이 밤과 낮으로 고정되는데서 탈피하였고, 소수의 보초가 불의 힘으로 다수를 지키고 잠을 이겨낼수 있어 안전보장이 확대되고 이로 인해 생존력과 자식의 번성이 같이 갔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오래 달리기다.

요리로 인해 얼굴구조가 변하면서 납작한 코가 돌출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외기의 습기와 온도조절이 용이해지면서 인간은 숨이 차는 것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털의 제거로 인해 효과적인 열의 발산이 가능해졌다.

 대부분의 맹수들은 체온조절에 어려움이 있어 타는듯한 한 낮에는 활동이나 사냥을 피하는 편이지만 인간은 이러한 체온조절 능력으로 낮에도 강한 활동이 가능했다. 이는 상당한 틈새이점이었을 것으로 사냥감들도 한낮에는 활동이 쉽지 않았을 것을 감안하면 더 큰 이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달리기는 인간의 중요한 특성중 하나인데 오랜 달리기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뇌에서 분비하는 물질로 인해 생기는 러너스 하이 현상도 오래 달리기를 성공적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강한 보상체제로 본다.

 

마지막은 개이다.

인간은 개의 강력한 위계조직과 새끼를 어려서부터 키우면 따르는 특성을 파악하고 개를 가축화했다. 개는 인간이 빙하기를 견딜 수 있게 돕고, 사냥을 도왔으며 인간의 가축을 맹수로부터 지켜내고 어둠속에서 인간을 보호했다.

 저자는 이런 개의 역할이 인간이 샤냥채집경제에서 농업정착경제로 이행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

 

책은 이 외에도 다양한 호모사피엔스로 변화해나가는 다양한 인간의 특성을 살핀다. 종교학자이니 만큼 과학적 성과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가장 인간다운 특성으로 이타심을 꼽는다. 아무래도 종교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저자는 이 이타심과 더불어 요리를 통한 공동식사문화와 예술의 발생과 사후세계의 발명 등이 종교를 탄생시킨 요소로 보고 있다. 물론 그런식으로 정리하진 않았지만. 하지만 이타심의 발생근거와 종교의 발생근거를 엄밀히 짚어내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여러 특성에서 우러나온것 처럼 논리를 전개시켜나가는 부분이 논리적으로 빈약하다는 느낌을 제법 주었다는게 이 책의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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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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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채사장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책을 일년에 한권씩 내는 것 같다. 지대넓얉 시리즈 1-2권, 시민의 교양,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가 2014년부터 올 2018년까지 매해 차례로 한권씩 나온 것 같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책 두께가 점차 얇아지고 있다. 책 크기도 좀 작아지는듯 한데 기분 탓일수도 있겠다. 또 하나가 있다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이지만 나-타인-세계의 단순한 체계가 있다면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세계에서 나의 순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대넓얉과 시민의 교양이 주로 세계와 타인 같은 외부라면 열한계단과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주로 타인과 나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이것은 채사장 특유의 세계를 바라보는 생각 때문인데 바로 나 자신이 세계를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본론에서 좀 더 자세히)

 나는 이상하게도 채사장과 강신주가 자꾸 비교된다. 둘은 전공도 다르며 살아온 길과 성격도 매우 다르며 책도 다르지만 적어도 한국 출판시장에 인문학의 돌풍을 불러오고 일으켰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일단 2012년부터 2015년정도까지가 강신주의 시기였다면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채사장의 시기로 보인다. 적어도 인문학 열풍 시장에선 채사장이 강신주의 대체재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두 저자의 수준은 공통적으로 매우 높으면서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입장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강신주는 책에서 대개 자신의 주체로서의 감정을 중시하고 그것을 억압하는 자본과 사회에 맞서 과감히 주체로서 다시 일어설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와 자본, 그리고 가족, 타인에 의해 자신이 억압당하고 진정 원하는 것을 행하지 못함을 솔직히 직시하고 변화해 나가는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서양 및 동양철학이나 불교, 인문고전 및 예술등 주로 철학적인 것들을 동원한다.

 반면 채사장은 지대넓얉이나 시민의 교양에서 볼수 있는 것 처럼 경제, 사회, 정치, 윤리, 역사, 과학 등 인문사회거의 분야를 보다 총체적으로 다루는 편이며 책 제목처럼 정말 넓고 쉽게 다룬다. 채사장은 사회와 국가차원에서는 결국 시민이 될 것을 그리고 개인과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변화하는 세계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의미를 찾기를 바란다. 

 둘은 공통적이면서도 상당히 다른 편인데 강신주가 보다 어렵고 깊으며 직접적이고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채사장은 보다 편하고 쉬워보이며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이런면이 지금의 흐름을 만든 것은 아닐런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두 훌륭하신 저자의 비교가 되지도 못한다. 그리고 난 두번 모두의 책을 매우 좋아한다. 

