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의 다리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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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인 마커스 주삭이 누군지 몰랐지만 이번에 출간한 '클레이의 다리'는 전작으로부터 무려 13년의 시간차를 두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책을 읽으면서 마주친 지나친 두꺼움, 복잡한 구조, 수많은 비유들이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아....... 이걸 이렇게 하려니 이리 오랜 시간이 필요했구나" 라고. 

 소설을 읽으면 지식책들에 비해 묘한 두려움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그 책의 작가들만이 내뿜는 호흡과 문체, 세계관, 서사의 구조에 젖어드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그리 높은 허들은 아니며 그 약간의 장애물만 넘어간다면 이후엔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작가가 유도한 감정만이 느껴지기에 어느 정도 기분 좋은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근데 '클레이의 다리'는 이게 좀 많이 높았다. 이 책을 그만 읽을까 고민하며 무려 100-150쪽 정도 읽기 시작했을때서야 그 허들 위로 간신히 머리 정도를 내밀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인데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가 주는 감정과 생각등은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었지만 온전히 다 본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언젠가 한 번 더 읽어봐야하지 않을까나.

 책은 거대한 서사도 그리고 한 개인만에 국한된 세세함도 아닌 중간 정도다. 던바라는 성을 가진 집안을 다루면서도 아버지 마이클 던바와 그 아들 클레이 던바까지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복사판 처럼 닮아있다. 외모도 그러하고 여자 팔자도 그렇고, 그 기묘한 성격과 매력에 육체적 강인함, 그리고 공사장에서의 솜씨까지 그러했다. 마치 영화 대부가 생각나는 장면인데 영화 대부2는 아들 대부인 마이클 콜레오네와 그의 아버지 비토의 삶은 평행선처럼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 클레이의 다리도 딱 그러하다.

 책의 구조는 시간순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시간순을 따르지만 사실 앞부분이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고, 점점 과거의 사건이 드러난다. 처음엔 아버지 던바, 그리고 아들 던바, 결국 합쳐지며 마무리다. 아버지 마이클 던바는 시골 출신이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애비가 있었고, 애비도 마이클을 좋아한다. 마이클은 자신이 사랑하던 개가 뱀에게 물려죽자 개와 뱀을 모두 앞마당에 묻는다. 그리고 애비에게 고백을 하고 개가 사라지자 자신이라는 묘한 기분나쁨과 함께 마이클과 함께 한다. 둘은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 대학에 진학한다. 애비는 경영쪽, 마이클은 미술쪽이었다. 마이클은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애비를 더욱 아름답게 그리는 것 외에는 딱히 재주가 없었다. 둘은 결혼하지만 이런 마이클의 전공에서의 실패와 애비의 전공에서의 성공은 둘의 처지를 점점 갈라놓게 된다. 그리고 둘은 헤어진다.

 마이클이 다음에 만난 여자는 페넬로피로 클레이 던바의 어머니다. 페넬로피는 아마 폴란드인 것 같은데 하여튼 동유럽 출신으로 피아니스트다. 동구권이 무너질 무렵 직업이 그렇다 보니 페넬로피는 서유럽 여기저기로 공연을 다녔다. 늘 돌아왔기에 아마 당국의 의심도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모든게 페넬로피 아버지의 포석이었다. 아버진 페넬로피조차 모르게 그녀를 빈으로 보내며 탈출을 지시한다. 그리고 딸은 탈출했고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괜찮은 피아니스트였지만 영어와 자본주의를 모르는 페넬로피에게 주어진 일은 청소였다. 그리고 그 일로 돈을 모아 페넬로피는 피아노를 산다. 근데 그 피아노가 잘못 배달되는데 하필이면 마이클 던바의 집이었다. 후일 둘은 결혼하여 합치며 그 피아노가 결국은 잘못 배송된게 아니었음을 언급하며 즐거워한다. 하여튼 이 오배송사건을 계기로 둘을 서로를 알게되고 끌리며 사귀고 결혼하게 된다. 집을 샀고 그게 던바가의 아처스트리트 18번가다. 집은 경마장 인근으로 시끄러워서 인기가 없었는데 페넬로피는 오히려 그걸 좋아했다. 

