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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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잘 보지 않는 편이어서 중국문학은 일정 나이가 되어 사실상 처음 본 것 같다. 책 제목은 원청인데 중국의 한 도시 이름이며 작가인 위화는 유명한 듯하다. 허삼관 매혈기란 책도 썼다는데 제목을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다. 이 책의 배경은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이 설립하고 붕괴하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이다. 이런 큰 거시적 배경에서 저자는 그 영향을 받으면서도 아랑 곳 않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철저히 작은 삶은 다룬다. 책 파친코의 첫 구절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듯 이 책도 그런 느낌으로 진행되며 오래전 읽었던 한국의 소설 고래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책에 나오는 주요인물은 린샹푸, 천융량, 구이민, 샤오메이, 아청 등이다. 린샹푸는 황하 즉, 중국의 오랜 중심인 중원의 한 지역에 사는 인물이다. 재력가이면서 학문이 뛰어났고, 가구를 잘 만들던 아버지를 닮았으나 그 아버지가 고작 린샹푸 나이 5살에 죽는다. 어머니는 홀로 집안을 이끌며 린샹푸를 성년으로 키워내나 역시 그가 결혼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그렇게 린샹푸는 집안의 전답을 경영하며 살아간다. 재력가로 매파에 의해 여럿 중매를 보았으나 선뜻 연이 닿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원청이란 곳에서 왔다는 샤오메이 아청 남매가 찾아온다. 오랜 여행끝에 그들은 피로하고 여비가 떨어졌으나 입고 있는 옷만은 그렇지 않았으나 린샹푸는 샤오메이에게 끌리기 시작하고 웬일인지 오빠 아청은 여동생만을 남겨둔채 북경의 이모부에게 향한다. 샤오메이는 오빠를 기다리다 린샹푸와 연을 맺는다. 린샹푸는 그녀를 사랑하여 집안의 금괴를 보여주나 샤오메이는 친정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아청에게 금괴의 상당량을 갖고 가버린다. 린샹푸는 좌절했으나 몇달 후 배가 부른 샤오메이가 린샹푸의 아이를 임신했다면 돌아온다. 다시 행복이 찾아오고 린샹푸는 그녀를 잡기 위해 제대로 결혼식을 올린다. 딸 린바이자가 태어나고 얼마 안있어 샤오메이는 다시 사라진다. 이에 린샹푸는 집사 텐다일가에 가계를 위임하고 딸과 같이 샤오메이를 찾아 원청으로 떠난다.

 그런데 원청을 아는이가 아무도 없다. 린샹푸는 그저 강남으로 향한다. 샤오메이와 아청과 비슷한 말투를 하는 지역으로 좁혀간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시진이다. 거기서 린샹푸는 거대한 회오리 바람과 수주일간 이어진 폭설을 만나지만 천융량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기거하며 동업하게 된다. 린샹푸는 가구 만드는 솜씨가 좋아 천융량과 함께 목공소를 운영해 수년 만에 고향에서만큼의 재력을 축적한다. 하지만 십수년이 지나도 샤오메이와 아청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평화롭던 시진엔 토비(도적)들이 들끓는다. 이들은 가정과 마을을 약탈하고 살육을 일삼았으며 사람들을 납치해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다. 천융량의 첫째 아들이 린바이자를 대신해 납치되고 시진에선 토비에 대응하기 위해 민병대가 조직된다. 마을의 중심인물이자 상인회의 대표인 구이민이 이일의 중심이 되어 토비를 토벌하자 토비의 수괴는 구이민을 납치해보린다. 

 나이든 린샹푸는 천융량 일가가 떠나고 딸마저 상하이로 유학보내어 외로운 마음이었다. 샤오메이와 아청을 찾는 것도 포기했다. 그런 상태에서 린샹푸는 장래의 사돈이자 신세를 진 구이민을 찾기 위해 토비와 협상을 벌이고 그 와중에 살해된다. 린샹푸의 집사 텐다일가가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고향으로 향한다. 

 이렇게 책은 1부가 끝나며 2부가 진행된다. 2부는 샤오메이와 아청의 이야기다. 그들이 원래 어디살았고, 사실은 어떤 사이이며, 린샹푸와 어떻게 엮이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무척 재밌으며 재미난 소설이 그렇듯 두꺼워 막상 읽기 무섭지만 쪽수가 빠르게 줄어들며 그 줄어듬에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책을 좀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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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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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케이지의 4분 33초란 음악이 있다. 피아니스트가 무대 가운데의 피아노를 향하여 그 앞에 앉고 악보를 보고 마치 연주할 것만 같다. 청중은 일상적인 연주회처럼 뭔가 기대를 하고 기다리다 곧 이상함을 느낀다. 작은 웅성거림도, 투덜거림도 있었을 것이지만, 무척이나 이상스러운 길고도 짧은 4분 33초를 어떻게든 참아냈을 것이다. 시계를 보던 연주자는 4분 33초가 지나자 인사를 하고 나가버린다. 이 이상스런 상황에서 청중이 만들어낸 모든 소리와 반응, 이게 존케이지가 만들어낸 4분 33초란 음악이다. 

