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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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능력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크게 4분야로 구성된다. 사람은 태어나서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걸 따라 말한다. 듣고 말하는 이런 언어능력은 생득적인 것으로 오랜 진화 끝에 얻은 것이다. 수준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모든 사람이 듣기와 말하기 능력을 비교적 쉽게 얻는다. 하지만 다른 언어능력인 읽기와 쓰기는 그렇지 않다. 문자가 아예 없는 소수 민족은 이런 기능자체가 아예 없고 문자가 있는 민족들도 읽기와 쓰기는 쉽지 않다. 이는 문자가 발명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인류가 아직은 언어능력의 4가지 기술 중 후자의 2가지를 완전히 획득하지는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가장 어려운 쓰기에 대한 책이다.  말하기 기능처럼 쓰기 기능도 글을 많이 읽다보면 자연스레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 역시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배경지식이 쌓이면서 읽기능력이 점차 향상되는 것을 체감하고 있지만 쓰기 능력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사실 읽는 양보다 쓰는 양이 적어서 생기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학창시절과 직장인시절, 그리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면서 익힌 글쓰기의 노하우를 이 책을 통해 정리해놓았다. 쓰기에 대해 워낙 경험과 지식이 없는 편이라, 여러 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다보니 하루만에 소화가 가능해 보였던 책을 거의 일주일을 잡고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만 소개한다.

 저자는 뇌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인간 의식과 활동이 결국 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쓰기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가 보기엔 아직 완전히 획득된 기능이 아닌 글쓰기 기능을 뇌는 수행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뇌를 다스리기 위해 글을 일단 쓰고 보는 방법과 습관화를 강조한다. 일단 저지르면 뇌는 어떻게든 해결을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글쓰는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반복과 의식이 중요하다. 의지는 습관에 항복하는데 의지는 의식의 산물로, 결국 오랜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매일 특정한 시간이나 특정한 장소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쓰기를 꾸준히 반복하면 습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글쓰기의 첫걸음인 셈이다.

 저자는 글쓰기에 있어서 무언가를 완벽하게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거부한다. 새로운 해결방안이나 문체, 서사등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것들도 대개 알고보면 기존의 것들을 참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써낼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것이다.(실제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학설을 가장 잘 통합해 정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글감을 생각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는 글쓰기에 앞서 자신이 써야 할 글의 키워드가 있는 칼럼을 한 두편 읽고, 그래도 생각이 안나면 관련 동영상 강의를 한 두편 보며, 그래도 생각이 나지 않으면 온라인 서점에서 관련 책의 목차를 본다고 한다. 이 세단계 안에서 다 해결이 된단다. 대단하다.

 책의 저자들은 자신의 생각만 하고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자신의 책이 많이 읽히려면 독자에게 재미나 감동, 얻을 것을 주어야 하는데 저자는 이를 생각해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메시지가 되며 사람은 책을 통해 메시지가 있어야만 책을 보게 된다. 그리고 책을 써나가는 단계에서 한꺼번에 알려주기보다는 양파껍질을 벗기든 하나씩 감질나게 메시지를 노출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독자가 기대감을 갖고 책을 끝까지 본다고 한다. 어쩐지 책을 통해 알고 싶었던 말은 결국 마지막 까지 읽어야만 알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잘 쓴 책에는 스투디움과 푼크툼이 있다. 스투디움은 작품을 보고 누구나 알아차리는 공통적 특징으로 작가의 의도에 대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반대로 푼크툼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으로 유독 나만이 작품을 통해 느끼는 부분이다. 저자는 글의 본질은 독자가 푼크툼을 충족하는데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야만 독자와 글 사이에 개별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통로를 통해 개인적인 경험이 연상되며, 나만의 영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좋은 문장의 요건이다. 읽으면서 많이 반성이 되었다. 전혀 내글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글의 요건은

1. 단문 2. 문장간의 호응(한국어는 주어와 서술어간의 거리가 멀어 호응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

3. 수식어의 절제 4. 주어에 신경쓰기 5. 피동문 피하기. 6. 수사법에 관심 갖기

7. 어미를 다양화하기 8. 가급적 동사형 문장쓰기 9. 다 읽고 퇴고하기

이다. 하나같이 어려운 것들이다. 그리고 이외에도 한국어의 문법에 관심을 갖고 어휘를 다양화하는 것도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으로 권한다.  

 글쓰기의 여러가지 방법이 나오지만 결국은 일단 도전해서 쓰고 습관을 갖는 것, 그리고 쓰기에는 무엇보다 재료가 중요하며 그 재료를 얻는 것은 꾸준히 읽고 경험하고, 생각하며, 토론하는 것이었다. 많이 읽는 사람은 누구나 결국 그 욕구가 쓰기로 향한다고 생각한다. 많이 읽다보면 그리고 쓰기에 좀더 신경을 쓰다보면 누구나 한권의 책으로 자신의 글을 남기는 날이 올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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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규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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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きみ)が代(よ)は千代(ちよ)に八千代(やちよ)に
さざれ石(いし)のいわおとなりて
こけのむすまで
임금의 대는 천년만년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위의 것은 일본의 기미가요의 가사다. 우리 입장에선 기가막힌다. 한일축구중계마다 일본 선수들이 나름 비장미를 갖고 부르고 음악도 심상치 않던데 겨우 저런 내용이었다니. 국가라면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니 보통 혁명이나 국가의 건국이념이나 아름다움등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이건 철저히 한국인의 생각이다.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긴 하겠지만. 근데 책 국화와 칼을 읽어보면 저 짧디짧은 일본의 기미가요에는 사실 일본 국가의 사회구조를 관통하는 이념과 그 상징은 천황에 대한 관점이 매우 잘 드러난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 국화와 칼은 상당히 오래된 책이다. 저자가 1946년에 이걸 썼고 자신은 이미 1948년에 죽었을정도니 말이다. 2차대전 중 미국과 영국등의 연합국은 일본군과 싸우며 상당히 놀란다.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인데. 이녀석들은 좀처럼 항복이란걸 몰랐고, 천황만세라는 말을 하며 자살 폭탄 공격을 일삼기 일쑤였다. 굉장히 잔혹하여 적군의 포로를 학대하거나 잘 살려두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참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나하나를 잡고 보면 생각보다 온순하고 점잖으며 교양이 있었다. 연합국은 일본 점령을 앞두고 그들을 용이하게 지배하기 위해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그들의 이런 모순점을 파헤쳐 제목자체에 드러낸 책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오래 체류하며 그들의 일상과 일거수 일투족을 느끼고 공감하며 책을 써냈다. 그래서 책 내용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상당히 깊으며 오늘날까지도 상당히 통용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이란 나란 기실 거의 변하지 않은듯 싶으니 말이다.

