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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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확 눈에 띄었다. 아마 소외된 아이들을 다루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고, 대충 맞았다. 이 책은 한국에 존재하는 미등록 아이들에 관한 책이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이주자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혹은 그들이 한국에서 낳은 아동으로 부모가 체류자격이 없거나 상실 된 경우, 또는 난민자격신청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체류자격이 결국 없는 아이들을 지칭한다. 한국 정보는 이들을 사실상 있지만 없는 아이 더 나아가서 범죄자 취급하곤 하는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매우 온당하다. 

 한국의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20-30만 정도로 추산되며 당연히 그 아이들인 미등록 아동도 2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에 이주 노동자가 유입된 시기는 1988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관광을 목표로 비자관리를 느슨히 한 결과 상당수의 외국인이 관광 비자로 입국해 이 나라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국내에 3D 업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이주 노동자의 유입이 본격화한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에 나서 1991년 해외투자기업 산업기술 연수생 제도를 만든다. 이들은 법의 명칭처럼 연수생 신분이라 노동자로서의 권익을 보호받지 못했다. 이들은 장기간 노동, 저임금, 위험한 작업환경에 내몰렸고 현대판 노동제도로 불린 이 악법은 2007년이 되어서야 폐기되었다. 하지만 장기간의 운영으로 인해 한국 사회 전반에 외국인 노동을 마구 부려도 된다는 악습을 짙게 남기게 디었다. 

 현재 한국은 전문직 기술 종사자의 경우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생활하는 것을 허락하지만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는 노동자에게는 유독 한국에서 수십년을 일해도 가족 동반 비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외국인의 입국과 정착을 통제하려는 강한 정책이지만 인도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부족과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나라 형편을 생각한다면 오래가지 못할 제도로 보인다. 

 미등록아동은 처음엔 문제가 아니었다. 가족 동반 이주를 허용하지 않았기에 미등록 이주민 노동자들은 그들 자체의 문제 해결에 바빴으면 국내 지원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이 오래 체류하면서 자연히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미등록 아이들 문제도 발생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2000년대만 해도 미등록 아동들은 학교 입학도 쉽지 않았다. 한국은 유엔아동권리 협약에 따라 미등록 이주 아동일지라도 학습권이 주어지는 고교까지 진학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불법체류임이 밝혀져도 추방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이다. 고교 졸업후엔 바로 추방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어도 해당 국가에 장기체류하면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에게까지 체류자격이나 국적 취득의 자격을 부여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것들이 전무하다. 대부분 추방해버리며 언론을 통해 사정이 알려지거나 이슈화되었을때 일부에 한해서 선처하는 것이 고작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려서부터 자란 미등록 아동들은 당연히 고초를 겪는다. 그들의 부모는 매우 바쁘기에 마땅히 이중언어자가 되어야 할 이 아이들으 거의 대부분 한국어만을 하게 된다. 때문에 추방당하는 경우 대처가 쉽지 않다.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자라 한국어를 익히고 이 나라의 문화속에서 자라나 생긴 것만 빼곤 모두 한국인이기에 모국으로의 추방은 사실상 모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미등록 아이들은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우리의 주민번호에 해당하는 외국인 등록번호가 없기에 어릴적부터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우선 아파도 병원에서 의료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은 저소득에도 항상 많은 병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자라면서 각종 시험을 볼 수 없다. 태권도와 한국사에 관심이 많아도 단증 시험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이다. 더 크면 운전면허는 물론이고 특성화고에 진학해도 기술 취득을 통한 각종 자격시험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학진학에 필수적인 수능시험 응시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미등록 아동들은 어릴 적엔 성실히 학습해나가다가도 중학교 이후 자신의 미래가 한국에선 더 이상 없음을 깨닫고 갑작스레 학교생활에 불성실해지거나 학업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많다. 공부를 열심히 해온게 무용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등록 아이들은 집안에서도 애 어른으로 자라난다. 부모는 바쁘고 일에 시달리기에 한국어를 학당등을 통해 한국어를 학습할 기회를 잘 갖지 못한다. 또한 어른이 되서 왔기에 한국어가 발전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실상 한국인과 같은 수준으로 한국어를 구사하기에 부모가 언어의 한계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아이들에게 떠넘기게 된다. 사장에게 월급을 독촉하는 일, 은행 계좌를 만드는 일, 분실한 핸드폰을 찾는 일등 이 모든 잡다한 일들이다. 이로 인해 미등록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어른을 오히려 보호하게 되고 빠르게 조숙해진다.

