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리 - 자유와 진실을 향한 외침
추미애 지음 / 해피스토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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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대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이번 주말이면 사전투표를 실시하는데 다수의 전문가들은 의례적으로 높은 투표율을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 국민 투표선거는 크게 3가지로 대통령을 뽑는 대선과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기초지자체장과 광역단체장, 지역의원을 뽑는 지선이다. 그리고 투표율을 후자로 갈수록 낮아진다. 총선의 투표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20대가 50%대, 21대가 60%였고 이번엔 70%가 예상된다. 

 이렇게 높은 투표율의 전조는 이미 재외국민투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재외국민투표는 참여 자체가 매우 번거롭다. 사전에 신고를 해야하고, 투표일엔 머나먼 공관을 향해 이동을 해야한다. 그럼에도 그 투표율이 68%나 나왔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한국의 소식을 접하는 교민들의 분노가 투표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국민들을 아무래도 한국 언론보다는 외국 언론이 바라보는 한국에 대한 견해를 접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람들을 자극해 높은 투표율로 이어진 것이다.

 야당을 비롯하여 현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번 정권을 검찰독재정권으로 규정한다. 물론 독특하기도 하고 바람직해보이지도 않지만 검찰출신도 마땅히 정당한 절차에 의해 행정권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독재로 귀결되진 않을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규정을 받고 그것이 국민 상당수에게 설득력을 얻는 것은 그럴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언론자유의 하락, 야당과의 비협치, 국민과의 소통 부족, 일방적 정책 추진등이 현 정부가 보인 독재적 성향이다. 

 책 장하리는 문재인 정부 법무부 정관이었던 추미애가 쓴 소설이다. 저자가 법무부 장관 때, 윤석렬 검찰총장과 그 동조 세력들이 보인 행태에 대한 비판인데, 사실 관계의 명확한 검증과 소란에 대한 부담때문인지 당시 저자가 경험한 일은 거의 그대로 적시하면서도 관련자의 이름들을 보다 다른 이름으로 넣었다. 그 때문에 마치 다큐같은 글이 어색한 소설이 되어 버린 이유다.

 책의 주 내용은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자행된 고발사주 사건, 그리고 각종 아내와 장모의 각종 비리 사건에 대한 봐주기 행태, 법무부 장관의 지시와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과 항명 등이다. 무척이나 단편적으로 많은 사건이 다뤄져 좀 혼란스럽기도 한데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기억해보면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진다.

 저자는 검찰세력에 대한 비판외에도 당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도 많이 쏟아낸다.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여러 경로를 통해 검찰총장 인사에 대한 우려가 들어왔음에도 이를 간과한 점. 그리고 검찰총장이 여러 무리한 행태를 보임에도 그의 향후 행보와 야망에 대해 안이했던 점. 마지막으로 4차례 정도 그의 무리한 행동에 사임일 시킬만한 정황이 있었음에도 이를 실행하지 않은 점이었다.

 정권교체는 늘 지난 권력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다는 점에서 이번 정권은 지난 문재인 정권이 탄생시킨 정부는 다름없다. 물론 어쩔 수 없었던 세계적인 부동산 폭등과 보수편향적 언론도 큰 영향이 있었지만 검찰개혁의 사실상의 실패와, 공을 들였던 남북간의 항구적 평화관계의 도입등이 모두 좌초되었던 영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민들의 판단도 아쉽다. 개인적으로 지난 대선때 양 후보에게 치명타였던 고발사주와 대장동사건에서 사람들은 고발사주보다는 대장동사건에 훨씬 집중했으며 여론 역시 그랬다. 둘은 비슷한 정도로 치명적 사건이지만 사람들은 다소 멀게 느껴지는 정치적 부정보다는 나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부동산 비리를 당연히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실제로는 정치적 부정이 사회 전체에 더욱 악영향이 큼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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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4-04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뉴스에서 보았는데, 태국 사시는
분이 왕복 1,600KM 3박 4일 걸리는
길을 달려서 재외국민 투표를 하셨
다고 하더군요.

그보다 훨씬 수월하게 투표할 수 있
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그 분에게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Judgment Day !

닷슈 2024-04-04 21:03   좋아요 1 | URL
태국이 워낙 큰 나라니 그렇군요. 정말 부끄럽지 않게 꼭 투표해야겠습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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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와 이걸 보도하는 미디어가 생기면서 우린 남의 고통을 시공을 초월해 소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술이 더욱 발달하며 남의 고통을 더욱 실시간성을 띠게 되었고 이를 보도할 수 있는 것도 전통 미디어에서 일반 개인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손쉽게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남의 고통은 소위 매우 흔해졌다. 