 

1. 일본의 사회규범이자 도덕법칙인 사회계층질서의 유지

 각 사회의 윤리체계나 문화는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들의 환경에 적응하여 생겨난 것이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이 최우선 과제인 생물은 처음엔 각개격파식으로 나아갔겠지만 곧 집단으로 협력하며 생활할 때 적응도가 높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새로운 이타적인 행동양식의 탄생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경우 이를 발전시킨 것이 윤리나 도덕의 시작이다. 서양문화권에서는 이런 기초적인 것에 기반해 기독교 윤리와 고대 그리스철학을 토대로 자신들의 윤리를 발전시켰고 동아시아에서는 토착윤리에 불교와 도교, 유교가 버무려져 윤리체계가 성립했다. 양자의 윤리는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적어도 절대적인 원칙이나 규범이 있다는 저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동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일본의 규범이나 도덕은 상황윤리적이다. 즉, 자신의 사회관계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올바른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유교윤리를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였는데 중국의 경우 인이 가장 중시되는 반면 일본인 인보다는 효와 충을 우선적인 원리로 삼았다. 중국의 인은 천자와 관료제의 전제가 되는 것으로 이들이 인을 올바르게 베풀때만 이들의 권력이 정당화된다. 하지만 인이 사라질 경우, 반란이나 민란은 이루어질수 있는 것이며 이는 실제로 무수한 왕조교체의 실제 원인이나 명분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천황제는 영원히 유지되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인의 이런 요소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은 충과 효를 위주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위계적 사회질서의 유지에 이를 적용시킨다. 위계적 사회질서를 모든 사람이 따르는 매커니즘이 바로 일본의 사회규범이다. 이는 모든 계층의 사람이 자신의 직분이나 신분에 맞는 행동과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이처럼 분수에 맞게 살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일본인이 자신의 직분에 맞게 살게끔 하는 주요 원리로 온(恩)이 있다. 온은 상급자나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받는 것으로 일본인은 이를 불편해하지만 마땅히 받아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 온에는 가장 높은 것이 천황에게서 받는 것이며 다음으로 부모나 주군, 스승, 그외 사람들에게서 받는 것이 있다. 문제는 이 온이 죽을때까지 노력해도 만분의 일도 갚을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즉, 일본인은 평생 온의 굴레에 갇혀 상급직분의 사람의 명령이나 그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온을 갚는 행위를 온가에시(報恩)라고 한다. 여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무(義務)이고 다른 하나는 기리(義理)다. 기무는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으로 당연히 시간적 한계가 없어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것이다. 천황이나 법률, 일본 국가에 대한 충, 효, 임무등이 해당된다. 반면 기리는 자기가 받은 온과 같은 양만큼만 같으면 되는 것으로 시간적 한계가 있어 해결이 가능하다. 기리는 역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세켄에 대한 기리,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다. 세켄에 대한 기리는 주군이나 가까운 친척, 타인등에 대한 것이며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는 타인에게 모욕이나 비난을 받을 경우 그 오명을 씻어야 하는 의무, 예절의무 등이다.

 이런 일본의 도덕률은 의무에 대한 극단적인 변제와 철저한 자기 부정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엄격하고 개인을 옭아메는 도덕률에도 일본사회는 오관의 쾌락을 적극적으로 허용한다. 여기에도 이중잣대가 적용되는데 위의 기리나 기무를 침해하지 않는 영역안에서라면 쾌락이 적극적으로 허용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이 성적으로 상당히 문란한 것은 어쩌면 이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같은 쾌락의 허용은 기무와 기리에 지친 일본인들에게 상당한 위안을 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인은 또한 하지(수치심)에 매우 민감하다. 이는 자신이 이름에 대한 기리를 다 못하거나 기무를 잘 지키지 못할 경우 타인으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 생겨난다. 일본인은 법적인 죄의 중대성보다는 오히려 이 하지의 중대성에 무게를 둔다. 예를 들어 한 사무라이가 한 암살범으로부터 자신의 주군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는 그 암살범을 제거 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바쳐서 접근하기도 하고 각종 탈법과 위법, 비윤리적 방법을 동원해 마침내 그를 제거한다. 그러면 일본사회에서는 이 사무라이는 칭송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지는 일본사회의 도덕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외적 동인이 된다.

