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도시, 서울 -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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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고란 말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지옥고는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말한다. 모두 우리사회에서 주거의 질이 가장 낮은 곳이라 볼 수 있는데 희안하게도 이들의 단위면적당 주거비용은 그 품질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지옥고보다도 더 위에서 노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쪽방'이다.

 쪽방은 방을 여러 개로 나누어 작은 크기로 만든 방으로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의 방이다. 보통 3제곱미터 전후인데 보증금 없이 월세 혹은 일세로만도 살 수 있어 홈리스나 홈리스전단계의 빈민들이 선호한다. 이처럼 쪽방은 홈리스로 전락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보증없는 낮은 문턱으로 주거공간을 제공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실제로 외국에선 쪽방같은 것을 없애버렸다가 오히려 홈리스가 늘어나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 드러난 우리나라의 쪽방 실태를 보면 순기능보다는 부정적기능이 압도적으로 보인다.

 지옥고나 쪽방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한국엔 놀랍게도 최저주거기준이란게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인데 14제곱미터, 즉 4.3평정도의 면적에 부엌과 전용목욕시설, 화장실을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지옥고와 쪽방은 물론 이것이 갖춰져 있지 않은데 이는 이들이 비주택으로 분류되는 법망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쪽방은 그 어느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듯하다. 실체가 불분명하다보니 숙박업도 아니고 임대업도 아니어서(물론 사실상 임대업이다.) 공중위생관리법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 및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 애매한 공간에 사는 이들이 서울만 3296명이며 다른 지역 및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를 더한다면 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쪽방은 놀랍게도 난방 및 냉방기능이 없다. 힘없는 쪽방의 사람들은 쪽방의 대기수요도 많기에 세입자로서 당연한 요구를 감히 하지 못한다. 목욕시설도 당연히 바깥에 있으며 화장실도 공용이다. 창문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쪽방의 주인들은 대부분 타지인인데 놀랍게도 임대투자목적으로 대개 쪽방건물을 구입하고 운영한다. 운영은 주인이 직접하는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개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근처 중개사를 이용한다. 때문에 쪽방주민들은 대개 이 관리자들을 주인으로 착각하며 살며, 정식 부동산 임대차 계약이 아니기에 서류상 주인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당연히 이들의 임대수익은 정식으로 잡히는 돈이 아니며 탈세로 이어진다. 삼층짜리 쪽방건물에 방이 10개라면 쪽방의 평균임대수입이 22만원이므로 한달에 220만원의 임대수익이 주어진다. 일년이면 2600만원 가량되는 셈이다. 이 금액은 면접대비로 친다면 강남 타워펠리스의 수배에 달한다. 질은 수십배 낮음에도 말이다.

 더 기가막힌 것은 이 쪽방의 수리를 행정당국이 맞고 있다는 것이다. 마땅히 주인이 해야하나 타지인인 주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관리자도 주인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주거민의 생활안정을 위해 행정당국이 매년 국민의 세금으로 땜질식 수리를 한다고 한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거기에 쪽방은 위험관리도 되지 않는다. 돈만되면 마구잡이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받다보니 전과자나 위험성향을 가진 인물이 입주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의 주변 쪽방 이웃들에게 위해를 가해도 특별히 방법이 없다. 쪽방엔 장애인들도 무척 많이 사는데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또한 쪽방은 성차별적이기도 하다. 남성의 경우 홈리스 신세를 면하고나 면해가는 과정에서 임대주택의 전단계로 쪽방에 거주하기도 하는데 여성의 경우 쪽방촌의 거주민이 대부분 남성이고 사생활 보호가 전혀되지 않아서 거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쪽방의 가장 안좋은 점은 주민들의 발목잡기다. 쪽방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잠시 이곳을 스쳐지나가는 목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쪽방에 거주하는 평균 기간은 무려 11.7년에 달한다. 한번 들어가면 장기간 여기에 묶이는 것이다. 이는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 경제적 능력이 취약하다는 점과도 관계하지만 아무래도 과도한 임대료도 한몫하지 않는다고 하기 어렵다.

