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에게 지식은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였고, 이는 과거나 현재나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정보혁명으로 지식의 위상은 크게 변화했다. 우선 지식은 양적으로 폭증했고, 소재와 성격이 변했다. 과거 지식은 일부전문가의 좁은 뇌속에 있었으나 도서관과 네트워크로 이동했고 이로 인해 지식은 소유나 전수가 아닌 검색과 공유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빠른 변화로 수명도 단축했다.

 이와 같은 지식의 변화로 저자는 이젠 지식의 시대는 끝났고 이를 활용하는 생각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고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책의 시작점으로 생각의 도구를 발명한 서양의 과거로 시선을 돌린다. 과거 서양의 지식은 폭발와 융합을 반복하며 성장해왔는데 축의 시대가 지식의 보편성을 추구한 폭발기였다면, 기독교 시대는 축의 시대의 철학과 기독교 정신이 통합된 융합의 시기였다. 그리고 과학혁명기는 지식의 확실성을 추구한 폭발기였으며 정보화와 세계화로 지식의 다시 융합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인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의 보편성을 추구해왔다. 이는 보편성이 가진 큰 힘때문인데 자연이나 사회의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설명함으로써 다른 인간을 설득하여 움직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편성의 추구방향은 동서양에서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 서양은 보편성을 자연에서 찾아 보편적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탐구하여 학문이 사직된 반면 동양은 보편성을 인간에게 찾아 종교나 도덕법칙에 천착하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과 자연과학의 태동했고,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학문의 기초가 실용성에 그치고 고대 종교가 태동했으며 중국에서는 도덕철학인 유교가 발달한 점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그렇다면 어째서 서양과 동양의 길은 그렇게 달랐을까? 많은 책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저자도 이를 지리적 우연에서 찾았다. 물의 부족과 대규모 경작지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은 관개공사가 필요했다. 이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자연스레 중앙집권적 권력구조가 형성되었다. 밀집하여 모여살고 공동작업이 필수라 상호간에 화목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보편성의 추구는 인간의 도덕법칙이나 종교를 찾게 되었다.

 반면 그리스는 산악지형에 해안에 좁게 자리한 평야에 옹기종기 폴리스가 지리적 간격을 두고 생겨났다. 또한 농사가 잘 되지 않고 강수량이 적어 식량확보를 위해 무역이 필수적이었다. 이렇다보니 폴리스는 매우 국제적인 성격을 띄고 정치경제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었으며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자연히 연설과 토론 논쟁이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이 민주주의와 생각의 도구들을 낳게 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보편성을 학문과 자연법칙을 향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생각의 도구들을 다루기 전에 책은 우선 생각 이전의 생각을 다룬다.

 

1. 생각 이전의 생각

인간의 의식은 1차적 의식과 고차적 의식으로 구분된다. 1차적 의식은 주로 범주화와 관련하는데 범주화는 모든 생물의 최초 사유라 할만한 것이다. 생물은 우선 생존을 위해 자신과 자신이 마주하는 환경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물의 구분이 바로 범주화다. 이런 성격으로 범주화는 의식적인 사유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신체화되어 있는 방식의 한 결과에 가깝다. 때문에 동물에게 범주화는 자신이 할수 있는 행위의 가지수와 매우 밀접해진다. 더 많은 행동능력을가질 수록 범주화 가지수가 많아 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탁자와 의자가 있고 그 위에 과일바구니가 있는 방이 있다. 파리라는 동물에게 탁자와 의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직 과일바구니만 의미가 있다. 범주화가 먹을 것과 아닌것으로 단순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개에게 탁자와 의자는 올라갈 만한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범주화는 더 많아진다. 그리고 인간에게 이르러 방에 있는 거의 모든 사물이 의미가 있어진다.

 그리고 언어가 있기에 인간의 범주화는 단순한 행동능력 그 이상이 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다양한 개념과 추상화가 가능하고 이것들로 행동능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범주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언어로 인해 인간 개개인의 범주화는 큰 수준차이를 보인다. 학습에 의해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수학을 배우지 않은 자가 삼각형이나 사각형을 범주화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범주화는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지만 범주화 만으로는 1차적 의식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학자들에 의하면 범주화를 통해 형성된 개념을 적당히 배열하거나 묶어 고차적 사고로 가기 위해서는 개념적 혼성이 필요하다. 개념적 혼성은 범주화로 형성된 개념들이 서로 결합하는 것으로 비로서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생각의 도구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2. 첫번째 생각의 도구 은유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한 것으로 "시간은 돈이다" 같은 표현이 대표적인 은유다. 은유는 수사적 은유와 사회문화적 은유로 나뉘는데 사회문화적 은유가 먼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은유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유사성이 필요하다. 비슷한 것 끼리 묶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같다는 표현은 시간과 강물사이에 빠르게 지나가는 유사성으로 생긴 은유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은유는 보편성을 지향한다.