 페넬로피 네 아들을 낳는다. 매슈, 로리, 클레이, 헨리다. 그리고 이 책의 화자가 고교시절부터 글좀 쓰던 매슈다. 로리는 타고난 싸움꾼으로 괴력에 그 힘에 걸맞게 성질도 사납다. 클레이는 주 400미터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준족에 묘한 매력을 지녔고 헨리는 집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평범하다. 페넬로피는 영어가 익숙해지자 교사가 되었다. 정말 힘든 네 아들은 페넬로피가 잘 키워내고 심지어 피아노마저 가르친다. 학교에서도 특유의 뚝심으로 문제아들을 지도하여 명망있는 교사가 된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암에 걸린다. 의사의 예상보다 몇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죽고 아버지 마이클 던바는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그리고 그 후로 매슈는 아버지 던바에게 살인범이라는 별칭을 붙인다. 아직 고교도 졸업하지 못한 자신들을 건사하지 않고 나가버려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고 아버지 없이 아이들은 자랐고 클레이는 묘하게 엇나가는 자신의 집안처럼 기수만 꾸준히 나오는 숙명을 가진 집안의 여자애를 만나게 된다. 

 케리라는 이름의 그 아이는 기수였고 유일하게 묘하고 이상한 클레이를 담아낼 수 있는 아이였다. 케리는 집안의 반대에도 기수가 될정도로 의지가 강했고 능력도 있었지만 결국 낙마하여 사망한다. 클레이의 운명도 이런 면에서 아버지 던바와 많이 닮았다. 아버지 던바는 이런 클레이에게 함께 공사장에서 다리를 만들자고 한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이 클레이의 다리인 셈인데 클레이는 이걸 허락한다. 그 다리는 오래전 강가에 있었지만 유독 비가 많이 오던날 쓸려내려갔고 이제 보수를 하는 참이다. 

 그리고 함께 다리를 완성해가며 클레이와 아버지 마이클은 뭔가를 해낸 느낌을 갖게 된다. 지독한 숙명 같은걸 다리로 털어냈다고 해야할까. 책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이후에 이야기도 다루는데 형제 매슈, 로리, 헨리의 이야기 그리고 클레이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 형제들은 매일 서로 죽일 듯 싸우면서도 묘하게 의리가 있는데 형 매슈는 로리가 학교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서 알게된 여교사와 사귀게 되고 슬하에 딸을 둘 갖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혼을 미루는데 그게 클레이가 없어서다. 우애가 이 정도다.

 서평은 시간 순으로 했지만 책의 내용은 비선형적이며 매우 복잡한다. 한장은 현재를 다루고 다음장은 과거를 다룬다. 비유적 표현이 상당히 많으며 책은 무척 두껍지만 한 절 한 절은 생각보다 무척 짧다. 상당히 독특한 감성과 느낌을 주는 책으로 오래도록 기억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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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4 0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작가의 책도둑과 메신저를 꽤 재밌게 읽었던거 같은데 오랫만에 신작이 나왔네요.

닷슈 2022-01-25 20:05   좋아요 0 | URL
저는 전작들은 보지 못해서 이번 작품과 느낌이 비슷한지 궁금하군요.

mini74 2022-02-10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축하드립니다 👍

그레이스 2022-02-10 18:08   좋아요 2 | URL
저도 축하드려요~
닷슈님!

이하라 2022-02-10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축하드립니다^^

닷슈 2022-02-11 01:0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하라님.

서니데이 2022-02-10 2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2-11 14: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해요^^

닷슈 2022-02-11 14:5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당첨축하드려요
 
공중그네 (리커버 특별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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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단편모음집이면서도 그렇지가 않다. 이유는 매 단편마다 공통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고 그가 하는 짓도 매우 일관되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사건전개와 결말마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인 신경정신의학과 의사인 이라부다. 이라부가 근무하는 병원 이름도 이라부 병원인데 이라부의 아버지가 아무래도 병원장인 듯하다. 이렇게 금수저인 이라부는 무려 100kg에 달하는 거구고 마유미라는 야시시한 의상을 자랑하는 간호사를 데리고 있다. 이 간호사는 주사를 무척 아프게 놓는데 맞는 환자가 남자인 경우 그의 복장에 얼이 빠져 통증도 있고 맞고만 만다. 