 이런 쪽방이 대학가에도 있다고 하니 바로 대학가 신쪽방촌이다. 언젠부턴가 대학가에서는 기존 주택을 불법개조하건나 신축하여 쪽방크기의 원룸임대가 성행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대학이 학생 10명당 거의 1명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기숙사시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가 신쪽방촌은 대개 노후한 다가가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원래 존재하지 않던 방을 둘이나 셋 만들어 호수를 부여한다. 신축하는 경우는 법에 맞게 사용승인을 일단 받은후, 이후 더 많은 가구로 나눠 방을 쪼개는 경우다. 101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2호와 103호가 나오는 형국이다.

 이들은 주로 대학가에 당연히 위치하는데 몇년전 한양대가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자 쪽방주인들이 나서 대거 항의한 적이 있다. 당연히 이 지역 정치인도 합세하여 더욱 문제가 된 사건인데 한양대는 이들과의 갈등으로 아직도 기숙사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들과 주변 직장인들이 이 쪽방의 주 고객인데 이들은 사회초년생이라 자신들의 권리에 미숙한 면도 있고, 워낙 주거비용이 비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런 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곤 한다. 이런 쪽방은 당국의 행정지도에도 불응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적발되어도 시정비율이 불과 5%에 못미친다고 한다. 이는 이행강제금보다 월세수익이 이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이런 쪽방 사업은 투자대비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고수익 비즈니스 사업이다. 빈곤 비즈니스라 할 수 있는데 정상적인 임대업에 비해 자신들은 어떠한 책임과 임차인에 대한 기본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악랄하다 할 수 있다. 결국 해결은 당국에 있는듯하다. 법의 개정으로 쪽방과 대학가 신쪽방에 대한 관리. 또한 결국 임대주택의 많은 보급 그리고 대학의 책임있는 자세가 문제의 해결책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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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랜드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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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포르노는 엄청 귀했다. 비디오가게에서 몰래 빌리거나 잡지를 사서 봐야했고, 모든게 노출되는 진정한 포르노를 구하려면 용산이나 다른 상가에 암암리 가야했다. 그래서 이처럼 야동이 귀하던 시절 그 어려운걸 해낸친구들은 묘한 권력을 갖기도 했고 무용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포르노는 일상화되었다. 약간의 구글링만으로도 얼마든지 포르노를 볼 수 있고, 그 수위는 과거 우리가 보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단지 쉽게 구할수 있게 된 것만도 아니다. 포르노가 이처럼 쉽게 구해지고 허용되면서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 포르노가 암암리 파고 들었다. 부부간의 성생활, 남녀간의 성생활, 그리고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인식과 광고, 상품, 심지어 여성자체의 자기인식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말이다.

 이 책 프로노 랜드는 포르노의 탄생과 변화 그리고 포르노가 우리 일상에 어떻게 파고들었는지를 파헤친 책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주로 다루었는데 사실상 포르노의 본고장이 미국이고 우리가 접하는 상당수의 포르노가 미국산이란 점에서 우리에게도 유의미하다고 하겠다.

 

 

1. 포르노의 창시자들

미국에서 포르노의 시작은 '플레이보이'다. 50년대 생긴 이 잡지는 여전히 유명하다. 창립자 휴헤프너는 센터폴드라는 여성의 전라사진이 들어가는 잡지를 생각해낸다. 그의 의도는 명백히 도색잡지의 가능성을 보고 이를 판매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광고수익의 저하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때문에 플레이보이는 전쟁과 공황을 겪으며 물질적 빈곤의 시대에 자라는 높은 수준의 물질적 소비에 익숙치 않은 50년대 미국백인 남성들에게 새로운 소비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플레이보이는 도색잡지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단편문학도 수록되었으며 유명인사와의 인터뷰, 차, 술, 의류, 음식, 소비재, 여자에 대한 조언등 수록되었다. 이런 플레이보이의 스타일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곧 경쟁자가 나타난다. '펜트하우스'다. 펜트하우스는 플레이보이와 경쟁하기 위해 단기적 광고수익의 감소를 염두에 두더라도 보다 성적으로 여성의 음모가 드러나는 노골적인 화보를 제시한다. 단기적 광고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플레이보이를 무너뜨린 후 시장을 장악해 광고수익마져 얻겠다는 전략이었으며 어느정도 플레이보이를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잡지는 아직 소프트코어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본격적인 하드코어의 길을 연 잡지가 레리플린트가 만든 허슬러다. 허슬러는 매우 노골적인 이미지를 수록하기 시작했고 사실상 소프트코어랑 대비되는 곤조포르노 영역을 사실상 만들걸로 평가받는다. 이 세잡지는 시대의 변화로 예전과 같은 판매고를 기록하진 못하고 쇠퇴한 것들도 있지만 플레이보이의 경우 고급스튜디오를 만들거나 다양한 소비재에서 라이선스 수익을 거두고 있으며 이미 웹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해놓은 상태다.

