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문학동네 청소년 51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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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티비에선 올림픽 개막식이 진행중이다. 입장객도 없고 일년이라는 고정비용을 더 치룬 탓인지 역대급으로 저렴해보이는 개막식이다. 물론 뒤는 어떨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비싸 보였던 개막식은 베이징 올림픽이었는데 둘을 비교해보면 정말 극적일 것 같다. 음악감독이 문제를 일으켜서인지 선수단 입장식에 일본 게임음악을 사용했다. 그리스가 입장할때 게임 드래곤퀘스트의 메인테마를 사용했는데 그 게임을 어린 시절 즐겨한 사람으로써 느낌이 색달랐다. 마지막에도 틀지 않을까 했는데 주최국 일본이 입장하게 마지막으로 그 음악을 다시 썼다. 일본인에게 드래곤퀘스트란 게임이 의미하는 바가 이런듯 하다. 

 오늘 읽은 책은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이란 책으로 거주하는 지역 올해의 권장도서다. 아동문학으로 아동학대를 다룬다. 중2라는 질풍노도시기에 학생들의 이야기엔데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흥미있게 풀어냈다. 

 나오는 중심 아이들은 4명이다. 형수와 우영, 은재, 타노스다. 형수와 우영은 남자아이로 서로 친하다. 우영은 좀 찌질하단말을 주변 아이들로부터 듣고 사는 아이고 아이에게 모든 걸 투사한 엄마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 형수는 그런 우영의 친한 친구로 아버지가 여자중학축구부감독이다. 7살짜리 동생이 있는데 이 녀석의 성숙함과 바른 말이 예사롭지 않아 상당히 성가신 상태다. 타노스는 형수, 우영, 은재의 반 반장이다. 워낙 무서워서 별명이 무려 그 '타노스'다. 어벤져스에서 단신으로 대부분의 어벤져스를 묵사발낸 그 타노스말이다.

 형수와 우영은 pc방을 다니는데 같은 반 아이들이 둘을 너무 무시하고 자꾸 천원 이천원씩 빌리고 갚지도 않는 일이 일어나 일부러 후진 pc방을 방문한다. 거기서 같은 반 은재를 만나고 뒤를 밟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은재가 한 오래된 아파트의 복도 창문 방범창을 뜯고 침입하는걸 발견한다. 둘은 도둑질이라 생각하고 다시 은재가 아파트를 침투하는걸 촬영하지만 그 집은 은재의 집이었다. 은재는 매일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피해 창문을 너나들었던 것.

 그리고 형수는 장난으로 우영에게 타노스에게 고백을 하게 한다. 그런데 웬걸 타노스가 이걸 받는다. 당황한 우영은 같이 다니는 학원에서 이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거부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공주라고 까지 칭하며 타노스에게 꽃을 바치며 재고백한다. 그런데 타노스는 이것 마져도 받는다. 아무래도 타노스는 찌질한 우영을 좋아한듯 하다. 그러게 둘은 본의 아니게 사귀게 되어 정말 서로 좋아하게 된다. 

 은재는 우연히 축구 감독인 형수 아버지의 눈에 띈다. 마침 선수부족에 시달리던 형수 아버지는 은재의 빠른 발에 감탄해 축구를 권한다. 하지만 은재는 고민한다.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께 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육상을 하겠다고 했다 죽지 않을 만큼 맞은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처럼 은재의 인생도 꺾어버리고 싶어한다. 