 사실 고통의 중계는 이중성을 갖는다. 남의 고통을 촬영한다는 것은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며 직접적 도움을 주는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여러 개인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하여 이를 공유했다. 이들은 처음엔 주목을 받다가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에 의해 큰 비난을 받게 되었는데 손이 몹시 부족했던 현장에서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 전통 기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이 과정은 보통 면제를 받는다. 이는 저널리즘에 의해서인데 내가 그런 촬영을 하여 고통을 세상에 드러내고 알려서 그런 고통이 다시 일어나지 않거나 고통을 줄이거나 혹은 그 고통을 돕는 방향으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의도이다. 때문에 기자의 이런 고통 취재에 대해 세상과 사람들은 비난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기자와 언론은 항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얼마나 드러내고 얼마나 숨길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이는 항상 어려운 부분인데 사람들이 고통의 심각성과 공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그 아픔을 드러내야 하나 그것이 구경거리가 되지 않고 너무 많은 상처를 주지않기 위해서는 필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선은 최근 많이 무너지고 있다. 이는 20세가 말부터 뉴스가 디지털로 옮겨지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과거 언론은 저녁 종합뉴스, 아침종합뉴스, 신문은 조간과 석간이라는 마감시간대가 있었다. 기자는 이 시간도 매우 급박했지만 뭔가를 고민하고 검토하며 마감까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거의 실시간으로 방송되며 경쟁상대도 무한에 가까워졌다. 숙고의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은 뉴스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콘텐츠는 간결하게 압축되었는데 읽고 보기에 편리하고 전달하기 좋은 형태로 제작하는게 온라인에서 소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언론사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2023년 한국의 언론사는 무려 2만 3천개에 달한다. 무수한 기사가 생성되는 것인데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회수란게 늘어나야 하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헤드라인은 무척 자극적이고 거칠어지게 된다. 무한경쟁으로 언론은 황색언론과 힘있는 언론으로 양분되었다. 

 날씨는 매우 손쉽게 뉴스가 된다. 늘 일어나는 것이지만 날씨는 변화무쌍하며 상당히 많은 사람의 안전과 생명,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씨는 스펙터클의 좋은 재료다. 스펙터클을 위해서 날씨를 중개하는 기자는 유독 다른 때에 비해 유난을 떤다. 그들은 태풍이나 혹서, 혹한에 직접 노출되며 이런 기자의 몸을 도구로 재해 앞에 손 위험한 신체는 볼거리로 전락한다. 시청자는 안전한 거리에서 자연재해라는 스펙터클을 관람한다. 악천후는 그렇게 구경거리로 전이되며 재난 현장은 포토존으로 전락한다. 날씨는 지역 차별도 심각한데 인구가 많은 수도권의 날씨가 항상 중심이 되며 지역의 날씨는 인명피해가 좀 심각해져야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날씨는 자주 다뤄짐에도 일회적인데 이런 일회성에 주목하다보니 그 날씨자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기후 위기에 대한 뉴스의 주목도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날씨의 경우에서 알수 있듯 중앙뉴스와 지역 뉴스의 차이는 크다. 대부분의 방송은 서울에 중앙을 갖고 있으며 지방은 그들의 통제를 받는다. 서울의 보도국은 기수가 되어 전국에서 올라오는 지역 기사를 어떻게 선별하여 편집하고 배치할지 권한을 갖는다. 그렇다 보니 지역은 이상한 기사만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전국뉴스를 바라보면 지역은 흉흉한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거나, 흉악범이 등장하거나, 물난리나 불난리, 혹은 폭우, 폭설이 나야 기사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래서 뉴스를 보면 지역에선 실제로 그런 일이 인구가 많은 수도권보다 적게 일어남에도 마치 그런 일이 가득한 곳인마냥 묘사되거나 인식되기 쉽다. 

 그래서 지역은 왜곡된다. 지역은 기피 시설은 지역 이기주의로 무조건 반대만 하는 곳이 되며 지역의 정치나, 경제, 사회, 문호, 교육은 중앙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반면 범죄뉴스에서는 지역이 자주 다뤄지기에 사건의 지역성을 그 지역민과 연결, 평가하여 지역에 대한 혐오가 발생한다. 중앙뉴스에서 이렇게 지역이 변두리 취급되면 지역의 여론은 하나의 행위자로 역할하지 못하게 되고 중앙정치에서도 경시하게 된다.

 수도권 과밀화와 서울 집권화는 지역의 정보에 이렇게 무관심을 부추기고 정보와 여론의 불균형은 다시금 지역을 소외시키고 서울 집권화를 더욱 공고히 한다. 지역의 고립은 지방자치에 대한 감시 같은 외부 시선이 필요한 영역을 느슨하게 하여 지역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최근 많은 기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의견 자체를 소재로 삼고 인용한다.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의견이 기자 입장에서 매우 다루기 손쉽기 때문이다. 특정 관계자를 만난다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든 연락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사실 확인도 필요하고 익명성도 잘 보장해줘야한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애초에 자체적 추천 시스템을 갖춰져서 수많은 의견 중 대표성을 갖는게 자동적으로 드러나며 이들의 의견은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기에 균형이 있고, 누리꾼이란 이름하에 익명성도 자동 보장된다. 때문에 언론 기사에 이게 마치 무슨 공신력 있는 의견마저 다뤄지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온라인은 생각만큼 균질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의견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특히 온라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국민수가 5%미만인데 이들의 의견을 언론에 함부로 띄우는 것은 과잉대표의 결과를 낳는다. 