 아이들은 졸업 후에도 한국에 남으려 한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못하고 자격취득도 못하기에 열악한 직장에 주로 취업하게 딘다. 법무부의 단속에 걸리게 되면 바로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수갑을 차게 되고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연행 된 후 개인 사정 정리가 끝나면 평생 한번도 가보지 못한 모국이란 곳으로 추방이다. 사실상 귀양가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그나마 다행히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시행했다. 이는 한국에서 출생 한 후 15년을 체류한 아동이 자격대상이다.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한국에서 15년을 넘게 살았지만 모국에서 출생하고 한국에 부모와 함께 온 경우, 그리고 이 긴 15년을 못 채운 경우는 자격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저자는 외국처럼 한국도 보편적 출생 등록제도를 실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국적까지 아니더라도 등록을 해주고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미등록 아동은 모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버림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 정부는 당연히 등록을 해주지 않고 모국에서 이를 해줘야 하나 그곳들도 외국에 나가있는 불법체류자로 골머리가 아파 이를 잘 해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 엄연한 한 인간임에도 어느 나라에도 속해있지 않은 지구촌 난민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이고 다문화를 무척 강조하는 사회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없다. 법무부가 이렇게 경직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국민 여론이 무엇보다도 불법 체류 외국인에게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의 어려운 노동조건도 한 몫 할것이다. 외국인과 경쟁을 하며 그들에게 없는 자리 마저 내어주는 경우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처우도 좋아져야 한국의 노동조건도 좋아 질것이다. 사회의 최소자리를 높여야 전반적 수준이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문화적이든 향상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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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도시 - 기업과 공장이 사라진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
방준호 지음 / 부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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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추석엔 군산여행을 갔었다. 군산을 선택한 이유는 서해금빛열차 때문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기차를 좋아하고  좁지만 기차 방안에서 가족들이 이야기와 다과를 즐기며 풍경을 바라보고 편히 갈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그 기차의 행선지가 군산이었기에 자연히 그곳이 여행지가 되었다. 가면서 살피니 군산은 일제 강점기 주요 항구였고 그래서 일제 잔재 문화재가 남아있고, 짜장면으로 유명하며, 이성당 빵집이 유명하다는걸 알게 되었다. 은파호수공원도 있었고, 새만금에 고군산군도, 철길마을도 관광지였다. 

 4-5시간이 걸려 군산역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자가용으로 이동했겠지만 기차여행이었기에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 기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도시의 쇠퇴를 이야기하며 걱정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인구가 줄어드는 모든 지방 도시 쇠퇴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군산은 커다른 두 변화가 있었다. GM대우와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2000년대 군산에 자리 잡은 두 기업은 고작 10년 정도를 머물렀다.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는 2017년에 문을 닫았고 지엠 군산 공장은 2018년 문들 닫았다. 이 두 대공장에는 무려 군산 사람 1/4가 생계를 걸고 있었다. 

 그 이전 군산은 버림받은 도시나 다름 없었다. 인구가 26-7만으로 전라북도 제2의 도시이지만 수도권에 가져다 놓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중소도시 규모에 불과하다. 한국의 산업개발은 수도권과 영남 중심으로 이뤄졌기에 호남 지역은 산업발전이 미미했고 이렇다할 기업체도 없었다. 그러다 90년대가 되었고 중공이 중국이 되면서 서해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한국 굴지의 기업 대우가 있었고 그 대우가 군산에 자동차 공장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군산에겐 불행하게도 그 대우가 외환위기에 무너지게 된다. 결국 2002년 지엠이 대우차의 승용차 부분만을 인수하였고 상용차 부분은 1년 후인 2003년 인도의 타타 자동차가 인수한다. 이후 자동차 산업이 자리 잡고 조선업이 활황을 타며 군산의 전성기가 오게 된다. 한국의 조선 산업은 2003년 일본은 제친 후 상당한 호황을 누렸고 2008년엔 급기야 최초로 반도체와 자동차를 넘어서 한국 수출 비중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조선업은 자동차와 다른 점이 있는데 자동화가 어려워 인간의 숙련도에 상당히 의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업은 비정규직 위주로 꾸려진다. 

 반면 자동차는 숙련도에 대한 의존도가 덜하지만 정규직 위주로 산업이 꾸려진다. 그리고 많은 협력업체를 요구한다. 그리고 자동차 같은 제조업은 상당히 비슷한 생활 수준과 문화를 영위하는 표준적 연대가 가능한 노동자 집단을 형성한다. 그래서 군산 지엠의 노동자들은 매우 힘들고 어렵게 일했지만 괜찮은 급여를 받고 집 한채 정도는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살아가게 된다. 2008경제 위기가 닥치자 모기업엔 지엠은 세계 각지의 공장을 정리한다. 하지만 군산 공장은 무사했다. 당시 고유가로 마티즈, 라셰티 등의 자동차가 유럽에서 잘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엠은 결국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고 그 파장은 군산 공장으로도 밀어닥치게 된다.  