 하지만 은유는 반대로 비유사성으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앞서 말한 시간은 돈이다라는 표현이 그 예인데 시간과 돈은 유사성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은유는 창의성을 지향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이나 말은 실제로 몇가지 은유적 표현을 전제로 깔고 사용되고 있으며 저자는 사실상 이로 인해 거의 모든 학문은 은유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은유를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방법도 강조하는데 윤유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시를 읽게 하거나, 주머니에 여러 단어를 넣고 뽑아서 나온 두개의 개념을 연결하여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찾게 하는 방법을 권유한다.

 

3. 두번째 생각의 도구 원리

 원리는 우리가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고 예측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돕는 도구다. 하나의 원리는 자신과 정합하는 다른 원리와 모이거나 또는 원리는 창조하여 학문전반을 구성한다. 원리의 발견은 관찰에서 시작한다. 자연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사고하고 추론하여 원리를 만들고 그것이 실제 자연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맞아 떨어질 때 원리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찰에는 은유와 마찬가지로 유사성이 중시된다. 유사성을 바탕으로 패턴을 발견하여 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원리를 발명하는 방법으로 인간은 연역법과 귀납법을 개발했는데 이 둘은 훌륭한 방법이지만 서로 단점을 갖고 있다. 연역법은 결론이 전제 안에 들어있어 전제가 참이면 결론자체가 반드시 참인 진리보존적 성격 이 있지만 진리가 확장되기는 매우 어렵다. 반면 귀납법은 관찰에 의한 것으로 결론을 양적으로 확대해 나가며 얻는다. 진리확장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결론이 개연적으로 참일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가추법은 이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우선 결론이 전제에 있지 않다는 면에서 연역법과 다르며 결론을 양적으로 확대하여 얻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귀납법과 다르다. 가추법은 관찰을 통해 드러난 어떤 특이한 현상에 대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창출해내고 이 가설을 증명함으로써 원리는 만들어낸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가추법을 통해서 주요 원리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원리 창출과정에서 한사코 연역법을 채택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가추법의 결론이 항상 참일 수는 없다라는 약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나무에서 배가 떨어지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하고 이 원인으로 까마귀가 나는 것을 가설로 세울 수 있다. 즉 까마귀 날면 배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이후 같은 사례가 여러차례 목격되면 진리로 입증될 수 있다. 하지만 까마귀가 나는 것 이외에도 배가 떨어지는 것에는 다른 원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가추법은 약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면 이 다른 가능성을 제거한다면 가추법의 신뢰는 매우높아지게 된다. 이로 인해 등장한 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배운 가설연역법이다. 가설연역법은 가추법과는 다르게 현실세계를 관찰하고 이를 설명하는 모델인 가설을 설정하며 가설에 따라 현실세계를 예측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 대한 자료를 모은 후 부정적 결과가 나오면 가설을 폐기하고 긍정적 결과가 나오면 가설은 이론으로 입증된다.

 저자는 가추법의 교육 방법으로 가추법이 많이 사용된 추리소설을 읽게 하거나 속담을 주고 그 속담에 해당하는 설명이나 이유 찾기를 제시한다.

 

4. 세번째 생각의 도구 문장

인간의 언어는 사건적 기능과 논증적 기능을 수행한다. 사건적 기능은 흥미로운 정보를 동료에게 알리는 것이며 논증적 기능은 바로 그 사건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정보를 퍼뜨리는 것을 일삼기 때문이며 논증적 기능은 바로 이를 막기 위해 진화했다.

 문장은 고대 그리스에서 점차 발전해왔는데 초기의 문장은 알파벳 모음이 없어 제대로 읽기가 어려웠고 소수 지식층에 독점되었다. 하지만 모음이 개발되고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편해지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글을 운문으로 쓸수 밖에 없었던 것에서 산문이 널리 퍼지게 되고, 산문에서 철학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문장의 논증적 기능이 발전하며 논리학과 수사학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문장은 인간이 생각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전개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특히 문장은 논리력 향상의 주요도구다. 수학이 있기는 하나 영역이 제한되어 있고 은유만으로는 창의성을 키울 수 있으나 논리성은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은 문장과 관련하여 통사론을 매우 강조한다. 통사론은 모든 글의 낱말 간의 관계, 문단의 의미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규칙으로 단어가 결합하여 생기는 구나 절, 문장의 구조나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통사론을 익히지 못하면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추상적 논리적 사고가 불가능하며 시간인식및 자기의식과 역사의식이 결여된다.