 책에는 지금 언론의 어려운 상황과 부조리가 자세히 드러나 있다. 언론에 대해 고민하는 기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이다. 그리고 언론이 이럴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게 그런 저질 언론을 적극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하에서 시민은 자신들의 정치적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스스로 뽑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정부하에서 시민들은 결국 자신들의 정치적 수준에 맞는 언론만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을 선택하고 소비한 것도 시민이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기자를 기레기라 비난하기 이전에 자신의 언론 수준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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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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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도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77명이다. 이중 배달 노동자가 39명, 건설기계 노동자는 14명, 화물차주 7명, 택배기사 7명이었다. 그리고 2022년 한국 산재신청 기업 순위로는 배달의 민족 라이더가 속한 우아한 청년들이 1위, 2위는 쿠팡, 7위는 쿠팡 물류센터, 9위가 쿠팡 이츠다. 이런 수치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사업장이 주로 전통적 중공업 사업장에서 플랫폼 노동자로 이동했음을 잘 드러낸다. 

 코로나 19이후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게 되며 배달 플랫폼은 갑작스레 크게 다가왔다. 불과 5-6년전만해도 배달료는 없었지만 어느새 정착되었고, 사람들이 음식을 주문할 때 고려하는 중요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플랫폼을 통한 배달 노동자는 기존에 없던 직업에서 어느 새 택배기사처럼 당연한 직종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배달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네 중국집을 중심으로 일부 업종이었지만 배달은 있었다. 다만 그 땐 배달이 무료였고, 배달기사는 해당 음식점에서 직접 고용했다. 그러다 보니 배달을 하는 집이 많지 않았다. 배달료를 임금으로 모두 부담하는게 아무래도 컸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배달노동자란 개념도 사고도 많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히 잘 아는 동네에서 단거리 배달만 했고, 한 음식점에서만 근무하니 무리하게 운전하는 일도 없었다. 배달료는 음식값에 적절히 배분했기에 소비자들도 배달료는 서비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배달은 외주화되었다. 음식점마다 직접 배달기사를 고용하는 것은 사실 부담이 크다. 그래서 여러 음식점에서 공동으로 고용하는 형태가 되었고, 그것도 여러가지를 부담해야 하니 아예 외주화한게 동네배달 대행사다. 이곳은 음식점에 들어온 음식 주문 배달을 대신해주는 업체로 여기서 일하는 라이더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다. 그렇다보니 일을 가르쳐주는 사수가 없고, 최저시급도 보장이 안되며 배달건당 수수료를 받는 체계다. 

 이렇게 배달기업, 즉 플랫폼은 이익만 누릴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도로를 이용하지만 도로의 관리는 국가가 한다. 배달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 처리도 공공이 부담하고, 배달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처리는 배달 노동자 스스로 처리한다. 그리고 이 교통사고의 피해자는 일반 시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2022년 국토교통부 조사에 의하면 배달대행 플랫폼은 51개, 동네 배달 대행사는 7749개에 달한다. 배달노동자가 보내는 시간은 다음과 같다. 우선 콜을 잡기 위한 주문 대기 시간, 그리고 콜을 받은 후 음식점으로 이동하는 시간, 음식완성까지의 대기 시간, 손님 집까지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배달 시 도착시간, 그리고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손님에게 배달하는 시간이다. 이 과정은 많은 변수가 자리하는데 라이더는 콜을 잡으려고 핸드폰을 보다 사고가 나고, 음식을 빠르게 배달하려다 사고가 나고, 음식점 사장이 라이더에게 배송을 재촉하다 사고가 난다. 실제 재촉을 당한 라이더의 50.3%가 사고 경험이 있다.

 배송을 재촉하는 가장 큰 주체는 음식점 사장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용주가 아니기에 배송 재촉의 권한도 없다. 그리고 배송지연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 책임은 라이더가 진다. 그들은 배송이 늦으면 음식값을 자신이 감당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배송이 늦어 취소된 음식을 스스로 먹어본 기억을 대부분 갖고 있다. 

 과거 플랫폼은 라이더들에게 묶은 배송을 시켰다. 하지만 소비자의 불만이 컸다. 음식 배송이 늦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랫폼은 최근 단건 배송을 시작했다. 단건 배송으로 손님을 빠르게 음식을 받고, 배달거리는 늘어났다. 단건 배송을 위해선 라이더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플랫폼은 라이더를 무한 모집하고 있고, 소개를 통해 들어온 라이더는 소개해준 사람 둘 다에게 보너스를 지급한다. 