 결국 군산에서는 조선소와 자동차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군산을 떠났다. 28만에 가깝던 인구는 26만대로 주저않았다. 지엠 공장 폐쇄로 종업원 2044명과 164개 협력업체 직원 1028명이 실직했다. 조선소 가동중단으로 종업원 760명과 협력업체 직원 4099명이 실직했다. 제조업이 일자리가 사라지자 지방 상권도 주저 않았다. 또한 조선소 인근의 원룸들도 자리를 잃었다. 조선소는 비정규직 위주로 일꾼이 꾸려지기에 원룸이 잘 되는 편이기에 군산에도 많이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군산은 정부에 의해 고용위기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위기 지역은 구직 급여 수급기간이 길어지고 훈련 연장 급여도 제공되며 생활 안정자금 대출도 크다. 하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다. 한국에서 긴 기간 길러진 노동자의 숙련도와 그에 따른 나이와 경력은 오히려 걸림돌에 가깝다. 한국은 이들의 경력과 기술을 후대로 이을만한 사회적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이들은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퇴직금을 털어 자영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게 아니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비나, 사회복지 직업 등이다. 오랜 기간 제조업 직장에서 나름 높은 자리를 차지했던 이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한겨레 기자가 어려움에 처한 군산에 6주간 머물며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던 사라들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이다. 그래서 제조업 노동자로서 그들이 갖고 있던 정체성과 그것의 무너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애환등을 잘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제조업에 다시 살아나길 어려울 것이다. 너무 많은 제3세계의 저렴한 노동력, 그리고 4차산업혁명의 엄청난 자동화는 20세기 존재하던 두터운 제조업 노동자들의 형성을 구조적으로 막을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나 서비스업 노동자로 전락한 사람들은 경험이 다르고 연대하기 어렵다. 다시 노동의 시대가 오기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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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이해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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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역사학자 얀 모렐리의 전시 프로파간다 기본 원칙으로 시작한다. 

1. 전쟁을 원한 건 우리가 아니다.

2. 전쟁의 책임은 오로지 적에게 있다.

3. 적장은 악마나 흉악범의 얼굴이다.

4. 우리는 오직 대의를 위해 싸울 뿐 작은 이익도 탐하지 않는다.

5. 우리는 의도치 않게 잔혹행위를 저지를 수 있으나 적은 고의로 그런다.

6. 적은 금지된 무기를 사용한다.

7. 우리의 피해는 미미하나 적의 피해는 대단하다.

8. 예술가나 지성인은 우리의 명분을 지지한다.

9. 우리의 대의는 신성하다.

10. 우리의 선전을 의심하는 자는 반역자다.


 벌써 개전 1년을 맞이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도 위 프로파간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젤렌스키와 푸틴은 이미 양 진영에서 악마화 되어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잔혹 행위를 고발하고 자신들의 승전을 과장한다. 전쟁의 책임은 놀랍게도 침략국과 피해국 양쪽 모두 주장하는데 러시아의 나토의 동진으로 인한 자국 변경 보호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 보호가 전쟁의 이유이며 우크라이나는 서구 자유 진영의 논리와 민족주의가 전쟁의 이유다. 

 이 전쟁은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한국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상당한 조짐이 있었다. 전쟁은 동계올림픽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는데 이미 몇 달 전 서구 언론에서는 전쟁이 날 것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있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이미 2021년 전 병력의 절반인 12만 5천 명을 러시아의 주 목표 지역이 될 돈바스 지역에 집결시킨 상태였으며 서구는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군을 상당히 훈련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전쟁이 상당 부분 러시아의 성공으로 진행된 것은 서구, 나토와 미국의 무능,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무능, 상대적인 러시아의 전쟁수행능력의 우수함을 입증한다.