 책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은재는 용기를 내어 경찰서를 찾아가고 축구를 계속하게 된다. 위기를 맞은 우영과 타노스의 교제도 계속된다. 서로의 마음은 더 강해진다. 쉽게 볼 수 있는 아동도서로 아이들이 볼만하다. 잊을 뻔 했는데 책 제목의 행운은 책에서 화자 역할을 하는 행운을 지칭한다. 이 행운은 아이들을 바람으로 살짝 민다던게 혹은 고민의 순간에 자연의 힘을 이용해 바람이나 비등으로 특정인을 보게하여 운명의 방향을 조금 더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행운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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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세계 지구종말 시리즈 1
제임스 G. 발라드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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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버트 케런즈는 40세 정도 되었다. 2154년의 지구에 살고 있는데 지구는 사실상 멸망했다. 그런데도 그는 최고급 리즈호텔의 스위트룸에 살고 있다. 모든게 최신식이고 쾌적하다. 과거 이름 모를 부자를 위해 준비된 곳이다. 다만 그 호텔엔 그 혼자 살고 있고, 이 호텔 역시 반쯤 침수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구는 물에 잠겼다. 이유 모를 태양의 변덕에 강한 태양풍이 몰려들었고 이게 지구 자기장을 망가뜨려 태양복사에너지가 그대로 밀려들었다. 기온이 극적으로 상승해 극지방의 기온은 무려 90도 가까이 치솟았다. 자기장이 망가져 방사능도 밀려들었다. 높은 기온에 방사능의 영향으로 지구 동식물들은 극적으로 빠르게 진화한다. 커져버린 곤충들이 들끓었고 포유류는 거의 절멸했으며 속씨식물들도 거의 사라지고 거대 양치식물이 지구를 뒤덮기 시작했다. 파충류는 전성기를 다시 맞았다. 

 기온이 높아지고 열대를 중심으로 점차 폭풍우가 지구 각지를 덮쳤다. 극 지방들의 얼음은 모조리 녹아 해수면을 수미터 높였는데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이 주로 해안지역인 만큼 많은 중심도시들이 수장되어 석호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무너진 얼음들과 함께 동토층의 토사들도 바라도 밀려들어 해수면 상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육지의 표면적은 늘어버렸다. 낮게 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바다는 오히려 지구 전체의 2/3에서 1/2정도로 감소한다.

 사람이 살기 적합한 지역은 극지방만으로 한정되었다. 러시아 북부의 그린란드, 남극대륙 정도다. 서식지도 줄어들었지만 방사능때문인지 기후변화 때문인지 동물들의 생식력이 크게 감소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부 열쌍중 겨우 한쌍이 간신히 한명 정도의 아기만 갖는게 허락되었다. 세계인구는 500만으로 감소했다. 이게 케런즈가 살고 있는 세계고, 작가가 묘사한 물에 잠긴 세계다.

 케런즈가 있는 지역은 한낮에 무려 60도까지 올라가고 습하며, 한방만 물려도 타격이 큰 거대 말라리아 모기와 이구아나떼들, 악어떼들로 가득차있다. 그런데 여기가 런던이다. 북위 50정도의 지역인데 이 지경이다. 런던엔 당연히 사람이 살고 있지 않고 케런즈를 비롯한 일련의 군인무리들이 생물연구를 위해 파견나왔다. 이들은 거의 2년가까이 체류하다 열대폭풍우의 곧 이지역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 철수는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케런즈는 지옥같은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파견중인 군인 대부분이 중생대 지구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바드킨 박사는 이걸 우리 인류가 오래도록 진화해온 생물의 과거 기억이 재현되는 걸로 판단한다. 사람의 유전자에 생물로 진화해온 과정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죽음을 반드시 보장하는 남쪽으로의 탈영병도 등장한다.

 그리고 케런즈는 연인 달과 바드킨 박사와 런던에 남는다. 이후 스트랭맨이랑 이상한 녀석이 일당과 함께 등장한다. 스트랭맨은 점차 부하들과 함께 광기에 휩싸이고 석호의 한편을 막고 펌프를 이용해 수미터 물에 잠겨 있던 런던을 다시 육지로 만들어낸다. 물속에 잠겨 신비함을 불러오던 런던에 막상 물이 빠지니 하수구이자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 스트랭맨 일당과 케런즈의 갈등, 그리고 케런즈가 이 일련의 일이 해결됨에도 런던을 다시 수장시키고 남쪽으로 향하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며 마무리된다.