 이라부자체도 매우 이상한 성격이다. 모든 환자에게 비타민 주사를 맞추려하고 그걸 보며 쾌감을 느낀다. 거기에 환자가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마지못해 이라부에 휘둘려 그걸 해준다. 심지어 프로야구 선수가 일개 의사와 캐치볼을 해준다. 이라부의 성격은 매우 이상하고 제멋대로인데 사람들은 이런 이라부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나같이 그의 의도대로 놀아난다. 이라부는 묘한 성격고 간혹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으로 사람을 조종한다.

 매화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강박증이 있다. 하긴 그러니 신경정신과를 찾아가겠지. 첫 장의 환자는 야쿠자인데 어느 날 날카로운 물건을 두려워하게 되어 고민한다. 야쿠자는 자신이 칼을 쓰거나 칼을 쓰는 상대를 반드시 만나게 되니 낭패가 아닐수 없다. 이라부는 날카로움을 두려워하는 야쿠자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마구잡이로 주사를 놓는다. 적응시킨다는 이유라나. 그는 항상 칼을 갖고 다니는 경쟁야쿠자와 갈등을 빚게 되는데 이라부가 진단해보니 그 야쿠자는 칼이 없으면 불안한 강박증환자였다. 

 이라부의 친구인 다쓰로는 같은 의사다. 문제는 다쓰로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의국의장이자 장인인 노무라의 존재다.  그는 가발로 대머리를 숨기고 있는데 누가봐도 티가 난다. 문제는 이걸 본인만 모른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다쓰로는 이 범접할수 없는 존재의 가발을 벗기고 싶어 참을수가 없어진다. 

 한 서커스단의 고참은 공연의 대가다. 무엇하나 못하는게 없는 그는 언젠가터 가장 쉬운 공중그네를 할 수 없게 된다. 파트너가 바뀌고서 부터인데 그녀석이 자신의 위치를 시기해 일부러 잡지 않는 것이란 생각에 주먹으로 때리게 된다. 

 여성 소설가도 나온다. 그녀는 날카로운 연애심리를 문장으로 잘 드러내 인기를 끈다. 하지만 그런 가벼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오랜 기간 준비해서 쓴 역작이 고작 3만부밖에 팔리지 않자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누가봐도 잘 쓴 작품이었고 평단에서도 호평을 얻었지만 그 실패 이후 작가는 구토증세마저 나타난다. 

 한 프로야구 선수는 3루수인데 갑자기 공을 못던지게 된다. 뛰어난 신인이 등장하고서부터인데 그는 그 풋내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을 못던지는건 점점 심해져 이젠 기본적인 송구마저 폭투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 등장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마음이 약하고 이로 인해 강박이 생겨난다. 인습이나 전통으로 인해 고통받기도 하고 경쟁자가 나타나 그렇게 되기도 한다. 이라부는 이런 모습을 정확히 잡아내고 그만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치유로 유도한다. 물론 이라부가 그리 전문적이진 않다. 간혹 날카로운 말을 하긴 하지만 그보단 이라부는 오히려 의뢰인의 직업세계에 빠지는걸 즐긴다. 야구선수가 오자 갑자기 야구를 하려하고 서커스 단원이 오자 공중그네를 타려하며 소설가가 오자 등단하려는 등의 행동이다. 사람들은 이런 이라부에 휘둘리며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동참하기도 하고 이라부의 말을 들으며 알면서도 다루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기도 한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매우 유쾌한다. 전적으로 이라부라는 캐릭터, 그리고 환자들이 그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개연성이 없기도 한데. 그리 큰 흠은 아니며 재밌게 볼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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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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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나라', 뻔하고 상투적이지만 이것만큼 한일관계를 잘 표현하는 말도 없다. 양국의 근현대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분명하지만, 이후 여러 사안이 얽히며 가해 피해관계가 청산되지 못했다. 그리고 양쪽 다 급격한 보수화가 이뤄지며 분명한 피해보다는 가해의 역사를 가리고 가해자로 반성하며 살아가지 않는 것을 정상이나 보통으로 치부하는 형국이다. 