 우린 이미 서구에 속해있기에 이 전쟁과 관련하여 우리가 듣는 논리와 가치 소식은 서구 중심적이다. 한국 정부 역시 철저히 그런 입장에 서있다. 여기서 러시아는 상당히 악마화 되어 있으며 그 중심이 푸틴이고 이미 국가 자체가 비정상 국가 취급을 받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국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21세기에 반인권적 침략을 저지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러시아는 나름대로 전쟁의 논리를 갖고 있다. 시계를 크게 거슬러 올라가 냉전의 막바지를 살펴보면 소련은 1990년 붕괴를 맞이한다. 붕괴 당시 소련의 수장은 고르바초프 였으며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동독을 내어주는 상황에 봉착하고 있었다. 동독의 상실은 서구 열강의 동진이었고 이는 무너져 가는 소련입장에서도 안보상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미국와 소련은 나토가 동진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독일의 통일에 합의한다. 이는 당시 미국부장관 베이커가 고르바초프와 구두약속한 것으로 정식문서는 아니자만 이런 구두합의사실이 문서로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은 냉전의 사실상의 패전국이었으며 단극화한 미국의 주도로 나토는 결국 동진한다. 러시아는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방은 유고를 침공했으며 1997는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을 수용하는 기본 조약에까지 서명하게 된다. 결국 러시아는 2007년 푸틴의 뮌헨 선언으로 나토 및 미국의 동진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조지아 전쟁을 계기로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또한 이후 힘을 키워 크림 반도를 합병하고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였으며 군비를 강화하고 내정간섭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국과도 오랜 숙원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아 동맹을 강화한다. 2021년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을 중단하는 최후통첩을 했으며 나토가 이를 무시한 결과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또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단일한 민족세력으로 민주주의 국가로 서방의 일원이 되어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국가로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우크라이나는 기본적으로 세 종족으로 구성된다. 우선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인으로 주로 서부와 중부에 거주한며 이들이 다수를 구성한다. 두 번째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인으로 중남부와 동부에 거주하며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을 없다. 세 번째는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이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두 개의 민족 국가상이 등장해 대결을 펼쳤다. 하나는 갈리시아(민족주의)패러다임으로 단일민족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동우크라이나 모델로 다종교, 다민족, 다문화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 양 모델은 생각보다 크게 대립하지 않았으며 2014년 이전까지 이렇다할 충돌이 없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독립이후의 역사는 서부 갈리시아와 동부 돈바스의 서로 다른 정체성과 역사, 러시아에 대한 방향성을 둘러싼 지리적 대립과 정치적 투쟁의 역사였다.   

 2004년 서구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은 빅토르 유센코가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에게 대선에서 패하자 키예프에선 반대와 시위가 일어나 오렌지 혁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친러성향의 돈바스 지역을 이를 쿠데타로 규정한다. 돈바스 지역은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서 벗어나 고도의 연방제를 요구했으며 2014년 마이단 쿠데타가 일어나자 반 러시아 반 러시아인 프로파간다가 우크라이나에세 집중 전개되었다. 마이단 반대 및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도전은 살해협박과 탄압, 피살로 이어졌다. 이런 극단의 대립에 대한 화해정책으로 당선된 젤렌스키는 권력 장악 후 민족주의로 급선회해 동남부 지역에 더한 배신감을 안겼다. 때문에 지금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상 2014년 마이단에서 시작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육군 편성은 포병중심이다. 전투차량은 많지 않으며 포병위주의 공격을 감행했다. 러시아 군은 부가 남부 지역이 공략에서 야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북부 지역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강해 포격을 가할 경우 강한 저항이 우려되어서이고 남부는 친러시아 지역이기 때문이다. 반면 동부는 철저히 포격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군을 빠르게 무력화하고 사상자수를 늘려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서여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군 상당수는 러시아 군의 포격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   

 서구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목표를  수도인 키예프의 점령으로 보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 및 동남부 지역의 해방이었다. 그래서 러시아군은 전면적을 감행하는 수준보다는 지역 수준의 전쟁을 다루는 규모로 편성되었다. 러시아는 벨라루스를 거쳐 키예프를 공격하여 우크라이나 군의 주력을 이곳에 묶어두고 동남부 지역을 상대적으로 쉽게 공략했다. 마리우폴 전투 후 전장은 우크라니아 동부에 형성되었는데 포파스나라는 도시 전체의 가옥이 지하요새로 연결된 지역을 러시아가 점령한다. 그래서 현재 러시아는 이곳을 거점으로 사방으로 진격이 가능한 상태다. 