 수많은 라이더는 AI가 관리한다. AI 알고리즘은 배달료, 배차, 배달구역, 미션 및 프로모션 평점, 패널티의 6가지를 관리한다. AI는 배차를 하는데 라이더는 이를 수락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부하면 평점이 낮아지고, 언제 다시 배차가 될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있다. AI는 내비거리 기준으로 배달료를 산정하고, 주문량, 라이더 숫자, 날씨를 고려한다. 그러다보니 같은 일을 해도 상황에 따라 배달료는 유동적이다. 그리고 플랫폼은 배달료를 프로모션을 줄이는 방식으로 삭각한다. 하지만 그런 삭감에도 음식점주와 소비자가 부담하는 배달료는 그대로이기에 이를 알아차릴 수 없다. 

 라이더입장에선 등급의 유지가 수입차원에서 중요하다. 등급은 콜의 수락율, 신청한 시간 만큼 일을 했는지, 제 시간 접속 여부, 수행한 주문 건수 등으로 평가된다. AI의 일감 배차기준은 플랫폼이 공개하진 않지만 라이더와 음식점 사이의 거리, 라이더와 음식점 까지 가는 시간과 조리시간, 라이더의 평소 평점, 입직일, 배달주문의 긴급성이 고려되는 걸로 추정된다. 

 AI배차를 합리적이지 않은 편인데 이에 대해 라이더들의 불만이 큰 편이다. 책에서 저자는 한 실험을 했다. 한 그룹은 AI배차의 무조건 수용, 다른 그룹은 AI배차를 자율적으로 수락하고, 마지막 그룹은 교통신호를 준수했다. AI배차를 무조건 수용하자 라이더는 주행거리가 늘어났고, 시간당 배달건수는 줄었으며 수익은 줄고 노동은 늘었다. 자율 수락하자 효율성, 수익, 노동은 감소했고, 주행거리도 줄었다. 교통을 무조건 준수하자 한건에 30분이 소요되었고, 소득이 줄었다. 즉, AI배차는 애초에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것, 그리고 라이더의 소득을 고려하며 설계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즉, AI알고리즘은 교통법규의 준수와 라이더의 안전, 그리고 소득엔 관심이 없다. 플랫폼의 이득을 최대화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라이더의 최저 시급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 원동기 면허의 분리실행, 업장에서의 안전교육의 철저한 실시, 사업자로서 플랫폼이 노동자의 안전용구를 보장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우리는 배달을 시킬 뿐 이미 80만으로 추정되는 배달노동자에 무관심하다. 심지어 능력주의에 빠져 이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이미 주문을 한 손님이 자신이 주소를 잘못 기재했음에도 배달노동자를 탓하거나 일부 음식점주는 이들의 화장실 사용을 불허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이런 태도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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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닷슈 2024-01-01 10:06   좋아요 0 | URL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일본이 온다 - 일본의 부상, 한국 경제의 위기
김현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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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외 팽창은 3번 있었다. 첫 번째는 1592년 임진왜란, 두 번째는 대륙침략과 태평양 전쟁, 세 번째는 2012년의 팽창으로 인도 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시도다. 이 세 번째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국의 중국 견제와 합류하여 세계적 흐름을 타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시들한 일본엠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온다'라는 책 제목이 걸린 것은 바로 이 흐름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 한국이 보기에 소위 넘사벽 강국이었다. 일본은 1968년 서독을 추월해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 타이틀을 2010년 중국에 넘겨주기 전까지 무려 40여년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오일쇼크 이후 미국 경제가 주춤한 사이 에너지 절약형 제품과 가볍고 작고 얇고 짧은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1980년이 되자 심지어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미국을 추월했다. 1989년 세계 20대 기업에서 일본 기업은 무려 14개일 정도였으며 이 증대된 부로 미국의 핵심자산을 대거 구입하기도 했다. 

 이랬던 일본은 이후 30년간 장기침체에 빠져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다. 4번의 충격이 있었다. 우선 1985년 플라자 합의다. 달러당 240엔이던 환율은 120엔으로 초강세전환하게 된 합의다. 대미수출이 큰 타격을 입자 일본 정부는 기준금리를 내리고 내수를 진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이런 고환율에도 호조를 보이자 국내에 엄청난 통화가 돌게 되었다. 이에 부동산과 주가가 폭등했는데 버블이 일어나 붕괴하게 된다. 이때 자산들은 1/3에서 1/4까지 떨어졌는데 투자한 개인과 기업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다음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다. 버블 붕괴 후 근근히 버티던 일본 경제는 이로 인해 완전불황에 빠지게 된다. 한계 기업이 도산하고,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도 부실화했다. 경제와 금융이 엮인 복합 불황으로 실업률이 5%에 달했다. 이를 제 1취업 빙하기라 한다. 15-64세의 생산인구도 처음으로 줄기시작했고 본격적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지게 된다. 수요가 약해지니 기업은 가격을 내렸고, 가격이 내려가니 소비자는 더 내려갈 기대감으로 구매를 미룬다. 고이즈미 총리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로 고용을 유연화하여 위기를 탈출하려 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일본사회에 처음으로 양극화란 멍애를 낳게 된다.