 이런 암울한 현실을 가장 심각하게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재일한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광복이후 일본에 남은 1세대 한국인의 3-4세에 달할 정도로 세월이 지났지만 가해와 피해의 문제가 분명히 청산되지 않았기에 그들의 정체성 문제도 해결되지 못했다. 일본에선 귀화할수 있음에도 수세대간 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며, 한국에서는 그 힘든 일본에 남아 차별받으면서 사는 것을 돕지 못할망정 정체성을 더 치열하게 지키며 살지 못하는 것을 탓한다.(희안하게도 미국의 재미교포에게는 이런 정체성에 대한 요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현재 한일 관계는 해결의 실마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 진보가 집권하고 일본 극우보수가 계속집권한다면 특별한 해결책을 찾지 않는한 지금의 평행선은 당분간 유지 될것으로 보이며 ,한국에 보수가 집권하더라고 박근혜시절 이뤄진 억지 위안부합의처럼 어설픈 해결로 문제를 덮어 이후에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읽은 소설의 제목은 제법 살벌하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다. 제목이 이래서인지 책을 들고 다니며 주변사람들에게 여러 소리를 들었다. 그 책 재밌나. 책 제목이 너무 무서운데 등등. 책은 재미보단 독특했다. 재일교포의 시선, 그리고 일본사회에서 재일한국인이 갖는 다양한 층위와 정체성, 그리고 암울한 한일관계의 연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등이다. 

 책은 가까운 미래를 상상한다.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양국을 오가던 수많은 관광객은 단절되었고 일본은 지금의 자민당보다 더한 극우세력이 집권한다. 이들은 성소수자나 다른 부분에서는 상당히 인권친화적이면서도 재일한국인에게만은 유독 차별이 심한 정책을 고수한다. 재일한국인에게 보장되던 특별영주자제도도 없어졌으며 재일한국인에게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기본소득지급이 중단된다. 

 혐한들의 시위와 탄압, 그리고 폭력과 차별로 한국인 상권은 급격히 축소되고 한국식 식당과 가게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런일이 급속화된데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김마야라는 재일한국인이 일본인 3명에게 강간살해당하고 만 것이다. 김마야는 제법 부유한 재일한국인이었지만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재일한국인을 못마땅해하던 패거리는 김마야의 한국어 통화를 듣고 따라가 괴롭히다 급기야는 마야의 강한 저항에 분노해 성폭행해 살해하고 만다. 

 처음에 이 사건은 일본내에서 차별과 혐한 스피치에 대한 경종과 반성을 불러일으켰지만 마야의 급진적이고 무정부적인 성향 그리고 일본에 대한 비판 발언, 성소수자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글귀와 리포트등이 발견되며 상황은 반전된다. 동생의 죽음이후 오빠인 김태수는 크게 방황하며 하루하루를 폐인처럼 보낸다.

 이런 심각한 상황의 일본에 재일한국인 가시와기 다이치와 박이화가 있다.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둘은 한때 청년회를 조직하며 일본내의 혐한에 저항했지만 정치적 시도와 사회적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 가시와기 다이치는 진보정치인을 당선시키는데 실패했고 박이화의 청년회는 사실상 붕괴했다. 

 이에 박이화는 일군의 청년들과 함께 한국, 즉 모국으로의 이주를 실시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꼬인다. 마수미라는 여성이 실연으로 귀국하던 배에서 투신하여 자살한다. 때문에 이화일행은 귀국하자마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되고 특히 이화는 국정원의 조사까지 받게 된다. 그들은 같이 간 천성의 친척 시골집에서 농업을 시작하지만 정착이 어려웠다. 손에 익지도 않던 농업은 잘 되었지만 천성의 시골 친척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여성들이 많은 이 곳을 노렸고 성적으로 접근해왔다. 이에 이화 일행은 농촌에서의 삶을 저버리고 도시로 향한다. 