 서구 언론은 러시아의 전쟁수행능력에 의심을 포하며 전황을 과대 포장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급자족 국가이고 전쟁으로 인한 서구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서구 이외의 다른 지역을 통해 충분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일년 이상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내 푸틴의 지지는 아직도 80%에 이른다.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의 애착을 고려해도 자국내 상황이 전쟁으로 정말 견디기 어렵다면 이런 지지는 나오기 쉽지 않다. 오히려 버티기 힘들어 보이는 것은 우크라이나와 서구다. 우크라이나는 60세 이하의 남성을 총동원한 상태이며 새로 징집한 이들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곧 여성을 징집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며 재정적으로 파산상태로 전비로 매일 10억달러가 지출된다. 즉, 서구의 지원이 멈춘다면 전쟁도 파탄난다는 이야기다. 전쟁으로 힘든 것은 서구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오래전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 및 기술자본으로 변모하였기에 이번 재래식 전쟁에서 무기 생산능력이 크게 떨어졌음을 보기고 있다. 이는 평화에 젖어든 나토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인 상태다. 덕분에 한국이 폴란드에 방산수출로 큰 이득을 보았고 이런 미국의 유약함을 본 산업자본 공장국가 중국은 또 다른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는 사실상 실패했다. 우선 이 정책은 중러는 밀착시켜서 거대한 경제블록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기본 정책은 러시아를 동진시켜 중과 대결하게 만드는 구도인데 정반대의 상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이 냉정 이후 완성한 글로벌 자본주의는 이번 제재로 사실상 종말을 맞이했다. 향후 세계 경제는 과거 냉전 시대처럼 두 개로 쪼개져 서방의 금융자본주의와 중, 러의 산업 자본주의의 대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이번 제재로 서방은 러시아의 외화자산을 압류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미국의 주 기득권인 달러패권을 붕괴시킬 수 있는데 러시아는 바로 중국 중심의 결제시스템으로 이동해버렸고 중과 러가 대규모로 미국의 달러 및 국채를 정리하여 막대한 적자에도 달러를 마구 발행하는 미국의 기본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러 제재로 고생하는 것은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2022년 5월 기준 상품가격지수 중 비료가격이 250으로 올랐으며 콩기름 및 식품, 곡물가는 170, 에너지는 160에 달한다. 기준 100은 2010년의 수치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으로 유럽연합 각국은 크게 고통을 받고 있으며 러시아 시장을 상실해 무역수지도 25억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유럽연합 창설 이후 최대치이며 고물가로 인해 가계들의 부담을 나날이 커지고 있으며 저성장도 심화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자국내에서 철수 할 수 밖에 없는 서방의 알짜 기업을 덤핑 가격에 인수하여 이득을 챙겼고 오히려 해외 수출이 급증해 루블화가 폭등하여 이득을 보고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의 이런 위기에도 트럼프 관세를 적용하여 이들의 산업을 위축시키고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전쟁으로 거둔 거대한 이익으로 인해 유로화와 파운드 화가 절하하여 유럽 연합내의 에너지 식량부분 적자를 심화시키고 있다.

 즉,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쟁에 유럽연합을 가담시켜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고통을 안기고 있는 셈인 것이다.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지 못하는 유럽연합의 국가들은 미국의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과정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1년이지만 향후 미국의 전쟁수행의지 및 미와 서방 중러간의 대결구도, 타이완 등의 향배에 따라 그 예후가 정해질 것이다. 전쟁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는데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효과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지속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쉽게 중단될 수 도 있다. 참고로 미국이 수행한 아프간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은 거의 10년의 세월 간 지속되었다. 

 전쟁 후 세계는 정치군사적으로는 중러 동맹에 기초한 양극화,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브릭스의 전면화를 통한 다극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WTO나 IMF처럼 미국중심의 단극체제에서 발생한 국제지구는 힘을 잃고 UN역시 무력화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니아 전쟁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데 우선 1994년 우크라이나 비핵화 모델이 한반도 비핵화모델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어 북의 핵보유 명분이 강화될 것이다. 또한 남북과 미중러일이 참여하는 6자회담이 사실상 실효성을 잃게 될 것이고 한미일 대 북중러의 동맹대결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즉, 평화적 통일 보다는 과거 냉전시기처럼 대결의 전초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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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 Z (Z세대) -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
로버타 카츠 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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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세대 혹은 포스트 밀레니얼은 글자처럼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를 칭한다. 이들은 인터넷이 등장한 1995년 이후 출생하여 이전 세대와는 달리 인터넷 이전의 세상, 즉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다. 책 Z세대는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들 세대를 연구한 책이다. 디지털 플랫폼와 인터넷 공간에서 이들이 사용한 언어와 심층면접으로 연구를 구성하였는데 그래서 좀 더 흥미롭다. 물론 영미권 연구이기에 한국의 Z와는 또 다른 측면도 많다.

 Z세대는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을 말할 때 새로운 어휘를 사용한다. 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개인의 행복과 자기돌봄을 중시한다. 또한 탈위계적이면서도 협력적 방식으로 사회를 운영하려고 한다. 이들의 경험은 상당히 역설적이고 모순적인데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디지털 도구의 등장으로 발언권(유튜브, 밈, 틱톡 등의 SNS)의 수단이 많으면서도 현실 세계에선 자신의 힘이 위축되었다고 느낀다는 점이며 실제로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 세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그 해결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나 윗세대에게서 물려받은 문제들, 그러니까 기후위기, 폭력, 젠더문제, 인종차별, 정치체제의 실패와 부유해질 가능성의 낮아짐에 대해서는 심히 비관적이다. 

 Z세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그들은 선명한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원치 않는 압박과 요구에 그 선명한 정체성을 이용해 자신을 규정한다. 이들은 개인의 정체성, 목적의식, 그리고 공동체 또는 그것을 지지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공동체에 소속된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평등과 협업을 바탕으로 목소리와 권력이 고르게 배분되는 수평적 리더쉽을 지향하고 확고한 가치관을 갖는다. 