 

2. 포르노 산업의 공범자들

우리는 포르노 산업이 그자체로만 있을 뿐 다른 영역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포르노는 주류산업과 상당한 유착관계를 가지며 자신들의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데 케이블 티비와 유통사, 웹사이트, 검색엔진, 은행과 부동산이 그렇다. 케이블 티비는 포르노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유통사는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포르노 유통으로 돈을 번다. 웹사이트에는 단일주제로는 최대의 사이트가 포르노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글을 비롯한 유명한 검색엔진들은 이 사이트로의 접근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약간의 검색으로 매우 쉬운 접근을 허용한다. 또한 은행은 포르노 업자들이 포르노를 통해 번 검은 돈을 주식, 채권, 뮤추얼 펀드등에 투자하게 허용하고 있으며 부동산 업자들인 인근에 포르노 스튜디오라도 생기면 막대한 시세상승으로 수익을 거둔다. 모두가 공범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포르노 산업은 이런 파트너 기업들과의 협력 뿐만 아니라 정당성을 추구하며 번듯한 주류이미지를 치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상당히 성공적인데 과거 우리는 포르노를 즐기면서도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회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오늘날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포르노에대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느낌을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며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과거 음지에서 활동했던 포르노 스타들이 다른 스타들처럼 거리낌 없이 주류언론에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포르노는 거대 비즈니스화하고 있다. 이미 양지에서 국내, 국제시장에서 과감히 진출하거나 정치적, 입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향후 소유집중이 극대화하고 브랜드 파워와 광범위한 운영능력까지 갖춘다면 그 영향력은 엄청나 질 것으로 예상된다.

 

3. 포르노의 문제점은?

 그렇다면 대체 포르노의 문제점은 뭘까? 과거 우리는 희소성이 높은 포르노를 즐겼지만 비판했었다. 하지만 어디서나 쉽게 접할수 있는 지금은 어떨까? 포르노의 수위가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졌음에도 비판을 하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은데 이는 포르노가 그 만큼 우리의 인식저변에 일상화 되었고 파고들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강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는 앞서말한 것처럼 포르노 선구자들의 오랜 노력에 의한 것이다.

 포르노는 소프트코어에서 시작해서 곤조포르노로 대변되는 하드코어로 접어든지 오래되었다. 이는 과거와는 다르게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져서인데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얼마든지 손쉽게 포르노에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엄청난 수의 사이트와 프로노들이 범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심화는 점점 포르노의 수위와 강도가 심해지는 결과를 낳았고 이로 인해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항문성교나, 두구멍 섹스, 애스 투 마우스, 구토를 동반한 오렐섹스 등이 일반화되었다. 이런 식의 포르노의 수위 높아짐과 과격화는 여러 문제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우선 이런 식의 격렬한 섹스가 여성 출연자의 몸에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 다는 것이다. 항문성교 두구멍섹스는 항문파열이나 탈장의 위험을 격렬한 오럴섹스는 턱관절이나 목구멍에 상당한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관리되지 않은 소규모 업체에서는 성병감염의 위험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것이 주 사용자인 남성소비자의 인식과 행위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부부사이건, 사귀는 남여사이건 남여사이의 정상적인 성행위는 손을 맞잡는 행위부터 포옹, 키스, 깊은 애무에서 섹스로 이어지는 일련의 애정을 동반한 정신적 육체적 교감과정을 동반한다. 하지만 포르노의 성행위는 그런 과정이 없다. 정상적인 남여사이에서 섹스로 이어지게 하는 정서적 교감행위나 서로에게 매력을 갖게 되는 장면도 없으며 갑작스레 격렬한 애무와 성행위로 이어진다. 여기서 남배우는 주로 여배우를 학대하는 장면이 많으며 걸레같은 년, 정액받이, 창녀 등 비인격적인 용어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여배우는 이를 모두 기꺼이 자발적으로 즐기는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포르노업자들이 정상적인 남성들은 이런 모욕행위를 불편해할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이런 취급을 해 일상적인 여성과 분리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행위다.