 이건 음악사에 있었던 일인데 그걸 책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아마 이 책 관객모독이 그 자릴 차지할 듯 하다. 책은 무척 얇지만 상당히 이상하다. 책 설정상으로는 독자는 연극을 보러온 관객이다. 그리고 화자는 무대에 선 단 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주구장창 설명만을 해댄다. 관객들에게 인내심과 교양을 요구하든, 말이 되면서도 안되는 소릴 하면서도 꾸준히 여러분이란 존칭을 한다. 이게 아마 관객이 참아내게 하는 장치일 듯 하다. 

 그의 설명은 연극을 보러온 나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연극이나 영화같은 것을 보면 우린 편한 자리에 앉아 어느샌가 나를 읽고 가상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공감하며 희노애락을 느낀다. 하지만 서서 본다면, 또는 무대의 경계를 의식한다면, 뭔가 달라질 것이다. 하여튼 그는 이런 식의 설명을 장황하게 한다. 집중하기 힘들다. 하지만 곧 뭔가 시작되겠지란 기대감으로 인내하며 버틴다. 좀 독특한 연극인것 같다란 느낌으로

 그런데 갑자기 무대의 그가 돌변한다. 갑자기 너란 반말을 시작하며 모욕적 언사를 쏟아 붇기까지 한다. 당황스럽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이상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그리고 결국 연극은 애초에 없었음을 선언하고 급기야 무대에서 나가버린다. 아마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연극을 연출 한 것 같다. 이상한 말을 하면서 짧은 시간동안 정상적인 연극을 기대한 사람들의 또 다른 반응을 보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본색을 드러내며 그것을 절정으로 이끄는 것, 그런 관객을 무대이자 연기자로 관객으로 만들어버리는 연극 말이다.  

 이런 걸 직접 괜찮은 극장 공연에서 당한다면 어떨지 상상해봤다. 독특하고 괜찮은 경험일 것이다. 물론 결국엔 제대로 된 연극을 보여주긴 해야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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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19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7분 23초. 뭐 이런거 하면 잡혀가겠지요 ㅎㅎ 저는 백남준 악기 부수는거 보고도 아… 예술은 참 어렵구나 했어요. 관객모독이 이런 내용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닷슈님 *^^*

닷슈 2022-10-20 13:00   좋아요 1 | URL
백남준은 소싯적엔 동물 모가지를 전시장 앞에 걸어 놓았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미니님 연주를 하시나 보군요. 부럽습니다.

mini74 2022-10-20 13:03   좋아요 1 | URL
헉. 동물모가지 정말 현대예술은 어려워요 ㅠㅠ 저 연주 못해요 닷슈님 ㅋㅋ 존 케이지처럼 가만 있음 어떨까 욕먹겠지 하면서 상상해봤어요 *^^*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
 
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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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몇몇의 한국 작가를 기억한다. 고래를 쓴 천명관, 디디의 우산의 황정은, 7년의 밤의 정유정, 당선합격계급의 장강명 그리고 김초엽이다. 난 과학을 좋아하는 편이라 과학을 소설의 세계관이나 배경, 이야기를 엮는 소재로 쓰는 SF 장르는 좀 더 즐겨보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주는 독특한 재미가 있고 특히나 삼체는 정말 벌벌 떨면서 추석 연휴 기간에 독파했던 기억이 있다. 

 책과 우연들은 작가 김초엽의 일상이 드러난 책이다. 김초엽 작가는 원래 과학자가 되려고 했었다고 한다. 화학이 전공인데 완벽을 기해야 하는 실험, 그리고 계속되는 오류를 잡아내면서 매우 작은 성과를 얻어가며 나아가야하는 그 연구자라는 것이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는 자각을 하고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런데 원래 글은 잘 쓰셨던듯 하다. 학창시절, 실용글쓰기라고 자신을 포장하고, 남을 위한 글을 써주는 지도를 했다는 것을 보면 그렇다.

 소설가들이 보여주는 소설의 세계가 하나의 매우 설득력 있는 세계이기에 독자인 우리는 왠지 작가 자신도 대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때 책을 쓰기 위해 자신안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책들속의 장치나, 논점들, 인물들을 보면서 자신안에 무언가가 생겨나고 그것으로 책을 쓰게된다고 한다.