 소설은 무척 흡입력이 있다. 나온지 오래되었고 세계 종말 3부작의 첫 작이다. 작가인 밸러드는 일단 첫 작에선 세계를 물에 빠뜨리고 다음 작에선 불에 태우며 마지막 작에선 태양풍을 굽는다고 한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기후변화가 심상치 않아 더욱 경각심을 갖으며 읽었다. 유전자에 각인된 생멸의 기억 이란 개념도 재밌다. 더운 여름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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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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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2000만 정도의 아메리카 토착민, 그리고 1000만 흑인노예들의 피 위에 세워진 나라다. 다행히 흑인들은 상당수가 살아남고 인구의 10%가까이를 차지하고 대통령까지 배출했기에 그들의 아픔은 해소가 되진 않을 지언정 꾸준히 여러 매체로 다뤄진다. 하지만 아메리카 토착민의 후예는 거의 살아남지 못했고, 무척 소수이기에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이것도 차별이라면 차별일 것이다. 

 책 니클의 소년들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다룬다. 시기는 현대와 1940년대, 1960년대가 왔다리 갔다리 한다. 주 배경은 1940년대인데 남북전쟁이 끝나 노예해방이 이뤄진지 100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한 인종차별을 다룬다. 

 독재국가였던 한국에도 여러 소년소녀들을 약간의 비위나, 부모의 부재, 공무원의 실적 올리기 명분으로 아이들을 가두었던 악명 높은 시설들이 있었는데 미국에도 당연히 비슷한 것이 있었을 거란 상상을 바탕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 학교의 이름은 초대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니클이다. 그 사람은 스포츠 신봉자로 시설에 있는 아이들의 권투대회를 만들기도 했다. 

 엘우드란 미국 남부의 한 소년이 이 니클에 수용된다. 엘우드는 흑인소년이지만 품행도 방정했고, 공부도 열심히 하며, 아르바이트도 성실히 하는 소년이었다. 킹목사에 감화되어 그의 목소리를 자주 레코드로 들었고, 학교의 힐 선생님처럼 언젠가 흑인이 평등해지는 세상을 꿈꾸고 자신도 그것에 힘을 보태고 싶어했다. 그래서 엘우드는 대학에 가길 희망했고, 마침 힐 선생님은 인근 대학이 고교생, 그것도 흑인애들에게 방학에 무료강좌를 개방했음을 알려주었다. 엘우드에겐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가는게 문제였다. 자전거로 가기에 거리는 너무 멀었고, 엘우드의 자전거는 일전에 당한 공격으로 멀쩡하지도 않았다. 차를 얻어타기로 했는데 엘우드는 백인의 차는 얻어타기 싫었다. 마침 모처럼 흑인이 모는 차량이 나타났고, 엘우드는 그것을 얻어탔다. 문제는 그 차가 도난차량이었다는 것이다. 엘우드는 도난당한 차량을 얻어탔을 뿐인데 그로 인해 니클로 향하게 된다. 모든게 튀틀려버렸다.

 그래도 엘우드는 평소 그런 것 처럼 니클에서도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성실히 생활하려고 한다. 하지만 수업은 너무나도 수준이하였다. 니클의 아이들의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였지만  교사도 문제였다. 도무지 의욕이 없었고, 엘우드의 요구도 무시한다. 니클은 바깥처럼 흑백 분리를 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교사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분리되었다. 니클은 바깥에 나갈 것만을 궁리하다 다른 아이들에게 봉변을 겪는 한 아이를 도왔고, 이게 백인 감시자의 눈에 띄고 만다.

 선의에서 한 행동이었지만 백인들에게 그것은 의미가 없었으며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이를 막으려한자 모두 그저 문제를 일으키는 검둥이에 불과했다. 이 몰이해와 인종차별이 가져온 것은 과거 노예시대나 있을 법한 가죽 채찍질이었다. 화이트 하우스란데스 당한 이 린치에 엘우드는 수주를 누워있었고 온몸에 흉터가 생기고 만다. 