 어쨌든 쓸데없는 서론이 길었지만 이번 채사장의 책으로 돌아온다면 책은 매우 훌륭했다. 열한계단을 읽으면서 다음책을 더 보아야 할까 고민했었다면 이번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난다를 보면서는 다음책을 반드시 봐야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이 책은 타인-세계-도구-나의 순서로 이어지며 여기서 도구는 내가 세계 및 타인과 연결되는 방법이다. 이런 순서를 취하게 된 이유는 채사장은 세계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서로 무엇이 앞선다고 보기 어려운 동근원적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는 내가 인식하기에 비로소 존재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며 나에 앞서 실재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신할수 없다. 세계는 나의 주관하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앞도적이다. 나는 나의 의미를 찾기에 앞서 세계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것들에 앞도되어 나의 의미를 찾기 어렵고 나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본의 아니게 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을 밖에서부터 하게 된다. 

 내가 바깥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한데 책에서는 통증과 이야기, 언어를 들고 있다. 통증은 아픔을 느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과 몸의 아픔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 나의 바깥으로 나아갈수록 다른 것들의 통증은 약하게 느껴진다. 그로 인해 인간은 다행히도 무한한 세계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자신에 집중하며 살수 있지만 결국 세계와 다른 사람들의 아픔으로 인한 문제는 둔감해진다. 그래서 넘치는 식량에도 세계의 다수는 굶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픔에 대한 통증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바로 윤리와 관심, 책, 영화, 예술, 세계에 대한 관심을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확장시켜서 말이다. 

 다음 도구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세계와 나를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과학이 말하는 이론이나 자본의 논리, 어느 정치의 논리, 과거로는 신화의 논리등이 모두 해당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나는 무한히 확장도 하지만 철저히 억압받고 제한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쨌든 어떠한 이야기를 통해 관계 맺건 나의 이야기는 철저히 나만의 이야기일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계를 보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채사장은 두가지 이야기를 든다. 하나는 자본의 이야기, 하나는 믿음이다. 자본은 제법 많은 걸 준 이야기지만 우리에게서 생산자의 지위를 빼앗아갔다. 춤과 노래, 말과 대화, 사유와 지식이다. 자본은 춤과 노래에 대해선 셀럽들은 말과 대화에 대해선 토크쇼 진행자들을 사유와 지식에서는 채사장과 강신주 같은 사람들은 매체를 통해서 보여줌으로서 이것들을 생산하던 역할을 우리에게서 박탈했다고 말한다. 자본은 우리에게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을 허용한다. 

 믿음은 진리에 관한 것이다. 어느날 전체에서 A라는 부분 집합이 생겼다. 이것은 유물론일수도 공산주의일수도 신자유주의일수도 있다. 그런데 A는 자신이 진리라고 곧 생각한다. 그리고 전체집합의 나머지들 역시 A 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A는 그날 이후 같이 있떤 BCD를 억압하고 회유하기 시작한다. 폭력도 물론이다. 우리나라의 정치판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마지막 도구는 언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채사장도 언어의 불완전함을 지적한다. 그로인해 우리는 의사소통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해를 갖게 된다. 이런 언어의 불완전함을 해결하는 방안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언어의 양을 늘리는 것이고 하나는 줄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말을 못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더 자세히 설명하거나 아니면 다른 말을 쳐내고 핵심만 이야기한다.

 채사장은 언어의 양이 극단적으로 늘어난 것이 책이며, 가장 극단적으로 줄어든 것을 시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는 의사소통을 위해 불필요한 언어를 최대한 쳐낸 것으로 오려 가장 직접적이고 오해가 적은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를 잘 이해한다고 한다.??? 반면 책은 언어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말만으로는 되지 않아 이해를 위해선 선이해가 필수적이다. 어릴적 읽었던 고전이 나이가 들었단 이유만으로 이해가 되는 것은 이래서이다. 그래서 채사장은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어릴적부터 고전을 강요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한다. 참 독특한 시각이다.

 사실 이 모든 말은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을 위해 다가가는 과정이었다. 마지막엔 채사장은 자신의 의미를 찾는데 집중한다. 물론 그건 쉽지 않다. 우리는 삶에 휩쓸려 살아가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사장은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더라도 의식은 남는다는 것이고 조건이 허락한다면 무수한 세월이 지나 다시 생명체로 나타나 사고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속 반복된다. 그리고 거기서 삶을 바라보는 나는 결국 자신과 세계가 얽혀있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신비주의적이고 불교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결론이다. 불교에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윤회한다. 또한 과학적 입장에서는 결국 내가 가진 에너지와 나의 몸을 형성하는 물질은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우연히 뭉치고 모이고 진화하여 나를 형성한 것이고 결국은 빌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시 흩어져 어디선가 다시 비슷한 일을 행할 것이다. 우주가 계속되는 한. 