 

2. 일본이 사회계층질서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이유

 정리하면 일본사회를 움직이는 규범은 결국 사회계층의 유지다. 일본은 이를 위해 중국의 유교윤리중 효와 충사상을 자신들의 사회계층유지의 맞게 번안해 온을 만들어내었으며 그 온을 실행하는 것이 기무와 기리다. 기무와 기리는 어쨌든 평생 갚기 힘든 것으로 사회피지배계층의 일본 국가 자체와 상층부를 위해 평생 노력해야하는 동인을 제공하며 이로써 사회체제가 유지된다. 온을 갚는 과정에서 일본인은 하지로 인해 혹은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로 인해 외적인 혹은 내적인인 강압을 받게 되며, 그래서인지 허용적인 쾌락의 추구로 잠시 위안을 추구하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어쨌어 이렇게 폐쇄적인 형태의 사회규범이 일본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이점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은듯 한데. 그가 남긴 한줄에서 힌트를 얻자면 결국 안전이 아닌가 싶다. 베네딕트는 책에서 일본인들이 사회계층적 질서를 유지하고 거기서 맡은 바 기무와 기리를 할 때 안전을 느낀다고 말했다. 온을 갚는 행위의 목적이 자신의 안전확보에 있다는 점인데 결국 이것이 이 체제의 목적이 된다. 일본에 안전이 중요한 이유로는 두 가지 정도가 생각이 든다. 우선 그들의 자연환경이다. 지진과 화산활동, 태풍과 해일이 몸추지 않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끊임없는 불안을 느끼고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을 법 하다. 다음은 섬이라는 특성이다. 일본은 중국, 한국과는 달리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섬으로 고립되었다보니 각종 전쟁이나 사회적 동란에서 달아날 곳이 마땅치 않다. 실제로 중국이나 한국의 고대민들은 전란을 피해 서로의 나라로 이민하는 것이 잦았다. 하지만 섬인 일본은 도망갈 곳이 없으니 아무래도 안전확보가 더욱 어려웠고, 이로 인해 절대 변하지 않는 안정적 사회질서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절대 변하지 않는 정치질서가 천황제였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역사에서도 인간의 욕심으로 정권교체는 무수히 일어났지만 천황은 허수아비일지언정 변하지 않았다. 아무도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으니 심지어 지금까지도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3. 일본의 이런 체계가 낳은 문제

 일본의 이런 사회유지규범이 낳는 문제는 사회의 보수성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계층유지를 위한 질서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에서 그 사회질서의 붕괴는 일어날 수 없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이식받고 그토록 높은 국민소득과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민주화를 이룰수 없었던 요인이다. 사회계층 유지가 사회의 주 목적이다보니 민주사회에서는 보기 드물고 정치인들의 자리 대물림도 아직까지 일어난다. 문제의 아베도 기시노부스케의 외손자이며 무례한 발언을 일삼은 고노외상도 고노담화를 한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다음은 사회전체의 비윤리성이다. 일본사회의 윤리는 내면적 절대규범이 없다보니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올바른 행동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충의 최고점이 있는 천황이 전쟁수행을 명하자 그들은 옥쇄를 각오하고 실행하며 전쟁에 자신을 희생했고, 그 천황이 항복할 것을 명하자 바로 순한 양이되어 미국인들을 받아들였다. 즉, 사회기득권층이 내린 전체적인 판단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려 저항하던가 비판적 판단을 내리기 매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지금의 한일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일본 시민은 소수일 수 밖에 없으며 일본이란 나라 자체가 언제든지 잘못된 방향으로 쉽게 방향타를 틀 수 있는 위험성을 내재하게 된다.

 

4. 이런 폐쇄성에도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이유

 일본사회의 이런 폐쇄성에도 그들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매우 의외의 일이다. 물론 사회계층질서의 유지를 위해 상층의 판단에 쉽게 따라가는 일본대중을 생각한다면 근대화로의 전환에 하층민의 저항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천황 폐하의 명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방향을 전환할 상층부가 된다. 실제로 서구 세력이 접근하였을때 도쿠가와 막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과 별 차이 없는 쇄국을 단행했다. 하지만 막부는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새로운 계층이 이자릴 차지 하게 된다.

 이들은 근대 이후 성장한 상인계층이었는데 이들은 사무라이 계층과 결탁해있었다. 일본의 사회질서는 그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계층간의 교류가 가능했는데 부유한 상인이 자신의 아들을 사무라이의 양자로 입적한다던가, 서로 통혼하는 방식이 가능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부유한 상인이 사무라이 계층이 될 수 있었고, 이로써 양계층은 결탁해왔다. 때문에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기존의 국가지배계층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기득권이 유지된체 사회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되었다. 실제로 유신 정부는 근대화를 단행하면서 서구적 법개혁을 했지만 상층부의 기득권을 보장해주었다. 토지대장을 몰수하고 계급제도도 철폐했지만 다이묘들에게 기존에 받던 조세의 절반을 보장해주었고, 토지대장을 몰수한 시점에는 향후 그들이 받아야 했던 봉록을 일시불로 지급해주었다. 일부의 상류계층들을 자본주의가 시작한 시점에 이미 자본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고 국가가 주도하던 산업을 불하받아 지금의 일본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즉,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회계층질서를 다른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국이나 중국의 근대화의 길패가 결국 사회지배계층이 결국 자신의 기득권유지를 위해 미적거렸던 것이 하나의 큰 원인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성공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어찌보면 일본은 뿌리부터 서구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이 주창했던 '동도서기'에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도서기에 불과했던게 현재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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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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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 중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17년부터 한권씩 읽기 시작해서 올해초에 마무리가 되었다. 순서는 식인과 제왕,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문화의 수수께끼 순으로 읽었는데 큰 상관은 없었지만 사실 출판 순은 문화의 수수께끼, 식인과 제왕,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순이었다.

 가장 초기작을 마지막으로 접해서인지 3권 중 문화의 수수께끼가 가장 읽기가 수월했다. 겹치는 부분이 다소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의 문화유물론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더 높아져서 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이 시리즈가 연식에 비해 재밌고 배울것이 많다는 점은 확실하다. 겹쳤던 부분은 제외하고 인상적인 부분 3곳을 정리해보았다.