 먼저 정체성을 살펴보다. 디지털 시대에 정체성은 개인의 여러 특성이 복잡 다단하게 얽힌 혼합물이자 신중한 탐색의 결과물이 된다. Z세대에게 정체성이란 거대한 사회집단 내에서 스스로 주장하고 개인적으로 형성해야 할 사회적 개념에 가깝다. 그래서 이들의 정체성은 고유하고 미세한 조각들로 구성되며 유연하고 심지어 교차적이다. 또한 형성과정에서 인터넷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의 정체성이 매우 복잡하고 유연하며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것이 성정체성이다. Z세대의 성정체성은 매우 다양하다. 논바이어리(남성, 여성 정체화 거부), 시스젠더(태어난 성과 일치하는 성정체성), 트랜스(남성, 여성 어디도 아니며 심지어 논바이어리도 아님), 젠더 비순응자(젠더의 표현과 정체성이 남성, 여성, 양성을 오감), 젠더 플루이드(남성, 여성쪽으로 확실한 정체화가 아님, 양자를 오감), 젠더 퀴어(사회적 범주로서의 젠더를 부정)가 그런 것들이다. 물론 이것도 범주화 한 것이며 이것조차 오가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 양상은 더 복잡다단하다. Z세대의 정체성 중 성이 유독 복잡한 것은 민족, 인종개념 등은 거의 주어지고 스스로 탐험할 여지가 적은 반면 성정체성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인종과 민족 정체성의 이면과 다문화주의, 인종 간 관계,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존중하려는 욕구가 고도화하면서 이조차도 점점 미세하게 구분하고 있다. 또한 Z세대의 대부분은 종교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것을 정체성과 관련지어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유산, 문화나 민족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탐험할 만한 가지 정도는 있다고 본다. Z세대는 이처럼 남들과는 달리 매우 세분하여 자신의 정의하는 미립자 정체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며 이 정체성은 남에게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디지털 기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디지털 도구들이 개인의 어떤 삶은 디지털 플랫폼에 공개할지 신중하게 선택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편 디지털 기술 때문에 이들의 정체성은 도전 받기도 하는데 디지털 플랫폼에 자신의 정체성이 공개되고 진정성을 요구 받기에 이를 지켜나가고 실천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실제 정체성과 디지털 플랫폼의 다른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정체성이 다른 경우 양자의 경계선이 흐려져 진정성이 도전 받는 경우도 생겨난다. 

 Z세대 두 번째 특성은 조립식 소속감이다. Z세대는 안정성과 사회적 정착을 원하면서도 한 집단에 모든 정체성을 투사하거나 평생 한 집단에 메이지 않는다. 인터넷은 정체성의 경우처럼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집단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준다. 심지어 없다면 자신이 만들어 낼 수 도 있다. 모든 SNS 플랫폼들은 저마다의 거품방울 아래로 고유한 하위문화와 언어를 생성하여 여러 유형의 조립식 소속감을 갖는 작은 공동체를 형성해낸다. 

 Z세대는 조립식 소속감을 실천하며 새로운 사회 실험을 시작한다. 저마다 고유한 조합으로 구성되고 복수의 커뮤니티에 소속됨으로써 표출되는 이들의 정체성은 고유함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각자에게 다층적인 사회적 지지를 제공한다. 이들의 소속감은 본질적으로 유연하며 비공식적이고 담화적이다. 

 Z세대의 마지막 특성은 위계의 거부와 평등성이다. Z세대는 부모세대와는 다르게 기성세대, 전문가들과 교훈적 진리, 그 밖에 전통적 형태의 위계적 권위를 경계하고 불신한다. 위선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며 진정성에 집착하는 이 세대는 종교처럼 물려받은 가치와 관행의 상당수를 거부하거나 변형하여 수용한다. 그래서 전통적 제대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옅다. Z세대는 과거 제도에 의존하여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스스로의 힘으로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으며 그래서 자급자족, 자기의존, 자기의지를 선호한다.

 Z세대는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그룹을 위해서 기꺼이 책임지려는 수평적이고 헌신적인 리더를 선호한다. 그들에게 리더는 더 잘난 사람이 아니라 남을 위해 헌신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며 리더십은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시보다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이들은 협업을 매우 중시하는데 기존 세대는 위계 구조에서 시키는 대로 해왔기에 모든 것을 협업하려는 이들의 등장이 모든 사회조직에서 당황스럽다. 협업과 가벼운 리더쉽을 선호하는 경향을 이 세대의 지향성과 가치, 특히 개인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 공정에 대한 열망과 관련이 깊다. 협업을 지향하면서도 개인의 자율성도 함께 보장해주는 사회구조의 새로운 탄생이 어쩌면 Z세대의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회학자들은 이들의 동료생산 방식이 새로운 사회 위계구조를 대체할 수 있을지 바라보고 있다. 