 이처럼 포르노는 기본적으로 여성폄하의 의도를 갖게 되는데 여성이 가장 무력하게 폄하되는 성행위가 항문성교다. 때문에 항문성교는 포르노에서 상당한 인기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강제성을 띄는 모습을 보이거나 여성이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거나 혹은 항문성교후 바로 성기를 여성의 입에 물리는 등 여성폄하의 정도가 강해질수록 인기는 강해진다. 이런 섹스를 포르노로 학습한 남성은 비정상적인 포르노의 성행위를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실현 하고자 한다.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들이 보지 않았음에도 포르노에 나오는 성행위를 하게 되고 강요받는다. 여성들은 성행위 및 인식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도 포르노배우처럼 되기를 강요받는데. 미끈하고 오일을 바른 날씬한 몸뿐 아니라 음모를 제모하는것을 강요받는다. 포르노 배우들은 거의 대부분 음모를 제모한 상태인데 이게 일상으로도 연결된 것이다. 실제로 음모를 제거하지 않은 경우 여성들은 많은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불성실이나, 불결의 이유로 섹스를 거부당한다고 한다. 여성들중 일부는 만나는 상대와 섹스를 원하지 않는 경우 제모를 게을리한다고 하니 사태의 양상을 짐작할만하다.

 그리고 포르노는 심지어 인종차별적이기 까지 하다. 포르노의 소비자들은 주로 자신과 같은 인종이 등장하기를 원한다. 때문에 미국의 포르노는 대부분 백인 남성을 겨냥해 만들어지고 그렇다보니 여성출연자의 대부분이 금발에 파란눈을 가진 백인이다. 때문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이 업계에서 매우 차별받는데 항문성교가 없는 1대1 섹스의 경우 백인 여성출연자는 최저 8백달러이상의 보수가 주어지지만 흑인 출연자의 경우 최저가 5백달러가 최고가 8백달러에이른다. 백인의 바닥이 흑인의 천장인 셈이다. 이런 인종차별이 심한 포르노업계에서 아시아 여성은 그나마 인기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여기엔 백인중심주의적 시각이 짖게 깔려 있는데 그래서 출연하는 아시아 여성에게는 아시아를 대하는 오랜 백인의 고정관념인 순종적이거나 작고, 말을 잘듣는 등의 이미지가 따라 붙는다. 강자로써 약자 나라의 여성을 마음껏 취할수 있다는 시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아시아 남성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반면에 매우 인종차별적인 업계임에도 이상하게도 흑인 남자는 자주 등장하고 인기가 있는 편이다. 여기서 흑인남자들은 걷잡을 수 없는 변태나 종마의 느낌을 많이 주는데 이처럼 흑인 출연자는 과잉남성화의 극단으로 표출된다. 이런 여성을 지배하는 극단적인 남성성이 포르노에서 표방하는 남성의 이미지이므로 이에 외모적으로 가장 잘어울리는 흑인은 유색인종임에도 거부감 없이 사용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기하는 포르노의 문제점은 아동포르노와 수위의 극단화다. 포르노는 앞서 이야기한 거처럼 경쟁의 심화로 이용자의 관심을 끌 수단을 찾다보니 그 행위가 더욱 극단화하고 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 한방향이 아동 포르노다. 이는 자연스레 출연자의 연령의 하향화를 가져왔는데 1990년대 중반 미법원은 18세이하의 포르노출연에 대한 판결에서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포르노업계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 이 때부터 포르노 업계에서는 18세 이상을 18세 미만처럼 치장에 출연시키는게 가능해졌는데 외모가 어려보이는 출연자를 사용하고 출연자가 막대사탕을 물고 있거나 양갈래 머리에 교복을 입고 출연하는 것들이다. 이런 방향전환은 실제 아동포르노의 증가를 가져왔는데 포르노 업계에서 출연 과정이 강압적이고 유혹적이라는 면에서 제작과정에서 학대당하는 아동의 수를 증가시킬 우려와 아동포르노로 인해 아동에 대한 실제 성범죄가 증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책의 저자 게일다인스는 포르노에 반대하는 강연과 운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포르노에 대한 비판이 마치 성행위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공격적인 반응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식문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게일 다인스의 포르노에 대한 비판도 건강하고 열린 성행위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그것에 악영향을 미치는 포르노에 대한 비판일뿐이다. 이런 반응이 많았다는 것자체가 포르노게 이미 일상화되었다는 증거가 아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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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 - 질문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폴 김 외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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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하면 떠오르는게 뭘까. 