 니클은 모든게 열악했다. 교장과 직원들은 주정부와 각 기관에서 보내는 지원물품과 지원금을 착복하고 있었다. 식사와 의복, 시설, 교육 모든게 최악이었다. 엘우드는 나가고 싶었고, 빠른 가석방은 에이스가 되는 방법이었다. 모범 어린이가 되는 것이었는데 경험했다시피 그것은 백인 감시자의 마음대로였다. 

 그리고 니클에서는 과거에도 그랬듯 여러 흑인 아이들이 화이트하우스에서의 가혹한 린치후 죽어나갔다. 그들은 사회에서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바라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었기에 죽어도 찾는 사람이 없거나 혹은 있어도 도망쳤다고만 말하면 그만이었다. 흑백권투시합 이후 돈을 건 백인 감시자의 요청을 거부하고 우승해버린 흑인 챔피언이 화이트하우스에서 나오지 못한 날 엘우드는 니클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다. 가혹한 현실과 그들의 물자와 지원금을 착복한 것을 기록한 편지를 감사인원들이 방문한 날 전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 소설은 미국의 아픔을 관통한 책이다. 워낙 사실적이고 가혹하고 시대의 아픔을 써내렸기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닐까 했는데 작가는 모든게 픽션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이런일이 없었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에서 풀리쳐 상을 받았고, 책에 대한 호평이 많아 기대했지만 생각만큼 재밌거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진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볼만한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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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리커버 에디션) 커트 보니것 리커버 컬렉션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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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인류 전체가 하나이고 같은 동종이며 같은 인격체이고 같은 생명체라는 분명한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망각시키는 수단이다. 전쟁과 동시에 적국의 모든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거나 다른 개체이자 증오의 대상으로 박멸시켜야할 존재로 전락한다. 그리고 전쟁에 참가한 군인은 적과의 전투로 수많은 전우의 죽음과 전쟁자체의 참상을 목격하고 스스로가 적으로부터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되므로 이런 인식이 더욱 강화된다.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적이 아군으로부터 당한 비인간적 공격을 문제시할수 있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적인 그 무언가를 넘어선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인 커트 보니컷은 2차대전에 참전했고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독일 도시 드레스덴으로 끌려가 노역에 동원된다. 당시 연방군의 무차별 폭격에 시달리던 독일의 주요도시와는 다르게 드레스덴은 문화유산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폭격 역시 한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방심의 상태에서 일어난 드레스덴 폭격은 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포로였던 보니컷은 이렇다할 숙소도 없어 형편없던 도살장에서 작업장이자 쉼터였던 형편없던 도살장에 머물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소설에 의하면 폭격이후의 도시는 마치 달의 표면과 같았다고 한다. 

 이 소설의 전개방식은 매우 독특한데, 처음 읽을 때에는 작가가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순차적으로 소설로 구성하여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과 전쟁중 함께 있었던 것 같은 혹은 자신을 투영한 듯한 가상의 인물 빌리 필그림을 만들어 소설을 전개해나간다. 그리고 빌리 필그림이 진행해나가는 이 소설은 전쟁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소설은 빌리가 1967에 라디오에 출연하여 자신이 과거에 외계인에 납치되었고, 수년간 외계행성에서 생활했지만 그들이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어 실제로는 몇백만분의 1초만 지구에 없었기에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이 인지할수 없었으며 심지어 그 기간중 유명 여배우의 같이 납치되어 함께 있었다고 말한다. 당연히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여튼 빌리는 이 납치사건 이후, 자신의 외도할순 없지만 시대를 살아가며 계속 자신의 과거 시간대로 이동하여 그 시절을 살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때론 길게 어쩔땐 짧게, 그리고 어느경우느 먼 과거로 어느 경우엔 약간의 과거로 가기도 한다. 