 가시와기 다이치는 김마야의 죽음에서 시작된 혐한으로 기울어진 추를 바로잡고자 한다. 그의 계획, 아니 그의 아내의 계획은 무시무시했다. 일본에서 김마야의 살해사건 못지 않은 강력한 충격을 대중에게 주고자 한 것이었다. 가시와기 다이치는 이 계획의 실행을 위해 미국국적과 일본국적중 일본을 택한 재일한국인 윤신을 섭외하고 사상화한다. 윤신은 드론을 잘 다루고 싸움에 능하며 행동력이 우수했다. 가시와기가 다음으로 포섭한것은 가지마 나리토시라는 어수룩한 일본 극우단체의 회원이었다. 가시와기 아니 그의 임신한 아내의 계획은 이러했다. 가시와기 다이치와 윤신을 비롯한 일련의 재일 세력이 불손한 움직임을 벌인다. 이를 탐지한 극우단체 회원 가지마 나리토시가 이들의 소식을 듣고 침투한다. 단신인 가지마는 마침 자리에 있던 가시와기 다이치의 임신한 아내를 인질삼아 다른 이들을 모두 포박하고 준비한 단체의 일본도로 잔혹하게 살해한다. 그리고 난투끝에 가지마 나리토시도 죽게되고 불이붙어 모든게 산화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시와기는 임산한 아내를 잃은 재일한인으로 이 사건은 일본인 전체에 공분과 동정을 사게되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거에 다시 평평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무서운 계획이고 이 계획을 아내의 계획처럼 다이치는 실행하고 성공한다. 하지만 때마침 해외 테러세력의 공격이 일어나 일본자위대가 습격을 받는다. 문제는 이 습격을 인근해 있던 동맹인 한국과 덴마크 군이 구원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군은 가장 큰 희생을 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일양국의 분위기는 급속한 해빙무드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이 모든것을 본 다이치의 심정은 착잡해진다. 심지어 자신의 인터뷰와 중요도도 일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소설은 이런 다이치의 복잡함을 뒤로하고 마무리된다. 

 소설엔 재일한국인에 대한 일본사회의 오랜 차별, 그리고 있을법한 풀리지 않은 미래 한일양국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보다 더한 극우세력이 집권한 일본사회의 미래는 정말 암울해보이며 지금도 말이 안되지만 더한 궤변으로 재일한국인과 한국을 혐오하는 일본인들의 논리는 정말 기괴하다. 재일한국인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사실상 교포3-4세로 일본문화와 일본어에 익숙하면서도 오랜 차별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다. 한국은 모국이지만 어색하다. 소설은 이렇게 공포스러운 미래를 경고하는듯 하지만 일본을 크게 비판하지도 한국을 옹호하지도 않는다. 또한 소설의 결말부분의 해결책도 결국은 미래에 더큰 문제와 혐오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미봉책에 불과해 쉽게 풀리지 않을 한일 문제를 예견하는듯 하기도 하다. 매우 독특한 소설이었고 이런 특이한 시각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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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내 이름은 빨강 1~2 - 전2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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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을 읽으면 대개 서양의 것이나 한국 아니면 간혹 일본이나 중국의 것을 보게 된다.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아프간출신 사람이 쓴 '연을 쫓는 아이' 정도가 내가 읽은 책중 아마 이런 지역을 벗어난 유일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인 '내 이름은 빨강'은 또 다른 예외가 될 것 같다. '내 이름은 빨강'은 터키작가의 작품이다. 때문에 문체와 세계관, 작품에 녹여있는 인물들의 생각이 그 어디서도 본적이 없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형식도 무척 특이한데, 그러다보니 책이 매우 재미있는 내용임에도 빠져드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책은 기본적으로 예술을 기반으로 한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인데(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와 비슷하다) 16세기 후반 다소 기울기 시작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상황과, 실질적 지배자인 술탄과 극단적 무슬림세력의 등장과 갈등, 이슬람세계의 회화예술과 서양미술의 충돌과 만난, 그리고 사랑이 같이 자리한다. 이런 이질적 요소들을 하나로 무리없이 묶어낸 작가의 실력은 상당히 놀라운데 책의 형식도 매우 특이해서 더욱 인상적이다.

 책의 각 챕터는 나는 ___ 이다. 라는 식으로 이뤄진다. 내 이름은 카라. 나는 세큐레,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 나를 올리브라고 부른다. 이런 식이다. 책의 전개는 대개 시간순인데 동일한 사건과 만남에 대해서 같이 있던 인물들이 자신의 시각으로 그것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상당한 재미와 자극을 준다.

 책 내용은 이렇다. 배경은 1591년 술탄이 지배하는 오스만투르크제국으로 예니시테와 그의 딸 세큐레가 있다. 예니시테는 이슬람최고 지배자 술판의 명령으로 임무를 하나 수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슬람최고 지배자의 주문이니 마땅히 목을 내놓고 수행해야하는 임무일터이지만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술탄은 이 그림책을 서양 스타일로 꾸밀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문은 이후 이책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다. 