혹자는 그 나라의 대표 이미지를 알고 싶다면 애국가를 보라고 한다. 그렇다. 애국가엔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이미지가 나와있다. 애국가에도 나와있지만 국가이미지로 한국정부가 밀고 싶은 것 혹은 외국인도 어느정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한국민도 자랑스레 내세우는건 아무래도 '다이나믹 코리아'가 아닐까 싶다. 한국이 매우 역동적인 나라라는 것인데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 농업국이 최첨단 기술강국이 된것, 스포츠에서 보이는 강인함, 독재국가에서 민주시민사회를 만들어낸 것, k pop을 비롯한 영화 게임산업의 한류 같은 단기간의 긍정적 급변화상은 실제 이 나라를 매우 역동적인 사회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내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는 주로 보수쪽 때문에 중간영역을 허용치 않는 극한대립상태이며, 노동시장이 양극화해 대기업과 중소기업노동자간의 차이가 크며 비정규직 정규직 간엔 계급의식 마져 있다. 또한 농업과 중소제조업분야에서는 외국노동자에 의존할수 밖에 없으면서도 이들을 피부색과 국적, 그나라의 경제력에 따라 무시, 차별한다. 또한 자국내에서 소수인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에 대해 허용적이지 않으며 일부 개신교를 중심으로 이들을 극단적으로 배척하기까지 한다. 산업분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말로만 규제혁파를 외칠뿐 기득권보장에 앞장서 어떤 신산업도 각종 규제와 대기업의 견제로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몇 있는 글로벌 기업과 각종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유교적 질서에 입각한 관료제가 뿌리 깊게 박혀있으며 이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말살해 각종 조직의 혁신성과 효율성을 갈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이런데도 한국을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여튼 이런 사회의 여러가지 의식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포함하여 전반적인 문화를 바꾸어나가자는 개념이 이 책의 제목인 '컬쳐 엔지니어링'이다. 컬쳐엔지니어링은 그 사회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확보하여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글로벌 시민을 양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지구적 관점에서도 중요하고 그 사회의 경쟁력과 건강함을 이룩하는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네 명의 전문가가 모여 여러문제를 다룬다. 몇가지만 살펴보겠다.

 우선 한국이 극심한 리스크 회피사회라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은 앞서 말한 것처럼 변화가 많고 역동성이 뛰어난 것처럼 보이며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무언가를 하기를 두려워하는 극심한 리스크 회피 사회다. 비교적 혁신적이어야 할 젊은 층과 기업에서 도전적 태도가 극히 업악되어 있으며 이는 유교나 전체주의에서 기원한 강력한 관료주의와 사회안전망이 지극히 부실한 것에서 기인한다. 현재의 글로벌 기업들은 인재를 뽑을때 쓸데없는 스펙보다는 이 사람의 도전 경험과 그로 인한 실패의 경험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미국의 스탠퍼드대학은 학생들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지원하여 실패를 종용한다. 낭비같아 보이는 이 행동은 단 몇개만의 혁신적인 성공으로 모든 실패를 되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다음은 도시경쟁력에 관한 이야기다. 미래사회엔 글로벌 본사가 어디에 위치하는가가 매우 중요해지며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여러 당근에도 글로벌 본사들은 비교적 뻔한 기존유명한 도시들에 입점하고 마는데 이는 이들이 필요한 인재가 그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비싼 지가나 각종 세제혜택보다 인재의 중요성을 택한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의 도시경쟁력은 과거처럼 도시인프라가 아니라 얼마나 뛰어난 인재를 모이게 하느냐에 달렸다. 결국 도시를 사람중심으로 디자인해야 하고, 글로벌한 환경을 조성하는게 중요해진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러니한 문제도 발생한다. 글로벌 본사의 도시 진입은 결국 기존 주민의 젠트레피케이션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주 피해자는 아무래도 젊은 층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도시의 다양성과 역동성,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게 한다. 여러모로 고려해야할 점이 많은 셈이다.