 때문에 통사론의 교육이 매우 중요한데 책은 교육 방안으로 책 읽어주기를 제시한다. 책 읽어주기는 아동에게 정서적 안정감은 물론이다 어휘력과 상상력을 상승시키켜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의 접근이 가능하더라도 3-5세에게는 독서를 시키기 보다는 책을 읽어주고 7세 이후에 책을 읽도록 권장한다. 7세 이전엔 독서와 관련한 대뇌피질의 발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5. 네번째 생각의 도구 수학

수학은 오래전부터 사물과 동료를 헤아리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수학에 의미를 부여한 것을 피타고라스부터다. 그는 자연의 근본 원리로 수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나 수학인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원리라 보았고  이는 수학을 자연화하고 수학을 이미지화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후 수학은 꾸준히 발전하며 정말자연의 원리를 구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으로 단일체계가 아님이 밝혀졌고,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로 그 안에서의 완전성의 담보도 깨어져나갔다.

 이로 인해 수학의 의미는 진리로서의 의미는 다소 퇴색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수학화와 인간의 실생활의 필요성으로서의 수학의 의미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여전히 수학은 중요한 생각의 도구인 것이다.

 저자는 수학의 교육 방법으로 컴퓨터 기술의 발달을 주목한다. 수학은 종이에 복잡한 수식과 숫자로 표현되다보니 피타고라스의 경우와는 다르게 수학적 대상을 청각적 혹은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그것이 가능해졌으며 이로 인해 수학을 다른 학문과 예술, 더 나아가 실생활과 연결하여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것이다.

 

6. 마지막 생각의 도구 수사

수사는 소피스트에 의해 개발된 후 설득의 도구로 쓰였고 중세까지 매우 실용적인 학문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며 설득의 역할을 수학과 과학에 넘겨주며 교육의 대상에서도 제외되는등 쇠퇴의 길을 겪었다. 하지만 다시금 수사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는 현대 사회가 민주주의가 보편화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퍼지는등 다양한 의견과 시각이 대두하고 이에 대한설득이 다시금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재밌게도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수사를 광고에서 찾는다. 광고야말로 설득이기 때문이다. 실제 광고에서는 매우 다양한 수사의 기법이 자리한다. 저자는 과거에는 수사가 상투적인 고사성어나 격언 속담을 활용하는데 그쳤지만 최근엔 수사에 창의성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최근의 수사교육은 다소 모순적인데 공교육이나 교육기관 어디서도 수사교육은 찾을 수 없지만 모습을 다소 달리하여 스피치나 남을 설득하는 글쓰기의 기술에 관한 책이 널렸기 때문이다. 이는 곧 수사인 셈인데 실제로 이분야에서 성공한 스타강사도 많다. 저자는 이들을 현대판 소피스트라 부른다.

 수사교육의 방법으로 책은 낭송과 암송을 제시한다. 훌륭한 수사적 기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작품 안의 수사적 기법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도 제시한다.

 

7. 마무리.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근대적 이성의 문제점을 살핀다. 근대적 이성은 고대 그리스의 것과 과학혁명의 것과도 다르지만 연장선 상에 있으며 동일성과 모순률을 기반으로 한다. 동일성에 대한 강조로 확실성을 추구하고 체계를 단순화하고 견고히 했지만 문제는 실제세계가 그리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확실성에 대한 집착은 전체성, 획일성, 주체성, 역사성을 낳았으며 그것에 내재한 폭력성이 발현 된것이 제국주의와 세계대전 그리고 인종차별로 자자는 파악한다.

 그후 68혁명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대두되었지만 이들은 사그라든다. 비판은 했고 해체를 주장했지만 이후에 자리할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생각의 도구로 무장한 새로운 이성의 개조를 제시한다. 생각의 도구로 단련된 이성이 가능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동일성에 기반한 것인 아니라 유사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미래와도 관련한다. 우리는 이미 뇌를 두개 가졌는데 하나는 우리의 생물학적 뇌요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마트론과 검색이 우리의 뇌를 장악하고 생각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생각의 도구로 무장한 유사성에 기반한 뇌가 동일성에 기반한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을 활용해간다면 새로운 밝은 미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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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융 심리학을 기본 바탕으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림자에 대한 책이다. 성에 관한 문제로 나중엔 결별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융이 프로이드의 제자인 만큼 프로이드 심리학의 기본 바탕인 이드, 에고, 수퍼에고 등이 등장한다. 책엔 주로 자아가 많이 나온다.