 

1. 원시사회의 경제매커니즘

 마빈 해리스는 서구인들이 신비하거나 야만스럽고 이해불가하며 괴이하게까지 보는 여러 원시사회의 문화들이 사실은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경제토대 위에 서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워낙 오랜 세월을 걸쳐 형성된 것이어서 관찰하는 서구인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을 실제 운영하는 원시사회의 부락민들도 자신들의 체제에 대해서 쉽사리 자각하지 못한다. 해리스는 무지와 공포, 갈등으로 일반인은 문화의 세속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보았는데 예술과 정치는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집단적 환상체제를 이룩해 일반인들이 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호혜성 경제지역

일반론 다음으로 각론으로 넘어가면 일단 사회경제체제상 가장 열악한 지역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사육한계'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이런 곳에서는 호혜성 경제가 나타난다. 호혜성이란 서로 간에 돌려받을 대가가 무엇인지, 또는 언제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개인사이에서 교환이 일어나는 경제를 말한다.

 호혜성 경제가 나타나는 지역으로 부시맨들의 부락을 저자는 관찰하였는데 이들의 노동시간은 놀랍게도 일주일에 5-6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들은 이 기간중 사냥이나 채집을 하였고 그것으로 연명했다. 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만을 사냥하고 집단으로 사냥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에 대한 대비로 상호간의 호혜성 경제가 나타난다.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이 대비해주고 다른 사람의 실패도 내가 대비해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충분히 더 동물을 사냥하거나 채집이 가능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지역이 초과생산을 향해 집중적인 노력을 하는 경우 자연이 파괴되어 사육한계 자체가 극단적으로 낮아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문화에서는 열심히 일하거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로 한 인류학자가 부시맨들에게 매우 기름진 수소를 제공하였는데 모든 부시맨들이 이 매우 기름진 소를 아낌없이 먹고 즐겼음에도 수미일관하게 수소가 생각만큼 살이 찌지 않았고, 맛이 없고 대단치 않았음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시맨들은 수소를 제공하는 이에게 과도한 빚을 지지않으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호혜성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문화로 보인다. 명예나 일방적인 수혜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의 지위 추구는 지역의 사육한계를 넘어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부시맨들은 매우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 전쟁 경제체제

이 지역은 호혜성 경제체제는 넘어섰지만 지역이 섬이거나 좁고 불모한 땅이 많아 사육경제 한계가 상당히 뚜렷한 지역이다. 저자는 태평양 한 섬의 마링족을 관찰했다. 이들은 십수년마다 돌아오는 독특한 사이클을 가진 이상한 문화를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카이우라고 불리는 축제였는데 카이우는 다름 아닌 돼지를 집단으로 도살하여 즐기는 문화다.

 단순한 축제라고도 볼 수 있지만 카이우에는 몇가지 이상한 점이 관찰된다. 우선은 도살하는 돼지의 수가 극단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자기네 부락민들이 먹고도 한참 남을 정도로 많은 돼지를 도살하는데 여기에는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면 마링족은 우선 전쟁이 끝난 후 룸빔이라는 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카이우 이후 남겨놓은 돼지들도 다시 적극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수마리의 돼지들은 수십마리로 증가하게 되고 집안의 여자들은 돼지의 사육과 경작이 힘에 부치기 시작하며 남편들에게 투덜대기 시작한다. 어느 덧 돼지들은 그 수가 자못 많아져 사람의 경작물을 파먹기도 하고, 울타리를 부수기 까지 시작한다.

 이쯤되면 남자들은 때가 되었음을 감지한다. 룸빔이 충분히 자라 축제의 시기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룸빔을 뽑은 후 돼지를 대거 도살하고 남은 돼지를 동맹에게 충분히 제공하며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웃 적대 부락과의 전쟁이 시작되며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새로운 룸빔을 심고, 다시 돼지를 치며 전쟁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전쟁후 승리한 쪽도 패배한 쪽도 전후처리가 이상하다. 승리한 쪽은 승리했음에도 굳이 패배한 부락을 흡수하거나 그들의 경작지를 차지 하지 않는다. 패배한 쪽도 마찬가지여서 상대편이 자신들의 경작지를 차지 하지 않았음에도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경작지를 개척한다. 그들이 다시 예전의 경작지로 돌아오는 것은 십수년 후인데 카이우의 축제 텀과 대충 일치한다.

 이 이해가 안가는 풍습에는 역시 경제적 이유가 자리한다. 마링 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섬이면서 밀림이 우거진 지역으로 마링족은 화전을 통해 경작지를 확보한다. 하지만  십수년간의 경작과 사육으로 경작지는 지력이 고갈되며 마링족은 정확히 이 주기에 맞추어 전쟁을 시작한다. 전쟁을 통해 마링족은 지역을 고갈시키는 돼지와 경쟁자들을 지역내에서 제거하게 되며 새로운 룸빔이 자라는 동안 다른 지역을 경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수십년간 지력이 고갈되었던 이전의 경작지는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 지력을 회복한다.

 즉, 마링족은 카이우 축제라는 독특한 전쟁경제로 지역의 사육한계를 자각하며 이에 걸맞는 문화 속에 살고 있었던 셈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 지역내 경작지의 자연적 순환은 확보하더라도 자신들의 부락 인구증가는 피할수 없는 문제였다. 전쟁도 이를 해결해주진 못했다. 전쟁으로 죽는 인구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 수도 그리 많지않았다. 설사 남자가 거의 절멸사태에 이르더라도 여자가 무사하다면 소수의 남자라도 한 두세대 만에 인구회복은 충분히 가능하다.

 마빈 해리스는 마링족의 이상한 성비에 주목했다. 사실 남성대 여성 자연성비는 남자가 조금 많은 수준인데 이 원시족의 성비는 무려 150대 100에 이르렀다. 이는 암묵적이고 광범위한 여아 살해는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링족은 이를 통해 인구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전쟁경제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남자전사의 선호는 이를 더욱 부채질 했을 것으로 보인다.