 세 번째는 2008금융위기다. 일본은 크게 충격을 받아 2009년 -5.4%성장하고 실업률도 무려 5.5%달한다. 제2취업 빙하기였다. 엔화강세도 겹쳐 수출도 부진했다. 이 충격으로 2009년 처음으로 정권이 야권으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환경, 의료, 복지를 중시했다. 내수는 회복되었지만 수출기업이 부진해 비판받았고, 결정적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붕괴한다. 2012년 다시 집권한 아베는 3개의 화살 정책을 제시하며 등장했다. 이는 과감한 금융완화, 적는 재정, 감세와 규제 완화다. 이를 통해 주식과 부동산이 상승했고, 기업실적이 좋아지고 실업률이 내려갔다. 

 네 번째는 코로나 팬데믹이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일본 재흥의 상징으로 여겨 여기에 너무 집착한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대비가 너무 소홀했고 이전 아시아를 덮친 감염병의 여파도 적었었기에 대응 메뉴얼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병이 퍼지자 외국인의 방일을 전면 금지하고 가게 영업을 제한했으나 2020년 무려 -7.8%역성장을 하게 된다. 

 일본의 이 네 쇼크는 결국 30년간 겨우 0.8%성장이라는 제자리 걸음으로 귀결되었다. 세계 주요선진국들은 성장한계에 도달하면 대개 연간 2% 정도의 성장을 이론상 하게되고 실제로 그러했는데 일본은 상당히 예외적 저성장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 

 일본이 이렇게 대처를 못한데 대해선 우선 대미굴종의 자세가 꼽힌다. 사실 플라자 합의는 일본 입장에서 상당한 주권침해였지만 일본 지도층은 의외로 이를 쉽게 받아들였다. 2차대전 이후 형성된 일본 지도층의 대미굴종 자세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쟁당시 미축귀영이란 용어로 미국에 대한 증오감을 국민에 심었지만 패전과 동시에 친미주의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 우산하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켰기에 이런 태도가 만성화하였다. 또한 이들은 지역구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기득권이 영원히 유지된다.

 또 다른 원인은 무책임의 구조다. 일본 정치권은 진정한 책임을 지기 보다는 여론이 악화하면 수상자리를 놓고 자신을 지지하는 다른 이를 내세워 막후 정치를 펼친다. 이런 식이다보니 일본의 불황기에 수상교체기는 무척이나 빠른 편이다. 

 한국은 전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내 선진국에 진입했다. 한국은 그 과정에서 1950년의 농지개혁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초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얻어낸 일본의 자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트남 전 참전으로 미국에서 얻어낸 돈의 역할이 상당한 작용을 했다.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였는데 이것이 큰 작용을 했다. 한국 기업은 항상 좁은 내수 시장으로 힌해 해외시장진출과 영업, 해외 시장 인수합병을 염두에 둔다. 그리고 한국은 자국 내에서도 경쟁사를 강하게 인식하고 경쟁하며, 단기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한국은 매출 점유율 확대를 늘 추구하며 가격경쟁력을 위해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력을 한다. 한국은 또한 트랜드를 중시하고 디자인과 마케팅에 공을 들인다. 이런 전략은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래서 한국기업의 황제경영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경영자가 전권을 휘두르기에 빠르고 신속한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내수시장에 관심이 많고 장인정신을 중시하며, 종업원 경영체제다. 그러니 내수시장에 관심이 많고, 서로 간 협조지향적이며 안정적이고 장기적 전략을 선호한다. 그리고 인재육성을 중시하고 기술과 품질 경쟁을 한다. 이는 경제가 안정적이고 기술혁신도 크게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선 강점이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시기를 놓친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에서 일본이 실패한 이유다. 

 일본에게 2010년은 치욕의 한 해다. 세계 2위를 중국에 내준데 이어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과의 충돌로 인한 외교 전쟁에서 희토류 등의 압박으로 인해 중국에 사실상 굴복하게 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 한국에선 이명박이 갑작스레 독도에 방문하게 된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당한 이 충격으로 강한 반중 반한 정서가 생겨난다. 일본정치권은 이를 적극이용했고 이로 이냏 아베가 다시 집권하게 된다. 

 중국을 강하게 의식한 일본은 아베가 쿼드와 인도 태평양전략을 구사하여 중국을 봉쇄하려 했고 미국의 트럼프가 이후 이것에 호응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여기에 바이든 정권도 힘을 싣고 있는데 한국의 보수 정권이 여기에 너무 쉽게 호응한 것이 문제다. 