 당시 이슬람 세계의 회화양식은 부감법과 비슷한 느낌인데 여기엔 종교적 영향과 과거 몽골제국의 지배로 인한 중국문화의 영향이 자리한다. 책 내용을 살피면 원래 이슬람세계에서는 신과 그가 만든 이 세계를 감히 그림으로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원제국의 지배를 받고 중국의 그림이 유행하며 신과 그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게 된 듯 하다. 또한 모든 것을 신의 눈으로 보는 듯 묘사를 해야했기에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듯한 부감법처럼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과거 이런 신의 눈, 즉 그리는 스타일을 완성한 고대작가를 묘사해그리는 것이 화가들의 임무였다. 즉, 화가 개인은 없는 셈이었고 자신만의 화풍도 없는 세계인 것이다. 

 이런 이슬람 세계에 베네치아 즉, 서양의 화풍이 등장한다. 서양의 그림들은 르네상스 시기를 지나 신에게서 벗어나 인간중심의 세계를 그러내고 있었다. 원근법으로 세계를 사실과 가깝게 묘사하고 있었고, 신이나 술탄같은 지배자가 아님에도 개개인의 초상이나 물건같은 하찮은 것들을 과감히 크게 자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또한 개별화가들의 스타일이 있어 그림마다 화가의 서명까지 들어가고 있었다. 이는 이슬람회화세계에서 용납하기도 상상하기도 힘든 것들이었다. 하지만 예니시테는 젊어서 베네치아를 사신으로 오가며 그들의 미술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그의 제자들은 이런 그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예니시테는 술탄의 명령에 따라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아끼는 제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려냈는데 마지막 10번째 장을 앞두고 금테를 두르던 작가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두개골이 깨어진채 외딴 우물속에서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작업이 중지된다. 그리고 살인자는 금테 작가에 이어 예니시테마저 살해한다. 

 예니시테의 딸 세큐레는 이일로 곤경에 처한다. 원래 세큐레는 자신보다 12살이 많은 사촌인 카라를 좋아했다. 카라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카라는 오래전 멀리 여행을 떠나버렸다. 세큐레는 결혼을 해야했기에 직업군인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지만 그가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지 어언 4년이 지났다. 한편 시동생인 하산은 이스탄불 최고 미인인 세큐레에 노골적으로 연애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세큐레는 시댁에서 탈출하고 싶었지만 그려려면 이혼이 필요했고 이혼을 위해서는 남편의 사망을 증명할 증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카라가 이스탄불로 돌아온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둘은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할수 있었다. 세큐레는 카라는 움직이고 아버지 예니시테를 설득할 요량이었는데 예니시테가 죽어버린 것이다. 세큐레는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고 슬픔을 뒤로하고 놀랍게도 살인현장을 수습한다. 그리고 이를 카라에 알리고 카라는 발빠르게 주변인을 매수하여 가짜증인을 만들고 이맘들을 섭외하여 서둘러 세큐레를 이혼시키고 바로 결혼식을 올려버린다. 그리고 결혼후 이틀후 그들은 예니시테의 죽음을 공표한다.

 한편 예니시테가 죽자 술탄은 노한다. 그는 카라를 불러 부하를 통해 심문한다. 술탄의 위압과 공포에 카라는 예니시테의 죽음에 대해 모든 사실과 자신의 결혼에 대한 사실도 말한다. 그리고 술탄은 궁정화가 오스만을 불러 화풍을 통해 범인을 카라와 함께 추적하게 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삼일로 술탄은 궁정화가들 중 범인을 찾지 못하면 화가 전체를 고문하여 범인을 찾을 것이라 말한다. 오스만과 카라는 범인의 화풍을 알아내기 위해 범인이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랜 그림을 보기 위해 숱탄의 하렘에도 들어간다. 