 Z세대는 이렇게 당차면서도 불안하고 의존적인 면도 있다. 우선 이들은 생각보다 부모세대의 이존한다. 경제적 위기로 인해 부모 세대는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Z세대가 어려서 부터 프로젝트 관리자처럼 일상의 문제를 세심하게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이에 의존해온 이 세대는 이런 문제로 인해 경제적, 정신적 독립심이 생각보다 부족하다. 또한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정신건강문제가 좋지 않다. 수천수만가지의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관계의 가능성이 무한해 보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선택이 더 어렵고 여기서도 소속되지 못하면 더욱 큰 고립감과 외로움에 시달린다. 또한 이들은 급격한 사회변화와 포격, 갈등, 경제성장에 대한 불신, 정치불안정을 바라보며 자라났기에 정보 과부하와 스트레스성 뉴스에 시달렸다. 이들은 사회와 어른을 믿지 못하기에 이런 정서적인 문제해결은 자신(45%)과 또래집단(25%)에 상당히 의존한다.

 이처럼 Z세대는 많은 사회 문제를 양산하고 중첩시켜 악화시킨 이전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수평적 리더십과 협력, 민주시민성으로 이를 해결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세대다. 하지만 의외로 취약한 면이 있으며 전통의 의지하지 않기에 정체성이나 소속감도 쉽게 흔들리기 쉽다. 이런 이들은 기성세대가 잘 이해하고 사회에 잘 안착시켜주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이들은 향후 100년을 살아가며 기후위기 문제, 미중갈등, 경제위기, 민주주의 실패, 정치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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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세계 - 미국의 100개 팩트로 보는 새로운 부의 질서와 기회
스콧 갤러웨이 지음, 이상미 옮김 / 리더스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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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두말할 것 없는 초 강대국이지만 강력한 위기에 봉착해있다. 물론 그들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생 약소국으로 최강국인 모국 영국과의 독립 전쟁, 그리고 큰 희생을 감내한 내전인 남북전쟁, 세계 1차, 2차 대전이 큰 위기였다. 그 후 강력한 소련과의 냉전이 이어졌으나 미국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해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예전과 다르게 안과 밖이 다 불안하다. 밖으로는 가까운 시일 내에 경제 규모면에서 미국을 능가할 것이 확실한 중국의 도전이 그리고 안으로는 중산층의 붕괴와 정치 갈등으로 인한 내부 분열이 자리한다. 

 책 '표류하는 세계'는 100가지 데이터로 이런 미국의 불안함을 표출한다. 처음엔 하나하나 지나치게 짧은 장으로 이뤄져 불만이 있었지만 읽을 수록 일관된 문제 의식과 책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사회 및 전 세계에도 상당 부분 투영할 수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최강국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역동적인 경제에서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안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후 미국은 매우 두터운 중산층을 형성했는데 이는 당시 사회 복지 수준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더 안전하고 후한 대접을 받았고, 국가는 이들을 강력하게 지원했다. 당시 최고세율은 무려 91%에 달했다. 공교육의 수준도 높아져 무려 수백 만의 가구가 번듯한 집 한 채와 자동차, 공교육을 받는 아이들, 지역사회의 공동체에 참여하여 높은 삶의 질을 누렸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성장률이 둔화되고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고 1981년 신자유주의자 레이건이 집권하며 방향이 바뀐다. 레이건의 대표 정책은 감세였다. 그가 취임한 1981년 최고한계세율은 70%였으나 그가 후임인 부시에게 배턴을 넘겼을 땐 무려 28%까지 줄어든 상태였다. 부의 재분배가 크게 약화한 것이다. 여기에 대규모 감세로 레이건 취임 당시 9300억 달러 였던 부채규모는 임기를 마칠 무렵엔 2조 7천억 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레이건 집권기엔 전쟁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국가의 부를 그대로 민간 부유층에 넘길 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중산층은 약해졌다. 1950년 비농업부분 노동자의 1/3이 노동조합 소속이었고, 당시만 해도 1천명이 넘는 파업 건수가 연간 424건데 달했다. 하지만 1988년이면 고작 40건으로 줄어든다. 권력이 노동에서 자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1973-2014년 사이 노동 생산성이 73%증가했음에도 임금은 9%증가에 그친다. 잉여분은 자본가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부유층은 더욱 부자가 되었다. 상위 1%가 미국 주식의 50%를 보유하고 있으며 하위 80%는 고작 13%를 갖고 있다.

 부유층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있는데 1965년 최고 경영자와 노동자의 임금 비는 21:1이었으나 2020년엔 351:1로 벌어졌다. 최근 기술 기업의 창업자들은 해당 기업에 대한 강한 통제력을 갖는다. 그 방법은 차등의결권 구조에 있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자가 자신의 기업을 상장 시킬 때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특정 주식에 2표 이상의 의결권을 주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그는 회사운영의 통제권과 외부 주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현재 미국 기술 기업의 46%가 차등의결권구조로 기업을 상장한다. 