 김초엽 작가는 그렇게 단서를 잡으면 무의식의 세계에서 상당히 글을 마구잡이로 쓴다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책을 채워넣지 않으면 도무지 쓸수 없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렇게 쓴 책이 완성도가 높을리 없어 다 쓰고 보면 이 책은 절대 세상에 나오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친구나 작가, 편집자들에게 보여주며 생각을 듣고 교정에 교정을 거듭해 처음 쓴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제대로 된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을 보면 김초엽 작가가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고 책을 읽어나가며 책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자신이 본 여러 책을 추천해준다. 뒷 부분에는 각 장마다 김초엽 작가가 언급하는 책들이 나오는데 이런 재미난 목록을 알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은 좋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작가와 내가 상당히 독서 취향이 다르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정도 책을 본 나도, 그리고 나보다 많이 보았을 작가도 이상스럽게 같이 읽은 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하여튼 소설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그리고 그 중에서도 조금 더 독특한 SF 소설을 어떻게 완성해나가고, 그것을 해내는 작가의 삶과 세계, 생각을 어떠한지 엿볼 수 있는 재미난 책이었다. 이것도 편집자가 권해서 나온 책인지, 아니면 작가 본인이 펴낼 생각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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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아들과 아빠의 작은 승리 장애공감 2080
이봉 루아 지음, 김현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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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우영우나, 굿 닥터 처럼 자폐인을 다룬 인기작들을 보면 심경이 복잡해진다. 그 숫자에 비해 사회에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자폐인을 조명해준다는 매우 긍정적인 점이 있지만 자폐인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 때문이다. 물론 자폐인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기에 우영우나 굿 닥터 같은 자폐인이 어딘가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폐인은 그들처럼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기보다는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많이 부가하는 특성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본 자폐에 관한 책은 자폐 아들과 아빠의 작은 승리라는 책이다. 프랑스 책인듯 한데 확실치는 않다. 책의 시작에선 늘 그렇듯 젊고 매력적인 남여의 만남이다. 그들은 아이를 낳기로 하고 결혼도 한다. 아이는 남자아이로 이름은 올리비에다. 사랑스러운 아기였지만 슬슬 말을 다른 아이들만큼 하지 못하는 것을 부부는 눈치챈다. 결국 검사를 받고 아이는 자폐 판정을 받는다. 

 엄마도 엄마지만 아빠의 충격이 매우 컸다. 작중엔 그의 세계관이 아니 세상이 무너져내리고 그 충격으로 아빠가 검은 새처럼 변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새는 엄마와 다투고 가정은 무너진다. 이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혼한 엄마는 엄마대로 성실히 아이를 챙기고 이혼한 아빠와 협력하며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운다. 이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이라면 가능할까. 하여튼 아이는 아빠가 챙긴다. 엄마는 부유한 남자를 만나서인지 아니면 직업이 좋아서인지 아빠보다 부유했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 멀리 이사간다. 그렇다고 아이를 보는 것에 소홀하진 않다.

 그래서 자폐 올리비에와 싸우고 생활해나가는 것은 아빠의 몫이 된다. 공무원과 전문가들은 규칙에 맞는 생활과, 짜여진 일과, 그리고 각종 치료를 추천한다. 하지만 아빠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말이 안된다. 세상은 규칙적으로 짜여진대로만 살수는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독재자 푸틴이나 시진핑도 그렇게 살진 못할 것이다. 아빠는 아들이 잠이 들면 그래서 매일 가구의 위치를 바꾸며 노는 것도 하루의 일과도 조금씩 달리한다. 아들을 현실에 적응시키기 위해 자극을 계속주어 둔감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올리비에는 아빠의 이런 노력으로 서서히 눈맞춤도 되어가고 어느새 말도 하게 된다. 여전히 자폐이고 남들이 보기엔 이상하지만 아빠의 노력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갖고 있으며 약을 먹게 된 후로는 정규학교수업도 받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빠의 노력은 눈물겹다. 계속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대화하며 남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아들을 바깥에서 교육적으로 대한다. 매번 아빠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남겨두었던 무수한 아들을 삭제한다. 정상적으로 태어나 자기와 책을 읽고 스포츠를 즐기고 상호작용하는 아들을 말이다. 

 책의 마지막은 어느 덧 많이 자란 올리비에게 자신의 선생님에게 아빠를 남성으로서 소개하고 추천하는 장면이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론 애초에 올리비에는 그 정도까지는 갈수 있는 자폐인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자폐 부모들이 갖은 노력에도 평생 자신의 아이와 제대로된 의사소통 한번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올리비에와 아빠의 노력을 평가절하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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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09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비에를 저정도까지 오게 하기까지 정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로 사는건 몇배나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의 환경이 그 노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되는데 그런면에서는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부족한 부분이 많은거 같고요. 제도적인 면은 그래도 많이 좋아진거 같은데 장애에 대한 우리나라사람들의 인식은 어째 갈수록 더 퇴보하는거 같은 느낌이에요.