 골자는 비교적 간단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구를 가진 동물인 만큼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한 본능적 갈망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다 이런 욕구를 잘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나 다름 없는 우리의 문명은 이 욕구를 허용하지 않는다. 많은 문화권에는 여러 가지 금기사항이 있으며 허용되는 사회적 문화적 기준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로 인해 인간은 자아를 형성하여 그 사회의 문화적 틀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이 과정은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그림자가 생성되는 과정이자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사회적으로는 문화인이 되는 단계이다. 하지만 인간은 문화인이자 필연적으로 동물이기에 본능적 욕구를 갈망하며 그림자는 점점 커져나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일부인 그림자를 혐오하고 대면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수록 커져간다. 그림자가 커지면 인간의 심리적 시소는 붕괴되며 그것이 내적으로 향하면 정신병이나 우울증, 자살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외적으로 향하면 폭력이 자신의 가족이나 이웃, 사회의 소외계층이나 다른 민족, 다른 국가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인간이 선한 존재로 거듭나기보다는 그림자를 인정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켜나가는 전일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림자를 달래는 과거의 좋은 방법은 제의나 미사를 통해서였다. 포장되기 전의 교회 미사는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의식이었으며 사제는 그 폭력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제복을 입었다. 사람들은 그런 의식에 동참하며 그림자를 달랠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사는 그런 것을 모두 버렸으며 사람들은 그림자를 달랠 방법을 잃었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진 것이다.

 책은 그림자를 달랠 방법으로 종교, 운동, 예술, 다양한 취미활동, 음침한 소설이나 호러물, 잔혹한 영화 보기등을 든다. 이래서 성격이 비교적 온순하고 겁이 많은 사람도 좀비물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해결책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개인이 문화인으로 선한 삶은 살고 그러한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림자를 위한 행위도 해야함을 주장한다. 사람은 그림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을 남에게 투사하기도 하는데 투사의 대상은 주로 자신의 자식이나 배우자다. 투사된 대상은 남의 그림자에 자신의 그림자까지 얹혀 있는 셈이기에 그림자를 달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업보가 쌓이는 셈이다.

 

 

 

 

 

 

 

 

 

 

 

 

 

 그림자 책을 보면서 2년정도 전에 읽은 '왜 그들이 이기는가' 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장은 참 신선했는데 선진사회의 성공 요인을 본능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능적 욕구를 억누르거나 제대로 분출될 만한 통로를 마련하지 못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우며 이를 창의적인 부분이나 생산적인 부분으로 전환해주고, 긍정성을 부여한 사회가 성공했다는것이 이 책의 주장이었다. 그림자 이론과 매우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었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어둠을 빛과 하나로 보고 조화시키고자 하는 이런 생각은 사실 우리에겐 크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가 이미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철학을 국기로 가진 나라가 교육이나 사회 여러분야에서 전인적 인간이 가장 부족하다는 것은 역시 또 하나의 모순이지만.

 그림자 책을 보면서 인간의 필연적인 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았다. 악은 매우 말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존재가 자신이 뭔가를 얻기 위해 다른 존재를 해치거나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스스로 양분을 얻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인 동물이나 식물을 해할 수 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 악을 행할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악을 동등하게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둘은 하는 일이 달랐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오랜 세월을 보낸 수렵경제시절 남자는 집단으로 사냥을 했고, 여자는 채집을 주로했다. 둘다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를 해하는 것이지만 채집은 다른 존재를 해하는 정도로 끝날수 있는 경우도 많았고, 식물이라는 존재의 고통을 인간이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그림자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하는 사냥은 동물을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은 매우 잔혹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었기에 훨씬 많은 그림자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거기에 인간 사회 내에서도 남성은 수컷이고 사냥을 위해 수직적 관계롤 어느 정도 형성했기에 자신들 간의 짝짓기를 위한 지위 및 부를 얻기 위한 경쟁으로 더 많은 그림자가 필요했고 생겨났을 것이다. 반면 여자는 짝짓기 경쟁이 남성에 비해 훨씬 적고,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관계가 많아 보다 적은 그림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번식을 위해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육아해야 했기 때문에 그림자는 더욱 옅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한 존재를 키워내기 위해선 아무래도 빛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그림자를 짊어져서인지 남성은 전반적으로 여성보다 악하다. 살인이나 폭력, 강간, 교통사고 등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여러지표에서 여성을 압도하며, 내적으로 향하는 그림자도 감당하기 어려워 각종 약물이나, 술, 담배에도 훨씬 많이 외존한다. 수명도 그래서 더 짧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악하고 그림자가 짙었기에 더 빛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자가 창의적인 부분이나 문화예술과 관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슴을 저미는 명곡이나 문학작품은 그림자가 짙어지는 이별이나 극도로 부조기한 현실속에서 잘 탄생하며 심지어 그렇기에 몇몇 예술가들은 그런 경험을 원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예술가나 음악가, 주요 학자들은 남성의 비중이 여성보다 많다. 과거 여성들에게 교육기회가 전무했기에 그랬던 면이 훨씬 더 크겠지만 남성의 그림자가 더 짙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비교적 완전한 평등사회가 올지라도 이런 분야에서 남성이 조금 더 두각을 나타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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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8-09-16 09:09   좋아요 0 | URL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더 나은 세상 -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피터 싱어 지음, 박세연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실천윤리학으로 유명한 피터싱어가 83가지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책이다. 단기간에 쓴 책은 아니고 최대 10년 이상전부터 날카로운 주제들을 중심으로 짧은 글을 모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것 싱어가 유태인계라는 점과 웬지 유럽인일 것이란 느낌이 있었는데 호주인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싱어는 지금은 아니자만 서핑을 즐겼고 엄격한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 심각한 주제에 대해서 세네장 정도로 글이 짧게 다루어지기에 많은 주제를 경험할수 도 있지만 그만큼 깊게 맛보기도 그리고 좀 이해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는게 이 책의 특징이다.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가는 견해가 많았는데 생각할 여지가 있는 부분들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1. 보편적 윤리란게 가능한가?