 사회적 신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한국은 여기서도 저신뢰 사회로 규정된다. 저신뢰사회는 개인적 연고, 혈연적 연고 등 사적 신뢰에 기반한 사회이다. 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신뢰 사회이면서 노력없는 보상이 상당히 많기까지 한데 노력에 기반해 사회적 신용이 쌓이는게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같은 사적 특수성이 많이 작용한다. 반면 신뢰를 위해 구축한 객관적 시스템과 사회적 프로세스는 작용하기 어렵다. 문제는 미래 사회의 한 축인 공유 플랫폼 경제가 결국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신뢰성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경우 신뢰성 축적을 위한 사회적 공정성의 확보, 정보공유, 신뢰평가가 중요해진다.

 사회적 규제도 같이 이야기한다. 일본 후쿠시마는 동일본 지진이 일어나기전 지진에 대한 메뉴얼과 훈련이 상당히 갖춰져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정작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사태는 메뉴얼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는데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메뉴얼로 대피소로 이동했다 쓰나미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했는데 현대 사회가 모든게 연결되어 있어 효율성이 매우 높지만 위험도도 굉장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의 연결성은 극도로 높아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위험이나 급격한 변화도 메뉴얼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사회나 교육 전 영역에서 세부지침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positive list를 만들기보다는 폭넓은 자율성을 주고 판단을 개별주체에 맡기는 negative list가 중요하다고 한다. 개인의 책임감과 윤리의식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은 교육이다. 결국 컬쳐엔지니링의 완성을 교육에 의한 것이니 교육의 개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두려움을 조장하는 교육시스템으로 책은 규정한다. 한국의 교육엔 무엇보다 학생들의 주도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자기 주도성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도전하고 실패의 경험을 갖는 다는 것이다. 학교가 다양한 것도 매우 중요한데 한국은 초, 중, 고, 대학이 모두 중앙조직의 하부구성물처럼 존재하고 몰개성하며 자기 비전이나 독자성이 크게 부족하다. 학교마다 자율성과 독자모델을 갖추기 위해 책은 교장과 교사의 자율성을 높이고 교장에게 필요한 인재를 수급할 수 있는 인사권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읽으면서 미래 사회와 한국사회의 문제점, 글로벌 시민, 지향점등 여러면에서 생각할 거리와 식견을 주는 책이었다. 깊이 있는 대화집이었지만 아무래도 양적으론 부족해 각 저자들의 저서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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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2
솔르다드 브라비.도로테 베르네르 지음, 맹슬기 옮김 / 한빛비즈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아주 짧고 간략한 한 권의 만화지만 역사상 여성의 지위변화와 성차별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담아냈다. 때문에 아주 많은 내용을 상세히 알 순없지만 그래도 제법 충격적인 사실들이 상당히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여성의 민주시민으로서의 지위 획득은 서구권에서 노예가 얻어낸 것보다 늦었다. 아주 오래전에 본 '컬러 퍼플' 이란 영화는 백인에게서 차별받는 흑인사회내부에서도 따로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것을 잘 드러낸 인상적인 영화였다. 

 책 내용은 선사시대부터 시작하는데 여성은 생리를 한다. 강하게 풍기는 피냄새에 사냥감 동물을 자극할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남성이 사냥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공인된 바와 같이 사냥은 성공률이 적어 전체 식량의 대부분은 여성이 채집했고 가족들은 그것에 거의 의지했다. 하지만 지방과 단백질을 대규모로 제공하는 남성의 사냥이 간헐적이었지만 보상효과와 임팩트가 압도적이었다. 고기는 주로 남성이 먹었고 그래서 남성이 더 커졌으며 사냥에도 더 적합해졌다고 나온다. 책에서 가장 동의가 안되는 부분이었는데 뭐 하여튼 그렇단다.