 이런 노력끝에 마침내 카라는 범인을 찾아낸다. 카라는 의심되는 궁정화가 황새, 나비, 올리브를 모두 찾아가는데 이등중 범인이 있었다. 다른 두명의 화가와 함께 범인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바늘로 눈을 찔러 눈을 멀게하지만 방심하다 카라는 어깨를 단검에 찔리고 범인은 도주한다. 하지만 범인을 카라와 같은 편으로 착각한 세큐레의 시동생 하산의 분노로 범인은 어이없게 목이 달아난다. 카라는 세큐레의 곁으로 돌아갈수 있게되고 둘은 남은 26년을 같이 살게 된다. 

 책 내용은 무척 재밌고 서술도 재밌으며 형식과 전개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가끔 죽음이나 빨강, 개나 새등 사람이 아닌 것도 말을 걸고, 서술하다 갑자기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경우도 있다. 책을 통해 터키인들이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문화와 예술, 종교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조금 알수 있게 되었고 예술을 소재로 갈등이 벌어지며 살인사건이 이뤄지고 거기서 사랑과 더불어 현실적 처신을 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전개방식도 매우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주인공은 여성 세큐레라고 생각된다. 그녀는 화가도 범인을 잡는 역할도 하지 않지만 그 모든 이들과 주요하게 관련하고 사랑하며, 그들을 이용하고 조종한다. 그래서인지 책의 마지막 장도 세큐레의 장이다. 이 모든 어려움속에서도 종교나 이념, 갈등과 세력다툼속에서도 어떻게든 사랑하며 현실을 살아가야하는 이슬람 세계의 약자 여성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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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9 16: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ㅅ^

닷슈 2021-12-09 19:2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추운데 늘 글 잘읽고 있습니다.

mini74 2021-12-09 16: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

닷슈 2021-12-09 19:23   좋아요 1 | URL
감사하고 저도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12-09 1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재미있게 읽은 책!
지금 읽었다면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책!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책!^^
이달의 리뷰 축하드려요

닷슈 2021-12-09 19:23   좋아요 2 | URL
제가 좀 늦게 읽긴 했습니다. 재밌고 색다른 책이었어요.

쎄인트saint 2021-12-09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닷슈 2021-12-09 19: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2-09 1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닷슈 2021-12-09 19: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12-09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닷슈 2021-12-13 20: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임지수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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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는 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죽고싶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 보호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인 자신들이 먼저 죽는다면 친지들을 포함해 이 사회의 어느 시스템도 그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할 수 밖에 없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임지수는 장애를 가진 딸을 낳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 '내 인생의 무지갯 빛 스승' 을 그 딸과 함께 썼다. 2015년에 나온 책인데 후속작인 이 책은 안타깝게도 그 딸인 유재윤이 루게릭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장애를 가진 딸을 성인까지 키워내는 것만해도 엄청난 일인데 그 일을 해내자 딸에게 다가온 불치병, 그리고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죽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극이다.

 딸 재윤은 사지기형으로 태어나 온갖 수술을 이겨내고 성인이 되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딸은 잘 커주었고 힘들지만 이제 보통사람들과 비슷한 삶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딸과 함께 쓴 책은 파리도서전에도 출간되었다. 둘은 초청도 받았다. 인생에 다시 없을 기회였지만 가지 못한다. 재윤이 다시 아팠기 때문이다. 재윤은 집인근 카페에서 1년간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워낙 밝고 사교성이 좋아 손님들과도 잘 어울렸고, 벗과 같은 단골손님도 생겨났다. 엄마는 걱정이 많았지만 전국 자전거 일주를 우려와 걱정속에서도 어떻게든 해낼만큼 강한 딸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딸이 자꾸 다치기 시작한다. 마시던 잔을 떨어뜨리고 갑자기 넘어지고, 급기야는 퇴근 중 제대로 넘어져 코뼈가 골절되고 만다.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꾸 힘들다고 말하곤 했다. 엄마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딸을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다. 

 가족들은 리마인드 웨딩 사진도 같이 찍었다. 그 때만해도 딸은 아직 서있고 걷고 움직일만 했다. 하지만 이후 급격히 악화된다. 골절된 코뼈가 다시 골절된 만큼 크게 넘어졌다. 뭔가 많이 이상했지만 설마설마 하며 무시하던 신호를 더는 무시할수 없게되어 병원으로 향한다. 무엇이 원인인지 빨리 알고 싶어 서울의 대형종합병원을 피하고 믿을 만한 지역 대형병원을 찾았지만 엄청난 길이의 바늘이 몸을 여기저기 찌르는 무시무시한 검사가 깊은 생채기를 남겼을 뿐 결국 서울의 대형종합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거기서도 힘든 검사가 이어졌고, 결국은 루게릭이었다. 엄마는 검사중 재윤의 증상과 직접 본 경험을 토대로 이미 루게릭을 짐작하고 있었다.