 이 오래된 질문에 싱어는 과감히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선현들과는 상당히 다른데 싱어가 보편적 윤리로 삼는 것은 놀랍게도 공리주의에 기반한다.(보통 공리주의는 상대주의 윤리설에 속한다) 과거 싱어는 보편적 윤리를 의심하였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보편적 윤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과거 사람들은 자신들과 그 사회에 존재하는 윤리적 성향에 대해서 그 근거를 신이나 절대적 법칙, 이성이나 양심, 감정등에서 찾았다. 하지만 공리주의 윤리학의 창시자인 벤담은 이를 행복에서 찾았는데 사회구성원의 절대적 행복의 양을 더욱 크게 하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것이었다. 뭔가 대단한 것에서 윤리를 찾던 사람들에게는 어이없는 생각이었겠지만 이는 이타성의 발달이 결국 적합성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있고, 적합성을 곧 행복으로 여기는 유기체의에 대한 진화론의 입장을 받아들인 다면 매우 그럴듯한 설명이 된다.

 실제로 몇몇 진화론자들은 이런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행복이나 윤리성에 대한 보편성으로 인해 보편적 도덕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이타성이나 행복에 관한 인간의 판단과 그에 대한 주관성은 상당히 일관성이 떨어지는 편인데, 정말 냉철하게 계산적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그런걸 해준다면 보편성이란걸 획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이 그걸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식은 역시나 상대적일 것 같다는 느낌.

 

2. 동물에 대한 윤리

피터싱어는 동물에 대한 윤리의식으로 상당 기간을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그가 육식으로 돌아갈 유일한 가능성은 배양육 정도인데, 현재의 기술수준으론 이미 고령인 싱어는 아마도 채식만하다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싱어는 동물을 윤리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과 완전히 동등한 수준은 아니며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법인 같은 성격정도로 대우할 것을 주장한다. 예를 든다면 선거권이나 교육받을 권리 같은 것은 없지만(역시 딱히 의무도 없다.) 법적 인격체로서 윤리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문화적 상대주의도 배격하는데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행동들에 대해 문화적 상대주의로 취급받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싱어는 종교의 자유란 딱 다른 사람과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범위까지라고 잘라 말한다.

 용어에 관한 부분도 재밌다. 많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동물을 지칭할 때 사물을 지칭하는 관계대명사 that을 많이 쓴다. 주어로도 it을 쓴다. 하지만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특정동물에 대한 윤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점차 관계대명사 who를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실제로 소를 나타내는 cow who는 현재 40만건 정도에 cow that은 60만건으로 아직은 사물이 많지만 과거에는 거의 1:9정도 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아진 수치다.

 이런 의인화적 표현은 주로 사람과 비슷한 영장류이거나 반려동물인 경우 그 비율이 더욱 높아지는데 동물에 대한 사람의 윤리의식도 자신들과 얼마나 동등하고 가깝냐에 따라 차별화 됨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사람의 윤리성은 자기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은 근연집단으로부터 차차 그 외연을 넓혀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발전과정이란 생각이다.