 미중패권 전쟁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첫째는 디커플링 전략으로 양자가 직접 맞붙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10년간 GDP가 3% 중국은 4%가 감소하게 된다. 다른 전략은 우회적 대결로 미국과 서방자유진영이 연합해 중과 대결하는 구도다. 이 경우 미국은 1%감소하는 한편 중국은 무려 8%역성장을 하게 된다. 한국은 둘다 좋지 못하며 5%정도 역성장을 하게 된다. 유럽연합은 3% 일본은 2%역성장인데 비해 한국은 유독 타격이 크다. 이는 우리가 내수가 작은 통상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쉽게 블록화되지 않고 꾸준히 대결구도에서도 중과 교역하면 오히려 1%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호한 전략적 입지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중과 미일사이에서 모호한 위치를 고수하면서도 다른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인도와 아세안 시장이다. 양자모두 연간 5-6%의 고도 성장 지역이다. 특히, 아세안은 건설업도 활발하고 한류가 활발해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다. 한국인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으로 이런 것을 추구하려 했으나 역시 보수정권이 폐기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너무나도 쉽게 얻은 것도 없이 미국, 특히 일본이 원하는 구도에 한국이 편입된 것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표한다. 사실 역사상 한국은 일본의 진출에 대해 희생자의 입장이었고 한번도 동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3번째 흐름에 얻는 것도 없이 너무나도 쉽게 동조한 것이다. 그 결과는 대규모 무역적자다. 뉴스에 의하면 30년래 최대의 무역적자가 올해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한다. 외교가 경제이고 안보가 되는 지금 시점에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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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기념하라 - 카체트에서 남영동까지, 독일 국가폭력 현장 답사기 보리 인문학 2
김성환 지음 / 보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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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국가엔 악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그 국가에는 국가가 악을 자행한 시간과 장소, 사람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면 역사가 되어버리고 악을 직접 지시하고 실행한 사람은 무책임하게 죽어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장소만은 어떻게든 남는다. 그 건물이 온전하던 아니든 적어도 터는 남는다. 일각에선 이런 장소를 그대로 온존하여 악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그 끔찍한 기억을 지워내고 싶어한다. 지워내고 싶은 자는 악에 가세했거나 옹호했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자, 혹은 그 일을 당해서 트라우마를 지우고 싶은 피해자, 혹은 혐오를 보기 싫어하는 일반의 감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감하게 악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기념은 아니다. 기억에 가까운데 그런 장소를 지칭하는 한국어가 마땅히 없고 기념관 밖에 없으니 이런 용어를 책전체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악이 많이 자행된 국가다. 굴곡진 역사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 세력과 일반 한국인에게 일본인과 친일파가 자행한 악, 분단 후 전쟁 전 혼란기에 여수, 순천, 제주에서 행해진 악, 한국전쟁 중 양 세력에 의해 행해진 악,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정권기에 행해진 악들이 그것이다. 이 악은 당시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한국은 악이 일어난 장소를 온존하기 보다는 없애려는 쪽에 가깝다. 대표적인 것이 김영상 정권때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였다. 당시에도 논란이 조금은 있었지만 결국 대다수 여론은 그것을 없애는 것 선택했다. 저자는 이것을 온존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저자에게 거의 동의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좀 다르다. 악의 장소는 온존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맞지만 총독부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과 광화문을 너무나도 철저히 가리고 파괴했기에 그냥 두기엔 좀 그랬다. 부수기 보단 어려워도 인근으로 이전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실 우리에게 잘 보존되어 남아 있는 악의 장소는 많지 않다. 저자는 위의 열거된 악이 자행된 시기 중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주로 주목한다. 당시 공포의 장소는 남산 중앙정보부 6국, 서빙고의 보안사 분실. 남영동의 대공분실이다. 이중 위 두 개는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은 남영동 대공분실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곳에 주목하고, 책에서 그 온존 방향을 주장한다. 

 그리고 악이 엄청 자행되었고 그랬음에도 이를 잘 보존하고 기억하며 교육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주목한다. 독일은 2차대전 중 반나치체제인사,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유대인, 집시 등을 격리 수용하고 절멸시킨 수용소와 이를 자행한 국가폭력기구들이 많이 있었다. 저자는 이런 독일을 집적 방문해 살피고, 남영동 개발의 해법을 찾는다.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로 대개 독일과 일본을 지목한다. 그들은 엄청난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후의 행보는 우리가 알듯 사뭇 다르다. 양국다 대표 지도자가 공식석상에서 피해국에 사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횟수와 진정성에서 독일이 앞선다. 또한 일본은 사죄의 발언을 언제했나 무섭게 자국내 정치인이 그를 뒤짚는 망언을 일삼는다. 하지만 독일은 그런 면에서 일관된다. 또한 자신들이 행한 악의 장소를 철저히 인정하고 보존하는 점에서도 다르다. 일본은 하시마섬을 국제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조건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 기록하기로 하였는데 이런 국제상에서의 약속마저 지키지 않는 국가다. 