 근육신경이 모두 죽어 움직일 수는 없게되고 급기야는 소화기관과 호흡기관 마저 멈추어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정신은 멀쩡히 남아있게 되는 잔인한 병이었다. 사지기형도 모자라 왜 이런 일이 자신과 딸에게 발생한 것일까. 부모는 이 병명을 끝까지 딸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저 잘 쉬고 열심히 노력하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재윤보다 6살 어린 동생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는다. 너무 잔혹한 일이라 말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힘들어지기 전 그들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다. 식당이며 코스 모든걸 재윤이 기획한다.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이후 재윤은 다시 여행을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악화된다. 남편도 지방으로 발령이나 엄마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이 된다. 20년을 딸과 함께 고생했는데 이젠 더 한 간병의 시작이었다. 사회복지의 손길이 시급했다. 관청에 온갖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바라는 손길을 많고 지원은 한정적인지라 이리저리 요구하는게 많았다. 한참을 노력하여 사회복지등급을 받고 간병인 서비스를 지원받게 되었다. 

 조금 숨통이 트인 엄마는 오카리나를 배우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만나기도 한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그리그 그 와중에 딸 재윤은 대학을 진학한다. 미디어학과였다. 방송영상을 만드는 것을 배우는 곳으로 딸은 예능피디가 되고 싶어했다. 지금상태만으로도 힘든 엄마를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딸을 대학에 보낸다. 먼거리를 통학 해 시험을 보게했고, 그렇게 한 학기를 다녔다. 장학금도 받았다. 하지만 딸은 다음학기에 더 이상 대학에 가지 못한다. 상태가 많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발병 후 대충 삼년이 지나 결국 재윤은 죽음을 맞는다. 동생은 언니가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병명을 듣게된다. 재윤은 죽으면서도 자신의 병명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걸 차마 말해주지 못한 부모님의 심정도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엄마는 장애를 가진 딸을 힘겹게 키워내며 같이 성장하고 성숙했다. 그리고 그런 딸이 죽었다. 감내하기 깊은 고통과 심경을 엄마는 이 책에서 절절히 풀어낸다.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이해하기 힘든 고통에 왜를 묻기도 하고 이해해주지도 못하고 상황에 맞는 공감능력도 부족한 주제에 한참위에서 어디서 들은 위로말이나 건네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도 하고, 그래도 받아들여야 함을,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노력을 보인다. 그래서 책의 문장은 화가 난 것 같기도, 슬프기도하고, 분노한 것 같기도 하면서 절절하기도 한, 여러가지가 응축된 느낌이다. 

 딸의 삼년상을 치루며 저자는 이 책을 썼고, 안나푸르나 등반을 다녀온다. 저자가 안나푸르나에서 지나온 길로 한국의 교사들이 눈사태로 실종사망하였는데 세상일은 모를 일이다. 딸 재윤은 살아생전 뉴스로 누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 몸 나를 주지란 말을 했다고 한다. 생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지만 재윤과 엄마를 보면 내가 정말 감당하기 힘든 것일까란 생각이 들기도하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당장에 죽을 병이 있는게 아니고 나와 내 가족이 특별난게 없지만 건강하고 앞으로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고 다행이란 걸 느끼게 된다. 

 엄마는 책을 통해 이렇게 탈상하며 언젠가 딸을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개인적으로 내세와 종교를 믿지 않지만 결국 그런 날은 올거라 생각한다. 영혼의 형태이든 물질의 형태이든 결국 우린 하나고 언젠간 만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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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11-08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안타깝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닷슈 2021-11-09 23:04   좋아요 1 | URL
좋은 책입니다.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bookholic 2021-11-09 0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퍼서 못 읽을 것 같아요...

닷슈 2021-11-09 23:05   좋아요 1 | URL
슬프지만 저자가 극도의 슬픔과 절망을 억누르고 풀어헤치고,헤아리고 받아들이면서 쓰셔서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먹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