 

3.삶은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이 부분은 한 챕터의 일부로 크게 다룬 부분은 아니었지만 인상적이었다. 특히, 우리가 미래세대의 권리를 위해 그들을 태어나게 해야하는가 부분이 관심이었다. 싱어는 태어날 미래세대가 큰 질병이나 장애로 의미없는 고통스런 생애를 살아가야 할 경우, 마땅히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판단한다. 실제로 싱어는 가족이 치매를 앓는 경우를 겪었기에 그 생각은 더욱 실제적이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러 불우 이웃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무책임하게 장애나 가정형편이 어려우면서도 마치 조선시대 흥부처럼 자신의 부양능력을 넘어선 자식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고는 한다. 능력이 되지도 않으면서 왜 낳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그러한 배경에서 자라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이렇게 입양보낼 것이면 왜 낳을 거이며 이렇게 버릴 것이면 왜 낳았느냐고.

 하지만 거꾸로 생각할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장애와 질병을 갖고 있는 한 부부가 그 자신들의 형편에 의해 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리고 만약 그 아이가 불가능하겠지만 어떤 의식이 있다면, 그런 경우에도 부모의 결정에 동의할지는 실제로 미지수다. 그런 경우 그 존재는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부모에게 말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자신이 우리 부모님이 단지 아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경제적 사정이거나 내가 장애를 가진 기형아라는 이유로 낳지 않는다면 나란 존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양자가 모두 동의하는 의미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당장 내일 지구에 소행성이 떨어진다던지, 아니면 정말 태어나자마자 가능성 없는 질병에 고통속에 며칠을 살다가 다시 죽어야하는 경우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게 아니라면 적어도 일단 생겨난 생명엔 가능성을 주어야 하는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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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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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보고나서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뭔가 인간으로 나아가는 듯한 해골에, 아슐리안 주먹도끼. 그리고 저자는 종교전문가다. 뭔가 색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은 여러모로 예상을 엇나갔다. 우선 제목과는 좀 다르게 아주 초기부터 오늘날 까지의 인간 발전사를 언급하는 부류의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인간을 있게 한 초기특성의 발전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그 중 무엇이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말하려고 했다.

 책에서 말하는 인간다운 특성은 상당히 여러가지가 등장한다. 장거리 달리기 능력, 요리, 예술, 도구 제작능력, 불의 사용, 이타성, 늑대를 개로 만든 능력 등이 그것들이다. 이 중 인상적인 것을 몇개 정리해보았다.

 

우선 불의 사용이다.

저자는 불의 사용을 에너지의 원천이자 변화 무쌍한 불을 인간이 인위적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의미지었다. 이런 의미화도 좋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책에서는 불의 사용을 언어나 달리기, 직립보행등 다른 것들에 비해 주변적으로 다룬 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었다.

 저자는 불의 사용으로 인간이 비로소 동물의 사체를 두고 과감히 맹수를 물리치는 것이 가능해졌고, 맹수의 보금자리였던 동굴을 쟁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또한 불로 인해 빙하기를 이겨내고 추운 지역으로의 이주가 가능했으며 요리의 시작도 불로 인해 가능했다고 본다. 고기를 굽는등의 행위로 이미 상당히 소화과 된거나 마찬가지인 음식의 섭취로 인해 어금니와 송곳니등 공격적인 신체부위가 감소하고 턱관절이 줄어 결과적으로 머리뼈가 가늘어지고 이로 인해 두뇌의 용량이 커지는 신체구조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불로 인한 음식물에서의 칼로리의 섭취 증가도 이를 도왔을 것이다. 또한 불로 인해 다른 야생동물들 처럼 사냥감을 제자리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위해 이동시킬 필요가 생겨났는데 이로 인해 화로에서 함께 식사하는 인간 특유의 문화가 생겨났다고 본다.

 그리고 과거 태양에 의해 생물학적 시간이 밤과 낮으로 고정되는데서 탈피하였고, 소수의 보초가 불의 힘으로 다수를 지키고 잠을 이겨낼수 있어 안전보장이 확대되고 이로 인해 생존력과 자식의 번성이 같이 갔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오래 달리기다.

요리로 인해 얼굴구조가 변하면서 납작한 코가 돌출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외기의 습기와 온도조절이 용이해지면서 인간은 숨이 차는 것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털의 제거로 인해 효과적인 열의 발산이 가능해졌다.