 

- 지위 경쟁 경제체제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지역엔 대인(big man)이란 독특한 지배자들이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대인을 본받아 대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대인은 지역 사회의 추장같은 존재인데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추종자를 노동시킬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다. 대인 후보자들은 어려서부터 대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많은 재산을 모으는 것이다. 보다 많은 경작지를 경작하고, 많은 가축을 키우며 많은 과일을 채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인후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재물이 모이면 대인 후보자는 인근의 주민들을 불러모아 대축제를 개최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배부르게 먹고 이젠 대인이 된 자의 재산을 분배하여 가져간다. 대인은 최소한의 찌꺼기만 갖게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다시금 대인이 될 준비를 시작한다.

 북아메리카 콰키우아틀 족에게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바로 포트래취다. 이는 축제 때 선물을 주거나 교환하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남태평양의 대인들보다 포트래취는 더욱 경쟁적인데 포트래취를 여는 추장은 이웃의 부족민을 초대하고 이들은 이 엄청난 선물과 재물에 눈에 휘둥그레지면서도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귀중한 것을 살뜰히 모두 챙겨가며 엄청난 부담을 않고 이웃부족 추장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포트래취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것이다.

 대인이나 포트래취 풍습은 아직 지배계급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경제작용을 하는데 모든 사람이 비슷한 자급자족적 경제조건을 가진 지역에서 생산력이 우월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것을 재분배하여 전쟁이나 흉년등의 악조건을 대비해주는 역할을하기 때문이다.

 

호혜성 경제체제나, 전쟁경제체제, 지위경쟁체제는 채집수렵경제에서 사육재배경제로 변모해가면서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인류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 자신들의 사육한계를 자각하고 자연을 보호하고 조화하는 문화를 발달시키고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육재배경제로 변하고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보다 노동생산성을 투입하여 많은 수확물을 얻게 되었고, 이에 보다 많아진 잉여물을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아직 지배권을 확립하지 못한 시기가 지위경쟁체제로 볼 수 있으며 빅맨들이 확고한 지배자가 되면 시혜는 끝나며 종속과 지배가 시작된다.

 호혜성경쟁체제나 지위경쟁체제에 머무르는 체제는 그 이상의 지배체제를 만나는 경우 높은 생산성과 기술에 압도되어 정복되거가 흡수되고 영향력을 받아 변모하였다. 이런 지배체제가 우리가 알고 있는 왕국이나 제국이며 지금의 국가의 모태일 것이다.

 

2. 예수는 게릴라에서 평화주의자로 변화한 까닭

 우리는 기독교의 교리에서나 성경을 통해 예수가 매우 평화적인 사상을 펼친 인물로 알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든지' '왼뺨을 맞거든 오른 뺨을 내주라든지' 이런 여러 말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기록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게릴라 메시아니즘이 창궐하던 시기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무장독립투쟁쯤 될 것이다.

 당시는 로마제국이 유태인을 지배하던 시기로 유태인의 하느님은 오래전 그들에게 다시는 정복당하지 않고 정복을 하는 민족이 될것임을 약속하였다. 다윗의 왕국이 생겨나고 한동안은 그게 현실이 되는 것 같았지만 좋은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의 왕국은 강력한 세력들이 풍요로운 이집트나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진군하는 길목이었고 이로 인해 잦은 침략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도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실패원인을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에게서 찾았다. 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신앙이 부족하였기에 하느님의 예언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강력한 정복자인 메시아가 나타나 이런 하느님의 예언을 실현시킬 것으로 믿기 시작했다. 거기에 식민통치와 그 부역자들이 행한 이중의 착취로 민중은 고통받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게릴라적 메시아니즘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예수가 있었던 시기에 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제외하고도 대충 5명정도의 게릴라적 메시아가 등장했다. 예수는 이들중 비교적 온건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역시 게릴라적 메시아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스스로도 본인을 그렇게 만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초기 성경에는 이런 예수의 전투적이고 파괴적인 말들이 담겨져 있는 것이 남아 있으며 예수의 12제자들 역시 그러하여 이들중 검을 잘 다루고 휴대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예수역시 제자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실제 성경에선 베드로가 예수와 마찰을 일으켰던 사람의 귀를 잘라버리는 과격한 장면이 아직 남아있다. 과연 평화주의자의 제자가 맞을까?)

 하지만 결국 예수는 다른 메시아들처럼 실패했고, 처형당했다. 성경은 당시 총독인 빌라도를 매우 온건한 사람으로 그렸지만 이는 예수를 치장하기 위함이고 실제 빌라도는 당시의 유태인 동굴 게릴라를 무참히 토벌하는 강경파였다. 때문에 저자는 예수와 같이 처형된 사람들 역시 도둑이나 살인범 같은 강력범이 아닌 예수와 비슷한 게릴라들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 사후 예수의 신앙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매우 평화적으로 흘러간다. 여기엔 시대적 변화가 자리한다. 게릴라 메시아즘은 한때 잠시 성공하여 지역내 반란으로 영토를 수복하고 왕국을 세웠지만 고작 3년을 간다. 토벌은 매우 잔혹하였고 게랄라작전의 실패로 기독교는 로마제국내에 자리잡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지경에 몰린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환영을 본후 유태인들을 중심으로 온건하게 변화된 신앙을 전파하였다. 구원의 대상도 유태인에서 모든 사람으로  바꾸고 전파대상으로 주로 도시지역내 로마인으로 거주해야만 하는 유태인들을 삼았다. 이 때문에 예수의 사상중 정치 군사적인 부분은 후대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평화적인 모습만이 지금의 기독교 안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3. 마녀