 그렇게 2차대전때의 빌리와 현재와 근접한 빌리, 그리고 현재의 빌리, 아주 어릴적의 빌리가 계속 나타난다. 그래서 이 책은 반전소설인 것 같기는 한데 과학소설 같은 느낌도 강하게 나타난다. 빌리를 납치한 외계인은 트랄파마도어인이다. 그들은 4차원 이상의 존재로 시간을 다룰수 있다. 빌리는 시간이동능력을 갖게 된 후, 그리고 트랄파마도어인의 영향을 받은 후로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뭐 그런 거지."라고. 트랄파마도어인들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마지막에 시공을 초월해 과거의 시간을 볼 수 있었던 것 처럼 언제든 과거의 순간을 볼 수도 거기에 들어가 생활할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어떤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 죽는다는건 일정 순간에 그 개체가 그져 상태가 나쁜 것이고 죽기전의 과거로 가서 그를 얼마든지 만나고 이야기하며 함께 지낼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걸 이해하고 어느정도 할수 있게된 빌리에게 죽음은 뭐 그런거지가 될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죽음에 대한 이런 장치를 보니 그것이 마치 컴퓨터의 영화파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지만 난 그걸 언제든 재생할수 있고, 볼수 있다. 그러면 그 영화에 끝에 주인공이 죽더라도 그는 죽는게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다시 재생해서 그의 삶을 보고 경험할수 있으니 말이다. 트랄파마도어인처럼 언제든지 그의 과거에 참여해 같이 생활할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빌리는 트랄파마도어인에게 처음 납치되었을때 왜 나라는 말을 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수많은 유인행성을 돌아다니며 왜, 어째서, 목적은 목표는 등처럼 항상 이유를 찾는 존재는 인간이 거의 유일했다고 한다. 우주의 과거에서 마지막을 볼수 있는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모든 것인 그저 이유없이 정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정해진 것에 이유를 찾는 행동은 무척이나 무의미해진다. 네가 이유를 찾는 그것마저 정해진 행동이기 때문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이 과거에 들어가 생활을 참여해도 그건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도덕이나 윤리니 하는 것들도 무의미해진다. 그건 애초에 그렇게 정해진 것들이었고, 매우 어지럽고 나쁜 순간이지만 그것역시 그들이 쭉 나열해 동시에 총체적으로 경험할수 있는 시간의 단지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림전체중 한 부분이 좀 이상하다고 해서 그걸 나쁘다고 하긴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빌리는 자유의지도 묻는다. 그런데 그것도 무의미하다. 모든게 정해졌는데 자유의지란것 역시 무의미해진다. 빌리가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고 정하는 모든 것들도 역시 사실 그렇게 하기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도 자유의지는 착각이라는 걸 암시하는 연구결과를 보여주는데 인간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기전 이미 무의식 차원에서 그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단지 무의식이 이미 결정을 한 아주 짧은 시간후 의식적으로 그것을 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사실상 없는 셈이 된다. 다만 무의식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평소 나의 생각과 경험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할텐데 그런 부분에서 자유의지를 어느정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처럼 자유의지도 없이 그저 우주에서 정해진 시공간에서 정해진 수순의 일을 정확히 수행해내니 트랄파마도어인의 시각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결국 '기계'에 불과하게 된다.

 빌리는 전쟁 후 아내 발렌시아와 결혼한다. 검안사였던 그는 돈이 많은 아버지를 둔 발렌시아를 실질적으로 공략한 셈인데 그녀는 무척 뚱뚱한 여자로 스스로도 자신이 결혼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빌리는 아내 발렌시아와 결혼하는 장면으로 돌아갔을때 자신의 결정이 정말 형편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40대 후반까지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 과거 자신의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서 선택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트랄파마도어인에겐 그건 그저 결정된 것이지만 이후의 모든 걸 알고, 변해서 인생을 조금더 높은 곳에서 보게된 자신이 보기에 과거의 결정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정도로 어리석고 부끄럽지 않을까나. 물론 빌리는 그것도 그저 결정된 것이기에 담담히 받아들이긴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소설의 주제가 뭐랄까 무척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전을 주제로 독특하고 재밌는 과학 소설을 쓴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과학적인 부분을 들여와 전쟁의 참상을 강조하면서도 외계인의 시각을 빌어 세월의 힘으로 그것 역시 인간사의 당연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관조하게되는 부분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이 책의 가치는 높게 생각된다. 재밌는 서술과 자신과 세계, 인생사를 소중히 하면서도 별것 아니것처럼 이야기하는 외계인의 시각을 빌려온 관점은 오래된 소설임에도 무척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소설에 대한 평가가 높은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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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4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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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4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름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백수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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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한 권 정도 그 책 내용이 나의 지적 소양에 비해 어렵거나, 혹은 저자와 내가 지나치게 맞지 않거나 그것도 아니면 저자의 글자체가 담은 함의나 내포를 내가 이해하지 못해 책을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읽고도 소화를 하지 못한 비율이 적은 것은 그럴만한 책을 피하는 편이기 때문인데 과거보단 나이가 들어 두려움이 앞서는 책에 대한 도전정신이 확연히 떨어진 것 같다.