 대부분의 맹수들은 체온조절에 어려움이 있어 타는듯한 한 낮에는 활동이나 사냥을 피하는 편이지만 인간은 이러한 체온조절 능력으로 낮에도 강한 활동이 가능했다. 이는 상당한 틈새이점이었을 것으로 사냥감들도 한낮에는 활동이 쉽지 않았을 것을 감안하면 더 큰 이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달리기는 인간의 중요한 특성중 하나인데 오랜 달리기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뇌에서 분비하는 물질로 인해 생기는 러너스 하이 현상도 오래 달리기를 성공적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강한 보상체제로 본다.

 

마지막은 개이다.

인간은 개의 강력한 위계조직과 새끼를 어려서부터 키우면 따르는 특성을 파악하고 개를 가축화했다. 개는 인간이 빙하기를 견딜 수 있게 돕고, 사냥을 도왔으며 인간의 가축을 맹수로부터 지켜내고 어둠속에서 인간을 보호했다.

 저자는 이런 개의 역할이 인간이 샤냥채집경제에서 농업정착경제로 이행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

 

책은 이 외에도 다양한 호모사피엔스로 변화해나가는 다양한 인간의 특성을 살핀다. 종교학자이니 만큼 과학적 성과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가장 인간다운 특성으로 이타심을 꼽는다. 아무래도 종교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이 아닐런지. 저자는 이 이타심과 더불어 요리를 통한 공동식사문화와 예술의 발생과 사후세계의 발명 등이 종교를 탄생시킨 요소로 보고 있다. 물론 그런식으로 정리하진 않았지만. 하지만 이타심의 발생근거와 종교의 발생근거를 엄밀히 짚어내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여러 특성에서 우러나온것 처럼 논리를 전개시켜나가는 부분이 논리적으로 빈약하다는 느낌을 제법 주었다는게 이 책의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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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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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사장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책을 일년에 한권씩 내는 것 같다. 지대넓얉 시리즈 1-2권, 시민의 교양, 열한 계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가 2014년부터 올 2018년까지 매해 차례로 한권씩 나온 것 같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책 두께가 점차 얇아지고 있다. 책 크기도 좀 작아지는듯 한데 기분 탓일수도 있겠다. 또 하나가 있다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이지만 나-타인-세계의 단순한 체계가 있다면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세계에서 나의 순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대넓얉과 시민의 교양이 주로 세계와 타인 같은 외부라면 열한계단과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주로 타인과 나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이것은 채사장 특유의 세계를 바라보는 생각 때문인데 바로 나 자신이 세계를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본론에서 좀 더 자세히)

 나는 이상하게도 채사장과 강신주가 자꾸 비교된다. 둘은 전공도 다르며 살아온 길과 성격도 매우 다르며 책도 다르지만 적어도 한국 출판시장에 인문학의 돌풍을 불러오고 일으켰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일단 2012년부터 2015년정도까지가 강신주의 시기였다면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채사장의 시기로 보인다. 적어도 인문학 열풍 시장에선 채사장이 강신주의 대체재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두 저자의 수준은 공통적으로 매우 높으면서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입장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강신주는 책에서 대개 자신의 주체로서의 감정을 중시하고 그것을 억압하는 자본과 사회에 맞서 과감히 주체로서 다시 일어설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와 자본, 그리고 가족, 타인에 의해 자신이 억압당하고 진정 원하는 것을 행하지 못함을 솔직히 직시하고 변화해 나가는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서양 및 동양철학이나 불교, 인문고전 및 예술등 주로 철학적인 것들을 동원한다.

 반면 채사장은 지대넓얉이나 시민의 교양에서 볼수 있는 것 처럼 경제, 사회, 정치, 윤리, 역사, 과학 등 인문사회거의 분야를 보다 총체적으로 다루는 편이며 책 제목처럼 정말 넓고 쉽게 다룬다. 채사장은 사회와 국가차원에서는 결국 시민이 될 것을 그리고 개인과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변화하는 세계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의미를 찾기를 바란다. 

 둘은 공통적이면서도 상당히 다른 편인데 강신주가 보다 어렵고 깊으며 직접적이고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채사장은 보다 편하고 쉬워보이며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이런면이 지금의 흐름을 만든 것은 아닐런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두 훌륭하신 저자의 비교가 되지도 못한다. 그리고 난 두번 모두의 책을 매우 좋아한다. 