15세기에서 17세기는 마녀 사냥이 극에 달했던 시기로 무려 50만명 정도가 유럽에서 마녀나 마법사로 몰려 화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녀나 마법같은 신비한 것에 대한 미신은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는 편이며 이는 기독교에 오래도록 불편한 존재였다. 신말고 신비한 것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인지 로마교황청은 서기 1000년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녀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을 금기시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500년 후인 1484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마녀같은 존재는 없다고 부인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마녀사냥은 시작된 후로 그 고문의 잔혹성과 사형방식의 끔찍함에도 꾸준했는데 이는 재판관이나 마녀 수사관들이 마녀를 끊임없이 양산해내었기 때문이다. 우선 마을에서 거동이 수상하거나 만만한 여성을 마녀로 누군가 신고하거나 의심한다. 그러면 아무 근거없이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그녀를 잡아가 매우 잔혹하게 고문한다. 마녀로 지목된자는 자신이 마녀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마녀집회에서 본 사람을신고해야만 했는데(그래야만 고문이 끝나고 편하게 죽을 수 있었으며 협조적인 경우 고문과 화형없이 목졸라 죽이는 행운을 간혹 누릴수 있었다고 한다.)이를 통해 마녀는 끊임없이 공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기하급수적 증가여서 대개 한 마녀당 두명 이상의 마녀를 지목하곤 했다.

 수사관들의 이런 악행은 충분한 경제적 동기가 있기에 가능했는데 고문자나 수사관의 용역비용을 어처구니 없게도 마녀로 몰린 사람의 가족이 부담해야 했고, 이들은 심지어 재판관들의 연회비용과 화형용 재단의 비용까지 지불해야만 했다. 또한 지방관들은 마녀로 몰린 자들의 가족 재산을 몰수할권한마져 갖고 있었다. 마녀를 만들어 낼수록 자신들의 경제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광신적인 마녀사냥이 이루어진데는 당대의 사회경제적 변화가 컸다. 당시는 민족국가의 등장으로 중상주의가 강화되던 시기였고 이로 인해 중세의 봉건제가 붕괴하며 지역의 농민들이 경작지와 재산을 잃고 도시 유랑민으로 방황하며 가난해진 시기였다. 이들의 분노가 자연스레 가진자로 향하기 마련인데 지배층과 교회는 이들이 가난해진 것이 가진 자들의 탓이 아니라 마녀나 악마의 소행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나 교회는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으며 이를 공포속에 맹신한 피지배층들은 오히려 악마나 마녀를 피하기 위해 국가나 교회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1562년에서 1684년 동안 남서독일에서 발생한 1258건의 마녀 사건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녀나 마법사로 지목된 자의 무려 82%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무기력한 노파나 하층계급의 중년여성이었다. 그야말로 약자가 희생된 것이다. 이 기간중 귀족계급은 고작 3건만 마녀로 신고되었고 그나마도 고문이나 사형으로 가지않았다. 수사관이나 재판관들은 평민이나 하층민이 마녀라는 근거없는 소문은 믿고 고문하고 사형시켰음에도 귀족이나 성직자에 대한 신고는 그럴리가 없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광란은 가난한 자와 무산자의 저항운동 가능성을 박탈시키고, 서로간의 의심과 견제를 하게 만들어 사회적 거리감을 조성하고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더욱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만들려 했던 시도로 보인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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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상을 뒤흔든 사상 - 현대의 고전을 읽는다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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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역사상 아무 사건 없었던 세기는 없었겠지만 20세기는 인류 역사의 한 변곡점으로 향후 여겨질 수 있을만큼 중요한 세기였다. 2차 산업혁명이 무르있고 3차 혁명이 태동했으며, 1,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패권국가와 세계질서가 여러 번 바뀌었다. 지배적인 경제패러다임도 여러 차례 바뀌었고, 세계화와 정보화가 이루어졌다.

 책 '세상을 뒤흔든 사상'은 바로 이런 20세기의 중요한 사상을 다룬다. 방법은 그 사상을 이끌어나간 사상가의 대표저서의 내용을 다루는 식이다. 그리고 그 사상이 태동한  시대적 배경과 사상가의 다른 저서들, 또는 다른 관련 사상가의 저서를 다루고며 특이하게도 한국사회와의 관련성까지 살펴본다. 저자는 5개의 큰 줄기로 나누고 있으며 등장하는 저서는 총 40권이다.

 

문학과 역사

1. 1984 -조지오웰

2.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3.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드워드 팔머톰슨

4. 물질문명과 자본주의-페르낭 브로델

5. 근대 세계체제1-이매뉴엘 윌러스틴

6.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7.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엔더슨

 

철학과 자연과학

8. 계몽의 변증법-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9. 인간의 조건-한나 아렌트

10.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

11. 그라마톨로지-자크 데리다

12. 정의론-롤즈

13. 사회생물학-에드워드 윌슨

14. 소유나 존재냐-에리히 프롬

15. 의사소통행위-위르겐 하버마스

 

정치와 경제

16. 이데올로기의 종언-대니얼 벨

17. 단절의 시대-피터 드러커

18. 그람시의 옥중수고-아토니오 그람시

19. 법, 입법 ,그리고 자유-하이에크

20. 경제민주주의-로버트 달

21.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

22. 제3의 길-기든스

23.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24. 제4차산업혁명-클라우스 슈밥

 

사회

25. 고독한 군중-데이비드 리즈먼

26. 감시와 처벌-푸코

27. 제3의 물결-앨빈 토플러

28. 위험사회-울리히 벡

29. 정보시대-카스텔

30. 액체근대-지그문트 바우먼

31. 나 홀로 볼링-로버트 퍼트넘

 

문화, 여성, 환경, 지식인

32. 야생의 사고-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33.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34. 여성의 신비-베티 프리단