 양국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된 이유는 뭘까. 혹자는 냉전 체제를 말하지만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한다. 미국은 2차대전의 원흉인 독일과 일본의 전쟁 범죄자를 철저히 엄단하려 하였다. 하지만 발빠른 소련의 움직임이 장애였다. 소련은 유럽에서의 점령지를 빠르게 공산화하였고, 아시아엔선 북한과 중국이 공산화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냉전의 경계선이 있던 침략원흉국가를 빠르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 국가의 재건을 위해선 실무를 행할 공무원과 기업인이 필수였고, 그래서 전쟁에 가담한 이들 상당수가 이렇다할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우린 일본만 그렇다 생각하는데 사실 독일도 그렇게 되었다. 

 양국의 행보가 갈리는 것이 이후다. 저자는 그 차이로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꼽는다. 독일은 나치청산에 사실상 실패한 후, 거의 20년을 그대로 간다. 나치청산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바로 68혁명 세대다. 이들은 전쟁에 무책임하게 동조한 아버지 세대를 비방하고, 나치 청산 문제를 20여년만에 독일사회 수면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독일의 과거 청산은 크게 5단계로 나뉜다. 우선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68혁명, 1980년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TV방송을 계기로 일어난 반성 운동, 1980년대 역사 수정주의 논쟁, 1990년 통일 이후 동독 과거사 청산 논의다. 

 이처럼 독일의 과거사 청산운동은 2차대전 종전과 같이 완성된 것이 아니고 수십년 간 독일 시민사회의 노력과 그에 호응한 정치권의 반응으로 인해 조금씩 이뤄졌다. 책을 보다보면 기념관이 1980년대나 90년대 지어진 것도 있는데 그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또한 독일 역시 한국처럼 지방마다 정치색이 보수, 진보성향인 곳이 있기에 지역마다의 접근과 시기도 각각 달랐다. 이런 독일의 모습을 보면 결국 일본이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를 시민사회의 미약한 힘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반면교사로 한국 역시 시민사회의 힘이 미약하다면 우리의 악을 인정하고 온존하기 어려워 지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나치 수용소의 역사와 유대인 절멸정책

독일은 1차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생겨난다. 전쟁의 책임으로 황제는 퇴위하고 공화국이 들어선 것이다. 당시 사회주의 세력와 우파세력의 갈등이 극심했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극단적 입장을 배제하고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정치체제를 설립했다. 그래서 공화국을 유일 체제로 삼고, 의회의 권한을 세웠고, 비례대표제를 운영했으며 복지제도와 사회보장제를 도입했다. 또한 평소엔 의회우위의 정부를 운영하면서도 당시 시국이 어지러웠기에 비상시국엔 대통령에 비상대권을 갖춰 혼란을 수습케 하였다. 

 이처럼 바이마르 공화국은 좋은 정치를 시도하였지만 대내외 조건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했기에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또한 패전의 책임으로 상당 부분의 영토도 상실하였다. 여기에 1920년대 세계 경제공황이 불어닥치며 민심이 급격히 이반되었다. 이 때 나치당이 등장한다. 이들은 베르사유조약에 서명한 바이마르 공화국을 매도하고, 사회주의 세력이 1차대전에 찬성한 것을 공격하여 이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결국 1930년 내각은 붕괴하고 대통령 비상대권체제가 들어선다. 당시 대통령인 힌덴부르크는 다수당인 나치당의 당수 히틀러를 총리로 지명한다. 히틀러는 이를 수용하자마자 대통령을 가두고 공산당, 사민의원을 체포한다. 그는 입법권을 히틀러 행정부에 위임하는 악법도 통과시킨다.

 그의 이런 과감하고 위험한 행보에 긴장을 느끼는 독일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더 시국이 그를 도왔다. 국회방화사건이 일어난 것인데 사실 일탈 개인의 소행이었지만 히틀러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사회주의자 유대인의 일로 꾸민 것이다. 대대적 사정이 이뤄졌다. 전국에 걸쳐 공산당직자, 공산, 사민의원을 체포했고 그 수가 무려 8천에 달했다. 히틀러는 경찰력 뿐만 아니라 개인 친위대인 SA를 활용하였고 이들은 훗날 그 악명높은 SS가 된다. 

 한편 수용인원이 많아지자 전국의 유치장이 부족해진다. 나치당은 유대인이 운영하던 공장을 무단 압류하여 수용소로 개조하였는데 이것이 훗날 독일 전역의 유대인 절멸 수용소가 된다. 이 수용소는 나치 초기 공산당, 사회주의자를 가두는 용도로 쓰였고, 격리와 노동력 착취가 주 목적이었다. 나치는 수감자를 식별하려고 여러 색의 역삼각형을 썼는데 유대인은 유독 노랑색의 정삼각형을 썼다. 그러다보니 유대인이면서 사회주의자면은 별 모양의 식별표를 갖게 되었는데 이게 악명 높은 다윗의 별 수감자 식별표식이 된다. 나중엔 거의 죽음을 의미하는 모양처럼 여겨지게 된다. 당시 핍박받고 처형된 의원수는 무려 96명이었다. 민주주의의 완전한 파괴였다.