 중세가 가장 기가 막히는데 종교는 왜인지 여성을 탄압했다. 남성성직자로만 구성된 카톨릭에서 여성의 득세는 좀 부담스러웠나보다. 아닌척 하지만 종교는 분명 상당히 남성중심적 집단이다. 여성집단인 수녀가 아무런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함이 증거고 이는 불교집단 역시 마찬가지이며 기독교도 마친가지다. 좀처럼 여성 목사를 본적이 없으며 비구니가 이렇다할 권력을 가진걸 본적이 없다.

 하여튼 중세엔 출산마저 부정히 여겨 출산후 여성은 무려 40일간 교회출입금지였다. 그리고 귀족여성도 그리 대단하지 않아 남편이 전쟁이나 출타중일 경우 영주의 성 탑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래서 유독 중세유럽 배경의 동화에 등장하는 공주나 왕비가 성탑안에 무척이나 자주 있었나 보다. 중세 영주는 영지내 일반 평민이 막결혼한 경우라도 그 여성을 첫날밤에 먼적 강간할수 있었다. 예전 멜깁슨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잉글랜드 귀족들이 스코틀랜드 평민들을 향해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장면이 있었다.  

 중세에 여성을 가장 손쉽게 제압하는 방법은 바로 마녀사냥이었다. 마녀는 표본이 있었는데 머리가 적갈색이고, 지식이 많으며, 28세 이상의 나이가 많은 여자, 사회체제에 불만이 있는 여성들이 그것이었다. 생리통이 심하면 역시 악마가 깃들었다고 믿었으니 많은 여성이 살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마녀 감별법이란게 있는데 기가 막힌다. 당시엔 물이 악을 밀어내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그래서인지 영화 검은사제들에 보면 막판 악마를 제거하려면 악마를 검은 돼지에 넣고 큰 강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서 마녀로 추정되는 여성을 꽁꽁 묶어 물에 빠드렸다. 이는 무조건 죽이는 방식이었는데 떠오르면 물이 밀어낸 것이니 악한 마녀로 입증되어 건져서 화형에 처했고, 떠오르지 않으면 마녀는 아니지만 거의 그 사이에 익사하는 셈에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여성의 지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19세기의 나폴레옹 헌법은 근대적인 법으로 전체적으로 추앙받지만 여성에 관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 법에선 여성의 낙태가 금지였고 전체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많이 깎았다. 그 법에 의하면 여성은 아버지의  승낙이 있어얌나 결혼이 가능했고, 남편에게 복종해야 했으며 재산도 없고, 직업도 남편의 동의를 얻어 가질수 있었다. 또한 직업이 있었어도 급여는 남편이 받았으며 이동의 자유도 없었고, 자신의 앞으로 편지가 와도 남편이 먼저 본후에야만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두차례의 전쟁이 큰 역할을 한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겪으면서 수천만명의 젊은 남자들이 징집되어 갈려나갔고, 남겨진 여성들이 평소라면 절대주어지지 않았을 직업활동을 대신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지어 전쟁보조역할과 지원 및 군수물자의 생산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영국에선 1918년에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고 1928년엔 모든 여성에 선거권이 주어졌다.

 이로 인해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점차 향상되었지만 갈길은 여전히 멀었다.  프랑스에선 1965년이 되어서야 여성이 자기 이름으로 은행계좌를 가질수 있었다. 1967년에야 1920년에 법으로 금지왼 피임이 합법화하였고, 1975년에 이르러서야 이혼이 자유롭게 허용되었다. 프랑스는 지금은 낙태가 합법이고 심지어 낙태비용도 국가가 모두 지원한다고 한다.