 여름비도 이해하지 못했다. 2년전에 본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그랬는데 페소아의 책은 어렴풋이 알것도 같아 이해도 못한 주제에 리뷰를 제법 길게 쓸수 있었지만 이 책은 그럴 자신도 전혀 없다. 배경은 집이 너무 가난하고 애들도 많아 과거 인줄 알았는데 시속 400으로 달리는 고속열차와 자동차가 있는 현대이다. 공간적 배경은 프랑스인데 특이하게 아버지는 이탈리아인 어머니는 폴란드인이다. 아이들은 무려 일곱이나 되고 집은 부모가 모두 무직인 관계로 무척 가난하다.

 어쩌다 집에 많이 부분이 불탄 책이 들어왔는데 학력이 짧은 부모도 그 책을 보았고, 놀랍게도 글을 모르는 큰 아들인 에르네스토와 셋째인 잔도 그것을 이해했다. 책은 사라졌는데 아이들, 특히 에르네스토가 변했다. 갑작스레 아니 어쩌면 원래 그런걸 수도 있지만 세상을 모두 알면서도 알필요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 같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부처같다고 할까.

 에르네스토는 학교 가기도 거부한다. 이유가 어이없는데 학교에서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에르네스토가 학교를 거부하는데는 4일정도 그리고 에르네스토를 이해하면서도 다른 잔은 10일정도가 걸렸다. 에르네스토는 학교를 거부하고 이를 어머니에게 알린다. 어머니는 이를 이해하는듯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사실 이해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직업도 없으면서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듯한 이부모도 의무교육의 굴레를 저버리지 못하고 교사에게 상담을 간다.

 교사는 에르네스토를 만나고 아이가 범상치 않음을 알게된다. 물론 이해한것 같지는 않다. 아이는 교사의 추천에 의해 프랑스 정부의 눈에 들게되고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된다. 비슷하게 뛰어난 잔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에르네스토와 잔을 잃게 되는것을 두려워했고, 동생들도 그러했지만 결국 그렇게 된다. 소설 말미에 부모는 상실속에 죽어버리고 아이들은 시설에 맡겨졌다고 나온다. 

 주인공 에르네스토의 선문답 같은 말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 어린시절 평범하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글을 알게 되고 세상 이치를 스스로 깨닫게 되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사회나 문화, 지식, 종교등 큰 굴레에 얽매이고 지식이나 권력 다른걸 추구해서 그것에서 벗어나거나 더 알려고 하지만 그럴수 없다는걸 알게된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그런걸 하기 위해 지나가는 기관인 학교도 의미가 없어지고 가족도 사랑하지만 더이상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며 그런걸 소중히 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신도 의미가 없어지는 듯하다. 

 물론 저자가 이런 의도로 책을 썼는지는 알길이 없다. 도무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니 말이다. 힘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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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11 04: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어내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겁니다 ^^

2020-12-11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20-12-11 14: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올해 활동이 뜸하셔서 안타까웠습니다 돌아오셔서 좋네요

닷슈 2020-12-11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해를 못했다는게 너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