 히틀러는 수용소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대규모 시설로 격상하고자 하였다. 그런 임무를 맡긴 자가 히믈러였다. 히믈러는 또 아이케를 등용한다. 아이케는 전국의 수용소를 총 관리하였는데 그는 작센 수용소를 먼저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델로 삼았기에 이후 나치의 수용소는 하나같이 비슷한 양태를 띄게 된다. 

 나치는 이후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1941년 이후 유대인 절멸 정책으로 전환하였을 때 존더 코만도를 유대인중 선발했다. 이들은 건장한 자들로 하는 일이 동료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인도하고 죽은 뒤 시신을 소각장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임기는 고작 6개월로 이후엔 그들도 같은 운명이었다. 잔혹하고 슬프게도 이들은 그 6개월 간의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위해 이일을 도맡았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동유럽에서 가장 잘 자행되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의도주의와 기능주의가 독일 학계에서 충돌했다. 의도주의는 히틀러의 중앙정부 지휘하에 학살이 일사분란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기능주의는 기존의 반 유대주의와 더불어 학살이 각 지방에서도 나치의 직접적 명령없이도 자율적으로 집행되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학계는 양자를 절충하는 것으로 나치의 직접 시행과 이에 자극받고 호응하는 지방조직의 자율적 자행이 같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한다. 

 동유럽에서 유대인 학살이 잘 행해진 것은 당시 동유럽 사람들의 반감 때문이었다. 이들은 전쟁 이전 소련의 강제병합과 침공으로 반소주의 반공주의가 강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전 유럽에 퍼진 반 유대주의도 있었다. 나치는 해방군처럼 여겨졌고 이들이 선전하는 공산주의자가 곧 유대인, 유대인이 곧 공산주의자라는 슬로건은 아주 잘 먹혔다. 동유럽에서 유대인을 살해하는 일반적 방법은 이들을 숲으로 끌고가 땅을 파게한 후 일렬로 무릎끓려 총살 한 후 다시 묻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손이 많이 가자 나중엔 이동한다고 버스를 타게 한 후, 밀폐시켜 배기가스를 다시 집어넣어 일산화탄소로 죽게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후 청산가스가 발명되자 버스안에서 가스를 사용하게 되었고 수용소에서도 가스를 이용한 집단 학살이 일반화하였다. 유대인들은 씻는 다는 목적으로 샤워실에 들어섰는데 이후 문이 밀폐되고 가스가 새어나왔다. 가스는 무거워 아래부터 찼다. 그러다보니 가스실에선 죽음의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가장 약한 아이와 노인들이 위로 오르지 못하고 깔려 가스를 마시고 죽었다. 가스를 피해 그 시신 위로 올라간 여성이 죽었고, 마지막은 그 시신 더미로 올라간 건장한 젊은 남성차례였다. 이렇게 죽음을 맡게 되니 가스실에는 사람이 켜켜이 피라미드처럼 쌓인 죽음의 피라미드가 생겨나게 되었다. 정말 끔찍한 정면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기념해야 하나

저자는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며 기념관에는 조성에 장소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건이 일어난 곳이 무엇보다 기념관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물도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픔을 아픔 그대로 드러내어 타인이 그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치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새로 짓고, 치장하는 것은 공감을 약화시킨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엔 이런 대표적인 장소가 있는데 바로 4.19기념장소다. 원래 4.19이후 정부는 기념장소를 서울시청앞과 남산에 조성하려 하였다. 그곳이 대표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이런 민주적 혁명을 부정하기도 옹호하기도 어려웠던 박정희 정부는 장소를 아무 상관없는 수유리로 옮겨버린다. 여기에 조형물도 교체해버렸는데 김경승이 만든 애도상과 수호자상은 남여로 매우 비한국적인 우람한 체격의 사람들이 조각되었다. 이런 장소성과 당대 한국인과 아무 상관이 없는 모습은 기념관을 피상적이고 공감이 어려운 장소로 만들어버렸다.

 서대문 형무소도 마찬가지다. 서대문 형무소는 악이 역사적으로 자행된 곳으로 일제와 독재정권이 모두 사용했다. 하지만 싹 새로 만들어버렸고 시기도 특정지어버렸다. 지금의 서대문 형무소는 주로 일제의 악을 드러내는데 사용된다. 또한 새로 제작한 고문 도구 및 마네킹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성을 훼손하였다. 

 저자는 남영동에서만큼은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남영동은 보존되어야 하고 새로 신축할 필요가 있다면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외양이 색달라 본래 공포건물의 아우라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기념관은 피해자를 기억하나 그 범죄를 기획하고 조직, 실행한 사람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정치, 상황도 잘 설명하고 드러내야 한다. 한국은 이런 범죄에 대해 피해자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해자와 그 정치상황에 대한 기억은 필수적이다. 즉, 현장과 피해 기록을 잘 보존하고 국가폭력이 자행된 정치, 사회적 맥락을 기념관을 잘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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