 아마도 채사장의 다음 책은 이런 의미를 찾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많이 다룰것 같다. 그의 책은 계속해서 외부에서 시작해 종착에는 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책도 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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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비결 - 사기, 성공하는 관계를 말하다
박영규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요즘 관계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인간이란 말자체가 사람의 정체성을 사람간의 사이로 묘사하는 만큼 사람에게 있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영원한 고민거리 일 수 밖에 없다. 일전에 읽었던 행복의 기원에서는 사람의 행복에 관한 가장 큰 요인으로 사람간의 관계를 꼽았었다. 관계가 행복의 근원임에도 인간의 성향을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양분할수 있는 것은 관계가 행복의 근원인 동시에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책 관계의 비결은 사람간의 올바른 관계 맺기에 관한 책이다. 좀 독특한 점은 이를 심리학이나 다른 여타의 것이 아니라 고대 중국의 역사와 일화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주로 의존한 것은 사마천의 사기다. 사기는 기원전 3천년 중국 전설의 삼황오제시기부터 사마천의 시기인 한나라 무제까지를 다룬 역사책이다. 한나라 무제시기(고조선이 이 무제땜에 망했다.)도 상당히 오래전인데 그것이 가장 최근인 역사책이니 중국의 역사가 오래긴 하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수많은 일화중 관계 맺기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관심과 배려, 정의로움을 기준으로 이를 잘 드러내는 일화들을 소개하는 형태로 책을 구성했다. 그래서인지 책은 관계 맺기 책 같기도 하고 중국 역사 일화책인것 같기도 한 애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중국의 고대 역사엔 삼국지이외엔 크게 관심이 없는지라 책에서 다른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그리고 진과 진한교체기의 인물들이 낯설기도 했다. 아마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여러 역사소설이나 초한지 정도를 독파한 분이라면 이 책에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클 것이라 생각된다. 

 재밌고 인상적인 부분은 앞 부분 유방과 항우에 대한 점이다. 저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양웅의 관계 맺기에서의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고 생각한다.

  유방의 경우 기본적으로 성격이 소탈하고 너그러우며 옳은 말이라면 즉각 자신의 태도를 고치는 성품을 지녔다. 또한 전 왕조인 진의 함양을 점령했을때 그 화려함에 욕심을 부리고도 부하의 참언에 이를 그대로 보존하여 이로 인해 전쟁내내 윤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선다.  물론 상당히 세속적이면서 자기가 살고자 자식까지 죽일 수 있는 비정함도 갖추고 있다.(유방은 전쟁에서 패해 마차가 추격당할때 속도를 내기 위해 동승하던 자신의 두 자녀를 마차밖으로 내버리려 했다.) 본인의 권력에  대한 강한 의지와 그로 인한 비정함에도 유방의 이런 관계맺기는 상대방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정의로움까지 모두 갖춘 셈이다.

 반면 항우는 훌륭한 집안과 세력등 유방에 비해 객관적 조건이 월등함에도 부하의 말을 듣지 않는 불같은 성격, 부하에 대한 신뢰의 부족(그래서 항우의 부하들은 위기시 모두 등을 돌린다),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판단력. 거기에 진의 함양을 유방의 점거이후 나중에 들어가 약탈함으로써 도덕적으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즉, 관계맺기의 배려와 정의로움, 관심이 모두 부족한 셈이다.

 유방의 통일 후 2인자들의 대조적인 후일담도 인상적이다. 장량과 소하, 하후영은 유방과 아주 초기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토사구팽이라고 전후 강력한 2인자 세력은 1인자에 의해 숙청되기 마련. 이들은 이런 관계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끝까지 자신의 몸을 낮춤으로써 자신과 일가를 보존할 수 있었다. 반면 한신과 경포, 팽월(다 무인이다.)은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공적 및 유방과의 변화된 관계를 감지하지 못하면서 숙청되고 만다. 관계에서는 변화 역시 중요한 것이다.

 이처럼 책에서 사기의 일화를 통해 들려주는 관계 맺기의 핵심은 배려와 관심, 정의로움을 유지하면서도 결국은 여러 요인에 의한 관계의 변화와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과 적절한 처신 그리고 거기에 운까지 겹쳐줘야 긍정적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전란중의 관계 맺기에 관련한 책이라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어 보일수 있긴 하지만 우리의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안보이는 물밑작업을 통한 관계의 싸움이지 않은가? 결국 결핍된 존재라 남을 필요로 하므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린 아직 사적인 네트워크에 얽혀사는 유인원 집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이는 냉정한 현실이다. 중국역사와 더불어 관계 맺기에 대한 뭔가를 던져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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