 어쨌든 쓸데없는 서론이 길었지만 이번 채사장의 책으로 돌아온다면 책은 매우 훌륭했다. 열한계단을 읽으면서 다음책을 더 보아야 할까 고민했었다면 이번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난다를 보면서는 다음책을 반드시 봐야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이 책은 타인-세계-도구-나의 순서로 이어지며 여기서 도구는 내가 세계 및 타인과 연결되는 방법이다. 이런 순서를 취하게 된 이유는 채사장은 세계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서로 무엇이 앞선다고 보기 어려운 동근원적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는 내가 인식하기에 비로소 존재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며 나에 앞서 실재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신할수 없다. 세계는 나의 주관하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계는 앞도적이다. 나는 나의 의미를 찾기에 앞서 세계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것들에 앞도되어 나의 의미를 찾기 어렵고 나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본의 아니게 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을 밖에서부터 하게 된다. 

 내가 바깥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한데 책에서는 통증과 이야기, 언어를 들고 있다. 통증은 아픔을 느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과 몸의 아픔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 나의 바깥으로 나아갈수록 다른 것들의 통증은 약하게 느껴진다. 그로 인해 인간은 다행히도 무한한 세계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자신에 집중하며 살수 있지만 결국 세계와 다른 사람들의 아픔으로 인한 문제는 둔감해진다. 그래서 넘치는 식량에도 세계의 다수는 굶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픔에 대한 통증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바로 윤리와 관심, 책, 영화, 예술, 세계에 대한 관심을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확장시켜서 말이다. 

 다음 도구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세계와 나를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과학이 말하는 이론이나 자본의 논리, 어느 정치의 논리, 과거로는 신화의 논리등이 모두 해당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나는 무한히 확장도 하지만 철저히 억압받고 제한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쨌든 어떠한 이야기를 통해 관계 맺건 나의 이야기는 철저히 나만의 이야기일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계를 보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채사장은 두가지 이야기를 든다. 하나는 자본의 이야기, 하나는 믿음이다. 자본은 제법 많은 걸 준 이야기지만 우리에게서 생산자의 지위를 빼앗아갔다. 춤과 노래, 말과 대화, 사유와 지식이다. 자본은 춤과 노래에 대해선 셀럽들은 말과 대화에 대해선 토크쇼 진행자들을 사유와 지식에서는 채사장과 강신주 같은 사람들은 매체를 통해서 보여줌으로서 이것들을 생산하던 역할을 우리에게서 박탈했다고 말한다. 자본은 우리에게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을 허용한다. 

 믿음은 진리에 관한 것이다. 어느날 전체에서 A라는 부분 집합이 생겼다. 이것은 유물론일수도 공산주의일수도 신자유주의일수도 있다. 그런데 A는 자신이 진리라고 곧 생각한다. 그리고 전체집합의 나머지들 역시 A 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A는 그날 이후 같이 있떤 BCD를 억압하고 회유하기 시작한다. 폭력도 물론이다. 우리나라의 정치판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마지막 도구는 언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채사장도 언어의 불완전함을 지적한다. 그로인해 우리는 의사소통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해를 갖게 된다. 이런 언어의 불완전함을 해결하는 방안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언어의 양을 늘리는 것이고 하나는 줄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말을 못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더 자세히 설명하거나 아니면 다른 말을 쳐내고 핵심만 이야기한다.

 채사장은 언어의 양이 극단적으로 늘어난 것이 책이며, 가장 극단적으로 줄어든 것을 시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는 의사소통을 위해 불필요한 언어를 최대한 쳐낸 것으로 오려 가장 직접적이고 오해가 적은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를 잘 이해한다고 한다.??? 반면 책은 언어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말만으로는 되지 않아 이해를 위해선 선이해가 필수적이다. 어릴적 읽었던 고전이 나이가 들었단 이유만으로 이해가 되는 것은 이래서이다. 그래서 채사장은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어릴적부터 고전을 강요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한다. 참 독특한 시각이다.

 사실 이 모든 말은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을 위해 다가가는 과정이었다. 마지막엔 채사장은 자신의 의미를 찾는데 집중한다. 물론 그건 쉽지 않다. 우리는 삶에 휩쓸려 살아가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사장은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더라도 의식은 남는다는 것이고 조건이 허락한다면 무수한 세월이 지나 다시 생명체로 나타나 사고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속 반복된다. 그리고 거기서 삶을 바라보는 나는 결국 자신과 세계가 얽혀있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신비주의적이고 불교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결론이다. 불교에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윤회한다. 또한 과학적 입장에서는 결국 내가 가진 에너지와 나의 몸을 형성하는 물질은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우연히 뭉치고 모이고 진화하여 나를 형성한 것이고 결국은 빌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시 흩어져 어디선가 다시 비슷한 일을 행할 것이다. 우주가 계속되는 한. 

 아마도 채사장의 다음 책은 이런 의미를 찾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많이 다룰것 같다. 그의 책은 계속해서 외부에서 시작해 종착에는 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책도 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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