35. 미디어의 이해-마셜 맥루언

36.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

37.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38. 지식인의 책무-촘스키

39. 총균쇠-제러드 다이아몬드

40.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데 이 중 읽은 것을 헤아려보니 고작 6권이었다. 심지어 처음 들어보는 저자와 책 제목도 많았다. 책은 이들의 사상을 간단히 다루는데 다 읽고서 든 전체적 느낌은 20세기를 지칭하는 핵심어는 구조와 탈중심인 것 같다는 것이다. 구조는 당대 사회와 인류 문명 발전에 자리잡은 기저원리나 작동원리를 찾는 것이고 탈중심은 기존의 중심인 산업화와 서구화, 이성중심주의, 주요계층(남성, 백인, 선진국사람들)으로부터 주체로서 독립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구조를 찾은 책들로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근대 세계체제, 사회생물학, 과학 혁명의 구조, 야생의 사고, 총균쇠 등이 눈에 띄며 탈중심을 찾은 책들로는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장미의 이름, 상상의 공동체, 감시와 처벌, 액체근대, 위험사회, 침묵의 봄, 여성의 신비, 오래된 미래, 타인의 고통, 오리엔탈리즘 등이 보인다.  20세기의 사상이 이 두 핵심어로 자리잡은 이유가 뭔진 모르지만 이런 작업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을 엮은 저자는 이 모든 사상들이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말하고 관련 한국저자들의 논문이나 저서도 소개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한국에서는 이런 사상들이 돌아가며 시기를 달리하여 마치 유행처럼 큰 영향을 미쳐왔는데 유독 외환위기 이후 사상의 선풍적 유행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원인으로 저자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복합성이 커지면서 어느 한 이론이 압도적 영향력을 미치기는 어려웠다는 점과 지식 담론에 대한 시민 사회의 관심이 낮아졌음을 지적한다.

 특히, 우리사회는 한번 소비하거나 유행이 지나간 지식 담론에 과도하게 무관심한 경향이 있는데 과거 지식 담론이라도 아직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개념이나 사회현상을 다루고 문제해결을 하는데 유용한 과거 지식이라면 다시한번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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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15 0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마지막 말에 공감합니다. 어떤 이론이자 지식의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그걸 나오게 만든 과거 이론과 담론도 알고 있어야겠다는 걸 느꼈어요. 유행이 지난 이론이라도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이러니 과거에 나온 이론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3
마빈 해리스 지음, 서진영 옮김 / 한길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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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 중 하나인 식인과 제왕을 읽었다. 얻는게 많은 책이었다. 총균쇠의 원전 같다는 느낌이었다. 1년만에 두번째 저서를 잡았다. 마빈 해리스의 책은 두께는 얇지만 판쇄가 오래되어 90년대 느낌으로 글자가 촘촘하다. 그리고 내용도 가독성은 있으면서도 쉽지 않아 항상 생각보다 완독에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의 두번째 책은 세계 각 문화에서 어떠한 고기를 먹고, 먹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1. 소고기

소고기의 금기 하면 단연 인도가 떠오른다. 좁은 대륙에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길에 즐비한 소를 굳이 먹지 않는 인도는 당최 이해가 쉽게 되지 않으며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도가 처음주터 소를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더 오랜 인도의 기록엔 소를 먹는 장면이 충분히 자주 나오며 소고기를 금지하는 종교적 계율도 없었다.

 하지만 인구가 늘고 환경이 고갈되며 식량 부족의 압박을 겪게 되었고. 이쯤에 불교를 비롯한 살생을 금하는 종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인구가 늘기 시작하면서 동물성 식품보다는 보다 효율적인 식물성 식품의 생산증대가 절박해졌고 여기에 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인도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뚜렷이 나누어져 건기의 경우 굳고 거칠은 땅을 가는데 소의 힘이 필요했다. 이로 인해 소고기는 종교적으로 금기시 되었다. 고기를 탐하는 평민층의 욕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데는 종교적 세뇌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배층도 이에 동참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소고기를 먹었으며 그들 역시 종교적 계율에선 자유로울수 없었기에 도살은 하층민에게 시켰다. 얄팍한 종교적 계율은 동물을 죽인 사람만 죄를 받지 죽은 동물을 먹는 것은 다른 문제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지배층은 죄를 하층민에게 전가시켰고 상당기간 동물성 식품을 즐겼다.

 

2. 돼지고기

돼지고기의 금기는 이슬람이다. 이들 역시 인구가 적고 환경이 보다 넉넉한 과거엔 역시 돼지고기를 즐겼다. 돼지는 열을 땀으로 배출하지 못해 늘 그늘이 필요하고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물을 주어야 한다. 돼지가 진창에 구르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숲이 풍부하면 도토리나 숲의 열매를 주식으로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인간이 먹는 곡식이나 다른 식물성 식품이 필요하다.

 이런 돼지의 특성으로 사막에서 돼지는 즉각 사치품이 된다. 숲이 필요한 돼지에게 태양이 너무 강하고 건조한 지역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슬람에선 돼지는 알라신이 유일하게 허용하지 않는 고기가 되고 만다. 소와 차이점은 있다면 그들은 소를 신성시했고 이슬람은 돼지를 반대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이는 양자의 차이점 때문인데 고기로 하기가 어렵다는게 공통점이라면 소는 고기외에 여러모로 농사나 젖, 전쟁에 이용되는등 다른 측면에서 많은 유용성을 주기에 신성화에 어울렸고 돼지는 젖도 부족하고 쟁기도 끌지못하며 전쟁에도 사용될 수 없기에 아무런 효용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비하게도 돼지의 이런 사육한계는 이슬람의 지리적 한계와도 일치한다. 이슬람이 퍼진 지역은 돼지가 자라기 어려운 건조지역이며 돼지사육에 적합한 지역에선 이슬람은 더이상 뻗어나가지 못했다. 돼지 고기의 맛때문에 사람들은 이슬람은 거부한 것일까?