 미국의 기술 기업들 역시 강해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로비 비용을 11배나 급증시켰다. 2000년 기업의 로비 비용은 700만 달러였으나 2020년엔 8000만 달러가 되었다. 우버나 리프트 같은 회사들은 미국의 노동자들을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는 법안인 주민 발의안 22의 홍보에 2억달러를 썼다. 

 반면 사람들은 가난해지고 분열하고 분노하고 있다. 미국의 최저임금은 2021년 8.5달러 정도다. 노동생산성과 비슷하게 임금이 상승되었다면 현재 최저임금은 22달러가 적당하다. 미국에서 주거비와 기본생활비의 충당을 위해서는 최소 15달러 정도의 최저임금이 필요하다. 이 정도가 되면 전체 노동력의 21%인 3200만의 근로소득이 증가해 370만명의 빈곤 탈출이 가능해진다. 노동자가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고학력이 필요한데 미국의 학자금은 지난 30년간 169%증가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에 빠져들고 있다. 2010년 사람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3%만을 휴대폰 사용에 썼지만 지금은 무려 33%를 사용한다. 이런 인간의 사용시간은 그대로 기술 기업의 수익이 된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광고가 수익의 80%이며 메타는 98%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들여 보는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쓸모 없기 그지 없다. 사용자가 보기에 거북함을 느끼는 유튜브 영상은 70%나 조회수가 높아지며, 트위터에 도는 거짓 정보는 진실보다 6배나 빠르게 퍼지며 메타에서 도는 뉴스의 15%가 신뢰도가 없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 기업들은 이것들을 딱히 검열하지 않는다. 

 중산층의 붕괴는 젋은 세대에게 큰 타격을 주나 남여는 이것에 다르게 반응한다. 교육 측면에서 미국의 부모는 남아보다는 여아에 더 큰 기대를 한다. 남학생은 대개 낮은 성적으로 여학생보다 정학 가능성이 2배나 된다. 미 전역에서 남학생은 고등교육기관에 여학생의 2/3수준 정도만 등록되어 있다. 남성들의 낮은 학력은 향후 무능으로 이어져 그들의 경제력과 혼인, 출산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고립화하고 빈곤해지고 있다. 미국의 데이트 앱에선 남성과 여성의 신체조건과 나이, 직업, 경제적 능력에 따라 그들을 서열화하는데 지니계수로 이를 측정하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여성은 0.38인데 비해 남성은 무려 0.54에 달한다. 국가와 비교하면 남성의 수치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브라질의 그것을 상회한다. 남성의 빈곤정도가 여성보다 극심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사회에 현재 그리고 앞으로 큰 위협이 될 수 있는데 지난 2017-2019년 미국 내 총기 난사사건 인구통계를 살피면 범인의 92%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의 불우함을 반자동무기로 표출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에 남는다.

 미국은 세계 경제규모의 25%를 차지한다. 그들의 통화인 달러는 기축통화인데 국제통화 보유액에서 달러는 미국의 경제규모를 상회하는 59%에 달한다. 물론 결제 건수나 세계 국가들의 최대 교역국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쳤다. 미국의 국방력은 인도와 중국, 러시아의 국방비를 합친 것 보다 많이만 실제 지수인 국방구매력지수로 비교해보면 중국은 이미 미국의 2/3수준이다. 미국의 연구개발투자는 1960년 세계 69%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30%수준이다. 이처럼 미국은 객관적 지표상에서 중국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미국이 가장 강력했던 시점은 2차 대전 이후 10-20년 간으로 그 때는 매우 야만적이지만 역동적인 자본주의를 운영하면서도 그 밑바탕을 지지하는 배의 밸러스트 역할을 하는 강력한 중산층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당시 그들은 교회나, 로터리 클럽, 스카우트 등의 지역 공동체에 소속되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많았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기술 기업들이 제공하는 소셜미디어 등에 포획된 지금은 정치적으로 양극화하고 텍시트(텍사스+엑시트) 같은 용어와 국회의사당을 공격할 정도로 분열이 심각하다. 저자는 다시 사회적 제도를 강화하고 기술기업의 제재와 공공정책의 재수립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미국의 문제는 한국 사회와도 상당히 닮아있다. 얻을 시사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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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5-07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텍시트라는 말이 있군요.

오늘 처음 알고 기사를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저물어가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보고서가 아닐까 싶네요.

닷슈 2023-05-07 23:5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보고 이 용어를 처음 알았습니다. 가능성이 작아 크게 주목 받진 못하는 용어인 듯 합니다. 저물어 가는 미국에 대한 이야기지만 모국에 대한 많은 애착과 희망을 갖고 냉정하게 지적한 책이었습니다.

짜라투스트라 2023-05-08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닷슈 2023-05-08 13:3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