 많은 것이 여성의 지위와 권한이 남성과 비슷해진 현대이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책에 나온 자료에 의하면 대기업 사장중 89%가 남성이고 일부 유럽의 선진국의 경우 국회의원들의 성비를 동등하게 강제하는 동수법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33%만이 여성이다. 매년 58만명의 여성이 성범죄에 노출되고 이중 무려 90%가 여러가지 이유로 신고를 하지 않는다. 신고를 해도 처벌되는 경우는 10% 불과하다니 그럴만하다. 어느 정도 범위의 통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년 123명의 여성이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살해당하고 6만 2천명이 강간을 당한다. 또한 영화감독중 여성은 단지 20%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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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리커버 특별판)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일반적으론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되지만 80년대생과 90년대생은 상당히 다르다. 80년대생은 자라면서 인터넷을 접한 세대라면 90년대생은 자라면서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제적으로는 70년대생이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라면 80년대생은 완전고용이 붕괴된 상황에서 5-60대가 정리해고 되는 걸 본세대 그리고 90년대생은 일개 사원마저 상황에 따라 정리해고되는 것을 본세대다. 가장 부유하게 자랐지만 가장 부유해지기 어려우면서도 거기에 사회적 안정성마저 없는 세대란 의미다.

 일부 이해력이 부족한 세대들은 이런 90년대생들을 도전의식이 없는 세대, 꿈과 야망이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세대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세대의 특성이란 결국 당시의 경제적 환경과 사회문화적 요소가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그네들이 야망을 감히 가질수 있었고, 도전할수 있었던 것도 사회가 안정적이고 웬만하면 취직이 되고 장사도 잘되어 누구나 크게 재산을 증식할수 있던 시기였단 점을 그들은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여튼 책에서 말하는 90년대생들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다.

 첫번째로는 정직함이다. 여기서 솔직함은 정직함이라기보다는 모든 분야의 공정성과 관련한다. 즉,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정직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학연이나 지연, 혈연등 과거 세대들이 중시하던 가치를 혐오한다. 조국사태와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사건, 거기에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에 이들이 무척이나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이와 관련 깊다.

 두번째 특성은 솔직함이다. 이들은 사회적 허위의식을 버리고 자기자신에게도 솔직하며 당당히 남에게도 솔직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들은 불편러에 열광한다. 과거 같으면 예의가 없어보이고 자기만 아는 것 같은 불편러들이 대세인 것이다.

 세번째 특성은 재미다. 이들은 재미를 추구한다. 과거 세대가 삶의 목적으로 뭔가 거창한 것을 찾았다면 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삶의 목적자체가 없다고도 볼 수 있으며 그저 유희를 추구한다. 즉, 욜로인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혼자살거나 결혼해도 딩크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순히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유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네번째 특성은 간단함이다. 이들은 길고 복잡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을 줄이는 현상이 나타나며 문자보다는 영상을 선호한다. 영상조차도 다 보는 것을 즐기지 않아 줄인 영상을 좋아하며 이것조차 길어선 안되며 즉각적으로 이해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져야한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일기는 F자패턴을 따르는데 제목과 주요내용만 신경을 쓰고 나머지는 대충 읽는 방법이다. 클리핑신드롬도 나타나는데 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골라주고 요약, 발췌해주는 콘텐츠만을 소비하는 현상이다.

 90년대생의 이와 같은 특징을 갖고 있지만 현재 사회, 특히 기업은 이들을 받아줄 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다. 선발이나 회사에서 이들을 대하고 육성하는 과정에서 기존 세대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게 행동하고 근무할 것을 이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경제체제가 4차산업으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기업엔 모바일 세대인 이들이 가장요구될 수 밖에 없지만 회사에 몸을 갈아야 한다던가,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90년대생들에게 맞지않는다. 그래서인지 지금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90년대생들의 1년 퇴직 비율은 생각보다 매우 높다. 90년 대생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 대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90년대생들은 중소기업 경영자의 마인드가 대기업에 비해 훨씬더 꼰대스럽다는게 기피의 주 이유라고 말한다. 워라벨을 중시하는 그들에게 경제적 요인보다는 자신의 발전가능성과 근무환경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미국은 물론 우리보다 더 보수적으로 여겨지는 중국마저도 80-90년대 생들을 이해하고 우대하는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독특한 이 세대의 포용력있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들이 특별히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이들이 요구하는 솔직함이나 정직함, 근무조건의 개선, 자아실현추구가 가능한 사회적 조건은 사실 복지국가이자 민주국가라면 당연한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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