 

3. 말고기

말고기는 매우 붉은 색을 띠는데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늙어서도 고기가 연하고 순살코기란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말은 식물을 고기로 전환하는 효율이 굳이 뛰어나지 않은 소나 돼지보다는 훨씬 낮다. 말은 되새김질을 하지 않아 먹은 풀의 소화흡수가 떨어지고 거기에 신진대사까지 높아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말고기가 식용으로 권장되고 금기되는 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말의 희소성과 관련한다. 말이 많아지고 다른 고기가 희소해지면 말의 소비가 권장되고 허용되었으며 말이 여러가지로 희귀해지면 고기 소비가 금기시되었다.

 유럽에서 말고기가 널리 퍼지지 못한 것은 남부유럽의 경우 말의 서식지인 초지 부족이 주이유였다. 다른 유럽지역에선 말의 높은 가치 때문이었는데 우선 말은 전쟁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동물이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말은 그 농업적 가치 역시 인정받았는데 유럽 북부의 경우 젖은 토양이었으므로 농사에 소보다는 말이 보다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4. 곤충

곤충은 제법 영양가가 높은 동물이지만 오랜 시간 인간에겐 주식이라기 보다는 간식거리였다. 곤충 하나하나는 잡은 것도 매우 쉽고 단위 무게당 비교적 높은 열량과 단백질을 제공하지만 효율적인 측면에서 큰 동물을 먹는것에 비해 효용이 매우 떨어진다. 하루종일 파리를 쫓아다니며 백여마리를 잡아 먹는 것과, 토끼 한마리를 사냥한 것과 비교해보라. 

 때문에 곤충은 큰 동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주로 고기로 이용된다. 곤충을 고기로 이용하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수는 무척이나 많고 잡기도 쉽지만 이들이 너무 산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주로 떼로 몰려 다니는 곤충이 주로 식량으로 채택된다. 메뚜기들이 대표적 예이다.

 정리하면 곤충의 식량화는 큰 동물이 부족하면서 곤충을 떼로 사냥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지역은 지구상에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열대밀림지역이다. 정반대의 곳은 유럽이나 캐나다로 이런 지역에서 곤충혐오가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먹지 못하는 곤충을 혐오하는 것은 당연하다. 곤충이 식량으로 유용하지 않다면 인간에게 마땅한 효용을 주는 측면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때로 인간의 식량을 축내기도 하며 물고 괴롭히며 전염병을 옮기기도 한다. 이러니 곤충이 식량이 아닌 지역에선 곤충혐오가 일어나는 것이다.

 

5. 애완동물

애완동물의 전제조건은 일단 이녀석들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먹기에 적합한 동물은 단백질 공급원으로서의 효용성으로 인해 애완동물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애완동물인 개나 고양이등을 봐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애완동물이 효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효용성이 없었다면 인간은 그들을 가축화하고 기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며 그러면 애완동물화 하는 일도 일어나기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개나 고양이 말등은 사냥이나 재산의 보호 쥐잡기, 수송, 전쟁등 적지 않은 이득을 인간에게 준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애완동물이 주는 가장 큰 효용은 바로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는 물론 과거에도 기능했던 것이지만 현대사회는 의식주와 여러 건강문제를 해결했음에도 인간 상호간의 높은 사회적 유대 관계를 끊어놓았기 때문이다. 소규모 부족사회나 농경사회에선 인간은 서로간에 강한 사회적 유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는 끊어졌으며 이를 오늘날의 애완동물이 대신하고 있다. 이들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이유다.

 

6. 식인

인간이 인간을 먹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효율적인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단백질을 구축하려면 다른 단백질을 분해해 우리 몸에 맞는 단백질로 재구축을 해야하기 때문인데 인간단백질을 섭취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 사냥은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다른 동물을 사냥한다면 적은 인원으로 떼로 몰아 대량으로 사냥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간과는 전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냥꾼 자기 자신이 크게 다치거나 오히려 쉽게 사냥감이 될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 소규모 부족 사회시절 인간은 쉽게 식인을 했다. 사로 잡은 적들을 자신들의 부족사회 구성원으로 만다는 정치적 기술이 부족했고, 전쟁 후 손쉽게 식량을 확보하는 방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사회가 등장하며 이 관계는 역전된다. 발달한 국가는 정복지와 정복민을 흡수할만한 정치체계를 보유했고, 이들을 생산자로 둔갑시켜 더 높은 식량생산을 이룰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 잉여물을 착취할 세금체계와 군사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포로를 먹지 않고 잡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 때문에 국가의 등장이후 인류문명은 식인 문화를 금기시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체제가 있었음에도 식인이 계속된 문화가 있으니 바로 아즈텍이다. 그들의 피라미드 제단과 해골거치대의 규모를 분석해보면 당시 무려 16만개 이상의 해골을 거치대에 전시했음을 알 수 있다. 아즈텍의 식인 문화는 그들의 자연과 관련하는데 그 지역은 반추동물 가축과 돼지가 없으며 개나 칠면조 정도가 유일한 동물성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짐을 들거나 농사에 활용할 만한 큰 초식동물 가축도 없어 포로는 식량생산자로서도 의미가 없었다. 이런 자연적 한계와 동물성 식품의 부족은 아즈텍이 강력한 정치체계를 갖추었음에도 식인문화가 유지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시리즈는 볼만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 일년후 쯤 마지막 권을 보게 될 듯하다. 이 시리즈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에 나온 것인데 이렇게 오래되었음에도 그럴듯 하기에 대단한 책이란 생각이다. 음식문화의 수수께기는 식인과 제왕에 비해 깊이는 부족했지만 먹을 거리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먹을 순 있지만 모든 것을 먹지는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연적 한계와 이를 금기시하는 여러 장치들, 문화가 어우려져 작용한다. 그리고 이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책이 주는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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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2-07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관심 있는 주제가 ‘식인’인데, 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원래 이 책 대신에 <식인과 제왕>을 읽으려고 했어요.

닷슈 2018-12-07 13:48   좋아요 1 | URL
제목과 다르게 식인과 제왕은 식인을 많이다루진 않습니다 식인이라면 이녀석이 조금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