닷슈 2022-10-10 12:30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인식이나 지원이 퇴보하는 건 중산층이 살 여유란게 많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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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은근히 채사장의 팬이다. 채사장이 낸 책을 모두 사서 읽고 소장하고 있으니 그렇다. 매우 인상적이었던 지대넓얕 시리즈 제로편에이어 오랜만에 나온 그의 신작은 소설이었다. 제목이 좀 이상해서 다소 의아했지만 열한계단이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같은 제목도 있었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 소설이었다. 

 하여튼 어떤 소설일지 많은 호기심을 갖고 읽기로 했다. 내용이나 배경은 모두 의외였다. 인생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니 현대적인 내용이 아닐까 했는데 의외로 중세 십자군 시절이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이었다.

 소마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십자군들이 세운 왕국 주변부에 사는 한 작은 이교도 마을(십자군의 관점에서) 소년이다. 느낌은 인도느낌인데 십자군 왕국 주변부이니 아마도 아라비아 반도 인근일 것이다. 소마는 아버지로부터 신에대해 배우고 어느날 아버지와 집근처 호숫가에 나간다. 아버지난 강하게 활을 쏘고 이 활을 찾아오라고 소마에게 시킨다. 그래야 인생이 활처럼 곧을 거라나.

 일종의 성인통과의례 같은 이런걸 수행하러 소마는 길을 떠난다. 아버진 장사였는지 이 활을 넓디 넓은 호수를 넘어가 소마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마는 길을 헤메고 비를 맞다 지쳐 동굴로 들어간다. 그 동굴에서 이상한 석상같은 걸 만나는데 그 석상은 소마에게 복종을 요구하고 그 댓가로 세계를 지배하게 해준다고 한다. 화살도 찾게 해줌은 물론. 소마는 고통 끝에 허락한건지 아닌건지 애매한 상태로 동굴에서 나온다.(아마 허락한것 같다)

 그리고 마을에 와보니 마을은 십자군들에 의해 약탈방화살인이 이뤄진 후였다. 소마는 어머니의 시신을 끌어안고 며칠을 보내다 다시온 십자군에 의해 구출된다. 그리고 소마의 이름은 왕국에 걸맡게 사무엘이 된다. 소마는 십자군 아데사 왕국에 살게되고 한 실력자의 집에 머물게 된다. 유산을 거듭하던 한나가 소마를 살피고 아들처럼 키운다. 하지만 이교도에 이민족인 소마는 자식이 없는 한나의 집안을 노린 한나의 오빠 바가렐라의 아들 헤렌이 오면서 밀려난다.

 헤렌에 모든 걸 빼앗긴 소마는 왕국기사단에 들어가 네이케스와 고네등으로 이뤄진 진보적 집단과 만난다. 그들은 삶에 대해 고민하고 왕국의 마녀사냥등에 반대하며 이들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녀희생자를 구하다 일이 틀어져 고네도 죽고 소마는 왕국에서 나와 오히려 적국인 크레도니아의 군인이 된다.

 크레도니아엔 소마같은 이민족 부대가 있었고 소마는 사무엘에서 다시 소마의 이름을 되찾고 20년간 전쟁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헤렌이 이끄는 어리석은 부대를 궤멸시키고 크레도니아마져 차지해 석상이 말한 것처럼 세계를 지배하는 자가 된다. 

 황제가 되어 제국을 다스리던 소마는 백성을 위한 삶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개혁이 지체되자 서서히 지쳐간다. 지독한 삶에서 호화로운 삶은 누리며 인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불운과 원망만 계속하며 짐승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에 후회를 느낀다. 그러다 눈먼 소녀를 만나고 소녀에게서 안식을 찾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사를 멀리하게 된 소마는 아들 에다(그는 소마가 죽인 헤렌의 아들일 수 도 있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다. 과거 소마의 동료이자 부하였고 지금은 그에 의해 요직을 차지한 이들의 배신도 물론이었다. 소마는 두눈과 혀, 귀, 코를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도 세계를 헤메며 자신이 걸어왔던 모든 것을 돌아보며 생을 마무리한다.

 책의 이야기는 많이 보는 배신과 복수의 굴레바퀴로 제법 흡입력이 있다. 채사장은 한 사람의 굴곡진 인생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는것도 모든 것을 잃는 것도 하나로 보는 느낌을 선사하려는 것 같았는데 다 읽었지만 그런 느낌이 많이 들진 않았다. 소설가로의 첫 변신이었는데 이전 그의 작품들이 주는 느낌이 강렬했기에 어렸웠을 이번 시도가 썩 인상적이진 않았다. 바닥부터 최고 권력, 다시 바닥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인생의 무상함이나 단일자를 보려주려는 시도였던 것 같은데 오히려 고민하는 현대인을 배경으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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